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달의 슬픔, 또 누가 알고 있을까?
                       늘 웃고 있으니 나를 이상하다고 말할 뿐,
                       창가에 앉은 고양이만이 오늘도 귀 기울이네 달의 울음소리에.
                       삶이 싫다고 말하지 말기를 그냥 홀연히 떠나면 될 것을
                       고향을 잊은 뱃사공들은 압생트에 취해 말하지,
                       달의 뒷면엔 웃음을 잃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 요절한 천재 시인 김해경의 ‘달의 슬픔’ 中

                                                                                                


1. 유럽 연합 우주과학 연구센터의 한 회의실

“뭐요? 그러니까, 그 뒤로 일종의 거울을 설치한다? …….”

긴 직사각형 테이블에 앉아 있던 여섯 명의 과학자들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앞에 서 있는 대머리 난쟁이에게 쏠렸다.

“일명 크리티 박사의 ‘슈피겔(거울을 뜻하는 독일어 Spiegel) 프로젝트’ 올시다.”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난쟁이는 ‘뭐 문제될 거 있나요?’라고 말하는 듯 어깨를 한 번 들썩이며 웃어 보인다. 다이아몬드로 된 앞니가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인다.

“이 봐요, 크리티 박사. 당신에겐 한 대의 무인 정찰선이 유아용 보행기 정도로 보일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에겐 실패할 경우 치명적인 결과가 불가피할 일종의 도박이란 말이오.”

영국의 과학자 사이먼이 충고 하듯 말한다. 총체적인 자금난에 허덕이는 영국 측의 입장이 반영되어 있는 발언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실 독일이나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의 경우에도 경제적인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유럽 연합은 미국과 중국이 우주 산업을 독식하고 있는 걸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 보고만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당신은 책상 앞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SF소설 작업을 즐길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에게 이런 제안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유치원생의 머리 속에서 나온 환상에 불과한 것 같소.”

독일에서 온 대표 폴머가 더 이상 참지를 못 하고 다소 과격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난쟁이 크리티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스승인 독일의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롯(Wilhelm Friedrich Herot)이 쓴 SF 소설가들의 성서「환상의 현상학(Phänomenologie der Phantasie)」의 한 구절을 유창한 독일어로 인용한다.

“현실적인 것은 환상적인 것이고, 환상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다(Was wirklich ist, das ist phantastisch; und was phantastisch ist, das ist wirklich).”

화가 잔뜩 치밀어 오른 폴머는 '저런 미친 난쟁이 같으니!' 라고 중얼거리며 서류 뭉치를 뒤에 있던 쓰레기 통에 던져 버린다. 순간, 긴장감이 고조된 회의실 안이 술렁거린다. 체스 게임의 명인이기도 한 크리티 박사는 이 모든 경우의 수를 머리 속에서 이미 계산해 두었기라도 한 듯 상대의 왕을 굴복시킬 비장의 체스 메이트를 여유만만한 태도로 꺼내 든다.

“슈피겔 호에서 전송된 달의 뒷면을 생방송으로 공개한다는 조건으로 프로젝트에 드는 비용의 3분의 2 를 내가 부담하겠소.”

왕은 굴복했다. 더 이상의 회의는 불필요했다. 마지막까지 미국의 눈치를 보던 영국도 이 번엔 유럽 연합의 일원이 되기로 했다. 자금난에 허덕이지 않고도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니까. 터키나 슬로바키아 같은 나라들도 참여를 요청해 와서 참여국들은 자국의 부담 비용을 훨씬 더 줄일 수 있었다.

미국의 한 과학평론가는 「사이언스」에서 ‘유럽연합, 마침내 중고차 한 대 가격으로 달의 뒷면을 가다.’ 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슈피겔 프로젝트’는 과대망상증을 앓고 있는 한 공상과학 소설가의 현실성 없는 망상에 불과하다고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자신들이 어이없게도 두 번이나 실패한 일을 혹시 유럽 연합이 해낼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게다가 미국 측에게 늘 눈엣가시 같았던 크리스탈 박사가 그 배후에 있으니 막연한 불안이 아닌 구체적인 공포로 다가 왔다.  
유럽 연합은 마치 이사를 가는 아마존의 일개미들처럼 부지런하게 프로젝트를 계획대로 준비해나갔다.
그렇게 크리티 박사의 슈피겔 프로젝트는 일사천리로 진행 되어 갔다.



2.  압살라 왕가(王家)와 시마노프 가문(家門)

“지금이 유일한 회생의 기회라는 걸 왕자님께서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부동산 회사 ‘시마노피아’의 특별 협상단의 책임자 스미스는 그렇게 말하며, 모든 순간순간을 그리고 모든 결과를 긍정하겠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금가루가 첨가된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신다. 사막 날씨가 덥다는 건 새삼스런 일이지만 압둘레 압살라 왕자의 목이 말라 붙을 듯 탄다. 초호화 별장의 실내에서 뭐가 그리 덥겠나 마는 왕자는 단숨에 샴페인을 들이킨 후, 문 앞에 있던 비서에게 한 잔을 더 부탁한다.
금발의 머리를 손으로 우아하게 넘기며 스미스는 준비된 대로 상대의 아픈 곳을 더 집요하게 헤집는다.

“석유 산업은 이제 막을 내렸습니다. 태양열, 원자력, 풍력 에너지원에 밀려 전체 에너지 소비 율의 20퍼센트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제 더 늦기 전에 왕자님 개인이 아닌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민들을 한 번 생각해 보셔야 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디 감히 부동산의 일개 직원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에게 이런 직언을 날릴 수 있었겠는가!
압둘레 왕자는 풍선처럼 둥근 배 위에서 두 손을 올려 놓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

“당신 말대로 만일 내가 중국이나 미국의 사업가들 보다 먼저 달의 뒷면에 있는 땅들을 산다고 칩시다. 내 걱정은 과연 이게 남는 장사인가 하는 것이오. 만일 남는 장사였다면 왜 그 여우 같은 사업가들이 여태껏 사재기를 하지 않았냐는 것이오.”

에레마 시마노프 회장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책임자답게 스미스는 침착하게 답변을 한다.

