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버스 민폐녀

2023.10.21 02:5410.21

버스 민폐녀.jpg

  잠을 설쳤다. 기대 반 우려 반. 설렘 반 긴장 반.

 

 

맞선이 있는 날.

 

<이루리> 결혼정보회사의 13번째 공식 소개팅. VIP 고객인 내게, 걸맞은 남자의 신상이 펼쳐져 있다.

 

41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미국 유학. 키 177cm. 몸무게 77kg. 수도권 아파트 소유. 교육자 집안. 취미는 독서와 등산. 호감형 얼굴. 연봉 일억 이상.

 

나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단골 미용실인 <버르장머리>에서 곱게 단장을 했다. 거울에 비친 나의 우아한 모습. 비록 서른아홉이지만 이십 대 중반이라고 해도 다들 수긍할 정도의 동안이다. 물론 들창코는 살짝 손을 댔다. 눈도 하는 김에 같이 했다. 그러다 욕심이 생겨 가슴, 허벅지도 쪼끔, 스치듯 손을 봤다.

 

나의 전담 커플 매니저인 나직방 님의 줄기찬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압구정역 7번 출구 <오똑한코 성형외과>에 거금을 투자했다. 결과는 매우 만족. 다들 잘 뽑았다고 난리다. 문제는, 나의 서글픈 은행 잔고. 겨우 일백만 원 정도 남았다.

 

자본주의 사회에 이건 그야말로 <인생 밑바닥>의 다른 이름. 저절로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이 모든 비극은 그놈의 탁상용 카렌다로부터 시작되었다.

 

사장 친척이 운영한다는, <바나나 저축은행>이 곳곳에 요란하게 새겨진 작은 달력. 달력 뒷면에는 예외 없이 유럽의 어느 멋진 풍경이 나온다. 뭔가 고풍스러우면서도 고상하고 멜랑콜링하면서도 친근한 거리와 카페, 교회. 하지만 나는 무심히 그냥 쳐다볼 뿐이었다. 적어도 그 어느 날 까지는 말이다.

 

나는 한때 열렬한 비혼주의자였다. 하지만 다른 비혼주의자 여자들과는 좀 달랐다. <혼자 사는 삶이 더 행복할 것 같아서> 혹은 <다른 사람에게 맞춰 살고 싶지 않아서> <자녀를 양육할 자신이 없어서> 같은 흔한 이유가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한마디로 <자유연애>. 나는 여러 놈들과 자유롭게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나는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인생 뭐 별거 있어? 한순간인데. 그냥 즐기면서 사는 거지 뭐.”

 

그리고 나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대단한 자신감이 있었다. 컴퓨터 공학과였던 나는, 과에 몇 안 되는 여자 중 최고의 엘프녀였다. 놈들이 매일 침을 질질 흘리며 나의 꽁무니를 따라다녔다. 나는 이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똑똑하기까지 하였다.

 

학내 최고의 자바(Java) 전문가. 졸업 전에 이미 내로라하는 소프트웨어 경진대회를 휩쓸고 다녔다. 그러니 국내 굴지의 IT 업체 스카우터들도 귀찮게 나를 따라다녔다.

 

입사 후에도 나의 명성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뻥튀기처럼 늘어났다.

 

<독사>. 나의 별명. 한번 컴퓨터 책상에 앉으면 기본 15시간은 꼼짝없이 프로그래밍만 하였다. 버그 없는 완벽한 소프트웨어. 사용자 요구(Needs)에 딱 들어맞는 최상의 인터페이스. 최고의 속도. 탁월한 보안. 효율적인 데이터베이스.

 

나는 이 모든 것을 맞추기 위해 회사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렇다고 일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한 번씩 마음에 드는 녀석을 골라 물침대에서 즐거운 시간도 보냈다. 게다가 삐까번쩍한 매장에 들러 고가의 명품도 한 번씩 질렀다. 그리고 사장이나 간부들 꾀어서 오마카세 식당이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도 들러 인스타그램에 자랑하듯 사진을 올리곤 하였다.

 

나는 곧 팀장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개발팀이 만든 회계 프로그램 <척척이>는, 그 해 <베스트 어워드 소프트웨어> 최우수상, <글로벌 SW> 대통령상, <신 SW 상품> 대상을 휩쓸며 시장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나는 개발 총괄팀장으로 최연소 부장이 되었다.

