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비, 내리다.

2013.08.20 22:1308.20

비, 내리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멈추는 것을 상상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비가 빈틈없이 모든 공간을 가득 채우며 끊임없이 내렸다. 그리고 내리는 비가 만드는 소리는 다른 모든 소리를 집어 삼키며 적막한 소음을 만들고 있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빗물에 덮여지고 축축한 한기를 뿜어냈다.

나는 지금 비가 내리는 한 복판에 혼자 서있다.

그리고 나 혼자 살아있다.

“아무도 없어요? 제발, 제발” 나는 소리 질렀다. 하지만 내리는 빗물의 공격에 내 입에서 나간 소리는 곧 힘을 잃고 땅으로 떨어져 사라지고 말았다.

“제발, 누구 하나 정도는 살아 있을 수 있잖아”

쉼 없이 퍼붓는 비의 기세에 눌린 나는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이 내 얼굴을 가득히 감쌌다.

모두 죽었다.

아니 죽었을 것이다. 나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을 때 왠지 모르게 기절을 했고, 깨어난 후부터는 나 아닌 살아 있는 생명체를 본 적이 없다. 아니 최근에는 내 모습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살아 있는 생명의 따뜻한 온기가 그리웠다. 한 순간 만이라도 뜨거운 숨을 몰아쉬는 존재를 만나고 싶었다. 온 몸을 얼려 버릴 듯 차가운 빗속에 홀로 있다는 사실이 혼자 살아 있는 이 사실이 미칠 듯이 원망스러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지만 역시 거리의 살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비에 녹고 있는 것 같은 시체들만 쌓여 있을 뿐이었다.

순식간에 내린 비 때문에 이 많은 사람들과 넓은 도시가 한순간에 모든 온기와 소리를 잃었다. 비가 내리기 전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버렸던 이 도시의 거리는 전쟁 후 쌓인 시체들만 즐비했다. 하지만 승자는 없었고 승리의 나팔은 어디서도 울리지 않았다. 치열한 전투를 벌인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

부패하고 부풀어 오르고 터져있는 시체들을 보다가 하늘을 원망하며 올려 보았다. 빗물은 내가 하늘을 보는 것이 신을 모독하는 행위라 여기는지 나를 공격했다. 그 작지만 살을 페어 버릴 기세의 날카로운 몸으로…….

내리는 비 넘어 하늘은 아가리에 핏물을 흘리며 다음 먹잇감이 쓰러져 꺾기기를 기다리고 있는 맹수 같았다.

많은 예술가들의 선망이 대었던 하늘은 더 이상 없었다. 이보다 추악한 존재가 없을 정도로 차갑고, 날카롭게, 그리고 거칠고, 낯설게 변해 자기 밑에 있는 생명들을 집어 삼키고 빨간 핏물을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모든 생명의 온기가 없어진 차가운 도시에 나만 살아남은 이유를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처음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고 기뻐했을 때의 행복과 안도감은 죽은 존재들의 저주가 되어 돌아 왔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것은 영겁의 세월 돌을 굴리는 시시포스 같은 가혹한 징벌이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 했는지 왜 신은 나만 빼고 모든 존재를 거두어 간 것인지 다른 사람들도 아닌 평범한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왜 혼자 살아남았는지 나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제발 어떤 계시를 또는 해답을 보여주기를 바라며 하늘을 보던 나는 변한 하늘을 보며 신에 대해 생각 한다는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는 하늘을 보지 않고 신을 부정하리다.

뒤를 돌아보았다. 기분 나쁜 새빨간 공기가 멀리서 내게 손짓하듯 흔들리고 있었다. 이미 내가 일주일, 사실 며칠일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전에 있던 곳 까지 빨간 공기가 가득차고 있었다. 저 빨간 공기의 정체는 뭘까 하고 생각하려 했지만 내 본능이 지금은 움직일 때라고 말했다. 난 앞을 보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주위의 공기는 일렁거리고 빗물은 바람에 휘날리는 벚꽃처럼 어지러이 춤을 추며 떨어졌다. 빗소리와 함께 내가 걷는 소리는 외로운 도시를 쓸쓸히 채웠다.

낮인지 어둠인지 모르는 시간 속에 헤매며 비에 젖어 불은 발을 힘겹게 내딛었다.

내게는 이 상황을 이해 할 지식도 해결 할 능력도 없다. 비가 왜 계속 내리는 건지, 이 비 때문에 사람들이 죽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죽은 것인지,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왜 기절을 했고 깨어났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이해 할 수 없다. 그저 구하지 못할 답을 찾아 헤매며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만약 이렇게 묻고 생각하는 것을 멈춘다면 나는 존재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인정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많은 생각을 하다 보니 세상이 변하기 전에 별 생각 없이 살던 때가 후회되었다. 그때는 하루하루를 그저 보낼 뿐이었다. 나를 지나가는 시간이 아쉬워 잡으려고도 하지 않고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나는 그냥 손에 움켜쥐었다 펴면 빠져 나가는 모래알처럼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냈다.

이렇듯 생각이라는 그물에 잡히면 두서없는 생각의 흐름과 함께 빠져 나오지 못하는 자기혐오와 후회만이 가득해 진다. 또 다시 반복되는 후회 속에 나는 생각을 했다.

나는 평범했다.

평범한 유년 시절을 지나 평범한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왔다. 학교를 다닐 때에도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은 평범한 성적을 받고 평범한 성격에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운동신경으로 그 어느 순간에도 튀지 않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남들 다하는 경험에 특별할 것 없는 추억을 가지고 성장했으며, 이렇다 할 장기나 특기도 없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흔하디흔한 외모로 주목 받는 일 없었으며 오히려 사람들은 내가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나에 대해 설명할 만한 단어는 전 세계 모든 사전을 찾아봐도 그저 평범하다는 말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냥 나는 산에 서 있는 평범한 나무였다. 아니 나무보다도 발에 채여도 누구 하나 돌아 봐 주지 않는 돌멩이에 불과 했다. 바람에 깎이고 물에 조각난 이름 없는 돌멩이

하지만 지금은 전혀 평범하지 않다. 다른 영혼들이 비에 씻겨 흘러 갈 때 내 영혼만은 씻겨 나가지 않고 평범한 돌멩이 같은 내 육체에 매달려 있었다.

