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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아스텔라 길

2013.03.15 22:1003.15

아스텔라 길
 
승강기의 이름은 '아스텔라 길'이었다. 리라는 그 낡은 승강기에 몸을 실었다. 레버를 돌려 자동으로는 움직이지도 않는 난간을 내리고, 귀퉁이가 깨진 버튼을 눌렀다. 거친 진동과 함께 승강기가 까마득하게 솟은 수직통로를 오르기 시작했다. 지면으로 나가는 승강기 중 하나였다. 지상자기철도나 선적항으로 통하는 거대 승강기들이야 장거리 교통 및 운송의 허브로 기능하고 있다지만, 후미진 골목 한구석에 위치한 이 승강기의 상황은 그런 잘 나가는 물건들과는 영 딴판이었다. 그녀가 아는 바로, 지난 삼 년 간 그 승강기를 이용한 고객은 단 한 명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고객인 리라는 주말마다 승강기를 탔다. 사방에 벽이라곤 없고 난간 뼈대뿐이었다.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녹슬어 가는 난간에 지친 몸을 기대고 있노라면 자신이 어느 시대 사람인지 헷갈리게 된다. 그녀는 이그니 행성 지하도시의 24세기를 살고 있는데, 주변 기계장치는 하나같이 지구에서 20세기에나 쓰긴 썼을까 싶은 물건들뿐이었다. 그녀가 사는 밑바닥 중 밑바닥 지하동네에서 지면까지는 천 미터쯤을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이 구닥다리 승강기로는 그 거리를 올라가는 데 15분은 걸렸다. 철판 바닥에 주저앉아 사나운 운세를 곱씹기에는 딱 적당한 시간이었다.
 
보이는 거라고는 돈밖에 없지, 땅강아지 같은 놈들. 낭만이란 걸 몰라. 쉽지 않을 일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상상한 이상이었다. 죽을 고생을 다 해 가며 따낸 자격증은 결국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들을 설득하는 건 처음부터 무리한 일이었는지도 몰랐다. 주말마다 타 온 승강기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오늘의 승강기 여행은 리라에게 일상보다는 도피의 상징인 것처럼 느껴졌다. 우울감이 그녀를 덮엇다. 15분간을 꼼짝도 못 하고 이러고 있어야 할 것이다. 빨리 시간이 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다리다 보면 결국은 벨이 울릴 것이다.
 
벨 소리가 났다. 15분 후가 아니라, 바로 지금.
리라는 화들짝 일어섰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그 소리의 의미는 분명했다. 쇠 긁는 마찰음과 함께, 승강기가 차츰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승강기가 올라가다 멈춰설 이유라야 다른 게 있을 수가 없다. 표시등을 확인해 봤다. 800. 지하 팔백 미터 지점에서 승강기를 기다리는 승객이 있는 것이다. 리라는 난간을 등지고 뒤로 물러섰다. 승강기가 완전히 정지했다. 리라는 마른침을 삼켰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남자가 달려들어왔다. 리라는 꺅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남자를 피했다. 남자는 난간에 부딪히더니 죽을 듯이 끙끙거렸다. 놀란 눈치였다.
 
"이, 이 씨팔, 이거 대체 뭐야?"
 
남자는 위를 한번 바라보고, 끝간 데 없는 어둠을 보고, 다시 난간 아래를 보고, 무저갱 같은 암흑을 봤다. 그러더니 한층 더 울상이 되어 소리질렀다.
 
"대체 뭐냐고?"
 
그러고는 다시 주변을 사납게 경계하고, 아주 난리였다. 리라는 주저앉아서 그 촌극을 한참이나 멍하게 바라보다가, 간신히 상황을 이해했다. 그러니까 이 승객은, 승객이되 승객이 아닌 것이다. 승강기인 줄도 모르고 들어온 것 같다.
 
"여기 승강기예요."
"뭐?" 남자는 천정을 바라봤다. 승강기 케이블에 남자의 시선이 꽂혔다.
"승강기. 엘리베이터라고요. 지하 천 미터부터 지상까지 가요. 조금 낡기는 했지만."
"조금? 조금이라고? 당장이라도 줄 뚝 끊어질 것 같이 생겼는데 이게 조금 낡았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당장이라도 뚝 부러질 것 같은' 난간에서 재빨리 물러났다. 리라는 슬슬 약이 올랐다. 팔짱을 끼고 쏘아붙였다.
 
"이봐요. 당신 뭐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는데, 타기 싫으면 도로 나가요. 저 올라가야 되거든요?"
 
