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3차원 진화

2008.12.30 19:0512.30

1.

호스로 물을 뿌려대자 차에 묻어 있던 내장이며, 살점 그리고 시뻘건 피가 씻겨 내려갔다. 치열한 하루를 마감하며 세차를 하는 이 순간이 가장 행복했으며 다시는 내 차를 더럽힐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그들의 기세는 수그러들 줄을 몰랐다. 게다가 내일부터는 절기상 우기로 접어든다. 우기에 대비해 경유를 몇 드럼 확보해두었지만 과연 그 정도로 버틸런지 자신이 없었다. 우기가 예상보다 길어지지 않기를, 우기 중간에라도 잠깐씩 햇빛을 보게 되기를 기원할 뿐이다.
“여보! 다 끝났어요? 밥 차릴까요?”
“응, 조금만 하면 끝날 거야.”
마지막으로 차에 물을 한 번 뿌리고 돌아서려는데 범퍼 틈새에 끼어 있는 머리카락 한 줌이 보였다. 장갑을 끼고 힘껏 뽑아내 쓰레기통에 쳐 넣었다.
식탁에는 벌써 아들과 딸이 앉았고 아내는 막 국을 퍼서 내 자리에 놓던 참이었다.
“아빠.”
아들이 반가와 했다.
“그래, 정훈아. 배고팠지? 아빠 기다리느라고.”
“아니요.”
말 하는 폼이 제법 든든하다.
딸은 오빠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뭐가 좋은지 까르르 웃는다.
“아빠는 배가 무척 고팠는데.”
난 아내 곁으로 가 허리를 슬쩍 만졌다.
“이 이가?” 아내가 흘깃 쳐다보고는 웃는다.
“자, 밥 먹자.” 나는 크게 소리치고는 숟가락을 들었다.
“어? 이게 뭐야? 계란 프라이네?”
“맞아. 아빠. 닭이 오늘 계란을 쑥 하고 나았어.”
“글쎄 말이에요. 여보. 나도 놀랬어요.”
아내가 옆에서 거들었다.
난 계란 프라이의 흰자위 부분을 조심스럽게 잘라 입에 넣었다. 소금 간이 적절하게 되었다. 하마터면 눈물이 찔끔 나올 뻔 했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계란인지. 얼큰한 감자국에 밥을 말아 후루룩거리며 순식간에 다 먹었다. 아들은 아빠 진짜 밥 빨리 먹는다며 따라 하려 했지만 아직 반도 못 먹은 상태였다.
“그래, 뭐 특별한 일은 없었지?”
“다행스럽게도요.”
아내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방심하는 순간 항상 일이 벌어졌다는 경험에 따른 행동거지였다.
“오늘은 어땠어요?”
“음, 별 다른 일 없었고.”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요?”
“그러게. 하지만 개체 수가 좀 줄어드는 것 같기도 해.”
“정말요?”
“아주 미묘한데, 그게 더 불안해. 놈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한 것인지, 아니면 집단 안에서 뭔가 일이 벌어진 것인지 도대체 알 턱이 있어야지.”
난 자리에서 일어나 빈 그릇을 싱크대로 들고 가 내려놓았다.
“쾅!”
“엄마야!”
뭔가 부딪치는 소리에 이어 아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난 반사적으로 냉장고 옆에 놓여 있던 장도를 집어 들고 식탁 쪽으로 뛰어 나왔다. 아내가 두 아이를 옆에 끼고 구석에 앉아 있었다.
“뭐야? 뭐가 들어왔어?”
“아,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부딪친 것만 같아요.”
아내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려 가슴을 두드리며 대답했다.
“가만, 가만히 있어. 한 번 둘러보고 올게.”
“조심하세요.”
“걱정마.”
걱정하지 말란 소리를 했지만 늘 이 순간이 두려웠다. 할아버지 때부터 단련된 유전자가 내 몸속에 흐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웠다. 언제 어디서 튀어 나올지 모르는 그들이 두려웠다.
우리 집에는 창문이 없다. 원래 없었던 것은 아니고 열 수 없도록 막아 놓았다. 따라서 집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곳은 현관문 하나 밖에 없었다. 닭장도 건넌방에 있었고, 차고도 집 내부에 있다. 이러한 폐쇄성 덕분에 우리 가족은 그들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
문에는 이상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 십년 동안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해온 창문도 점검하였다. 역시 아무 이상이 없었다.
“별 일 아닌가봐.”
난 아내와 아이들을 일으켰다. 아이들은 곧 평소 얼굴로 돌아갔으나, 아내는 그렇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 점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지쳐가고 있는 듯 했다.
아내를 안았다. 그리고 귀에다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2.

“투드득”
뼈가 갈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턱 하고 팔 하나가 앞 유리에 들러붙었다. 와이퍼를 작동시키니 팔은 휙 하고 옆으로 떨어져 나갔다. 경유 냄새를 오랜만에 맡아서인지 조금 역겨웠지만 지금처럼 비가 올 때는 태양 빛의 이용이 불가했다. 놈들도 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지 오늘따라 별로 보이지 않았다.
차를 세우고 보온병에서 커피를 따라 마셨다.
“후” 하고 한숨인지 신음인지 정체불명의 소리가 삐져나왔다.
잠시 눈을 감았다.

