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나오미

2023.04.29 14:3804.29

파란 바탕 위에 흰색으로 적힌 ‘나오미 클럽’ 간판에 환히 불이 들어온다. 오후 다섯 시다. 나는 종이뭉치를 정리하다 고개를 든다.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선 여자는 베이지색 롱코트에 검은 목도리를 두르고 검은색 단화를 신은 차림이다. 40대 초반 같다.

머리를 자르고 싶어요. 여기, 미용실 맞아요?

그녀가 말한다. 나는 높다란 카운터 의자에서 내려와 작은 몸을 그녀 앞으로 재게 놀린다.

여긴 남성 커트 전문 미용실이에요. 여자 손님은 안 받아요.

그게 뭐예요?

남자 머리만 깎는 미용실입니다.

내 말을 들은 나오미는 난감해한다. 구불구불한 머리칼이 가슴께까지 내려오는 여자는 자긴 예외로 하면 안되겠냐고, 간판의 ‘나오미’ 글자를 가리키며 자신의 이름도 나오미, 라고 한다.

삭발할 거예요. 머리를 없앨 거예요.

그녀가 말하며 빙긋 웃는다. 섬뜩한 그 말을 나는 속으로 곱씹는다. 왜냐고 굳이 묻지 않는다. 사정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어색한 만큼 그게 더 자연스러운 한국어에 가까운 것 같다. 잠시 고민하다 나는 결과가 시원찮을 거라고 말한다. 여자 머리는 잘라본 지 너무 오래돼서. 괜찮다는 그녀에게 나는 조금 앉아서 기다릴 수 있느냐고 묻는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손님을 받느라 너무 지쳤다고도. 내가 믹스커피를 타서 가져다주자 그녀는 맛있다고, 한국 와서 자주 먹었다고 말한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몰랐다.

누구를 찾나요?

난데없는 그녀의 질문에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카운터에 쌓인 종이들에 시선이 가닿는다. 거기엔 ‘사람을 찾습니다’라고 붉은 글씨로 크게 적힌 실종 전단지가 쌓여 있다.

그런 셈이죠. 누구를 찾는 셈이죠.

내 안색을 살핀 건지 그녀는 더 묻지 않는다.

나는 나오미 클럽 내부를 새삼 둘러본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블루클럽 스타일의 미용실이다. 여자는 왜 미용실 이름이 나오미냐고 질문한다. 나는 딸의 이름이라고 답했다가 애칭이라고 고쳤다가 별명이었다고 정정한다.

딸이 있으세요?

......한국말 잘하시네요.

한국말을 공부하고 있어요.

왜요?

그녀가 미소 짓는다.

한국 시가 좋아서요.

나는 시, 라고 중얼거린다. 시를 읽은 지가 여자 머리를 자른 만큼 오래된 듯싶다. 불현듯 다른 나오미에 관한 생각이 솟는다. 지금은 죽고 없는 그 애. 그 애도 시를 참 좋아했다.

무슨 시를 좋아하냐고 묻기 민망해 나는 거울 앞 의자에 앉으라고 권한다. 코트를 받아 옷걸이에 조심스레 건다. 의자를 마저 털고 주변의 머리카락을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치운다. 그녀는 숨을 한껏 들이마시고는 냄새가 푹신해서 좋다고 말을 잇는다. 냄새가 푹신하다니, 나는 그녀가 잘못 표현한 것이리라 생각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읽은 시에 나오는 표현이에요.

여자가 말한다. 나는 커트 천을 그녀의 어깨에 두른다. 목이 조이지 않게 집게로 고정한 뒤 거울을 보고 마주 선다. 구식 플라스틱 앤티크 테두리로 둘러싸인 기다란 전신거울은 우리 둘을 선명히 비춘다. 나는 손님을 받기 전과 받고 난 후에 정성 들여 거울을 닦는다.

가위를 집는다. 기다란 머리카락을 한 손에 잡고 길이를 대충 어림잡은 다음 싹둑 자른다. 여자의 몸이 움찔거린다. 그렇게 몇 번을 더 싹둑싹둑, 가위가 허공을 가른다. 혼란이 생겨난다.