“조금 무례하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압살라 왕가의 몰락’이란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지 벌써 15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압살라 왕가가 한 거라곤 고작 석유회사 몇 군데를 폐쇄조치 한 것이 다 입니다. 반면, 시마노프 가문은 이미 50년 전에 석유 사업에서 손을 떼고 태양열 에너지 개발에 뛰어 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시마노프 가문은 22세기 성공신화의 상징이 되었지요. 이제 와서 신(新) 에너지 개발에 뛰어든다는 건 이륙한 비행기를 붙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어제도 에레마 시마노프 회장님과 얘기를 했습니다만, 압살라 왕가가 회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달의 뒷면을 개척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금까지 달의 앞면은 주로 과학적 실험을 위해 사용해 왔습니다. 압둘레 왕자님의 방문으로 전세계 신문의 일면을 장식했던 식물 연구소 ‘스페이스 보타니카’ 같은 연구소를 비롯해 우주 정거장 건설을 위한 연구소까지 대략 60여 개의 연구소들이 이미 달의 앞면에 들어서 있습니다. 미국, 일본, 중국 그리고 유럽의 몇몇 국가들이 이를 통해 얼마나 큰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는지도 잘 아실 겁니다. 이제 10년 안으로 달의 뒷면에 인류 역사상 가장 호화스런 휴양도시들이 건설될 것입니다. 지금은 주로 동아시아 국가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지요. 가령, 중국 정부가 향후 중국 최고 자랑거리가 될 것이라 호언장담하고 있는 쾌락의 도시 ‘샹그릴라’, 동양적인 여백의 미(美)를 건축학적으로 구현해낼 일본의 휴양도시 ‘선(禪)의 숨결’ 그리고 인류 최초로 달에 수로를 만들어 수상 가옥을 만들겠다는 한국의 ‘청계옥’ 등이 그것입니다. 지금 투자하신다면 10년 후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이익을 올릴 수 있다는 건 동네 어린아이도 알 수 있을 만큼 명명백백한 사실이지요.”

스미스의 전략은 압둘레 왕자 곁에 앉아 있던 핵심측근들을 감동시킬 만큼 훌륭한 것이었다.

한 때 러시아의 시마노프 가문과 압살라 왕족은 세계 석유공급을 독점하고 있던 양대 산맥이었다. 환경오염이 걷잡을 수 없이 심해지고, 석유 매장량이 슬슬 바닥을 보이던 21세기 중반에 두 가문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하엘 시마노프는 석유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는 충격적인 선언을 한 뒤, 어린 아들 에레마와 부인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태양열 에너지 사업에 뛰어 들었다. 곧 수 백 개의 특허를 내며 사업에 승승장구한다. 그리고 아들 에레마는 얼마 전부터 ‘시마노피아’라는 달의 토지를 다루는 지구 최초의 부동산을 경영하기 시작했다. 달의 토지를 구입하면, 왕복선으로 달을 방문할 때 마다 40퍼센트의 요금을 절약할 수 있게 해준다는 ‘시마노피아’의 아이디어는 강대국들과 세계 상위 20퍼센트의 부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달에 땅이 없으면 부자라고 자랑하고 다니지 말라”는 말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다. 그렇게 시마노프 가문의 성공신화는 계속되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돈의 존재가치가 더 이상 무의미한 시마노프 저택의 정원 한 가운데에는 사파이어와 루비 구슬들이 뿜어져 나오는 대형 분수가 있고, 한 쪽에는 지폐로 가득 채워진 야외 수영장이 있고, 수 천 개의 다이아몬드를 수 놓아 만든 갑옷을 입은 애완용 표범들이 있으며, 드넓은 정원은 사람인지 인조인간인지 알 수 없는 존재들이 경비를 서고 있다고들 했다. 그리고 그 정원의 지하에는 미국 정부로부터 천문학적인 금액을 주고 사들인 실제 UFO가 숨겨져 있다고들 했다.
물론, 소문의 일부분은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압살라 왕가는 시대의 변화를 읽을 줄 몰랐다. 압둘레 왕자는 자신이 어렸을 때 여자들의 애무에 반쯤 정신을 잃은 채 “뭐? 시마노프가 석유를 안 만져? 그럼 이 카산 압살라 왕이 몽땅 가지면 되지 안 그런가?”라고 흥분으로 벌겋게 달아 오른 얼굴로 자신만만하게 큰 소리치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렇게 압살라 왕가는 몰락의 길로 접어 들었고, 추락은 끝도 없이 계속되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당뇨병과 피부암에 고통 받는 압둘레 왕자의 모습은 곧 가난에 병든 사우디아라비아의 모습이기도 했다. 시마노프 가문과의 비교를 통해 압둘레 왕자가 자신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든 스미스의 전략은 그래서 훌륭하다는 것이다. 물론, 압둘레 왕자가 이 제안을 받아들여 막대한 부를 다시 모은다고 해도 시마노프 가문에 맞먹는 명성을 얻기 위해서는 또 다른 과제를 해결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시마노프 가문이 모범적으로 보여준 이미지의 개선이라는 과제이다. 22세기의 메디치 가문, 15세기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완벽한 부활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시마노프 가문은 석유 사업에 손을 뗀 21세기 중반부터 전세계의 예술과 과학 발전에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왔다. 한 언론인의 말에 의하면, 시마노프 가문이 지금까지 기부한 돈을 10달러짜리 지폐로 환산해서 펴면 태양까지 닿고도 남을 만한 길이라고 한다.

그런 시마노프 가문을 상징하는 인물이 바로 크리스탈 시마노프 박사, 즉 에레마 시마노프의 셋 째 아들이다. 대부분의 형제들이 대체 에너지 관련 사업이나 부동산 산업을 인계 받은 것과 달리 크리스탈 시마노프는 왕성한 지적인 호기심으로 미국과 영국, 독일 등에서 신경생물학과 철학, 문학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은 후, 세계 각지를 돌아 다니며 공상과학 소설을 집필하며 신비로운 삶을 살고 있다.
난쟁이 크리티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그는, 세계 어딜 가나 준비되어 있는 개인용 비행기와 배 그리고 최고급 자동차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고, 11개 국에 자신만의 별장과 빌딩을 소유하고 있었다. 뉴욕에 있던 크리스탈은 같은 날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티벳의 사원에서 혹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곤돌라 위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크리스탈의 눈에 이 세계는 마치 손 바닥 위에 올려 진 게임용 말판과 같았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선천적으로 병약한 몸과 150센티미터도 안 되는 키 그리고 원형탈모로 인해 30대 초반의 나이에 대머리가 된 크리스탈을 보면서 ‘신은 공평하긴 공평한가 보다’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 작가로서의 크리스탈은 프란츠 카프카의 정신적 후계자임을 자처하며 수 많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내어 어떤 평론가는 그를 ‘창작할 수 밖에 없도록 신의 저주를 받은 몬스터’라고 평했다. 이와 관련해, 브라질 출신의 맥락주의 비평의 창시자 내코 다릴라는 “크리스탈은 신이란 낱말이 동일한 인물에게 얼만큼의 다양한 의미를 생산해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맥락주의적 의미이론에 대한 예 중의 예”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실제로, ‘크리스탈스럽다’라는 신조어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맥락에 따라 ‘엉뚱하다’, ‘신선하다’, ‘비현실적이다’, ‘반시대적이다’, ‘고귀하다’ 등과 같은 의미의 스펙트럼을 보였다. 다시 한 번 내코 다릴라를 인용하자면 그것은 바로 '의미의 미끄러짐 효과'의 좋은 예인 셈이었다.