그 날도 비가 왔고, 차 안에서 아버지는 커피를, 나는 코코아를 마셨다.
“야, 아들! 좀비가 어느 나라 말인지 알어?”
“그야, 당연히 우리나라 말 아닌가요?”
“에구 큰일났네. 집안의 장손이란 놈이 저리 멍청해서야.”
“그럼 아니란 말이에요? 뭔가 쫌스럽고 비열하다 뭐 그런 뜻 아니에요?”
“아니다. 이놈아. 좀비는 외래어야. zombie. 알았어?”
“정말이요? 몰랐네.”
“그런 쉬운 것도 모르는 네가 알 턱이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수께끼 하나 낼 테니까 맞춰봐라.”
“수수께끼라면 자신 있어요.”
“좀비는 옛날에 부두교라는 종족에서 유래했는데, 이 종족은 죽은 사람을 살려내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거든. 부두교의 무당은 갖가지 약초를 써서 마침내 시체가 움직이도록 하는데 성공한 거고 그를 좀비라 불렀던 거야. 그런데, 신이 가만있겠어? 영생을 누리느냐 못 누리느냐로 인간과 신을 구분하고 있었는데 감히 인간이 영생을 꿈꾸고 있으니 말이야. 그래서 제우스는 부두교들을 혼내주기로 했지.”
“그래서요?”
“자, 여기서 문제 나간다. 과연 제우스는 어떤 신에게 부두교들을 혼내주라고 했을까요?”
“예?”
난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제우스가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신이 한 둘도 아닌 마당에 어떻게 답을 맞춘단 말인가.
“아빠, 힌트 없어요? 너무 어려워요.”
“힌트는 벌써 줬어. 아빠가 한 얘기에 힌트가 들어있지.”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무당을 다스리는 신이 있었나? 죽음에 대한 이야기니까 혹시 저승을 맡고 있는 신?’
“아빠, 하데스 아니에요?”
“아니.”
“에이. 모르겠어요. 그냥 가르쳐 주세요.”
“뭐 수수께끼라면 자신 있다더니.”
“너무 어려워요.”
“답은 말이야, 포세이돈이다.”
“포세이돈이요? 그 삼지창 들고 다니는 바다의 신이요?”
“그렇다니까.”
“왜요? 포세이돈이 아빠가 이야기해준 거랑 무슨 관련이 있어요?”
“왜 없어? 부두. 부두 있잖아. 부두가 어디에 있어? 바다에 있잖아. 그러니까 포세이돈의 관할 구역이잖아. 안 그래?”
아버지의 눈가에는 웃음이 가득 넘치고 있었다.
“예에? 엉터리야. 완전 말장난이잖아요.”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둬. 좀비가 우리나라 말이라는 엉뚱한 소리나 하지 말고.”

농담조로 말씀하시던 아버지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갑자기 표정이 심각해졌다.
“난 그날이 잊혀지지 않는다.”
“무슨 날이요?”
“좀비가 뛰기 시작한 날.”
“그게 뭐 어때서요? 사람도 뛰는데 좀비도 당연히 뛰겠죠.”
그러나 아버지의 말씀에 의하면 좀비는 처음에 뛰지 못했다고 한다. 뛰기는커녕 걷는 것도 지랄 같아서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겨우 걸었다고 한다. 속도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였던 좀비들을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닥치는 대로 베었다고 했다. 떼를 지어 다니는 좀비의 특성 때문에 속도만으로 그들을 압도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작전을 잘 짜서 놈들을 흩어놓기만 하면 승산이 꽤 높은 싸움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불러 그림 한 장을 내놓았다.
“이게 뭡니까? 아버지.”
“차야.”
“차요? 갑자기 무슨 차요? 차는 지금도 있는데..”
“그냥 보통 차가 아니야. 장차 우리 목숨을 지켜줄 중요한 무기가 될 거야.”
“무기라면, 총이나 대포를 장착하겠다는 건가요?”
“물론 총이나 대포를 달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이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럼 뭘 장착한다는 거죠?”
“내 생각에는 원반톱을 장착하면 좋겠어.”
“예? 그런 원시적인 도구로 그들을 상대하겠다구요?”
“그럼, 내가 하나 묻지. 총이나 대포를 달면 좋아. 그런데 총알과 포탄은 어디서 꾸준히 보급 받지? 계속 생산될 리도 없고, 설사 지금은 구한다 해도 지속적인 공급은 장담 못 할걸?”
“그건 그렇지만.”
“싸움을 할 때는 늘 보급을 먼저 생각해야 해. 그것을 고려해서 작전을 짜고 무기를 마련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차는 가솔린에만 의지해 움직여서도 안 된다. 우리가 언제까지나 버려진 주유소에서 기름을 얻는다는 보장이 없거든.”
“그냥 이대로 싸우면 안 될까요? 어차피 우리들만의 힘으로는 온 세상의 좀비들을 다 퇴치하긴 어렵고, 우리만 지킬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넌 저들이 계속 저 지경에 머물러 있으리라 생각하니?”
“예? 그렇지 않다면.”
“세상은 변한다. 난 저놈들이 언젠가는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 우린 거기에 대비해야 하는 거고. 설사 그들이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준비해서 손해 볼 리는 없겠지.”
“도대체 어떻게 변한다는 거죠?”
“그건 나도 몰라. 그러나 세상이 늘 변해왔다는 사실 하나만은 장담하지.”
그 날 이후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자동차를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이셨다고 했다. 사륜구동형 차를 개조해 앞에 고성능의 원반톱을 장착하고 레이더를 구비했으며, 방탄유리로 창문을 달았다. 엔진은 태양 빛을 활용한 전기로 돌리는 모터를 주 엔진으로 하고 유사시 사용할 수 있도록 디젤 엔진을 장착했다.  

