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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히키코모리 방콕기

2011.05.06 23:5105.06

히키코모리 방콕기



난 고등학교 졸업식 날이 좋았다.
더 이상 날 괴롭히던 놈들을 보지 않아도 된다. 엄격한 아비는 오지 않았고, 어미만이 졸업식장에서 날 동급생들로부터 지켜주었다. 입 꼬리를 살짝만 올려 사진을 찍었다. 모든 것이 지루했다. 그저 벗어나고만 싶던 날들이 용케 흘렀다. 커터 칼을 반사적으로 휘두르다 실컷 얻어맞고 칼에도 베인 날에 어미가 날 때린 놈들을 고소했던 일이 생각났다. 물론 합의로 흐지부지 끝났다. 대한민국의 법은 미성년자에게 너무나도 관대하다. 하지만 범죄는 미성년자도 얼마든지 극악하게 저지를 수 있고 영향력도 성인 범죄와 다를 바 없는 법이다. 14살이 아직 작았던 시절에 만들어진, 독일에서 온 소년법이 나를 지켜주지 못 했다.
졸업앨범은 사지 않았다. 온통 날 괴롭히던 놈들 천지일 앨범 따위를 왜 사는가.
졸업식 이후 집 밖으로는 나가지도 않았다. 아비는 방문을 잡아 뜯으려고만 했다. 아비의 체격은 작았지만 운동으로 단련되어 학창시절 체육 시간엔 운동장가에서 서성이기만 한 난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끌려가면서도 난 손에 잡히는 물건을 마구 던져 부서뜨려 가면서 버티곤 했다. 어미는 집안 곳곳에 먹을 것들을 남겨 두었다. 여동생은 날 벌레 보듯 보았다. 남동생이었다면 나를 보다 잘 이해해주었을까. 여자는 어머니가 아닌 이상 남자를 자신의 잠재적 남편감으로만 이해하고 능력에 따른 평가만을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가족도 결국엔 남남이기에 타인을 가늠하는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되는 것인가. 난 침울했고 비참했다.
아파트는 비좁았다.
밤낮은 금방 바뀌었다. 낮엔 커튼을 치고 잤다. 새벽에 난 부엌에 나가 라면을 끓여 먹었고, 빵과 두유를 뜯었다. 계란을 프라이팬에 깨 넣고 참치를 비벼 넣어 구워 먹기도 했다. 소시지와 각종 야채를 넣어 볶음밥이나 비빔밥을 해먹기도 했다. 어미가 놓아두는 것이리라. 난 잠이 많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깨어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방마다 욕실이 따로 붙어 있는 아파트가 아니었다면, 매번 배설하러 갈 때마다 가족과 부딪칠 수도 있게 되는, 말하자면 꽤 다른 생활 패턴을 가졌어야만 했을 것이다.
고등학생 때 난 애들 심부름을 해야 했고 왕따였다. 1학년 때 167cm, 65kg이던 체격은 3학년 때엔 170cm, 43kg까지 내려가 있었다. 수없이 놀림 받고 골림 받고 얻어맞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보니 자연스럽게 공부도 되지 않아서 반에서 꼴찌를 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졸업하고 나니 연락 오는 놈 하나 없이 편하기만 했다. 날 못 살게 굴던 놈들 얼굴과 이름 하나 하나 기억나 슬프고 짜증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연락처를 주고받은 바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내겐 핸드폰이 없었다. 대신 컴퓨터와 인터넷이 있었다. 어미는 내가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될까 봐 이를 놓아두었다고 했다. 이것도 가족이 놓은 게 아니라 인터넷 기사가 놓고 갔다. 가족이 들어오려고 하면 난 식칼을 들고 소리를 지르면서 버텼다. “꺼져! 꺼지라고! 날 내버려 둬!” 얼마못가 아비조차도 방에 들어오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끔 되었다.
형광등 불빛이 어두운 골방이 편했다.
버린 자식일 테지. 가축이나 다름없을 테지. 하기야 그럴 밖에 없었다. 그저 방안에 처박혀 게임과 인터넷에만 빠진 19살. 가족이라 해서 특별히 좋아할 구석은 없었다.
