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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워프 스테이션

2023.10.30 19:2310.30

[1]

"아직도 자동차로 출퇴근한단 말이야?"

"뭐, 집에서 그렇게 멀지도 않잖아. 길도 한산하니 괜찮아."

자동차로 꽉 막히던 길이나, 콩나물시루처럼 사람들로 가득 찬 버스와 지하철에서 시달리며 오가던 일이 까마득한 옛날 일 같다. 하긴, 이제는 정말로 옛날이라고 해야 하나. 어차피 많은 사람이 워프 스테이션으로 갈아탔기 때문에 요즘에는 출퇴근 시간에도 도로나 대중교통이 그렇게 북적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워프 역 쪽이 더 복잡할 정도다. 예전에 스마트폰이 그랬듯, 워프 스테이션도 기술 공개 후 그 편리함에 힘입어 빠른 대중화의 길을 걸었다. 힘들고 멀게만 느껴졌던 출퇴근 길부터, 좁아터진 자리에서 꼼짝없이 긴 시간을 보내야 했던 장거리 비행까지. 할 수 없이 길 위에서 보내야 했던 수많은 시간을 몇 초 이내로 단축했으니 그럴 수밖에. 그렇지만 나처럼 의심 많은 사람은 여전히 구시대적인 이동 방식이 편하다.

"이거 한 번도 안 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타본 사람은 없다고. 너도 한 번 타보면 완전히 생각이 바뀔걸? 완전 신세계야."

"어… 나중에…."

사실 나는 얼리어답터도 아니고, 오히려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는 부적응자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핸드폰이 대중화되었을 때도 그랬고, 모두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되었을 때도 그랬다. 나는 주위 사람들 모두가 스마트폰을 하나 이상 들고 다니고, 통신사에서 기존의 오래 된 핸드폰 회선을 없애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낸 후에야 간신히 스마트폰으로 옮겨 간 사람이다. 스마트폰 초기에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폭발한다는 뉴스에는 역시 기술 개발이 덜 되어 저 모양이라고 생각했고, 스마트폰의 전자파가 뇌종양의 원인이 된다는 이야기에 주변 사람들의 스마트폰 사용도 못마땅해했었다. 이제는 모두가 사용하니까 어쩔 수 없이 쓰기는 하지만, 나는 여전히 스마트폰이라는 기계를 백 프로 확신의 눈으로 보지 못한다. 이런 나에게 워프 스테이션을 이용하라고 권하다니. 유나가 나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모양이다. 

워프 스테이션이 처음 나왔을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처럼 생각했다. 순간이동이라니, 마술도 아니고 그게 현실에서 가능하다고? 당시 방송에 나온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분자 수준에서의 불확정성 원리를 제어하는 방법이 개발된 것과 함께 워프 공간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냈다면서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그렇게 워프 스테이션을 사용하는 모습이 최초로 방송을 탔을 때는, 저게 실제 화면이냐 합성이냐 하는 것이 논란이 될 정도였다. 초기 기술로는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400km 이상을 가는 데에 5분 정도 걸렸으니, 우리 집에서 회사까지 10초 정도 걸리는 셈이었다. 물론 이 길을 지하철로 간다면 걷는 시간까지 40분은 족히 걸리고, 당연히 출퇴근 시간대에 자가용을 끌고 나가면 그 시간 안에 회사에 도착하는 것은 턱도 없었다. 워프 스테이션의 대중화는 결과적으로 이동이라는 일에서 시간을 지워버린 획기적인 사건이었지만, 개발 초기에 대중은 이해할 수 없고 비싸기만 한 기술을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유명 가수들이 워프 스테이션을 사용해 자기 집이나 사무실에서 콘서트장으로 실시간 이동을 하는 것을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목받고 싶어 하는 연예인들을 시작으로 자신의 시간을 돈과 바꾼 사람들의 사용이 증가했다. 마침내 응급 환자의 장거리 이송에 워프 스테이션 사용이 허가되면서 이 기술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졌다. 순간이동으로 목숨을 건진 사람들의 미담이 이어졌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출퇴근에 이용되기 시작하더니, 이제 대도시에서는 예전의 지하철처럼 워프 스테이션 역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잦은 고장으로 대규모 지각 사태가 종종 벌어지곤 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기술이 더 좋아졌는지 요즘에는 그런 일도 없긴 하다. 실제로 내 주위 사람들도 매일 사용하고 있으니, 워프 스테이션을 타본 적이 없는 내가 제일 이상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일은 나하고 같이 출근하는 거다?"