그렇게 자동차의 개발이 거의 마무리되던 어느 날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아버지는 해가 완전히 떠오르지 않은 새벽녘 길거리에서 놈들을 만났다고 했다.
“좀비는 고작해야 일곱 여덟 명 정도였어. 난 한 명씩 전부 베어버리겠다며 칼을 빼려했지.”
“우선 놈들을 흩어놓았겠지요?”
“그런데 흩어놓지 못했다.”
“왜요?”
“놈들이 뛰기 시작했거든.”
“예?”
“그 전날 까지만 해도 절뚝거리던 놈들이 갑자기 뛰는 거였어. 난 너무 무서웠다. 한꺼번에 나를 향해 뛰어오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내 다리가 그냥 굳어버린 거야.”
“그, 그래서요?”
“난 아버지의 말씀이 옳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분명 그들이 변하고 있다는 징후가 있었을 거야. 하지만 난 거기에 신경을 쓰지 못했지.”
“거기서 어떻게 벗어나신거죠?”
“네 할아버지 덕분이었지. 아버지가 나타나셔서 유려한 칼솜씨로 달려드는 놈들을 베기 시작했다. 난 여전히 꼼짝하지 못하고 아버지가 싸우는 장면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지만 뛰어다니는 좀비들은 그 전 좀비들과는 차원이 달랐어. 점점 밀리기 시작한 아버지는 나보고 도망가라고 외치셨다.”
“그럴 수가..”
“난 움직여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외쳤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때 아버지의 방어선을 뚫은 좀비 한 놈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지옥으로 향하는 동굴과 같은 입을 한껏 벌리고서 말이다. 절대 절명의 순간 아버지는 목숨과도 같은 자신의 칼을 던져 그 놈의 머리를 꿰뚫었다. 머리가 터지면서 쏟아져 나온 좀비의 피는 순식간에 내 얼굴에 흩뿌려졌다.”
“그럼 할아버지는?”
“남은 좀비는 겨우 세 놈이었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아버지는 칼도 없는 상태에서 오직 발차기와 조이기로 놈들을 상대하셨다. 한 놈의 목이 꺾여 나가고 또 한 놈의 팔이 부러졌다. 그러나 결국 남은 한 녀석이 아버지의 목을 물어뜯고 말았다.”
“예? 그렇다면 할아버지는 좀비가 되신 건가요? 그런 말씀은 하신 적이 없잖아요?”
“끝까지 들어봐라. 할아버지는 목이 물린 상태에서도 놈의 눈을 손가락으로 찌르고 목을 땄다. 그리고는 길바닥에 쓰러지셨지. 난 그제서야 마법에서 풀린 듯 아버지를 부르며 뛰어갔다. 아버지는 숨을 헐떡이고 계셨어. 그 힘든 순간에도 아버지는 자신의 말이 맞지 않았냐고 웃음을 지으시더구나. 아니 웃고만 계시지 않았지. 자동차를 무기로 삼아 속도전을 치르되 혹시라도 백병전을 치를 때는 항상 놈들의 입을 조심하라고 충고까지 하셨다.”
“그리고는요?”
“저 칼, 내가 옆구리에 차고 있던 칼을 순식간에 빼 드시더니 당신의 목을 스스로 베셨다.”
거실 벽에 걸려있는 긴 칼을 보며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난 당시만 해도 그 칼이 할아버지께서 남긴 칼인 줄 알았는데 아버지의 칼이었고 할아버지의 목숨을 끊어놓은 칼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아들의 칼에 의해 절명을 하시다니.
“예? 어떻게 그런 일이..”
“우린 칼을 다루는 집안이다. 할아버지의 내공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지.”
“좀비가 되느니 사람으로 최후를 맞이하려는 뜻이었군요.”
“그렇다. 뛰기 시작한 좀비에, 나를 대신해 돌아가신 아버지. 난 그 새벽을 잊지 못한다. 새벽의 저주였지.”
아버지는 그 후로 원반톱이 장착된, 태양에너지로 가동되는 자동차를 타고 그들을 상대하셨다. 뛰기 시작한 좀비들의 변화에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아 그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당시에 소녀였던 지금의 아내 가족도 그 와중에 모두 희생당하고 아내는 그 때부터 우리 집에서 자랐다. 난 어느 정도 나이가 먹고부터는 아버지와 함께 그 차를 타고 놈들과 싸움을 벌여왔는데, 지금의 차는 원반톱을 양옆과 뒤에까지 모두 6개를 장착했다. 최대한 태양 빛을 흡수하기 위해 창도 태양전지로 바꾸었다. 염료감응 태양전지는 투명하기 때문에 창문으로 사용하는데 적격이었다. 자동차는 점점 더 강해져왔지만, 지금 내 곁에는 아버지가 안 계시다. 나 혼자이다.

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눈을 떴다.
오른쪽에 좀비 한 놈이 붙어 창을 깨려고 발악하였다.
난 침착하게 기어 옆에 붙어 있던 스위치 중 오른쪽 맨 위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철커덕”
“위잉~”
“끼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좀비가 나가 떨어졌다. 놈의 두 다리가 자동차 측면에서 튀어 나온 톱에 의해 잘라졌다.
오래된 추억이 너무도 선명하게 눈앞에 그려지고 있었는데 놈이 다 망쳐놓았다.
불과 1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웠다.
그러나 감상에만 빠져서는 안 된다. 다시 한 번 와이퍼를 작동시켜 창을 깨끗이 닦은 후에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확인이 필요했다. 전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 꺼두었던 레이더를 켰다. 녹색의 불빛이 차 내부에 은은히 퍼졌다. 사방 백 미터 안에서는 움직임이 없었다.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놈들이 모여들지 않았다. 다들 어디로 간 것일까. 차문을 열었다. 마침 내리던 비는 잠시 소강상태였지만 두꺼운 구름이 꽉 낀 탓에 오후 4시임에도 불구하고 주위는 제법 어두웠다.
고여 있는 빗물은 이미 시뻘겋게 변했고, 그 옆에서 방금 다리가 잘린 놈이 버둥대었다.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가 내리 그었다. 탁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놈의 머리가 잘라져 저쪽으로 튀어 나갔다. 발로 엎어져있는 몸통의 옆구리를 밀어 뒤집었다.
“놈이 아니라 년이었구만.”
옷 상태로 판단해보면 좀비로 변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직 멀쩡한 사람 모습을 하고 있는 좀비를 죽였을 때는 여전히 마음이 편치 못했다. 훑어보아도 별다른 특징을 발견할 수 없어 돌아서려는 순간 아까 엎어져 있었던 좀비의 모습이 뭔가 이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다시 옆구리를 발로 밀어 뒤집었다. 양호한 상태의 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좀비의 등에 뭔가가 튀어나와 있는 듯 했다.
“이제 이것들은 등에도 가슴이 생기나?”
주머니에서 조그만 칼을 꺼내 셔츠를 찢었다.  
“이게 뭐지?”
얼굴을 좀 더 등 쪽으로 붙였다.
“이게..”
“삐이 삐이”
레이더가 경고음을 내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었다. 저쪽 빌딩 사이에서 몇 놈의 좀비들이 뛰어온다. 쓰러진 좀비의 등 뒤 오른쪽에 돌출된 것을 칼로 자르려 했지만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다.
“삐리링 삐리링”
레이더가 또 다시 경고음을 내었다. 50미터 안에 움직임이 있다는 신호였다. 잇따라 울리는 경고음에 신경이 쓰여 칼질이 잘 되지 않았지만 간신히 약간의 덩어리를 잘라냈다.
“안 되겠어.”
놈들은 벌써 얼굴이 식별될 정도로 접근했다. 칼을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권총을 빼들었다.
“탕.”
총구가 불을 뿜었다. 맨 앞에 달려오던 놈이 고꾸라졌다. 그러나 나머지 놈들은 동료가 쓰러진 의미를 모르는 탓인지 전혀 개의치 않고 뛰어왔다. 난 칼로 잘라낸 것을 왼손에, 총을 오른손에 들고 자동차의 운전석 쪽으로 뛰었다. 하지만 놈들 중 한 놈이 이미 운전석 옆에서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 녀석은 어떻게든 처리해야 무사히 차에 탈 상황이었다. 총을 겨냥하고 발사하려는 순간 길바닥의 물기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아.”
놈이 쓰러진 내 위로 덮쳤다. 급한 김에 왼손을 뻗어 그 잘라낸 것으로 녀석의 입을 틀어막았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백병전을 할 때는 놈들의 입을 최우선으로 조심하고 봉쇄하라는 가르침이 이미 내 몸에는 배어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물기부터 하려는 그들의 본능을 이용하는 셈이다. 그 놈이 잠시 주춤하는 짧은 순간에 주저하지 않고 총알을 녀석의 목에 쑤셔 박았다. 몸이 떨어져나갔지만 놈의 머리는 아직도 내 왼손에 매달려있었다. 연이어 사방에서 달려드는 좀비들을 피하기 위해 우선 차 안으로 뛰어 들었다.
“쿵쾅쿵쾅”
어느새 열명 이상으로 불어난 놈들이 차를 흔들고 때렸다.
이 상태로 방치했다가는 차가 곧 뒤집어질지도 모른다.
“후”
한숨을 한 번 쉬고 나서 전력을 최대로 올렸다. 그리고 6개의 버튼을 동시에 눌렀다.
“철커덕 철커덕 철커덕..”
“웨엥엥엥..”
창문을 통해 밖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점과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약 30초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톱니의 안정된 회전 소리가 들렸다. 와이퍼를 작동했다. 차 주위는 아수라장이었는데, 저 멀리서 또 다른 놈들이 떼거지로 몰려들었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나 싶었는데.”
전력을 낮춘 후 기어를 집어넣고 페달을 밟았다. 천천히 출발하는데 조수석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흘깃 쳐다보니 정신없이 던져 놓았던 좀비 머리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참, 녀석 꼴통을 아직 박살내지 않았지.”
차를 세우고 녀석이 아직까지 굳게 물고 있던 정체 불명의 그 요상한 것을 빼내었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머리를 밖으로 내던졌다. 차 주위로 몰려들던 놈들은 그것이 동료의 머리인지 뭔지도 모르고 받아 물어 뜯기 시작했다.
“이게 뭘까?”
놈이 물었던 자국으로 보아 살덩어리 같긴 한데,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후두둑 하고 다시 비가 내렸다.
집을 향해 운전대를 틀었다.    