 

내 주위의 모든 남자가 나를 받들었다. 나는 회사에서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여왕벌이었다.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그놈의 탁상 달력에 꽂히기 전까지는…. 적어도 그랬다.

 

자, 이제 달력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래, 그렇지. 11월 1일. 나는 무심코 10월 달력을 넘겼다. 그리고 본 뒷면의 사진. 프랑스 파리의 어느 뒷골목 광경. 저 멀리 에펠탑이 보였다. 붉은 저녁노을. 노상 카페에는 담소를 나누는 연인의 모습.

 

나는 멋진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날, 꽤 끌리는 사진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다다음 날, 사진 속 카페의 연인이 부러웠다. 그리고 다다다음 날, 나는 그곳에 가고 싶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못 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나의 연차만 해도 25일. 거기에 앞뒤로 주말, 월휴 끼우면 한 달. 소위 <파리지앵으로 한 달 살기>가 딱 나왔다. 게다가 두툼한 나의 통장.

 

나의 해외여행에 회사 사람들은 모두 쌍수를 들고 환영하였다. 모 CF처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였다. 심지어 개발 이사님은 인천 국제 공항까지 나를 배웅하며 눈물까지 보였다.

 

태어나 처음 가 본 유럽. 모든 게 낯설고 불편했지만, 종일 웃음이 나왔다. 나는 현대인답게 각종 여행 블로그와 유튜버를 통해 얻은 지식을 활용해 첫 한 주일은 신나게 돌아다녔다. 하지만 볼 거 다 보고 먹을 거 다 먹어보고 나니 슬슬 지겨움과 외로움이 찾아왔다. 그래서 하루는 눈 딱 감고 동네 슈퍼에서 간식 정도만 사 와 종일 집에 머물렀다. 그런데 저녁때쯤 누군가가 나의 방문을 두드렸다.

 

맞은편 집 여자였다. 나를 파티에 초청했다. 값싼 부르고뉴 와인 한 병 사 들고 가 보니 남자 세 명에 달랑 여자 한 명, 나까지 모두 다섯 명뿐이었다. 알고 보니 그 여자의 송별식. 참석자는 모두 같은 집의 사람들. 즉 4개의 방에 여자 한 명, 남자 세 명이 각각 살고 있었다. 조촐한 파티는 새벽까지 이어졌고 나는 와인에 취해 그녀의 방에서 잠들었다. 다음 날 그녀는 헝가리로 떠났고 나는 그 방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어진 나의 멋진 기억들 – 향락, 퇴폐, 탐욕, 쾌락.

 

한 달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어쩔 수 없이 귀국했다. 하지만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삼 개월 만에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부랴부랴 짐을 쌌다. 그로부터 7년 8개월 동안 나는 유럽 곳곳을 헤매고 다녔다. 결국 나는 쾌락에 절인 도파민 중독자가 되었다.

 

하지만 불룩했던 나의 통장이 어느새 종잇장보다 가벼워졌을 때 어쩔 수 없이 나는 돌아와야만 했다. 그리고 할 수 없이 중소 IT 업체에 취업했다. 하지만 나는 일이 끔찍하게 싫었다.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제품 개발에 보름 걸릴 일은 한 달, 한 달 정도의 일은 석 달쯤 걸린다고 말했다. 당연히 얼마 안 가 뽀록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지긋지긋한 <직장 옮기기>가 시작되었다. 일 년에 여러 차례 짐을 싸고 짐을 풀었다.

 

어느새 내 나이 서른 후반. 세상을 호령하는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정보통신업계에서 나는 퇴물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나는 나를 구원해 줄 녀석이 필요했다. 나의 퐁퐁남. 그동안 우스갯소리로 치부하던 설거지론(論)이 바로 내가 꿈꾸는 현실이 되었다. 나는 나의 이력을 화려하게 재포장했다. 그리고 결혼정보회사에 내밀었다.

 

“우선 인스타에 올라온 모든 해외여행, 명품, 오마카세, 고급 식당, 호텔 사진부터 삭제하세요.”