세상 누구보다 평범한 나, 그런 내가 놓인 상황은 세상 어느 순간보다 특별했다.

내가 살아남은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살아남은 후부터 계속 된 이 질문에 쉽사리 답을 구하지 못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나는 어디든 가야한다는 생각 하나로 끊임없이 걸었다.

걷고는 있지만 앞으로 움직이고 있는지에 대한 의심이 자꾸 들었다. 주변의 시체들이 나를 따라 오는 듯했기 때문이다. 시체들은 스멀스멀 일어나 잔인하고 조용하게 내 뒤를 따르며 나를 붙잡으려 하는 것 같았다. 의심스러운 마음에 자꾸 뒤를 돌아보았지만 돌아보면 시체들은 그 자리에 계속 널브러져 있었다. 이런 의심은 마음 약한 틈새를 잘도 알고 공격해온다. 그렇게 생긴 의심은 불안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새겨 놓고 새겨진 불안은 내 의식을 잠식하며 나를 조정하려고 했다. ‘곧 너도 저렇게 될 거야. 평범한 너 까짓것이 이만큼 특별함을 느꼈으면 됐으니 이제 그만 멈추고 다리를 꺾어’라고 불안에 집어삼켜진 의식 한 부분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아직 삼켜지지 않고 남은 의식은 필사적으로 버티며 생각을 바꾸려고 했다. 그 의식이 꺼내 든 것은 담배였다. 내 몸은 갑자기 담배를 절실히 원했다. 담배에 불을 붙여 깊숙하게 한 모금 들이마시면 내 몸에 들어간 연기는 머리끝부터 발가락 끝까지 한 바퀴를 돌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내뱉어진 담배연기는 연기와 함께 불안이라는 감정을 내 몸에서 끌고 나와 날려버리고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담배 생각이 간절해지면서 뇌에서는 끊임없이 니코틴을 투입하라고 압박했다. 무심코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쓸데없는 짓임을 알지만 혹시나 담배가 있을까 둘러 본 것이다.

예전에 한 남자의 갖가지 감정을 보여준 얼굴이었겠지만 지금은 계란 껍데기 같은 색에 부풀대로 부풀어 눈알이 빠져 나온 살덩어리에 불과한 것을 달고 있는 시체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비에 젖어 축 늘어진 담배꽁초가 있었다.

불을 붙여 자기 한 몸을 태우며 누군가에게는 위로를 누군가에게는 피로 회복을, 또는 잠깐의 여유를 줬을 담배꽁초는 자기 임무를 다 한 후 바닥에 버려져있었다.

저 시체는 만족 했을 것이다 죽는 순간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죽었을 테니 그의 손에는 비에 젖은 라이터가 들려 있었다. 물에 불어 두툼한 손, 그 안에 놓인 라이터…….

담배 피는 내 손을 좋아했지만 담배 피는 것을 싫어했던 그녀가 생각났다.

그녀와 나는 평범한 사랑을 했다. 튀지도 예쁘지도 않는 적당히 평범한 여자를 만나, 평범한 것들은 서로를 알아보니깐 나 같은 놈이랑 사랑을 했겠지 아니 사랑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평범하게 데이트를 하고 특별한 추억 따위는 지금 이 순간에도 기억나지 않는 자랑 할게 없는 평범한 사랑을 했다.

그녀는 죽는 순간 누구를 생각 했을까?

앞 이빨이 튀어 나와 잘 다물어지지 않은 입으로 토끼처럼 웃던 그녀가 죽는 순간에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는 상관없다. 그냥 죽는 순간 누구를 생각 했는지가 궁금했다. 과연 그녀는 죽는 순간 나를 생각 했을까? 헤어지자는 내 평범한 이별 앞에 그저 그렇게 받아들이고 헤어진 후 딱 한번 전화 해 우리의 만남이 의무적으로 행해지는 의식 같았다고 말하던 그녀, 그런 그녀가 죽어가면서 내 생각을 하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여기면 내 욕심일까?

욕심 그래! 그녀는 내게 욕심이 없다고 했다. 어떤 것도 이룰 생각이나 가지고 싶어 하는 욕심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그렇게 살면 삶이 아깝지 않으냐고 어딘가 멀리 보는 듯 반짝이는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그녀는 내가 보기에는 평범했지만 결코 스스로를 평범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것을 알게 되니 나는 겁이 났고 그녀와 이별 한 것이다. 생각 하다 보니 새삼스럽게 이별하게 된 이유가 떠올랐다. 결국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던 여자도 평범한 내 모습 때문에 헤어졌고 그 사실을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게 뭉뚱그려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혼자 생각하는 것은 나를 혐오하는 상태까지 몰고 갔다.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었고 계속된 자기혐오에 지쳐가며 걸어갔다.

머리를 좀 쉬게 해야 했다. 계속 된 생각으로 과부하가 걸린 뇌는 살고 싶어 그만 생각을 멈추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아니 어려운 것은 생각하기 싫고, 좋지 않았던 기억을 거부하면서 나를 안전한 울타리 안에 놓으려는 또 다른 내 생각일수도 있었다.

평범한 나는 적당히 단순하게 생각 하며 살아 왔기에 평범했던 것이다.

어려운 답을 회피하려는 유치원생처럼 나 역시 도망가면서 살았던 것이다.

비에 젖은 차가운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마른기침이 쏟아져 나오고 온 몸이 떨렸다. 순간 약한 전자음이 귓속 깊숙한 곳에서 들려왔다. 또 다. 언제부터 인지 모르지만 귓속에서 삐이익- 하는 전자음이 가끔씩 들려온다. 그 후에는 오른쪽 눈 주위가 간헐적으로 떨린다.

