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과부들

2009.05.06 11:4405.06

과부들


집에 돌아오니 장모님이 와 계셨다. 장모님이 사시는 곳으로 말할 것 같으면, 대여섯 시간씩 고속버스를 탄 뒤, 늙은이 해소기침처럼 콜록거리며 달리는 기차에 올라서는 또 한 시간 정도를 가야, 이제 절반쯤 왔구나하는 곳이었다. 한 마디로 멀다는 거고 두 마디로 하자면 웬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고는 절대 우리 집에 올 일이 없다는 거다.
역시나, 먼 길을 오는 게 힘들었던지 노인네는 거실에서 모로 누워 잠들어 있었다.
“언제 오신 거야?”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아까, 저녁 때.”
“왜 저기서 주무시게 해? 방으로 모시지.”
“얼마 전에 잠드셨어. 나랑 이야기하다가.”
아내가 안방까지 따라 들어오면서 대답했다. 평소와 다르게 내가 벗어 놓는 옷가지들을 받아 들면서 따라다니는 걸 보니 뭔가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 듯 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이야기 좀 해.”
아내가 말했다. 자못 진지한 표정이었다.
“알았어. 일단 좀 씻고.”
나는 서둘러 화장실로 향했다. 아내가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하자면 대게 귀찮은 내용이었다. 내가 스트레스 받는다는 걸 알면서도 수입이 변변찮네, 앞으로가 걱정이네 떠들어 대는 아내를 보면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다. 참아야지 하면서도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자기는 집에서 놀고먹는 주제에…….’

화장실 불은 어두운데다가, 느린 속도로 계속해서 깜박였다. 그 밑에 서 있자니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불 좀 갈지. 얼마나 한다고….’
눈을 가늘게 뜨고 깜박이는 백열등을 노려보자니 새삼 부아가 치밀었다. 며칠 전부터 아내에게 전구 좀 사 놓으라고 말했지만 도대체가 들어 먹질 않는다.
“건너편 철물점이 문을 닫아서 그래. 그 집 아저씨가 며칠 째 행방불명이라 정신이 없는가 봐.”
처음 전구 이야기를 했을 때 아내는 그렇게 변명을 했었다. 철물점 주인이라면 나하고도 몇 번 마주쳐서 술을 먹었던 사이다. 커다란 덩치에 괄괄한 목소리만큼이나 성격도 화통했던 그치는 술만 들어갔다 하면 “마누라하고 북어는 삼일에 한 번씩 두드려야 된다니까” 하고 떠들어댔다.
“며칠 안 보인다 했더니……. 술 먹고 맨홀에라도 빠진 거 아냐?”
통성명을 하진 않았지만 행방불명이라니 참 안 됐다는 생각을, 당시에도 했다. 하지만 그거랑 전구는 별개다. 벌써 며칠이 지났다. 철물점이 문을 닫았으면 마트에라도 가면 되는 것이다.
“쓸데없는 물건은 잘도 사면서…….”
한바탕 퍼붓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세차게 수도꼭지를 돌렸다. 수돗물은 죽은 놈 콧바람만큼이나 찔끔찔끔 나왔다.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상을 줘야 할 판인 이 낡은 영세민 아파트에서는 저녁 시간이 될수록, 층수가 높아질수록 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
“이런 개…….”
저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평소라면 세면대에 물이 받힐 때까지 똥이라도 누면서 내처 기다렸겠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모든 게 짜증스러웠다.
이유는, 하나뿐이다.
장모님.
싸구려 천으로 만든 못난이 인형처럼 쭈글쭈글한 그 노인네가 우리 집에 온 것은 분명 대단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리라. 아내와 내가 몇 년 째 냉랭하게 지내는 거야 장모님도 이미 안다. 아내는 나랑 다투고 나면 귀도 잘 들리지 않는 그 노인네한테 전화를 해서는 바락바락 악을 쓰곤 했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으로 늘 죽은 듯 지내는 장모님이 올라 올리는 만무하다. 아내가 유산을 했을 때도 멀다는 이유로 얼굴을 내밀지 않았던 노인네였다. 본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직감으로,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일을 들키기라도 한 건가?  

멸종한 생물의 긴 학명처럼 낯설긴 해도, 아내와 나는 제법 사랑하는 사이였다. 오래 전의 일이다.
우리는 학내 커플이었다. 나는 고고학과, 그리고 아내는 국문학과. 흔하디흔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소개팅으로 만났고, 몇 번의 데이트를 더 하고는 곧 연인이 돼 버렸다. 나름 불타는 청춘이었기에 우리의 미래는 장밋빛이었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도서관에 가고, 함께 교양 과목 수업을 들으며, 우리는, 여름바다에 부서지는 햇빛처럼 찬란하게 즐거웠다. 때로는 아내의 자취방에서 길고 긴 겨울밤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암모나이트처럼 돌돌돌 말려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우리는 짐작보다도 훨씬 더 서로를 사랑했던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군대를 다녀오고, 또 취업 준비를 하느라고 보냈던 6년이 넘는 시간동안 우리는 거짓말처럼 상대방만을 사랑했다. 결국 둘 다 가진 게 없었음에도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순수한 사랑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혼 이후로는 어이없을 정도로 너무나 쉽게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다.