 

나는 여자에게로 향하던 손길을 멈춘다. 다시 거울로 시선을 올린다. 여자의 머리는 말끔히 밀려 있다. 그녀는 천 아래로 손을 내밀어 맨머리를 만지작거린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그녀의 반듯한 양어깨 가운데 솟은 맨 두상, 거울에 비치는 초점 없이 자신을 살피는 눈동자가 마치 견습 미용사들이 사용하는 마네킹을 떠올리게 한다. 꼭 나오미 같기도 하다. 나오미가 첫 삭발을 했을 때 그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오른손으로 계속 머리를 매만진다.

나는요, 곧 죽을 거예요. 의사가 그랬어요.

여자가 다소 뜬금없이 말한다. 그녀는 결코 돌아보는 법 없이 거울을 통해서만 나를 올려다본다. 췌장암 말기라고 한다. 생이 몇 달 남지 않았다고. 여자의 꿈은 전 재산을 털어 세계를 여행하며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거다. 남에게 기억되고 싶다고. 한국에선 머리를 자르는 게 목표였다고. 그녀는 나를 향해 잘 기억해달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한다.

노력해보겠습니다.

나는 여자의 머리를 감겨주기 위해 바버체어로 그녀를 안내한다. 느릿하게 뒤로 넘어가는 바버체어에 등을 기댄 그녀는 긴장한 표정이다. 나는 물이 튀지 않도록 접은 수건을 그녀의 이마 위에 올려놓는다. 물 온도를 조절한다. 머리카락이 적고 없을수록 더 꼼꼼히 머리를 감아야 한다. 그래야 두피나 모근에 탈이 생기지 않는다. 나는 그러한 철칙에 따라 충분히 머리에 물을 적신 뒤 구석구석 샴푸를 비벼 문지른다. 할 수 있는 한 두피 마사지도 한다. 그녀의 두상은 이지러진 데 없이 정확한 반원을 그린다. 꼭 아기 하나를 씻기는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아내와 함께 나오미를 처음 씻겼을 때가 생각난다. 막 백일이 지난 나오미는 머리숱이 얼마 없다. 그때만 해도 예쁘게 머리를 손질해줄 생각에 기쁨으로 충만했다. 나오미는 작았고, 동시에 컸다. 생글생글 웃던 표정이 선연하다. 하지만 지금은 여자의 표정을 볼 수 없다. 수건에 가려져서. 그리고 눈을 감은 상태였으므로. 나는 마른 수건을 꺼내 여자의 머리를 닦는다.

기분이 좋아요. 감사합니다.

여자가 말한다.

불편한 곳은 없나요?

없어요. 좋아요.

나는 얼마를 받아야 할지 망설이다 그냥 남성 커트 값을 받는다. 그녀는 바깥으로 나가 거울을 응시하듯 간판을 오랫동안 올려다보다가 간다. 나는 다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뭉텅이로 잘려나간 여자의 머리카락을 쓸어 담아 쓰레기통으로 가져간다. 한순간 작은 세계가 사라진 듯하다.

문득 울컥 가슴 속에 소용돌이가 인다. 눈앞이 희부예진다. 나는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카운터로 가 앉는다. 바깥을 내다본다. 켜켜이 쌓인 노을빛이 두터운 층을 형성한다. 눈이 시리다. 아무리 그렇게 쳐다봐도 오지 않을 사람은 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보다 젊었을 적, 나오미 헤어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현재의 ‘나오미 클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헤어숍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주로 찾았다. 나는 그곳에서 늦게나마 미용을 배웠다. 아내와는 일찍이 이혼했고, 딸이 하나 있었다. 그 애의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빠인 내가 나오미 헤어에서 사람들은 내 딸을 나오미라고 불렀다. 사람들의 머리를 감겨주고 보조 일을 한다는 이유였다. 나오미는 내가 머리를 감겨주거나 머리 깎아주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내가 머리를 건들면 못생겨진다는 것이었다. 미래의 헤어디자이너로서 꽤 실망스러운 평가였다. 그럼에도 나는 나오미의 머리를 잘랐다. 다른 사람에게 절대 나오미의 머리를 맡길 순 없다는 게 내 고집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상당히 이상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지만, 어쨌거나 그랬다. 나오미를 아내의 유일한 흔적으로 여기기도 했거니와 딸에 대한 남의 손길을 지독히도 싫어했다. 한 달에 한 번, 날을 지정해 나오미의 머리를 잘랐다. 결과는 내가 봐도 늘 신통치 않았다.

