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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범죄 진화론

2015.07.11 22:0307.11

 

그는 자기 생을 저주했다. 그걸 실행에 옮긴 건 물론 그 일을 통해서였다.

이름, . 나이, 열여덟. 별도로 배운 적이 없으면서 청소년 범죄 처벌에 대해서 그처럼 많이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 거였다. 열 살 이하면 아무것도 아님. 열 살부터 열네 살은 촉법소년, 끽해봤자 소년원에 가고 빨간 줄이란 건 남지 않는다. 열아홉 살 미만은 범법소년. 최고형은 사형이 아니라 15년 징역. 딱히 겪어 봐서 아는 건 아니었다. 분명히 아니었다.

그는 교칙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일단 대체로. 눈이 내린 것 같은 하얀 머리도 원래부터 그렇게 나는 거라서, 가끔 염색하라고 말이 많긴 했지만 한두 번 염색하면 그냥 넘어가 주곤 했다. 아마 얼굴 때문이었을 거였다. 체구 자체가 작은 그가, 동글동글한 갈색 눈의 그가, 무슨 짓을 벌일 만 한 놈처럼 보일 리 만무했다.

그 일이 있긴 했어도 엄밀히 말하면 그는 그 일때문에 특수학교로 가게 된 게 아니었다. 누구도 그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피해자는 알겠지만,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니까.

반은 동물, 반은 사람. 그의 혈통이었다. 사회는 그를 동물 취급했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들 중 그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 사람은 없었다. 이번에도 역시 겉모습 때문이었을 거였다. 가끔씩 나타나는 꼬리조차 차라리 방석처럼 보일 지경이라, 여우라고는 해도 누군가를 해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을 테니까. 더욱이, 그는 굳이 분류하자면 남들을 지켜보기만 하는 쪽이었지, 누군가를 해치는 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죄의 일부가 드러나기는 했지만 남들은 그가 실제로 그 일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충, 그런 유해 빠진 놈이 이런 걸 했다고는 믿기지 않는데, 이런 식이었다. 삭은 가끔씩 지나치게 충격적인 것들은 사람의 마음속으로 쉽사리 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를 떠난 사람은 많았다. 거의 모든 사람. 그러나 그는 그들이 그 이상의 짓은 하지 않으리란 걸 알았다.

선천적 사이코일까, 하는 생각을, 아주 잠깐 해 본 적이 있긴 했다. 초등학교 때였던 걸로 그는 기억했다. 누군가를 죽도록 때려 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진심으로 그 생각을 한 건 그 때가 마지막이었다. 그 때부터 그는 안대를 사용하기 시작했었다. 우선 뒷목을 한 대 치고, 기절한 사람의 사지를 묶은 다음 안대를 씌우고 작업을 시작하기. 근래 그가 한 모든 사냥은 그런 식이었다.

그 일이 정말 삭과 연관되어 있는지 사람들은 밝혀내지 못했다. 그저 시체 주변에서 그를 찍은 CCTV가 있다는 게 근거의 전부였다. 아흔 아홉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라. 좋은 원칙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수인 사회와 남은 사회 전체의 그 기형적인 구조 속에서 잘 돌아가기란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전에는 수인이라면 가차 없는 처벌이 들어갔는데, 이젠 아니었으니까. 사람들은 그걸 얘기하면서 그더러 다행이라고 했다. 삭은 들으면서 속으로 웃었다. 그런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면 안 될 텐데.

그도 자신이 한 짓이 일반 상식에 어긋나는 짓이란 건 알고 있었다. 가끔씩 돌아버리는 자신이 가끔씩, 아주 드물게, 무섭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같은 짓을 반복했다. 이중인격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중인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중인격이라면 한 쪽 인격이 한 일을 다른 인격이 알지 못해야 하니까. 그는 알았다. 알면서 했다.