영양부족이겠지 며칠 동안 신선한 음식을 먹기는커녕 냄새조차 맡지 못했으니

응? 냄새?

그러고 보니 냄새라는 것을 맡은 지 오래 된 것 같았다. 코 속을 파고드는 것은 차가운 빗물 뿐이었다. 냄새라는 단어는 쏟아지는 비와 함께 사라진 것 같았다.

과거 왠지 모르게 좋아하던 비가 내리면 나던 냄새조차 없었다. 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전히 시체들은 즐비했고 살덩어리들은 부풀고 썩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근데 냄새는 나지 않았다. 물이 고인 곳에서 시체가 저렇게 썩고 있는데 악취가 나지 않다니 뭔가 이상했다. 또 다시 의심이라는 놈이 마음 약한 곳을 공격하며 불안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상하다 이상해 하지만 모르겠다. 왜 그런지…….

몇 달 동안 미친 듯이 비가 내리고 공기는 빨갛게 변했는데 그까지 냄새가 안 나는 것이 뭐 별 일이겠냐고 나는 넘기고 싶었다. 하지만 한번 먹잇감을 문 의심은 내 의식 꼭대기에 올라 앉아 내려오지 않았다.

냄새가 왜 안 나지? 나는 또 풀 수 없는 질문 하나를 스스로 생각했다.

멈춰야 해 의식은 스스로 작동을 중지하고 있었다. 내게는 쉴 공간과 시간이 필요해 나는 생각했다. 너무 움직였다. 너무 생각 했다. 이제는 몸을 쉬게 해줘야 한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너진 건물 앞으로 기괴하게 쌓여 있는 시멘트 덩어리들 사이로 작은 틈새가 보였다. 지금의 나라면 충분히 들어 갈 것이다. 나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냄새에 대한 의심은 나를 붙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내 등 뒤에 매달려 나를 그곳에 세워두려고 했다. ‘이것은 해결 하고 가야지’ 하는 것처럼 나에게 계속 말을 걸어 왔다. 하지만 나는 응답 안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은 쉬는 것이 필요해. 그저 이 지긋 지긋한 비를 피하게 허락해줄 작은 공간이 필요해. 나는 머릿속 의심을 털어 내며 앞으로 걸어갔다.

작은 틈새는 비를 피할 만한 자리를 제공 해줄 건물 안으로 이어져 있었다. 지금 그 곳은 나에게 내 방, 내 침대 위 이불 속 보다 편할 것이다. 작은 떨림과 흥분이 발끝에서부터 올라 왔다. ‘빨리 들어가자 빨리’ 내 다리는 그렇게 내 몸을 이끌었다.

무너져 내린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 공기에 꽉 찬 수분이 내 얼굴을 덮쳐왔다. 건물 안은 음습하고 축축했으며 어두웠다. 그러자 의심은 다른 모습으로 나를 공격해 왔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마치 빨갛게 충혈 된 눈으로 원망하는 눈길로 나를 날카롭게 노려보는 것 같았다. 혹시나 하고 눈을 가늘게 뜨고 집중해서 보아도 그 것들은 움직이지 않고 싸늘한 기운만 내뿜는 죽어 있는 것들이었다. 어디서도 나를 노려보는 눈 따위는 없었다.

나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며 머리 위에 앉아 있는 의심이 떨어트리려고 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관심을 바꿨다. 일단은 이 공간에 친숙해져야 한다. 난 천천히 둘러보다 건물 안 쪽에 젖어 있지 않은 대리석 벽 앞으로 다가갔다. 천천히 대리석 벽을 쓰다듬었지만 손이 차가워서 그런지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는 대리석 벽에 기대어 쓰러지듯이 앉으며 기지개를 폈다. 모든 근육과 신경이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왔다. 한숨 소리는 하얀 연기와 함께 쓸쓸히 울려 퍼졌다. 나는 다시 두 손을 깍지 끼면서 꺾었다. 우두둑하는 소리가 손가락 뼈마디 마다났다. 어머니는 내가 습관적으로 이런 소리를 낼 때마다 손가락 두꺼워진다고 정색 하셨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목과 어깨가 쑤시다 던 어머니, 어머니 생각을 하자 두 눈이 뜨거워 졌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어머니의 미소를 떠올렸다. 혼자 살아남은 아들을 보고 자랑스러워하실까? 아니면 걱정부터 앞서실까? 이런 평범한 아들도 어머니는 사랑해 주었다. 계속 이어지는 어머니 생각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안 된다. 감상적인 나약한 생각은 의심 다음 피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다른 생각을 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저 비를 피하고 앉을 수 있는 공간을 원했지만 앉을 수 있게 되자 눕고 싶어졌고 뭔가 덮을 수 있는 것을 원했다. 그리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배어 나오는 물기를 닦고 갈아입을 수 있는 옷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되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을 원하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세상이 이렇게 된 것도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욕심이 없다고 나를 떠난 그녀가 생각났다. 지금의 나는 여느 사람들처럼 바라는 것도 많고 욕심도 많은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런 나를 알면 돌아올까?

나는 허탈한 미소를 지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팻말이 있었다. 거기에는 하얀색 바탕에 검은색 굵은 글씨로 10% SALE 이라고 쓰여 있었다. 물에 번져 읽기 힘들었지만 분명히 그렇게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빨간 글씨로 백화점이라고 쓰여 있었다. 앞에 글씨는 물에 번져 있어서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없었지만 내가 들어 온 곳은 어느 백화점이었다.