“내 언젠가는 그 난쟁이가 돈이 뭔지도 모르는 태평양의 상어 떼에 뜯겨 먹히는 꼴을 보고 말겠어.”

미국의 한 전직 대통령은 알츠하이머 병이 심해지기 전부터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하곤 했다.
병이 심해진 이후에도 정신만 돌아 오면 그렇게 말하곤 했으니 크리스탈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21세기 후반 시마노프 가문의 찬란한 후광에 힘입어 태양열 에너지가 전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을 때, 전통적으로 석유 사업에 깊이 관여해 온 미국은 압살라 왕가처럼 쇠망을 길을 걷게 될 뻔했다. 그 때, 석유 에너지 사용 반대를 위해 전세계인의 지식인과 대중들을 선동했던 인물이 바로 크리스탈 시마노프였다.

크리스탈 장학제단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수 만 명의 영향력 있는 지식인들이 들고 일어섰고, 크리스탈을 22세기 예술을 선도할 진정한 뮤즈로 추앙하던 예술계도 동참했다. 석유 산업이 기울었음을 인정한 세계 대부분의 정치인들도 크리스탈과 뜻을 같이 했다. 심지어, 마약에 찌들어 살던 히피들마저도 크리티이야 말로 진정한 히피들의 크리스트라고 열광하며 나무심기 운동에 적극적 참여했다. 원래 평화를 사랑하는 히피들은 맘에 드는 목적을 발견하면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크리스탈과 그의 지지자들은 대체 에너지 개발자들을 납치하고 감금했던 미국 정부의 만행을 폭로했고, 푸른 지구 살리기 운동을 주도하면서 나무 싶기 운동을 장려했다. 소문에 의하면 미국 정부가 개입 한 크리스탈 암살 계획은 번번히 실패했다고 한다. 미국 정부가 마련해주겠다고 약속한 보상금 보다 더 많은 돈을 크리스탈이 뿌리고 다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마피아 단체라도 크리스탈 앞에서는 순진한 어린 양처럼 변했다. 아버지 에레마 시마노프는 암살 위협에 노출된 아들이 걱정되었지만, 미국 경제의 침체가 세계 경제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날뛰던 크리스탈을 막고 나서야만 했다.

에레마는 마치 홀로 힘겹게 지구를 회전시켜 위기에서 구출한 슈퍼맨처럼 미국을 나락에서 구해내는데 성공했다. 아버지 에레마와 셋째 아들 크리스탈의 갈등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천부적인 사업가였던 에레마가 태양열 사업에서 물러난 뒤, ‘시마노피아’라는 이름의 부동산 회사를 경영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지구 외 행성, 주로 달의 뒷면의 토지를 저렴한 값에 팔고 이자를 받는 방식으로 ‘시마노피아’는 그 존재가치를 서서히 알리기 시작했다. 에레마의 손이 닿는 곳엔 실패란 없다! 서로 눈치만 보고 있던 강대국들과 세계 상위 20퍼센트의 부자들이 본격적으로 달 뒷면의 투자가치를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시마노피아’가 바빠질 수록, 에레마와 크리스탈의 사이는 점점 나빠졌다. 크리스탈은 기자들 앞에서 거리낌 없이 에레마를 구제 불가능한 속물이라고 욕했고, 원래 다혈질의 기질이나 언론을 통해 점잖고 사려심 깊은 이미지를 쌓아 왔던 에레마는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크리스탈에 대한 얘기를 입 밖에 꺼내지도 않았다.
그렇게 두 부자는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없는 달의 앞면과 뒷면처럼 돌이킬 수 없이 멀어져 갔다.

스미스는 협상의 마침표라도 찍겠다는 듯, 침착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파라다이스는 바로 저 위, 달의 뒷면에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스미스는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플라톤처럼 손가락 하나를 들어 위를 가리켜 보이며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압둘레 왕자는 단숨에 샴페인을 비우고서 스미스와 일행에게 정중한 어조로 말한다.

“오늘 밤 여러분들 모두가 압살라 왕궁의 성대한 파티에 오셔서 그 동안의 피로를 잊으시길 바랍니다.”

이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압살라 왕자가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확언의 의미였다. 왕궁 안의 대신들은 마음 속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일 주일 뒤에, 무인 탐사선 한 대가 압둘레 왕자님께서 구입하시게 될 땅의 영상을 보내기 위해 달의 뒷면으로 발사될 것입니다. 그 감격스런 현장을 부디 함께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의문의 사건들과 달 나라 괴물들

압살라 왕가가 사우디아라비아 역사상 그렇게 성대한 국민들의 환호를 본적이 있었던가?
헐벗고 굶주린 국민들은 모두들 거리로 나와 압둘레 압살라 왕자의 행렬을 감격스럽게 지켜 보았다. 오토바이의 호위병들 뒤로 하얀 백마처럼 눈부신 리무진을 탄 압둘레 왕자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를 흔들며 “압살라! 압살라!” 를 목놓아 외치기 시작했다.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며 환호에 답하던 압둘레 왕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사막의 땅에서 왕자의 눈물은 보석처럼 아름답다.

‘그 동안 내가 저들에게 너무 무심했었다’, 라고 압둘레 왕자는 자책한다. 서서히 다가 오고 있는 종말의 냄새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왕자의 일행은 그렇게 도시를 가로질러 사막 한 가운데 우뚝 솟아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우주선 발사기지에로 향했다. 모든 일들이 프로그래밍된 게임처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국가의 부활을 꿈꾸던 압둘레 왕자가 다음과 같은 사건의 마지막 희생양이 될 줄 정말 아무도 몰랐다.

2106년 4월 2일.
달의 뒷면을 향해 순항을 하던 무인 착륙선 Chimera 1호가 달 표면 착륙 3분 후 실종된다.
Chimera 1호는 미국 정부가 달의 뒷면에 세계 최초로 초대형 유전자 변형 연구소를 만들기 위한 준비작업을 위해 비밀리에 보낸 것이었다. 숲이 거의 사라진 지구에서 이제 약을 만드는데 필요한 식물들이 금보다 더 귀해졌다. 그리고 곡물 경작지가 가뭄으로 말라 붙어 지구인들이 식량난에 시름한지도 오래되었다.
미국은 이 번 기회를 통해 지구에서는 법적인 제약 때문에 연구의 한계가 있는 식물의 유전자 변형에 관한 연구를 먼저 시작하겠다는 것과 달의 뒷면을 먼저 선점하겠다는 두 마리의 토끼를 노리고 있었다.
세계 1위 경제대국의 부활이라는 희망이 담긴 Chimera 1호는 작은 배양실을 건조하도록 프로그래밍된 두 대의 메인 로봇과 300만개의 나노 로봇들, 그리고 이제는 희귀종이 되어 버린 아마존과 아프리카의 열대 우림에서 채집해온 12종의 씨앗들을 품고 있었다.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은 미국 정부는 책임 과학자 8명 전원을 교체한 뒤, 원인 규명을 위한 무인 착륙선 M-2207 계획에 착수한다.

