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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그 아저씨를 위하여

2007.08.30 14:1908.30

그간 격조했습니다.
'그 아저씨를 위하여'는 예전에 써둔 글이고, '오규수'는 신작입니다. 음... 그냥 그런 겁니다.(벅벅벅)


[단편] 그 아저씨를 위하여

Copyright @ 2006 by박 찬일(Chaneel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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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처럼 상냥한 웃음으로 손님을 맞습니다. 저에게 인사를 하는 기특한 손님도 있지만 대부분은 저를 무시하고는 곧장 책장 쪽으로 가곤 합니다. 그리고는 늘 하는 말이 있지요. 대개 들어오는 첫 손님들이 하는 말은 그겁니다.

“아저씨, 신간 들어왔어요?”

그러면 나는 신간 안내판을 보라고 건성으로 대답하기도 하지만, 저와 친한 경우에는 좀 더 친절하게 신간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특히 아저씨라 하지 않고 ‘형’ 이나 ‘오빠’라고 불러오면 더더욱 친절해 지지요. 저는 그런 것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데, 제 나이가 이제 고작 스물 여덟로 아저씨라 불리기에는 지나치게 젊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역시 오빠 라던가 형이라고 불리기에는 조금 나이가 들긴 들었나 봅니다. 스물 셋의 제 동생이 입영 통지서를 받고 군대 가기 전가지만 해도 제가 앉아있는 이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동생은 오빠나 형 소리를 들었거든요. 이건 나이의 문제라기 보다는 군대의 문제일까요?

“이틀이나 늦었어.”
“에엑! 까먹었어요! 좀 봐주세요 아저씨!”

이렇게 나오면 저는 절대로 연체료를 받아내고야 맙니다. 하루 늦을 때마다 만화책은 200원, 소설책은 300원씩 받지요. 딱히 큰 돈은 아니지만 빌리는데 만화책이 신간은400원, 소설책이 800원인 것을 감안하면 꽤 되는 돈인 겁니다. 물론 예쁜 여학생이 “아이 오빠, 좀 봐줘요” 하고 나오면 연체료를 안 받지요.

자아 이쯤 되셨으면 짐작하셨겠지만 저의 직장은, 아니 직장이라기는 뭐하고 아무튼 현재의 일자리는 도서대여점인 겁니다. 몇년 전 회사를 명예퇴직하신 저희 아버지는 여러가지 사업을 고려하신 결과 최종적으로는 PC방과 도서대여점의 사이에서 오래 고민하셨습니다. 저는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었지만 결국 도서대여점으로 정해지게 되었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후 1년간 휴학계를 낸 저는 아버님의 사업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시급 500원의 처절한 아르바이트지만 부모님 사업을 공짜로 도와드리던 효자 동생에 비하면 나은 셈이죠. 저는 노동력 착취라고 항의해 보려고 했지만 엄마친구 아들이 두 달 전 국내 모 대기업에 취직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임금인상에 대해서는 포기했습니다.

이 도서대여점(대개 책방이라고 부르죠) 아르바이트는 지루하긴 하지만 또한 즐겁기도 합니다. 저는 책을 즐겨 읽는 편이고, 딱히 책을 가리는 편은 아니라서요. 아무거나 한권 꺼내 읽다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죠. 소설책도 즐비하고 만화책도 즐비합니다. 적당히 읽다가 슬슬 책장에 있는 걸 반쯤 다 읽었다 싶으면 한 사분지 일은 반품해 버리고 신간이 들어오니 읽을 거리가 줄어들지도 않습니다.

“아저씨, 강영웅 판타지아 가다 26권 나왔어요?”
“그거 다음달에 나올 걸.”

나는 하품하듯 말하고 소년을 보내버립니다. 강영웅 판타지아 가다는 요새 상당히 잘나가는 소설이죠. 얼마나 잘 나가는지, 10권으로 1부 완결하더니 2부 3부 하면서 지금은 26권까지 나왔잖아요? 이런 속도로 나가다간 40권쯤에야 완결될 모양입니다.