다툼은 늘 사소한 것들 때문에 시작됐다. 양말을 뒤집어 벗어놔서, 변기 커버를 올려놔서, 술 먹고 늦게 들어와서, 그리고 돈을 못 벌어 와서 아내와 나는 싸웠다. 11평 낡은 아파트 벽면에 새겨지는 금처럼 아내와 나 사이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상흔이 늘어갔다.
나는 가끔 그 최초의 계기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사랑의 이유가 그랬던 것처럼 그 계기야 무수히 많겠지만, 그래도 딱 하나 짚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유산’이다.

아이는 결혼하고 3년째가 돼서야 들어섰다.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하지만 아내는 임신 사실을 알리는 내내 표정이 어두웠다. 내가,
“왜? 당신은 안 기뻐?”
라고 물어봐도,
“으응. 기뻐.”
라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나는 그 표정 속에서 아내가 돈 걱정을 하는 것임을 대번에 읽을 수 있었다. 당시에도 나는 변변한 직장이 없었다. 고고학 박사가 돼서 대학교 강단에 서겠다는 애초의 꿈은 퍽퍽한 결혼 생활과 함께 날아가 버렸고, 대신에 아는 선배 학원에서 강의가 빌 때마다 수학이나 영어 같은 걸 가르쳐 주고 푼돈 벌이를 했다. 그마저도 일정치가 않아서 생활은 상당히 괴로웠다. 아내의 걱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지만 돈이야 어떻게든 될 거란 게 당시의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졌다. 아내가 아파트 계단에서 굴러 유산을 한 것이다. 나는 일자리를 구하려고 최종면접을 하던 중에 놀라서 뛰어나왔고, 그 길로 병원으로 달렸다. 아내는 파리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때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때 아내는, 고통과 슬픔에 젖어 수척하고 힘든 얼굴 한 편에 홀가분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발끈해서 소리치고 말았다.
“당신 일부러 그런 거 아냐?”
“뭐?”
아내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말을 꺼낸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멈출 수가 없었다. 아니, 멈추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한층 더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일부러, 애를 떼려고 일부러 구른 거 아니냐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내는 발악을 하듯 울음을 터트렸다. 실제로 그렇다고 해도 감히 꺼내면 안 돼는 말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 사이에는 길고 두터운, 그리고 혹독한 빙하기가 찾아왔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저수지의 물이 썩어가는 것처럼 우리 둘의 허울 좋은 결혼 생활은 점점 더 그 바닥을 드러냈다. 악취가 풍기는 시커먼 진창…….
급기야 며칠 전에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를 뻔 했다. 술에 취해 돌아와 보니 아내가 침대에 누워 퍼질러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왜 그렇게 밉살맞아 보이던지 나는 침대 맡에서 한참 동안 아내를 노려봤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양손으로 아내의 목을 감싸 쥐고 있었다.
조금만 힘을 준다면…….
불거진 정맥 안으로 펄떡이는 살의가 흘렀다. 손가락이 떨렸다. 그 순간 아내가 몸을 움직였다. 깜짝 놀라 손을 거둬들였다. 아내는 몇 번 몸을 뒤척이더니 다시 고른 숨을 쉬었다. ‘자는 척 하는 게 아닐까?’ 썰물처럼 긴장감이 물러가며 대신에 그런 의문이 밀려들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소름이 온몸을 뒤덮었다.

나는 물이 받히는 희미한 소리를 들으며 말없이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노려봤다. 몰라보게 야윈 삼십 대 중반의 남자가 일그러진 미소를 짓고 있다.
“못난 놈.”
혼자서 중얼거려 본다.
거울 속의 남자도
“못난 놈.”
이라고 내 말을 따라한다. 진짜로 그 말이 들리기라도 한 것처럼 돌연 등골이 서늘하다.

세수를 하고 나오니 아내가 화장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대뜸 찻잔을 건넸다. 따뜻한 갈색 액체가 찰랑거린다.
“뭐야?”
“꿀차. 피곤할 텐데 마셔.”
나는 놀라서 찻잔과 아내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만 쳐다보고 마셔. 독이라도 탔을까봐?”
내 시선을 눈치 챘는지 아내가 멋쩍게 웃었다.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뜨뜻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며 긴장돼 있던 몸의 근육이 풀리는 느낌이다. 이유야 어쨌든 아내의 호의가 싫지만은 안다. 장모님만 아니라면 그야말로 오랜만에 아내를 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자 슬며시 아랫도리가 부풀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내는 내 손을 잡고 거실로 이끌었다.
“할 얘기가 있으니까 이리 와 봐.”
“무슨 얘기? 그것보다 장모님이나 안에 눕혀드려.”
“됐어. 지금은 그런 거 신경 쓸 때가 아냐. 중요한 얘기가 있다니까.”
