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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안드로기노우스의 사랑

2022.01.22 04:1101.22

"그 괴물은 자웅동체였습니다. 머리는  2개, 팔과 다리가 각각 4개 이었지요."

 

  한 학생의 사랑이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교양 과목 '철학과 사상' 의 교수가 안드로기노우스라는 괴물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금요일의 지루한 마지막 강의에 집중하던 학생이 없던 차, 사랑이라는 야릇하고도 끊임없이 궁금하게 하는 주제가 모두를 집중하게 했다.

 

  교수가 말한 괴물의 이야기는 플라톤의 저서 <향연>의 한 대목이다. 난 그 괴물의 삶이 꽤나 비참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괴물은 많은 팔과 다리에서 나오는 힘과 늙어 죽지도 않는 초능력까지 가지고 있어 완벽에 가까웠다. 이 신적인 능력을 믿고 나쁜 일들을 일삼다 화가 난 제우스에게 몸이 두 동강 나버리지만. 그렇게 벌을 받아 머리는 하나, 팔과 다리는 두 개씩인 일반적인 두 명의 사람이 된다. 이후 그들은 처음의 전능한 괴물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어 서로를 애타게 찾는다. 그것이 남자와 여자의 시초이고 그 모습이 사랑이라고.

 

  교수는 안드로기노우스의 이야기를 하며 사랑 그리고 이상향과 에로스에 대해 설명했다. 질문을 했던 학생도 답이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사랑의 근본을 알기 위해서 질문을 한 게 아니라 따분했던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싶어서 한 질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안드로기노우스의 이야기가 교수로부터 상기되자,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당시부터 궁금해왔던 질문이 떠올랐다. 그 괴물(들)은 나뉘기 전부터 서로를 사랑했을까? 그리고 끝내 서로를 찾아내 사랑을 이뤄냈을까?

 

  교수는 강의가 끝날 시간이 넘었음에도 교편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싱글벙글 웃는 걸 보니 본인의 강의에 큰 만족을 느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과제를 내주었는데, 질문한 학생에게 '원래 커리큘럼에는 없는 내용의 과제입니다. 하지만 강의 도중 좋은 질문으로 인해 이렇게 의미있는 과제를 내게 되니 기쁩니다. 모두 성실히 참여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곤 변명을 추가했다.

  과제를 내주고 싶었던 교수가 갑작스러운 과제 출제로 인해 받을 질타를 한 학생에게 돌린 것이다. 이런 교수의 태도에 과제또한 녹록하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각 학생들에게 번호를 나눠줄건데요. 그 번호는요, 자신과 짝이 될 사람이 알아내야할 번호입니다. 근데 자신의 번호는 오직 짝만이 알고 있어요. 이해 하셨죠?"

 

  서른 명의 학생들이 2인 1조로 짝을 맺었다. 친한 사이가 없던 나는 혼자 멀뚱히 있는 시간을 얼마간 가져야 했지만 건너편에 자리한 같은 처지의 한 여자 선배와 짝을 이룰 수 있었다.

 

  "짝만이 알고 있는 자신의 번호를 알아내세요. 짝에게 묻던 협박을 하던. 둘 중 한명만 번호를 알아내면, 맞추면 3점. 둘 다 알아내면 1점, 둘 다 모르면 0점입니다. 그리고 상대가 맞췄을 때, 자신의 번호를 못 알아낸 사람은 -1점입니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지요."

 

  교수는 일일이 학생들을 불러내 강의를 받는 학생들을 등진 노트북을 보게했다. 그리고 나도 강단 앞으로 나가 교수의 노트북을 보게 되었다. 노트북에는 엑셀 프로그램으로 하얀 화면에 간단한 격자가 쳐져 있었고 이름과 숫자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교수는 다른 윈도우 창을 띄워 엑셀의 한 행만을 남기도록 가렸다. 그리고 손으로 남은 한 행을 가리켰는데, 이름과 숫자가 적혀있었다.

 

  [최한나] [6번]

 

  나와 짝이된 여자 선배의 이름은 최한나로 6번을 부여 받았다. 내가 그녀의 번호를 알게 된 듯, 그녀도 나의 번호를 알게 되겠지. 나는 몇 번일까? 고민하던 차 그녀도 단상으로 불려가 노트북을 보았다.