2107년 2월 23일.
무인 탐사선 M-2207가 감히 미국의 자존심을 짓밟은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달의 뒷면을 향한 궤도에 오른다. 그 사고가 단순한 통신시스템의 고장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보았던 8명의 책임 과학자들은Chimera 1호가 착륙 지점에 그대로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아니, 예상이 아닌 확신이었다. 사소한 실수를 거의 용납하지 않던 미국의 기술자들은 이미 비슷한 사례를 두 차례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
M-2207은 달의 테두리를 빙그르르 돌아, 서서히 지구인들이 볼 수 없는 달의 뒷면으로 빠른 속도로 행해 날아갔다. 착륙 예정 시각을 20분을 남겨 두고 있던 바로 그 때, 사건은 탐사선의 비행 속도만큼이나 빨리 벌어졌다.
탐사선에서부터 큰 굉음이 난 뒤 지구와의 교신이 끊겨버린 것이다. 영상 분석팀이 마지막으로 받은 영상을 분석한 결과는 미국 정부를 당황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정체불명의 거대한 물체가 착륙선 쪽으로 다가와 충돌한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곧장, 중국의 음모설이 대두되었다. 한 동안 중국과 미국 사이에 팽팽한 군사적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미국은 침착하게 사태를 파악하기 시작했고, 중국 정부의 소행이 아닐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우선은 ‘샹그릴라’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 정부가 어딜 봐도 이득이 될 리가 없는 미국 측의 무인 우주선 테러를 감행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중국 정부가 원인 규명을 위해 미국 측을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래서 두 번째 무인 탐사선은 미국과 중국의 합동 프로젝트가 되었다. 두 번째 탐사선은 단순한 정찰선이 아니었다. 공격용 기관총과 크루즈 미사일이 장착되어 있었다. 그리고 최악의 사태를 대비해 소형 핵탄두 하나가 비밀리에 장착되었다.
미국 측은 더 이상 기다리지 못 하고 발사 예정일을 계획 보다 2주 앞당겨 프로젝트를 진행시켰다.

2109년 1월 3일.
미국과 중국의 최첨단 문명이 작은 무인 정찰선을 쏘아 올렸다.

“코 앞의 달을 정복하는 데에도 이 고생을 하고 있으니, 유로파와 타이탄에 우주기지를 세우는 계획을 다시 한 번 검토해 봐야겠어요.”

팔짱을 낀 육중한 몸집의 미국 국방부 장관이 그렇게 말하며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M-2209가 보내오는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협력이란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이 번 프로젝트가 성공리에 끝난다면, 미국과 중국은 본격적인 협력의 길을 열게 될 겁니다. 유럽 연합이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을 때 우리가 달의 뒷면부터 장악해야 할 겁니다.” 라고 중국의 국방부 장관이 말한다.

“망할 놈의 ‘시마노피아’ 녀석들이 벌써부터 땅을 팔아 넘기기 시작했소. 크리스탈 박사는 지구의 하늘과 바다를 넘나들며 전세계의 지식인들과 히피들을 선동하여 달의 뒷면을 가만히 놔두라고 외치고 있소. 에레마와 크리스탈의 관계는 회복될 수 없을 만큼 악화됐지만, 그들의 영향력이 계속되는 한 우리들의 협력작업에도 한계가 있을게 뻔합니다.”

중국의 국방부 장관은 그 문제에 관해 이미 획기적인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는 듯 묘한 미소를 머금고 말한다.

“모든 가문엔 흥망성쇠가 있는 법이지요. 우리 중국은 고대부터 싸우지 않고도 적을 이기는 방법에 능통해 있소. 적어도 우리가 이 세상을 작별하기 전까지 시마노프 일가의 몰락을 보게 될 겁니다.”

“달의 궤도에 진입했습니다.” 관제실에 있던 사람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중국의 국방부 장관이 지켜 보는 가운데, M-2209는 유유히 회색 빛을 은은히 내뿜는 달의 창공을 가로질러 날아 가고 있었다. 언제 봐도 아름답고 신비롭게만 보이는 달의 운화들이 관제실의 대형 화면을 가득 채웠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프로젝트의 총책임 과학자는 그렇게 기도하며 화면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화면의 미세한 끊김 현상이 일어 나고 있습니다.” 라고 영상 분석팀원이 미국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 한다. 정말로 조금씩 대형 스크린의 화면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초단위로 떨림 현상이 심해지자 사람들은 극도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중국의 국방부 장관은 잠시 말을 잊은 듯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발사해!” 라고 미국 국방부 장관이 히스테리컬한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관제실 안의 사람들이 놀라서 일제히 장관을 쳐다 본다.

“어디로, 무엇을 말입니까?” 라고 총책임 과학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장관은 윽박지르듯 말한다.

“외계인이든 인간이든 우리를 노리는 게 있으면 앞에 있을 거 아닌가! 앞으로 기관총과 크루즈를 발사하고 아래로 핵탄두를 떨어 트려, 지금 당장!”

중국의 국방부 장관도 패닉 상태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싸우지 않고 적을 이기는 방법에 능통하다 하더라도 적이 누구인지, 아니 적이 있기나 한 건지 조차 알 수 없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무런 조치도 취해보지 않고 이 정찰선 마저 잃게 된다면 모든 책임이 자신들에게 돌아 올 것이란 걸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핵탄두를 투하합니다.” 라고 엔지니어가 기계적인 목소리로 알려 온다. 대형 스크린의 화면은 일그러질 데로 일그러져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대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만큼의 굉음이 스피커를 폭발시켜 버릴 듯 했다.

“투하 5분 후, 투하 3분 후, 투하 1분 후……. 10, 9, 8, 7, 6, 5, 4, 3, 2, 1, 폭발.”

