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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

2022.03.13 17:2203.13

친구가 죽었다.

남길이는 우리들 중에서 가장 먼저 서울로 취직해 모두의 부러움을 받던 녀석이었다. 얼굴을 본지는 오래되었지만 작년엔가 서울에 출장을 갔던 다른 친구의 이야기로는 강남의 어느 횡단보도에서 남길이를 마주쳤었는데, 아는 척을 하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

 

서울행 고속버스는 4시간을 꼬박 달렸다. 생애 첫 서울행이 친구의 장례식이 될 줄은 몰랐다. 차창에 비친 검은 정장 차림의 내 모습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어 몇 번이고 넥타이를 고쳐 매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서울로 진입하자 TV에서만 보았던 거대한 빌딩들과 대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함께 가기로 했던 용식이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 같이 못 가서 미안. 계좌 알려주면 부조 보내줄게

촌놈이라 놀림당할지는 몰라도 혼자 서울에 간다는 것이 내심 긴장이 되어 함께 갈만한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려봤지만, 누구는 이미 다녀왔다고 하고 누구는 일이 바빠 가지 못한다 했다. 그나마 나와 비슷하게 구직준비 처지에 있는 용식이와 함께 가려 했지만 부모님 농사에 급한 일이 생겼다 하여 결국 혼자 가게 된 것이었다.

탑승했던 우리 읍내의 버스터미널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은 출구를 빠져나오는데 만 해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초행임을 티 내지 않으려고 나는 잠시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들고 길을 찾았다. 8-1번 출구로 나가 403번 버스를 타면 되는 것이었다. 미리 캡쳐해온 지도 화면과 지도 앱에 새롭게 나타난 신호들을 비교해 보았지만, 되려 헷갈리게만 만들 뿐이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출구 방향이라는 화살표만 믿고 따라갔더니 끝이 보이지 않는 지하상가가 나타났고, 8-1번 출구 방향이라고 해서 가보았더니, 길의 끝에서 8-1번 출구로 가려면 지하철로 들어가야 한다는 표시가 나왔다. 더위가 꺾인지 오래인 초가을이었지만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지하라서 그런지 숨도 막혔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 지상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되리라는 생각에, 가까이에 있던 2번 출구를 통해 지상으로 나왔다.

2번 출구는 건물들의 사잇길로 나오는 엉뚱한 출구였지만 밖으로 나오자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핸드폰 지도 앱을 다시 켜서 풍경과 맞추어 보았지만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더 이상 혼자 길을 찾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 나는 사람들에게 길을 묻기로 했다. 다들 바삐 걸어 다니는 통에 쉽게 말을 걸지 못하고 망설이기만 하던 나는 인근에 벽을 보고 서있는 모자 쓴 젊은 남자 한 명을 발견하고 그리로 향했다. 그의 뒤에 대고 핸드폰 지도 앱을 꺼내 밀며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저기요. 죄송한데요. 여기 8-1번 출구로 가려면 어떻게…”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마스크를 쓴 얼굴이었다. 그때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의 얼굴을 봤다. 이상했다. 마스크 밖으로 드러난 눈은 평범했다. 이상한 것은 보이지 않는 마스크 안쪽이었다.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순간적으로 쳐다보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에 나는 급히 고개를 숙이고 말을 이었다.

“제가 초행이라… 여기 지도에는 큰길이…”

남자가 대답 대신 팔을 뻗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2번 출구 너머 반대편 방향이었다. 나는 지도 앱을 돌려 남자가 가리킨 방향대로 방향을 맞추어 확인해 보았다. 방향이 맞았다. 이제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가버리면 되는 것이건만, 그 순간 다시 한번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슬쩍 고개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눈이 마주쳤을 때 마스크 속 어색한 얼굴의 정체를 깨달았다. 남자는 코가 없었다.

감사의 인사를 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뛰다시피 그곳을 벗어난 나는 어느새 7번 출구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간의 헤맴을 보상해 주는 것처럼 때마침 도착한 403번 버스에 올라탄 나는, 버스 가득 퇴근하는 사람들 사이에 겨우 몸을 끼워 넣었다. 버스가 출발할 무렵, 창밖 저 멀리에서 마스크 남자가 내 쪽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장례식장은 울음바다였다. 미처 피지 못한 젊은 청년의 죽음이 그러하듯이. 환하게 웃고 있는 남길이의 영정 앞에서는 그리 깊은 친분관계는 아니었던 나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오랜만이다?”