나오미가 다른 미용실에서 삭발을 하고 온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었다. 그날은 그 애의 생일이었고, 나는 성대하진 않아도 조그만 생일파티를 열어줄 참이었다. 어렵게 저녁 시간을 비워 나오미와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오후 여섯 시 삼십분 즈음, 현관문이 열렸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나는 아주 짧은 순간 그 애를 알아보지 못했다. 웬 민둥민둥한 머리를 한 애가 다 있지, 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오미를 알아보고 말 그대로 몸이 굳었다. 나오미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 애는 내 키에 벌서 근접한 상태였다. 나는 나오미의 뺨을 때렸다. 아이들은 놀라 입을 다물었고, 나오미는 나를 노려보다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 이후로 나는 나오미가 머리를 조금이라도 자라게 내버려 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새벽 네 시 반, 알람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위로 어둠이 비집고 들어온다. 적막이 흐르는 스무 평짜리 집안을 나는 가로지른다. 한쪽 안경테가 찌그러진 눈앞으로 기울어진 세상이 내다보인다. 베란다 창을 활짝 열어젖힌다. 열린 창 사이로 바람이 무람없이 들이친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는다. 공기가 차갑고 쓰다. 숨을 몸 안에 오래 묵힌다. 삼킨다. 방바닥이 뜨뜻미지근하다. 엊저녁에 미리 씻어둔 쌀이 생각나 부엌으로 향한다.

밥을 안치고 식탁 한 귀퉁이에 올려놓은 전단지 뭉치를 집어 든다. 새벽에 한 번, 오후 저녁때 한 번, 그렇게 총 두 번 실종자 수색 전단지를 돌린다. 거리 전봇대, 상가 건물,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 인근 아파트 안내 게시판에 붙이고 거리에 서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준다. 혹시 보시면 꼭 좀 연락 부탁드린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사람들은 매일 그러한 일과를 반복하는 내게 질린 듯 보인다. 싫은 소리를 하던 지하철 사회복무요원도, 상가 사람들도 어느 날부턴 그건 그렇고, 하며 내게 일상적인 대화를 건다. 아직 내겐 일상이 아닌 재난이 진행 중인데도. 마치 나오미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처럼 구는 그들의 태도가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대화 끝에 꼭 덧붙였다. 나오미는 꼭 돌아올 거라고. 그들은 동정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그 일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가 아침을 먹는다. 그리곤 식탁 의자에 말을 건다. 오늘은 뭘 했느냐고, 언제 일어나 무슨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느냐고. 말이 없다. 시무룩해지던 차에 TV가 입을 연다. 온갖 소리를 흉내 낸다. 남녀노소 직업의 구분 없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내던 TV가 문득 시끄러워 나는 닥치라고 한다. 화분은 힘없는 노인의 머리카락처럼 잎을 떨구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말 좀 해보라고 채찍질이라도 하고 싶지만 식물은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그럼 벌이 되지 못한다. 그냥 미친 남자의 발악일 뿐이다. 새삼 나는 그것들에 머리카락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멋지게 잘라줄 수 있는데.

집을 나선다. 아직 해가 뜨기 전, 어스름한 빛줄기가 사선으로 내리비칠 때다. 문을 열 때면 혹시 누가 와있나, 가게 저 멀리서부터 짐작하며 다가선다. 대개 그것은 고양이이거나, 첫차를 타고 돌아온 취객의 그림자인 경우가 많았다. 인근 세븐일레븐 야간 아르바이트생이 나를 보고 인사를 건넨다. 나는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를 받는다.