그러자 남자는 자신이 들어온 문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얼굴을 바꿨다. 굉장히 안쓰러운 몰골로.
 
"아니... 아가씨, 그건 안 돼."
 
이 인간이?
 
"보자보자하니까 무슨 헛소리야? 나가라니까요!"
"그게, 지금 쫓기는 중이거든."
"네?"
"저쪽으루 도로 나가면 난 보나마나 황천 구경할 걸. 도망가다가 막다른 데서 버튼 같지도 않은 걸 누르니까 문 같지도 않은 게 휙 열려서 무작정 들어온 거야."
 
지하 팔백 미터는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동네야? 일천 미터 못지 않은 쓰레기더미인 것 같다.
 
"뭐, 그럼. 불만 없는 걸로 알고."
 
리라는 상승 버튼을 눌렀다. 둔한 소리와 함께 승강기가 움직였다.
 
 
 
 
 
 
 
 
"이 위에 뭐가 있는데?"
 
눈앞의 걱정이 해소되자, 남자의 관심은 다시 낡은 난간으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남자는 승강기 한가운데에 앉아서 움직일 생각이라곤 전혀 안 했다.
 
"가서 보면 알아요. 그냥 지상이에요."
"뭐? 지상?"
 
남자의 얼굴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표정을 해석해 보면 '도망치고 보니 범 아가리 속' 쯤이 될 것이다.
 
"미쳤어?, 잠깐, 보호복은? 보호복 어딨어?"
"위에 있어요. 잡아먹는 거 아니니까 걱정 마시죠."
 
남자가 걱정 그만둘 거라는 기대는 리라조차 하지 않았다. 지상이라는 단어는 불안감을 돋우면 돋웠지 가라앉힐 리는 없다. 산소가 극히 희박한 대기, 사람을 죽이는 아스텔라의 자외선. 나가려면 당연히 호흡기 달린 보호복을 입어야 한다. 남자는 잘 들리지 않는 소리로 뭐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리라는 팔짱을 낀 채 그냥 바라봤다. 어휴, 맘대로 해봐. 승강기는 올라간다.
 
경황중이라 몰랐는데, 아주 멀끔하게 차려입은 사내였다. 서른쯤일까, 위아래로 정장에 목장식까지 둘렀다. 추격을 뿌리치느라 좀 찢어지고 뜯겨나가서 문제였지만.
 
"지상보다요, 팔백 미터에는 뭐가 있는데요?"
"응?"
"그 차림으로 죽네마네하면서 도망다닐 이유가 뭐냐구요."
 
남자는 리라를 바라봤다.
 
"이유가 달리 있어? 돈이지."
"사기라도 쳤어요? 아님 도박? 아하, 옷차림 보니까 둘 다 그럴 듯한데?"
"무슨 소리야? 합법적인 거야. 사업이 잘 안 풀려서 이런 신세가 되긴 했어도."
"사업?"
 
남자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벌떡 일어나선 리라에게 다가왔다.
 
"그래, 사업! 듣고 싶어? 말하자면 종합 컨설턴트 같은 거지. 고객의 인적 사항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객에게 현재 상태에 대한 조언을 해 주거든. 예를 들어 재무 상담 같은 것 말이야. 투자 계획을 세운다든가. 좀더 일반적인 장기적 상담도 가능해. 고객의 현재 직종이 적합한가? 합리적인 결혼인가? 하는 것들 말이야."
 
리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당신, 그렇게 유식한 사람처럼은 안 보이는데요." 즉 사기꾼 아니냐는 뜻이다. 남자는 그런 걸 눈치챌 위인은 아니었다.
"걱정 마, 걱정 마. 내가 직접 조언하는 게 아냐. 특수 비법 알고리즘으로 계산하는 거라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이란 말이야. 지구 놈들, 거기서만 이걸 독점적으로 공유하고 있더군. 이래선 안 된다 싶어서, 고생고생하면서 몰래 빼왔지. 지구에서 이그니까지, 4.5광년을 건너온 비밀 정보라고."
 
남자는 그러면서 목걸이에 달린 조그만 칩을 들어 보였다. 리라는 이 남자가 사기꾼이라고 확신했다.
 
"거짓말."
"의심하기 전에 한번 체험이나 해 보지 그래? 필요한 인적 사항 데이터는 간단해. 이름, 출생일, 출생지. 거기에 오늘 일자만 더하면 되지. 아가씨는 이름이 뭐지?"
"어...... 그게 다예요?"
"그럼."
"그것만 갖고 투자 계획이 나온다고요?"
"그렇다니까."
 
