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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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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級 亡想劇場 : 無賴圖
                아미파 최후의 날
                (21분 삭제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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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혹성이 충돌하기 정확히 93년 42초 전, 아님 말고..

-아, S 그립다..

J는 갑자기 고개를 숙여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S면..
  그..전에..니 여자친구?
  아미파峨嵋派 입문한다고 너랑
  헤어진 애?
-..그럼 S가 걔 밖에 더 있냐.

J는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자신의 잔에 소주를 채웠다. 나는 그가
다 채워서 한 잔 비우는 것까지 보다가 말했다.

-2년이나 흘렀잖아.
  아직도 그립냐?
-너는 내 마음 모른다.

J는 먼산이라도 보듯 고개 돌리며 말했다. 아마 그렇게 하면 자신
이 애수에 찬 양조위처럼 보일 것이라고 착각한 것도 같다.
그의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나는 그의 마음을 말해주었다.

-술마시더니 또 발정났구만.

옛말에 이르길, 중이 구멍 맛을 알면 닭 궁둥이 보고도 침흘린다
했다. 정말로 그런가 보다. 물론 J는 아무렇게나 탈선하지는 않고
S에게만 일편단심스럽게 집착하는 모범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날 이후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신의 의지를 절차
탁마했다. 그리고 어느날 나와 단 한 마디 상의도 없이 -혼자
방구석에서 술 마시다가- 분연히 일어나서 무모한 계획을 실행
했다.
긴 장도리 한 자루를 들고 아미파에 입성한 것이다. 단지 S를
덮치..되찾기 위한 단독 침공이었다.
그런데 잠깐, 잊고 있던 아미파의 설정에 대해 급조해보자면 대충
이런 식이다. 12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무림 명문으로서 현재
23대 장문인 '멸절'을 중심으로 4명의 여호법女護法과 16명의
여나한女羅漢, 88명의 여신장女神將과 833명의 여승女僧으로
이루어져 있다. -女 자를 붙이는 것은 '그'와 '그녀'를 반드시
구분해서 명시해야만 성별을 인지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번거
롭지만 감수하는 부분이다- 금남禁男의 장소인 아미산에 벌건
얼굴로 알콜 냄새 풀풀 풍기면서 장도리 들고 찾아갔던 불청객 J
는 제대로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포위 당하여 사지와 오장육부를
팝아트처럼 난도질 당한 뒤 아미파 당문 앞에 내걸렸다.
새벽에 몰래 그 앞에 가서 늘어진 친구의 내장을 보고 발길을
돌린 나는 순대국을 먹고 이쑤시개를 물며 생각에 잠긴 척했다.
그날밤이었다. 대충 이불도 걷어차고 뒹굴거리며 자고 있을 때
갑자기 찬란무쌍한 빛이 비추길래 돌아보니 누군가가 나의 배꼽
위에 떠 있었다. 나의 시선이 아오자이가 잘 어울리는 각선미를
넘어 전기톱을 짊어진 상체를 지나서 얼핏 보면 귀여울지도 모를
턱선을 지나 반쯤 열려있는 두개골에 이르렀을 때 그는 말했다.

-내 이름은 대천사 지브릴.
  너에게 명할 것이 있어서 왔노라.
-낮에 오지 왜 하필...
-낮엔 더우니까, 아무튼 네 친구
  J가 처참하게 죽은 것을 알고
  있다. 복수, 하지 않겠는가?

지브릴의 말에 나는 예의바른 청년답게 하품부터 해주었다.

-아미파의 거만함이 날로 달로
  강해지고 있다. 특히 멸절이
  의천검을 차지한 이후 나날이
  무공이 달라져서 이대로 가다간
  신계를 위협하게 될지도 몰라.
  네가 가진 복수심의 크기를 알기
  에 천벌을 대신 집행할 권리를
  주도록 하겠다.
  멸절을 죽이고 아미파를 해산
  시키고 S를 되찾아라!
-죄송하지만 거절합니다.
  나가주세요.