아내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나도 엉거주춤 따라 앉았다.
“무슨 일인데?”
아내는 해야 할 말을 찾는지 조금 뜸을 들였다.
“당신, 우리 아빠 알지?”
“알……지.”
알긴 하지만, 아내의 아버지 그러니까 장인어른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장인어른은 이미 오래 전,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단지 남자친구였기 때문에 아내를 위로하는 일 이상의 다른 것은 할 수가 없었다. 아내는 아버지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고 내 입장에서도 딱히 이야기를 꺼낼 이유가 없었기에 장인어른은 자연스레 잊힌 존재가 되었다. 그래도 딱 한 번, 장인어른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무슨 일인지 몰라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난 상태였다. 그래서 아내의 따귀를 올려붙였다. 그러자 아내는 눈에 분노를 가득 담아 나를 노려보면서, 당신은 아빠와 똑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가끔 아내에게 손을 대기 시작한 건.
“장인어른은 왜? 돌아가셨잖아?”
“돌아가신 게 아냐. 실종되신 거지.”
“뭐?”
아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빠가 돌아가셨다며 눈물을 흘리던 처녀적의 아내 얼굴이 떠올랐다. 장례를 위해 고향에 다녀온 후로는 몇 달간이나 우울해 있어서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무진장 노력했었는데……. 장모님도 분명히 바깥양반은 심장마빈가 뭔가로 세상을 떴다고 말씀하셨지 않은가. 그런데 이제 와서 실종이라고?
“실종되셨어. 어느 날 갑자기. 나도 처음에는 돌아가신 줄 알고 고향으로 내려갔었는데, 거기서 알게 됐지.”
“그럼 결국 찾지 못해서 사람들한테는 돌아가셨다고 말한 거고?”
“응. 좀 복잡한 사정이 있어.”
“그런데 그 이야기를 왜 갑자기 하는 거야?
“아빠 실종이 지금 할 중요한 이야기와 관련이 있어.”
아내는 비장한 각오라도 다지는 것처럼 눈을 빛냈다. 장모님이 숨을 쉴 때마다 가르랑 가르랑 가래 끓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렸다. 눈이 내려서 그런지 주위가 다 조용했다. 바닥은 따뜻하고 아늑했다. 아내의 생뚱맞은 이야기만 없다면 평화로운 여느 집의 저녁 풍경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도 몸이 노곤해지면서 설핏 졸음이 몰려온다. 하지만 아내는 전에 없이 초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왠지 아내가 낯설어 보인다.
“당신, 우리 마을 기억하지? 인사드릴 때 가 봤으니까.”
“응.”
“거기 꽤 시골이잖아. 우물에서 물 길어먹고, 전기 안 들어오는 집도 많고.”
“그렇지. 시골이지. 전국을 뒤져봐도 그런 마을 찾기 힘들 걸.”
나는 그렇게 말하며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아내의 고향을 찾았던 때를 떠올렸다. 우리나라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낙후된 곳이었다. 그나마 아내의 집은 잘 사는 편이었는지 슬레이트 지붕들 틈에서 이층 양옥으로 지어진 아내의 집이 유독 튀었던 게 생각났다.
“내가 어릴 때도 지금과 똑같았어. 발전이 없었던 거지. 물론 그때는 우리 집도 완전 시골집이었어. 그리고 이야기는 바로 거기서 시작 돼.”
베란다 창에 눈송이들이 부딪치며 밤이 깊어갔고, 아내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엄마한테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나는 계속 울었어. 그런데 눈물이 나온다는 걸 신기해하면서 울었던 것 같아. 사실 아빠랑 나는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거든. 아빠는 전형적인 옛날 분이라 꽤 엄격하시기도 했고, 애정 표현 같은 걸 기대할 수도 없었지.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도시에 나가 혼자 생활하게 된 것도 아빠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어. 나는, 우리 집의 그 갑갑한 분위기가 싫었거든.
아무튼 고향에 도착해서 집을 향해 걷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 거야. 어둑어둑해질 무렵이라 땅거미가 지고 있었고 딱 오늘 날씨처럼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는 게 금방이라도 뭐가 튀어나올 것 같긴 했지만, 내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그 때문이 아니었어.
너무 조용했어.
사방이, 너무 조용했던 거야.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하고는 달리 너무 조용했지.
참! 내가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랑 같이 살았다는 이야기는 했나? 엄연히 말하면 그분들이 우리 가족이랑 같이 사신 거지. 고향 집의 원래 주인이 바로 외할아버지셨거든. 그러니까 아빠는 소위 말해서 데릴사위였던 거야. 아빠가 왜 데릴사위로 들어오게 됐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어. 그냥 아빠가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했으니까, 장인장모님을 부모님 삼아 같이 살게 되었다고 짐작할 뿐이지. 나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그냥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불렀고, 실제로 두 분이 엄마의 부모님이란 사실을 알게 된 건 초등학교 들어가고서도 한참 뒤였어. 아무튼 그 두 분께 어릴 때부터 엄청 사랑을 받았지. 무뚝뚝했던 아빠나 늘 삶에 지쳐있던 엄마에게서 미처 다 받지 못한 사랑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주셨던 거야.