P2P가 범람하는 시대였다. 카운터 스트라이크, 스타크레프트, 디아블로2, 삼국지9, 진 삼국무쌍, 투하트, 포트리스, 카트라이더 등등의 온갖 게임들을 받아 지겨워질 때까지 밤새 즐겼다. 온갖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면서 댓글을 달기도 했다. 연예인들의 얼굴 사진을 포토샵으로 오려 포르노 사진과  붙이기도 했다. 완전한 잉여였다.
애초에 탈출구는 없었다.
밖에 나가기가 두려웠다. 인간성이라는 맹수성에 충실한 이들의 전당이 집 밖에 펼쳐져 있었다. 집 안은 그것의 전초기지였다. 나갈 수 없었고, 나가지지 않았다. 저곳으로 나가 봐야 온실에서 금방 나간 화초처럼 군인의 구둣발에 짓밟힐 따름이었다. 저기 나가 봐야 거지 밖에 더 될까. 그것도 같은 노숙자들에게 얻어맞는 노숙자. 부모라는 물주가 있고 아직 젊으니 내가 50대까지는 어찌 어찌 버텨 줄 것이고 그 다음엔 국가가 책임을 져주겠지.
음식 근처엔 어미의 편지가 붙어 있곤 했다. 읽지도 않고 휴지통에 버렸다. 보나마나 밖에 나가서 취직이나 하라는 소리일 것이다.
내가 이렇게 된 건 부모 탓일 것은 뻔했다.
인간의 성격은 생후 11개월 이전에 80%가 결정된다는 영국의 연구 결과를 난 철석같이 믿었다. 그 어리기만 한 시기에 자아가 있을 리 없으니 모두 환경의 영향으로 인격이 형성된다는 뜻이다. 점쟁이들조차 성격이 관상이나 사주팔자 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난 최악의 패를 받고 태어난 저주 받은 인생이었다. 내가 어릴 적 친척들의 손에 컸다는데 그러다 보니 잘 못 된 양육 환경에 노출 당했을 법했다. 어미와 아비 손에 큰 여동생과 내 성격이 다르다는 사실이 이 추측을 뒷받침한다.
오늘도 잠에서 깰 때 악몽을 꿨다. 어제 오늘 내일이 내겐 다 똑같은 날들이었지만, 오늘은 아무튼 악몽을 꿨다. 학창 시절에 나를 괴롭혔던 새끼들이 등장해 또 다시 날 괴롭히는 꿈이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도 되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폭행당한 피해자에겐 잘못이 없다는 것이 요즘의 판례다. 그렇다면 왕따 당한 나의 잘못도 없다. 하지만 대가는 고스란히 나만 짊어져야 했다.
컴퓨터를 켜고 컴퓨터 시계를 보았다. 새벽 2시였다. 난 주춤 주춤 의자에서 일어났다. 바짝 야위어 성긴 갈빗대가 아팠다. 자르지 않아 길어진 머리카락은 등을 타고 흘렀다. 봉두난발이었다. 오래 안감아 비듬이 많았고 뻑뻑했다.
“밥이나 먹어야겠다.”
난 그렇게 작게 중얼거렸다. 혼잣말을 많이 하는 건 외롭다는 증거라고 하던가. 방 밖으로 나가자 바닥에 웬 서류가 놓여 있었다. 그것을 주워 읽었다. 신체검사를 받으라는 영장이었다. 결국엔 군대로 가라는 뜻이었다.
군대.
성폭행, 성희롱, 구타, 고문이 난무하는 철저한 상명하복의 체제. 그곳에 가면 난 갈기갈기 찢어질 것이다. 저절로 심장이 거칠게 고동쳤다.
식구들이 피자를 시켜 먹었나 보다. 식은 피자가 몇 조각 남아있었다. 오븐에 데워 먹었다.
너무나도 걱정이 되었다. 평소 보다 몇 배 더 많이 손톱을 잘근 잘근 씹었다. 씹어서 색이 바래고 늘어난 손톱을 깍은 것은 평소 버릇 그대로였다.
병무청 사이트에 들어가 병역 면제 사유를 다룬 파일을 훑어보았다. 뺄 수 있는 사유가 보이지 않았다. 몸무게가 가볍다는 것 하나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앞으로도 과자와 라면 정도만 가끔 먹고 낮에 자는 생활을 한다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공익을 피할 수는 없을 터였다.
답답했다.
공익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사람을 만나고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공익을 한다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과 대면해야 할 것이 뻔했다. 피하고 싶었지만 내 마음대로 될 리 없었다.