지브릴은 피식하는 소리가 새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손가락
으로 자신의 옆머리를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그럴 줄 알고 이미 수를 썼다.
  네 머리 속에 시한폭탄을 설치
  설치했지. 기한은 일주일.
  스위치는 당연히 내 손에..
  어떻게 할래?
-..말도 안돼!
-돼.
-천사 맞어?
  천사면 인간을 도와야죠!
-인간을 왜 도와?
  너희가 별 거나 되는 줄 아나봐.
  크툴루의 장난감들 주제에..
  어쨌건 너한테 맡긴다.

그 순간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너무도 생생한 꿈에 기분나쁘다고 생각할 때 나는 왼손에 쥐어진
무엇인가가 있는 것을 알았다. 명함같이 작은 종이 조각이었다.

  불신지옥不神地獄

네 글자의 간단 명료한 문구가 가진 의미에 대해 생각하며 나는
냉장고에서 맥주 캔을 꺼내어 원샷하고 밤을 지새웠다.
J를 위한 복수. 그것은 나의 숙명이었다. 친구 L, M과 N, O, P,
Q, T는 이런 나의 결심을 이해못하겠다고 했지만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해야한다. 일단 현재를 살아남아야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마을에서 가장 용하다는 점쟁이 '고천살성'을 찾아가
앞으로의 운을 물었다. 고천살성은 화투패를 몇번 던져보고는
말했다.

-그대가 여기 남는다면,
  평화롭게 살 것이오.
  여자를 만나서 아이도 낳고
  그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또
  아이를 낳을 것이오.
  그들은 당신을 사랑하고 죽으면
  그리워할 것이오.
  하지만 먼 훗날 자손들은 당신
  을 기억할 수 없소.
  이름은 사라지는 것..
  하지만 뜻한 곳으로 간다면,
  그대는 영원한 존재가 될게요.
-매트릭스의 키아누 리브스만큼?
-..외모는 안되지만 뭐 그렇다고
  칩시다.

그 다음 단계를 향해 나는 나아갔다.
아미파를 상대할, 멸절을 쓰러뜨릴 무기가 필요했다.
일본식 주점 쓰시비싸다에 들어갔다. 이제 막 문 열었는지 한산한
술집에는 노인만 있었다.

-자, 어떤 술을 드릴까?
-'쿠사나기'를 맛보고 싶습니다.
  '미야모토 야사시'님.

단무지와 붉은 생강을 기본 안주로 내놓으며 말하는 노인에게
나는 살짝 쪼개는 얼굴로 거만하게 말했다. 노인은 흠칫 놀라더니
곧 전설의 무명 검객 야사시 본연의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쿠사나기를 찾는 자는 348년
  만이군. 쿠사나기는 한 번 검집
  에서 나오면 피를 맛보기 전에는
  안 들어가는데 정말 보고 싶나.
-멸절을 향해 복수하러 가는 길
  에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뭣이! 멸절...

야사시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멸절의 의천검에 부러졌던
  쿠사나기도 복수를 원하고
  있을 것입니다.

나의 말에 야사시는 일그러진 표정을 짓더니 곧 몸을 일으키고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자네를 위해 쿠사나기의 날이
  다시 벼려졌는지도 모르겠군.
  반드시 멸절의 피를 묻혀서
  돌려주게.

미리 준비해뒀던 22가지 폼나는 대사를 다 써보기도 전에- 너무도
쉽게 쿠사나기를 빌린 나는 허탈감 속에 다시 돌아왔다.
전설의 검 쿠사나기. 검은 검집에 새겨진 헬로키티 마크가 심상치
않았다. 뽑아내자 길이 40cm에 폭이 넓은 칼날이 마치 광어를
얇게 뜰 준비가 된 듯 보였다. 번뜩이는 칼날에 적힌 '직사광선에
노출하면 변색될 우려가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아니었다면 범상
한 칼과 다를 것이 없었다.
칼을 한번 꺼내면 피를 맛보기 전에는 안들어간다는 말은 사실
이었다. 검집에 엄청 안들어가고 버티길래 할 수 없이 모기를
베어죽이자 그제야 스무스하게 들어갔다.
이제 명검도 손에 넣었으니 복수를 위해 남은 마지막 단계를
이루어야 한다. 가장 어려운 결정을 할 시간이다.
여성들만 있는 무림유파에 남성은 접근이 금지된다는 것과 여전사
의 면모를 보여주려 했는데 시작을 남성으로 잡는 바람에 애매
했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인 성전환은
성공으로 끝났다.
일반인이라면 감히 하기 어려울 나의 결단에 대해 L, M과 N, O,
P, Q, T는 예상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M은..