사기꾼. 개인정보 팔아먹는 사기꾼이야. 리라는 이런 게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름이랑 생일 정도뿐이라니. 그 정도 얘기쯤은 못해줄 것도 없다. ID넘버도 홍채 패턴도 염기서열도 넘겨줄 필요 없다면야.
 
"지구력(歷) 으로 말이죠?"
"정확해."
"리라. 2353년 9월 2일. 이그니 자치령 밀키웨이 시 지하 365층."
"좋아. 그리고 오늘 날짜. 오늘은 7월 7일이니까....."
 
홀로그램 자판을 띄워 그 내용을 입력하면서, 남자가 물었다.
 
"최하층이라니, 하층부 토박이인 거야, 그럼?"
"그것도 데이터 수집이에요?"
"아니, 그냥 궁금해서."
 
한숨.
 
"네, 토박이 맞아요."
"고생 좀 했겠군. 거기 순 빈민굴 아냐?"
 
리라는 다시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튼 예의라곤 털끝만큼도 모르는 인간이었다.
 
"빈민굴이든 뭐든, 잘 먹고 잘 배우고 잘 자랐으니까 쓸데없는 걱정 마시죠. 전 24년간 330층 위는 밟아 본 적도 없지만 교사 자격증을 땄어요. 당신은 투자자들한테 쫓겨 다디는 신세잖아요? 자기 걱정부터 하는 게 어때요?"
"자리만 잡고 나면 대성공할 거야. 그보다 방금 뭐랬어? 330층 위는 안 가봤다고?"
"그런데요."
"지금 올라가고 있잖아?"
"이 승강기는 도시로 통하는 게 아니니까요."
"젠장. 지상이랬지."
 
남자는 다시 난간께로 다가갔다. 위를 머얼리 올려다보고, 다시 아래를 쭈욱 내려다봤다. 리라는 아무 의미 없는 그 반복 동작이 참 한심해 보였다.
 
"아가씨, 지상에는 대체 왜 가는데? 거기 뭐가 있어? 난 지상이라면 밀수 밀매 같은 것밖에 안 떠올라."
"하늘이 있죠."
"뭐?"
 
'하늘'이라는 단어를 '똥'이라고 치환하더라도 남자의 표정은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늘이요. 지금 밀키웨이 시의 지상은 밤이에요. 밤은 한번에 24일간 계속되죠. 오늘은 12일째니까, 깊은 한밤중일 거예요. 밤하늘을 본 적 있어요?"
"시커먼 하늘 들여다보자고 지상까지 갈 리가 있나."
"시커멓지 않아요."
 
남자는 이제 리라를 정신 나간 년으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한줌도 안 되는 우주과학자들이라면 모를까, 평범한 이그니 행성의 주민들은 평생 동안 한 번도 밤하늘을 보지 않으니까. 혹독한 항성광, 우주선(cosmic ray)을 피하기 위해 주거 지역은 모두 지하 백 미터 아래에 위치한다. 그나마 지상에 위치한 자기철로나 선적항도 창문이라곤 없이 콘크리트로 밀봉되어 있다. 다들 땅 밑에서 나서 땅 밑에서 죽어갈 뿐이다. 리라는 그걸 이해할 수 없었다. 백 년 전 이그니에 지하도시를 건설하면서, 사람들은 우주시대가 활짝 열렸다고들 했다. 거짓말이었다. 우주시대의 개막이란 건 허울 좋은 미명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우주를 잊어 가는 시대가 어떻게 우주시대야?
 
"밤하늘은 검지 않아요. 별이 있고 은하수가 있어요. 수만 개의 별들이 천구상에 촘촘히 박혀 빛을 발하고 있다구요."
"아니, 별이 있기야 있겠지만,"
"뽀얗게 은하수가 내리깔리고, 그 위를 달 치니스가 빠르게 내달려요. 각속도가 분당 1도 가량이죠.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바라보면 움직이는 게 눈으로도 보여요. 그리고 또,"
 
말을 이으려다가, 리라는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말할 생각이 싹 가셨다.
 
"전혀 이해를 못 하는군요."
"당연히 못 하지! 내가 정상이고 아가씨가 머리가 어떻게 된 거니까."
 