사람들은 삭을 특수학교로 보냈다. 수인들이 그 학교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얼마 전부터라고 했다. 처음에 삭은 스스로가 온건한 편으로 분류될 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절차가 진행되었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별다른 테스트를 많이 한 것 같지도 않았다. 그가 배정된 반은 끝 반. 누구 말에 따르면 가장 심각한 놈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했다. 부모님은 바빴다. 삭은 자신이 어디로 배정되었는지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사실 그의 부모님은 그가 어딘가로 가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왜 가야 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어머니 쪽에서 북극여우 유전자가 왔다고 했다. 어머니는 인간이셨다. 아버지 쪽에는 거미 유전자가 있다고 했다. 아버지도 인간이셨다. 숨어 있던 유전자가 삭의 몸속으로 모인 것 같았다.

삭에게는 누이가 있었다. 역시 인간이었다. 여동생과 친하진 않았다. 굉장히 형식적인 관계였다. 여동생의 이름은 망. 부모님이 달을 좋아하셔서 이름이 그리 된 것 같았다. 삭망월. 여동생은 그가 어떤 평가를 받는지 알았다. 그리고 동시에 그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았다. 삭은 여동생에게 손을 댄 적이 없었다. 깨지기 쉬워 보이는 애였다. 대신 그는 그 애에게 보여줬다. 여동생은 범죄에 대해서는 몰랐다. 그러나 예상은 했을 거였다. 그가 가볍게만 걸린 그 범죄가 사실은 그의 주도 하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다른 용의자가 없어서 그런다.”

 

위로 투의 말들. 삭은 부러 슬픈 표정을 하고 들었다. 그는 자신이 오래 전부터 '그 일'과 같은 일을 벌이고 싶어했음을 알았다. 근래 들어 충동적인 성향이 뚜렷해지다가 갑자기 터져 나온 사건이었다. 듣는 와중에도 삭은 표정 조절에 대한 원칙을 새기고 있었다. 울지 말 것. 약간 담담함을 유지할 것. 우는 놈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울더라도 혼자 울 것. 약점을 드러내는 것은 위험했다. 그리고 삭이 마지막으로 그렇게 감정을 보인 건 열 살 이전이었다. 그 원칙을 누군가 그에게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기억나지 않았다. 부모님일 거였다. 달리 떠올릴 만한 대상이 없었다.

학교는 산 속에 있었다. 그는 첫 날만 교복을 입었다.

그는 8반이었다. 수인 반 중엔 가장 망나니 같은 놈들만 모여 있다는 반. 가서 처음으로 공부가 하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삭도 자신이 그 쪽으로 분류되었으니 정상은 아니란 걸 알았다. 그러나 그는 천성이 연기자였다. 정상적인 놈들 사이에 섞여서 정상적인 시늉을 하는. 보호색을 띠려면 최소한 주변 색이 비슷해야 했다. 나뭇잎처럼 보이려면 주변도 나뭇잎처럼 보여야 하는 것이고. 망망대해에 떠 있는 카멜레온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삭은 재빠르게 주변을 맴도는 법을 배웠다. 상급생들이 짓누르면 시키는 대로 할 것. 초반엔 대들어도 봤지만 죽고 싶을 만큼 당하고 나서 그는 생각을 바꿨다. 일학년 놈들은 무슨 생각으로 무슨 일을 벌여서 학교에 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주 솔직히 말해, 몸이 근지러울 때면 1학년 꼬맹이들이 좀 시비를 걸어 줬으면 하는 경우가 있었다. 상급생은 시비 걸면 그냥 당하는 거고, 동급생도 괜찮긴 한데 놈들 관심은 다른 곳에 있을 것 같고, 1학년 놈들이 무지하게 기어오르면 그걸 빌미로 달려들면 좋겠다 싶어서. 그는 웬만큼 미친놈이 달려드는 게 아니면 평온한 얼굴을 유지했다.

덤벼라, 덤벼라, 제발 좀 덤벼 줘라.

그는 계속해서 맴돌았다.

 

.”

.”

먹을 거 없냐?”

 

오랜만에 듣는 정상적인 대화. 하기야 오랜만이라 하기도 뭐했다. 들어온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삭은 벽에 머리를 대고 얘기 소리를 들었다.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몇 학년인지도 불분명했다. 복도에서 나는 목소리. 다른 놈들이 지나가면서 말했다.