오랜만에 머리를 감았다. 그리고는 가위로 얼기설기 자르고 화장실의 쓰레기통에 버렸다. 모자로 가려지니 미용실에 갈 때 덜 쪽팔릴 수 있을 것이다. 못 생긴 얼굴과 앙상하게 야윈 몸을 가릴 수 있는 좋은 모자를 찾아냈다. 모자가 없으면 다들 날 쳐다보면서 속으로 비웃고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아직 미용실에 갈 생각은 없었다. 미용사가 보기엔 너무나 추한 머리일 터였다.
아침이 밝아오자 어미가 큰소리로 말했다. 방문 근처에서 말하려니 겁이 나는 것일 것이다.
“승신아, 엄마다. 신검 안 가면 감옥에 갈 수도 있으니까 준비해라.”
난 대답하지 않았다. 어미는 포기하고 물러갔다. 어미는 사업 하느라 바쁘게 사는 모양이었다. 잘 난 자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노력도 결국 성격 탓이다. 개인의 자아와 성격은 개인이 태어나기 전의 우주적 규모의 태초 요인 즉 세월에 근원한다. 즉 개인 책임이 아니다. 개인 책임이 아니므로 사회가 개인을 책임져 줘야 한다. 사회는 인과관계에 의한 남 탓들의 집적이다. 그게 과학적 진리가 아니던가. 우주만물은 인과관계를 따른다. 내가 잘났든 못났든 그건 내 책임이 아니라 생각하니 씁쓰름했다.
아비가 나 들으라는 듯 크게 말했다.
“군대 가면 정신 좀 차리겠지.”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군대 가서 자살하거나 미치거나 다치는 사람들은 다 뭐란 말인가.
내가 보는 애니메이션들이 많았다. 피규어를 살까도 생각했지만 돈이 없었다. 난 내 취미 생활에 쓰이는 돈까지 달라고 할 만큼 뻔뻔하지는 못 했다. 모은 동영상과 애니메이션을 지웠다가 썼다를 반복했다. 하드디스크는 비좁았다. 정액을 빼는 일도 중요한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 매일 한 번 씩은 자위를 했는데 전립선에 좋다고도 했다.
그런 식으로 신체검사 일이 다가오는 데도 평소와 다름없이 소일했다. 앞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심정이었다. 대개는 아침인, 잘 때가 다가오면 난 초조해졌지만 그뿐이었다.
그때 어미의 목소리가 방문을 통해 울렸다.
“지금은 사는 데 아무 지장 없지만, 승신아, 엄마랑 아빠가 죽으면 어떻게 할 거니?”
또 그 소리였다. 알고 있었다. 파탄이 오겠지. 자살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쩌라는 것인가. 내게는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 비웃기부터 할 것이 뻔했다.
결국 신검 가는 날짜는 닥쳐올 것이고, 뒤이어 그 결과에 따라 군대에 배속될 때도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국가가 나에게 뭘 해준 게 있다고 군대를 잡아 보내나. 인터넷상의 글을 보면, 교도소 보다 나쁜 대우를 해주는 곳이 군대였다. 국가는 내가 왕따 당할 때 돕지 않았고, 내가 왕따 당할 수밖에 없는 성격으로 정립되어 갈 때 가족을 다독이지 않았다. 소년원에 간 일진들은 희망을 가지라고 지원해주는 무리들이 많이 있었다. 정작 일진들이 왕따 시켜 몰아가는 바람에 나처럼 히키코모리가 되는 이들에겐 지원 하나 닿지 않는다. 아마도 일진 출신들이 더 에너지가 넘치는 이들이기에, 개선될 경우 더 돈을 잘 벌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으로 뉘우치는 이 따위는 없음에도 말이다.
자명한 노릇이었다. 돈이 있으면 안 되는 게 없는 더러운 세상이었다. 어미는 내가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있으면 용돈을 주겠다고 했지만 난 그럴 생각이 없었다.
평소보다 먹는 양이 줄었다.
우울했다.
하루에 한 끼 밖에 먹지 않는 날들이 많아졌다. 나는 더욱 야위어갔고 무기력해져 갔다. 내 방엔 거울이 없었다.
