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또각또각-. 발자국 소리가 고요한 복도에 울려 퍼지고 있다. 누구일까? 자정이 넘은 학교에는 오직 학교를 지키고 있을 수위 아저씨만이 존재 할 뿐이다. 하지만, 발자국 소리가 가벼웠다. 성인 남성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구지? 그 순간이었다. 소녀의 등 뒤로 검은 손이 불쑥 튀어 나와 소녀의 입을 막아 버린다.
“꺅- 읍.”
공포에 빠진 소녀가 그 손아귀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발버둥 칠 때였다. 소녀의 뒤에서 나직이 말소리가 울려 퍼졌다.
“민지, 너~. 소리치면 어떻게 해? 수위 아저씨가 올라오면 어쩌려고?”
“너희들이었구나. 놀랬잖아. 힝-.”
자신의 친구들이 모여서 그녀를 바라보며 씩- 웃고 있었다.
“늦으면 어떻게 해? 우리끼리 그냥 가려고 했잖아.”
“미안, 미안. 몰래 빠져 나온다고 늦어 버렸어.”
두 손을 모아 그들에게 내밀어 보이던 민지가 자신의 입을 막았던 소년을 향해 말을 한다.
“다른 애 들은 다 모인거야?”
“응. 너까지 포함해서 5명.”
“좋아! 그럼 가볼까?”
5명의 소년, 소녀들이 조용히 계단을 바라본다. 그들의 목적지는 3층에 존재하는 미술실. 요즘 한창 미술실 괴담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소문이 떠돌았다. 저녁이 되면 이상한 괴 형체가 미술실에서 나와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학교 안을 낙서로 가득 채운다는 소문이었다. 그 낙서는 일반적인 낙서가 아니었다. 저주가 담겨있는 낙서였는데, 그 낙서 안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다면 그 사람은 1달 안에 미쳐서 죽어 버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여기 모인 이들은 그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서 늦은 시간에 학교로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야. 근데 그 소문이 사실이면 어떻게? 만약 우리이름이 적혀 있다면, 우리도 진성이 처럼 미쳐서 죽어버리는 것 아니야?”
미술실 괴담이 퍼진 것은 1달 전. 진성이의 죽음으로 인해서였다. 진성이는 2-3반에서 가장 공부도 잘하고, 활발한 성격덕분에 친구들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미술실에서 밤늦게 까지 혼자 남아 그림을 그렸던 그날 이후로 진성이는 말수가 점점 작아지더니 누군가 곁에 있기만 해도 흠짓- 놀라버리곤 했다. 가끔씩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중얼 거리기도 하던 진성은, 어느 날 수업 중에 벌떡- 일어나서는 교실 밖으로 허겁지겁 뛰쳐나가 버렸다. 마치 누군가가 쫓아오듯이…. 그리고 잠시 후 쿵- 하는 소리가 창문 밖에서 울려 퍼졌다. 놀란 학생들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 이미 진성은 죽은 채였다.
진성의 얼굴은 사색이 된, 공포로 잔뜩 질려서 눈을 부릅뜬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  
“진성이가 죽은 거랑 그거랑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니까. 지어내기 좋아하는 녀석들이 퍼뜨린 이야기지. 진성인 그냥 자기 혼자 미쳐서 죽어 버린 거고. 우린 소문이 거짓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 이곳에 온 거잖아. 이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
원래 귀신을 믿지 않던 성우였다. 학교가 괴담으로 발칵 뒤집혀 있을 때도, 소문에 대해 떠들어 대던 녀석들을 비웃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더 이상 보기 싫어, 이렇게 친구들과 학교로 온 것이다.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천천히 미술실로 향하는 그들의 발걸음은 왠지 무거웠다.
“무서워. 성우야….”
민지가 성우의 옷자락을 움켜쥐고는 성우의 등 뒤에 바짝 붙어서 속삭여 온다.
“걱정 하지 마! 그런 건 다 거짓말이라니까!”
그때였다. 미술실 문틈 사이로 새하얀 무언가가 자신들을 지나쳐 뒤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그들은 보고야 말았다.
“방금…. 뭐였지?”
얼어 있던 그들 사이로 조용히 성우가 말을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성우야. 이제 가자. 무서워서 못 있겠어. 흑-.”
울음을 터뜨리는 소녀들과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년들을 바라보던 성우가 그들을 향해 한마디 하려는 찰나였다.
“너희들. 여기서 당장 나가. 바빠 죽겠는데 왜 들어 온 거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소녀가 그들을 쏘아보며 나직이 중얼 거린다. 언제부터 있었던 것일까?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지 못한 그들이었다. 누군가가 다가온다면, 조용한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을 것이다. 특히나 공포로 잔뜩 긴장한 그들이 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으아악-.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계단을 향해 있는 힘껏 뛰어 갔다. 그때 성우는 들을 수가 있었다. 나직한 소년의 목소리를….
“이런. 저 녀석 들. 교문에 가서는 기절하겠는데?”
“킥킥. 영향을 끼치는 녀석이 아니라서 상관없잖아?”
“그건 그래. 하지만, 심장마비로 죽으면 골치 아픈데….”
정말이지 곤란하다는 듯이 말을 하는 소년이다. 성우는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 봤다. 그리고 은색의 눈동자와 마주치고 말았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듯한 은색의 눈동자. 성우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는 학교 밖으로 죽을힘을 다해 뛰쳐나갔다.
헉헉-. 교문까지 뛰쳐나온 그들은 헐떡이면서 주저앉아 버린다.
“방금 우리가 본건 뭐였지?”
“사람… 이었지?”
성우는 소년이 말했던 말들이 자꾸 기억에 남았다. 무슨 뜻일까? 그렇게 그들이 각자 숨을 돌리고 있을 때였다. 교문 밖에서 한 소녀가 헐레벌떡 뛰어 오고 있었다.
“얘들아 미안해! 몰래 빠져 나오려고 하다 보니까 늦어 버렸어.”
“민…지?”
성우는 황급히 자신의 옆자리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 성우가 민지의 손을 붙잡고 교문까지 뛰어왔었다. 손을 잡았던 차가운 감촉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
“너희들 뭐야?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날 보냐?”
입술을 삐죽이며 말을 하는 민지를 향해 성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너… 언제 온 거야?”
“너도 방금 봤잖아. 나 뛰어 온 거! 지금 늦었다고 구박 하는 거야?”
성우는 남아 있는 3명의 친구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새하얗게 질려 버린 얼굴로 성우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그들과 함께 있었던 민지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미술실 창가에서 한 소녀가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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