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13

10년이 흐른 뒤.. 한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에선 큰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는데, 10년 전부터 나타난 한 뱀파이어가 온 나라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다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나라의 왕은 자신의 군사까지 동원해 그 뱀파이어를 죽이려고 했었지만, 늘 실패만 해왔고 그러는 사이 희생자의 천 단위는 훌쩍 넘어 있었다.

그래서 결국 왕은 전국에 수배령을 내려 누구라도 그 뱀파이어를 잡는 자는 큰 포상금을 주고 평민이었던 자는 기사 칭호까지 하사하겠다는 칙령까지 발표 했지만, 10년이 흐른 지금 까지도 그 뱀파이어는 나라를 활보하며 그 뱀파이어가 지나간 자리에는 늘 시신만 즐비했다.

그리고 그 나라에 어떤 작은 마을 여관. 그 곳에서 갑옷을 입은 두 남자가 식탁에 마주 앉아 술과 안주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중 갈색 머리의 남자가 술을 커다란 잔에 담긴 술을 한 번에 들이켜 마시고는 손으로 입을 훔치며 말했다.

“정말이지?”

그러자 앞에 앉아 있던 흑발의 남자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글쎄. 나만 믿으라니까. 내가 가져온 이 물건만 있으면 그 뱀파이어는 그냥 끝이야!”

그렇게 말하며 자신 있게 식탁 밑에 두었던 자루를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하지만 갈색 머리의 남자는 미심적다는 표정을 하며 그가 올려놓은 자루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확인했다. 그 안에는 여러 개를 실로 엮어 목걸이처럼 만든 통마늘들과 만든 십자가 몇 개가 들어있었다. 갈색 머리의 남자는 자루 속에서 꺼낸 물건을 바라보던 시선을 흑발의 남자에게 옮겨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

“셈. 이게 네가 말하던 뱀파이어 잡는 무기냐?”

셈이라고 불린 남자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래서 물어본 그는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왜! 소문에 이게 얼마나 효과가 있다는데!”

셈의 말에 갈색 머리의 남자는 다시 한숨을 쉬며 말한다.

“하아.. 이런 게 소용 있었으면 그 뱀파이어가 벌써 잡혔게? 널 믿고 따라온 내가 잘못이다.”

셈은 뭐라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 다시 남자가 한숨을 쉬며 자신은 마을로 돌아간다고 셈에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는데 갑자기 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둘이 소리가 난 쪽 창문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사람들이 겁에 질려 도망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도망쳐온 방향에서 누군가가 서 있었고, 그 발치에 한 남자가 죽어있었다.

“뱀파이어다..”

갈색 머리의 남자가 중얼거렸다. 셈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서는 식탁에 널브러져 있는 마늘과 십자가들을 자루에 집어넣고 무기를 챙기며 그에게 소리쳤다.

“우리가 잡자!”

남자는 혀를 찼지만 이미 뛰어가고 있는 친구를 가만히 서서 바라볼 수만은 없었다. 그도 자리로 돌아가 가져온 칼을 챙기고 식탁 밑에 있던 투구를 쓰고는 밖으로 나갔다. 셈은 이미 그 뱀파이어와 대치중이었다.

그도 재빨리 셈의 옆으로 가 그의 곁에 서서 뱀파이어를 바라보았다. 그 뱀파이어는 여자였다. 붉은색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였고, 입술을 삐져나온 긴 송곳니는 섬뜩해 보였다. 두 손톱 모두 길고 날카로웠고, 옷은 꼭 남자처럼 입었지만 호리호리한 몸매가 영락없는 여자였다. 온몸은 이미 붉은 피로 물이 들어있었고,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혀로 살짝살짝 핥으며 그 둘을 바라보았다.

그 둘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서있었지만 뱀파이어는 별거 아니라는 듯 너무 태연했다. 갈색 머리의 남자는 긴장된 목소리로 셈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거 정말.. 효과 있는 거지?”

사실 셈이 가져온 물건들이 별로 미덥지 않았지만 남자는 혹시 하는 마음에 그렇게 물었다. 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당한 한 걸음을 내딛었고 자신 있는 동작으로 자루를 뒤져 마늘을 꺼내서 묶음에서 하나를 뜯어 뱀파이어를 향해 집어던졌다.

