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위층 공주님

2021.11.03 14:5811.03

“이제 땅따먹기 놀이를 할 거야. 아빠 말 잘 듣고 따라할 수 있지?”

 

 남자는 속삭였다. 수아는 남자의 뺨에 입을 대고 소근소근 대답했다.

 

“응.”

“좋아, 아빠가 이 문을 열 거야. 그 동안 수아는 문 뒤쪽에 앉아서 바닥에 귀를 대고 열까지 세면 돼. 몇까지 세라고 했지?”

“열.”

“그래, 열까지 셀 수 있지? 여기가 주인이 없는 땅이면 아빠가 똑똑똑, 세 번 바닥을 두드릴 거야. 그럼 이젠 우리 땅이니까 수아도 들어오면 돼.”

“응, 어제처럼 하는 거지?”

“그렇지! 그럼 열까지 세었는데 바닥에서 똑똑똑 소리가 안 들리면 어떻게 하면 되지?”

“술래가 있는 방이니까, 얼른 옆방으로 도망쳐서 문을 잠가.”

“그렇지! 그리고 아빠가 술래를 잡고 돌아오면?”

“똑똑똑.”

“그래, 똑똑똑 하고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 문을 열어주면 돼. 우리 수아 똑똑한데?”

“응!”

 

 수아가 배시시 웃자 남자는 손가락을 입에 가져갔다. 쉿, 술래가 들을 수도 있잖아. 수아는 얼른 남자를 따라 입술에 검지를 대었다.

 

“그럼 아빠 다녀올게. 아빠가 문을 열면 열까지 세면 되는거야. 알았지? 알았으면 끄덕끄덕.”

 

 수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는 따라서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바닥에 얌전히 엎드리는 수아를 보며 남자는 권총을 꺼내 들고 문고리에 손을 가져갔다. 문틈에 박스 테이프가 발라져 있었지만 박스 테이프는 낡아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너풀거렸다. 남자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


 

 주상복합건물 상가의 26층이었다. 그러나 여기가 26층이라는 것은 남자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엘리베이터는 고장이 났고, 25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입간판과 가구들로 틀어 막혔으며, 27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무너진 철근과 시멘트의 산으로 뒤덮여 있었다. 창문은 죄다 테이프와 쓰레기봉투와 신문지를 덧대어 음침한 햇빛이 희미하게 아른대며 오후를 알릴 뿐이었다. 바깥으로부터 공기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번 땅따먹기로 얻은 땅은 전에 사무실로 쓰였던 모양이었다. 사람은 없었고 책상 몇 개와 컴퓨터 몇 대가 굴러다닐 뿐이었다. 수아가 방에 들어오자 남자는 문을 걸어 잠갔다. 남자가 책상을 쌓아 문을 막는 동안 수아가 의자 위에 기어올라 발을 콩 굴렀다.

 

“여기도 우리 땅!”

“쉿, 그래, 이젠 우리 땅이야. 이젠 보물찾기를 할 거야.”

 

 남자는 권총을 쥔 채로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숨소리를 죽이고 엉금엉금 기어다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그 자리에서 죽은 듯 가만히 있는 것이 보물찾기의 규칙이었다. 보물찾기에서 운 좋게도 물이 든 페트병 하나와 커피믹스 세 개를 찾아낼 수 있었다. 남자는 커피믹스를 뜯어 설탕을 수아에게 먹이고 원두가루와 프림은 자신의 입에 털어 넣었다. 물은 한 모금씩 나눠 마셨다. 설탕을 천천히 빨아 먹으며 기분이 좋아진 수아는 의자 위를 방방 뛰었다. 덜컹대는 창문 틈에 테이프를 바르자 가지고 온 테이프가 바닥났다.