잘나간다는 건 저희 책방 기준으로 본전의 다섯배 정도를 뽑아낼 수 있는 책이란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말해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그저 그런, 소위 말하는 이계깽판물입니다. 저희 가게는 요새 들어오는 판타지 소설들을 네가지로 분류합니다. 첫째로, 작품이 뛰어나면서도 인기가 있는 글. 아주 드문 경우로, 이런 녀석들은 반품되지 않고 책장에 자기 고정 자리를 지키게 됩니다. 두 번째가 저도 그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은 뻔하고 질리는 소설이지만 소위 ‘주류’를 탄다고 하는 인기가 있는 소설입니다. 이런 경우 역시 꽤 오래 자리를 지키지만 1년이 넘어가면 반품하던가 뒤의 안보이는 자리로 옮겨지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신간이 나오고 나서 꽤나 폭발적으로 대여가 되기에 본전 이상을 뽑죠. 저희 가게는 사실 이 두 번째 소설들이 먹여 살리고 있기 때문에 저는 불평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 종류는 제가 읽기엔 재미있는데 우리 가게의 주 고객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종류죠. 이런 책들은 가끔 저한테 들여놓으라고 요구하는 녀석들이 있고, 저도 들여다 놓고 읽고 싶지만 매니아 두서넛을 제외하곤 잘 안나가는 글이라서 들여놓지 않기 마련이죠.

네 번째 종류는 그다지 언급할 필요도 없는 것으로 제가 발로 써도 그보다는 잘 쓰겠다 싶은 수준인데다가 재미마저 없어 잘 나가지도 않는 글입니다. 이런 책들이 출판된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입니다. 이 출판사들도 먹고는 살아야 할 텐데, 걱정을 하면서도 저는 우리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가차없이 이런 책들을 반품해 버립니다. 그러고 보면 두 번째 종류의 책들이 작품성이 없는 것도 아니에요. 어쨌든 인기를 끌잖아요?

아차,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손님을 놓칠 뻔했습니다. 나는 내 앞에 놓여진 책 두 권을 뒤집고 바코드 인식기를 들이댑니다. 삑 하는 소리와 함께 컴퓨터가 그 책들을 대여목록에서 삭제시킵니다. 반납을 뜻하는 거죠. 나는 눈앞의 손님에게 상냥하게 웃습니다. 한 번도 반납일자를 어기는 적이 없는 분입니다.

그래요, 분입니다. 나는 그분이 새로 빌릴 책을 고르기 위해 책장에 가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오늘도 생각에 잠깁니다. 제가 이 손님에게 존칭을 사용하는 이유는 이 분에 저보다 연세가 많으시기 때문입니다. 흔한 일은 아니죠. 최근 들어 책방에 드나드는 연령층은 상당히 낮아졌습니다. 초등학생들이 들어와서 만화책과 소설책을 빌려가는 경우도 요새는 몹시 늘어났습니다. 제가 책방을 드나들던 어린 시절만 해도 초등학생이 책을 빌리는 일은 드물었죠. 아무튼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이 셋은 좀 주의해야 합니다. 특히 그림체가 멋있는 만화책과 요즘 나오는 예쁜 일러스트들이 들어있는 소설책들은 곧잘 그림이 오려지곤 해서 꽤 골치가 아픕니다.

그러나 지금 책장에서 책을 고르시는 손님은 그런 걱정을 조금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은 손님이라봐야 기껏해야 삼십대 초반이 전부인데, 이 분은 특이하게도 쉰은 넘으신 듯 합니다. 아니, 예순 가까이 되셨다고 할까요? 직장인이신 듯 꼭 퇴근시간, 그러니까 여덟시 쯤 저희 가게로 들어오시죠. 저희 가게는 밤 9시까지 문을 여는데, 한 여섯시가 지나면 거의 손님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눈앞에 계신 손님은 매우 조용한 가운데 책을 고르십니다.

언제나처럼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으시고, 인상 좋아보이시는 얼굴로 반백의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책을 고르십니다. 나이가 꽤 있으셔서 그런지 책을 고르는 것도 꽤 오래걸리시지만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그러면 그 분은 한 삼십분 정도 걸려 두 권을 뽑아오십니다.

컴퓨터에는 아까 반납시에 떠올랐던 아저씨의 회원정보가 떠올라 있습니다. 저는 아저씨가 내미시는 책을 받아 바코드를 인식합니다. 그러면 컴퓨터는 자동으로 책의 제목을 인식해 아저씨가 대여하신것으로 기록하지요. 제가 하는 일이라곤 고작 그 정도, 그리고 반납된 책을 제자리에 꽂는 정도입니다. 한가하기가 그지없죠. 그렇지만 이 분은 민망스럽게도 늘 한마디를 건네십니다.

“고맙네, 학생. 수고하게.”

그래요, 이 분은 저를 학생이라고 불러주시는 참 좋으신 분입니다. 하기사 저는 학생이 맞죠. 휴학계를 내고 있을 뿐이긴 하지만요. 그러나 좋은 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책 두권을 들고 나가시는 뒷모습을 보면서 저는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을 감출 순 없습니다. 아마 저희 고객중 최고 연장자이신 것이 분명한 그분이 빌려가시는 책은 주로 ‘이계용 대륙정벌기’, ‘알란트리고 전기’, ‘차원을 넘어서’ 등등등 주요 대여층이 저연령인 이계이동물이거든요. 이계이동물이 수준이 낮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이계이동물이 좀 식상한 이야기인데다가,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저만한 연세의 분이라면 판타지를 거들떠도 보지 않는 게 정상이라는 거죠.