그런데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쯤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나중에 또 이야기 하겠지만 이 외할아버지의 죽음에도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어렸으니까 그런 걸 알 턱이 없었지. 대신에 지금도 생각나는 건, 온 집이 왁자지껄 했다는 거야. 마을 사람들이 다 몰려 와서는 잔치라도 벌이는 것처럼 전을 굽고, 국을 끓이고 하여튼 시끄러웠지.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몰라도 너무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인지 아빠의 죽음보다 더 불길한 어떤 일이 생긴 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면서 집으로 향했지.
집은 온통 깜깜했어.
그리고 그 집 한 가운데 엄마가 나와 계셨어.

“엄마. 무슨 일이야?”
나는 그렇게 물었던 것 같아. 무슨 일인지 뻔히 알고 갔으면서도, 왠지 말이 그렇게 튀어나와 버린 거지. 엄마는 담담한 표정이었어. 그러면서도 뭔가 초조하고 감추는 게 있는 것 같은 표정.
“고생했다. 일단 좀 들어와 봐라.”
그렇게 말하면서 엄마는 나를 안방으로 끌고 들어갔어. 나는 그 순간 엄마 목소리가 조금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챘지. 쇠로 긁는 것처럼 미묘하게 거슬리는 소리더라고.
“아빠는?”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아빠가 죽었다는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지. 나는 불 꺼진 작은 방에 아빠 시체가 누워있는 게 아닌 가 싶어 어둠속을 뚫어지게 쳐다봤어. 순간 섬뜩해지더라고. 그래서 엄마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갔지.
“앉아라. 할 이야기가 있다.”
엄마는 전에 없이 단호하고 딱딱한 말투였지. 당신도 알겠지만 엄마는 완전 시골 아줌마야. 아빠가 엄격하고 무뚝뚝한 옛날 아버지상의 전형이라면 엄마는 그 반대지. 그래서 나는 엄마가 집안에서 큰 소리를 내거나 자기주장을 펴는 걸 못 봤어. 주눅 든 사람처럼 늘 소곤소곤 말해서 나는 엄마가 답답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지. 그랬던 엄마가 그때만큼은 사뭇 달라져 있는 거야. 나는 내심 많이 놀랐어.
“그전에 불부터 켜자. 깜깜한데 이게 뭐야?”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스위치를 찾았지. 그런데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로 엄마가 말리는 거야.
“안 돼! 켜지마. 그냥 이대로 이야기를 들어.”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한 나는 조용히 앉았어. 하지만 엄마는 망설이는 듯 말씀이 없으셨지. 한동안 침묵이 흘렀어. 어둠속에서, 엄마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지. 그리고 잠시 후, 평생 잊지 못할 말씀을 엄마가 하셨어.
“니 애비는 내가 죽였다.”
“뭐?”
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 그러면서도 순간적으로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접수가 돼질 않았지. ‘내가’라는 말과 ‘죽였다’는 말이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 같았어. 엄마는 다시 한 번 또박또박 말씀하셨어.
“내. 가. 죽. 였. 다. 고.”
“정말? 왜…… 왜?”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죽인 건 아니지.”
엄마의 아리송한 대답에 나는 어리둥절했어. 엄마가 실성했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지.
“도대체 무슨 말이야? 아빠는, 아빠는 어디 있어?”
“사라졌어. 니 애비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제 이 세상에 없어.”
“사라졌다고? 그럼 실종이라는 거야? 경찰에 신고는 했어?”
나는 몰려드는 궁금증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지.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궁금했던 건, 엄마가 어떻게 이렇게 담담한가 하는 거였지.
“소용없어. 그 양반은 찾을 수 없을 거야. 그래서 너한테 전화한 거야. 돌아가셨다고.”
“엄마! 제발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봐. 진정하고!”
진정해야 할 쪽은 오히려 나였지만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어. 엄마가 너무 큰 충격에 정신이 나가버린 건 아닌지 걱정 됐기 때문이야.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아빠가 어떤 사고로 돌아가셨고, 그 사고의 원인 제공자가 엄마라서 살짝 미쳐버린 게 아닐까 하고 막연히 짐작하고 있었거든. 그게 아니라면 그날 밤 엄마의 횡설수설을 이해할 수가 없었어. 뭐, 나중에야 모든 게 이해됐지만 말이야.
“휴.”
엄마는 긴 한숨부터 쉬셨어. 그러더니 대뜸 이상한 소리를 하시는 거야.
“너도 물건 자주 잃어버리냐?”
“응? 그, 그래.”
나는 엉겁결에 대답했지. 무슨 의미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이야.
“이 애미도 참 자주 잃어버렸지. 분명히 잘 뒀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이면 어딜 갔는지 감쪽같이 사라져서 찾을 수가 없었지. 니 애비는 그걸 두고 어떻게나 타박을 하던지. 정신 나간 여편네라고 말이야.”