어린 여자아이가 나오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위를 했다. 난 어린 여자아이를 여자로서 매우 좋아했다, 일본 만화에 나오는 아이만. 실제는 싫었다. 떽떽거리는 것도 싫었고, 그런 영상을 찍으려면 어린이의 인권을 침해해야만 한다는 사실도 꺼려졌다. 구미에서는 어린이가 나오는 포르노는 만화물이라도 생산하거나 소장하는 것을 처벌한다고 한다. 옳지 않은 정책이라고 여겨졌다. 만화물이라면 어린이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사물이라면 피사체인 어린이의 인권을 해치므로 소장하는 것만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난 생각했다. 나와 같은 히키코모리 즉 은둔형 외톨이의 경우 통계에 따르면, 일반인 보다 도덕성이 높다고 한다. 덮어 놓고 범죄 예비군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물론 범죄를 저지르는 부류도 있겠지만.
그러던 즈음이었다.
볼 수 있는 우주의 지름만 930억 광년이라 한다. 우주에 있는 별의 숫자는 지구의 모래알보다도 많다고 한다. 우주의 대부분은 진공이다. 마음은 육체의 작용이고, 일부다. 내 마음 속에도 진공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공의 마음도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모든 걸 흩어버리겠다는 마음. 컴퓨터에게도 마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등하겠지. 그렇다면 인류는 모두 환생한 존재일 것이다. 환생한다면 좋겠다. 난 전생에 무슨 죄를 졌기에 이리 힘든 것일까. 인생을 낭비한 죄로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정신이 존재하는 편이 낫다. 모든 주변의 것들이 몸속으로 들어와 환생한다. 난 만물의 총체다.
웃음소리가 들렸다. 환호성이다.
나의 인생에 관해 떠벌여대는 목소리가 있었다. 왕따를 당하고, 초등학생 때는 그 전조로서 은따를 당하고, 그 이후론 집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이를 놀려대는 목소리가 있었다. 화가 치밀었다.
난 식칼을 들고 방 밖으로 나갔다. 큰 소리로 욕설을 하면서 허공에 대고 휘둘렀다.
거실에서 핸드폰을 받고 있던 여동생 승미가 깜짝 놀라 방 안으로 도망쳤다.
중간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술 마시면 필름이 끊길 때도 있다고 하는데 같은 느낌이다.
경찰이 가만히 있는 나에게 수갑을 채웠다.
중간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난 침대에 묶여 버둥거리고 있었다. 눈을 휘돌려 보니 압박붕대로 사지를 묶여 있다. 건장한 몸집의 보호사들이 와서 날 풀어주었다.
“여긴 어디죠?”
“정신병원입니다.”
정신병원엔 따로 보호사라는 사내들이 있었다. 간호사들에도 남자가 많았다. 정신과 의사들조차 정신병자를 제압하기 위해 무술을 배우는 형편이었다.
식판으로 나오는 밥을 먹고 약을 먹었다. 약은 매끼니 마다 나왔는데 끼니마다 먹는 사람은 얼마 없는 듯했다. 주는 약을 먹었는지 환자가 입을 벌려 혀를 위아래로 움직여 보여주어 검사했다. 약은 부작용의 우려 때문인지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뉴스로 흔히 나오는, 환자를 제대로 관리 안 해 더 안 좋은 처지로 만드는 병원은 아니었다. 종합병원의 폐쇄 병동이었다.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진짜로 미친놈이 되고 만 것인가. 난 침울해야 했지만 약기운 탓인지 왜 인지 우쭐거리는 기분마저 들었다.
난 말 한마디 제대로 없었고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그래서인지 나 보다 어린놈까지 날 업신여겼다. 난 어디 가서나 이런 꼴이니 직장을 잡아도 똑 같을 거라는 느낌이 왔다. 대학에 진학을 했었더라도 아웃사이더 신세였을 것이다.
알코올 중독 환자들도 많았는데 이들은 입원해 있을 동안에는 술을 안마시니까 괜찮지만 밖에 나가면 다 부질 없다면서 자신을 가둔 보호자를 욕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나자 아비와 어미가 면회를 왔다. 어미가 말했다.
“승신아, 며칠만 더 입원해 있으렴. 그러면 면제가 나올 거야. 너 군대 가는 것 때문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아비의 표정이 안 좋았다. 아비가 말했다.
“군대 못 가면 병신이지. 너 자살할래? 제사는 꼬박 꼬박 챙겨줄게.”
