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필리에 씨에 대한 소식이 마을로 퍼져나갔다. 어제 마을에 들른 떠돌이 의사가 필리에 씨를 보더니, 배를 가득 채웠던 독소가 이제는 심장을 썩게 만들기 시작해서 아무래도 오늘 내일 하겠다고 했다는 얘기가 소식의 골자였다. 마을 사람들은 해가 채 지기도 전에 쟁기를 들에 놓고 좁은 논둑을 따라 줄을 지어 필리에 씨의 집으로 갔다. 필리에 씨의 부인과 두 딸, 두 사위, 네 명의 손자와 한 명의 딸이 침울한 얼굴로 마을 사람들을 맞았다. 마을 사람들은 꾸역꾸역 필리에 씨의 좁은 거실로 들어갔고, 마침내 거실은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찼다.

“누가 좀 방으로 들어가요.”
나이 지긋한 제이앙 부인이 새된 소리로 말했다.
“환자를 혼자 둘 참이에요?”

그 소리에 필리에 씨의 가족들은 서둘러 방으로 돌아갔지만, 마을 사람들은 거실의 답답하고 더운 공기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방으로 가려고 하지 않았다.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마침내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거, 왜 모리젠이 알퐁스랑 친하지 않았나……”

알퐁스는 필리에 씨의 이름이다. 하지만 서 있을 자리가 마땅찮아 낡은 옷 서랍 위에 앉아있던 모리젠은 손을 내저었다.

“아니, 무슨 말이야? 내가 언제 그 친구랑 친했다고 그래?”

“왜 지난번 뭐시기, 송아지 때문에 프랜시스 신부님과 논쟁했을 때 자네가 알퐁스 편을 들면서……”

“어흠, 왜 다 지난 얘기를 꺼내고 그러는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그렇게 따지면 폴 그랑드 씨도 할말 없지 뭘 그래.”

“뭐? 내가 뭘 어쨌단 말이오?”

논쟁은 가속화되었다. 안 그래도 더운 거실 안은 흥분한 사람들의 고함소리로 가득 찼고, 순식간에 필리에 씨의 거실은 그의 모든 선행, 악행,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았던 행동들이 죄다 까발려지는 각축장이 되었다. 오랜 말싸움 끝에, 땀투성이가 되고 불쾌한 냄새를 뿜기 시작한 마을 사람들은 필리에 씨가 논에서 잡초를 뽑다 갑자기 쓰러진 뒤 5년 동안이나 병석에 누워 가족들을 힘들게 한 것만 빼면 별달리 남에게 폐 끼친 게 없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니까 필리에 씨가 비록 프랜시스 신부님과 수시로 논쟁을 벌였고, 가끔 성수의 출처가 의심스럽다든지 하는 신성모독적인 말을 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그가 대체적으로 선하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알퐁스는 남을 때리거나 물건을 훔치는 등의 직접적인 방법으로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필리에 씨가 죽어가는 방 안에 들어가는 것만은 여전히 꺼려하고 있었다. 죽을 이가 누워있는 방은 그와 가장 친했던 사람들로 꽉 채워져 있어야 하는 게 전통이었지만, 이래서야 필리에 씨는 달랑 가족밖에 없는 외로운 임종을 맞을 판이었다. 사람들을 떨떠름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문간에 서 있던 어린 처녀 하나가 말했다.

“그런데 신부님은 불렀나요?”

“아까 모리스가 부르러 갔다.”

제이앙 부인이 대꾸했다. 처녀가 가냘픈 목소리로 말했다.

“프랜시스 신부님께서 빨리 와주셔야 할 텐데.”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부님과 함께라면 방 안이 아니라 어디라도 갈 수 있겠다는 듯 열정적인 태도였다.

“그래, 신부님께서 빨리 와주셔야 돼.”

묘한 방 분위기에 잔뜩 움츠려 자신의 품을 파고드는 어린 딸을 안으며, 모리젠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필리에 부인은 방 밖으로 나오며 맑은 콧물을 킁 소리 내어 풀었다. 그리고 초초한 기색으로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왜 다들 안 들어가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에요?”

“저, 그게……”

“얼른 들어가봐요. 그이가 아직 의식이 있을 때 모두 작별인사를 해야지요.”

마을 사람들은 손에 든 모자만 만지작거릴 뿐 선뜻 움직이질 않았다.

모리젠이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우리는 신부님을 기다리고 있어요.”

“신부님은 방 안에 들어가서 기다려도 되잖아요?”