엄마 말을 듣고 있으니 그런 일이 자주 있었다는 기억이 떠올랐어. 엄마는 집안의 소소한 물건들을 참 자주 잃어버렸고, 아빠는 그걸 두고 역정을 내시곤 하셨지.
당신도 알겠지만, 나도 엄마를 닮아선지 뭘 자꾸 잃어버려. 어릴 때부터 그랬지.


아내는 여기까지 이야기하고는 숨을 골랐다. 그러고는 보일 듯 말 듯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나는 멍하게 앉아 있다가 문득 정신이 들어 손에 들고 있던 꿀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꿀차는 어느새 식어 있었다.
아내가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건 사실이었다. 신혼 때, 아니 그 보다도 더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내가 아내를 알고부터 줄곧, 아내는 뭔가를 잃어버려서 당황하곤 했다. 때로는 강의노트였고, 또 때로는 수첩이나 볼펜이었고, 가끔은 지갑이나 가방처럼 꽤 중요한 것들까지 잃어버렸다. 처음에는 나름 귀엽기도 했는데 결혼을 하고 시간이 지나니까 아내의 그런 모습이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그때마다 나는 잘 좀 간수를 하라고 타박을 줬었는데, 그럴 때면 아내는 제자리에 뒀는데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변명을 하곤 했다.
그런데 장모님도 그랬다면, 그런 것도 유전이 되는가? 아내의 뒤쪽에서는 장모님의 숨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장모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을 아실까?
“어때? 이야기 지루해?”
불시의 질문에 나는 당황해서 대답했다.
“아…아니. 재미있어.”
확실히 재미는 있었지만 도대체 왜 이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장인어른이 실종되었건, 혹은 장모님에 의해 살해되었던 그게 지금에 와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지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아내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고, 이야기가 끝났을 때쯤에는 무언가 중요한 게 들어있을지도 모르니까.
아내는 이야기를 계속 했다.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아! 그래.
엄마가 뭘 자주 잃어버린다는 건 나도 인정하는 바였어. 그런데 왜 뜬금없이 그 얘기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지. 그래도 엄마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어. 진득하게 기다리면 엄마가 모든 궁금한 걸 술술 털어 놓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뒤이어 깜짝 놀랄 만 한 이야기를 하셨어.
“죽은 니 외할머니도 뭐든지 그렇게 잘 잃어버리셨다. 그리고 외할아버지도 사실은 죽은 게 아니라 사라진 거였어.”
“엥?”
정말로, 그렇게 이상한 소리가 나오고 말았어. 물건을 잃어버린다는 이야기 끝에 외할아버지의 실종을 가져다 붙이는 엄마의 의도가 꽤 코믹했기 때문이지. 한 마디로 황당했어. 물론 외할아버지가 실종됐다는 이야기는 놀랄 만 한 거였지만, 그거하고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거 하고는 전혀 유사성이 없잖아. 즉,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신 거였어. 외할머니는 물건을 잘 잃어버렸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외할아버지가 실종됐다. 그리고 아빠도 실종됐다. 놀랍지 않느냐?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렇게 이해했지. 나중에 가서야 그게 얼마나 큰 오해였는지 알게 됐지만.
“사라지셨다고? 외할아버지가? 장례식도 했잖아. 분명히 기억하는 걸. 그때 나는 6학년이었고…….”
“그건 일부러 숨긴 거야. 다른 사람들한테는 돌아가셨다고 했지. 물론 너한테도.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은 외할머니랑 나, 그리고 마을 아줌마 몇 밖에 없었지.”
“그럼 관 속에는……?”
“우리 집에서 기르던 황구 기억나지? 송아지만 하던 개. 그 녀석이었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 날, 황구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어.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지.
“왜 숨겼어? 실종 되셨으면 찾아야지!”
“절대 찾지 못할 거란 사실을 아니까. 그러니까 숨겼지.”
“아빠는, 아빠는 알고 계셨어?”
“니 애비에게도 비밀로 했다. 그날 아침에 니 애비가 읍내로 볼 일 보러 나갔던 거 기억하냐? 외할머니가 시킨 일이었어, 그건. 뭘 좀 사오라고.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외할아버지가 사라졌고, 그 양반이 돌아오기 전에 마을 아줌마들을 불러서 일을 다 끝내 버렸지. 물론 평소에 잘 알던 장의사가 도와주긴 했지.”
평소에 잘 알던 장의사라면 김씨 아저씨가 분명했어. 기억해? 우리 결혼할 때도 축의금을 보내 왔는데. 아무튼 그 아저씨의 할아버지 대부터 엄마 쪽과 친분이 있었나 봐. 자주 왕래를 했거든. 만약 그 아저씨가 거들었다면 염을 하고, 관에 넣는 것까지 순식간에 해 치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물론 관에는 외할아버지가 아니라 황구가 들어갔겠지만….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갑자기 무서워지는 거야. 그래서 나는 떨리는 소리로 물었지.
“왜? 왜 그랬어?”
“외할아버지는 더 이상 쓸모가 없었으니까.”