그 때 깨달았다. 여기는 사람들이 붐비던 서울의 중심가 중 한 곳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나는 인천에서부터 여기까지 걸어 온 것이다. 평소에는 오지도 않던 곳을 이런 상황에 오게 되다니 그리고 다른 곳도 아니고 왜 여기로 걸어 왔는지 모르겠지만 난 서울 중심가에 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상관없다. 여기가 만물이 있는 백화점이라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서서히 기어가듯 일어났다. 희망이라는 따뜻한 글자가 바닥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천천히 눈에 힘을 주면서 주위를 둘러보자 점차 물건들이 형체를 갖추며 알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중에는 쓰러져 있는 마네킹들도 있었다. 무표정의 마네킹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기괴해 보였다. 나는 마네킹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아무 감정 없는 눈길로 나를 보는 마네킹 옆에 깨져 있는 유리 상자 안으로 이름 모를 반짝이는 보석들이 보였다. 다들 비싸 보였지만 지금 이 순간 나한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긴 예전에도 도움 안 되는 물건들이었지만…….

나는 보석들을 뒤로 하고 다시 걸어갔다. 망가져 있는 에스컬레이터 앞에 다다르고 위를 올려 보았다. 사나운 바람이 내 앞머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저것을 타고 올라가야 하나, 무너지면 어쩌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의심이 다시 공격해 왔다. 다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난 크게 숨을 들이 쉬면서 에스컬레이터를 노려보았다.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가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올라가다가 무너져 죽는 다면 정말 어이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 하자 신기하게도 떨고 있던 다리가 멈추고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래 난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다. 살기 위해서 못 할 것이 어디 있겠냐? 마치 또 다른 내가 나를 이끄는 것처럼 난 천천히 에스컬레이터로 향해 걸었다. 멈춰 있는 에스컬레이터에 오른발을 내딛었다. 터억 하는 내 발소리가 무너진 명품백화점 안에서 울려 퍼졌다. 난 숨을 참으며 왼발을 내딛었다.

뭔가 느낌이 묘했다. 붕 뜬 것 같기도 하고 바닥에 다리가 붙은 것 같기도 하고, 멈춰 있는 것 같기도 하면서 앞으로 가는 것 같기도 했다. 서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 말로 설명 할 수 없는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몸이 반응 하려고 했지만 움직이지 않으니까 그 순간 몸과 마음이 당황하면서 생기는 작은 틈일 것이다.

다음 발을 또 내밀었다.

에스컬레이터 중간까지 별 무리 없이 올라 갈수 있었다. 얼마큼 남았는지 세기 위해 고개를 들어서 위를 보았다. 다섯 걸음 정도 남았지만 다음 층까지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여성의류라는 팻말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다리에 최소한으로 힘을 주며 올라갔다. 2층에 도착했지만 둘러보지도 않고 바로 다음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여 계속 올라갔다. 겨우 3층으로 올라서자 안도감과 함께 다리에 피로가 쌓였다. 1층에서 3층으로 올라오는 발걸음이 살아남아 여기까지 걸어오는 발걸음 보다 더 부담스러웠고 힘들었다.

3층 남성의류에 올라서자 미국 국기와 함께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우주비행사의 사진이 보였다. 일단 그곳으로 갔다. 바지에서 코트, 벨트에서 모자까지 갖가지 옷들이 하나같이 미국국기가 새겨져 있었다. 난 고개를 돌려 다른 가게를 찾았다.

반대쪽에 이벤트관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나는 다시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도중 부서져 있는 마네킹들의 부속품들이 보였고 마네킹 팔 옆에는 한쪽 팔만 새 재킷에 넣고 죽어있는 남자의 시체가 보였다. 저렇게 누워 있으니 누가 마네킹이고 누가 살아 있던 사람인지 헷갈렸다.

이벤트 관에 들어왔다. 가판대에는 많은 옷들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었다. 마치 시장 잡화점 같았다. 이렇게 보니 백화점이라는 곳도 별거 아니었다.

난 항상 백화점에 오면 저절로 떠오르는 기분이 있었다. 그 기분을 따라가다 보면 중학교 때 반에서 단체 관람을 간 시립교향악단의 클래식 공연 날이 생각난다. 공연 내내 클래식 공연을 많이 다닌 것처럼 허세 부리는 반 아이들이 있었고 나는 그 아이들의 먹잇감이 되어 망신을 당했었다. 백화점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알지 못하는 고가의 상표들, 휘황찬란한 조명과 여자들, 어쩌다 옷을 고를 때면 다가와 관심도 없는 유행 얘기와 패션 용어들로 나를 기죽이던 점원들 그리고 그들 몸에서 나는 싸구려 향수 냄새, 냄새……. 안 돼 지금은 냄새에 대해서 생각 하면 안 된다. 그걸 생각 하다보면 그 뒤에 있을 불안과 좌절의 냄새를 맡게 될 것이다. 나는 서둘러 냄새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우며 옷을 주워들었다.

속옷부터 재킷까지 나는 눈에 보이는 데로 집어 들었다. 젖어 있는 윗옷을 벗다가 나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것이 확실하지만 그래도 나는 피팅룸으로 옷을 들고 들어갔다. 피팅룸에서 젖어 있는 옷들을 다 벗어 던지고 가지고 들어 온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옷을 갈아입기 전에 샤워를 하고 싶어 졌다. 수건을 내려놓으면서 나는 1층 잡화점에 있던 각종 피부미용 용품들이 생각났다. 그 곳에는 비누 비슷한 것들도 있을 것이다. 샤워를 하고 싶다, 거품을 내고 싶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싶다, 미칠 듯이 씻고 싶은 욕구가 지금 내리고 있는 비처럼 내 머릿속에 마구잡이로 내리기 시작했다.