어미가 소리쳤다.
“그게 무슨 말이야! 당신 애를 죽일 참이야!”
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분노가 치밀어 순간적으로 눈앞이 하얗게 물들었다. 아비는 아비도 아니다. 하지만 어미는 엄마다. 나가면 엄마와는 잘 지내야겠다. 아비와 엄마의 말다툼 소리를 뒤로 하고 난 다시 병실로 끌려갔다.
병실에 가보니 이발 봉사하는 사람이 와 있었다. 머리를 짧게 깎고 뒤이어 비누로 감았다. 미용실에 갈 일이 줄었다. 또 길게 기르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누군가가 날 의심하나 보다. 일부러 미친 척 해서 군대 면제 받으려고 한다는 소리를 지나가듯이 들었다. 특별히 날 두고 하는 소리는 아니었을 수 있지만, 혹시 아는가. 정신병에 걸렸다고 하면 여러 불이익이 있는데 설마 그렇겠는가. 온통 내 인생은 뺑끼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말들이 나를 두고 비비 꼬아서 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대놓고 하는 말이 아닌 이상 그렇게 의심할 징후는 없었다. 그러나 이성은 아니라고 해도 감정은 그렇게 움직였다. 마음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 또 다시 면회를 나갔다.
엄마 혼자 와있었다.
“승신아, 아빠가 한 말을 너무 마음에 두지 말렴. 아빠도 다 너 너무 걱정 되서 그런 걸 거야.”
“엄마, 죄송해요.”
엄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엄마라고 부른지가 몇 년 만인지 나도 모르겠다.
“승신아.”
난 손을 내밀어 엄마의 볼을 어루만졌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눈물이 내 손을 어루만졌다. 나도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 곧 집에 가자. 군대는 안 가도 된다. 일부러도 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다시 며칠이 지났다. 엄마가 SM3를 타고 홀로 와 날 집으로 데려갔다.
난 또 다시 집에 틀어박혔다.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은 소심하고 불안한 사람일수록 정신병에 걸리기 쉽다고 한다. 그 소심한 사람을 그렇게 괴롭혀 정신병으로 히키코모리로 몰아간 일진들은 떵떵거리며 잘 사는데 나는 이렇게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정신병자를 가장 열등한 인간으로 치부하는 사회에서 난 살고 있었다. OECD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고, 그 원인으로서 우울증이 지목되는데도 이에 관한 예방이나 원인 해결은 뒷전인 포악한 사회였다. 파울로 코엘류와 에이브러햄 링컨도 젊었을 적에 정신병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물론 내게 그들처럼 개척 정신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정신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매일 먹는다는 사실 뿐이었다. 또 하나 바뀐 점은 엄마와는 대화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대개 밤늦게야 집에 왔다. 엄마가 방문을 두드렸다. 난 방문을 열고 엄마를 맞이했다.
“엄마는 날씬하고 참 예뻐요.”
“그럼 그렇고말고! 승신아, 이제부터는 너 먹을 거 정도는 밖에 마트에서 좀 사와라. 돈 줄게. 그러는 게 더 네 입맛에도 맞고 좋지 않겠니?”
“밖에 나가는 게 무서워요.”
“너 잡아먹는 사람 없다. 좀 씻고 나가고.”
“역시 안 되겠어요.”
“하, 걱정이다. 그래도 돈을 매주 줄 테니 잘 생각하렴.”
엄마는 10만원을 내게 주었다. 돈이 적다고 생각되어 나를 엄마가 하찮게 여긴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일단 내색하진 않았다. 엄마는 매주 10만원 씩 내게 주었다.
가까운 신경 정신과 의원에 가서 증서를 끊어서 신검에 가서 제출했다. 엄마는 운영하는 식당을 잠시 닫고 신검에 함께 가 주었다. 등 빨 좋고 거칠어 보이는 동갑들이 많아 잔뜩 주눅이 들었다. 내가 아니라면 엄마는 더 큰 기쁨을 맛보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최소한 이토록 걱정하지는 않고 사셨겠지.
정신분열 병력이 있는 사람이 존속 살해를 저지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그 말을 하자, “설마 네가 날 죽이겠니? 넌 그런 걱정 말고 약이나 잘 먹으면 되는 거야.” 하시며 날 오히려 격려해주었다.