엄마의 냉정한 말에 나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어. 외할아버지는 나에게는 다정했지만 다른 사람들, 이를 테면 외할머니나 엄마에게는 그다지 좋은 남편도, 좋은 아빠도 아니었다는 사실은 인정해. 어린 시절에도 그런 것쯤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거든. 실제로 종종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방에서는 때리고 맞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어. 그때가 벌써 환갑이 넘었는데도 말이야.
아무튼 그렇다고 해서 더 이상 쓸모가 없었다고 말하는 건 좀 심하다는 생각을 했지. 게다가 당신도 눈치 챘는지 모르겠지만 엄마의 말 속에는 굉장히 큰 모순이 숨어 있었어.
아무리 쓸모가 없다고 해도 외할아버지가 그냥 사라져 줄 리가 만무하잖아? 일부러 어떤 수를 쓰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그건.
나는 그 사실을 지적했지. 그러자 엄마가 말했어.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었어. 니 외할머니는 좋은 방법을 알고 계셨지. 외할아버지가 사라지기 전날 밤, 외할머니는 나를 불러놓고 그 방법에 대해 말씀 해 주셨어.”
“뭐, 뭐야? 그 방법이라는 게?”
“난쟁이.”
“뭐?”
“난쟁이라고. 집안의 물건을 훔쳐가는 난쟁이. 그게 방법이었어.”

그래. 바로 그런 표정이야. 당신이 지금 짓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을 나도 지었어. 난쟁이라니……. 당신이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멸종된 동물의 학명처럼 낯설고 생소한 단어였지. 엄마 입에서 차라리 영어나 스페인어 혹은 불어가 나왔더라도 그것보다 더 이상하지는 않았을 거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속에는 힘이 있었어. 진실만이 가지는 힘.
“무슨 말이야, 그게? 오늘 엄마 왜 그래?”
“자주 물건을 잃어버리면서 이상하다는 생각 해 본적 한 번도 없니? 분명히 그 자리에 뒀는데 없어지고 나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 그때마다 누군가 가져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 적 없어?”
분명히, 나도 있었어. 미치고 팔짝 뛸 것만 같아서 누가 훔쳐간 건 아닌지 의심했던 적이. 당신이랑 사귈 때는 당신이 일부러 가져간다고 생각하기도 했어. 그래서 변태가 아닌 가 의심하기도 했지. 물론 지나간 이야기야. 아무튼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어. 절대 농담이나 우스갯소리가 아니었지. 그래서 나도 덩달아 긴장을 했지.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했었지. 니 애비에게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냐고 구박을 받을 때도, 누가 내 물건을 일부러 가져간 게 아닌 가 의심했었어. 그렇지 않고서야 바로 몇 분 전에 올려둔 게 갑자기 사라질리 만무하니까. 하지만 실제로 목격한 적도, 또 가져갈 만 한 사람도 없다는 걸 알기에 속절없이 당하고만 있었어. 외할머니가 나를 방으로 불렀던 그날 밤 전까지는 말이야.”
“거기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는 거야? 그…… 난…….”
“난쟁이. 그렇지. 어머니, 그러니까 니 외할머니가 난쟁이 이야기를 해 주셨다. 낡고 오래된 집에 숨어 살면서 사람들 물건을 훔치는 난쟁이 이야기를.”
“그 말을 믿었다는 거야?”
“외할머니는 직접 보셨다고 했다. 사람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그것들 여럿이서 부엌칼을 들고 사라지는 걸. 처음에는 꿈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진짜로 부엌칼이 없어져서 꿈이 아니란 걸 아셨다고 했어.”
나는 엄마가 하는 말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지. 일말의 의심을 하면서도 왠지 정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어. 그래도 궁금한 건 많았지.


아내는 마치 나에게 묻는 것처럼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아내의 이야기는 허무맹랑했다. 늘 이성적이던 사람이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그것도 너무도 진지하게 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지금 그 이야기를 믿는 다는 거야, 당신은?”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쟁이들이 물건을 훔쳐간다고?”
“그래. 이제는 믿어. 확실히.
“그렇다면 난쟁이하고 당신 외할아버지 실종하고는 도대체 무슨 상관이야?”
“그렇지. 나도 엄마한테 그렇게 물었어. 그러자 엄마가 무슨 말을 하셨는지 알아?”
아내는 내가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는 것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질문을 던졌다. 나는 본래 수수께끼 같은 거에 관심이 없다. 궁금해서 못 참는 것이다. 추리소설도 몇 번인가 읽어봤지만 조금 읽다가 늘 맨 마지막 장으로 넘겨서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곤 했었다. 그러니까, 아내의 질문이 마음에 안 들 수밖에. 어서 답을 말해줘, 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내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슬금슬금 뜸을 들이더니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니 외할머니는 또 이렇게도 말씀 하셨다. 평소에는 절대 사람 눈에 띄지 않던 난쟁이들이 어떤 사람 눈에 보이게 되면 그 사람을 위해서 착한 일을 해 준다고.”