난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리고 옷을 입지도 않았다. 예전에 허세부리는 사람들이 붐비며 화려함을 자랑했을 백화점을 나는 나체로 뛰기 시작했다. 어디서 그런 마음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조심스럽게 걸어올라 온 에스컬레이터를 몇 계단씩 뛰어 내려갔다. 1층에 세워져 있던 마네킹 다리에 걸려 넘어졌지만 바로 일어나 잡화점으로 뛰어 갔다. 생전 본적도 없고, 알지도 모르는 영어로 씌어져 있는 미용 용품들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손에 잡히는 데로 들고 밖으로 나갈 틈을 향해 뛰어 갔다. 틈 사이로 밖이 보였다. 빨간 공기와 비는 여전했다. 그 빗속 한복판에 나체인 상태로 뛰어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난 그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미친 듯이 내리는 비, 씻기 위한 물은 충분했다. 하지만 그 비로 인해 사람들이 죽었다. 난 과연 그 비를 맞으며 샤워를 할 수 있을까? 샤워를 끝까지 할 수 있을 까? 인류 마지막 생존자가 빗속에서 샤워를 하다가 나체로 죽는 다면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다 무너져 죽는 것보다 더 볼썽사나울 것이다. 어떡하지? 그냥 샤워를 할까? 포기할까? 난 망설였다. 망설이면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니 예전에 한 회사에 면접 보던 날이 떠올랐다. 집 밖을 나와 버스를 타기 위해 가던 길 갑자기 쏟아진 비에 옷이 젖었던 그날 결국 나는 면접을 포기 하고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비에 젖어 나타난 내 모습을 보고 불쌍하게 쳐다보던 우리 엄마, 죽는 순간 까지 비로부터 나를 막아주고 불쌍한 눈으로 나를 보며 죽어 있었던 우리 엄마. 지금 그 때 엄마의 눈이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멍하게 비 내리는 밖을 보았다. 거리를 가득 메우고 흘러가는 빗물들은 나체로 멍하니 서있는 나를 보고 한심스러운 듯 혀 차는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그 때 가슴 한 쪽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난 유일하게 저 빗속에서 살아남았다. 그 비로 몸을 씻는다고 죽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안 죽는다. 왠지 그런 확신이 들었다. 이렇게 무엇인가를 확신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자 몇 달 동안 잠잠했던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밑을 내려 보니 내 물건은 마치 저 곳으로 가라고 손짓 하듯이 까닥까닥 거리고 있었다. 나는 달에 첫발을 내딛은 우주비행사처럼 한발을 내딛었다. 차갑고 날카로운 빗물이 내 피부를 때리기 시작했다. 전에 날 공격하던 것과 다르게 내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 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나는 어깨를 피고 당당하게 걸었다. 자 봐라. 바로 이 모습이 세상 마지막 생존자의 당당한 걸음이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면서 천천히 부드럽게 그리고 여유롭게 빗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흘러가는 빗물은 내 발목까지 차올랐다. 나는 들고 간 미용 용품들을 세찬 빗물에 뚫릴 것 같은 빨간 색 자동차 트렁크 위에 올려놓다가 흠칫 놀랐다. 차 안에는 벌어진 입 밖으로 혓바닥이 길게 늘어져있고, 하얀색 블라우스 단추가 두 개쯤 풀어져 그 안으로 곱게 뻗은 목선과 쇄골이 보이는 그런 여자 ‘시체’가 있었다. 그 시체는 빗물을 직접적으로 안 맞아서 그런지 그렇게 심하게 훼손되어 있지 않았다. 살아 있었으면 나체인 나를 보고 미친 듯이 소리 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죽어서 의식이 없었고 나는 살아서 나체로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죽은 여자의 시체를 봐서 그런지, 차가운 빗물을 맞아서 그런지 내 물건은 힘을 잃고 쪼그라들었다. 여자 앞에서 자신감을 잃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나는 트렁크 위에 올려놓은 분홍색 튜브 용기를 들어 뚜껑을 열었다. 뚜껑을 열자 용기 입구를 은박으로 막아 놓은 것이 보였다. 나는 젖은 손으로 은박을 벗겨 냈다. 자꾸 미끄러져서 벗기는 것만도 오래 걸렸다. 튜브 용기를 오른손에 들고 왼손에 내용물을 짜냈다. 멀겋고 불투명한 하얀 용액이 흘러 나왔다. 용기를 내려놓고 손으로 문질렀지만 거품은 나지 않고 미끌미끌 하기만 했다. 다시 용기를 들어 보니 크림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이건 빨간 자동차 안에 혀를 내놓고 죽은 여자가 살아생전에 썼을 그런 피부 미용 용품이었다. 난 분홍색 튜브 용기를 던졌다. 용기는 날아가다가 떨어져 흐르고 있는 물살에 자취를 감추었다. 다른 용기를 들었다. 바디 샴푸라는 글자가 보였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거였다. 나는 뚜껑을 열어 던지고 거칠게 은박 마개를 떼어냈다. 그리고 왼손에 내용물을 짜냈다. 내 손에 올려 진 바디 샴푸는 비에 젖으며 금방 부드러운 거품을 만들어 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따뜻한 피가 도는 것 같은 희열을 느꼈다. 나는 양손을 비벼 거품을 만들어 냈다. 그 거품으로 온 몸을 구석구석 닦기 시작했다. 피부를 닳아 없앨 기세로 나는 온 몸을 손으로 비벼댔다. 그리고 평소에는 꿈도 못 꾸었을 민망한 자세로 내 몸을 차 안에 죽어 있는 여자 쪽으로 향하게 하고 닦았다. 왠지 모를 쾌감과 전율, 부끄러움 등 복합적인 감정의 파도가 몰아쳤고 왼쪽 입 꼬리가 올라가며 작은 실소가 났다. 마치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품은 내 손길을 따라 몸을 덮었고 미친 듯이 내리는 빗물은 내 몸에 달라붙은 거품이 싫은지 바로 닦아 내렸다.

거품은 흐르는 빗물에 따라 정처 없이 흐르다 사라졌다.

상쾌했다.

몸을 다 씻고 마른 옷의 기분 좋은 촉감을 모든 피부 감각으로 받아들이며 가구 매장 침대에 누워 있는 이 순간에 지금 눈을 감으면 제발 다시 안뜨기를 바랬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속으로 십까지 샜다. 다시 눈을 떴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속으로 십까지 샜으니 이 상황이 이어졌을 거야. 생각이 멈추지 않았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생각을 멈추려고 했지만 역시 힘들었다. 생각은 멈추지 않고 밟아도 고개 드는 잡초처럼 머릿속에서 피어났다.