그러나 아무런 폭발음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아무런 폭발음도 감지되지 않았다. 이건 탐사선에서 들려 오는 굉음이 크고 작고의 문제와 무관한 문제였다. 핵폭발이 일어 났다면, 분명 탐사선에 치명적인 손상이 가해졌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관제실 안의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핵폭발의 버섯구름을 뒤집어 쓰기라도 한 듯 멍하니 스크린만 쳐다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정찰선에선 아무런 굉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폭발되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 정찰선은 분명 어디엔가 멈춰서 있는 것이다. 일순간, 관제실 안의 사람들은 신비하게도 정찰선의 심장박동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저는 무사합니다. 생각 보다 무섭지 않은데요?”라고 말하는 듯 편안한 심장박동 소리를…….  

2112년 6월 29일.
압둘레 왕자가 리무진에서 내리자, 발사 기지 앞에서 몇 시간 동안 기다리고 있던 수 십 명의 기자들이 셔터를 터뜨리며 질문세례를 퍼붓기 시작한다. 왕자는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 자리에서 팔짝팔짝 뛰고 싶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얼마 만에 받아 보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란 말인가!

“사람들은 달의 뒷면에 괴물이 산다고 하는데 두려움은 없으신지요?”

세상물정에 어두운 압둘레 왕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 했다. 들어 본적도 없는 말이었다. 당연히 스미스는 그런 소문에 불과한 이야기를 왕자에게 해줄 만큼 멍청하지 않다. 왕자는 비서에게 밖에서 기다린 기자들을 왕궁으로 초대해 연회를 베풀라는 지시를 내린 뒤 바로 발사 기지 안으로 들어 갔다. 50여명의 기술자들과 시마노피아 협상팀원들이 왕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편안히 앉으셔서 지켜 보고 계시면 됩니다. 저희가 땅을 보여드리기 전까지 말이죠.”

스미스는 뚱뚱한 몸을 제대로 가누는 게 버거워 보이는 왕자를 관제실에서 유일하게 호화스러워 보이는 가죽 소파에 앉힌다. 기지로부터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발사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윽고, 발사 명령이 떨어지자 창 문 밖에서 당근 모양의 우주선이 당당한 위용을 뽐내며 공중으로 치솟아 오른다.

“한 다섯 시간은 걸리지 않겠소?” 라고 압둘레 왕자는 스미스에게 묻는다.

“무인 정찰선이 다섯 시간 만에 달에 도착했던 때는 20년 전입니다. 1간이면 충분합니다.”

압둘레 왕자는 자신이 얼마나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관심 했는지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1시간이란 시간도 뚱보 왕자에겐 천문학적인 시간처럼 지루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뚱뚱한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기 시작했다. 또 자신의 무식함이 탈로 날 까봐 원래 과학 기지는 냉방 시설에 관심을 쏟지 않는 것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겨드랑이에 땀방울이 하나 둘 맺히기 시작하더니 이내 옆구리를 타고 구멍 난 지붕에서 새는 빗물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포도씨앗처럼 콧등에 맺힌 땀방울들이 갓난 애기의 주먹만한 종양이 있는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린다.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손바닥에서는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몸에 있는 수분이란 수분은 모조리 배출되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나 남았는가?”

“20분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압둘레 왕자는 옆에 있던 비서에게 리무진을 대기시켜 놓으라고 지시한다.

‘뭐, 땅을 직접 두 눈으로 본다고 알겠는가? 머지 않은 곳에 근사한 협곡이 있는, 그런 경치 좋은 부분 몇 군데를 대충 구입하면 되겠지.’ 라고 압둘레 왕자는 생각한다.
종양의 통증이 서서히 밀려와 눈 앞이 어둑어둑해진 나머지 솔직히 땅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아니, 애초부터 굳이 보고 싶지 않았던 건 지도 모른다. 비서에게 시키면 될 일을 왕자가 굳이 나설 필요가 있겠는가?

“목적지 도착 예정 시각 10 전입니다.”

압둘레 왕자는 땀에 절은 육중한 몸을 일으켜 보려 하지만, 극심한 현기증에 잠시 그 자리에 앉아 있는다.
스미스는 왕자의 건강이 좋지 않음을 눈치채고 보다 빨리 진행시켜야겠다고 생각한다. 왕자가 다시 힘을 내어 몸을 일으킨다.

“탐사선이 없어졌습니다!” 누군가 소리쳤다. 그걸로 끝이었다. 압둘레 왕자는 그 자리에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그날 밤에 숨을 거두었다. 그것은 압살라 왕족의 완벽한 몰락이었다.

어의 없는 소식을 전해 들은 에레마 시마노프는 검투사의 칼에 찔린 황소처럼 이성을 잃고 날뛰었다. 분을 이기지 못 하고 애꿎은 돈뭉치들을 방안에서 미친 듯이 내던지고, 깨지지도 않는 주먹만한 다이아 당구공들을 벽으로 내던졌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에레마는 11세기 철제 갑옷 옆에 세워진 검을 집어 들고는 마치 보이지 않는 적에게 기어코 상처를 주겠다는 듯 허공에다 대고 휘두르기 시작한다.

“네 이 놈 크리스탈! 네 이 놈 크리스탈! 네 이 놈 크리스탈!”  



4.  루브르와 크세르

“그러니까, 달의 뒷면에 일종의 거울을 설치하자 이거요?”

“그렇지요. 미국의 실패 원인은 단순한데 있습니다. 무인 탐사선을 끝까지 달에 착륙시키려고 했다는데 있지요. 발상의 전환을 우리가 먼저 시도하자는 겁니다.”

“박사의 생각은 무인 탐사선을 먼저 달을 지나쳐 날아 가게 한 다음, 어느 지점에서 달의 뒷면으로 U턴을 시킨다. 그리고 탐사선에 장착된 망원경을 마치 목도리 도마뱀이 목의 주름을 펴듯 꺼내어 달의 뒷면을 촬영한다?”

일명 ‘슈피겔 프로젝트’라 불리는 크리티 박사의 아이디어는 빠른 속도로 현실로 이루어 졌다. 미국과 중국은 초조하게 모든 것을 지켜보는 수 밖에 없었다. 넉 달도 걸리지 않고 터키의 황량한 초원 지대에 크세르라는 이름의 발사대가 건설되었다. 그렇게 최첨단 망원경이 장착된 ‘슈피겔 호’가 발사준비에 들어 갔다.    
                                

루브르 박물관 앞:
난쟁이 크리티는 모처럼 아주 바빴다.
세계 어린이 날을 맞이하여 작가와의 만남에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의 최신 단편집 「크리티의 환상 단편집」 출판을 기념하고 어린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기 위한 행사였다. 뉴욕을 시작으로 일본과 한국을 거쳐 드디어 프랑스에 도착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마치 루이 13세의 역사적인 행차를 보기라도 하는 듯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예상대로, 루브르 박물관 주위는 오전부터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오후 1시에 루브르의 피라미드 입구 앞에서 있을 작가와의 만남에 참석하려고 나온 어린 아이들과 부모들은 모두들 들떠 있었다.