저 분이 다니기 시작하신 건 한 삼개월쯤 되었습니다. 아주아주 멋쩍은 듯 들어오신 그분은 조금 망설이다가 저에게 와서 물었죠. ‘여기, 혹시… 강영웅 판타지아 가다 라고 있나?’ 그 말을 하시면서 그 분이 얼마나 얼굴이 벌개지시던지, 저까지 무안하더라니까요. 그래요. 그 연세에 그런 말을 하시긴 좀 어려우셨을 거에요. 아무튼 그렇게 저희 가게에 첫 발을 들이신 그 분은 그로부터 이틀에 한번씩, 일주일에 세 번 꼬박꼬박 들리십니다.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이렇게 세 번 오십니다. 일요일에는 제가 일을 안하고 부모님이 일하시는 관계로 잘은 모르지만 아마 안 오신다고 생각합니다. 반납하러 월요일날 오시거든요. 소설책의 대여일은 사흘이기 때문에 연체료도 한 번도 물으신 적이 없고, 꼬박꼬박 두 권씩 빌려가시는 데다가 단 한번도 어김없이 여덟시 즈음이면 나타나셔서 책을 반납하고, 책을 고르시고는 대여해 가십니다. 그렇게 그 아저씨는 저희 가게 단골이 되셨습니다.

지난달이었을까요, 저는 슬슬 그 아저씨가 판타지에 익숙해지셨다 싶으셨을 때 쯤 넌지시 물었습니다. ‘아저씨, 이 건 어때요. 좀 오래된 건데, 진짜 재미있어요. 정말 좋은 소설이에요.’ 그러면서 제가 권한 그 소설책은 판타지 소설계에서 최고의 작품을 논하라면 그 후보에서 빠지는 적이 없는 유명한 그녀석이었죠. 작품성도 좋은 데다가 재미도 좋아서 오년째 책장에 자리를 지키면서도 꾸준히 대여가 되는 녀석입니다. 오년쯤 지난 케케묵은 소설책은 구석에 쳐박혀 대여되는 일이 거의 없는 데에 비하면 이 녀석은 정말 대단한거죠. 그 표지를 잠깐 보시던 아저씨는 물어오셨습니다.

“그거 퓨전판타지인가?”

여기서 퓨전판타지라는건 이계이동물의 다른 말입니다. 최근에는 이계이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퓨전판타지라고 불리는 것들도 있는데, 솔직히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제가 권했던 그 책은 퓨전도 아니었고 이계이동물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약간 당황하여 말했죠.

“저기, 퓨전은 아닌데 진짜진짜 재미있는건데요.”

그러나 아저씨는 어색하게 고개를 저으시면서 ‘무림일짱’ 이라는 퓨전무협 1권과 2권을 대여해 가셨습니다. 글쎄요, 저는 단순히 그 분이 퓨전이나 이계이동물만 좋아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죠. 그리고는 언제고 퓨전이 아닌 것도 한번쯤 읽어보시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만한 연세의 분이 판타지를 접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기왕이면 다양한 걸 읽어보시는게 낫지 않겠어요?

*                *                *                *                *                *

그런데 조금 이상합니다. 오늘은 토요일, 그리고 지금은 저녁 8시 45분입니다. 그 아저씨는 어제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처음 저희 가게에 드나들기 시작하신 이후로 처음으로 결석을 하셨다고나 할까요. 저는 어제 여덟시 즈음이면 문을 열고 들어서던 그분이 보이지 않아 몹시 당황했습니다만은, 오늘도 그 분이 오시지 않자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책들이 걱정되는 건 아닙니다. 설마하니 그 분이 그 책들을 빌려가고는 반납하지 않고 이사가 버리는 그런 분일까요. 그런 분들은 대게 첫권부터 완결까지를 한꺼번에 대여해가고는 도망가 버리는데, 이 분이 빌려간건 ‘가이아로의 여행’이라는 책의 6권과 7권입니다. 혹시 병이라도 나신게 아닌가 걱정됩니다.

혹시나 해서 문 옆에 달린 반납투여구를 확인해 보았지만 그 구멍으로 반납된 책은 없습니다. 이 분이 이러실 리가 없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요. 아홉시면 문을 닫고 가야 하는 저로써는 조금 아쉽게 되었지만 하는 수 없습니다. 아마 내일 오시거나 할 텐데, 음, 연체료는 받지 말아야 겠습니다. 단골이신데다가 지금까지 한번도 날짜를 어긴 적이 없으신 분이니까요.