 

나의 커플 매니저인 나직방이 요구했다.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녀는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전에는 벤츠 타고 다니는 남자 보면 다들 인정했죠. 하지만 요즈음은 안 그래요. 다들 카푸어(Car Poor)라고 의심부터 합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죠? 이런 허영과 사치가 통하는 시대가 아니라고요. 누구나 인정하는 재벌 집 자식이 아닌 이상 삼십 대 여성이 이런 고급 호텔에 명품 사진으로 인스타 도배를 하면 정신 똑바로 박힌 남자들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알겠죠? 제 말뜻을? 대신 책 사진 많이 올려주세요. 도서관 사진도 좋고요. 애완동물은 호불호가 갈리니 일단 피해주시고요.”

 

나는 그녀의 충고대로 수수한 차림의 정장과 평범한 핸드백을 겨드랑이에 끼고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그리고 나의 퐁퐁남 후보가 근무하는 대전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면서 잔고를 두려운 마음으로 살짝 들여다봤다. 18만 원. 이걸로 한 달을 버텨야 한다. 내 몸 저 깊은 곳에서부터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후회막급. 쾌락의, 쾌락을 위한, 쾌락에 의한 삶의 뒤 끝은 비천하기 이를 데 없다. 지금 나는 순수하고 순박한 이에 빌붙어 비루한 삶을 연명하려고 한다.

 

“인생 뭐 별거 있어? 한순간인데. 그냥 속이면서 사는 거지 뭐.”

 

사실 결혼정보회사에 등록 후, 잠깐이지만 정신을 차린 적이 있었다.

 

면접 자리에서,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나를 응시하며, 스타트업 컴퍼니 사장인 그는 내게 앱 개발 제안서를 내밀었다.

 

“할 수 있겠어요? 3개월 이내에.”

 

“네. 가능합니다.”

 

나는 미친 듯이 개발에 몰두했다. 정말이지 모처럼 만에 <몰입의 즐거움>을 누렸다.

 

사장은 매우 만족하였다. 내가 봐도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한 앱이었다. 그는 내게 입사와 함께 회사 지분의 3%를 약속했다. 하지만 나는 목돈을 요구했다. 성형 수술비. 잠깐의 욕심이 나를 구렁텅이로 다시 몰아넣었다.

 

내가 만든 앱은 그 해 <최고의 독창적 스마트앱 어워드>를 수상했다. 론칭 6개월 만에 다운로드 1억 돌파, 액티브 유저 3,000만을 돌파했다. 재미있는 건 하루에 업로드되는 횟수가 평균 1억 건이었다. 나는 유명 IT 신문 및 잡지 표지를 장식한 사장의 환한 미소를 바라보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대전에 도착한 나는 강변 옆에 우뚝 솟은 <신세상 타워 오마노 라운지>로 갔다. 나직방이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옆에는, 호기심을 잔뜩 담은 표정의 남자가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간단한 소개와 함께 주선자는 곧바로 자리를 떴다.

 

남자는 내게 메뉴판을 내밀었다. 그는 사진보다 실물이 나았다. 호졸근하고 궁상스러운 연구원을 예상했건만 그는 오히려 건장한 운동선수처럼 보였다.

 

“첫 만남에서 캐비어나 송로버섯 같은, 턱도 없이 값비싼 요리 절대 주문하지 마세요.”

 

나는 커플 매니저의 충고대로 적당한 가격대의 파스타를 골랐다. 남자는 스테이크와 와인을 주문했다. 그는 내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내가 애써 대전까지 내려온 것에 감사를 표하며 다음부터는 꼭 서울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식전 빵과 샐러드가 나오자 그는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준비해둔 질문을 끊임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물음에 꼬박꼬박 대답했다. 사실 답하기 무척 쉬운 것들이었다. 대부분 가족, 성장기, 직장, 연애 경험, 인생관, 결혼관 등 지극히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물음이었다.

 

와인을 한 잔씩 나누고 메인 요리를 먹는 동안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사이 내가 꿈꾸는 결혼 후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나갔다. 돈이 제공하는 항목들. 쇼핑, 레스토랑, 피트니스, 여행 등등. 착한 남편이 제공하는 느긋하고 풍족한 물질. 행복한 나의 미래.

 

“그런데 말입니다.”

 

“네?” 나는 꿈에서 막 깬 공주처럼 고혹적인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제가 수학과 출신에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공부를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초면이지만 꼭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남자는 스테이크의 마지막 고깃덩어리를 꿀떡 삼키고 냅킨으로 입을 닦은 뒤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네. 무슨 말씀이신가요?” 나는 왠지 불길한 느낌을 받았지만, 짐짓 모른 척 나긋하게 물었다.