제이앙 부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봐요, 필리에 부인. 당신도 알겠지만 필리에 씨가 생전에 프랜시스 신부님하고 얼마나 사이가 안 좋았수. 솔직히 그게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얼마나 분별 없는 행동이었다는 건 부인도 알지 않아요? 우린 모두 필리에 씨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신부님이 오시면 방안에 누가 있나, 그것부터 보실 것 같아서……”

동의를 뜻하는 듯한 작은 웅성거림이 마을 사람들 사이로 퍼졌다. 필리에 부인은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마을 사람들을 한 번 훑어 보더니, 곧 가느다란 한숨을 뱉었다.

“좋아요. 그럼 신부님이 올 때까지 기다리도록 해요.”

하지만 신부님은 오지 않았다. 벌써 필리에 씨네 집에서 교회까지 두 세 번은 왕복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랬다. 잠시 후 눈물로 얼굴이 범벅이 된 딸이 방에서 뛰어나와 지금 일이 몹시 급하게 되었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거실은 중구난방 떠드는 마을 사람들의 소리로 다시 시끄러워졌다. 어떤 사람은 필리에 씨를 들쳐 업고 교회로 가자고 주장했고, 또 어떤 사람은 모리스를 보낸 게 잘못이었다며, 그 개구쟁이는 지금쯤 자기에게 맡겨진 중요한 임무를 잊고 어디선가 개구리나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제이앙 부인이 외쳤다.

“조용히! 모두 조용히들 해요! 이렇게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하면 아무 소리도 안 들려요!”

“하지만 필리에 씨가 이대로 돌아가시면 큰일납니다!”

“그건 맞는 말이에요. 다른 소년을 더 보내 봅시다.”

“제가 갈게요.”

문간에 모여 앉아 있던 어린 처녀아이들과 소년들 사이에서 한 아이가 나왔다.

“저는 모리스 형보다 빠르니까, 금방 신부님을 모시고 올 수 있을 거에요.”

마을 사람들은 그와 함께 몇 명의 소년들을 더 보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나빠져만 가고 있었다. 또 다른 필리에 씨의 딸이 거실로 뛰어나와, 아버지의 숨소리가 이제는 너무나도 작아져서 금방이라도 멈추어 버릴 것 같다고 말한 것이다.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으세요. 아까만 해도, 마을 분들이랑 얘기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작은 딸이 울먹였다. 마을 사람들 사이로 동요가 퍼져나갔다. 아니, 그것은 차라리 공포에 가까웠다. 이 작은 마을에 교회가 생긴 이후로, 종부 성사를 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정신 없이 거실과 집 밖을 들락거렸다. 대체 얼마다 더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바로 그 때, 소년들이 필리에 씨의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프랜시스 신부도 함께였다. 프랜시스 신부는 성유가 든 함을 꼭 껴안은 채 소년들의 손에 떠메어져 왔던 것이다. 그는 집 앞에서 조심스레 땅으로 내려졌다. 소년들이 외쳤다.

“무릎이 너무 아프시다고 길가에 앉아서 쉬고 계시는 걸 모셔왔어요!”

마을 사람들은 소년들 사이에 있던 모리스를 발견했다. 몇몇 사람들이 모리스를 책망하자, 소년은 매우 억울한 표정으로 맞받아쳤다.

“자꾸 무릎이 아프시다면서 좀 앉았다 가신다고 하는데 어떡해요! 덕분에 논둑 길에서 네 번이나 쉬고 왔다고요. 늦을 수밖에 없었어요!”

하긴 프랜시스 신부는 쉰이 한참 넘은 노인이었고, 평소에도 관절염 때문에 심하게 고생을 하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프랜시스 신부가 필리에 씨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으로 늦장을 부린 게 아닐까 의심했다. 솔직히 프랜시스 신부도 사람이 아닌가.

“왜 모두 거실에 나와 있는가?”

주위를 둘러보며, 프랜시스 신부가 말했다.

“그건……이제 다들 도착한 참이어서요.”

프랜시스 신부는 질척대는 걸음으로 방을 향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제서야 우르르 그를 따랐다. 좁은 필리에 씨의 방 안은 프랜시스 신부를 선두로 들어온 마을 사람들로 곧 터질 듯 꽉 차게 되었다.

“알퐁스 필리에!”

프랜시스 신부가 점잖게 필리에 씨를 불렀다. 하지만 필리에 씨는 반응이 없었다. 프랜시스 신부는 다시 한 번 필리에 씨의 이름을 불렀다.

“알퐁스! 내 말이 들리나?”

그러자 필리에 씨가 힘겹게 눈을 떴다. 항상 초롱초롱 빛나던 녹색 눈은 흐려진 지 오래였지만, 어쨌든 눈 앞의 사람들은 보이는 듯 했다. 바로 옆 사람에게도 들릴락말락 한 작은 목소리로 필리에 씨가 말했다.