그래도 아저씨를 기다려 보려고 9시 10분까지 기다렸지만 아저씨는 오시지 않았습니다. 8시 30분이면 벌써 집에 갈 준비를 하며 뒷정리를 하는 저에겐 꽤 인내심을 발휘한 거였지요. 그래서 저는 문을 닫았습니다. 뭐 뒷정리라고 해봐야 간단합니다. 컴퓨터를 끄고, 제가 보려고 카운터에 꺼내놓은 책들을 제자리에 꽂아넣으면 끝나는 일이죠. 아, 돈정리가 조금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습니다. 저희 가게야 뭐 큰 돈이 오가는 것도 아니니까요.

뒷정리를 끝내고 가게를 나와 셔터를 내립니다. 이런 망할, 불 끄는 걸 깜빡했습니다. 아무튼 정신이 없다니까요. 저는 도로 들어가서 불을 끄고 나왔습니다. 셔터를 내리고 자물쇠를 잠급니다. 이놈의 자물쇠가 몇년 되더니 뻑뻑해서 잘 잠기지를 않습니다. 열쇠가 부러져라 하고 돌려야만 간신히 잠기지요. 열릴 때도 마찬가지로 낑낑대며 용을 써야 간신히 열립니다. 혹시 도둑놈이 – 고작 이곳을 털 도둑도 없겠지만요 – 열쇠를 복사해 와 자물쇠를 열려고 해도 아마 안열리는 걸로 착각할 겁니다.

“이, 이런. 내가 조금 늦었구만.”

아, 그런데 이게 누굽니까? 제가 기다리던 그 아저씨입니다. 언제나처럼의 양복을 입고 계십니다만, 달리느라 넥타이가 조금 흐트러지셨습니다. 그래도 우리 시대의 평범한 샐러리맨, 꼭 몇년 전의 저희 아버지와 꼭 닮은 모습입니다. 지금의 저희 아버지요? 이 도서대여점 사업을 시작하신 이후로는 시간이 많아지셔서 운동을 시작하셨는데 지금은 저보다도 체력이 좋으신 몸짱이 되었습니다. 장부 정리 같은 건 어머니께서 하시고 카운터는 저와 제 동생이 봐았으니 아버지야 큰 일 아니시면 시간이 넘쳐나시거든요. 동네 아주머니들이 보는 눈이 달라졌다니까요 글쎄.

아무튼 그리운 아버지의 예전 모습 – 팔씨름 열번 하면 다섯번은 저를 이기시는 지금의 아버지는 싫습니다. – 그대로이신 아저씨는 달려오느라고 숨이 차신지 헉헉거리며 서류가방을 여십니다. 그 안에는 물론 소설책이 두권 들어있구요. 아저씨는 그것을 저에게 건내주시면서 미소지으셨습니다.

“미안하네, 영업시간 끝나기 전에 반납하려 했는데 말야.”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냥 여기 반납투여구에 넣으시면 되는 거에요.”
“그러면 늦은 거잖은가?”

아저씨는 너무나도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이셨어요. 물론 아저씨 말씀대로 지금 이 투여구에 넣으면 내일 아침에 반납한 것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하루 연체한것이 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미안해 하시지 않으셔도 되는데 말이지요. 이런 분에게는 연체료를 받기도 죄송스럽습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제가 오늘 반납한 것으로 처리해 드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니… 나는 미안해서 그러지.”

나는 씩 웃어드렸습니다. 아저씨는 잠시 서 계시더니, 뭔가 말을 하려고 하는데 머뭇머뭇거리고 계십니다. 나는 조심스래 물어보았습니다.

“저어, 혹시 오늘 새로 빌리실려구요? 문 열어드릴까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저는 조금 겁이 났습니다. 왜냐면, 한번 잠가버린 셔터를 다시 열고, 한번 꺼버린 컴퓨터를 다시 켜고, 아저씨가 새 책을 대여하시게 한 다음, 다시 컴퓨터를 끄고 셔터를 닫는 것을 반복하는 것은 최소한 삼십분은 걸릴 일이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엄청나게 하기 싫었습니다만, 예의상 그렇게 물은 거였죠. 그렇지만 다행이도 아저씨는 고개를 저으셨습니다.

“그런게 아닐세. 음… 혹시 지금 시간 있는가?”
“예?”
“음… 저, 나랑 같이 소주 한잔 하지 않으려나?”

