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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가 가족이 된 뒤 며칠이 흐른 어느 날. 스텐과 소피는 숲속을 걷고 있었다. 스텐이 앞장서서 길을 걸었고, 소피는 스텐과 손을 잡고 그 뒤를 졸졸 따라가고 있었다. 스텐은 지금 가고 있는 목적지를 소피에게 이야기 해주지 않았고, 그래서 소피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스텐에게 물었다.

“오빠.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오빠라는 호칭.. 처음에는 입에 붙지도 않고 왠지 부끄러워 잘 쓰지 못했던 소피였지만 이젠 완전히 익숙해져 소피가 자주 쓰는 단어가 되었다. 스텐도 처음엔 이제 소피가 동생이 되었다는 짐보의 말에 어리둥절해 했었지만 곳 동생이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소피를 친동생처럼 대하며 어디든 함께 했다. 이 날도 스텐은 동생의 손을 잡고 어디론 가로 데려가고 있었다.

스텐은 소피에 물음에도 대답해주지 않고 그저 씽긋 웃기만 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곳 숲이 끝나고 보이는 풍경에 소피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앞에는 끝없는 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형형색색 이름 모를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꼭 단체로 춤을 추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소피는 여태까지 꽃을 예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저 발에 밟히는 잡초들과 별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던 소피였지만 오늘 이렇게 자신의 오빠가 보여준 광경에 처음으로 꽃이 예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소피였다. 스텐은 그대로 꽃밭으로 달려가더니 그대로 꽃밭에 드러누웠고 소피도 재미있게 보여 스텐을 따라 꽃밭으로 달려가 드러누워 보았다.

꽃 냄새가 달콤했고 누워서 보는 하늘은 한없이 평화로웠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소피에 시야로 스텐이 고개를 들이밀고는 소피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꽃으로 만든 꽃반지였다. 소피는 기뻐하며 몸을 일으키고는 꽃반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하얗고 작은 꽃이 꼭 보석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 소피는 꽃반지를 손가락에 끼워보며 스텐에게 물었다.

“오빠. 이거 어떻게 만 든 거야?”

소피가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물어보자 스텐은 약간 우쭐했다.

“여기 엄마가 살아 있을 때 아빠랑 자주 오던 곳이야. 여기에 오면 엄마가 이것저것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곤 했는데.”

스텐은 자신의 엄마 이야기를 할 때는 늘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스텐은 스텐의 엄마에 대해서 자세히는 몰랐지만 얼핏 짐보에게서 들은 이야기로 얼추 유추할 수 있었다. 스텐의 엄마. 그러니까 짐보의 아내가 죽은지는 일 년도 체 되지 않았다.

평소 병약했던 그녀였지만 짐보와 결혼하고 스텐을 낳을 때까지는 큰 병 걸리지 않고 나름 건강했지만 작년에 원인 불명의 병에 걸려 한 달 동안 앓다가 경국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짐보는 낮이면 집을 비웠기 때문에 엄마와 단둘이 지내는 시간이 많았던 스텐은 꼭 병아리처럼 엄마만 졸졸 따라다녔던 스텐에게 엄마의 죽음이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엄마가 죽은 뒤로 말수도 적어지고 늘 쓸쓸한 표정을 지었던 스텐이었지만 소피가 이 집에 지내게 된 뒤로 다시 웃음이 많아져서 소피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고 짐보가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소피는 자신도 도움 되는 일이 있구나 생각하고는 스텐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소피는 쓸쓸한 표정을 짓는 스텐에 기분을 풀어주려고 스텐에게 만드는 법을 물어보며 화제를 바꿨고, 다행이 스텐도 다시 웃음을 되찾고 소피에게 꽃반지 만드는 법을 열심히 가르쳐 주었다. 소피가 서투른 손놀림으로 겨우 꽃반지 하나를 완성하자 스텐은 기뻐하며 소피에게 말했다.

“반지 말고도 왕관도 만들 수 있어!”

