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장편 천지개벽... 07

2009.02.04 01:3202.04

7.

아담은 달의 남극에 위치한 암스트롱 기지를 향하는 셔틀에서 우주를 등지고 떠있었다. 반면 종현은 멀어지는 스카이포트 뒤로 지구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종현은 지구를 향한 유리창에 손을 얹고는 약속인지, 다짐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나직이 속삭였다.
"기다려라. 금방 돌아온다."
아담은 테이블에 꽂혀있던 강화유리로 만들어진 전자 노트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목에 걸고 있던 프리즘형태의 메모리 스틱을 뽑아 노트의 모서리에 끼웠다. 노트에 [Top Secret]라는 붉은색 글씨가 나타났다. 아담이 오른쪽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긁자 노트의 화면에 책장이 넘어가듯 한 페이지가 넘어갔다. 이어 타이탄의 호이겐스 기지에서 보낸 전문이 나타났다. 아담은 천천히 전문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아담의 눈이 [그들은 마치 빛처럼 돌아설 줄 모른다.]라는 내용에 멈췄다.
"이게 무슨 의미 같아?"
종현에게 전문을 보여주며 물었다.
노트를 건네 받은 종현은 크게 숨을 몰아쉬고는 노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종현 역시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결국,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글쎄. 맹목적이라는 뜻인가? 이런 전문에 일기처럼 비유적인 표현을 썼을 리도 없고. 다른 영상자료나 음성기록은 없었어?"
아담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받은 건 고작 복구된 전문의 텍스트 문서와 몇 장의 사진뿐이었다.
"그럼, 혹시 자살테러나 가미가제처럼 돌진해서 자폭을 한다는 게 아닐까?"
"가미가제라."
"아니면 그들이 혹시 우리 생각과는 달리 외계생명체가 아니라 그들을 대신해서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로봇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물러서지 않는 거지. 생명이 없으니까. 뭐 그런 뜻 아닐까?"
종현이 아니면 말라는 식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담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맹목적이라고 해서 로봇으로 단정지을 순 없었다. 만약 로봇이라면 통신위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핵폭발로 인해 모두는 아니더라도 일부라도 고장이 나야했다. 그러나 외계인들의 비행선은 핵폭발 이후에도 전혀 대형의 동요 없이 거대한 타원 대형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어떤가?"
조종실 쪽의 문이 열리며 위스본드 작전참모가 들어섰다.
"좋은 생각 좀 났나?"
"글쎄요. 이 전문과 몇 장의 사진으로만 봐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선 저들의 공격 목표가 뭔지 호이겐스를 공격했다고 해서 지구를 노린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고. 그리고 호이겐스를 완전히 파괴한 것도 아닌 것 같고, 지금 상황에선 그냥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그냥 찔러보려고 우리를 공격하는 것 같습니다. 특별한 요구는 고사하고 대화를 시도하지도 않고, 그냥 공격해 보는 거죠."
위스본드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냥? 고작 그냥이라고? 그렇다고 선전포고도 없이 공격한단 말인가?"
"외계인들에겐 선전포고 같은 게 없을 수도 있죠."
종현이 어깨를 으쓱거리고 끼어 들었다.
"우리와 같은 사고방식으로 산다고 단정할 순 없으니까요."
"하지만, 기껏 파괴를 위해 이 넓은 우주에서 태양계까지 날아왔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지. 그리고 문명의 파괴만을 추구한다면 태양계까지 날아올 그런 고도의 과학기술을 축적하기도 힘들었을 거야. 분명 이유는 있어. 단지 우리가 모르는 것뿐이지."
위스본드의 말에 아담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그들과 어떤 식으로든 접촉을 시도해봐야겠군요. 유로파에선 아직 소식이 없습니까?"
아담의 말에 위스본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향성 레이더로 교신을 시도했지만, 응답을 못 들었다더군. 어쩌면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서로 교신하는지도 모르지."
"지금 상황에선 전쟁을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들과 어떤 식으로든 접촉을 시도하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아담의 말을 끝으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아담은 어떻게든 전쟁을 피하고 싶었다. 위스본드의 말대로 우주를 건너올 정도의 수준이라면 분명 인류보다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 틀림없다. 그런 그들과 싸워 이길 수 있을지 아담은 장담할 수 없었다. 군인이기 때문에 말하지 못했지만 불안, 공포를 느꼈다.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군인은 아니다. 극복할 두려움이 없다면 그건 광인, 살인마일 뿐이다. 아담은 불안했다. 어떻게든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었다. 전쟁은 늘 최후의 선택이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네. 하지만 이 자료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
위스본드가 침묵을 깨고 작은 프리즘 형태의 메모리 스틱을 내밀었다.