물론 제가 거절할 이유가 없지요. 솔직히 요즘 술에 조금 목마른 것은 사실입니다. 친구녀석들은 모두 바쁜데다가 한참 취직준비로 곤궁할 때라서요. 사실 아직 대학 학적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제가 좀 늦은 편입니다. 혼사서 사다 마셔도 되지만 실연당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마시고 싶진 않아 술고파 하면서도 꾹꾹 참던 와중입니다.

공원에서 소주 두어병 놓고 새우깡이나 한 봉지 펼쳐좋고 마시는 것도 감지덕지할 판에, 아저씨는 저를 포장마차로 이끄셨습니다. 포장마차, 오랫만입니다. 뜨끈한 오뎅 국물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한쪽에서는 닭꼬치 굽는데 매콤한 양념 냄새가 끝내주지요. 먹음직스러운 홍합탕, 장어구이는 좀 비싼 메뉴이지만 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꼴깍 넘어옵니다. 차가운 겨울 바람 부는 바깥에 있다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오면, 약간 노란 기운이 도는 전구알 빛은 따뜻한 느낌을 줍니다. 실제로도 포장마차 안은 따뜻해서 안경은 김이 끼고, 안경알이 그 온도에 맞춰져 가면서 시야가 다시 맑아집니다. 뿌옇던 시야가 천천히 개어가는 가운데 보이는 그 먹음직스러운 광경이란 지옥에서 갑자기 천국으로 떨어졌을 때 보게 되는 광경과 같습니다.

포장마차 주인은 좀 의외로 젊은 부부입니다. 아직 마흔도 안 되어 보이는 분들인데,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젊은 분들이라고 다른 곳의 늙수구레한 분이 해주시는 음식들보다 맛이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여기는 특히 닭꼬치가 맛있는데, 양념이 여주인 분의 친정어머님만이 아는 비밀스런 방법으로 만들어진 거라나요. 아무튼 매콤하면서도 맛이 끝내주지요.

아저씨는 포장마차에 들어서자마자 소주 두 병과 닭꼬치 서너 개, 오댕 한 대접, 장어구이 한 접시 등 다양하게 시키셨습니다. 와, 어쩌면 오늘 제대로  마시게 될 모양입니다. 저는 꼴깍꼴깍 침이 넘어가는 것을 자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 한잔 받지.”
“아닙니다. 먼저 받으세요.”

어르신을 모시고 술자리에 오면 언제나 있는 일이지만 서로 먼저 받거니 하면서 실랑이를 벌이게 되지요. 저는 예의바른 편이기 때문에 결국 제가 이겨 아저씨께 먼저 술을 따라드립니다. 예, 국민소주라고도 불리는 그 소주에요. 그러고 나서야 저는 공손하게 따라주시는 술을 받습니다. 주도는 아버지께 배웠는데, 사실 이런 허례허식이란건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가라사대, 주도를 지키는 것은 술을 마시면서 자기절제를 잃지 않는 데 큰 도움이 된다나요. 덕분에 저는 술이 세다는 소리는 못들었지만 술버릇이 깨끗하고 예의바른 것으로 유명해 친구들보다 선배들에게 술 먹자는 소리를 자주 듣는 편입니다.

아저씨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너잔을 비우셨습니다. 저는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보았지만 역시 뭔가 일이 있는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아무리 단골이더라도 동네 책방 아르바이트생 청년에게 갑자기 술 한잔 하자고 하실 리가 없잖아요? 아저씨는 언제나처럼 미소를 띄고 계시지만 그건 좀 지친 미소입니다. 그래요, 아버지가 정년퇴직 하시고 나서 한달 정도 저런 미소를 띄고 술을 드셨지요.

그러나 아저씨의 심기가 어쨌건 간에 저는 눈치껏 안주를 집어먹습니다. 아아, 정말 이 집 닭꼬치는 너무너무 맛있어요. 게다가 이 비싼 장어구이는 얼마만에 먹어보는 건지, 눈물이 다 납니다. 닭꼬치와 장어구이를 한 입씩 먹고, 그 매콤한 맛이 남아있는 가운데 데 소주를 한잔 털어넣으면 차가운 술이 입안과 목구멍을 씻어내고, 알콜의 화끈함이 그 뒤를 따라 입과 목구멍, 뱃속, 그리고 가슴을 차례로 달굽니다. 거기에 뜨끈한 오뎅 국물은 한 숫갈 떠먹으면, 크아아, 이보다 끝내줄 수는 없는 겁니다.

“어제는 어쩐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어제도 안보이시고, 오늘도 늦으셔서 좀 걱정했습니다.”