이렇게 엄마와 조금씩 사이가 좋아지고는 있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내 자아와 성격이 180도 달라지지 않는 한 미래는 없었고 그럴 가망도 없었다.
군대는 면제를 받았다.
엄마와 함께 은행에 가서 통장을 개설했다. 인터넷 뱅킹이 가능하게 했다. 이렇게 해두면 더욱 더 빨리 P2P나 웹하드를 이용할 수 있을 일이었다. 핸드폰도 개통했다.
고개를 길거리에서 들고 다니기가 힘이 든다. 밖에 아주 잠시만 나갔다 왔는데도 온 몸이 식은땀에 젖고 뜨겁다. 밖에 나가는 일은 역시 어렵다.
아비가 은행 부지점장 자리에서 잘렸다. 엄마랑 함께 일을 해보겠다고 하는 모양이다. 새로 일을 구하라는 엄마와 그렇게는 못 하겠다는 아비 사이에 말다툼 소리가 높았다. 엄마의 사업도 어려워지는 모양이었다. 가세가 기울고 있었다. 어중간한 경제적 위치의 집이었다.
그 와중에 난 미술학원 취미 반에 보내달라고 했다. 여자의 발가벗은 몸을 그리고 싶었다. 손으로 스케치를 한 뒤 채색은 컴퓨터로 예쁘게 하고 싶었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페인터, 오토캐드, 3D맥스, 마야 등등 각종 프로그램은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 구비되어 있었다. 미술학원에 가고 싶다는 말을 듣자, 다행히도 엄마는 기뻐하는 기색이었다.
“그래, 승신아. 밖에 나가서 사람도 좀 사귀고 그래라. 좋아하는 일 하면서 해야 사람도 잘 사귀어지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잘 할 수 있을지 긴장되었다. 단순히 사람과 만나는 일만도 이리 어렵다. 사람들과 눈을 맞출 수가 없었다.
미술학원 취미 반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보았다. 긴 생머리를 기른 여자였는데, 키는 155cm 정도였고 몸매가 예뻤지만 덜 부담스러웠던 점은 쌍꺼풀 없는 작은 눈 등 얼굴은 수수했다는 사실이었다. 그야말로 자그마하고 아름다운 요정인 노움이었다. 이름을 모르니 일단은 노움이라 마음속으로 부르기로 했다.
나는 노움 옆으로 가 앉아 아그리파를 미술용 연필로 스케치하는데 뭐라 뭐라 말했다. 노움은 나를 피하는 듯싶더니 한 마디 했다.
“여드름도 많고 활기도 없으면서.”
새되고 사람을 무시하는 말투였다. 활기 있게 사는 건 내게는 불가능한 부분이었다. 여드름이 많은 점도 악몽에 잠을 이루지 못 하던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잔뜩 생긴 콤플렉스였다. 난 즉시 반을 뛰쳐나갔다.
버스를 타고 고개를 깊게 숙인 채 집에 와 틀어박혔다. 미술학원을 그만두겠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지만 그뿐이었다.
난 이전처럼 칩거했다.
달라진 점이라곤 업그레이드된 컴퓨터뿐이었다. CD-RW기도 달아서 동영상이나 게임 따위를 공CD에 구웠다. 컴퓨터의 사양은 올라갔고 내가 즐기는 게임 캐릭터도 강해졌지만 그만치 난 약해져갔다.
그나마 가끔 새벽이나 밤에 일어나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간식거리를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또 다른 차이랄까. 유산이나 까먹을 내 남은 인생에서 조금도 위안이 될 수 없는 차이였다.
부자 페미니스트들의 부동산 투기 재개발용 법안인 성매매 특별법이 얼마 뒤에 발효된다는 기사가 났다.
잘 못 하면 평생 성교 한 번 못 해보고 죽게 생겼다는 이야기였다. 단순히 성교만을 위해서라면 어린아이를 제압할 수는 있겠지만, 난 범죄를 저지르다가, 온통 깡패들만 지배한다는 교도소에 가기는 싫었다.
용산역 사창가에 갔다. 밤이었다. 호객행위를 하는 늘씬한 여자들이 참으로 많았다.
