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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2004.09.05 18:1809.05

어느 날, 인류 멸망의 씨앗이 싹을 틔웠다. 바로 A씨의 정수리에.

신은 항상 불만이었다. 사랑하며 살아보라고 그의 정원에 자리를 마련해준 인간들은 너무 많이 서로 싸우고, 미워하고, 죽였다. 그의 정원은 늘 시끄러웠고 신은 도저히 편히 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신은 그의 정원에서 사람을 치우고 진짜 나무를 심기로 마음먹었다.
신이 심기로 마음먹은 종자는 그가 특별히 빚은 것으로 인간의 증오심을 먹고 자라는 것이었다. 일단 싹이 트면 그 싹을 없앨 방법은 아무 것도 없었다. 싹은 쑥쑥 자라서 아스팔트에 뿌리를 내리고 빌딩을 부수고 하늘 끝까지 닿을 만큼 큰 나무가 되어서 결국 정원에 사람이 살 자리라고는 남지 않을 것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나무가 그의 정원의 주인이 될 것이다!
신은 튼튼한 씨앗을 몇 개 골라 사람들 틈에 뿌렸다. 씨앗은 굴러다니다 적당한 장소가 나타나자 싹을 틔웠다. 그 중 한 곳이 A씨의 정수리였다. A씨는 농담이라고는 모르고 깐깐하며 다른 사람의 잘못을 들춰내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A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씨앗은 정확하게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갑자기 머리에 싹이 돋은 A씨는 그것이 인류 멸망의 싹이라는 것을 알 리 없었지만 매우 당황했다. 뽑아보려고도 잘라보려고도 했지만 무슨 수를 써도 이 싹을 없앨 수는 없었다. 부끄러움을 참고 찾아간 병원 의사는 이미 싹이 A와 하나가 되어서 없앴다가는 A의 목숨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을 했다. 그는 머리에 싹이 났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났고 이혼을 당했으며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싹은 쑥쑥 자라났다. 그는 급기야 납치 당해 국가의 비밀연구단체에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며 과학자와 의사들의 실험대상이 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A는 좌절했다.

인류 멸망의 싹이 자랄 환경은 완벽했다. 신은 만족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그의 정원에는 소음도 분쟁도 모르는 아름다운 나무가 서 있을 것이었다. 신은 유쾌한 기분으로 쉬러갔다. 정원은 아직 시끄러웠지만 그에게는 특제 귀마개가 있었다.

그러나 신이 단잠에서 깨어나 정원을 내려다보자 거기에는 나무도 싹도 찾을 수 없었고 사람들만이 가득했다. 어떤 것으로도 없앨 수 없도록 특별히 만들어 낸 인류 멸망의 싹이 사라진 것이다!

A씨를 연구하던 과학자와 의사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A씨가 낙천적이고 명랑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연구소내의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었으며 모두는 그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원인이 싹에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싹이 나쁜 감정을 완화해주는 효과가 있으며 싹이 있으면 스트레스를 덜 받고 심인성 질병에 시달리지 않으며 노화가 느리게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아내 학계에 발표했다. 이제 사람들은 스스로 싹을 머리에 심었다. 발달된 유전자기술로 싹을 복제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엄청난 수의 싹은 사람들의 증오심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났고 그 성장에 반비례하여 증오와 불화와 전쟁이 사라졌다. 결국 양분을 공급받지 못하게 된 싹들은 어린 나무로도 자라지 못한 채 사람들 사이에 마지막 증오가 사라진 순간 모두 누렇게 말라죽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를 알게 된 신은 실망했다.

몇 십 년이 흐르자 사람들 사이에 증오와 분쟁, 전쟁이 가득해졌지만 안타깝게도 인류 멸망의 싹은 다시 자라지 않았다.
ad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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