저는 은근하게 말을 걸어봅니다. 술을 마시는 건 가슴에 맺힌 걸 털어놓자고 하는 일이지요. 서너잔 들어갔으니 아저씨도 준비가 되셨겠죠? 으레 이렇게 질문받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아저씨는 길게 한숨을 토해내십니다. 저건 가슴속에 응어리진 말을 꺼내놓으시겠다는 신호탄인 겁니다. 여기서 끼어들면 안되고, 가만히 기다려야 합니다.

“걱정했겠구만. 그러나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었어.”

아저씨는 소주 한잔을 입에 털어넣으십니다. 원샷으로 소주잔을 비우시자 전 재빨리 그 잔을 채워드렸습니다. 그 잔을 받으면서 아저씨는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왠지 그 눈빛이 회한에 젖은 눈빛이라 저는 움찔했습니다.

“자네 몇살인가?”
“올해로 스물 여덟입니다.”
“그래… 혹 형제가 있나?”
“동생이 스물 셋입니다.”
“그런가.”

아저씨는 허허 웃으시더니 젓가락으로 장어구이를 집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입에 가져가지 않고는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하십니다.

“자네를 보면 내 아들을 보는 것 같단 말이야.”
“아드님이 계시군요?”
“딱 자네 동생이랑 동갑이겠군.”

혹시 그 아드님이 속을 썩이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예, 이 나이에 취직도 안하고 학교도 안다니고 책방 아르바이트 하고 있는 모습이 그리 자랑스러운 건 아니지요. 게다가 저는 가끔 머리도 안 감고 세수도 안 하고 어제 입고 자던 후줄근한 티셔츠 차림으로 카운터에 나가 앉아 있기도 하는지라 한심스러워 보였을 겁니다. 미래가 암울해 보이는 아들 또래의 안타까운 청년을 보다보니 술이라도 사주고 싶으셨나 봅니다. 물론 그 정도로 기운이 죽을 저는 아닙니다. 어쨌는 내년엔 복학할 거니까요.

“어제 반납하러 못 간건 좀 이해하길 바라네. 아들 녀석 제삿날이었어.”

자, 잠깐만요. 제가 지금 소주를 넉잔 쯤 하긴 했지만 말이 잘못 들릴 정도로 취하진 않았습니다. 소주 세 병까지는 얼굴도 안 빨개진다는 말이지요. 저는 혹시 제삿날이라는 게 ‘아들놈이 학사경고를 받아서 제삿날이 되도록 패버렸다’ 라는 말씀이신 걸까요? 그러나 고개를 떨구고 소주를 들이키시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니 그런 우회적인 의미가 아닌 모양입니다.

“5주기였지.”

저는 뭐라 말씀드려야 할 지 몰라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그리고는, 입을 열어 말하기보다는 가만히 듣기로 했습니다. 저는 얼른 빈 잔을 채워드렸습니다.

“자네 말야, 내가 왜 퓨전판타지만 빌려 보는 줄 아나?”
“아니요.”
“내 아들은 교통사고로 죽었네. 내성적인 녀석이었지. 모르긴 몰라도 아마 학교에서 왕따도 좀 당하고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

저는 묵묵히 듣기만 했습니다. 저는 술상대로는 참 좋은 녀석입니다. 묵묵히 들을 줄도 알고, 필요하면 떠들면서 기운을 북돋아 줄 줄도 알지요. 오늘은 조용한 청취자가 제 일입니다.

“트럭이었어. 녀석은 등교길에 트럭에 치여 죽었어. 즉사였지. 참 사람 목숨이라는게 그렇게 쉽게 죽는 거더만.”

소주 두 병이 다 비워졌습니다. 저는 얼른 두 병을 더 시켰습니다. 아마 앞으로 서너병은 더 시켜야 할 지도 모릅니다. 이럴 때는 이야기가 짧아도, 이야기가 길어도 술이 많이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이야기가 길면 긴 대로 술이 많이 필요하고, 짧으면 여러번이고 되풀이 되기 때문이지요. 중요한 건 이야기의 길이가 아니라 가슴속의 응어리가 얼마나 단단한지 입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의 책가방에 그 책이 들어 있더군. ‘강영웅 판타지아 가다.’ 그때는 슬픔으로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걸 확인해 볼 겨를도 없었지만… 아무튼 몇년 지나 책방 앞을 지나다 보니 그 생각이 나는거야. 워낙 제목이 유치했기 때문에 기억한 것인지도 모르지.”

아저씨는 흐 하고 웃으셨습니다. 그래요, 지금 생각해 보니 아저씨는 이계이동물도 꼭 고교생 이계이동물만 빌려보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게 아니면 영혼이 건너가 저쪽에서 새 삶을 사는 소설이거나요. 초반부를 읽어보고 고르고 고르다 보니 책을 고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시던 것도 생각이 나구요.