혹시 나오미 봤니?

이젠 아르바이트생 남자애도 나오미가 누군지 안다. 점주가 말해주었을 것이다. 실종된 옆집 미용실 50대 남자의 딸이라고. 아르바이트생은 못 봤다고 대답한다. 나는 알겠다고, 수고하라며 미용실 앞으로 걸어간다.

일순 멈칫한다. 형체 하나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걸음을 재촉한다. 형체는 점차 윤곽을 가지고 내부를 드러내 보인다. 어제 온 여자다. 자신의 이름도 나오미라고 밝힌. 그녀 가까이서 발을 멈춘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여자는 나를 발견하고는 반갑다고 말을 건넨다. 나는 그녀가 어제 간판을 올려다보았던 것처럼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비니 모자를 쓴 모습이다. 추운가. 나는 짐작할 따름이다. 부끄러운가. 역시 짐작할 뿐. 뭐가 생각나서 왔다고, 자기가 오픈 시간에 제대로 맞춰 온 게 맞냐고 확인한다. 나는 그렇다고 얼버무린다.

미용실 도어록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안의 묵은 공기가 몸을 에워싼다. 여자는 밖이 추웠는데 안이 따듯해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나는 뭐 때문에 다시 왔냐고 묻는다. 그녀는 카운터에 나뒹구는 나오미 전단지를 가리킨다. 무슨 뜻인지 몰라 멍하니 쳐다보는 내게 여자는 언젠가 나오미를 본 적이 있노라 말한다. 구글에서 한국 시를 검색하다 한 웹진에서 나오미의 얼굴을 봤다고. 삭발한 시인은 몇 안 돼서 기억한다며 말을 잇는다.

그러니까 나오미의 시를 읽었다고 한다.

그녀 말대로 나오미는 시 또는 시 비스무리한 걸 썼다. 중학교 3학년 때 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를 가겠다는 걸 뜯어말린 기억이 난다. 그땐 돈이 부족했다. 대학 학비에 버금가는 예고 학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시인이라니. 시인이 얼마나 가난한 골방 철학자인 줄 아느냐고 화를 냈다. 무엇보다 나오미가 이혼한 아내처럼 시만 쓰다 병을 얻어 옥탑방에서 굶어 죽는 건 원치 않았다. 아내는 시를 썼다. 시를 쓰게 된 계기는 단순히 이혼으로 인한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서였고, 이후엔 젊었을 적의 백석과 윤동주가 너무 잘생겨 일종의 ‘덕질’을 하는 것이라 했다. 일체 생계를 위한 일은 하지 않았고, 내가 보낸 생활비로 족족 시집만 사들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해대고 젠체하며 사람들을 현혹하는 게 시인들 같은 부류라고 생각했다. 나는 눈에 보이는 걸 믿는 사람이었다. 주변에서 아무리 전도하고 종교를 권유해도 넘어가지 않았다. 내가 자르면 자르는 대로,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형태를 분명히 하는 헤어 디자인을 그래서 좋아한 거였다.

물질로 남는 것, 내가 재단할 수 있는 것.

그런데 나오미는 삭발을 하고 다녔으므로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거기에 시를 더한다니. 끔찍했다. 나는 그 애의 글쓰기를 일체 금지시켰다. 공책과 노트북을 빼앗았다. 매일 같이 가방 검사를 하고, 수시로 친구들에게 물어 혹시 ‘시’나 ‘소설’ 같은 걸 끼적이진 않는지 확인했다. 나는 정말이지 나오미가 시를 쓰는 게 싫었다. 그런데 나오미의 시를 보았다니.

