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수업이 모두 끝난 교내에는 몇몇의 학생들과 선생들을 제외하고는 남아 있지 않았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좀 쉬려고 했는데. 어째 하루도 편할 날이 없냐?”
“그게 네가 할 일 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 현수.”
현수와 레이였다. 그들은 3층 복도를 걸어가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노을이 지고 있는 이 시간에 그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공포의 대상인 미술실 복도를…. 딸칵. 드르륵-. 미술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 현수는 항상 그랬다는 듯이 구석의 의자로 다가가 자리에 털썩 앉아 버린다. 그리고는 의자 앞에 존재하는 이젤에 다소곳이 세워져 있는 새하얀 종이를 바라본다. 그 종이 안에는 무엇이 그려져 있을까? 그곳에는 기괴한 형체의 괴물이 그려져 있었다. 2M가 넘는 커다란 몸에 촉수같이 징그러운 것 들이 몸 안에서 뻗어져 나와 흐물 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현수가 종이를 툭- 한번 치더니 인상을 찌푸린다.
“이 녀석 때문에 학교가 시끄럽잖아. 학교에서는 조용히 살고 싶다고.”
그렇다면 이 그림안의 정체모를 괴물이 학교 괴담의 주범이라는 소리일까?
“그렇다고 해치우지 못한다면 더 귀찮아 질걸?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잖아?”
레이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레이의 말이 백번은 더 맞는 말이니까. 지금도 귀찮은데 지금보다 더 강해진다면 더 귀찮아 질 것이다. 현수는 한숨을 한번 토해내더니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오늘 저녁에도 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까 지금 처치해야겠지?”
“응. 오늘 저녁도 바쁠 거야. 하지만, 내일은 학교를 쉬니까 다행이지 않아?”
태평하게 말을 하고 있는 레이를 바라보며 현수는 지쳐 보이는 표정을 짓는다. 분명 자신은 공부에 전염해야할 일개 학생일 뿐인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현수는 자신 또래의 학생들이 그러 하듯이 성적 때문에 울고 웃는 그러한 생활을 해 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매일매일 이러한 녀석들 때문에 뛰어 다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 그리웠다.
“꿈 깨! 넌 타고났어. 외면하려고 들지 마!”
“생각도 못해? 그리고 내 생각 읽지 말라니까~. 나에게도 프라이버시가 있다고.”  
현수와 레이는 영혼으로 이어져 있는 사이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아니, 마음만 먹는다면 교감을 끊어 버릴 수 있긴 하지만 그 일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다고 해도 레이가 가만히 있지 않겠지?
현수는 레이와 투닥 거리면서 미술실을 빠져 나온다. 그리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또각또각-. 복도에는 오직 현수의 발걸음 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그리고 그 발걸음 소리는 3층의 화장실에서 멈추었다.
“으그. 하필 화장실이냐?”
“음습하고 칙칙한 그런 곳을 좋아 하니까 그렇지 뭐. 빨리 해치우고 집에 가자~.”
칭얼거리는 레이를 한번 봐주고는 천천히 화장실로 걸어 들어갔다. 끼익-. 낡고 뻑뻑한 문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다. 그 소리에 현수는 인상을 한번 찌푸리더니 이내 고개를 돌린다. 냄새나고 더러운 장소. 특히나 남자 화장실은 지저분한 낙서로 가득했다.
끼기기긱-. 기괴한 소리가 들린다. 무슨 소리일까? 현수는 천천히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걸어간다. 그 소리는 화장실 마지막 칸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였다. 살짝 열려 있는 그 틈사이로 무엇인가 보이는 듯 했다. 아니, 확실히 보였다. 커다란 덩치가 숨어봤자 거기서 거기지…. 괴물은 이상한 촉수 형태의 팔들로 벽에 끊임없이 낙서를 하고 있었다. 붉고 알 수 없는 문양의 낙서.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낙서였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낙서들은 학교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마 이 녀석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은 그 낙서는 영원히 존재 하리라. 기감이 강한 녀석들이 아닌 이상은 영원히 알 수가 없겠지만….
“이봐. 수업은 끝났다고. 이제 낙서는 그만하고 그만 집으로 돌아가지 그래?”
하지만, 내 말을 듣지 못한 것인지 계속해서 낙서를 하고 있다. 끼기기긱-. 순간 호기심이 들었다. 과연 이 녀석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무엇을 이렇게 끊임없이 쓰고 있는 것일까? 호기심이라는 녀석이 현수의 온 몸을 휘감았다.