“가끔 생각하는 건데 말이지, 아들 녀석은 판타지 세계로 가서 지금쯤 영웅이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하네.”

아저씨는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저씨는 소주잔에 비친 아들의 모습을 보시고 계신 듯 했습니다. 그분의 아드님은 한 손에서는 전설의 명검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이글거리는 화염을 뿜고 있겠죠. 그것으로 사악한 귀족들의 목을 따고 마왕을 마계로 강제귀환시키고 인간의 운명을 갖고 노는 신을 쓰러트리고 있을 겁니다. 아저씨는 망연히 소주잔을 바라보셨습니다.

*                *                *                *                *                *

그날 얼마나 퍼마셨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빈 소주병이 탁자 위에 쌓이다 자리가 모자라 탁자 아래까지 쌓아놓을 지경이었죠. 돈은 아저씨가 내셨습니다. 저도 내려는 시늉은 내어보았습니다만은 아저씨는 취하셔서 몸도 못 가누시는 상황에서 ‘이놈!’하고 호통을 치시며 저를 밀치시고는 돈을 내셨어요. 저는 그분과 어깨동무하고 그분 댁까지 모셔다 드리고는 집까지 기어들어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집에 돌아오니까 새벽 두시였던가요? 정말 오랫만에 징하게 퍼마신 날이었죠.

그 후로도 아저씨는 꼬박꼬박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거르지 않고 책방으로 오셨습니다. 저는 특별히 그 분께 다른 책을 권해드리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만 읽으시게 내버려 두었죠. 그 대신 에저는 모종의 작업을 좀 하고 있었고, 오늘에서야 그 결실이 도착했습니다.

오늘 도착한 신간 소설책 무더기에서 저는 제 이름 석자가 박힌 소설책을 발견하고 씩 웃었습니다. 그래요, 마음에 드는 표지는 아닙니다. 저는 분명 클래식하고 깔끔한 책 표지를 원했다구요. 그렇지만 뭐 어때요? 제 이름 석 자가 박힌 퓨전판타지 장편소설인걸요.  뒷표지에 적힌 광고문구가 낯간지럽습니다. ‘퓨전계에 나타난 샛별! 오늘 판타지계를 뒤엎을 최고의 소설이 나타났다. 전설이 된 용자, 소드마스터이자 클래스 10의 마법검사! 그가 2006년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네, 정말이지 낯이 뜨거운 광고문구에요. 새로 들여올 신간을 결정하기 위해 고심하시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작가 이름을 보시고는 말씀하시더군요. ‘네 이름이랑 똑같네.’ ‘그러게요.’ ‘넌 이런거 안쓰지?’ ‘에이, 설마 제가 이런 걸 쓰려구요.’ 이런 대화가 오간 게 지난주 일요일이던가요. 어머니, 아버지, 죄송합니다. 사실은 동명이인이 아니라 제가 쓴게 맞아요.

신생 출판사라 원고료도 시원찮지만 괜찮습니다. 원고료를 보고 쓴 건 아니니까요. 예, 비평도 엄청 많이 들었어요. 아니, 비평이 아니라 욕이라 해야 하나요? ‘이런 허접쓰레기같은 양산형 판타지가 또 하나 늘어났구나.’ 하는 소리, 너무 많이 들었어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칭찬받으려고 쓴 건 아니니까요. 이건 단 한 사람을 위해 쓴 겁니다. 이거 아마 너무 재미없어서 금방 반품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단 한 사람만 읽어주면 되니까요.

“어제는 아들 제삿날이었고, 오늘은 큰형님 손주의 첫돌이었어.”

두 달 전, 저와 함께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퍼마시면서 아저씨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는 소주병이 열 병 이상 비워진지라 아저씨는 체면도 잊으시고 흐느끼고 계셨어요. 그러니까 조카가 딸을 낳았는데 그 돌이 되었단 말이지요.

“금발에 파란 눈이어도 좋아. 인간이 아니라 엘프여도 상관없고, 드래곤이어도 상관없어. 드워프라도 상관없다고! 빨간머리건 초록머리건 상관없다고! 미성년자만 아니면 돼.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어도 상관없어! 며느리를 봤으면 좋겠어. 손주녀석을 봤으면 좋겠다고.”

어깨동무를 하고, 둘이 같이 비틀거리면서 돌아가던 그 추운 골목길에서 아저씨는 외치셨어요. 오밤중에 미친사람처럼 소리지르셨지요. 저는 술에 곤죽이 된 체 맞장구를 치고 있었습니다. ‘맞아요, 맞아! 오천살 연상의 드래곤이면 어때요? 엑!? 근데 로리 마법사가 안된다구요?’ 잠자던 동네 사람들, 엄청 열받았을 거에요.