얼굴은 다소 아니었지만, 까무잡잡하고, 늘씬한 창녀를 만났다. 창녀는 오빠라고 날 불렀고 반말을 썼다. 14만원을 지불했다. 창녀가 드레스를 벗자 뽕 브라를 입고 있었고 노팬티였다. 우선 입맞춤부터 했다. 아마도 이것이 첫 입맞춤이자 유일한 입맞춤일 테지. 이번 성교도 입맞춤과 마찬가지인 경우이겠다. 창녀가 혀로 항문과 성기를 꼼꼼하게 핥아주었는데 간질간질해서 기분이 좋았다. 껴안기도 했다. 창녀의 부드러운 엉덩이에 뽀뽀를 하기도 했다. 창녀의 성기를 만지려고 하자, “만지지마, 아파” 라고 했다. 발기가 되지 않아 껴안기만 하고 사정하지 못 하고 나왔다. 여자의 발가벗은 몸을 안을 때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맛에 정서적 만족을 얻기에 여자를 사귀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알고 보니 창녀와 나는 동갑내기였다.
창녀는 또 오라고 말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며칠 뒤 성매매 특별법이 발효되었기에 나 같은 못 난 남자는 성교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평생 여자 못 사귈 것이 분명한 내 운명이었다. 집이 좀 사니 꽃뱀이 꼬일 수는 있겠다 싶지만, 평생 먹을 돈을 털어먹기엔 모자라는 애매한 재산의 집이었다.
이대로 날들은 지리멸렬하게 지나만 갔다.
엄마의 사업이 망했다. 지방에 갖고 있던 아파트를 한 채 팔아서 빚을 갚았다고 했다. 이제 월세 수입이 4분의 3으로 줄어들었다. 아비와 엄마는 공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여동생은 2년제 대학 2학년이다. 여동생의 미니 홈페이지를 찾아다니다 보면 가관이었다. 한창 유행하는 말인 된장녀 그대로였다. 돈을 한 번도 스스로 벌어본 적 없기는 나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아비와 엄마의 돈을 타 몇 개의 명품을 갖고 있었고, 패밀리 레스토랑과 스타벅스를 이용하는 걸 무척이나 즐겨 했다. 얼굴 반반하고 몸매 좋고 화장 잘하는 걸 밑천으로 여러 남자들을 어장 관리해서 돈 좀 타 쓰고 있을 것이 뻔했다. 생활이 궁핍해지자 여동생이 아비와 엄마에게 짜증부리는 횟수가 늘고 있었다. 내가 싹수가 노라면 여동생이라도 괜찮아야 할 텐데 사교성 면에서 나 보다 뛰어나 일반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점 빼고는 별 볼 일 없었다.
집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해왔다. 무기력감이 더해져갔다. 집이 망하면 노숙자가 되어야 하겠지. 노숙자 가운데서는 여러 경우가 있다지만, 일을 잡지 못 해서 되는 경우도 있다고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결코 쉽게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해주지 않는다. 아비도 엄마도 공장에라도 나가보라고 성화였다. 나 같은 성격 장애자가 대인관계가 꼭 필요한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엄마가 주는 용돈이 매주 5만원으로 줄었다. 난 싫은 내색하지 않았다. 이런 생활을 계속하다보니 살이 쪄서 85kg이 되어버렸다. 살은 금방 찐다. 운동하는 것도 없으니 빠질 일은 없을 것이다. 점점 배가 나와 복부 비만이 되었고 팔다리는 가는 체로 있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기 외모에 만족하고 또한 꾸밀 줄도 안다고 했다. 난 물론 정반대였다. 나는 더욱 못 생겨져 갔고, 옷들도 후줄근했다.
아웃소싱 업체를 통해 공장에 나갔다. 공장에서 안 것은 내가 업무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이었다. 심장이 떨리고 긴장되어서 내 사수와 눈도 제대로 못 맞추고 덕분에 배우지도 못 한 탓도 있을 터였다. 여러 가지 부품의 종류와 기능을 외우는 것도 되지 않았다. 이틀도 못 하고 방출되어 임금도 받지 못 했다. 대인관계 관련된 나의 능력을 파악하기도 전에 업무능력 부족이라는 새로운 단점을 알아내고 말았다.
오랜만에 거실에 웃음꽃이 피었다. 무슨 일인지 엄마한테 물어보니 아비가 주식투자한 게 성공한 모양이었다. 팔자 고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엄마가 하던 사업이 재추진 될 만치는 되었다. 이번엔 아비와 엄마가 함께 사업을 벌인다고 했다. 엄마에게서 나오는 용돈이 매주 10만원으로 되돌려진 것 이외에 나의 생활에 일체 변화는 없었다. 아니 나이를 먹어가니 상황은 더 나빠져만 갔다.