 

 사무실 한 켠의 무너진 벽은 책장과 의자로 막혀 있었다. 남자는 바리케이드의 틈새를 유심히 살펴 보았지만 무너진 벽 건너편은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건너편으로 바깥 공기가 들어오는 창문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남자는 테이프와 폐지를 더 찾아 틈새를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수아를 안은 채 남자는 책상에 누워 새우잠을 잤다. 깊이 잠들 수가 없었다. 문을 사납게 두드리는 소리,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 바람에 유리창이 우는 소리가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언뜻 혼곤한 잠에 빠져들었던 남자는 피곤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이윽고 남자는 품에서 수아가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자는 비명을 질렀다.

 

 들어온 문은 책상 두 개를 쌓아 막아 어린애 혼자 여닫을 수 없었다. 창문으로 나갔을 리도 없었다. 남자가 유일하게 수아에게 화를 낼 때가 수아가 창문을 만질 때일 만큼 남자는 엄하게 바깥 공기가 위험하다고 가르쳤었다. 역시 창문에 바른 테이프도 떼어진 흔적조차 없이 그대로였다. 남자는 총알이 세 발 뿐인 권총을 장전하고 미친듯이 사무실을 헤집었다. 그때, 그는 뒤늦게 무너진 벽을 막은 바리케이드를 살펴보았다. 바리케이드의 틈새는 아이 하나쯤은 드나들 수 있을 만큼 넓어져 있었다. 남자는 바리케이드의 틈새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수아야, 수아야! 거기 있어? 수아야!”

 

 이윽고 대답이 들려왔다.

 

“아빠, 여기에 공주님이 있어!”

“기다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거기, 거기 가만히 있어!”

 

 남자는 바리게이트에 미친듯이 달려들었다. 우리 수아 착하지, 그래, 아빠가 갈게, 미안해, 아빠가, 아빠가 가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 가구를 얼기설기 쌓아 지은 것 치고 바리게이트는 제법 튼튼해 남자는 이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곧 책장과 의자 사이로 수아가, 그리고 수아의 옆에 마주앉은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였다. 방싯거리며 웃는 수아의 얼굴은 피범벅이었다. 남자는 어깨로 마지막 책장을 들이받기 시작했다. 누구야, 죽여버리겠어, 수아를 놔 줘, 허튼 짓을 하면, 찢어서, 죽여버리겠어! 이윽고 책장이 무너졌다. 남자는 비틀거리며 수아에게 달려들었다. 수아의 옆에 있던 사람은 스물 남짓해 보이는 여자였다. 남자가 권총을 꺼내자 여자는 놀라 창문으로 달려갔다. 남자는 고함을 질렀다.

 

“누구야!”

 

 대답할 겨를도 없이 여자는 창문으로 몸을 던졌다. 유리가 깨끗이 떨어져 나간 창문이었고, 덕분에 남자는 창문에서 뛰어 내린 여자를 볼 수 있었다. 여자는 줄사다리에 매달려 있었다. 줄사다리는 커튼을 찢어 만든 것처럼 보였다. 남자는 수아를 안아들고 권총을 여자에게 겨누었다. 당장 꺼져! 여자는 황급히 줄사다리 타고 올라갔다.

 

“수아, 수아 괜찮아? 응?”

“아빠, 공주님이야, 공주님. 나쁜 사람 아니야.”

“바깥 공기는 위험해. 함부로 다른 사람이랑 만나지도 말고, 다시는 이런 데 오지 마. 알았지? 수아는 착한 아이지?”

 

 남자는 가쁘게 숨을 몰아 쉬며 수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피범벅이라고 생각했던 수아의 얼굴은 피범벅이 아니었다. 빨간 무언가가이 입 주변에 잔뜩 떡이 져 있을 뿐이었다. 남자는 웃옷을 벗어 수아의 입가를 닦고 얼굴에 단단히 둘러 주었다. 수아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립스틱이었다.

 

“공주님이 줬어. 위층에 공주님이 살고 있대! 어제 내 목소리를 듣고 어린애가 있나 궁금해서 아래층으로 잠깐 내려왔대. 선물도 주고 갔어. 참, 이것도 줬다?”