“프랜시스 신부……”

“그래. 날세. 기분은 좀 어떤가?”

필리에 씨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프랜시스 신부는 계속해서 말했다.

“자네도 알겠지만, 자네는 곧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돌아가게 될 거야. 하지만 여기 생전에 자네를 사랑했던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있으니, 두려워할 것도 없고 걱정할 것도 없을 게야.”

조그만 울음소리들이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필리에 부인과 딸들은 서로 한 몸처럼 꼭 껴안은 채 필리에 씨의 머리맡에 서 있었다. 프랜시스 신부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성사를……”

“하지 마. 이 망할 신부 같으니.”
필리에 씨가 성유함을 여는 프랜시스 신부에게 말했다.
“난 신을 안 믿는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썩어빠진 늙은이야.”

필리에 씨는 자신의 부인과 딸들이 비명과도 같은 울음을 터트리는 것에도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작았지만 또렷한 목소리였다.

“다들 잘 들으라고. 세상에 신 같은 건 없어. 다 썩을 늙은이들이 제 배를 불리려고 지어낸 얘기일 뿐이야. 성사? 그런 걸 해서 내 가족에게 수고비나 받을 생각이지?”

필리에 부인이 급히 말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신부님! 이이가 열이 올라서 제정신이 아닌가 봐요.”

“그럼 이 사람은 평생 동안 열이 오른 채로 살았다고 봐야 할 거요, 엘렌. 정말 죽어가는 게 맞긴 한 거요? 어떻게 평소와 조금도 다르질 않군.”

하지만 프랜시스 신부의 탄식에도 불구하고 필리에 씨는 죽어 가는 게 확실해 보였다. 힘없이 벌어진 입과 푸르스름한 흰자위에서 풍기는 죽음의 냄새는 가장 경험이 없는 소년들이라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강렬했다! 신부는 한숨을 쉬었다.

“자네가 이리 솔직하게 나오니 나도 어쩔 수 없지. 나도 자네가 밉네. 하지만 아무리 미워했다고 해도 자네가 성사도 없이 죽어서 지옥 불에 떨어지는 건 원치 않아.”

프랜시스 신부는 그 어떤 때보다 더 서둘러 성유 병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불행히(필리에 씨에겐 행운이었겠지만) 상대가 더 빨랐다.

프랜시스 신부를 죽일 듯 노려보던 필리에 씨의 얼굴이, 힘없이 툭 하고 침대 시트 위로 떨궈졌던 것이다.


알퐁스 필리에 씨의 집은 침울함 속에 잠겨 있었다. 제이앙 부인은 한 없이 눈물을 쏟는 세 모녀를 달래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한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한 번도 이런 일이……”

“이젠 어쩌지요?”
모리젠이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해가 지기 전에 묻어야 하는데, 성사가 없이 돌아가셨으니 묘지에 들어가실 수가 없지 않습니까.”

“조용히 하게.”
프랜시스 신부가 우울하게 말했다.
“안 그래도 생각 중이지 않나.”

“……마을 밖에다 묻는 건 어떨까요?”

한 청년의 의견에, 거실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앉아 있던 마을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필리에 씨를 옛 이교도들처럼 길가 아무데나 묻어주잔 말이냐?”

“불쌍한 분 같으니!”

마을 사람들은 제각기 탄식하거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프랜시스 신부가 중얼거렸다.

“어쨌든…… 필리에 씨는 들어갈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묘지에 묻힐 수는 없지만, 묘지에 들어갈 수는 있다는 게지.”

“네?”

프랜시스 신부는 넘어갈락 말락 산등성이에 걸려 붉은 빛을 뿜고 있는 해를 한 번 바라본 뒤, 결심이 섰다는 듯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묘지로 가세.”


필리에 씨는 오래 전부터 그를 위해 준비되어 있던 관에 넣어져 묘지로 옮겨졌다. 마을의 유일한 묘지인 교회 안뜰에는 마을 사람들의 시신이 빼곡하게 묻혀 있었다. 필리에 씨의 자리로 예정된 곳은 담쟁이 넝쿨이 자라는 안뜰 가장자리였는데, 이제 그 곳은 다른 이가 묻혀야 할 자리가 되어버렸다. 원래 주인이 누울 수는 없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관을 따라온 마을 사람들은 교회 앞에 다다르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일제히 프랜시스 신부를 바라보았다.

“이제 어떡하죠?”

“자, 다들 들어보게나.”