어릿광대의 익살스런 마술쇼, 언제 봐도 신기하기만 한 판토마임 예술가들의 공연, 바다 건너 온 인디언 악사들의 이국적인 연주와 춤사위 등 볼거리가 풍성했다. 풍선과 솜사탕은 아이들에게 여전한 인기를 누렸다.

르 몽드 지는 ‘우리 시대의 엘비스, 우리 시대의 아인슈타인 크리티 박사의 방문’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방문 소식을 1면에 실었다. 반면, 프랑스 경찰들은 긴장한 채 혹시 모를 테러나 돌발상황에 만반의 준비를 가했다.
크리스탈 박사의 암살 계획은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오전에 프랑스의 히피들이 루브르 근처 공원에서 프랑스 대통령의 관용차와 동일한 모델의 중고차를 돌멩이로 부순 뒤에 하얀 백합 꽃들로 장식하는 다소 과격한 퍼포먼스를 하면서 “프랑스 대통령은 휘발유 자동차 사용을 즉각 중단하라!”고 시위를 벌였다. 무폭력 시위의 상징으로 자처하는 히피들은 사진 기자들의 관심을 충분히 끌었다고 판단하자 자진해서 물러 났다. 그 외에는 너무나 평화로운 루브르의 풍경이었다. 12시경 경찰들이 공원에서부터 피라미드 입구까지 긴 안전벨트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곳 저곳에 퍼져있던 사람들은 슬슬 안전벨트 근처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공원에 계신 분들은 속히 안전벨트 주위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크리스탈 박사가 곧 도착합니다.”

안내 방송이 나온 지 몇 분 후, 검은 상어 모양의 헬기 한 대가 소리 없이 루브르 공원으로 날아와 착륙했다.
소음과 매연이 없고 태양열 에너지로 마하의 두 배 속도로 하늘을 나르는 세계에 단 한 대 밖에 없는 ‘블랙 샤크(Black Schark)’ 였다. 필요 시엔 무중력 공간에서 비행이 가능한 제트기로 변신할 수 있는 최첨단 비행기였다.
중세 성당의 오색찬란한 모자이크로 장식된 눈부신 블랙 샤크의 문이 열리자, 난쟁이 크리티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TV에서나 보던 블랙 샤크와 난쟁이 크리티를 보기 위해 발꿈치를 들며 이리 저리 고개를 기웃거렸다. 이곳 저곳에서 카메라 셔터가 터졌다. 네 명의 검은 양복을 입은 수행원들이 난쟁이 크리티를 호위하며 걸어 온다. 크리티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환호에 답을 하며 안전벨트를 따라 정성스럽게 깔려 있는 붉은 색 벨벳 카펫을 밝으며 피라미드 입구로 걸어 간다.

“방금 봤어요? 크리티가 내게 손을 흔들었어요! 오 세상에…….”
“엄마, 저 아저씨가 진짜로 신의 아들이야?”
“아빠, 난쟁이랑 같이 오는 저 아저씨들 진짜 로보트야?”
“여보 나 좀 들어서 올려줘 봐요. 크리티가 너무 작아 안 보여요.”
“크리티의 말대로 ‘보지 말고 느껴 봐’”
“날도 더운데, 돈으로 비를 만들어 좀 뿌려달라고 부탁해 볼까요?”
“죽기 전에 저 ‘블랙 샤크’ 한 번 타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들뜬 사람들은 그렇게 웅성거렸다.

나무 밑에서 모든 상황을 탐탁지 않게 지켜 보던 미국의 한 우파 성향의 방송국 기자는 카메라에 불이 들어 오자 “어쩌면 오늘을 ‘세계 유치원생의 날’이라고 바꿔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방금 일곱 살짜리 꼬마들의 눈높이에서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한 명이 지나갔다고들 합니다.” 라고 비아냥거린다.

“자, 피라미드 입구 앞 쪽에 여러분들을 위해 야외용 의자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안전사고에 주의하셔서 모두들 의자에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10분 후에 크리스탈 박사님께서 연설대로 올라 오실 겁니다.”

안내 방송에 따라 사람들은 수 천 석의 야외용 의자에 앉기 시작했다. 연설대 뒤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위한 카메라는 OK신호만 기다리고 있다.


터키의 크세르 발사 기지:
한 편, 세계의 시선은 터키의 황량한 초원으로 집중되었다. 비밀리에 준비한 ‘슈피겔 프로젝트’가 세계에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날이었다.

“책임감 없는 인간들은 딱 질색이란 말이지. 어떻게 발사 당일 날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단 말이오. 맘만 먹는다면 지구 반대 편에서도 한 시간이면 올 수 있을만한 사람이…….”

독일의 과학자 폴머가 아쉬운 마음을 토로한다.

“그래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셈이지 않소. 그가 아무런 정치적인 음모도 없이 우리에게 자금의 절반 이상을 지원해 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겁니다.”

영국의 과학자 사이먼이 말하자, 폴머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솔직히 지금 제 아내와 어린 아들이 루브르에 나가 있어요. 크리티 박사를 보기 위해서 말이죠. 저는 크리티 박사를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이제 그는 그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각 자의 갈 길을 가면 될 겁니다. 슈피겔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오늘 마지막으로 온 힘을 기울입시다.”

프랑스의 가티엥 박사의 말에 과학자들은 다시 한 번 곧 눈 앞에 펼쳐질 과제의 중요성에 대해 되새겨 보았다. 성공할 경우 미국과 중국 보다 먼저 달의 뒷면을 개척할 수 있게 될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카운터 다운 준비 완료!”

관제실 안의 기술자들과 과학자들은 힘찬 불꽃을 내뿜으며 하늘로 솟구쳐 올라 가는 슈피겔 호를 지켜 본다. 유럽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루브르 박물관 앞:

“여러분, 우리의 크리스트 크리티 크리스탈 박사입니다! 오, 지저스 크라이스트!”

사회자는 호들갑을 떨며 요란한 인사말로 크리스탈 박사를 연설대 위로 부른다.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박수와 환호성으로 난쟁이 박사를 맞이 한다. 물론 오늘만큼은 공상과학 소설가로 초빙되었다.

“봉쥬르! 친애 하는 어린이 여러분 그리고 자녀 분들과 함께 와주신 부모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대형 스크린은 연설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크리티를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오늘 저의 새로운 소설집인 「크리티의 환상 단편집」이 돌아가시는 여러분들의 손에 한 권씩 선물로 쥐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출판사에 예약을 해서 책을 벌써 구입한 몇몇 사람들도 상관 없다는 듯 환호했다.