온라인 게임 와우의 정액권을 끊었다. 피규어를 조금씩 사들이기 시작했지만 몇 달에 한 번씩 있는 일일 뿐이었다. 게임 속 세상에서 조차도 난 친구를 만들지 못 했고 활발하게 교류하지도 못 했다. 그러다 보니 레벨을 올리지 못 해 아까운 생각이 들어 와우를 그만두었다. 새로 시작한 게임은 마비노기로서 보다 가볍게 플레이할 수 있기에 골랐다. 마비노기도 물론 혼자서 했다.
아비의 성화에 주택관리사 시험을 준비한다고 책을 사들였다. 주택관리사 인터넷 강의도 신청했다. 내 고집으로 학원은 가지 않았다. 공부해봐야 소용없었다. 주택관리사는 아파트 사람들 및 경비원들과 많이 치어야 하는 직업이었다. 아니 사람과 부딪치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없었다. 공부를 해서 설령 무언가에 합격한다 한들 대인관계가 안 되니 일을 지속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고졸 신분으로 시험 볼 수 있는 자격증은 결코 적지 않았지만 내게 길은 없었다. 인터넷 강의는 틀지 않았고 책은 방바닥을 굴렀다.
어느 날 엄마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승신아, 나중에 우리가 죽으면 너 혼자 살아갈 수 있게 정신장애 등급을 받아 보는 게 어떻겠니?”
엄마가 인터넷으로 찾아 본 모양이었다. 난 정신과에 가서 의사와 상담했다. 난 애매해서 3급까지 밖에 없는 정신장애 등급을 받을 수 없었다. 이대로는 나중에 상황이 악화되어도 혼자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길을 모색할 수도 없었다. 이런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아비와 엄마는 노후 자금을 확보해두고 싶은 듯싶었다. 가족들은 다들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의 합리란 방 안에 콕 틀어박혀 지내는 생활이었다.
과거는 그저 지나가는 꿈과 같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혹자는 말한다. 하지만 과거란 내 몸 속에 아로새겨져 있어 지울 수 없는 존재였다. 내가 입은 상처는 치유되지 못 했고 복구될 수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한지 이제 몇 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매일 밤마다 괴롭힘 당하는 악몽을 꾼다.
내가 비사회적이다 보니 이런 생각도 했다. 남들과 얽히는, 그러니까 일을 나간다거나 대화를 한다거나 물건을 산다거나 하는 시간은 아깝고, 방안에서 노는 시간은 아깝지 않았다. 거꾸로 된 생각이라는 건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용납되지 않았다. 죽으면 모든 게 끝장이라는 무신론자이기에 죽기가 두려워서 나중에 망하면 자살이 아닌 노숙을 하게 되겠지만 그러면 컴퓨터로 놀지 못 하는데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아니다.
노숙자가 되면 같은 처지인 깡패들에게 얻어맞을 것이고, 강간을 당할지도 모른다. 운 좋게 쉼터에 들어가더라도 돈이 없어 컴퓨터를 할 수 없다. 내가 노숙자인 현실을 타파하고 자활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럴 바에는 자살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높은 건물들은 잠기고, 지하철엔 스크린 도어가 쳐지고, 농약은 일반인에게 안파는 추세라서 날이 갈수록 자살도 하기 어려워지는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자살은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개인의 선택인데도, 선택을 강요하는 이 세상은 자살의 자유만은 주지 않았다. 하기야 겨울에 지하철 역 밖에서 얼어 죽는다는 선택지가 있기는 했지만 그토록 고통스럽게 죽기는 싫었다.
답답하게도 현실은 이어졌고 난 홀로 불 켜진 방 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새벽이라 창밖엔 어둠이 내려 있었다. 방밖에선 식구들이 모두 자는지 조용했다. 스피커를 통해 불법다운 받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저 멈춰 있었다. 그냥 이대로 사는 것이 행복하기까지 했다. 영원할 수 없는 모래성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이다.
이대로 계속 날들은 흘러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데 난 마치 남의 일처럼 손 놓고 있었다.

                        [2011.05.06.]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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