빌어먹을. 리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교장이랑 똑같은 이야기를 하네요."
"뭐?"
"대판 다투고 오는 길이에요. 현장학습안을 냈거든요. 지상에 올라가서 밤하늘을 보는 수업이요. 헛소리 집어치우라더군요."
"헛소리 맞잖아. 내가 다 기가 차네."
"어째서요?"
"어째서냐고? 아가씨 말대로 거기가 좀 보기 예쁘다고 치자. 그래서? 애들을 왜 거기 데려가? 밖은 지옥이야. 어디 한 군데 잘못되면 죽어. 어떤 정신나간 학부모가 그걸 두고 보겠어? 학생 죽이는 선생은 선생 자격도 없어. 실격이야."
"자격이요?" 리라는 눈앞이 흐려지는 걸 느끼고 놀랐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지만 터져나온 울분은 멈추지 않았다.
 
"자격? 자격이 없는 건 우리 세대 모두예요. 다들 두더지처럼 땅 밑에 웅크려서 질식해 가고 있는데? 개발, 그래, 개발이라면서, 도시 공간 확보라면서 땅 파들어갈 궁리만 하고 있죠. 개척도시라면서? 우주시대라면서? 개척은 다 어디 갔는데? 우주가 뭔지는 알아? 이렇게 그냥 처박혀서 썩어갈 거야? 애들한테 바보 천치같이 파묻혀서 죽어가는 법 가르치면, 그러면 선생 자격 있는 거야?"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리라의 곁에 다가와 앉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리라는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리라는 웅크린 채 울었다.
 
 
 
 
 
 
더 울기도 조금 민망해졌을 때쯤, 남자가 말을 꺼냈다.
 
"분석 결과 나왔어."
 
리라는 고개를 들었다.
 
"아가씨, 처녀네."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다.
 
"뭐, 무, 그거 무슨."
"응?"
"이름 생일 고향으로 그걸 맞춘다구요?"
 
남자는 리라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윽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 이런. 그 뜻이 아니야. '처녀'란 건 말하자면, 음, 그런 거야. 분석 결과의 카테고리랄까. 카테고리 이름이 처녀야."
"아, 그, 그래요?"
"그런데 얼굴 빨개지는 거 보니 처녀 맞나 보네."
 
이럴 수가.
 
"됐어요. 안 들을 거야."
"뭐? 기껏 해 놓고 어째서?"
"쫓기는 신세잖아요? 보나마나 결과값이 틀렸겠지. 알고리즘이 틀렸든지, 당신이 시스템 구축을 뭔가 잘못한 거든지, 아무튼 예측한 대로 되질 않은 거예요. 그러니까 사업이 망한 거고. 잘못된 부분 있어요?"
"망하지 않았어."
"결과가 틀렸다는 얘긴 정확한가 보네요. 애초에 이상해, 말이 안 돼요. 그런 쓸데없는 데이터로 어떻게 투자계획을 생성해요?"
"다 체계가 있다니까. 지구에서 오랜 시간 동안 검증된 거야. 이거 역사가 수백 년도 넘는다고. 지금만 해도 맞췄잖아. 아가씨 처녀인 거."
"이 인간이 진짜."
 
놀아난 기분이었다. 리라는 입술을 비죽거렸다. 무슨 카테고리 이름이 그 따위야. 처녀? 남자한테도 처녀라고 그럴 거야?
 
"그쪽은 어떤 카테고리인데요?"
"나? 나는 '황소'지." 하긴 소처럼 우둔한 사람이긴 했다.
"이름들이 다 뭐 그래요?"
"글쎄, 처음부터 알고리즘상에 이렇게 정해져 있더라고. 더 이상한 것도 있어. '쌍둥이' 라나. 허 참."
 
리라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이상했다. "잠깐," 의심이 잘 배열되어 논리로 변하고 가설이 되었다. "그거 설마." 리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잘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그게 아마.
 
"혹시 말이에요. 다른 카테고리는 이런 거 있지 않아요?"
"응?"
"물병. 물고기. 양. 황소. 그리고 쌍둥이랑...... 다음이 뭐더라. 그, 맞아. 게. 사자. 그 다음이 처녀."
 
바라보니 남자는 굉장히 볼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맞나 보군. 리라는 나머지 네 개의 카테고리도 기억해 냈다. 천칭, 전갈, 사수, 염소. 그렇게 총 12개의 카테고리가 있다.
 
"잠깐, 잠깐...... 아가씨!"
"제 이름 말해 줬잖아요."
"이런 젠장. 리라 씨. 어떻게 안 거야? 이 알고리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라도 있어? 응?"
"안다기보다...... 그 카테고리명이 어디서 왔는지는 알겠네요."
"세상에, 하느님!"
 