“한번 볼까?”
현수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교복 윗주머니에 넣어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벽을 응시하는 현수의 눈동자는 은색이었다. 시리도록 차가운 은색. 어떤 것이라도 꿰뚫어 볼 수 있을 듯 해 보이는 눈동자였다. 부릅-.
“흐음. 이런 거였어?”
현수의 눈동자는 이내 검은 색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그 검은색의 눈동자에는 측은함이 묻어져 나오고 있었다. 과연 낙서에는 어떠한 의미가 숨어져 있기에 현수가 측은하게 바라보는 것일까? 낙서의 뜻은 학교에서 널리 퍼지고 있는 저주 글이 아니었다. 그저 한 인간의, 불쌍한 인간의 처절한 마지막 삶에 대한 외침이었다.
살고 싶어. 나가게 해줘. 엄마 살려줘요. 죽고 싶지 않아. 외로워. 외로워.
오직 이러한 말들뿐이었다. 그에게는 어떠한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이봐. 이제 집에 가야지? 내가 집으로 보내줄게.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현수의 말을 들었던 것일까? 어떠한 말에도 미동이 없던 그는 낙서를 멈추고 뒤를 돌아 현수를 바라본다. 외로움. 오직 그를 보고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숨 막힐 듯한 외로움. 외로움이라는 바다가 현수의 몸을 덮쳐 오는 듯 했다.
집에 갈 수 있어?
찢어 질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현수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진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희망이 엿보였다. 정말로 집에 갈 수 있는 것이냐는, 이제 이곳에서 나갈 수 있는 것이냐는.
“응. 내가 보내줄게.”
정말?
“응. 그러니까 내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어. 알겠지?”
말을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향해 미소를 한번 지어보이고는, 천천 히 시선을 그에게로 고정시킨다. 그러자 눈동자가 은색으로 물들어 지더니, 순간 현수의 눈동자 속으로 그의 기억들이 흘러 들어와, 현수의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화악-.

본관의 건물과 떨어져 있는 별관. 그 곳은 몇 년 전 부터 쓰지 않고 있어 폐교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없어야 할 그 곳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별관의 지하 1층. 사방이 탁 막혀있는 깜깜한 이곳의 유일한 빛은 출입구는 밖에 없었다.  
“하, 하지 마. 부탁이야.”
겁에 질린 듯한 소년의 목소리가 조용한 지하에서 울려 퍼진다. 그 소년의 옷은 온통 먼지투성이 었다. 폭행을 당했는지 얼굴은 퉁퉁 부어있고,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런 소년의 주위로 3명의 남학생과 1명의 여학생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너. 감히 나를 그런 눈으로 쳐다봐? 너 같은 게 어디서….”
제법 예쁘장해 보이는 여학생이었다. 소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소년의 얼굴을 지그시 밟으면서 기분 나쁘다는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정말, 재수 없어. 난 너 같이 찌질 한 녀석이 바라볼 정도의 여자가 아니라고! 너 같은 게 나를 그런 식으로 보고 있었단 말이지? 구역질나.”
소년은 소녀가 이러한 사람인지 꿈에도 몰랐다. 그저 작고 귀여운 그녀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을 뿐. 어떠한 나쁜 짓을 한 적도 없었다. 그저 남몰래 혼자만의 사랑을 키우고 있었다. 남 녀 간의 사랑도 아니었다. 마치 오빠가 여동생을 사랑하는 가족애적인 사랑이었다. 홀어머니 밑으로 자라온 그는 귀여운 여동생이 갖고 싶었었기에 그녀를 그저 자신의 여동생인양 그렇게 바라 봤을 뿐이었다. 정말이지 그 뿐이었다. 자신이 그녀를 쳐다봤다는 이유로 이러한  일들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절대로 그러지 않았으리라.
“안 그럴게. 다시는 너를 쳐다보지도 않을게. 그러니까 보내줘. 부탁이야.”
소년의 절실한 부탁에도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소년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 없이 그들에게 두들겨 맞고 있던 소년은 끝내 기절하고 말았다.
“앗. 뭐야? 재미없게. 샌드백이 기절했잖아?”
“슬슬 재미있어 지려던 참이었는데. 그만 가자!”
그렇게 그들은 기절한 소년을 내버려 둔 채로 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하지만, 그들도 결코 몰랐다. 문을 닫음과 동시에 옆에 놓여 져 있던 나무 조각들이 쓰러지면서 입구를 막아 버린 것을….