 

 수아는 발을 굴렀다. 파란 빛이 번들거리는 어린이용 하이힐이 신겨져 있었다. 오른쪽 구두는 너무 커서 금방이라도 벗겨질 듯 헐렁거렸다. 수아는 신이 나서 재잘거렸다.

 

“위층에서는 이런 신발이 많대. 너무 이뻐서 공주님이냐고 물어봤더니, 그렇게 부르고 싶으며 그렇게 부르랬어. 수아가 공주님 동생을 꼭 닮았다고, 신발은 동생한테 주려던 건데 나한테 준 거래.”

“아니야, 공주님은 여기 없어, 수아야. 아빠 빼곤 다 나쁜 사람이야.”

 

 남자는 수아를 한참이나 꼭 안았다. 갑갑해진 수아가 몸부림을 치자 비로소 남자는 수아를 놓아 주었다. 남자는 이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었고 바깥으로 통하는 곳은 창문 하나 뿐이었다. 바깥 공기는 위험했다. 아니, 공기 뿐만 아니라 바깥의 모든 것이 위험했다. 저 창문도 확실히 막아야 했다.


 

*


 

 수아는 창문에서 멀찍이 떨어진 구석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춤을 추었다. 남자는 수아의 노랫소리가 너무 커질 때마다 수아를 향해 쉿! 입술을 손가락에 대어 보였다.

 

“공주님이 춤추는 걸 가르쳐 줬어. 위층에서는 공주님이 이런 신발을 신고 춤을 춘대. 공주님이 수아도 이쁘니까 공주님이 될 수 있을 거래.”

“수아는 이미 공주님인걸. 세상에서 제일 예쁜 공주님. 낯선 사람은 나쁜 사람이니까 조심해야 해. 알았지?”

“아니야. 자기가 공주님이라고 했단 말이야.”

“세상에 공주님은 수아밖에 없어.”

 

 수아는 도리질을 쳤다. 남자는 부서진 책장에서 뜯어낸 커다란 널빤지로 창문을 가렸다. 널빤지를 고정할 것이 필요했다. 남자는 책장에서 뽑아낸 대못 두 개로 널빤지를 박았다.


 

*


 

 남자는 사흘간 피가 섞인 기침을 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갈수록 저려왔다. 바깥 공기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이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사흘간 밤마다 문을 두들기는 소리나 비명이나 흐느끼는 소리나 고함이 갈수록 잦아졌다. 마지막 새벽에는 수아와 사내가 잠든 방의 문이 몇 시간이나 세차게 흔들렸다. 사흘간 수아와 남자가 먹은 것은 커피믹스 하나와 물 한 통이 전부였다. 남자는 해가 지기 전에 다음 땅따먹기를 해야겠다고 수아에게 말했다.

 

 오후가 되자 남자는 조심스럽게 문을 막은 책상을 치우고 복도로 나섰다. 지금까지 해왔던 땅따먹기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남자를 뒤따라온 수아는 남자가 시킨 대로 문 뒤에 쪼그리고 열을 세었고, 남자가 시킨 대로 똑똑똑 소리가 들리지 않자 이전에 쓰던 방으로 살금살금 되돌아 가서 문을 잠갔다. 총성이 한번 들렸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아가 문을 열자 남자는 옆구리가 찢어진 채로 기어 들어왔다. 수아가 놀라 울먹거리자 남자는 수아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수아의 귓가에 조근조근 속삭였다.

 

 울면 못 써요. 작년에도 수아가 많이 울어서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안 줬잖아. 그치? 뚝 해야지. 옳지, 옳지. 우리 예쁜 공주님.


