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응가 드림

2007.02.28 21:3102.28

먼저 말을 꺼낸 것은 키나였다.

"대리석으로 된 변기. 검은 대리석으로 깔린 바닥. 그 위에 보드랍고 푹신푹신한 붉은 벨벳 카펫이 깔려있어야지. 고풍스럽고 우아한 거울에는 장미 모양이 조각되어 있어. 거울은 옆면에 있어. 변기 뚜껑에는 카펫보다 더 부드러운, 그 안경 닦을 때 쓰는 것만 같은 극세사 커버가 덮여있어야 해."

무심코 자신의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로테샤는 대답했다.

"그래."

"물론 - 변기에 앉은 사람을 위해 옆에는 유리문이 달린 마호가니 책장이 중후하게 서 있지. 페퍼민트 향이 쌉쌀하게 풍겨오고 있어. 커다란 유리로 된, 사람 키만한 모래시계에서 민트색 모래가 아래로 뚝, 뚝, 떨어지고 있어."

예쁘겠네- 그러나 로테샤는 입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 "흠."


"세면기는 발로 페달을 밟으면 물이 나오는 페달식이고, 진주를 갈아만든 진주 비누가 놓여있어. 손을 다 닦으면 후끈한 바람이 불어와 손을 말려주지."

후끈한 바람 잘못 불면 몸 다 데이려나...? 로테샤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에릭이 들어왔다.

"여, 무슨 얘기해?"

"변기에 앉아있는 동안, 아래에 미지근한, 또는 좀더 따뜻한 물이 대야에 담겨있어. 그러니까 발에 물을 담그고 복근에 좀더 강한 힘을 줄 수 있는거야."

에릭이 키나의 말을 끊고 참견하였다.

"음.. 나는 그런 것보다, 박물관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본래대로라면 말을 끊었다고 화낼 키나는- 궁금해졌다.

"무슨?"

"이를테면, 유명한 연예인의 응가라든가."

"흠."

"아주아주 유명한 대통령의 응가라든가.. 부시 대통령의 아침 응가라든가... 음... 슈퍼마리오의 응가 모형이라든가."

로테샤가 멍하니 에릭을 바라보는 동안, 키나가 감탄의 소리를 냈다.

"헤에에."

키나가 입고있는 민소매 웃옷은 가슴에 딱 달라붙어 있다. 지방이라고는 없는 복근. 부럽게 바라보며, 로테샤는 한숨을 쉬었다.

"좋겠다, 둘 다 꿈이 있어서."
"로테샤, 너는?"
"나?"

로테샤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기숙사의 천장은 낡고, 이런저런 자국이 남아있다. 비가 심하게 오면 새기 때문에- 곰팡이가 피어있고, 드문드문 이름모를 락가수의 포스터가 붙어있어 간신히 곰팡이를 가리고 있다. 그나마 비가 오면 포스터 역시 곰팡이에 잠식되어, 의미는 없다. 대리석 화장실도, 응가 박물관도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로테샤는 금발로 염색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본래 칙칙한 갈색 머리인 로테샤는, 언제나 키나처럼 되고 싶었다. 그러나 금발의 미인 키나와 달리, 로테샤는 머리가 금발이라도 그저 로테샤일 뿐이었다.

"난 그냥 변비나 없어졌으면 좋겠어."

"...."

키나는 말없이 다가와 로테샤를 끌어안았다. 키나의 화려한 금발 곱슬머리가 로테샤의 창백한 뺨을 간지럽혔다. 곰팡이냄새가 나는 자취방에서, 에릭은 씩 웃었다.

"로테샤, 너는 언제나 현실적이라서 좋아."
"응, 꿈꾸고 있는 우리들을 땅으로 끌어내려 주는 주춧돌이랄까?"

키나 역시 에릭에게 동의하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키나는 로테샤의 뺨에 입맞춰 주었다.

로테샤는 조금 웃었다.

같은 꿈을 꾸지 않아도, 우리는 친구들이다.
풍선처럼 부푼 꿈을 함께 꾸지 못해도, 키나도 에릭도 나의 친구다.

로테샤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키나도, 에릭도 함께 껴안았다.

"응가님이 소식을 전달했어! 나 갔다올께!"
"오, 힘내라고 로테샤!"
"어서 가!"

등을 밀어주는 친구들이 있어 행복하다.
로테샤는 20m도 넘게 떨어진, 공동화장실을 항해 - 전투화인 슬리퍼와 전투복인 트레이닝복을 챙겨입고 달렸다.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380 단편 벚꽃 질 즈음2 세뇰 2007.04.17 0
379 단편 원하는 자 땅콩샌드 2007.04.16 0
378 단편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라반디스 2007.04.15 0
377 단편 1025442 moodern 2007.04.15 0
376 단편 이별 라반디스 2007.03.26 0
375 단편 에반게리온의 죽음1 이름 2007.03.19 0
374 단편 기차 여행1 M.Mori 2007.03.19 0
373 단편 폐인1 이니 군 2007.03.18 0
372 단편 [미니픽션] 카페 Adios 현서 2007.03.16 0
371 단편 앙팡테리블 나길글길 2007.03.07 0
단편 응가 드림 하나씨 2007.02.28 0
369 단편 [외계인] 부름 하나씨 2007.02.28 0
368 단편 [외계인] 블랙아몬드 roland 2007.02.28 0
367 단편 자기 자신을 사랑하자 라반디스 2007.02.22 0
366 단편 옆집 남자2 異衆燐 2007.02.19 0
365 단편 기억 - 남은 기억 용량 없음 화룡 2007.02.07 0
364 단편 알퐁스 필리에 씨의 죽음 M.Mori 2007.02.05 0
363 단편 [외계인] 어떻게 처리해야 잘 처리했다고 소문이 날까.1 異衆燐 2007.02.01 0
362 단편 치유되지 않는 상처 라반디스 2007.01.31 0
361 단편 자유의 날개짓(하)2 화룡 2007.01.17 0
Prev 1 ... 87 88 89 90 91 92 93 94 95 96 ... 110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