“오늘은 세계 어린이 날입니다. 저는 어린이 여러분들을 언제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제 키가 작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제 소설의 모든 아이디어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계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혹시 아시는 분 계세요?”

연설대의 앞 줄에 앉아 있던 풍선을 들고 있는 꼬마 여자아이가 손을 들고 “옥수수 병정들이요!”라고 말하자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옥수수 병정들이란 숲을 파괴하는 기계들과 맞서 싸우는 옥수수 병정들의 활약을 그리고 있는 크리티의 장편 소설 「옥수수 왕국의 일곱 병정들」의 주인공들이었기 때문이다.

“맞아요. 옥수수 병정들이 필요하지요. 그래야지만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빵과 아플 때 먹어야 할 약들을 많이 만들어 낼 수가 있으니까요. 아주 멎진 대답이었어요.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말하고 싶은 답변은 바로 상상력이라고 하는 거예요. 옥수수 병정들이 정말 있나요? 아쉽겠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아요. 이 아저씨의 소설에 있지요. 하지만 여러분 모두는 옥수수 병정들을 사랑해요 그죠?”

크리티의 질문에 수 백 명의 사람들이 “네!” 하고 대답한다.

“바로 그 옥수수 병정들을 만들어 낸 힘을 우리는 상상력이라고 불러요. 여러분들은 이 크리티 아저씨가 생각해 내지 못한 세계를 상상할 수 있어요. 상상하면 현실이 바뀐답니다. 상상하면 여러분들의 삶이 달라질 거예요.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빵을 나눠줄 수 있는 힘, 바보 같은 정치인 아저씨들을 따끔하게 혼내줄 수 있는 힘, 아파하는 지구를 치료할 수 있는 힘은 절대로 돈이 아니 예요. 그게 뭐라 구요?”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일제히 “상상력이요!”라고 외친다. 어른들도 어린아이가 된 듯 마냥 신이 나서 큰 소리로 외쳤다.

“끝으로 이 말을 꼭 기억하세요. 현실적인 것은 환상적인 것이고, 환상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다, 란 말을요! 감사합니다.”

“자, 그러면 프랑스의 국민 배우죠. 에릭 수티 씨께서 새 단편집 「크리티의 환상 단편집」에 수록된 「달 나라 왕자」를 낭송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박수로 에릭 수티씨를 모셔보겠습니다.”

사람들이 천의 목소리를 가졌다는 멎진 외모의 국민 배우 에릭 수티의 등장에 관심이 쏠린 틈을 타, 크리스탈 박사는 경호원들과 함께 조용히 행사장을 빠져 나간다. 블랙 샤크가 이륙 준비를 하고 있다.


터키의 크세르 발사 기지:

“슈피겔 호가 달의 중력권을 벗어 났습니다.“

관제실 안의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거의 절반쯤 성공한 것이라고 몇몇 기술자들은 흥분한 채 말했다. 몇몇 직원은 지하실 냉장고에 보관된 샴페인과 포도주를 꺼내기 위해 아래로 내려갔다.

“자, 다시 진정해 주세요.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달 뒷면의 영상을 받아 보기 전까지 긴장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폴머가 전장을 지휘하는 장군처럼 연구원들을 독려한다. 그러나 침착할 사이도 없었다. 관제실 안의 사람들은 달의 표면에 뭔가 이상한 것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저게 도대체 뭔가?”

가티엥이 안경테를 올리며 말을 한다. 하지만 당연히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 했다. 펜타곤에서 방송을 지켜 보던 미국 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일제히 스크린 앞으로 의자를 가까이 끌어다 앉았다. 집에서 TV로 방송을 시청하던 사람들도 그 기이한 표면의 풍경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일종의 우주 먼지 같은 게 아닐까 싶은데요…….” 사이먼이 말했다.

“중력이 약한 달에 우주의 먼지라……. 게다가 녹색의 우주 먼지에 대해서 들어 본적이 없습니다만…….”

“일단 판단을 중지하고 계획대로 일을 진행시킵시다.”

이윽고, 달을 가로질러 앞으로 날아가던 슈피겔 호는 방향을 틀었다. 지구상에서는 볼 수 없는 달의 뒷면을 향해 멈춰 섰다.

“거울을 펼칩니다.” 엔지니어의 말에 슈피겔 호에 장착된 고성능 망원경이 땅을 뚫고 올라 오는 씨앗처럼 몸체 밖으로 나온다. 그것은 마치 은빛의 꽃 한 송이처럼 둥그렇게 펴진다. 몇 초 후에 크세르 관제실에 도착하게 될 영상을 찍어 보낸다.

“오, 맙소사…….”

관제실 안의 사람들은 마치 칼에 찔린 듯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스크린을 바라본다. 순간, 방송을 보내주던 각 국의 해당 방송사들과 지역 경찰서엔 시청자들의 전화가 폭주하기 시작한다.

“누가 21세기 식 싸구려 과학 영화 틀라고 했습니까? 빨리 슈피겔 호를 보여 줘요!”
“죄송합니다만, 방송국에 사이버 테러가 일어난 것은 아닌지 확인 요청을 바랍니다.”
“누가 일본 여행사 측의 스시 홍보용 테잎을 틀라고 했습니까. 나 참…….”

그러나 그것은 방송사고도 사이버 테러도 아니었다. 슈피겔 호가 지구로 보내 온 진짜 영상이었다.

“저건 일종의 촉수 같아 보입니다.” 관제실 안의 과학자들은 빨리 현실감각을 되찾아 영상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래요, 마치 문어나 오징어의 다리 같아 보이는데…….”

“너무 많아요. 저 꿈틀거리는 것들이 표면을 아예 뒤덮어 버렸습니다.”

“저 촉수들 사이로 떠 다니는 작은 먼지 같은 입자들은 대체 뭘까요?”

“촉수의 정체도 모르는데 저 작은 입자들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그 순간 초록색의 긴 촉수 하나가 슈피겔 호를 순식간에 낚아 채 버렸다. 종종 돛단배를 습격했다고 전해지는 대왕 오징어처럼……

가티엥 박사가 별안간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멍하니 서 있던 동료 과학자들과 기술자들도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마치 프로젝트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저마다 품고 있던 자살용 웃음 유발 폭탄이라도 터진 듯, 배를 감싸 쥐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미친 듯이 웃어댔다.

“달 표면에 녹색 오징어라…….”
“이 참에 스시 요리사로 직업을 바꿔야겠어요.”
“자네 스테이크도 잘 못 썰지 않는가.”

관제실 안의 사람들은 웃고 또 웃었다.



5. 달 나라 왕자

에릭 수티는 크리티의 단편소설 「달 나라 왕자」를 낭송하기 시작한다.