 

  "다음주까지 강의 전까지 알아내 되, 알아 냈을 때 이메일을 보내도 좋습니다. 커리큘럼에 없는 과제인 만큼 성적 비중은 적을 터이니 부담갖지 마시고 재미있게 과제를 하시기 바랍니다."

 

  교수는 말을 마치고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학생들은 생각지 못 한 과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한숨을 뱉어댔다.

  그녀는 나의 옆자리로 건너와 인사를 건냈다. "이름은 봤지?"라며 운을 튼 그녀는 오늘 일정을 물어왔다.

 

  "없는데요, 왜요?"

  "곱창 먹을래?"

 

  스스럼없이 다가온 그녀 때문에 당황했다. 특이한 사람임은 수업을 듣는 태도를 보곤 익히 알고 있었다. 보통 교양과목은 친한 친구와 함께 듣는 편인데, 혼자임에도 당당했던 모습을 몇 번이나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빨리 끝내자고."

  "감사하지만 굳이 같이 밥을 먹어야 할까요. 핸드폰으로..."

  "싫음 0점받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나가려는 그녀를 잡아 막곤 늦게나마 제안을 받아들이는 긍정의 눈빛을 보냈다. 그제야 그녀는 곱창을 좋아하는지 다시 물어 확인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난 이게 궁금하더라구"

 

  대학로 앞 곱창집에 자리해 염통을 굽던 그녀가 말했다.

 

  "팔과 다리, 머리는 두 쌍이었는데, 내장도 두 쌍이었을까? 끊어서 가진 걸까?"

  "그게 중요한가요?"

  "제일 중요하지. 팔 다린 없어도 산다고. 내장은 아니잖아."

 

  그녀가 노곤히 익어가는 곱창을 잘라냈다. 불판 위에 곱이 흘러내리고 기름이 튀어나왔다.

 

  "밥 때 됐으니까 배고파서 그런 생각이 난 거 아니예요?"

 

  시덥지 않은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익지도 않은 염통을 하나 잡아 내밀었다.

 

  "먹어."

  "안 익었잖아요?

  "염통은 안 익었을 때 먹어야 맛있대."

 

  그녀가 내민 염통을 받아 기름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 입안에 고소하게 소의 피맛이 퍼졌다.

 

  "이게 심장이죠?"

  "이제 궁금하지?심장도 두 개였을까?"

  "이런 맛이라면 많을 수록 좋겠죠."

 

  우린 술잔을 부딪히며 통성명을 다시 나눴다. 그리곤 주량은 몇 병이나 되냐느니, 거주지가 어디며 통학은 어떤 방식으로 한다느니와 같은 대화를 했다. 곱창집에 오게 된 본론을 빙 둘러 피한 채로 취기가 올라올 때까지 분위기와 우리의 얼굴은 익어갔다.

  나는 주사에 대해서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먼저 주사가 올라올 때까지 마셔본 기억이 별로 없었다. 쓴 맛의 소주를 선호하지 않을 뿐더러 술자리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 친한 친구들을 만나면 실내 구기스포츠 따위를 즐긴다. 간혹 술을 마실 때마다 왜 마시는 걸까?하곤 깊게 생각하기도 했다. 기분이 좋거나, 기분이 안 좋거나 마신다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에 맛이 있는 음료는 얼마나 많은가. 술잔을 부딪혀 마시곤 함께 뱉는 -크 소리에 소속감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똑같은 쓴맛을 느끼며 단기 속성으로나마 힘든 역경을 같이 이겨내온 것과 같은 전우애를 느끼기 위함인가? 지금에 와서야 생각컨대, 내 주사는 '왜?' 인 것 같다.

 

  "나는 심장이 하나 였을 거라고 생각해. 아니 하나 였음 좋겠어"

 

  그녀가 말하는 심장은 누구의 심장을 지칭하는 것일까. 소든, 사람이든, 안드로기노우스든. 오래 구워져 말라 비틀어진 염통을 집어든 그녀도 나처럼 취한 것 같았다.

 

  "왜요? 왜 그렇게 생각해요?"