-네가 전에 미니스커트 입는 거
  볼 때마다 토쏠렸는데 이제는
  좀 낫겠다.

라는 호평을 해주었다. 그랬다. 먼 옛날, 동방불패가 규화보전의
마지막 단계를 얻기 위해 저질렀다는 마지막 결행을 나는 J의
복수를 위해 이루어낸 것이다.
그 사이 5일이 흘렀다. 나는 마침내 비장한 각오로 아미산을 향해
나아갔다.

*

아미파 상황관제실로 들어선 멸절은 말했다.

-어젯밤 꿈에 대천사 지브릴을
  만났는데 아미산에 침입자가
  있다고 했다.
  침입자의 이름이 '나'라는 것
  까지 알려주더군.
  어서 찾아내라!

상황관제실의 여나한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앗, 장문님.
-무슨 일이냐!
-구글 검색 결과 나에 대해서
  4억 3천 8백만 개의 자료가..
-이런, 왜 그렇게 많지.

당황한 멸절은 입술을 깨물며 긴장한 눈을 돌렸다.

-아미산 내부 인원 체크는 어때.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습니다.
  여호법 4명, 여나한 16명,
  여신장 88명, 여승 833명.
  이상 없습니다.
-어, 그래.

뒤돌아서던 멸절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아까 내가 1명 심부름 보냈는데
  어떻게 그렇게 나와!
-..천잰데?
-10분 내 전원 집합. 명령이다!

10분 뒤.
멸절은 아미파 운동장에 모여 있는 여호법 4명, 여나한 16명,
여신장 88명, 여승 833명을 내려보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는 사람 얼굴이 생소한
  사람 손들어.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쉰 멸절은 여승 한 명
을 가리키며 말했다.

-S, 옆 사람이 생소하지 않나?
-네. 예전 남자친구 동창인데요.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멸절은 하늘을 올려보았다. 맑다.
S의 옆에 서 있던 나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리고 S의 목에 팔을
감아 쿠사나기를 검집 채 들이대면서 말했다.

-멸절.
  내가 나다!
-그런데?

의아한 듯 답했다가 잠시 뒤에야 대뇌에서 말의 뜻을 처리한
멸절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포위해라!
-잠깐!
  모두들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야.
  이거 보이나?

나는 스위치를 들어보였다.

-너희들이 방심하는 사이 난 운동장
  여기저기에 16개의 폭탄을 설치
  했어.
  모두 조심하는게 좋을 걸.