“으윽. 어떻게…된 거지?”
깨어난 소년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에 깜짝 놀랐다. 더듬더듬 손을 짚으며 소년의 머릿속에서 기억하고 있는 입구를 향해 기어갔다. 잠시 후 입구에 도착한 소년은 안심하는 표정으로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덜커덩-.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마치 밖에서 어떤 것이 가로막고 있는 듯이….
“사, 살려주세요. 거기 아무도 없어요??”
소년의 외침에 어느 누구의 대답도 없이, 그렇게 소년에게로 다시금 흘러들어 왔다. 며칠이나 지났는지 소년은 알 수가 없었다. 공포와 굶주림. 그리고 외로움만이 소년에게 존재할 뿐이었다.
“살고 싶어…. 나가게 해줘요. 제발.”
소년은 울었다. 문의 손잡이를 자신의 생명 줄 인양 붙들고는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다.
“엄마~ 살려줘! 나 여기 있어. 살려줘!! 죽고 싶지 않아!!”
소년은 외쳤다. 처절하리만치 광기어린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삶에 대한 집착. 소년은 죽고 싶지 않았다. 죽기에는 너무나도 어린 나이. 조금 더 세상을 둘러보고 싶었다.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나도 억울했다.
“외로워. 외로워. 외로…워.”
소년은 미친 듯이 중얼 거리고 있다. 빛이라고는 오로지 작은 문틈사이에서 들어오는 빛뿐. 고독과 외로움에 휩싸인 소년은 그렇게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너. 이름이 뭐야?”
탁하게 잠겨 있는 현수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이름?
“그래 이름. 이름이 뭐야?”
현수의 말에 그는 곰곰이 생각에 잠긴 듯이 한참동안 아무런 말도 없었다.
…정우. 한 정우.
“그래. 정우야. 넌 네가 죽은 것을 알고 있는 거지?”
그는 슬픈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아마도 정우는 자신이 죽었음에도 이 학교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낙서를 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것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미쳐 버릴 것 같을 테니까…. 누구하나 자신을 봐 주는 사람이 없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 왔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누군가가 발견해 주기를 바라면서….
“복수…하고 싶지 않아? 따지면 그 녀석들 때문이니까.”
복수?
“그래 복수. 네가 원한다면 복수할 수 있게 도와줄게.”
악마의 속삭임 마냥 정우를 향해 말을 하는 현수다. 그들이 정우를 그 곳에 가둘 의사는 없었다고 하나 그들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그러니 복수를 해야 정당하지 않을까? 하지만, 정우는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젓는다.
아니.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어. 복수는…괜찮아. 그저 엄마가 보고 싶을 뿐이야.
정우는 너무나도 착했다. 자신이었다면, 죽어서라도 반드시 복수 했을 텐데. 세상에 정우 같은 녀석들만 존재 한다면 세상은 너무나도 평화로웠겠지?
“조만간 네 시체는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 갈수 있을 거야. 그때 어머님을 뵐 수 있을 거야. 알겠지?”
고마워….

얼마 후 신문에 난 기사로 인해 현수가 다니고 있는 대린 고등학교는 떠들썩했다. 1년 전 한 정우라는 학생이 별관에서 죽은 시신이 발견 되었다는 기사의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1년 동안 시신이 학교 안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그 시신이 발견된 곳은 학교 별관 지하1층인 음악실 이었으며, 시신의 죽어 있던 장소는 문에서 멀지 않은 부근에서 발견 되었다. 그리고 그의 주변으로는 자신의 피로 쓰여 진 글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살고 싶어. 나가게 해줘. 엄마 살려줘요. 죽고 싶지 않아. 외로워. 외로워.

현수는 정우의 장례식장에 들어갔다. 그 곳에는 정우의 어머님으로 보이는 여인이 정우의 시신이 들어있는 관을 부여잡고 통곡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정우가 슬픈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순간 정우가 고개를 돌려 현수를 바라봤다. 정우는 매우 단정한 얼굴에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살아생전의 정우의 모습이리라. 현수를 발견한 정우는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을 한다.
고. 마. 워.
‘다음 생에는 행복해라. 괴롭힘 당하지 말고 부모님이랑 행복하게, 그렇게 살아.’
그 모습을 뒤로한 채 현수는 밖으로 나왔다. 올려다본 밤하늘의 별들은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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