하지만 뱀파이어는 피할 생각도 없는 듯이 가만히 서서 마늘에 맞았고, 별 효과는 없는 듯싶었다. 그러자 셈은 당황하며 다음 물건인 십자가를 꺼내 들고는 뱀파이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만히 서 있던 뱀파이어는 움직이기 시작해 셈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셈은 자신이 가져온 물건이 아무 소용이 없자 당황해 하면서 두려움에 몸을 떨며 자루 속에 있던 마늘을 한꺼번에 뱀파이어를 향해 던졌지만 그녀는 짜증난다는 듯이 팔로 날아오는 마늘을 쳐내고는 천천히 걸어왔다. 셈은 이제 십자가까지 집어던졌지만 뱀파이어를 막을 순 없었다. 그녀는 갑자기 빠른 몸놀림으로 셈에게 다가가서는 자신의 긴 손톱으로 그를 찔렀고,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너무 간단히 뚫려 셈은 그대로 피를 흘리며 쓰러져갔다.

이제 혼자 남은 남자는 셈을 믿고 여기까지 따라온 자신을 자책하며 어쩔 수 없이 칼을 뽑아 들고는 뱀파이어와 대치했다. 칼을 뽑아든 그를 보고는 뱀파이어는 피식 웃고 다시 빠른 몸놀림으로 남자에게 다가가 자신의 손톱으로 공격했다.

남자는 최대한 빨리 피한다고 피했지만 그녀의 손톱이 투구에 스쳤고, 그 충격으로 투구가 벗겨지고 말았다. 남자는 다시 자세를 잡고 서서는 뱀파이어와 마주봤지만 그의 팔은 떨고 있어 잡고 있는 칼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남자를 재밌다 는 듯이 쳐다보며 다시 공격을 하려던 뱀파이어였지만, 문뜩 그 남자의 얼굴과 기억 속 한 남자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그 남자는 짐보.. 이 남자는 짐보와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머리모양이며 까끌까끌한 수염까지.. 물론 그 보단 젊어보였지만 영락없는 짐보의 얼굴이었다. 그 순간 소피의 머릿속에서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추억들이 떠오른다.

짐보와 스텐을 처음 만났던 순간의 기억.. 짐보의 집. 따뜻했던 잠자리. 늘 즐거웠던 식사시간. 그리고 자신을 감싸기 위해 희생된 짐보의 최후. 그리고 스텐의 최후..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그 날과 짐보와의 약속.. 모든 것을 떠올린 소피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수많은 시체.. 붉은 피.. 소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짐보와 닮은 그 남자도 뱀파이어의 변화를 깨닫고는 이상함을 느꼈다. 왜 그런 진 모르겠지만 지금 그녀는 너무나 무방비했다. 지금 다가가 칼로 찌르면..

남자는 조심스럽게 소피에게 다가갔지만 소피는 여전히 고개를 떨어뜨리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바로 옆에까지 다가왔지만 여전히 뱀파이어는 무방비로 있었다. 남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칼을 소피를 향해 찔렀다.

칼에 배를 꿰뚫린 소피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고 그제야 자신의 곁으로 다가와 칼로 찌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눈물이 봇물 터진 듯 흐른다. 소피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팔을 잡았다. 그러자 남자는 화들짝 놀랐지만 그의 손은 힘이 없었다. 소피는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 미안해요..”

남자는 영문을 몰라 했지만 소피는 계속 말했다.

“아빠.. 정말 미안해요.. 미안해요.. 약속 어겨서 정말 미안해요..”

소피는 남자를 계속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눈물 때문에 시선이 흐려져 남자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계속 바라보았다. 이윽고.. 소피의 시선이 온통 검은색으로 물들었고, 천천히 그리고 힘없이 그대로 스르르 바닥에 무릎 꿇고 주저앉아 버린다. 남자는 자신이 행한 일이 믿기지 않아 한참을 그렇게 죽어 있는 뱀파이어를 바라봤지만 문뜩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자 그 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가 뱀파이어를 죽였어!”

사람들은 소리치며 만세를 연호했다.

14

며칠 후. 그 나라 수도에선 성대한 축제가 벌어졌다. 그 축제는 다름이 아닌 그 나라에서 십년동안 걱정거리였던 뱀파이어를 죽인 영웅을 위한 잔치였다. 그 영웅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수도에 입성했고, 사람들은 그가 걷는 길에 꽃잎을 뿌리며 그를 환영했다. 영웅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손을 흔들어주었고 사람들은 그때마다 환호하며 호응해주었다. 그렇게 그는 걸어서 성까지 걸어갔고, 그 곳에서 영웅은 왕 앞에 무릎 꿇고 기사 칭호를 수여받았다. 그렇게 그 영웅의 이름이 역사에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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