다들 머뭇거리고 있을 때 목을 잡힌 S가 나의 손을 깨물었다.
고통스러운 듯 표정을 일그리던 나는 자신도 모르게 스위치를
눌렀다.
S를 제외한 831명이 허공을 날아올랐다가 가뿐히 떨어졌다. 신체
가 온전히 정형을 이루어 떨어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머리 위
에서 쏟아지는 액체에서 특유의 비린내를 맡은 나는 혀를 내밀어
입가를 닦았다.
S를 옆으로 버려두고 나는 점점 앞으로 걸어왔다. 걸음을 옮길
수록 여신장들의 포위망이 좁아지고 있었다.
나는 무표정하게 검집에서 뽑지 않은 칼로 옆에 선 여신장의 어깨
를 내리쳤다. 검을 놓친 신장은 뼈가 내려앉은 어깨를 움켜쥐고
무릎으로 주저앉았다. 사내는 검집을 돌려 그녀의 목뼈를 쳐서
부러뜨렸다.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멸절은 피식 웃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석조전
으로 향하는 계단 아래 섰다.
칼이 칼집에서 미끄러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나는
무표정하게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앉아있던 세 여신장이 천천히 다가왔다.
한명이 검을 내리치려는 것을 검집으로 손목을 올려쳐서 동작의
틈을 만들어놓고 검집 끝으로 인중을 찍어 밀쳐내면서 동시에 대
각선으로 베어내리는 검을 막아냈다. 그러면서 힘을 실어 휘둘러
베려던 자의 목을 쳐내어 뼈를 부러뜨렸다. 그 옆에 서있던 자는
칼을 휘둘러보지도 못한 채 옆사람이 쓰러지며 허우적거리는 칼
날에 이마를 살짝 베이자 놀라 뒤로 물러섰다.
나가 검집에 손을 얹자, 멸절의 눈짓에 따라 일단의 인원이 달려
들었다.
나의 칼날이 크게 원을 그리며 두 명의 머리를 횡으로 갈랐다.
왼팔이 잘린 여신장이 괴성을 지르며 나에게 칼을 뻗었다.
옷으로 찢으며 파고든 칼날을 옆으로 흘리며 나의 칼이 그녀의
머리를 종으로 긋자 혀가 쏟아지듯 내밀어졌다. 거구의 여신장이
철퇴를 휘둘럿지만 동료의 애꿎은 머리만 터트렸다. 나의 칼이 그
신장의 배를 찌르고 들어가 방향을 바꾸더니 횡으로 그어 빠져나
와 옆에 있는 자의 갈비뼈 사이에 박혔다.
3년도 더 전에 썼던 글의 장면을 울궈낼 수록 죽은 자는 늘어났다.
살아있는 자들은 공포에 떨면서도 홀린 듯이 사내에게 덤벼들었다.
멸절과 여호법, 여나한들은 이미 석조전 안으로 물러나 있었다.
노쇠한 여신장이 나를 낫으로 베려다가 바닥에 있는 시체를 헛디
디고 옆으로 쓰러지며 동료의 손목만 그었다. 살짝 긁힌 손목은
잠시 후 쿠사나기의 날에 날아갔다. 노쇠한 여신장은 공포에 질려
물러나려다 핏물에 미끄러져 바닥에 넘어졌다. 그녀의 배 위로 옆
에서 무너져내리는 상반신이 들고 있던 칼끝이 떨어지며 박혔다.
이 아수라장 속에서도 여신장들은 즐거운 듯 슬픈 듯 미친 듯
비명지르며 끊임없이 칼을 휘둘렀다.
거구의 여신장이 나의 손목을 꽉 쥐었다. 나는 쿠사나기를 살짝
던져 다른 손으로 받아서 턱 아래에 꽃아넣었다. 정수리를 뚫고
들어갔던 칼날이 빠져나오자마자 나는 계단 위에 선 자를 향해
쿠사나기를 던졌다. 회전하며 날아가는 칼을 따라 난간을 달려
올라간 나는 쿠사나기가 인중에 박힌 자의 얼굴에서 다시 칼을
뽑아내며 따라 올라온 자의 다리를 그었다. 그리고 난간에서
뛰어내리며 앞에 보인 여신장의 관자놀이를 찍었다. 왼쪽에서 칼
을 뻗으며 달려온 자의 손목은 나의 손에 잡아끌려 오른쪽에 있는
자의 목에 칼을 찔러넣었다. 반토막만 남은 칼은 왼쪽에 있는 자
의 눈에 되돌려졌다. 대각선에 찔러오는 칼날이 나의 귀를 반으로
쪼갰지만 쿠사나기를 뒤로 향하게 바꿔쥐며 상체를 앞으로 숙여
위로 그었다.
나에게 자신의 목숨만이 목적이듯이 그녀들에게 목적은 단하나.
나의 죽음이었다.