"어. 어… 뭐?"

"이 몸이 너를 위해 친히 타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말씀이지. 내일 여덟 시 반에 너네 집 앞에서 보자!"

황당해하는 나를 두고 유나는 약속 시간에 늦었다며 뛰어가 버렸다. 딴생각하느라 대충 장단만 맞추며 대답하다 보니 중간 이야기는 놓치고 이상한 약속을 하고 말았다.


[2]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시간에 맞춰 집 앞으로 나왔다. 여덟 시 반. 이젠 워프 스테이션이 아닌 다른 이동 수단으로 출근을 시도하면 백 프로 지각이다.

'아까 그냥 일찍 갈 걸 그랬나? 괜히 유나한테 말려들어서……'

"진아야! 안 나올 줄 알았는데 진짜 나왔네? 하하하."

"너랑 같이 안 가도 되는 거였어?"

"아니, 아니야. 나와서 좋다고. 오늘은 나랑 같이 출근하기로 했잖아!"

유나는 내가 도망이라도 갈 게 걱정됐는지 내 손을 꼭 잡고 집 근처 워프 스테이션 역으로 끌고 갔다.

출근 시간이라 역은 사람들로 붐볐다. 역사 입구 맞은편 벽에는 열 개도 넘는 워프 스테이션 문이 줄지어 서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문 옆의 리더기에 카드를 대고 문이 열리면 한 명씩 들어갔다. 빨려 들어가는 듯한 '후욱'하는 소리가 나고 몇 초 뒤 다시 열린 문 속에서는 깨끗한 빈 공간이 다른 사람을 맞았다. 동영상이나 방송에서 사람들이 워프 스테이션을 타는 것을 자주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 보니 신기했다. 

"너 카드도 없지? 이쪽으로 먼저 가자."

정신없이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던 나를 끌고 유나는 매표기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나는 잽싸게 자기 돈으로 내 카드를 샀다.

"어, 아냐, 내가 사면 되는데……"

"이 몸이 네 워프의 첫 테이프를 끊어 주시겠다 그거지. 그렇게 느려 터져서 요즘 같은 시대에 밥은 먹고 다니냐?"

유나는 내 손에 카드를 잡아 주며 가까이에 있던 워프 스테이션 문 앞으로 내 등을 밀었다.

"자, 이렇게 카드 찍고, 들어가고, 나가면 회사 앞이라고! 나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그리고 유나는 순식간에 워프 스테이션에 들어가 사라졌다. 이젠 출근 시간이 다 되었으니 더 이상 ‘새로운 기술은 싫다.’ 식의 구호를 외칠 때도, 워프 스테이션을 떠날 때도 아니었다. 차례가 되어 초록 불이 반짝이는 리더기에 카드를 찍자 문이 열렸다. 문 안쪽의 공중화장실 한 칸 정도 공간은 한없이 좁아 보였지만, 자세히 보지도 않고 워프 스테이션 안으로 발을 들였다. 바로 문이 닫히고 무언가 안내 방송이 나왔지만, 내용을 듣기도 전에 눈앞이 어두워졌다.

다시 앞이 환해지고 문이 열렸을 때 문 앞에는 유나가 서 있었다.

"어때? 괜찮지? 좋지?"

시계를 보니 집에서 나오고 십 분 정도 지났다. 집에서 역까지 걸어간 것까지 생각하면 회사 앞 역까지 정말 몇 초 걸리지 않은 셈이다.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몸 여기저기를 둘러봤지만 대충 봐도 멀쩡하다.

"음… 글쎄…."

"오, 그 정도 반응이면 좋은 거네! 내일도 우리 같이 갈까? 여유롭고 좋잖아."

