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명과 암

2023.05.28 03:3005.28

  서현은 일을 시작한 이후로 샤워를 할 때마다 자신의 성기 색깔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 색깔이 이전보다 유독 거무튀튀하거나 지저분하게 보이면 그녀는 괜스레 기분이 나빠져 성기를 평소보다 더 박박 문질러 씻곤 했다. 다시 예전의 뽀얗던 색깔로 돌아오길 바라는 듯이.

  영등포역 6번 출구로 나서면, 촘촘히 들어선 작은 상가건물과 골목골목 너머로 거대한 쇼핑몰 건물이 보인다. 서울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라 평가받는 영등포 일대에서 가장 빛나는 그 건물을 향해 걸어가다 보면 서현의 일터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 때면 그녀는 왠지 영영 저 찬란한 복합 쇼핑몰 센터로 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평생 더럽고 낙후된 집창촌에 갇혀 살아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울적해지곤 했다. 서현이 쇼윈도에 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거리에 나가 호객행위를 할 때 최대한 그쪽으로 눈길을 주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더는 비참해지고 싶지 않은 강력한 자기방어 기제와 같은.

“예리야, 어때? 응? 좋아?”

“응, 너무 좋아. 오빠, 나 너무 좋아 미치겠어.”

예리는 서현이 일할 때 사용하는 예명이다. 퇴근 후에 소주를 한잔 걸치고 왔는지, 앞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의 남성은 술 냄새를 풍기며 자신의 성기를 서현의 성기에 미친 듯이 쑤셔 넣고 있었다. 얇은 고무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현은 아까부터 자꾸만 기분이 좋냐고 물어보는 남자의 말에 짜증이 나는 중이었다. 마음 같아서 너 같이 못생긴 늙은이랑 하는 게 뭐가 기분이 좋겠냐고 한마디 쏘아붙여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서현의 단골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서현은 이 행위를 빨리 끝내기 위해 남자의 취향에 최대한 맞춰주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과 배를 맞닿고 있는 남자의 귀에다 대고 서현은 속삭였다.

“오빠, 예리 안에 듬뿍 싸주세요.”

“알겠어. 예리야.”

서현의 그 말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몸의 힘을 축 늘어뜨리고 미끄러지듯 옆으로 드러누웠다. 서현은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에 해방감을 느꼈다. 그는 임신시켜달라느니, 자궁에 듬뿍 싸 달라느니, 이런 말에 흥분하는 취향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그녀는 매번 이런 식으로 이 남자와의 성교를 빨리 끝내곤 했다. 그는 콘돔을 묶어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다.

“잘 가, 오빠.”

“그래, 예리야. 오빠 다음 주에 또 올게.”

서현은 남자와 팔짱을 낀 채 쇼윈도 앞 골목까지 배웅했다. 마치 연인 사이처럼. 단골손님을 만드는 나름의 비결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인기가 많았다. 예쁘고, 다른 아가씨들보다 비교적 어리고, 몸매도 좋았으며 손님들에게 살갑게 대했다. 그 덕에 지명이 많았고 그렇기에 서현이 일하는 업소의 포주도 일주일에 두 번만 출근하는 그녀를 괘씸하게 생각할지언정 쉽게 자르지는 못하고 있었다. 손님을 배웅하고 서현도 퇴근을 위해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들어갔다. 호객용 치마를 벗고 출근할 때 입었던 청바지를 입고 있는데 쓰레기통 속에 방금 버린 콘돔이 눈에 들어왔다. 내용물에 아직까지 온기가 남아있을 그 콘돔 덕에 방금 상대했던 남자의 얼굴과 자신이 했던 말들이 떠올랐고 서현은 심한 역겨움을 느꼈다. 돈까지 내고 이딴 짓거리를 하러 오는 금수들에 대한 환멸과 자기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버텨야 했다. 당장 내일 출근을 해야 했고, 돈이 필요했다. 서현은 마음을 가다듬고 옷을 마저 갈아입었다. 그리고 포주에게 퇴근하겠다고 말한 후 업소를 나섰다. 집창촌과 쇼핑센터 사이의 도로를 빠르게 걸으며 서현은 이곳을 빠져나갔다. 쇼윈도를 환하게 비추던 조명들이 하나, 둘 씩 꺼지고 있었다. 잠시 후면 쇼핑센터의 불이 환하게 켜질 것이다.