 

*


 

 속에서 무언가 치솟아 오르는 느낌에 남자는 잠에서 깨었다. 주먹으로 배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바닥으로 굴러 떨어져 몸부림을 치던 남자는 핏덩이를 왈칵 토해냈다. 남자는 고꾸라져 숨을 골랐다. 벽 너머로 괴성이 메아리 치고 문이 덜컹거리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던 남자는 번뜩 눈을 떴다. 문이 덜컹거리는 소리에는 어제와는 다른 낯선 소리가 섞여 있었다. 쇠를 긁는 소리였다. 남자는 다급하게 수아를 불렀다.

 

“수아야, 일어나자. 수아야.”

 

 남자의 목은 쉬어 터져 목소리가 작았다. 일어나 수아를 흔들어 깨우려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손발은 이제 저린 것이 아니라 얼음에 담근 것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몸을 일으키려고 한참이나 버둥대고 나서야 남자는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수십 분 남짓에 불과했을 시간이 수십 년처럼 지났다. 버둥대며 남자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수아는? 내가 죽으면 수아는? 누가 수아를 지켜주지? 수십 년이 모자랄 고민을 남자는 수십 분 동안 해야 했다. 이윽고 남자는 떨리는 손을 들어 수아의 어깨를 흔들었다. 남자의 손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수아는 눈을 떴다.

 

“우리 공주님, 잘 잤어?”

“추워. 아빠는 안 추워?”

“추워. 그런데 수아야, 위층 공주님 기억 나니?”

“응.”

“우리 수아, 위층 공주님한테 갈래?”

“아빠는 공주님 싫어하잖아.”

“아니야, 아빠도 위층 공주님 좋아해. 수아도 공주님 좋아하지?”

 

 남자는 자꾸 문을 돌아보았다. 쇠를 긁는 소리는 갈수록 요란해졌다. 문고리에 톱질이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발을 떼던 남자는 바닥에 고꾸라졌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인지 눈앞이 어지러웠다. 권총을 꺼내 쥐고 남자는 몸을 일으켰다.

 

“저 창문 쪽으로 가자. 수아가 아빠 손 좀 잡아줄래?”

 

 남자는 수아의 부축을 받으며, 그러나 수아에게 자신의 체중이 실리지 않도록 몸통을 비틀며 창문으로 향해 기었다. 남자는 널빤지로 막은 창문의 틈에 눈을 가져갔다. 며칠 전 여자가 타고 사라졌던 줄사다리가 여전히 그 곳에 있었다. 남자는 널판지를 잡아 뜯으려 했다. 그러나 일어나 똑바로 서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기를 쓰던 남자는 털썩 주저앉아 수아를 쳐다보았다. 

 

“수아야.”

“응, 아빠.”

“공주님이, 위층 공주님이 수아한테 동생을 닮았다고 했댔지?”

 

 기어코 문이 부숴진 것 같았다. 문을 가로막은 책상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아는 고개를 숙여 공주님에게 선물 받은 파란색 짝짝이 하이힐을 내려다보았다.

 

“응, 나보고 동생 닮아서 이쁘댔어.”

 

 남자는 권총을 장전했다. 며칠 전 땅따먹기에서 한 발을 썼으니 이제 두 발이 남아있었다. 남자는 천천히 수아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수아야, 눈 잠깐만 감자. 공주님한테 갈 거야.”

 

 남자의 파랗게 질린 손으로 수아의 눈을 덮었다. 다른 손에 쥔 권총이 자꾸만 흔들렸다. 남자는 심호흡을 하였다. 총성이 두 번 울렸다. 

 

“됐다. 이제 눈 떠.”

 

 창틀에 널빤지를 고정시키던 두 개의 못대가리가 날아갔다. 널빤지는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남자는 창틀 아래로 기어갔다. 바깥 공기가 몰아쳐 들어왔고, 다시 남자는 기침을 했다.

 

“수아야, 밖에 줄사다리 보이지? 아빠 어깨를 밟고, 저 줄을 잡는거야. 줄을 잡고 올라가면 공주님이 반겨 줄 거야.”

“무서워. 아빠도 가자.”