빈소에 모여 술을 한잔하고 있던 동창들이 나를 먼저 알아봤다. 너무나도 달라진 모습에 나는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음에도 말이다.

“넌 진짜 옛날이랑 똑같다. 뭐해 요즘? 아직 농협에서 일해?”

“그만둔지 좀 됐어. 지금은 그냥…”

나는 말끝을 흐렸지만 대충 알아들은 것인지, 형식적인 질문이었는지 그들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모두 수도권에서 일하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동창 중에 고향에서부터 올라온 건 나밖에 없어 보였다. 나는 첫 서울행을 위해 새로 산 넥타이를 풀어 주머니에 넣으며, 내내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혹시, 어떻게 된 거래? 남길이.”

“과로사란다. 씨발. 과로사.”

프로젝트 마감을 위해 며칠 밤을 새우며 야근하던 남길이가 발견된 것은 회사 자신의 책상에서였다. 피곤해 잠이 들었다고 생각한 동료 직원들도 깨우질 않아 해가 중천이 돼서야 사망했다는 걸 알고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말 많은 녀석이 설명을 마치자 다른 녀석이 빈소 구석을 가리키며 물었다.

“쟤는 근데 왜 저러냐?”

민규였다.

“몰라? 남길이가 민규 자기 회사에 꽂아주고, 둘이 친했잖아. 어제부터 한숨도 안 자고 저러고 있단다.”

 

민규는 구석의 테이블에 혼자 앉아있었다. 실핏줄이 모두 터져 붉디 붉고 졸린 눈. 넋이 나가보였다. 나는 민규와는 그나마 친분이 있었다. 학창 시절, 반은 달랐지만 같은 영화 감상 서클을 하기도 했었고, 집도 멀지 않아 하교를 같이 한 적도 꽤 많았다. 하지만 막상 민규의 앞에 앉자 내가 아는 민규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낯선 얼굴이었다.

망설이다 민규를 불렀다.

“정민규. 민규야.”

나의 부름에도 민규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허공을 보며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나는 당황했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나갔다.

“야… 나 기억나냐?”

그제야 붉은 눈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민규는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놓여 있던 술병을 들어 민규의 빈 잔을 채웠다.

그때였다.

‘짝!’

민규가 있는 힘껏 자신의 뺨을 때렸다.

‘짝!’

‘짝!!’

‘짝!!!’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급격히 조용해진 빈소에 계속해서 민규의 뺨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민규의 행동은 그 정도로 갑작스럽고, 기이한 것이었다. 번뜩 정신이 든 내가 민규의 손을 겨우 잡아채자, 민규가 큰 소리로 외쳤다.

“잠들면 안 돼!”

“뭐?”

“남길이가, 어떻게, 죽었는 줄 알아?”

“과로… 라던데.”

민규는 벌건 피멍이 올라오고 있는 양볼을 내게 가까이 들이밀며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말했다.

“코가 잘렸어.”

 

“미친 새끼.”

담배를 피우던 동창 무리들 중 하나가 장례식장에서 쫓겨나간 민규를 그렇게 불렀다. 이후로도 한껏 술을 마신 나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없이 담배만 마저 빨았다. 자신의 차로 고속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주겠다던 한 녀석은 너무 취해버려 대리기사를 불러다 먼저 돌아가버렸다. 또 다른 친구 하나가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하고 홀로 장례식장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야 막차가 끊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길 건너에 아직 불이 켜진 지하철역이 보였다.

 

이번 열차가 오늘의 마지막 열차라는 내용의 역내 방송을 들으며 겨우 지하철에 올라탔다. 벌써 몇 번이나 확인한 지하철 노선도 방향을 또 한 번 재확인한 뒤에야 텅 빈 좌석 중 하나에 몸을 기대며 숨을 마저 헐떡였다.