달 나라 왕자 中에서:
“언제까지 슬퍼하고 있을 거니?“ 라고 달의 앞면이 달의 뒷면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달의 뒷면은 “너는 결코 슬픔의 이유를 알 수 없을 거야. 넌 언제나 지구 위의 사람들에게 모든 관심을 받고 있으니까.”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하겠어. 신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을. 아름다운 것이 있기 위해서는 추한 것이 있어야 하고, 밝음이 있기 위해서는 어둠이 있어야 하는 법이잖아.” 달의 앞면은 잘난 체 하듯 뒷면에게 말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구의 인간들이 비행기를 타고 달의 앞면으로 날아 왔습니다. “음, 드디어 이 앞면 님을 직접 만나러 왔구나. 모든 소원을 내가 들어 주겠어.”라고 앞면은 뒷면이 들으라는 듯 으스대며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구에서 온 인간들은 천둥 보다 더 큰 소리를 내는 기계들을 가지고 앞면의 몸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어이쿠, 아야, 왜 내게 고통을 주는 거야?”라고 앞면이 괴로워하며 인간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인간들은 “달은 연장된 지구의 일부에 불과해. 걱정하지 마, 우리는 너를 사랑하니까. 그냥 눈 꼭 감고 몸만 빌려주면 돼.”라고 말하며 깔깔거리며 웃어댔습니다.
얼마 후, 앞면은 인간들이 몸의 이곳 저곳에 상처를 내어 만든 건축물들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앞면의 모습을 지켜보던 뒷면은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자신이 너무 싫어졌습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인간들이 곧 자신에게도 올까 봐 무서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키 작은 어린아이가 물고기 모양의 비행선을 타고 뒷면을 찾아 왔습니다.
“안녕, 난 우주를 떠도는 마법사 난쟁이, 크리스투스라고 해. 우주를 떠다니는 네가 흘린 눈물방울을 보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 뒷면은 그 친절한 난쟁이가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무엇보다 자신과 대화를 해주어 고마웠습니다. 뒷면은 난쟁이를 달 나라의 왕자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자신만의 멋진 왕자님인 것이지요.
“내가 너를 슬픔에서 벗어나게 해줄 거야. 나의 열두 제자들이 네게 영원한 생명과 기쁨을 줄 거야. 앞으로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게 해줄 거야.”  
달 나라 왕자는 손에 들고 있던 열두 개의 금빛 가루를 뒷면에게 뿌려 주고는 물고기 비행선을 타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12개의 금빛 제자들은 뒷면의 몸으로 들어가 생명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딱딱하고 건조하던 땅 속은 생명력으로 꿈틀거리는 뿌리들로 가득 찼습니다. 마침내 뿌리에서 돋아난 초록 싹들이 뒷면의 몸을 뚫고 솟아 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조금 아팠지만, 뒷면은 어느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기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초록 식물들은 점점 굵어지고 거대해져서 뒷면의 온 몸을 보호해 주듯 감싸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식물들 앞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애처로울 정도로 연약해 보였습니다. 코끼리 앞에 선 개미처럼 말이죠. 뒷면을 쟁탈하려는 인간들의 공격은 부질 없었습니다. 배가 고팠던 식물들은 거대한 입으로 인간들이 발사한 고철덩이들을 고맙다는 듯 먹어 치워버렸습니다. 배가 부른 식물들은 자신만의 짝을 찾아 작고 예쁜 가루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담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뒷면은 우주에서 가장 행복한 행성이 되었습니다.”                

에릭 수티의 감미로운 목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도 남았다. 사람들은 박수로 수티의 멋진 낭송에 보답했다.

에레마 시마노프는 크리스탈을 발벗고 찾아 나섰다.
아들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들을 납치하려고 했던 자신의 어리석은 생각을 땅을 치며 후회했다. 미국과 중국 정부는 세계 각 국에 스파이를 보내 크리스탈을 생포해 오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어떤 사람은 에베레스트 산의 등반 중에 블랙 샤크를 타고 유유히 비행하는 크리스탈을 보았노라고 했다. 어떤 심해 탐사선의 선장은 태평양 6 천 미터의 심해에서 크리스탈의 수중 저택을 보았노라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시마노프 가문이 미국 정부로부터 사들인 UFO를 타고 우주 멀리 날아가 버렸다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달의 뒷면에 자신이 만든 식물왕국을 보살 피며 다른 행성에도 식물을 심기 위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 몇몇 SF 소설 매니아들은 깨달음의 언덕을 넘은 크리스탈이 눈부신 금강석의 빛과 함께 삶과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 났다고들 떠들어 댔다. 그러나 대부분은 언론의 관심을 끌어 돈을 얻어 내기 위해 지어낸 거짓 정보였다.

슈피겔 호 사건 이후 부동산 회사 시마노피아는 시마노프 가문의 치욕으로 기록되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에레마 시마노프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그 대가로 치러야 했지만 다행히 그 정도로는 치명적인 타격은 되지 않았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일제히 달의 뒷면에 관련한 모든 프로젝트를 취소했다.

몇 년 동안, 달의 뒷면에 일생의 모든 것을 걸었던 세계 상위 20 퍼센트 이내의 갑부들 중에 자살자들이 급증했다. 자살자들 중에는 정부의 고위 관료층도 있었고 전직 대통령들도 있었다. 경찰은 이들이 자살하기 전에 공통적으로 들었던 노래에 주목했다. 한국 출신으로 젊은 나이에 요절한 세계적인 서정시인 김해경이 작사를 해서 유명해진 「달의 슬픔」이란 노래였다. 이 노래는 결국, 19세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20세기 중반의 「글루미 썬데이」의 뒤를 잇는 소위 ‘죽음을 부르는 작품’의 목록에 오르게 되었다.



달의 슬픔
              - 김해경

달의 슬픔, 또 누가 알고 있을까?
늘 웃고 있으니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다고 말할 뿐,
창가에 앉은 고양이만이 오늘도 귀 기울이네 달의 울음소리에.
삶이 싫다고 말하지 말기를 그냥 홀연히 떠나면 될 것을
고향을 잊은 뱃사공들은 압생트에 취해 말하지,
달의 뒷면엔 웃음을 잃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달의 슬픔, 또 누가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그건 이미 죽은 자라는 걸 의미하지.
고향을 잃고 떠도는 사막의 방랑자들은 밤마다 듣곤 하지
모래바람이 전해주는 신비로운 말들을
달의 뒷면엔 눈물이 말라 붙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그렇게 크리스탈 박사는 신화 속의 영웅이 되었다.
그가 종적을 감춘 날 인류의 석유 문명도 종적을 감추었다.
아직도 사람들은 종종 말하곤 한다.
달 밝은 밤 하늘에서 유유히 나르는 블랙 샤크를 보았다고.


kris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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