 

똑똑.”

조용히 해!”

 

작지만 새된 소리.

 

?”

“8.”

 

조용해졌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어떤 놈일까, 수인일까. 수인이었으면 했다. 물어뜯어 버리게.

지루했다. 이런 학교에서 권태롭다는 표현을 정말 쓰고 싶은 시점이 오리라는 걸 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루했다. 겨우 몇 시간 아무 일 없었다고 그러는 게 이상하기는 해도, 그랬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바글바글했다. 그는 밖으로 나왔다. 누구도 그를 잡지 않았다. 맴도는 놈. 그게 그였다. 설령 당할 때 함께 당하고 공격할 때 함께 공격하더라도. 손이 얼어붙으려 했다. 그는 마비 증세가 오기 직전이라는 걸 알았다. 어릴 때부터 아무 이유 없이 손이 마비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째서일까.

뿌리 깊은 분노 탓일 수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분노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가끔씩 이유 없이 화가 끓어오를 때면 공격 대상을 찾게 된다는 사실 하나가 그가 아는 전부였다. 당장 그 분노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감정이 심하면 몸에도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걸 그는 알았다.

이십 사 시간이 너무 짧았다. 동시에 길었다. 서둘러 사냥감을 물색해야 했다.

사람 고기는 맛있다고 했다. 간이 잘 되어 있어서. 들어서 아는 거였다. 그가 말하는 사냥이라는 건 수인들끼리 서열을 정하는 과정을 그 나름대로 부르는 방식이었다. 그는 사냥을 좋아했다. 당한다면 어떻게든 다시 달려들면 되는 것이고, 계속 하다 보면 언젠가 그가 이기게 되는 일이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철저하게 짓밟힌다 해도 그는 자신이 완전히 망가지진 않을 거란 걸 알았다.

최소한 그게 지금까지의 방식이었다. 학교는 낯설었다.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 느낌. 어둠 속으로 가는 일이 꺼려진다는 게 이상했다. 그는 복도 한 구석을 쳐다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8반은 적당한 물색 장소가 아니었다.

4? 그러나 4반도 곤란했다. 정상적인 놈들이 모여 있진 않으니까. 그는 망설이다가 움직였다. 좀 더 보호색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곳. 7.

1반부터 4반까지는 일반인, 5반부터 8반까지는 수인. 3반으로 내려가도 좋았겠지만 그러려면 4반 놈들과 마주쳐야 할지도 몰랐다. 그는 일반인들을 싫어했다. 저들이 뭐가 그리 잘났다고, 약간 유전자 다르다는 걸로 유세를 떠는지. 한 번쯤 눌러 주고 싶었다. 특히 그들의 대가리에 있는 놈 하나를.

그러나 불가능했다. 그도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그는 7반으로 갔다. 교실 안에 놈들이 많았다. 그는 천천히 걸었다. 8반 출신이라는 걸 아직 드러낸 적은 없으니 지나가던 학생이라고 생각할 거였다.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대상을 찾았다. 큰 놈. 좀 크고 싸울 기분 날 만 한 놈.

하나 있었다.

그는 잠깐 그 일에 대해 생각했다. 일 년 전에 시작한 작업이었다. 그에겐 어느 정도 기계를 다루는 재능이 있었다. 안마기를 고문 도구로 바꾸는 거야 일도 아니었다. 예전에 들은 이야기 주에 간질이기가 최악의 고문 중 하나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몇 가지 기능을 추가했다. 수치심을 가져오고 대상의 순결을 빼앗을 수 있는 걸로.

모두들 그를 순수하게 보았기 때문에 삭은 스스로 사냥감을 찾아야 했다. 그 때도. 좋지 않았다. 그는 사냥감이 스스로 찾아오는 걸 좋아했다. 싸움 한 번 해 보겠다고. 대체로 그는 일부러 한 번쯤 져 주곤 했다. 그 다음에 또다시 싸움을 걸고, 기고만장해져 있는 놈의 콧대를 꺾어 버리고. 삭은 복수 개념을 좋아했다.