반강제로 시작되긴 했지만, 그렇게 나도 워프 스테이션 출퇴근 대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유나 말대로 이건 한 번도 타보지 않을 수는 있어도 한 번만 탈 수는 없을 정도로 편리함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사람들이 나가는 속도가 빠르기도 하고, 역마다 설치된 워프 스테이션도 많다 보니 복잡한 러시아워에도 이용에 기다리는 시간은 5분을 넘기지 않았다. 그렇게 기다리며 조금 지체된다고 해도 내가 가려는 역까지는 몇 초 걸리지 않으니 조금만 시간 여유를 두면 어디든 늦을 이유가 없었다. 워프 스테이션의 이동 속도에 금방 익숙해지고 나니 오히려 역에서 목적지까지 걷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져서 그마저도 워프로 가는 방법은 개발이 되지 않는지 투덜거릴 지경이었다.


[3]

그 주말에는 유나와 최근에 생긴 핫플이라는 신상 카페에 가보기로 했다. 유나와 함께 역 쪽으로 천천히 걷다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 워프 되기 직전에 안내 방송 나오는 거는 뭐라는 거야?"

"모르겠는데. 그게 시작되면 바로 워프 되지 않아? 한 번도 내용은 들어본 적 없는 것 같아."

"사람들이 듣지도 못할 안내 방송은 왜 하는 걸까?"

"알 게 뭐야. 그냥 주의 방송 같은 거겠지. 아무거나 만지지 마세요. 뭐 이런 거?"

하긴, 중요한 내용이면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할 리가 없겠지. 우리는 금방 역에 도착했고, 유나와 나는 카드의 도착지를 회사에서 카페가 있는 동네로 변경한 후 워프 스테이션 쪽으로 갔다. 

"나 먼저 간다!"

"뭐야, 어차피 몇 초 차인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유나가 먼저 출발한 후, 나도 워프 스테이션으로 들어섰다.


"저기, 여기요! 이거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요."

진아가 들어간 문에서 기다리던 다음 사람이 직원을 불렀다. 카드 리더기에는 "고장. 직원 문의"라는 빨간 불이 들어와 있었다. 리더기를 본 직원은 고장이니 다른 워프 스테이션을 이용해 달라고 말하고는 문 앞쪽의 패널 위를 조작했다. 직원이 조작을 마치고 떠난 문 위에는 'Processing’이라는 빨간 불이 깜박이더니 워프 스테이션이 작동할 때와는 조금 다른 '쉬익' 하는 소리가 5분 정도 났고, 소리가 멈춘 뒤 카드 리더기에는 초록 불이 들어왔다.


[4]

"이 방송이 들리면 당황하지 마시고 그 자리에서 직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이 방송이……"

'뭐야. 그동안 워프 전에 들리던 방송이 이거였어? 그런데 왜 내가 지금 이걸 듣고 있는 거지?'

항상 방송의 첫머리를 듣기도 전에 워프가 시작되었던 것 같은데 이건 뭔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아무리 편리하다 해도 모르는 기술을 함부로 사용하는 게 아니었는데. 먼저 간 유나가 기다리며 걱정할 것 같아 핸드폰을 보니 전파도 잡히지 않는다.

'직원이 올 때까지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나.'

방송으로 똑같은 소리를 열 번쯤 들었나. 진아가 서 있던 스테이션 내부에 갑자기 빨간불이 켜졌다. 놀란 진아가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려던 순간 그녀는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들이닥친 푸른 불꽃 사이에서 순식간에 소각되었다.


[5]

"어휴, 빨라야 얼마나 빠르다고 '먼저 간다.'야."

워프 스테이션에서 나온 진아는 유나에게 투덜댔다. 

"1초라도 빠르면 빠른 거거든!"

"참, 좀 전에 그 스테이션 안에서 하는 방송을 들은 것도 같아. 그냥 주의하라는 것 같더라고."

"내가 그랬잖아. 별소리 아닐 거라고."

"매번 나오니까 괜히 신경 쓰여서 그랬지. 오늘 그 카페는 무슨 메뉴가 좋대?"

"잠깐만, 내가 메뉴를 찾아봤는데……"

진아와 유나가 대화하며 골목으로 들어서는 사이 그들 뒤의 워프 스테이션 역 위 환기구에서는 가느다란 흰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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