오래 걸은 탓에 무릎이 아파지기 시작했는지 얼굴을 찡그린 프랜시스신부가 말했다.

“분명 종부 성사 없이 죽은 이와 이교도는 교회에 묻힐 수 없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의 오랜 친구였던 알퐁스 필리에를 성인들의 가호도 받지 못하는 벌판에다 아무렇게 묻을 수도 없는 일 아니겠나?”
마을 사람들 사이에 동의를 뜻하는 침묵이 흘렀다.
“그럼, 어쨌든 알퐁스 필리에의 관을 땅에 닿게 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행렬 사이에 끼여 따라온 모리스가 말했다.

“신부님, 무슨 소린지 전혀 알 수가 없는데요.”

“묘지에다가는 들이되, 땅에 놓진 말자는 얘기지.”

프랜시스 신부의 말을 못 알아들은 것은 비단 모리스 뿐이 아닌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얼굴로 멍하니 프랜시스 신부를 바라볼 뿐, 누구 하나 말끔한 얼굴을 하고 있질 못했다. 그것은 필리에 부인과 딸들도 마찬가지였다. 필리에 부인이 훌쩍이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린가요, 신부님? 우리 불쌍한 그이는 대체 어떻게 된다는 건가요?”

“일단 관을 들어올리게.”

프랜시스 신부가 엄숙히 말했다.


프랜시스 신부의 엄숙한 주재 속에서, 4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정직한 농부 알퐁스 필리에 씨의 관은……나무에 매달렸다. 그 나무는 너무 늙어서 더 이상 열매를 맺지 못하는 교회 안뜰의 돌배나무였다. 다행히 나무의 가지가 튼튼해서 관 하나쯤은 앞으로도 죽 너끈히 매달려 있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필리에 씨의 큰 사위가 더듬더듬 말했다.

“시……신부님, 이건 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차라리 이럴 거면, 마을 밖에다 묻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건 안 돼요!”
너무 울어서 잠긴 목소리로 필리에 부인이 소리쳤다.
“우리 그이를 아무도 없는 외로운 들판에다 묻을 수는 없어요! 난 이걸로도 만족하니까 모두 그만들 둬요!”

어느 새 주위는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모리젠은 한숨을 푹푹 내쉬더니 필리에 씨의 관을 둘러싸고 서 있는 마을 청년들을 수습했다.

“자. 모두 돌아들 가자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종부 성사를 못했으니. 그나마 교회 안에서 잠들게 된 것만 해도 특권인 거야.”

사실 모리젠의 말은 틀린 데가 전혀 없었다. 종부 성사도 하지 못한 부정한 몸으로 죽었으니 저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불쌍한 필리에 씨를 동정하는 눈물을 떨구며, 마을 사람들은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그날 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왔다. 그리고 그들은 혼자 나무에 매달린 관을 내리려고 심하게 끙끙거리고 있는 노인 하나를 발견했다. 몰려온 사람들은 모두 그 노인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혼자서 하실 생각이었습니까? 관절염 때문에 무리실 텐데요.”

사람들 중 하나가 말했다. 노인이 재빨리 응수했다.

“그렇게 말하는 자네는 혹시 모리젠이 아닌가?”

“무슨 말씀을! 저는 절대 모리젠이 아니라고요.”

“거짓말 말게. 목소리가 영락없는걸.”

어쨌든 사람들은 노인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 중 모리젠의 목소리와 비슷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을 포함한 장정 다섯 명이 앞으로 나와 조심스레 관을 내렸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나머지 사람들은 묘지를 둘러싼 채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침묵 어린 조문 속에서 알퐁스 필리에 씨는 자신이 원래 묻히기로 했던 장소에 편안히 누울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깊은 잠에서 깨어난 마을 사람들이 하룻밤 사이 일어난 일에 놀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지난 밤에 너무 깊이 잠드는 바람에 누군가 관을 내리는 것을 보기는 고사하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꽤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마을 사람들 전체 수와 맞먹을 정도로 많은 것 같았지만 아무튼 그들이 교회로 몰려드는 것 조차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했다. 프랜시스 신부도 자신의 안뜰에서 일어난 이 사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늙은 신부는 그날 밤 식사 시간에 포도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인사불성으로 취한 채 잠자리에 들었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종종 알 수 없는 기적을 일으키시지.”

프랜시스 신부의 말이었다.




PS:
음. 실제로 14세기 유럽에선 파문당한 사람들이 교회 묘지(보통은 안뜰)에 묻힐 수 없어서 안뜰 나무 위 같은 곳에 관을 올려놓곤 했다고 합니다. 별로 보기 좋은 풍경은 아니지요.
M.M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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