폭신하게 나를 감싸고 있는 이불을 봤다. 이불은 하늘색으로 날아가는 새와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난 부드러운 이불을 말아서 덮었다.

그 때 그려져 있던 사람이 움직였다. 천천히 움직이던 그림은 점점 커지더니 뒤 돌아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난 그림을 자세히 보았다. 그러자 사람의 얼굴이 점점 떠올랐다. 그 얼굴을 나는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나였다. 내 얼굴을 하고 있는 그림은 어느 새 젓가락을 들고 있었고 하늘색 이불 위를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걸어 다니는 내 그림 앞으로 날아가던 새가 떨어졌다. 내 그림은 그 새의 살을 발라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새의 살로 보이던 것이 어느 새 변해 사람 형상을 하고 있었다. 내 얼굴을 하고 있는 그림은 젓가락으로 그 사람을 반으로 가르고 살을 발라냈다. 내장들이 터져 나왔다. 나는 역겨움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내 그림에게 해체 당하던 사람의 얼굴이 점점 눈에 들어왔다. 순간 나는 숨이 멎었다. 그 얼굴 역시 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발라먹고 있었다. 하늘색 이불은 새빨간 핏물이 번져나가며 나를 누르기 시작했다. 축축한 진흙탕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방으로 나를 감싸오던 힘이 강해지면서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속으로 핏물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나는 입으로 들어온 핏물을 거칠게 뱉으며 나를 압박하는 이불에게 반항했다. 얼굴을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내니 누군가가 나를 보는 것 같은 눈길이 느껴졌다.

이불을 발로 차며 침대에서 튕겨지듯 일어났다. 주위를 둘러 봤다. 이불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색으로 변해있었다. 똑, 똑 머리 위로 무엇인가 떨어져 흐르고 있었다. 위를 올려 다 보니 빗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꿈이었다. 나는 내가 나를 먹고 있는 그런 꿈을 꾼 것이다. 꿈에서 본 장면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돌리며 근육을 풀어주었다. 그때 천장 한쪽이 구멍이 뚫리며 빗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나는 얼른 침대에서 일어나 전에 챙겨놓았던 여분의 옷이 들어있는 가방과 우의를 집어 들었다. 제발 잠에 들면 다시 눈을 뜨지 않기를 그렇게 기도했는데 나는 다시 눈을 뜨고 말았다.

주섬주섬 우의를 뒤집어 입으며 내려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갔다. 건물 천장이 뚫려 곳곳에 빗물이 세어 들어오고 있었고 기분 탓인지 물의 색깔이 붉은 색을 띠고 있는 것 같았다.

1층 에스컬레이터에 다다르자 지하를 가리키는 화살표와 식품관이라는 팻말을 보았다. 그리고 꿈속에서 나를 먹고 있던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꿈 속 장면을 잊기 위해 다른 생각을 하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비가 내리고 정처 없이 걷기 시작한 후부터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었다.

먹을 것이 있나하고 밑으로 내려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이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뒤로 어둠속에서 날 노려보며 일렁이고 있는 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위에서는 빗물에 패여 건물이 부서지고 있었고, 밑으로는 물이 고여 차오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다리 뻗고 누울 수 있는 곳을 찾았지만 빗물은 내가 그러는 것을 바라지 않나보다. 나는 가방을 메고 어깨끈을 꽉 잡으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왔던 틈으로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비는 거침없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앞에 보이는 사거리를 향해 걷고 있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놓인 길을 따라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걷다가 무심코 앞을 본 나는 온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샤워를 할 때 던졌던 분홍색 용기가 물 위를 떠다니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옆에는 빨간색 자동차에 혀를 내밀고 죽어있는 여자가 보였다. 분명히 아까 지나쳤던 곳이다. 근데 왜 저것들이 저기에 있지? 제자리걸음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난 분명히 앞으로 걸었고 사거리가 나왔다.

마치 허상을 쫓고 허상에 쫓기는 기분이 들었다. 내 심장 뛰는 소리가 거리를 가득 매우는 것 같았다. 불안을 떨치기 위해 다른 생각을 해야 했다. 의식은 불안은 만들고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하지만 마땅한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무심코 다리를 보았다. 오래된 나무 기둥 같은 색에 두꺼운 면으로 만들어진 바지 안에는 평생 자신의 의지를 내세우지 않고 뇌가 그저 시키는 대로 걷고, 뛰고, 앉은 다리가 있을 것이다. 아니 있다. 의심이 돋지 않게 다른 생각에 집중해야 한다. 바짝 마른 장작 같은 볼품없는 다리, 남들한테 보이는 것이 싫어 한 여름에 반바지도 입지 않았다. 문득 내 다리가 평범했던 내 모습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다리로 태어나 묵묵히 맡은 일만 하며 평범한 다리의 역할만 했다.

남들보다 나를 빠르게 달리게 해주지도 않았고 남들보다 잘 생겨 나를 돋보이게 해주지도 않았던 다리가 내 삶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다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비가 온 이후로 내 다리를 본적이 없었다.

어제, 실제로 어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샤워를 할 때도 다리를 본 기억이 없다. 그저 거품 묻은 손으로 문지른 기억만 남아있었다. 그래도 그 촉감은 생생했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나는 곁눈질로 차안에 죽어있는 여자 시체를 봤다. 저 여자 시체처럼 되지 않으려면 다른 생각에 집중해야 한다.

난 팔을 들어 보았다.