스텐이 그렇게 웃으며 말했고, 소피는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스텐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 커다랗게 하나 만들어서 아빠한테 쓰여 주자!”

소피의 말에 스텐도 기뻐하며 동의했고, 스텐의 주도하에 둘은 열심히 화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소피의 서투른 솜씨에 왕관을 부서트릴 때도 있었지만 둘은 웃어가며 열심히 화관을 만들었다. 한편. 평소보다 집에 일찍 돌아온 짐보는 집 한편에서 도끼로 나무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짐보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도끼를 내려놓고 쉬고 있는데 저번에 집에 방문했던 뚱뚱한 남자가 다시와 짐보를 불렀다.

“이봐 짐보.”

짐보는 땀을 닦으며 돌아서서는 웃는 얼굴로 남자를 반겼다. 뚱뚱한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짐보에게 물었다.

“응? 오늘은 애들이 안보이네?”

저물어가는 해를 보며 짐보가 말했다.

“둘이 숲속으로 놀러간 모양인데 곧 올 거예요. 그런데 또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어요?”
“아. 그게 말이지. 내가 저번에 말했던..”

짐보의 물음에 대답하려던 남자는 저 쪽 숲에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는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마라보며 짐보에게 말했다.

“저기 아이들이 오는군.”

남자의 말에 짐보도 고개를 돌려 아이들이 오고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서로 깔깔대며 웃었고, 소피의 손에는 화관이 하나 들려있었다. 짐보는 아이들이 사이좋게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던 짐보였지만 곧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 두 남자가 서 있는 곳에서 소피의 기다란 두 송곳니가 또렷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피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남자가 놀랄 것을 예상하고는 재빨리 뚱뚱한 남자에게 설명하려고 했지만 그의 표정은 공포로 물들어가고 있었고. 손을 들어 소피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뱀파이어!”

뒤늦게 짐보가 상황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뚱뚱한 남자는 숲을 향해 도망치듯 달려가기 시작했다. 뒤늦게 짐보도 남자를 말리기 위해 남자를 쫓아 달렸고, 그 광경은 집으로 향하고 있던 아이들에 눈에도 보였다. 스텐은 둘이 왜 저렇게 뛰고 있는지 몰라 궁금해 했지만 소피는 이유를 알고 웃고 있던 표정이 굳어가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안 돼..”

소피의 머릿속에는 남자가 돌아간 뒤에 일어날 일에 대해 떠오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화가 난 표정으로 손에는 횃불과 농기구를 들고 이곳으로 들이 닥칠 것이고, 그리고 그들은 소피를 죽이려고 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소피는 더 이상 이곳에서 지낼 수가 없게 될 것이었고, 그건 소피도 싫었다. 어떻게 생긴 가족인데.. 또 혼자가 되는 것은 죽는 것 보다 싫었다.

소피는 두려움에 몸을 떨기 시작했고 들고 있던 화관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지만 그건걸 신경 쓸 겨를 따윈 없었다. 소피는 남자를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떻게..? 소피의 손톱이 갑자기 빠른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 말로 하면 들어줄까? 아닐 것 같았다.

사람들은 소피가 말을 하기도 전에 경기를 일으키며 싫어했고 도망쳤다. 그렇다면..? 소피의 손톱은 어느새 손가락만큼 길어져 있었다. 죽여야 한다. 죽여야 해! 죽여서라도 마을에 돌아가지 못하게 해야 해! 그렇게 생각한 소피는 뚱뚱한 남자가 도망친 숲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소피가 갑자기 달리자 스텐도 덩달아 소피를 따라 달렸지만 소피가 얼마나 빨랐는지 스텐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스텐은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는 둘이 서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 곳에는 소피에게 밟혀 헝클어진 화관이 바람에 꽃잎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스텐은 안타까워하며 다시 화관의 모양을 바로 잡으려고 했지만 화관은 힘없이 풀려 바닥에 우수수 떨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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