나는 여자에게로 눈길을 둔다. 여자는 좋은 시였다고 회상한다. 지금도 몇 구절은 외울 수 있다면서 내 앞에서 그 구절을 왼다. 나는 그 시어 하나하나가 서로 낸 구멍으로 엮이며 내 머릿속에서, 나아가 가슴 속에서 터질 듯이 점차 몸집을 부풀리는 것을 느낀다. 나는 그만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자는 멈추지 않는다. 마치 속죄하라며 성경 구절을 외는 목사처럼 나오미의 시를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나는 다가가 그녀의 양어깨를 붙잡고 흔든다. 그만하라고! 소리친다. 말이 끊긴다. 아니, 끊긴 게 아니라 끝난 건지도. 여자는 당황하고 놀란 얼굴로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얼른 두 손을 그녀의 몸에서 뗀다. 미안하다고 속으로 왼다. 그녀는 내게서 조금 떨어지더니 오래된 잡지와 만화책이 가득한 책장 한구석의 의자에 걸터앉는다.

어디서 잃어버렸어요? 딸이요.

여자가 묻는다. 나는 여자를 건너다본다.

저도 모르겠어요.

나는 쓴웃음을 짓는다.

빈소에서 만난 나오미의 여자친구가 떠오른다. 그녀의 말들이 헤어스프레이처럼 뇌를 그날 그 순간으로 굳힌다. 검정고시를 본 나오미는 백화점 고객 콜센터에 취직했다. 나를 보며 아빠 말대로 돈을 벌어야겠다고, 그것도 아주 많이, 라고 말하던 장면이 선명하다. 잡을 머리채도 없는 나오미였다. 대전으로 내려간 그 애는 제 여자친구와 함께 오피스텔 하나를 얻어 함께 살았다.

나오미는 콜센터에서 아주 열심히 일했다. 온갖 진상들을 상대하면서도, 욕을 먹고 싫은 소리를 들으면서도 일을 놓지 않았다.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늘 시나 노래 가사 따위를 썼다고 한다. 나오미의 직장동료에 따르면 진상손님에게 자신의 시를 불경처럼 조용히 읊어주었다고도 했다. 그래서 미친년 소릴 가장 많이 들었다고도. 그래서 회사 내에서 롯데 시인이라고 불렸다고도. 하지만 등단할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는지, 늘 본심에 오르거나 작은 공모전에서 상을 타거나 독립문예지에 실리는 정도에 그쳤다고 한다. 물론 나는 그 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 애는 콜센터에서 반년 정도를 근무하다가 학점은행제 사이버대학교 심리학과를 전공했다. 왜 중학교 때부터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문예창작과가 아니었는지 나는 의아했다. 나오미의 대학 동기는 언젠가 시를 쓴다고 그 애가 말했을 때, 기술보단 사람 마음을 이해하는 게 시를 쓰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기 때문이라고 들었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나오미의 마음을 얼마나 잘 알았는지, 얼마만큼 이해했는지 헤아려보았다. 감히 헤아릴 수가 없었다. 너무 깊고 어두웠다.

나는 흰 천 아래 누인 나오미를 기억한다. 꼭 머리를 깎은 후 채 감기 전인 손님을 보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든 생각은 머리와 키가 ‘그새’ 자랐다는 것이었다. 나오미의 머리는 길었다. 삭발하기 전보다 훨씬 길었다. 구불구불, 머리에 컬을 넣은 채 복부까지 닿는 머리칼은 축축하고 부드러웠다. 머리카락은 제일 마지막까지 나오미를 양분 삼아 자랐을 터였다. 머리카락은 사람의 신체부위 중 제일 마지막까지 자란다고 한다. 나는 그 순간 머리카락이 움찔하며 자라나는 걸 봤다. 틀림없었다.

참 좋았는데. 나오미, 그러니까 당신의 나오미만이 할 수 있는 언어였는데.

나는 그녀와 떨어져 앉은 채 거울로 시선을 옮긴다. 삭발한 여자가 눈에 들어온다. 내가 깎은 머리다. 그 머리는 아직 잘 있다. 나는 그녀가 죽어 누워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때 즈음엔 머리가 얼마나 자랐을까. 아니, 병으로 인해 머리가 더이상 자라지도 않을 거고, 자란다고 해도 빠질 터였다. 나는 그녀의 마지막 생장을 엿보았던 목격자였다.