“착한 일?”
나는 그 대목에서 긴장이 풀어졌지. 이야기가 어째 동화처럼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물건을 훔쳐가는 난쟁이에다가 이제는 착한 일을 하는 난쟁이라니……. 한 순간이나마 진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게 한심할 정도였지. 하지만 엄마는 이야기를 계속 하셨어.
“그래.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들을 가져가고 대신 더 좋은 걸 갖다 주는 거지.”
그 순간 나는 엄마가 왜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 나는 물었지.
“그러니까 엄마는 외할아버지의 실종이……?”
“외할머니는 분명히 말씀 하셨다. 나는 오늘 밤에 그 지긋지긋한 영감탱이 데려가 달라고 난쟁이들한테 빌 거라고. 그러고는 다음 날 거짓말처럼 니 외할아버지가 사라졌지. 그 전까지는 이 애미도 믿질 않았다. 하지만 내 눈으로 보고는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점심 드시라고 외할아버지가 책을 읽고 계시던 방 앞에서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지. 그래서 방문을 열었더니 바로 몇 분전까지만 해도 그 방에 계셨던 양반이 감쪽같이 사라진 거야. 마치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처럼….”
어둠속 어딘가에서 누군가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아 나는 불안하게 두리번거렸어. 어둠이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나는 내가 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머릿속으로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스멀스멀 공포가 피어올랐던 거지. 방금 전까지 동화 같다고 생각했던 천진한 마음은 어둠속에서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지. 생각 같아서는 엄마의 이야기를 가로막고 방을 뛰쳐나가고 싶었어. 하지만 그 자리에 못이라도 박힌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어.
나는 마지막 용기를 짜내서 끔찍한 질문 하나를 던졌어.
“그럼…… 아빠도?”
내 목소리가 기괴하게 울렸어.
“그래. 니 애비도 난쟁이들이 데려갔다.”
엄마는 역시나 덤덤하게 말했어. 띄어쓰기가 안 된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를 읽는 것처럼, 기계적이고 무미건조하게.
“석 달 전쯤부터 난쟁이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 양놈처럼 매부리코에다가 못 생긴 놈들이더구나. 하지만 나를 보고 웃었지. 톱날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그놈들이 밥주걱을 들고 사라지면서 나를 보고 웃더구나. 그제야 깨달았지. 아! 이 복 없는 년한테도 좋은 일이 생기는 구나.”
“아빠도 쓸모가 없어진 거야?”
그때 내가 눈물을 흘렸는지 어땠는지는 아직도 기억나지 않아. 다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는 것만은 사실이야. 아무리 그래도 아빠였잖아?
“넌 아직 모르겠지만 남자들은 쓸모없어질 순간이 오는 거란다. 하지만 어떤 여자도 쓸모없어진 남자를 처분할 방법을 모르는 것뿐이지. 하지만 이 애미는 알고 있었고, 그걸 실천했어. 니 애비는 오늘 새벽에 사라졌다. 화장실 간다고 나갔던 양반이 내처 돌아오지 않아서 난쟁이들이 데려갔다는 걸 알게 됐지.”
엄마는 그 후 말씀이 없으셨어.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만 있었지. 아무리 생각을 가다듬으려 해도 쉽지가 않았어. 긴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 눈을 뜨면, 모든 게 현실로 돌아가겠지 하는 생각을 했었어, 실제로. 하지만 뒤이어 들린 엄마의 웃음소리에 그 생각이 날아가 버렸지.
“쿡쿡쿡.”
엄마는 소리를 죽여 웃고 계셨어. 즐거워서 못 참겠다는 듯이 어깨를 들썩이면서. 그제야 엄마가 불을 켜지 말라고 했던 걸 이해했어. 엄마는, 자신이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이기 싫었던 거야.

어쨌든 그날 밤 나는 엄마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어. 어떻게 하면 아빠 장례식을 그럴싸하게 치를까 하는, 도무지 현실적이지 않는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야. 그러던 중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지.
“엄마. 외할머니는 그 난쟁이 이야기를 어디서 들으신 거야?”
“나도 그게 궁금해서 물어봤다. 그랬더니 우리 마을에 왜 유독 과부가 많은지 생각해 보라고만 말씀하셨어. 나중에야 알게 된 거지만 마을 아줌마들 사이에서 비밀리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였어. 바깥양반들 모르게.”
그리고 밤이 깊었어. 하지만 나는 잠을 설치고 있었지. 당신이라면 그 상황에서 잠을 잘 수 있겠어? 어디선가 떠도는 괴담 같은 걸 들은 기분이었어. 믿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는. 특히 그 이야기를 해 준 사람이 엄마라는 사실이 끔찍했지. 그것 때문에 아빠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어. 솔직히 말하면 슬프지도 않았지. 집으로 내려오는 차 안에서 눈물을 흘렸던 건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니까. 아무튼 이런 저런 생각으로 내내 뒤척였지.