하늘이라곤 꼴도 보기 싫다던 남자가 이제 하늘님을 찾고 있었다. 리라는 머리를 좀 긁었다.
 
"아가씨, 리라 씨. 나 좀 도와주지 않겠어? 지구에서 잘 맞던 시스템이 이그니에서 안 돌아가는 이유라야 하나밖에 없어. 뭔가 조정 작업이 필요한 거야. 하지만 조정을 하려 해도 도저히 불가능했지. 빌어먹을 알고리즘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하, 하지만 그것뿐인데요. 저도 그런 알고리즘이 있다는 건 당신한테 처음 들었어요. 제가 아는 건 이름밖에."
"어떻게든 되겠지! 그 이름, 분류명은 대체 뭐야? 뜻이 뭐지?"
"아니, 어디서 왔다기보다...."
 
리라는 고개를 들어 표시등을 보았다. 34.
 
"당신 이름이 뭐죠?"
"알테어인데, 왜."
 
리라는 푸웁 하고 웃음을 뿜었다.
 
"참 내. 당신 이름 뜻은 알아요?"
"뭐? 이름에 뜻이 어딨어?"
 
벨이 울렸다. 엘리베이터가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끼익거리는 소리가 통로를 울렸다. 리라는 웃으며 난간으로 다가섰다. 아래쪽은 까마득한 어둠이되 위쪽은 그렇지 않다. 이제 지상이었다. 리라는 남자의 손을 잡았다. 문 쪽으로 끌었다.
 
"알테어 씨, 기대하세요. 별이 얼마나 멋진지 보여드릴 테니까."
 
 
 
 
승강기와 이어져 지상에 위치한 건축물에서, 알테어가 작은 탄성을 냈다. 보호복이 필요없음을 직접 확인했으므로. 공기는 맑았고 산소 농도도 완벽했다.
 
"이런 데 초소가 있었다니. 누가 이런 건물을 지은 거야? 그것도 지상에?"
"초소가 아니라 천문대예요."
"천, 뭐?"
 
리라는 알테어의 손을 잡고 천문대 한쪽의 방으로 이끌었다. 큰 반구형 방이었다. 벽에는 온통 검은칠을 했다. 둘은 방의 한가운데에 섰다.
 
"자, 앉아 봐요."
"뭐?"
"앉아서 위를 봐요."
 
알테어는 좀 못마땅한 기분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대체 뭐야. 알고리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도 좋고 예쁘기도 하지만, 이 여자, 확실히 미쳤어. 바닥은 먼지 없이 깔끔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리라가 바닥 한구석을 조물거리자 숨은 스위치가 드러났다. 그녀가 그걸 눌렀다.
 
깜깜해졌다.
 
"이봐, 리라 씨. 이거 대체."
"위를 보라니까요."
 
보았다. 거기에.. 별이 있었다.
 
수십, 아니 수백? 아니었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며 수천 개의 별이 검은 천정에 돋아났다. 온 시야에 가득히 들어와, 어지러웠다. 알테어는 어찌할까 하다 리라가 하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리라 옆에 누웠다. 더욱 넓어진 시야가, 여전히 별로 그득했다.
 
"세상에."
"어때요?"
"올라올 만한데. 아름다워. 밤하늘."
 
리라는 큭큭대더니,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건 그냥 모형이거든요! 검은 장막에 별구멍 뚫어 놓은 것뿐인걸요." 알테어의 당황을 외면한 채, 리라는 플라네타리움의 스위치를 다시 조작했다. 검은 천구가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별들을 잇는 선이 그어졌다. 천구를 가로지를 점선이 생겨났다.
 
"물병, 물고기, 양, 황소... 모두 별자리 이름이에요. 저기, 저 점선은... 지구에서 볼 때 해가 지나는 경로죠. 아스텔라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선' 말이에요." 리라는 그러면서 다시 스위치를 조작했다. 점선 위에 있던 노란 원의 둘레에 텍스트가 덧씌워졌다. Sun.
 
"황도, 그러니까 '선'이 천구 위를 달리는 길에, 밤에는 별이 뜨죠. 그 길을 따라 별자리 열두 개가 늘어서 있고요. 그 이름이 각각 물병, 물고기, 양."
"이런. 역시 지구 기준으로 만들어진 알고리즘이었어. 그런 얘기지?"
"맞아요. 지구에서 선을 보는 시점에서 만들어 놓은 카테고리예요. 이그니에서 아스텔라를 보는 시점으로 바꾸면...... 이렇게 되죠." 천구를 가로지르는 점선이 사라지고 또다른 경로가 밝게 드러났다.
 