3.

“뭐 같아?”
아내도 얼굴을 들이밀고 열심히 쳐다보지만 무엇인지 감이 안 잡히는 듯 했다.
“이걸 등에서 떼어냈다구요?”
“그렇다니까. 등 양쪽에 붙어 있었어. 이건 오른쪽 등에 붙어있던건데 왼쪽 것은 놈들이 덤벼드는 바람에 못 가져왔어.”
“무슨 알러지 아닐까요?”
“하하. 알러지? 좀비에게 알러지가 있다?”
“왜요. 꼭 불가능한건 아니죠. 놈들이 말을 못해서 그렇지 몸이 근지러워 그렇게 배배 꼬며 달리고 있는지도..”
아내는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웃음이 나는지 모르겠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자기가 못 봐서 그래. 왼쪽과 오른쪽이 대칭의 형태로 돌출되어 있었어. 알러지라면 그런 방식으로 돌출되지는 않겠지.”
그 때 아들이 병아리 한 마리를 안고 들어왔다.
“아빠. 얘 귀엽지?”
병아리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작고 약했다.
“그래, 물이랑 잘 먹니?”
“예. 그런데 자꾸 잠을 자요.”
“원래 그래. 사람도 애기 때는 잠을 엄청 자. 너도 그랬고. 그래, 동생을 봐. 너보다 훨씬 많이 자잖아.”
“그렇구나.”
병아리는 눈을 깜박거리다가 조그만 날개를 살짝 움직였다. 너무나 작아서 날개라기보다는 하나의 근육덩어리로만 보였다. 다 커서도 날지 못하는 새가 날개는 괜히 달고 태어나서 몸에 부담만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정훈아. 병아리 집에다 넣어두고 넌 가서 자라. 시간이 많이 늦었는걸.”
“예, 알겠습니다. 아빠, 엄마 안녕히 주무세요.”
“잘 자라.”
아내는 아들이 잠자리에 드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아이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피로가 엄습했다. 사실 아까는 근래에 겪어보지 못한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좀비와 직접적인 접촉을 가진 것도 오랜만이었다. 그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새삼 그들의 몸에서 나는 썩은 내가 내 몸에서 풍기는 듯해 찝찝했다. 씻고 싶었다.
욕실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아내가 불렀다.
“여보. 혹시 말이에요.”
아내는 뭔가를 말하려다 거실 구석 상자에 놓여있던 병아리를 쳐다보았다.
“뭐?”
“그거 말이에요. 당신이 가져온 거.”
“응. 그게 뭐 닭이라도 된다는 거..”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말을 멈추었다. 허겁지겁 탁자위에 놓여 있던 덩어리를 손에 들고 병아리 상자로 뛰어갔다. 꾸벅꾸벅 졸고 있던 병아리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덩어리와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아내도 어느새 옆에 와 섰다.
“설마.”
아내와 나는 거의 동시에 눈이 동그래졌다.
“이럴 수가..”
그 근육 덩어리는 병아리 날개와 모양이 거의 비슷했다.
“이거 날개 맞죠?”
아내의 음성이 가볍게 떨렸다. 끙 하는 한숨이 입에서 튀어 나왔다.
“내가 이것을 처음 보았을 때는 등뼈가 심하게 튀어 나온게 아닐까 생각했거든. 그런데 칼로 잘라보니 등뼈는 아니었어.”
“그래서요? 날개라는 이야기에요? 아니라는 이야기에요?”
“모르지. 얼추 날개와 비슷하긴 한데 설마, 아닐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어떻게 사람한테 날개가 생기겠어?”
“사람이요? 당신 지금 사람이라고 했어요? 물론 그 전에는 사람이었죠. 하지만 사람이 아니에요. 아니,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생물도 아니잖아요.”
아내 말이 맞다. 녀석들은 생물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생물은 번식을 해야 하는데 놈들은 번식을 하지 못했다. 오로지 인간을 물어 뜯어 개체수를 늘려갈 뿐이었다. 원래 죽었던 놈들이라 죽는다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여보, 좀 더 지켜봅시다. 놈들이야 자체가 돌연변이니까 뭔들 몸에서 안 솟아나겠어? 하지만 그래도 날개는 말이 안 돼. 그냥 그렇게 믿고 있자고.”    
여전히 놀란 눈을 하고 있는 아내를 뒤로 한 채 욕실로 들어섰다.
따뜻한 물을 머리에 뿌리기 시작하자 쿵쾅거리던 가슴이 슬슬 진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감았다.