그런데 새벽녘에 마당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 쓰윽. 쓰윽. 뭔가를 가는 소리였지. 그러고는 톱이나 칼 같은 걸로 써는 소리가 났어. 정육점에 가야, 들을 수 있는 그런 소리들. 그리고 작지만 날카로운 웃음소리도 들렸지. 낄낄낄. 낄낄낄. 음산한 웃음소리였어.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 두려움으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지. 그리고 바로 그때, 밖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어.
“여……보…….”
정말이야. 나는 똑똑히 들었어. 그건, 아빠 목소리였어. 나는 일어나려고 이불을 걷어냈지. 그런데 그 순간 옆에 누워 있던 엄마가 내 손을 잡았어. 있는 힘껏.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지. 두려움에 떨면서.
다음 날 아침 마당에 나가봤을 때는 간밤의 소리가 무색하게 깨끗한 상태였어. 하지만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지. 난쟁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들이 아빠를 데려갔다는 것을.


“난쟁이가 아빠를 데려가고 대신에 가져다 준 게 뭔 줄 알아? 금이었어. 금. 비록 몇 덩이 안 되긴 했지만 옛날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금 덩어리들이 마루 한 구석에 놓여 있었지. 지금 우리 시골집, 그 금덩이 팔아서 산거야.”
아내는 이야기를 다 마치고 긴 한숨을 쉬었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긴 했지만, 말도 안 돼는 이야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야기를 듣는 내내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밀려왔다. 나는 간신히 잠을 쫓으면서 이야기를 듣는 동안 계속해서 궁금했던 걸 물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왜 하는 거야?”
“사실은 나도 봤거든. 얼마 전에.”
“뭐?”
“난쟁이들 말이야. 얼마 전에 목격했어. 리모컨 없어졌던 날 기억 나? 당신은 실수로 버린 거 아니냐며 나한테 뭐라고 했었지? 그거 사실은 난쟁이들이 가져간 거야. 그날 낮에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다가 깜박 졸았거든. 그런데 눈을 떠 보니까, 그것들이 리모컨을 둘러메고는 어딘가로 가고 있는 거야. 매부리코에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왕방울만한 눈까지. 엄마가 설명해 준 거랑 똑같았어.”
“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잠이 몰려와서 그런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아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난쟁이들? 정말로 그런 게 있단 말이야? 아니면 아내가 미치기라도 한 건가? 그것보다도 더 이상한 것은 아내의 목소리가 조금 이상해졌다는 것이다. 쇠로 긁는 것처럼 미묘하게 거슬리는 소리였다.
“그래서 엄마한테 전화했어. 나도 난쟁이들을 봤다고. 그랬더니 엄마가 때가 된 거라며 올라오시겠다고 했지. 그리고 지금 보는 바 그대로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일단 잠 좀 자고 머리를 식힌 뒤에 이야기 하자. 나 몸이 안 좋은지 계속 졸려.”
“졸릴 거야. 꿀차에 수면제를 탔거든.”
그러면서 아내는 턱짓으로 내 앞에 놓인 찻잔을 가리켰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연신 웃어젖히는 아내의 얼굴이 점점 희미해진다. 그리고 그 순간, 유레카를 외쳤던 아르키메데스처럼 나는 끔찍한 계획의 전말을 깨달았다.
아내는 나를 없애버리려는 것이다! 폐품처럼 다른 물건과 바꾸려고…….
“내, 내가 쓸모없어진…… 거야?”
내가 듣기에도 웃긴 목소리가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새어 나왔다.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의식은 서서히 나락으로 떨어진다. 아내의 목소리가 웅웅웅 울린다.
“꽤 오래전부터. 당신 방귀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모르지? 당신이 나를 때리면서 내뱉는 거친 숨이 얼마나 역겨운지 모르지? 당신 팬티에 붙어 있는 다른 여자 머리카락을 보면 얼마나 짜증나는지 당신은, 모르지?”
끝내 나는 쓰러졌다. 몸을 가눌 수 없다. 나는 옆으로 누워서 힘겹게 다리를 무릎까지 올렸다. 왠지 그렇게 해야만 조금 더 불쌍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본능이 되어 내 몸을 끌어당긴다. 그러면서 정말로 궁금했던 걸 물었다. 혀가 풀려서 이미 발음도 정확치 않다.
“나, 나는, 뭐로 바꾸려……고?”
“아무거나.”
아내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파고든다.
“아무렴, 천 원짜리 한 장이라도 당신 보다는 낫지 않겠어? 난 엄마를 따라 시골에 가서 살 거야. 이제 남자는 지긋지긋해.”
그렇게 말하면서 아내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흐……응.”
이상하게 자꾸 웃음이 나온다. 난쟁이들도, 장인어른도, 장모님도, 그리고 아내도 모두 다 웃기다. 그리고 나도 웃기다. 피식피식 웃고 있으려니 거실 구석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게 보인다. 다섯? 열? 아니 그보다 많은가? 아무튼, 그것들은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다. 왕방울만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면서…….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알아챘다. 아내 뒤쪽에 누워 내내 잠들어 있다고 생각했던 장모님이 사실은 실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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