막차 시간의 지하철은 적막했다. 같은 칸에 타고 있는 건 만취해 잠이 든 회사원 한 명과 노인 한 명뿐이었다. 그 후로 몇 개의 역을 지나는 동안 나는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럴 만도 했다. 여러모로 피곤한 하루였다. 그러던 내가 눈을 뜬 것은 어떤 소리 때문이었는데, 쉴 새 없이 균일하게 덜컹거리는 지하철 소리 가운데에 어울리지 않는 소음이 섞여 있었다.

‘서걱, 서걱’

졸린 눈으로 바라본 방향에는 아까의 술 취해 잠든 회사원이 보였다. 여전히 잠들어 있었지만, 앞에 누군가 있었다. 허리를 굽히고 등을 돌린 모습의 그는 회사원의 얼굴에 낙서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낙서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회사원의 앞에 선 남자가 마침내 허리를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른손에 든 날카로운 칼에서 떨어진 피가 지하철 바닥을 적셨다. 왼손에는 붉고 뭉텅거리는 회사원의 코가 들려 있었다. 코를 잃은 회사원은 너덜거리는 얼굴로 미동도 없이 죽어갔다.

남자가 뒤를 돌아 나를 쳐다보았다. 마스크를 쓴 남자였다.

 

당장 도망쳐야 했다. 다른 칸으로, 도움을 청하고,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경찰을 불러야 했다. 그런데 왜인지 잠이 몰려왔다. 참을 수 없는 잠이었다. 나의 눈이 감기자 칼을 든 마스크 남자는 내 쪽을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나는 감겨가는 눈으로 그것을 보고도 꼼짝없이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문득 장례식장에서 민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잠들면 안 돼!’

나는 필사적으로 잠들지 않기 위해, 눈을 감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남자는 어느새 지근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쨍그랑!

한켠에서 노인이 들고 있던 병을 떨어뜨렸다. 그 순간 눈이 뜨여진 나는 그제야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벌떡 일어나 다음 칸으로, 또 그다음 칸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한참을 뛰다 보니 지하철이 다음 역인 고속버스터미널 역에 도착하기 위해 속도를 줄였다. 나는 이제 됐다 싶은 마음에 뒤를 돌아 마스크 남자를 찾았다. 그는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잃고 헤맸던 오후와는 달리 발길이 닿는 대로 뛰다 보니 지하철역을 나와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경찰에게 말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 말고도 누군가 목격하지 않았을까 등의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휩쓸며 지나갔지만, 그런 고민들보다 앞서 나를 움직이게 한 것은 일단은 이곳을, 서울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고속버스는 제시간에 도착해 있었다. 올라타기 전에 지하철 역사에 전화를 걸었다. 조금 전의 살인사건에 대해 확인했지만 그런 일은 없다는 퉁명스러운 대답뿐이었다. 버스에 올라탄 나는 뜬 눈으로 출발 시간 만을 기다렸다.

서울을 벗어나는 야간의 고속버스는 고요하고 적막했다. 드문드문 좌석에 앉은 승객들은 저마다 핸드폰을 보거나 잠이 들어있었다. 꿈이 아니었을까, 나는 생각했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 마스크를 쓴 코가 없던 남자, 민규의 헛소리들이 섞인 망상과 환상 같은 꿈을 꾸었다는 게 가장 그럴싸한 해답인 것이었다. 그것밖에는 내가 보았던 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도심의 불빛들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눈을 감아보려 했지만, 두려웠다.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 떠보았지만 버스 안은 여전히 평온했고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몇 번이나 더 시도하고 나서 안심하게 된 나는 그제야 마음을 놓고 눈을 감고 잠들 수 있었다. 편안히 잠으로 빠져드는 가운데, 불현듯 민규 생각이 났다. 잠들지 않으려, 눈을 감지 않으려 애쓰던 민규. 멍하니 넋을 놓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붉은 눈을 부릅뜨고 빈소의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랬다. 천장이었다.

내가 눈을 뜨고 버스 천장을 올려다보았을 때는, 거꾸로 매달려 있던 코가 없는 남자가, 그의 칼이, 내 코를 단번에 베어 간 뒤였다.

서울발 버스는 어둠 속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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