4.

삶 자체가 좀비와의 투쟁이였으므로 사실 아버지와 나는 좀비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적을 알지 못하고서는 나의 안전을 지키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어떤 메카니즘으로 영양분을 섭취하여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인간을 뜯어 먹기는 하는데 인간의 고기로 배를 채우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좀비들이 뜯어 먹은 시체에는 의외로 많은 살점이 남아있으며, 이는 좀비가 뼈만으로 이루어진 괴물이 아니라는 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결론을 내자면 그들은 굳이 영양분이 없어도 살아간다. 하지만 살아? 죽은 놈들에게 살아간다는 말을 붙이는 것이 과연 적절할까? 혼란스럽다. 벌써 오랜 세월을 좀비들과 함께 하면서도 그들에 대해 아는 바가 너무 없었다.
반면, 아버지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던 그들이 어떻게 해서 우리와 동등한 속도로 달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문제에  집착하셨다. 아버지는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근처 도서관에 거의 날마다 들러 책들을 집으로 옮겼다. 여러 분야의 책들이었지만 대부분이 진화에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봐라. 네 할아버지 역시 놈들이 진화한다고 생각하신 거다.”
아버지는 이미 누렇게 변해버린 노트 한 권을 내 앞에 내놓았다.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기록한 일종의 일기였다. 아버지께서 펼친 페이지에는 약간은 기울어진 체의 글씨가 빼곡히 채워져 있었고 그 중 몇몇 문장에는 빨간 색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아마도 아버지께서 줄을 그으셨겠지.
/놈들의 걸음걸이가 이상하다. 뭐라고 딱히 집어 말하긴 어려운데, 확실히 전보다 놈들이 걷는 속도가 빨라진 듯 하다./
/바이러스 감염인가, 돌연변이인가. 놈들이 만약 진화를 한다면 보통 생물체와는 다른 방식으로 훨씬 짧은 기간 안에 진화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놈들이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최악이다./
/양적 축적이 질적인 변화를 이끈다. 이 놈들에게는 그 과정이 보다 짧고 파격적일 수도 있다./
/속도로 놈들을 제압할 확실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무사이자 칼을 만드셨던 할아버지로서는 좀비의 정체를 밝히는 작업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많은 의문을 가졌지만 그들의 정체를 연구하기 보다는 대응책 마련에 더 힘을 쏟았다는 것이 노트에도 드러난다. 그리고 그런 사유를 거쳐 원반톱을 장착한 자동차가 탄생했다.  그 자동차가 조금만 더 일찍 개발되었다면 할아버지는 자신이 만든 칼로 자신의 목을 자르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 그래서 놈들이 뛰게 된 것이 진화의 일종이라고 보시는 거에요?”
“그렇게 볼 수 밖에 없지 않겠나.”
“제 기능을 찾은 거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원래 사람은 잘 걷고 뛰잖아요. 그들도 원래는 사람이었고. 좀비가 되는 과정에서 뭔가 잘못되어 처음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지만 적응하면서 뛰게 된 것은 아닐까요.”
“그게 말이다. 한 놈의 일생동안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이해할 수 있다. 마치 아기가 기다가 서고 걷는 것처럼 놈들도 좀비가 된 순간에는 인간의 아기와 같은 상태라 못 걷다가 발육이 되면서 걷고 뛴다고 말이야. 하지만 놈들은 그렇지 않았어. 꽤나 긴 기간 동안 뛸 줄 아는 좀비가 없었거든. 어느 날 갑자기 몇 놈이 뛰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다 뛰게 된 거다. 이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니?”
“그렇다면 혹시 집단지성 같은 거 아닐까요?”
“집단지성? 개념적으로 좀비들의 경우에도 해당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좀비들은 집단으로 움직이잖아요. 놈들이 그냥 개인 플레이를 한다면 우리가 이렇게 힘들지는 않을 거에요. 집단으로 움직이니까 대처하기가 힘들죠. 메뚜기들이 적절한 환경이 주어지면 단체로 몸의 색깔이 변하면서 떼거지로 몰려 다니는 것과 비슷한 현상 아닐까요. 좀비들은 그 과정에서 달리는 기능을 발휘하게 된 것이구요.”
“네 이야기를 듣자니 놈들이 집단지성을 발휘하게끔 자극한 요인이 있다는 이야긴데..”
“물론 있죠. 바로 우리죠. 우리가 늘 놈들을 자극하고 있죠. 옛날처럼 다리를 질질 끌며 움직이다가는 우리 손에 다 당하고 마니까요.”
아버지와 나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좀비들이 곤충들이 보유하고 있는 본능과 같은 정도의 지성만 갖고 있으라는 법이 있는가.  
이윽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뭐든 간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5.