이제 막 햇빛이 기어들기 시작한, 불도 켜지 않은 미용실 내부엔 나와 여자, 그리고 사라진 머리카락들만이 존재한다. 나오미는 없다.

그런데 왜 찾는 거예요.

나는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여자가 숨을 내쉰다.

나오미는, 나오미는 죽었잖아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전단지 뒷면에 자신의 트위터 아이디를 적는다.

나는요. 나오미 시인을 찾으러 왔다가 그녀가 죽은 걸 알게 됐어요. 가슴 아팠는데, 당신도 가슴 아팠어요?

나는 그녀더러 나가라고 한다.

가세요. 그리고 다신 오지 마시고요.

시인이라니. 당치 않다고 생각하며 미용실 문을 닫은 뒤 잠근다.

 

나오미는 죽었다. 그 생각을 하며 미용실 문을 잠그고 나온다. 종일 손님들을 받은 탓에 어깨와 팔이 뻐근하다. 나는 나오미는 죽었다, 고 되뇐다. 여자가 한 말이 종일 머릿속에서 맴을 돈다. 손님들의 머리카락을 닥치는 대로 잘랐다. 그렇게 하면 분명한 형태로 사라져버릴 것처럼 굴었다.

거리를 걸으면서 나오미의 실종 수색 전단지가 보이는 족족 떼기 시작한다. 상가 건물,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 등등. 길을 걷는다. 땅을 밟는다는 감각도 없이, 그저 몸을 어떻게든 다음 걸음에 욱여넣는다. 전단지를 꼼꼼히 보이지 않는 곳까지 붙인 탓에 찾아 떼는 것도 애를 먹는다. 나는 걸음을 재촉한다. 가게로부터, 집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지는지도 알지 못한 채.

어느덧 다리 근처 횡단보도에 다다른다. 나는 다리를 후들후들 떨면서도 걷기를 멈추지 않는다. 다리는 길다. 하염없이 길다. 분명 끝이 보이긴 하는데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으니 두 팔이라도 움직여야 한다. 몸을 끌고 가는 형식이다. 기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난간에 매달리는 꼴이다. 난간을 붙잡고 다리 아래를 쳐다본다. 물이 흘러간다. 물결은 정갈히 왁스를 발라 넘긴 중년 남자의 머릿결 같았다.

뛰어내릴까. 나오미가 돌아오지 않으면 직접 찾으러 가는 수밖에 없잖아. 그런 생각에 잠긴다. 주위를 둘러본다. 차가 막혀 보는 눈이 많다. 관심을 끌고 싶진 않다. 누군가 경찰을 부를지도 모른다.

전화기 한 대가 눈에 띈다. 생명을 살리는 전화기라고 이름 붙여진 것이었다. 녹이 슬고 선이 싯누렇게 바랜 모양새다. 나는 그곳으로 발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움직인다. 전화기를 붙잡는다. 나오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든 건, 나오미가 자살예방 콜센터에서도 일한 적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때문이다. 백화점 콜센터에서의 경력과 사이버대학 심리학 전공 학력을 인정받은 ‘롯데 시인’은 공공기관에 취직할 수 있다.

‘ 그 애는 그곳에서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목소리로 목도 했겠지.

나오미의 목소리에 반해 무작정 그녀와 사귀고 싶다고 주소를 묻는 남자도 있었다고 들었다. 그 애는 집으로 돌아와 깔깔거리며 여자친구에게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수다스럽게 늘어놓았을 것이다. 오늘은 어떤 미친 연놈들이 있었고, 어떤 불쌍한 사람이 있었고, 이런저런 얘기들. 더러 울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통화 버튼을 길게 눌렀다 뗀다. 신호음이 들린다.

여보세요?