*

문이 열린 석조전 내부는 조용했다. 새가 새겨진 융단을 밟고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 다가가던 나는 멈춰섰다.

-어서 나오시지?

계단 아래 앞에 원형으로 세워진 16개의 기둥의 중앙에 선 나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16 여나한은 기둥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너는 무슨 무공을 익혔느냐?

여나한 중 하나가 새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잠시 턱을 쓰다듬
으며 생각하다가 말했다.

-특별히 익힌 무공은 없는데..
  굳이 말하자면 주인공을 약간
  익힌 것 같네.

여나한들의 얼굴에 경악의 표정이 스쳤다.

-싸우려던 사람들 다 어디갔나.
  왜 이렇게 안덤벼.

나의 푸념에 여나한들은 다시 사나운 기색으로 바꾸며 일제히
덤벼들었다.
공중으로 몸을 띄웠던 나가 다시 착지했을 때, 16방향에서 거리를
좁혔던 여나한들은 동료의 칼이 꽂힌 몸을 뒤로 눕혀 절명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웃던 나는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긴장했다.

'수명 사용 종료 20분 남았습니다.
  연장을 원하시면 폭파 스위치를
  꺼주시기 바랍니다.'

지극히 친절한 안내문이 머리 속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황급한
걸음으로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

제 1 여호법이 쏜 총탄은 쿠사나기의 넓은 검신에 튕겨 자신의
명치를 뚫었다.
제 2 여호법이 쏜 장풍은 위협적이었지만 무생물의 숨통을 끊는
효과만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덕분에 쿠사나기가 변색되었다.
제 3 여호법이 쓴 헤드락은 두려웠지만 옆구리에 대한 무차별적
칼침으로 되돌려졌다.
제 4 여호법이 휘두른 잔디 깎는 기계는 정말 무서워서 눈물이
다 나올 정도였지만 고장났는지 금방 멈추었다.
  
변색된 칼을 들고 자신의 방에 뛰어든 나를 보고 멸절은 콧방귀를
뀌며 슬로우 모션으로 몸을 일으켰다. 손에 쥔 의천검의 술이
가볍게 흔들렸다.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그러게나 말입니다.

나는 대답하며 쿠사나기에 늘어붙은 핏덩이들을 한번 털어냈다.
새하얀 바닥에 튄 핏방울을 보며 살짝 눈을 찡그린 멸절은 의천검
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말해줄 것이
  있다.  
-빨리 빨리.

'수명 사용 종료 5분 남았습니다.
  연장을 원하시면 폭파 스위치를
  꺼주시기 바랍니다.'

뇌 속의 목소리가 울리는데 멸절이 시간 끌려는 모습에 갑갑한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재촉했다.
멸절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니 에미다!
-부모 노릇이나 제대로
  하고 나서 그 말하시지.

나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멋쩍어진 멸절은 혀를 한번
차고는 의천검을 빼어들었다.
의천검의 검기가 나의 상의를 배꼽티로 만들었다. 변색되고는 영
약해진 쿠사나기의 검기로는 상대하기 힘든 것을 알지만 접근전
외에 뾰족한 수가 없는 나는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멸절은 다시금 회유 커맨드를 날렸다.

-나와 함께 지구를 정복하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믿든지
  말든지 하지.
  이런 산 속에서 백날 애써봐야
  무슨 지구 정복한다고..
  아 빨리 덤벼요. 시간없어.
-네가 이긴다고..
  폭탄이 멈출 것 같아?

멸절은 혀를 차며 냉소를 던졌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천정을
올려보며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멸절을 향해 쿠사나기를 흔들어보이며 말했다.

-이제 와서 물러설 수도 없는 걸.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피처럼 아름답게 죽으시던가..

말을 마친 나는 격보激步로 나아가며 쿠사나기를 뻗었다.

<終>

감독 & 각본 & 촬영 & 조명 & 효과 & 음향 : 異衆燐
모티브 & 참고 자료 : 영화 13편, 출판물 4편, 비출판물 2편 (명단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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