다시 학교. 학교는 함무라비 법전의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개념을 쓴다고 했다. 아쉬웠다. 함무라비 법전은 노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 그 이유는 순전히 자신이 당한 것 이상의 복수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삭은 언젠가 자신이 그 법을 뛰어넘는 것을 학교 전체에 선사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미친 학교에서 가능할지는 몰라도.

큰 놈과 그의 눈이 마주쳤다. 그는 손짓으로 그를 불렀다.

전에도 그런 식이었었다. 놈을 부르고, 놈은 나오고, 그는 한 번 진다. 며칠이 지나고 그는 다시 싸움을 건다. 놈이 응한다. 삭은 한 번 이긴다. 목을 물어뜯어 사냥의 흔적을 남기고 놈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틈을 타서 외진 곳으로 인도한다. 상대의 냄새가 남아 있기 때문에 일을 크게 벌이기는 힘들다. 일반적으로는. 그러나 그는 한 번 진 적이 있다. 학교는 그걸 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용의선상에서 벗어난다. 웬만하면. 그는 당하는 놈, 이다.

큰 놈이 나왔다. 아이들이 구경하러 둘러쌌다. 삭은 주변을 살폈다. 문득 이번에 과연 져도 괜찮을까 싶어진다. 그가 있는 학교는 전의 학교와 다르다. 어차피 다른 녀석들은 그가 8반이라는 걸 알게 될 테다. 그럼 이상하다고 생각할 테고. 8반에서 다른 반으로 편입되어 반 전체를 야금야금 장악하는 것도 좋겠지만, 어렵다. 아무래도 그건 안 될 거였다.

상대가 공격 자세를 갖췄다. 약간 엉성했다. 그의 체구 탓에 얕보는 게 분명했다. 삭은 틈을 살폈다. 몸이 작아서 좋은 것은, 틈새를 파고들기 쉽다는 거였다. 빠르기만 하다면. 그리고 그는 빨랐다.

그러나 문제는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거였다. 그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물론 아무도 모르게 해치우는 게 좋긴 좋았다. 그래야 다음 상대를 구하기 쉬웠다. 물론 이번 건은 좀 반칙처럼 보이긴 할 거였다. 7반 대 8. 그러나 어차피 둘 다 처음이었다. 학교는. 8반이라고 7반하고 그렇게 다를 것 같지 않았다. 결과적으론 삭, 그가 이기겠지만.

체급만 놓고 보면 차라리 삭이 불리했다.

삭은 이겨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렇지 않으면 상급생들이 그를 숙청해 버릴지도 몰랐다.

위에서 대충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도 잘은 몰랐다. 그는 그저 학교 내 폭력 서클이 있으며 그 집단이 퍽 무지막지하다는 사실만 알 뿐이었다. 일반인이라면 두려워할 만한 종류의 단체였다. 가끔 그런 건 신경 안 쓰고 평화롭게 살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그게 진짜 삭일까, 아니면 덤비는 게 진짜 삭일까. 어떤 게 진짜든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평화롭게 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까 애초에 학교 구조 자체가 정상이 아니었다. 그런 단체 따위가 있고.

놈이 덤볐다. 삭은 몸을 숙였다. 놈의 주먹이 머리 위로 지나갔다. 사리는 머리로 놈의 배를 들이받았다. 놈은 밀리지 않고 그의 머리채를 잡았다. 사리가 명치로 주먹을 질렀다. 놈이 잡았다. 머리를 잡은 손 하나. 삭은 주먹을 쥐고 놈의 팔꿈치 안쪽을 찍었다. 놈의 팔이 굽어졌다. 그는 손을 비틀어 빼고 발로 배를 차려 했다. 놈이 발을 걸었다. 몸이 떴다. 놈이 머리를 잡아챘다. 머리가 뽑히는 것 같았다. 삭은 소리를 질렀다. 놈이 주먹으로 삭의 배를 쳤다. 숨이 막혔다. 그러나 삭은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빨리 끝나지 않는 건 아마 반칙을 쓰지 않아서일 거였다. ‘그 일이전에 있었던 사냥은 사실 좀 치사했다. 무기를 썼던 것이다. 이긴 그는 상대를 작은 바위 사이로 끌고 갔다. 거기에 그의 기계가 있었다. 삭은 나름대로 파란 천막을 치고 그 놈을 앉혔다. 당해 본 적도, 겪어 본 적도 없었지만 삭은 상대를 철저하게 능욕하는 법을 알았다. 고통의 측면에서나 수치심의 측면에서나.