 

 남자는 잠시 말없이 수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수아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공주님은 이쁘기만 하면 안 돼요. 씩씩하고 용감해야지. 그래야 진짜 공주님이 되는거야, 우리 수아.”

 

 수아는 대답 대신 남자의 눈을 쳐다보았다. 널빤지로 가려졌던 창 너머로부터 새어오는 동녘이 수아의 얼굴을 비추었다. 남자는 몸을 일으켜 수아를 안아 들었다. 찢어졌던 옆구리가 터지고 팔은 후들거렸지만 남자는 창틀에 수아를 세웠다.

 

“밧줄을 잡고, 올라가는 거야. 우리 수아, 씩씩한 공주님이 될 수 있지?”

 

 수아는 줄사다리를 잡자 남자는 수아를 놓아 주었다. 온 팔이 부들거리도록 힘을 주며 수아는 줄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울고 싶었다. 하지만 수아는 울지 않았다.


 

*


 

 한참을 버둥거린 끝에 수아는 위층의 창문 턱까지 기어오를 수 있었다. 터질 것 같은 숨을 고르고 나서 창문 안쪽을 보았다. 하늘하늘 춤을 추는 그림자가 보였다. 수아는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공주님?”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바람은 차가웠고 자꾸 기침이 나왔다. 수아는 떨리는 손으로 창문을 열고 방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창문이 높아 수아는 제법 높은 높이에서 굴러 떨어졌다. 바닥에 머리를 박은 수아는 찔끔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았다. 울어서는 공주님이 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수아는 고개를 들었다. 공주님, 춤을 추는 공주님을 수아는 보았다.

 

 공주님은 바닥에서 한 뼘 떨어진 높이에서 천천히 몸을 흔들고 있었다.

 

 공주님은 파란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그러나 우아하고 맵시있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공주님의 다리는 종아리가 퉁퉁 부은 채로 파랗게 질려 있었다.

 

 공주님의 입술은 붉었다. 공주님이 수아에게 칠해주었던 립스틱처럼, 붉은 것이 입술에서부터 목을 타고 내려와 공주님의 가슴깨까지 말라붙어 있었다.

 

 공주님을 올려다보던 수아는 이윽고 창문을 닫았다. 위층 공주님은 사실 공주님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수아는 생각했다. 자꾸 목이 간지러웠다. 수아는 입을 막고 기침을 했다. 수아의 손바닥에 빨간 립스틱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537 단편 미스틱 레스토랑 킥더드림 2021.10.05 0
536 단편 초능력이 나타났다 엄길윤 2015.06.10 0
535 단편 뱃속의 거지2 박낙타 2023.06.08 2
534 단편 ㅈㅗㄱㅏㄱ난 기억: 호접몽 꿈꾸는작가 2023.08.07 0
533 단편 이제 미래는 없다 붉은파랑 2020.10.17 0
532 단편 편독과 필사 송망희 2016.03.05 0
531 단편 괴우주야사 외전 : 마왕 깡치의 환생 니그라토 2015.11.06 0
530 중편 고물 고물 거물 ( 4 ) 광석 2015.06.12 0
단편 위층 공주님 낮별 2021.11.03 0
528 단편 칼에 찔리는 해적왕 차원의소녀 2019.12.02 0
527 단편 자유의지는 없다 잉유신 2021.07.30 0
526 단편 약물요법ZA 목이긴기린그림 2015.12.05 0
525 단편 처음과 끝 이아람 2022.11.24 0
524 단편 그 별엔 닿을 수 없을지도 몰라 이준혁 2022.04.15 0
523 단편 재후는 꿈을 꾼다 김성호 2022.02.12 2
522 단편 그라데이션 증후군 잉유신 2021.08.14 0
521 단편 심해어 레시피 김우보 2024.01.09 0
520 단편 가장 효과적인 방법 깨비 2021.09.12 0
519 단편 젊은 나무꾼의 슬픔2 알렉산더 2015.09.06 0
518 단편 2054년 꿈꾸는작가 2023.10.3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