자동차를 몰고 거리로 나왔다.
놈들에게 진짜 날개가 생겼는지 또 그것을 이용해서 날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걷던 놈들이 뛰는 것은 원래부터 있던 다리의 성능이 향상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없던 기관이 생긴 것은 도대체 이해가 안 되었다. 인간의 진화도 있던 기관이 다른 기관으로 발전하는 과정의 축적이었지, 없던 기관이 갑자기 발생한 적은 없다. 적어도 난 그렇게 배웠다. 게다가 좀비는 비록 뛰어다니고는 있지만 죽은 몸이다.  새로운 무엇이 자라난다는 사실은 녀석들이 죽은 몸이라는 인식을 송두리째 뒤엎는 사건이다.
앞쪽에 두 놈이 보였다. 레이더를 작동시켰다. 사방 5백 미터 이내에 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차를 앞쪽으로 몰자 놈들이 나를 보고 뛰어 오기 시작했다. 버튼을 눌러 톱을 꺼내고 다가오길 기다렸다. 예상했던 대로 한 놈이 차 위로 뛰어 오르려 했다. 톱을 가동했다. 놈의 다리가 잘려 나갔다. 놈은 비명을 지르며 길바닥으로 쓰러졌다. 동료의 쓰러짐에 아랑곳 하지 않고 나머지 놈이 또 달려들었다. 다시 한 번 톱을 가동시켰다. 하지만 놈은 점프를 하면서 톱의 공격을 피했다. 그런데 그 점프가 단순한 점프가 아니었다. 차 안에서 쳐다보는 나의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였다. 잠시 후 차 천장위에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놈이 차 위에 착지한 것이다. 별 수 없이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내렸다. 순간 녀석이 달려들었다. 나는 바닥으로 한 바퀴 굴러 공격을 피했다. 놈은 잠시의 여유도 주지 않고 다시 나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엔 공중제비를 하여 녀석의 뒤로 착지했다.
“이런 제길..”
상의를 입지 않고 있던 놈의 등 뒤에 날개가 있었다. 전에 보았던 조그마한 근육 형태가 아니라 완연한 날개 모양이었다. 아까의 점프는 순전히 다리와 허리의 힘만으로 한 것이 아님이 확실했다. 완벽하게는 아닐지라도 놈은 날개를 이용할 줄 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위험하다.
놈이 나보다 한 차원을 더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둘러야 했다.
녀석이 두리번거리고 있는 사이 장도를 빼들고 등 뒤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놈의 오른쪽 날개를 단숨에 베었다. 크아악 하고 소리를 지르던 녀석이 고개를 나에게 돌렸다. 연이어 칼을 그어 올렸다. 이번엔 녀석의 왼쪽 팔이 떨어져 나갔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엉거주춤 서있던 좀비의 목 높이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면과 수평하게 칼을 그었다. 탁 하고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잘린 날개를 집어 들고 차로 돌아오려는 순간 레이더에서 경고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앞, 뒤, 옆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 경고는 사방 100미터 반경 내에서 움직임이 있을 때 울린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다.
“고장인가?”
다시 50미터 반경 내 움직임이 있을 때의 경고음이 나기 시작했다. 적어도 땅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늘이었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오른쪽 상공에서 시커먼 새 서너 마리가 날아오고 있었다. 아니 새처럼 보이긴 했지만 새는 아니었다.
“설마..”
후다닥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페달을 있는 힘껏 밟았다. 자동차는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레이더는 계속해서 경고음을 내었다. 점점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쿵”
차 천장에 내려앉았다.  
잠시 후 좀비가 왼쪽 창으로 기어내려 왔다. 그 때 또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몇 놈인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자동차는 멈춰 섰고 세 놈의 좀비가 자동차에서 떨어져 저 앞 길바닥에 뒹굴었다. 다시 페달을 힘껏 밟았다. 동시에 앞쪽의 원반 톱을 가동했다. 톱에 의해 잘려진 놈들의 몸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속력을 줄이지 않고 집으로 차를 몰았다. 레이더가 더 이상 경고음을 내지 않으니 놈들도 추격을 포기한 듯 싶었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눈에 들어갔는지 눈이 따가웠다. 손으로 땀을 훔치고 차고와 연결된 현관문을 여는 스위치를 눌렀다.

허겁지겁 들어오는 모습을 모니터링하고 있던 아내가 차고로 뛰어나왔다.
“무슨 일이에요?”
내가 숨을 몰아쉬며 대답을 하지 못하자 아내는 물을 한 잔 떠왔다.
물을 마시고 나서야 조금 진정되었다.
“놈들이 진짜로 날아.”
“예? 정말로요?”
“그렇다니까. 처음에는 새 인줄 알았어.”
“이런 일이..”
거실에 걸려있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진으로 눈이 갔다.
‘아버지. 아버지가 옳으셨어요.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날아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조차 못 하겠어.”
머리를 감싸고 있는 나를 쳐다보던 아내가 입을 떼었다.
“여보.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나비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번데기를 보고 어떻게 감히 나비를 상상할 수 있겠어요? 그건 거의 불가능할거에요. 좀비에게 내재되어 있는 뭔가가 이제야 발현되는 것 아닐까요? 우린 그 동안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던 것이구요.”
“아, 모르겠어. 좀비는 사람이 좀비에게 물려서 만들어지는 거야. 그런데 새로운 기관이 생기다니. 아무리 돌연변이라 하지만 돌연변이는 이런 과격한 변화를 하지 않는다고 배웠거든. 혹시, 놈들이 섹스를 통해 번식을 한다면 몰라. 하지만 그것은 아니잖아. 아니, 아니지. 이 지경에 이르니 별 생각이 다 드는군. 혹시 놈들이 섹스를 통해 좀비를 만들어내지는 않겠지?”
나의 푸념을 들은 아내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운이 짙게 돌았다.
괜한 말을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나만 믿고 사는 아내에게 이런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인데.
“어차피 그들에게 어떻게 해서 날개가 생겼는지는 알 필요가 없어. 그들과 맞서 싸워 이기는 것만이 중요한 거야.”
“그런데, 당신 혼자 괜찮겠어요? 정훈인 아직 어리고..”
아내의 눈을 쳐다보았다. 걱정하는 마음이 큰 눈에 가득 찼다.
“걱정마. 내가 누구야? 이 집안의 기둥 아닌가?”
“하지만 좀비들이 날기 시작했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싸움이 될 텐데요.”
“본질은 같아. 놈들은 생각을 할 줄 몰라. 자신의 등 뒤에 달려있는 날개가 얼마나 유용한지 모를거야. 그냥 본능에 따라 휘젓고 날아다니겠지. 내 생각에 날개 짓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게 될 거고, 우리 생각과는 달리 그다지 오래 떠 있지 못할 거라구.”
말은 자신 있게 하고 있었지만 나 역시 두려웠다. 놈들이 어떤 패턴으로 공격을 해올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그런 두려움보다는 놈들이 앞으로 또 어떤 식으로  진화를 하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 더 당혹스러웠다. 장차 내 아들이 상대해야할 좀비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난 아들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두어야 할까. 혹시라도 그들에게 생각하는 능력이 생기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6.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던 보호막을 걷어내었다.
“먼지를 털어내야죠?”
아내가 청소 도구를 들고 왔다. 아들도 걸레를 손에 들었다.
“그래야지. 아버지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건데. 내가 그 동안 너무 무심했나봐.”
차고에서 호스를 길게 끌어와 물을 뿌려댔다. 이 비행기를 이용해 놈들과 전투를 하게 된다면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전투가 끝날 때마다 깨끗이 닦아야 하겠지. 더러운 놈들의 피와 살점을 우리 집에 잠시라도 들여놓을 수는 없다. 아버지도 좀비가 비행체를 이용해 하늘을 나는 상상은 하셨어도 날개로 날게 되리라고는 꿈조차 꾸지 않으셨다.