 

“저는 평등주의자입니다. 특히 남녀 관계에 대해서도.” 나는 그의 말에 적이 안심되었다. 아니, 오히려 반가움이 앞섰다. 우리 사회 남녀평등만큼 여자에게 기분 좋은 말이 어디 있겠는가?

 

“저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나는 그에게 감사의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

 

나는 어떻게 서울 가는 고속버스표를 끊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심지어 내가 어떻게 대전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왔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지금 엄청난 분노에 싸여있다. 나는 대기실 벤치에 앉아 분을 삭이지 못해 부들부들 떨기까지 한다.

 

“우리 사회 남녀 불평등이 하루빨리 해소되기를 바랍니다.” 남자는 나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속삭였다.

 

“네. 맞습니다. 직장 내 성차별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차별이 존재하니깐요.” 나는 기분 좋게 와인을 들이키며 한없이 너그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저는 늘 주장합니다. 동일 노동이면 동일 임금 주고 동일 진급하고 동일 휴가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전적으로 옳으신 생각이십니다.“

 

”맞습니다. 이제야 마음이 통하는 여성분을 만난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오늘 기분이 좋습니다.“

 

”네. 저도 비로소 인연을 만난 것 같아서….“

 

”모든 것은 공평해야 합니다. 공평하면 분쟁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자기가 먹은 식대는 자기가 내면 됩니다. 공평하죠. 결혼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생활비 절반씩 공평하게 내고 육아도 공평하게 하루하루 번갈아 가며 하고 혼수 비용 절반 공평하게 내고 아파트 구매도 절반 공평하게 내어 공동소유하고 각종 세금 부대비용 등등 모든 거 절반씩 공평하게 내면 됩니다. 이 얼마나 평등한 세상입니까! 안 그러습니까?“

 

”네? 자기가 먹은 식대라고요?“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네. 그렇죠. 본인이 내야죠. 당연히. 공평하게. 어떻습니까? 제가 근사한 맥줏집 알고 있는데 2차로 가시겠습니까?“ 남자는 일어나 성큼성큼 계산대로 갔다. 갑자기 술이 확 깼다. 내가 헛것을 들었는지 볼을 꼬집어보기까지 했다. 불안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저놈이 방금 도대체 뭐라 씨불이며 간 거야?’

 

나는 살며시 화장실로 들어가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조용히 나와 라운지 문으로 향했다. 심장이 벌컥벌컥 뛰었다. 하지만 내가 문의 손잡이를 잡는 순간, 누군가가 나를 붙잡았다.

 

”고객님 죄송하지만, 결제가 안 되었습니다.“ 올 것이 오고 말았다.

 

”네?“

 

종업원이 영수증을 내밀었다. 그곳에는 남자가 먹은 스테이크와 와인 절반 값만 결제가 되어 있었다.

 

‘이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운 새끼!’ 순간 나는 끝없는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런 새끼 만나려고 내가 피 같은 돈 끌어모아 수술까지 하다니!’

 

”그럼 얼마?“

 

”네. 16만 5천 원 결제하시면 됩니다. 고객님.“

 

앞이 캄캄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호 혹시 할부 가능한지’라고 물어보려는 순간 어느새 그놈이 내 곁에 다가와 있었다. 나는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집었다가 내려놓고 체크카드를 끄집어냈다. 신용카드는 결제가 안 될 가능성이 컸다. 한껏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나는 이 더러운 개자식에게 그런 치욕까지 당하고 싶지 않았다.

 

은행 잔고 만오천 원. 나는 지갑을 탈탈 털어 현금으로 버스표를 겨우 마련했다.

 

나는 버스에 타자마자 등받이를 있는 힘껏 젖힌 다음 쓰러질 듯이 누웠다.

 

‘저 치사한 새끼 만나려고 어젯밤 잠까지 설쳤는데…. 내가 병신 쪼다 같은 년이지….’