조심스레 묻는다. 대답이 없다. 통화 버튼과 취소 버튼을 몇 번이고 연달아 누른다. 하지만 연결이 되지 않는다. 나는 전화기 줄을 길게 늘였다가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찰나, 다리 난간에 적힌 시 문구가 시야 한 귀퉁이에 자리한다. 그러나 아무런 마음의 변화가 일지 않는다. 시란 역시 쓸모가 없다. 시인이 되겠다고 하더니, 이런 문구 비슷한 거나 쓰는 나오미를 떠올려 보면 울화가 치민다. 나는 난간의 스티커를 죄다 떼어버린다. 죽 뜯겨나가는 다리 난간의 자살방지 시 문구들은 내 두 손 안에서 갈가리 찢긴다.

그 순간이다. 누가 신고한 모양인지 저 멀리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울려 퍼진다. 나는 재빨리 도망친다. 엎어지고 뛰고, 두 손으로 몸을 끌다 네 발로 걷다 다시 뛰기를 반복한다.

퍼뜩 머리를 든다. 다리를 지나 서울 이편으로 다시 도착해 있다. 나는 벤치에 쓰러지다시피 한다. 지나가는 사람 몇이 나를 곁눈질한다. 혀끝이 짭짤하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뒤섞인 게 잔뜩 흘러나온 탓이다.

나는 아내에게 연락한다. 아내는 빈소에 오지 않았다. 빈소엔 나오미의 친구들과 직장 상사, 그리고 이름 모를 여자와 남자들이 잔뜩 왔다. 그들은 하나 같이 술을 마시고 취해 나오미의 이름을 언급했다. 개중에는 시를 쓰는 동호회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내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롯데 시인의 시 낭독회 비슷한 것을 열기도 했다. 나는 가만히 그것을 듣고 있었다. 잘 쓴 건가, 싶으면 이상했고, 이상하다, 싶으면 잘 쓴 것 같기도 한 구절들 일색이었다. 사진 속 나오미는 머리가 길었다. 입관할 때 나는 나오미의 여자친구와 함께 들어갔다. 염습을 마친 장의사 앞에서 나는 머리카락을 다듬어도 되느냐고 물었다.

머리카락을요? 이미 화장이 다 끝난 건데요.

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가위를 빌려달라고 했다. 내 옆에 서 있던 나오미의 몇 번째인지 모를 여자친구가 나를 미용사라고 소개했다. 장례지도사들은 바깥으로 나갔다. 나는 조심스레 희고 고운 화장을 한 나오미의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렸다. 그리고선 손가락을 빗 삼아 자르기 시작했다. 푸석푸석한 부분은 잘라내고, 가슴까지 올 정도의 길이로 다듬었다. 그 애의 여자친구는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 자르는데 시끄럽다며 화를 냈다. 나는 그녀한테서 머리핀을 건네받았다. 핀으로 머리카락을 고정한 채 숱을 치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는 울면서 가위를 놀린 탓에 그 애의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애의 여자친구가 나를 데리고 나가고, 장례지도사들이 뒤늦게 수습을 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망자에게 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과하고 싶지 않았다. 제멋대로 삭발을 하고 온 날부터, 내가 뺨을 때린 날부터 사과는 이미 늦은 것이었다. 나는 관에 들어간 채로 재가 되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나오미가 타올랐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머리에서 피가 흘러요.

어떤 남자가 내게 말을 건다.

괜찮아요.

구급차를 불러야 할 것 같다는 지나가는 행인들의 말에 나는 손사래를 친다. 정말 괜찮다고, 죽지는 않을 거라고 대답하면서.

나는 여전히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본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나오미 클럽으로 걸음을 옮긴다. 도착해서는 정수기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뒤 카운터로 가 앉는다. 몸이 피곤하고 지치다 못해 나른하다. 카운터를 눈으로 훑으니 일본인 나오미가 적어놓고 간 트위터 아이디가 보인다. 나는 핸드폰으로 트위터 어플을 깔고 가입한 후 그 아이디를 검색해본다. 삭발을 했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보이고, 한국에 와서 시인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는 말도 있다. 나는 그녀가 올린 나오미의 시 한 편을 천천히 읽는다. 수십 번을 되뇐다. 답글을 단다. 이윽고 나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진다. 몸이 푹신하다.

나오미를 찾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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