자동차를 무기로 약 십년간 그들과 싸움을 계속해오던 아버지는 비행기를 만들겠다고 말씀하셨다.
“비행기요?”
“그래, 비행기. 그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이곳을 떠나실 계획인가요?”
“아니. 아무래도 우리 무기를 업그레이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야. 저 자동차는 너무 오래 썼어.”
“그래도, 문제없잖아요.”
“하하, 너도 젊을 때의 나와 똑같은 말을 하는구나.”
“예?”
“세상은 늘 변한다. 거기에 대비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고.”
난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자동차를 만들자고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 때와 지금은 다르다. 좀비들이 뛰기는 하지만 설마 날기까지 하겠는가.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아버지는 그런 내 속마음을 읽은 듯 했다.
“놈들이 날게 될 거라고 얘기하진 않았어. 그게 현실화된다면 놈들이 머리를 쓰게 된다는 이야긴데 그 날로 우린 끝일거야. 다만, 압도적인 힘을 갖자는 의미야. 3차원의 공간을 활용하면서 2차원에 머물러 있는 녀석들을 상대한다면 훨씬 쉽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그들이 날지 못한다고 확신하지도 못하겠구나.”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시고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알겠어요. 아버지. 준비해서 나쁠 것은 없겠죠.”

아버지는 자동차를 개발하면서 이미 웬만한 자동차 엔지니어들보다 훨씬 나은 실력을 확보했다. 자동차뿐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 만큼 기계면 기계, 농사면 농사 가릴 것 없이 전 방면에 능통해야 했다. 그런 아버지를 도우면서 자란 나 역시 기계라면 자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해보니 비행기는 자동차와 수준이 달랐다. 자동차는 그야말로 달리다 고장이 나면 설 수 있지만 비행기는 서는 순간 추락이다. 글라이딩을 통해 추락의 강도를 약화시키긴 해도 살아난다는 보장은 없다. 그 만큼 신중한 설계와 많은 시험이 필요하다.  
활주로가 없는 곳에서도 자유롭게 이착륙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헬리콥터를 개발하려 하였다. 하지만 헬리콥터는 공중전을 상상했을 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외부로 노출된 로터에 충격이 가해져 파손되는 경우 추락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아버지와 난 가장 중요한 사항이 뭔가를 정리했다. 가벼워서 동력을 그리 필요로 하지 않을 것, 수직 이착륙이 가능할 것, 무기는 원반톱과 같은 재래식 무기 장착, 양력을 발생하는 장치가 적들에게 쉽게 파손되지 않도록 할 것과 같은 사항들이 중요하게 고려되었다. 그래서 이착륙시에는 헬리콥터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고 평소에는 비행기처럼 날아가는 틸트 로터 형태의 비행기를 개발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엄청난 연료를 소비하는 제트 엔진은 애초부터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고 동력원은 하이브리드 엔진을 장착키로 했다. 이착륙시와 같이 많은 힘을 필요로 할 때는 경유를 사용하되, 비행을 할 때는 태양에너지와 연료전지가 생산하는 전기를 통해 프로펠러를 돌리기로 했다. 생각 같아서는 기관총이라도 달고 싶었지만 그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기술의 발달로 연료전지가 처음보다는 많이 가벼워졌지만 아직도 비행기 전체 중량에 비하면 과한 무게였다. 기술적으로는 이착륙시 프로펠러의 방향을 바꾸는 자세제어장치 개발에 어려움이 많았다. 비행기는 긴박한 상황에서 운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비행 모드를 바꾸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면 위험해질 것이 뻔했다. 비행 방향의 전환을 안정된 상태에서 최대한 빨리 하는 방법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초도비행시험을 하기까지 약 10년이 걸렸다.
그 세월동안 우리 부자는 비행기 개발에만 전념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놈들의 개체수가 위험 수준까지 늘어나는 것을 막을 정도로만 그들을 베었고 대부분의 시간은 비행기 개발에 투자했다. 생각해보니 단순히 비행기만 만들지는 않았다. 난 우리 집에서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했고 소중한 아이 둘을 두게 되었다.

“아버지, 준비되셨어요?”
“오냐.”
아버지와 나는 차고로 쓰던 옆방을 확장하여 만든 격납고에서 초도비행시험을 막 치룰 예정이었다. 비행기는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 아담한 크기였고, 여러 재료들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바람에 무슨 폐기물같이 보였다. 하지만 외관만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기능들을 곳곳에 숨겨놓았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다가 사냥시에만 드러나는 호랑이의 날카로운 발톱과도 같은 기능이다.
“시동 켜세요.”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들과 아내는 귀를 막았다. 하지만 “부르릉” 하고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이륙시에는 디젤 엔진을 사용하는 탓이다. 아내와 아이들은 겸연쩍은 웃음을 흘렸다. 양 날개에 붙어 있는 프로펠러는 위를 향했다. 엔진을 작동 시키고 나서 10초만 지나면 비행기는 이륙이 가능한데 이는 엄청난 순발력이다. 아버지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더니 천장을 여는 스위치를 눌렀다. 천장이 열리며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아, 하고 파란 하늘에 감탄하던 그 찰라 무언가가 뛰어 내렸다.
그것이 좀비라고 직감한 난 소리쳤다.
“피해!”
아내는 아이 둘을 끌어안고 거실 쪽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좀비 두 놈이 어느 덧 전방 2미터 앞까지 뛰어왔다. 허리에 차고 있던 장도를 꺼내 들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앞장섰던 좀비의 대갈통이 갈라졌다. 녀석의 걸쭉한 피가 얼굴에 튀었다. 나머지 한 놈의 목도 베려고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순간 윙하는 소리와 함께 내 앞에 서 있던 놈의 허리가 부러졌다. 비행기 측면에서 튀어 나온 원반톱이 나보다 먼저 놈을 베어버렸다. 조종석의 아버지는 다시 한 번 엄지손가락을 세우더니 곧 비행기를 이륙시켰다. 엄청난 바람이 불어와 눈을 뜨기가 어려웠다. 사뿐하게 떠오른 비행기는 순식간에 지붕위로 날아올랐고 천장 문이 닫혔다. 난 모니터를 보았다. 약 50미터 높이로 떠오른 비행기는 잠시 정지비행을 하면서 프로펠러 방향을 앞쪽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10초 정도나 걸렸을까? 비행기는 곧 전진비행을 시작했고, 비행기 꽁무니의 내부에 장착되어 있는 팬이 회전하면서 추진력을 내었다. 날개 옆에 붙어 있던 프로펠러는 회전을 서서히 멈추었다.
“동력원을 연료전지로 전환했다. 모든 것이 오케이다.”
아버지의 음성이 무전기를 통해 들려왔다.
“그래요. 아버지. 축하해요.”
“얘야..”
아버지의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퍼져 나왔다.  
“예?”
“참, 아름답구나. 하늘과 땅이.”      