 

나는 버스 바닥을 있는 힘껏 발로 한번 구르고 눈을 감았다. 마음 같아선 이 버스와 함께 데굴데굴 구르다 콱 처박혀 산산조각 부서지고 싶었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존재. 그런데 그때였다. 또다시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손님. 등받이 조금만 올려주세요. 뒷사람이 불편해하십니다.“

 

눈을 떠 보니 중년의 운전사였다. 그는 공손한 표정과 온화한 미소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 그는 쪼잔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새끼와 다를 바 없는 남자였다.

 

”못하겠는데요. 뒷사람 불편한 게 제 탓입니까? 한껏 젖혀진 이 의자 탓이지!“ 나는 버럭 화를 내며 눈을 감았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 그 순간 내게 딱 맞는 속담이었다.

 

”손님, 이 버스는 누워서 가는 리무진 버스가 아닙니다. 일반 버스에요. 조금만 양해해주세요.“

 

”아니, 애초에 이만큼 젖혀지게 만든 거잖아요! 뭐가 문제에요? 공장에서 이렇게 생산되어서 나온 건데. 버스 제조회사에 가서 따지세요. 씨팔!“ 나는 참았던 울분을 토해내듯 사방을 둘러보며 욕설을 뿜어 재꼈다. 그러자 뒷좌석에서 어떤 젊은이가 외쳤다.

 

”다른 사람 피해가 되니까 그런 거죠. 조금만 양보하세요. 자유라는 게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하잖아요.“

 

”거절하는 것도 나의 자유야! 이 개자식아!“ 나는 벌떡 일어나 녀석에게로 달려들 듯한 표정으로 째려봤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놀라고 말았다. 뒤에 탔던 모든 승객이 휴대폰으로 나를 찍고 있었다.

 

”그럴 거면 리무진 버스 타세요!“ 어디선가 누군가가 이렇게 외쳤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봐!“ 이런 소리도 들려왔다.

 

”나이 처먹었으면 그냥 곱게 가!“ 저런 소리도 울려 퍼졌다.

 

”너나 잘해! 이 더러운 관종 새끼들아!“ 나는 소리 나는 쪽으로 죽일 듯이 달려들어 나를 찍고 있는 녀석 중 휴대폰 하나를 뺏었다. 그리고 화면을 들여다봤다.

 

<곧바로업> 앱이었다. 내가 지극 정성으로 만든 앱. 수려한 인터페이스. 편리한 다기능.

 

촬영과 동시에 실시간으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뿐만 아니라 전 세계 444군데 커뮤니티 사이트와 66군데 무료 동영상 플랫폼에 자동 등록되는 편리하기 짝이 없는 앱. 게다가 음성 캡처와 자동 번역기능까지. 누가 봐도 매력적인 내가 만든 바로 그 앱.

 

나의 사랑스런 자식 같은 앱이 지금 나를 천하의 몹쓸 <버스 민폐녀>로 만들고 있다.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537 단편 미스틱 레스토랑 킥더드림 2021.10.05 0
536 단편 초능력이 나타났다 엄길윤 2015.06.10 0
535 단편 뱃속의 거지2 박낙타 2023.06.08 2
534 단편 ㅈㅗㄱㅏㄱ난 기억: 호접몽 꿈꾸는작가 2023.08.07 0
533 단편 편독과 필사 송망희 2016.03.05 0
532 단편 괴우주야사 외전 : 마왕 깡치의 환생 니그라토 2015.11.06 0
531 중편 고물 고물 거물 ( 4 ) 광석 2015.06.12 0
530 단편 위층 공주님 낮별 2021.11.03 0
529 단편 칼에 찔리는 해적왕 차원의소녀 2019.12.02 0
528 단편 자유의지는 없다 잉유신 2021.07.30 0
527 단편 이제 미래는 없다 붉은파랑 2020.10.17 0
526 단편 약물요법ZA 목이긴기린그림 2015.12.05 0
525 단편 처음과 끝 이아람 2022.11.24 0
524 단편 그 별엔 닿을 수 없을지도 몰라 이준혁 2022.04.15 0
523 단편 재후는 꿈을 꾼다 김성호 2022.02.12 2
522 단편 그라데이션 증후군 잉유신 2021.08.14 0
521 단편 심해어 레시피 김우보 2024.01.09 0
520 단편 가장 효과적인 방법 깨비 2021.09.12 0
519 단편 젊은 나무꾼의 슬픔2 알렉산더 2015.09.06 0
518 단편 2054년 꿈꾸는작가 2023.10.3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