  "심장이 하나여야 사랑했지 않았을까?가뜩이나 머리가 두 개인데, 사랑은 심장으로 하는 거잖아? 두근두근 하고 떨리지. 사랑은 뇌에서 나오는 엔돌핀 같은 거 때문이라고 했지만 난 믿지 않아. 사랑은 가슴으로 한다란 말도 있잖아? 너도 사랑해봤으면 알겠지만 가슴이 두근두근, 심장이 뛴다고."

  "엔돌핀이 아니라 옥시토신이요."

 

  "그러니까 엔돌핀이던, 옥시토신이던 상관없다고. 심장이 중요하다고 사랑은." 라고 말하며 그녀는 손을 뻗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녀의 느릿한 손은 피할 수 없었다. 결국 가슴까지 내어 주고만 나는 얼굴이, 특히나 볼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가슴에 손이 닿았는데 왜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일까. 그녀의 말대로 사랑은 심장이 주관하는 걸까. 부랴부랴 식히기 위해 술을 들이켰다. 술은 쓰지 않고 달콤했다.

 

  "사랑이란 게 저마다 다르지만 끊임없이 원한다는 단순한 것에 있어서 뇌가 하는 건 아닐 거야. 너도 사랑을 해봤더라면 알 거 아니야?"

 

  말을 자꾸 되풀이 하고 스킨쉽을 하는 게 그녀의 주사일 것이다. 오해하지 말자.

 

  "번호는 어떻게 할 거예요?"

 

  정신을 부여잡기 위해 물었다. 그녀는 입을 앙다물고 턱을 괴었다.

 

  "단순한 게임이론이잖아요? 합리적인 도출이 정답입니다. 둘 다 알려주고 적정한 이익을 얻는 게."

  "나 믿어?"

 

  세 음절에 말을 잃었다. 그녀가 진실된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그간 대학교 강의실에서 마주친 게 전부인 우리는 애초에 학점을 경쟁할 사이였다.

 

  "아니, 우리끼리 이럴 필요가 없다는 거죠."

  "우리?"

  "생각해보세요. 30명 중 우리 둘을 제외한 28명, 그 28명 중 반만 번호를 알아낸다 하면 우리 위로는 14명이 있는 거고요. 28명이 번호를 나눠 점수를 얻어간다 치면 위로 28명이 있는 거예요. 약 93%요. 우리가 번호를 나눠서 리스크를 줄여야 하지 않겠어요?"

  "내가 널 어떻게 믿어?"

 

  헛웃음이 나왔지만 반론할 수 없었다. 나도, 그녀도, 서로를 믿을 수 없었다.

 

  "왜 못 믿어요? 출제 의도가 하나 되기 아닌가요? 완벽한 이상향이요"

 

  성적은 사랑이 아니었기에 터무니 없는 지론이었다.

 

  "하나가 되는 게 사랑이야? 그럼 하나가 된 후는?되고자 하는 마음은 어디간 거야? 넌 9번이야. 난 몇 번이야?"

  "6번이요."

  "난 6번, 믿어. 너는 하나가 되고자 하던, 하나가 되던 너 마음대로 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와 가볍게 입을 맞췄다. 나는 그녀의 입술 대신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그녀는 계산대로 향했다. 뒤늦게 짐을 챙겨 따라갔다.

 

  "제가 살게요."

  "아니야, 내가 살게. 다음에 너가 살지, 말지 결정해."

 

  그녀는 계산을 한 후 떠나갔다. 그녀가 남긴 말은 무슨 의미일까? 나는 택시를 잡아 타 떠나는 그녀를 뒤로 다음에 꼭 사겠다며 소리쳤다.

  집에 가는 내내 익숙치 않은 술기운에 구토를 했다. 먹은 염통은 소화되지 않은 채 토사물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달콤했던 술도 쓴맛이 배가 되어 같이 나왔다. 내가 원하는 건 점수일까, 그녀의 말속 진실일까? 9번을 적지 않는다면 그녀에게 술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힘든 발걸음을 내딛었다.

  안드로기노우스의 심장은 그녀의 말처럼 그리고 나처럼 하나겠지. 그럼 나뉘는 순간 한 쪽이 죽지 않았을까? 혼동스러웠다. 분명한 건  그거다! 제우스가 내린 건 벌이 아니라 상이자 기회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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