그 다음날 아침 저는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현관 바닥에서 일어났습니다. 세상에, 아들이 술 퍼먹고 들어왔는데 방안까지 들어다 주지도 않는 부모님이라니요! 저는 맞아죽기 전에 잽싸게 현관에 토해놓은 것을 치우고는 혼자 콩나물국을 끓여 먹었습니다. 그 눈물어린 콩나물국에 찬밥을 말아 먹으며 생각했지요. 그래, 쓰는거야.

그렇게 해서 쓰기 시작한 글을 완결하는 데 걸린 시간은 두달. 저는 두달 내내, 책방에서 일하는 내내 한시도 쉬지 않고 키보드를 두들겼지요. 모르는 아버지는 저를 보고 ‘채팅좀 그만해 이녀석아!’ 하고 호통치셨다니까요 글쎄. 아무튼 그렇게 글을 완성했고, 다행히도 출판제의가 들어와 덥썩 계약을 했습니다. 이건 그 내용의 일부에요.

[한 집안에 그렇게 다양한 머리색의 사람들이 모이는 것도 드문 일일 것이다. 소드마스터이자 클래스10의 대마법사를 겸하는 마법검사 조이스, 그의 한국이름은 종수였다. 그는 검을 잡은 뒤 처음으로 무릎을 꿇었다. 2만년을 산 고룡 엘키에부의 앞에서도, 2백만 대군을 이끄는 제국황제의 앞에서도 꿇은 적이 없는 무릎이었다. 그는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제가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근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뒤의 처자들은 누구시냐?”
클래스 9의 마법사이자 대륙 최고의 미녀인 일세인이 호호 웃으며 절하였다.
“아버님, 저는 조이스의 첫째 부인인 일세인이라고 합니다.”
“아앗, 치사해! 누구 맘대로 첫째야? 나이는 내가 더 많다고!”
고작 열 여덟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엘프 소녀, 나렌의 나이는 실제로 백여살이 넘었다. 정열적이고 풍만한 몸매를 가진 레드 드래곤의 여인인 리케드로스는 그 논리의 맹점을 짚었다.
“그럼 내가 나이게 제일 많은데,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아버님과 어머님보다도 나이가 많은 거야.”
“계급으로 보면 내가 제일 위인데.”
제국의 공주인 달리아는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그것도 잠시, 사뿐거리며 제일 앞으로 나서더니 황실의 예법대로 절을 했다. 그러고는 얼른 선물을 내밀었다.
“이건 아버님 거, 이건 어머님 거에요.”
번쩍번쩍 빛나는 그 보석들을 보고 엘프가 양 볼을 부풀렸다.
“치사하게 선물을 준비하다니! 그렇지만 아버님 어머님 안마는 내가 해 드릴거야!”
“웃기지마, 그건 내가 먼저 생각했어!”
아름다운 며느리들이 서로 싸우는 가운데, 아주 어린 꼬마가 아장아장 거리며 걸어갔다.
“첫 아이, 젝스에요.”
조이스, 아니 종수가 웃으며 말했다.
“한국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주세요. 자, 젝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인사해야지.”
꼬마 젝스가 아둥바둥 거리면서 안녕하때요 하고 인사하자 집안에 화기애애한 웃음이 퍼져갔다.]

이건 행복한 이야기라구요. 단 한 사람을 위해 씌여진 행복한 이야기. 오늘은 제가 원하는 책을 반드시 권해드릴 생각이에요. 이건 이계이동물이니까 자신있게 권할 수 있지요. 자기가 쓴 슬을 자기가 권하는 건 좀 창피한 일이기도 하지만 말이죠.

오늘은 수요일이고, 저는 여덟시가 너무너무 기다려집니다. 지금 시계가 8시를 가리킵니다. 이제 오전 8시이니까 앞으로 12시간만 기다리면 되는군요.
댓글 3
  • No Profile
    펜펜 07.09.04 10:46 댓글 수정 삭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습니다. 잔잔한 분위기인데도 묘한 흡입력이 느껴져요^^
  • No Profile
    요한 07.09.04 12:43 댓글 수정 삭제
    오랜만입니다. 화룡님 여기서 또 뵙네요.
  • No Profile
    화룡 07.09.07 05:48 댓글 수정 삭제
    펜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정진하겠습니다.
    요한// 정말 오랫만이네요! 그동안 뭐하고 계셨는지... 컴퓨터를 바꾸면서 전의 딤비 사이트 주소를 잃어버려서 통 못뵈었습니다. 요즘 작품 활동은 쉬고 계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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