"지구에 선의 길이 있다면 이그니에는 아스텔라 길이 있겠죠. 이게 아스텔라 길이에요. 음, 오늘의 별자리를 계산해 보면, 자.... 여기." 리라가 천구 한쪽을 가리키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리라 씨, 뭐야?"
"이런 우연이. 저쪽의 별들이 삼각형을 이루죠?" 지구인들이‘여름의 대삼각형’이라 부르는 형상이 천구상에 표시됐다. "이쪽, 오늘의 별자리는 직녀성이 들어간 거문고(Lyra)자리. 며칠 뒤에는 견우성이 들어간 독수리자리로 옮겨가겠네요."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그럼 이건 어때요? 견우성은 또다른 이름을 가고 있어요. 이름하여 바로 알테어(Altair)."
 
알테어는 대답하지 않았다. 입을 열지 못하는 것 같다. 이제 천문학 선생은 히죽 웃고, 현장학습 중인 학생을 좀더 놀라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둘의 눈이 어둠에 완전히 익숙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학생," 스위치를 다시 꾸욱 놀렀다. "선생님이 더 신기한 걸 보여줄게요." 우우웅하는 소리와 함께 천구가 조각나고 흔들렸다. 플라네타리움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 뒤에는 투명한 합성수지 돔이 있고, 그리고 그 너머에는......
 
하늘과 별과 우주.
 
만 갈래 별빛이 폭포가 되어 둘의 눈에 흘러넘쳤다. 하늘, 광막하게 펼쳐진 공간, 그곳을 부유하는 수백 수천만 세계들이 그곳이 있었다. 별의 물길들이 한데 모여 우유빛으로 빛나는 은하수. 별의 강을 따라 흘러가는 달 치니스. 지난 삼 년 간 주말마다 보아 온 광경이었으나, 리라는 여전히 그 광경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우주를 잊어가는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그저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 한 번, 생애 단 한 번이라도 어둠 속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헤아려 본 이라면 어찌 그 광경을 잊을 수 있을까. 둘은 말하지 않았다. 누운 채로 하늘을 바라보고 바라보다가, 치니스가 두 뼘만큼이나 기울었을 때쯤이 되어서야 알테어가 입을 열었다.
 
"저기, 궁금한 게 생겼는데 말야."
"네?"
"알고리즘 말야. 결국 별이 사람의 운세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지?"
리라는 머리를 긁었다.
"글쎄요. 천천히 알아봐야죠."
 
그뿐이었다. 알테어는 대답 없이 위만 보았다. 리라는 미소지으며 아스텔라 길을, 그 위에 놓인 리라를 응시했다. 아스텔라는 곧 은하수를 건너 견우성의 위치로 향할 것이다. 칠월 칠석과 두 별에 관련된 오래된 전설을 떠올려 보자면, 아스텔라는 이어질 수 없는 두 남녀 사이를 잇는 전령 역할을 하는 셈이다. 리라는 웃었다. 그녀는 이제 선조들이 그 승강기의 이름을 아스텔라 길이라고 붙인 이유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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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 단편 우주종말동아리3 노유 2007.07.27 0
단편 아스텔라 길 빛옥 2013.03.15 0
1835 단편 [뱀파이어] 화이트실루엣1 salamanders 2006.03.30 0
1834 단편 하나가 둘이다12 dcdc 2009.07.28 0
1833 단편 심야자판기 moodern 2004.08.27 0
1832 단편 [번역]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 마이크 레스닉1 이형진 2011.02.16 0
1831 단편 우리들의 서울로 놀러 오세요1 명비 2004.08.19 0
1830 단편 검은 양초1 satia 2006.06.08 0
1829 단편 피를 먹는 기계 사이클론 2012.12.30 0
1828 단편 바다로 가는 모든 길2 아르하 2003.08.12 0
1827 단편 [심사제외]가스통 할배2 니그라토 2014.01.24 0
1826 단편 [꽁트?]어느 연구실의 풍경 - 카이미라2 미소짓는독사 2006.10.18 0
1825 단편 잘 가시오, 외계인이여.3 쿠키 2006.10.25 0
1824 단편 [탄생] 6시간 21분 32초 헤르만 2012.03.04 0
1823 단편 무드셀라 증후군4 제퍼리 킴 2012.02.21 0
1822 단편 암브와트: 영혼의 상자5 도토루 2011.03.2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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