근육도 없고 털도 나지 않은 피부 안으로 파랗게 헐떡거리며 뛰고 있는 핏줄이 보였다. 그러자 헐떡이던 핏줄이 점점 멈추는 것 같았다. 안 돼 다른 생각에 집중하자. 팔 역시 다리처럼 평범한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다리처럼 팔도 이질감이 들었다. 내 팔이 이렇게 생겼던가?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졌다. 내 몸에 달려 있는 것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이상했다. 하지만 내 어깨에 붙어있으니 내 팔이 맞을 것이다. 차가운 냉기가 한차례 내 목을 스쳐갔다. 피부에 닭살이 돋았다. 닭살을 보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비가 와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뇌가 음식을 못 구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알아서 식욕을 억제 하는 것인지, 무엇인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상했다. 사람이 몇 달이나 음식을 먹지 않고 살아서 움직일 수 있을까? 또 다시 의심이라는 놈이 바닥에서 스멀스멀 기어올라 왔다. 그 의심의 끝에는 냄새라는 단어가 줄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식욕과 냄새, 아무것도 안 먹었지만 난 살아가고 있고 사방에는 썩어가는 시체들이 즐비하지만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고 있다.

‘그건 니가 죽었기 때문이야’

톱날 같이 거칠고 감정이 섞여있지 않은 목소리가 머리 뒤에서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웠다. 나는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다시 뒤에서 들려왔다.

‘너도 알고 있잖아? 이제 그만 인정하고 니 영혼을 쉬게 해주지 그래. 불쌍하잖아 평생을 너 같은 놈에게 붙잡혀 살았는데 죽어서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나는 목뒤로 돋는 닭살을 느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본다고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알면서 왜 그래?’

“누구야?” 나는 소리 쳤다. 순간 귓속으로 기분 나쁜 냉기가 들어왔다.

‘애써 찾지 마. 나는 니가 보고 싶다면 보고 안보고 싶다면 안 보는 것이 아니니깐’

“악...이런 악마 썩 물러나 난 아직 안 죽었어.”

톱날 목소리는 유리에 쇳조각을 긋는 소리를 냈다.

‘이런, 이런 결국 생각하는 것이 악마구나 신을 믿지 않는 니 입에서 악마라는 말이 나오니까 좀 웃긴데?’

“뭐?”

‘신을 부정 한다며, 신을 부정 하면서 필요 할 때는 악마를 찾는 건 뭐야?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어둠이 있기에 빛이 있는 것처럼 선과 악은 공존 하는 거야’

목소리는 내 귓가에 되고 속삭였다. 귓속 깊은 곳에서 또 다시 전자음이 들리고 눈 주위가 격렬하게 떨었다.

‘그렇듯 나는 니가 있어서 존재하는 거야 그러니 나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것이지’

“저리가”

나는 앙상한 두 팔을 휘둘렀다. 하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난 죽지 않았어!”

두려움을 떨쳐 내기 위해 나는 있는 힘껏 소리 질렀다. 그 소리의 끝은 흐느낌으로 점점 변해갔다.

“난 죽지 않았다고”

목소리는 잠시의 여유도 없이 들려왔다.

‘니가 뭔데? 니가 생각해도 평범한 니가 뭐라고 남들 다 죽을 때 살아남았다고 생각 하는 거지?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거야. 죽음만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공평한 거지. 그런 죽음이 너를 피해갔다는 생각을 하는 거야? 설마 그럴 리가 없잖아. 안 그래?’

“웃기지마. 이렇게 두 다리로 서서 내리는 비를 맞고 있어”

나는 두 손을 펴 손바닥으로 떨어지는 빗물을 느끼려고 했다. 분명히 내 손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보이지만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명치 언저리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그리고 의심과 불안이라는 글씨가 가슴에 새겨지는 것 같았다.

나는 가슴을 쓰다듬으면서 심호흡을 했다.

“이것 봐! 나는 숨을 쉬고 있어 죽지 않았다고”

그러자 호흡이 멈춰지는 것 같았다. 목소리는 마음의 제일 약한 부분을 부수고 들어왔다.

‘지금은?’

“난, 난 생각을 하고 있어 그러니까 나는 죽지 않았다고”

‘생각이라…….바로 그 생각이 너의 문제야. 생각을 해야 죽지 않았다고 믿겠지만 그 생각의 끝은 항상 의심과 불안이지 그래서 내가 나타난 거야. 의심과 불안에서 편하게 해주려고’

“뭐?”

나는 목소리가 말한 의미를 곰곰이 생각했다. 나의 의심과 불안 때문에 나타나다니, 그런 지금 들리는 목소리는 의심과 불안에 사로잡힌 또 다른 나인가?

‘아니지 아니야, 의심과 불안에 사로잡힌 것은 너고 나는 그것을 풀어주려고 온 해방자지. 그리고 더 이상 생각하지 마 생각은 내가 할 테니. 너는 이제 그만 사라져.’

“웃기지마 이 몸은 내거야 이 정신도 내 것이고 너나 사라져”

‘왜 이렇게 욕심을 내지? 평소처럼 평범하게 하란 말이야, 내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넌 씻지도 못했을 거야. 너 말대로 우리가 최후의 생존자라면 그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너가 아니고 나야’

“우리라니, 무슨 헛소리냐 여기에는 나 밖에 없고 나만 존재해”

나는 의심,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머리를 흔들어 대며 뛰기 시작했다.

뒤에 매고 있던 가방에 왠지 목소리가 타고 있는 것 같아 벗어버렸다. 하지만 몸은 하나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앞만 보고 뛰던 내게 빗방울이 날아와 시야를 가렸고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든 나는 흐르고 있는 물살에 몸이 휘청거렸고 중심을 잃어 넘어지면서 물 아래로 갈아 앉았다.

나는 계속 갈아 앉았다.

물은 빗물 때문에 생긴 것 치고는 꽤 깊었다. 마치 이대로 내려가 지구 반대편으로 나올 것 같이 끝도 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눈을 떠서 수면 위를 보았다. 수면에는 여전히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수면에 부딪힌 빗방울은 제각각 물결을 이루며 퍼져나가고 있었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니 퍼져나가는 모습들이 하나같이 달랐다. 똑같은 속도, 똑같은 크기로 퍼지는 것이 없었다. 모두가 스스로 특별했고 평범하지 않았다.