아담은 메모리 스틱을 받아 전자 노트에 꽂았다. 다시 [Top Secret]라는 붉은색 글씨에 이어 정찰위성에서 촬영된 L5-12 우주정거장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곳은 목성의 갈리스토 궤도상의 라그랑주 포인트에 위치해 있었다. 이어 타이탄을 공격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선들이 우주정거장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화면으로는 그저 유성이 지나가는 듯 보였다. 유로파에서 보낸 듯한 전투기들이 외계인의 비행선과 교전을 벌였지만 수적으로 너무나 부족했다. 우주정거장 갑판의 포대가 간헐적인 반격을 가했지만 마치 벌떼처럼 달려드는 외계인의 비행선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공허한 우주공간에 건설된 외로운 우주정거장은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어진 폭발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생존자들은 있습니까?"
아담은 기대 없이 물었다.
위스본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그런 보고는 들어오지 않았네."
종현은 문득 L5-12 우주정거장과 유로파의 최단거리가 외계인의 속도로 한 시간 이내의 거리라는 게 생각났다.
"유로파에서는 어떻게 한다고 합니까?"
종현이 물었다.
"그들은 기지에서 대기하도록 했네."
위스본드는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대기하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담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갈릴레이 기지는 L5-12 우주정거장과 반대편에 있었다더군. 그들의 입장에선 운이 좋았지. 목성에 가려 놈들은 유로파를 그냥 지나쳐갔네. 더구나 전투기 조종사들이 기지창단 기념일로 반이 화성으로 휴가를 가고 없다네."
"이 상황에서요?"
종현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타이탄이 당한 건 그들이 휴가를 떠난 다음이었네. 당시 상황에선 기지로 귀환할 시간이 없었어. 놈들은 우리셔틀보다 10배나 빨라. 그리고 방금 본대로 남아있던 비행대의 반도 당했고. 결국, 유로파는 암흑 모드로 진입했다더군."
"암흑 모드라고요?"
종현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암흑 모드란 우주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전파의 송수신과 내부의 빛을 모두 차단한 상태를 말했다. 마치 자신들은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들을 숨기는 것이다.
"노아의 방주로 남기기로 했나보더군."
위스본드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말도 안 돼! 결국, 혼자 살아보겠다는 거 아닙니까?"
위스본드의 말에 종현이 발끈했다.
"어쩔 수 없네. 지구방위 사령부에서도 이미 승인한 일이야. 현재 놈들의 규모나 화력으로 봐선 유로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네. 그리고 현재 상황에선 최악의 경우 인류가 전멸할 수도 있어. 그건 막아야하지 않겠나."
위스본드의 말에 아담은 고개를 끄덕였다.
종현도 힘없이 어깨를 떨궜다.
"그럼 우린 화성에서 반격을 준비할 수밖에 없겠군요."
"이미 암스트롱 기지의 전투기를 모두 보냈네."
"화성이라, 화성. 제발 이들이 무모했으면 좋겠군요."
종현이 힘없이 말했다.
"무슨 뜻인가?"
위스본드가 종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모하게 소행성대을 지나오면 우리가 소행성들을 폭파시켜서 어느 정도는 수가 줄지 않을까요."
종현의 말대로 화성과 목성 사이에는 여러 소행성군이 있었다.
"그렇진 않을 거네. 정보에 의하면 이번엔 우회해서 화성을 향하고 있다더군. 이미 소행성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거지."
"우회했다고요? 하지만 이런 비행선이 L포인트를 이용하지 않고 이동한다면 연료소비도 부담될텐데…… 어디서 연료를 보충하는 걸까요?"
L포인트. 그건 두 천제의 중력과 원심력이 평형을 이루는 라그랑주 포인트의 약칭이었다. 이 라그랑주 포인트는 천체의 중력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행성간을 이동할 때는 이 라그랑주 포인트을 이용해 우주선들은 연료소비를 줄이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그리고 L4, L5는 안정된 평형점이기 때문에 그곳에는 연료 등의 보급을 위한 우주정거장이 위치했다.
"연료보충을 하는 장면은 아직 포착되지 않았네. 도무지 우리 과학 수준에선 이해할 수 없는 놈들이지."
"타이탄과의 연락은 어떻게 됐습니까?"
아담이 물었다.
위스본드는 포기한 듯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핵 지원은 어렵겠군요."
종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갑작스런 외계인의 공격에 호이겐스 기지가 파괴되자 인류가 만든 가장 강력한 파괴무기인 핵무기를 쓸 방법이 없어졌다.
"놈들의 속도를 봐선 타이탄에서 핵을 쏜다고 해도 제때 도착하긴 힘들 거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 일본이 벌써 수소폭탄 제작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있더군."
위스본드의 말에 아담은 적잖이 놀랬지만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들을 비난할 수도 없었다. 위스본드는 다시 조종실 쪽으로 난 문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종현은 다시 지구의 모습을 찾아 창을 향해 돌아섰다. 어느새 지구는 달처럼 기울어가고 있었다.
종현은 다시 창문을 통해 지구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나직이 속삭였다.
"반드시 돌아간다."
아담은 암스트롱 기지에 도착할 때까지 문제 속에서 답을 찾는 학생처럼 반복해서 우주정거장을 공격하는 외계 비행선의 영상을 보고 또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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