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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학교의 비밀(7)

2008.12.30 00:0912.30

7.
정아는 한참 기절해 있는 동안에 꿈을 꾸었다. 꿈에서는 미선이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미선이와 정아가 지수를 문병 갔을 적에 지수가 입원해 있던 병실이 꿈에 나왔기 때문이다. 꿈에서 정아는 자신이 ‘실제의’정아와 미선이를 마주보는 위치, 즉 지수가 사용했던 침대의 한 쪽 가장자리에서 문을 마주보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아랑 미선이와 이야기하는 지수의 등이 보였다. 몸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하여 묶인 것처럼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정신을 집중하면 시선을 옮길 수는 있었다. 정아와 미선이, 그리고 지수는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움직임이 매끄럽지 못했다.
정아는 지수가 노트를 숨겼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지수가 그 노트를 어디에다 숨겼는지 떠올리려니 갑자기 노트가 눈앞에 나타났다. 노트는 화분 뒤에 놓여 있었고 화분은 꿈속의 정아의 왼쪽에 놓여 있었지만 어쩐지 노트의 전체 모습은 볼 수 없었던 반면 그곳에 쓰여 있는 글씨는 똑똑히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글을 읽더라도 글의 내용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몇 가지 단어만이 기억에 남았다. 그 글은 ‘아자토스’와 ‘쇼고스’라는 단어만이 수없이 반복되는 정신없는 산문이었다. 그 이름들은 이미 벌레의 신비를 통해 읽은 적이 있는 이름이다. 특이하게도 그 산문 중에 ‘모습을 바꾸는’이라는 부분이 기묘하게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정아가 이 상황이 꿈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이 시점에서였다.
정아는 그때 병실문이 소리 없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꿈속에서는 뚜렷한 소리가 들리지 않고 웅성거리는 소리만을 들을 수 있었지만 정아는 병실문이 소리 없이 열린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정아는 일순간 미술선생이 들어오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문틈으로 보이는 것은 다른 인물이었다. 처음에는 머리가 있어야 할 부분에 머리가 없어 한참 시선이 헤맸지만 곧 비정상적으로 낮은 위치에서 사람의 머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머리가 놓여 있는 위치는 중키인 미선이가 서 있더라면 허벅지 정도 되는 위치였다. 그 위치에 머리 하나가 덩그러니 떠서 병실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떠서’라는 표현은 그 머리에 몸이 붙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리는 마치 누워있는 사람이 머리를 가로로 하고 병실 안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가로로 되어 있었다. 게다가 목이 머리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든 것처럼 아래로 축 처져 있기도 했다. 미친 듯한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병실 안을 훑어보던 남자의 머리가 정아를 보았다. 둘의 눈이 마주쳤고, 정아는 눈을 뜨고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크나큰 공포가 정아를 덮쳤다. 지독한 환각을 수반하는 가위에 눌렸을 때의 공포와 흡사했다. 그 남자가 어둠 속 어딘가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정아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함부로 소리를 내지도 못한 채 몸을 잔뜩 웅크리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곧 정아는 꿈속에서 마주한 남자의 얼굴이 지긋지긋하게 자신을 따라다니는 그 얼굴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학선생이 보던 사진에 나와 있었고, 아름이의 그림에도 그려져 있던 바로 그 남자였다. 정아는 공포가 분노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은 무력하지만 할 수 있는 데 까지는 행동을 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날은 토요일이었다. 미선이가 실종 된 바로 다음날 말이다. 정아가 눈을 뜬 것은 미선이가 실종된 그 날의 오후 일곱 시였다. 정아 자신이 물어볼 기분이 아니어서 부모님에게 자세한 경과는 듣지 못했지만 미선이의 집에서 기절한 후 최종적으로 자기 집으로 옮겨진 듯 했다. 부모님은 정아가 학교를 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하지만 정아는 필사적으로 우겨서 머리가 빙빙 도는 와중에도 학교를 나왔다. 방에 있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미선이의 일로 정아가 경찰에 출두해주기를 요구했지만 정아는 어머니에게 잘 부탁해서 어머니가 경찰에게 정아는 아파서 누워 있으며 저녁 때 꼭 경찰에 출두할 것이니 기다려 달라고 둘러대도록 했다. 경찰이 찾아온 것으로 보아 미선이는 정말로 실종된 듯 했다.
정아의 원래 계획은 수업이 파한 후 공부를 핑계로 선생들이 퇴근하기 시작하는 여섯시 까지 남아 있다가 교무실을 뒤지는 것 이었지만 어머니가 정아가 학교에 남아 있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해서 결국 성사되지는 못했다. 때문에 정아는 학교가 파한 후 곧바로 경찰서로 갔다. 경찰은 수많은 질문을 퍼부었지만 정아는 어느 것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라면 정아도 경찰만큼 무지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아무런 소득도 얻을 수 없었다. 경찰은 정아가 경찰서를 나서는 것을 보고는 정아의 집에 전화를 걸어 필요한 상황만을 설명하고 정아를 집에서 떼어 놓을 것을 당부했다.
“혹시 모르니까, 아는 친구집이나 친척집에서 재우도록 하세요. 아니오! 위험한 건 아니지만 만의 하나를 위해서요... 물론 집이 안전하기는 하지만...”
경찰서를 나온 정아는 한참을 고민했다. 이대로 집에 돌아가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확실했다. 경찰에 과학선생과 음악선생, 미술선생과 교장선생, 그리고 어쩌면 사회선생을 고발하는 것에 대해 정아는 위험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자신에게 명백한 악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뚜렷한 증거도 없이 신고했다가 거꾸로 역습을 당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정아는 반 아이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폭력을 자주 목격했고 그에 대해 학교와 경찰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 대해 명백히 알고 있었다. 더구나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교장이 관계된 일이라면 일개 학생인 정아가 대립하기에는 너무나 큰일이었다. 결국 정아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 판단한 것은 학교에 숨어들어가 남자의 사진과 벌레의 신비를 포함해 그럴 듯한 물건을 모두 긁어 모든 뒤 익명의 편지와 함께 경찰에 넘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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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를 보니 그래도 읽어 주시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저 무한히 감사드립니다.
Mad Ha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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