그러나 아버지는 초도비행을 마치고 얼마 안 되어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죽음은 할아버지의 죽음만큼 극적이지는 않았지만 좀비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공통점은 있었다. 그것이 아마도 나를 포함한 우리 집안 사람들이 감내해야 할 운명인지도 모른다. 홀로 순찰을 나가신 아버지가 원반톱이 고장 나는 바람에 자동차에 갇혀 있다가 좀비들이 자동차를 뒤집는 순간 발생한 화재로 인해 비명횡사하셨다.

그 사고 후 비행기를 격납고에 방치해두었는데, 벌써 1년이 지난 셈이다.

7.

아내와 아이들이 모두 잠든 시간, 잠이 오지 않아 격납고에 나와 앉았다.
레이더를 켰다. 아무런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았다.
휴대용 레이더와 칼을 허리에 차고 집밖으로 나왔다. 수백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던 느티나무의 윤곽이 보였다. 느티나무 아래에 드러누워 심호흡을 했다. 공기에는 흐릿하지만 피비린내가 섞여있었다.
공장이 멎어버린 지구의 하늘은 티 없이 맑아 은하수가 징그럽도록 가깝게 보였다.
‘이렇게나 별이 많은데, 나를 도와줄 사람이 단 한명도 없구나.’
아버지 생각이 났다. 같이 싸우러 못 나가더라도 아버지가 살아 옆에만 계셨어도 정말 힘이 되었을텐데.
“아버지.”
나지막이 불러보았다.

잠시 졸았는지 어느 새 눈꺼풀 바깥으로 햇빛이 감지되었다. 밤하늘을 오랫동안 올려다보기도 오랜만이었지만 일출을 바라보는 것은 거의 처음 있는 일이다. 항상 긴장 속에 살아가느라 그런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 어려웠다.
그 때 휴대용 레이더에서 미세한 반응이 왔다.
“놈들도 잠을 자는 걸까? 해가 뜨니 기어 나온다?”
눈이 하늘로 먼저 갔다. 떠오르는 태양을 뒤로 하고 구름 비슷한 검은 무리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기어 나오는게 아니라 날아오는구나.”
어렸을 적 영화에서 보았던, 수만 발의 화살이 하늘을 뒤덮어 날아올 때 망연자실 바라보며 죽음을 기다리던 장군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난 아직 죽어서는 안 된다.”
격납고로 뛰어갔다.
비행기 엔진을 켰다. 정비를 말끔히 해둔 탓인지 엔진은 듣기 좋은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레버를 당김과 동시에 천장을 열었다. 어느 새 잠에서 깬 아내가 비행기 옆에 서 있다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난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고 미소를 지었다. 몸이 붕 떠오르니 마치 꿈을 꾸는 듯 했다. 아니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늘한 햇빛이 쏟아 들어오는 가운데 비행기는 공중으로 솟구쳤다. 다시 격납고의 천장을 닫는 스위치를 누른 후 천천히 비행 모드 전환 버튼을 눌렀다. 조금씩 앞으로 움직이면서 프로펠러의 방향이 전환되었다. 그리고 후미의 팬이 강력하게 회전하면서 동력원이 연료전지로 바뀌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비행기는 점점 빠른 속도로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날았다. 놈들은 10명 정도로 보였는데 마치 철새들이 장거리 여행을 하듯 V자 형태의 편대를 만들어 날았다. 그들에게 우두머리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제일 앞장 선 놈이 그나마 힘이 제일 센 놈이기를 바랬다. 난 먼저 그 놈을 칠 것이기 때문이다. 맨 위의 원반톱 스위치를 눌렀다. 비행기 앞에 원반 톱이 나타났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 때문에 원반 톱의 경쾌한 회전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미세한 진동을 통해 녀석이 얼마나 좀비의 몸통을 원하는지 느껴진다. 우두머리와의 간격이 10미터 정도로 좁혀졌다. 이 정도 거리면 곧 충돌한다.
두려웠다. 그 두려움을 이기고자 크게 소리쳤다.
“가자!”
곧 이어 커다란 소리와 함께 비행기가 기우뚱하더니 캐노피에 걸쭉한 액체가 튀었다.
새로운 전쟁의 도래를 알리는 피와 살덩어리였다.  


ps) '08년의 마지막 글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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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퓨탄 09.01.01 02:34 댓글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흐음.. 나(화자)도 전설이 되는 건가요? 괜히 그런 느낌이 드는 글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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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09.01.02 13:35 댓글 수정 삭제
    라퓨탄님. '나는 전설이다'를 말씀하신건가요. 영화가 생각보다 별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직 보질 못했는데, 언젠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좀비영화를 보면 언젠가부터 좀비가 뛰기 시작했잖아요. 옛날에는 어그적거리기만 했는데. 그래서, 이젠 날아야 하는 차례 아닌가 하는 아이디어로 쓴 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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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퓨탄 09.01.03 01:28 댓글 수정 삭제
    영화보다는 원작이 좋습니다.. 영화를 보면 스티븐 킹이 왜 저딴 원작을 보고 글을 쓰게 됐을까 싶지만.. 원작을 읽으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요.. ^^;;;

    그리고 원작은 좀비가 아니라 뱀파이어들이죠.. 나중에 함 읽어보세요. 영화는 볼 필요 없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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