물 밖으로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는 분홍색 옷을 입고 땀과 고통에 젖은 얼굴로 힘겨운 숨을 내쉬면서 나를 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엄마의 모습보다 훨씬 젊었지만 더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나를 보고 있는 눈빛만은 똑같았다. 엄마가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귓속에서 전자음이 들리면서 엄마의 소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 입모양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사.랑.해.우.리.아.기’

나를 만지기 위해 뻗는 엄마의 손에는 핏물이 묻어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빗물 때문인지 핏물 때문이지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남자인 것 같은 사람이 하늘색 수건으로 엄마의 땀을 닦아 주고 있었다.

아마 아빠일 것이다. 그 남자도 나를 보고 울먹거린다. 지금 나는 내가 태어나던 순간을 보고 있는 것이다.

‘어때? 마지막으로 니가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을 생각나게 해줬는데 만족하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하필 이럴 때 나타나다니 제발 사라져라

‘말 했잖아 니가 있기에 내가 있다고, 내가 사라지는 유일한 방법은 니가 사라지는 거야. 그럼 두 번 다시 내 목소리를 안 들어도 되지. 그렇다고 걱정 마. 니 평범한 육체는 내가 데리고 갈 테니.’

웃기지마. 사라지려면 니가 사라져.

‘이봐 친구. 얼른 사라지고 니 몸뚱이를 넘기지 그래? 그러다가 망가지면 안 되니.’

난 순간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세상에서 한 줄기 빛이 머리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 목소리의 주인이 살기 위해서는 이 몸이 필요하구나.

나는 신이든 악마든 누가 이 상황을 시작 했는지 모르지만 그 끝을 내가 내기로 마음먹었다.

‘어이 이봐, 그러면 안 돼 니 말 대로 유일할지도 모를 몸뚱이인데 빗물 속에서 그냥 죽으면 안 돼. 어서 몸을 내놔’

목소리는 날카로운 톱날이 되어 내 정신을 베어버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어느 순간 내 몸은 바닥에 닿았다. 그리고 순간 바닥에 생긴 작은 틈새가 보였고 그 틈에 앙상한 내 다리를 끼워 넣었다.

‘이런 젠장 다리가 끼었잖아. 나는 다리를 비틀어 틈에서 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다리는 깊이 박혀져 갔다. 젠장, 이제부터 제대로 살아보려고 했는데, 썩을’

나는 잠시 눈을 떴다. 수면 밖으로 보이던 엄마의 모습은 이미 사라졌다. 귓속에서 전자음이 들렸다. 나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다시 뜨지 않기를 바라면서…….

날카로운 선을 그리면서 그려지던 그래프는 서서히 직선이 되었고 그 모습을 보여주던 기계에서 전자음이 울렸다. 모니터를 보던 분홍색 가운을 입은 여자가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보고서에 시간을 적어 넣었다. 여자가 돌아 섰다. 그녀는 앞 이빨이 약간 튀어나와 잘 다물어지지 않는 입으로 늙은 연구원에게 보고를 시작했다. 그의 뒤에는 석양이 지는 하늘 사진이 그려진 블라인드가 창가에 쳐져 있었다.

“인류 보존 프로젝트 실험체 번호 WS1983-11번의 뇌파 및 심장 박동이 끊겼습니다. 지금까지의 기록들과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이번 실험체는 스스로 의식을 죽인 것 같습니다. 그는 이전 실험체들에 비해 의심하는 성격이 강했고 그에 따라”

"그만"

늙은 연구원은 주름진 손으로 얼굴을 비비면서 낮게 중얼거렸다. 여자 연구원은 피곤에 꺾인 상관을 바라보았다. 그는 모니터를 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 눈은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다가올 인류 멸망의 순간에도 인간은 본연의 본능대로 적응하고 살아남아야 하는데 의심이라는 또 다른 본능 때문에 죽다니 이런”

늙은 연구원은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는 창가로 다가가 블라인드를 제쳤다. 창 밖에는 비가 창문을 깰 듯이 위협적으로 내려치고 있었다. 창문에 비친 그의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나는 것이 보였다.

댓글 2
  • No Profile
    흠.. 13.08.21 14:48 댓글 수정 삭제

    스토리 보드를 짜시고 쓰신건가요, 아니면 손이 가는 대로 쓰신건가요? 읽다보니 그냥 그런 의문이 드네요.

  • No Profile
    초이 13.08.21 23:14 댓글 수정 삭제

    기본적인 스토리 전개는 구상 후에 안에 내용은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데로 써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2079 단편 [탄생] 달과 이름 단식광대 2012.03.30 0
단편 비, 내리다.2 초이 2013.08.20 0
2077 단편 너구리맛우동 2012.12.15 0
2076 단편 사조백수전射鳥白手傳 dcdc 2012.01.08 0
2075 단편 하나의 공간 아이 2003.07.14 0
2074 단편 어느 한 속어의 유래2 azuretears 2005.11.27 0
2073 단편 별자리와 꿈의 기원 너구리맛우동 2013.01.15 0
2072 단편 25시 azrael 2004.01.19 0
2071 단편 Hug1 jxk160 2003.09.10 0
2070 단편 자살방조를 거부하기1 황당무계 2005.12.20 0
2069 단편 쥐의 몸, **의 뇌 gock 2013.11.02 0
2068 단편 이어지고 들러붙다 나폴마틸다 2012.09.10 0
2067 단편 태풍 속에서 백철 2013.11.29 0
2066 단편 신본격 추리 역사물 : 토끼 간 실종사건2 qui-gon 2008.09.05 0
2065 단편 워프기술의 회고 하루만허세 2013.06.03 0
2064 단편 부자의 나라 니그라토 2013.07.04 0
2063 단편 빌딩 마리아주2 조원우 2011.07.08 0
2062 단편 호모 아르텍스의 기원 닐룽 2013.08.15 0
2061 단편 그녀가 잠을 자는 이유 민아 2013.03.09 0
2060 단편 그 여름의 흉가1 몽상가 2009.04.15 0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110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