그와 싸우던 놈이 목을 물려고 했다. 삭은 놈의 코를 쳤다. 무언가가 부러졌다. 놈이 그를 놓았다. 삭은 돌려차기로 놈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놈이 쓰러졌다. 삭은 놈의 가슴을 짓밟고 고개를 숙였다.

사냥.

피가 났다.

잘 몰라도 어류 계열인 것 같았다. 수영은 참 잘 하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삭은 피를 마셨다. 아마 까딱하다가는 죽을 수 있겠다 싶을 때까지 그를 짓눌렀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망가뜨렸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공포. 그도 그게 뭔지 알았다. 그게 어떤 효과를 거두는지.

폭력 서클인지 뭔지 모를 그것은 입학식 날 신입생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한 대씩 쳤다. 그게 과연 무슨 종류의 시험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학생을 알아서 뽑아 갔고, 삭 역시 선택된 사람 중 하나였다. 겉으로는 순수를 위장할 것. 뒤에서는 실질적인 힘을 행사할 것. 수인들이 덤비면 워낙 일이 심각해 질 수 있는 까닭에 웬만하면 쉬는 시간의 싸움을 말리는 사람이 없다고도 했다. 학생들은 단체의 이름만 들어도 입을 다물었다.

진시황의 정치는 지나친 법치주의라 몰락했다고 했다. 그러나 삭이 아는 세계에선 공포정치보다 좋은 게 없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일 년마다 반이 바뀌기 때문일 거였다. 지배자는 다른 반에서 또 다른 지배자가 된다. 그러나 그의 나라는 바뀌고 혁명의 세력은 형성될 시간이 없다. 최하위층은 언제나 최하위층이다. 모두가 그걸 안다. 최상위층은 언제나 최상위층이다. 대체로. 구체적인 지배자가 다를 뿐이다.

삭은 일어났다. 놈들이 물러갔다. 그는 자리를 떴다. 더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어쩐지 역겨운 이유는 뭘까. .

그는 그 일에 대해 생각했다. 평소보다 더 오랫동안 그는 그의 사냥감을 붙잡고 있었다. 밥 한 번 물 한 번 준 일이 없었다. 엿새쯤 되는 날에 그가 죽었다. 삭은 그를 묻었다. 너무 흐늘흐늘해서 오히려 아무 생각이 없었다. 공포가 몰려온 건 그를 묻어 버린 다음이었다. 그러나 또, 시간이 지나자 감정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수인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처음 한 번이 가장 어렵다는 걸까.

그는 '지나가던 사람'이라서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론 삭 본인도 자신이 더 심한 처벌을 받았어야 했음을 알았다. 수인들 사이에서는 암묵적으로 일종의 전투는 허용되고 있엇다. 그게 그 상대를 죽여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심하게 하면 할수록 두려워하는 내면의 자아는 더 심하게 몸부림을 치는 것 같았다. 그는 생각을 눌렀다. 그만두자, 그만. 흔적을 지울 때였다. 그는 입가를 문질렀다. 입가에서 주홍색으로 피가 번졌다. 아무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그렇게 적나라하게 누군가를 공격한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삭은 학교에 다니며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해 아주 잠깐 두려움을 느꼈으나, 관두기로 했다. 이미 끝난 일이었다. 범죄자들은 감옥에서 더 심한 범죄를 배우는 법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어쩌면 전혀 처벌 같지도 않은 그의 전학 처분은 그런 의미에서 벌이 되는지도 몰랐다.

 삭은 웃었다. 그러니까 이건, 인간이기를 포기하기 직전의, 신고식 같은 거로구나.

 

 

 

 

 

dyeonbae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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