 

  서현이 성매매를 시작한 건 아픈 부모님의 병원비를 내야 한다거나 집에 빚이 많다거나 하는 슬픈 사연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냥 돈은 많이 벌고 싶은데 최저시급 받으며 힘든 일은 하기 싫어서 옛날부터 이런 일을 하던 친구의 소개로 시작하게 되었다.

“OO대학교 학생이라고? 휴학생이야?”

“아니요. 재학생이에요.”

“그래? 학교 다니면서 이 일 하기 쉽지 않을 텐데....”

“네, 그래서 일주일에 이틀만 일하려고요. 금요일, 토요일로요.”

“뭐? 자식이, 이 일이 장난인 줄 아나.”

일을 시작하기 일주일 전, 서현의 면접을 보던 포주는 일주일에 이틀만 일하겠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담배를 한 모금 빨며 서현의 얼굴과 몸을 찬찬히 훑었다. 그리고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입을 열었다.

“오케이, 좋아. 다음 주부터 출근해. 금, 토만 일하는 걸로 하자. 대신에 너 지명 거르거나 손님들한테 조금이라도 까탈스럽게 굴면 바로 잘릴 줄 알아.”

“예, 그럼 다음 주 금요일에 뵐게요.”

사실 서현이 일주일에 두 번만 일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포주가 자신을 고용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현은, 예쁘다. 번화가를 지나다니면 주변 남자들의 시선이 어렴풋이 느껴질 정도로 예쁘고 몸매도 좋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아주 잘 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본인이 평균을 훨씬 웃도는 외모를 가지고 있음을. 그건 초등학생 시절 남자아이들이 유독 자신에게만 짓궂게 굴었을 때 일지도, 중학생 시절 댄스부와 연극부에서 서로 입부 하라고 경쟁하듯이 권했을 때 일지도,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한 학년 위의 소위 학교에서 가장 잘나가는 오빠에게 번호를 따였을 때 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녀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았고, 이것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일주일에 최소한 사흘은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고, 체중관리를 위해 과식은 절대적으로 피했으며, 마스크팩과 피부마사지를 주기적으로 함으로써 어린 피부를 유지했다. 자신을 치장하는데도 돈을 아끼지 않았기에 서현의 화장품과 향수는 항상 최고급이었고 가방은 명품백이었다. 그녀에게 외모는 투자하면 할수록 그만큼의 이율을 뽑아주는 금융상품 같은 것이었다. 리스크는 없는데 이윤은 높은, 초고금리의 은행적금이라고나 할까. 서현이 자신의 외향에 시간과 돈을 쏟으면 그것은 반드시 그만큼의 값어치를 해줬다. 남자 선배와 밥을 먹으면 밥값을 거의 내지 않았고, 가끔 고맙다는 인사치레로 커피라도 한잔 사주면 그들은 과할 정도로 송구스러워하며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자기들이 낸 밥값의 절반도 안되는 그 커피를 말이다. 다리가 아프면 차가 있는 선배에게 연락하면 됐고, 과제가 어려우면 학점이 높은 선배에게 연락하면 됐다. 생일이면 온갖 종류의 기프티콘이 그녀의 휴대폰 알람을 울려대곤 했으며 술자리나 각종 모임에서 남자들 관심의 중심이 되는 것은 그깟 돈 몇 푼 따위론 절대 환산할 수 없는 우월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심지어 이번엔 일자리까지 구해다 주었다. 아주 편한데다가 돈까지 많이 주고, 시간까지 자신에게 전적으로 맞춰주는 일자리를. 물론 저열한 남자들에게 비위를 맞춰줄 때마다, 그리고 그런 인간들과 몸을 섞는 스스로의 모습을 볼 때마다, 저 건너편 쇼핑센터에서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나오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을 보고 뭐라 생각할지 상상할 때마다,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이 몰려오곤 했지만 서현은 이 일을 관둘 수 없었다. 다른 합법적인 일로는 같은 시간 동안 절대로 지금만큼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미 성매매의 늪에 빠져버린 지 오래였다. 편의점에서 포스기를 두드리거나 식당에서 음식 서빙을 하며, 최저시급을 받고 일주일에 40시간씩 근근이 일해야 지금만큼 돈을 벌 수 있었다. 서현은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돈을 벌기는 싫다고 항상 생각했다. 그 허영심이 그녀가 다리를 벌려 돈을 벌게 만들었다. 언젠가 너도 저 너머의 쇼핑센터로 갈 수 있을 거라 속삭이면서.

  

카페는 조용했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떫었다. 서현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말했다.

“카페가 웬일로 조용하네요. 평소엔 시끌벅적한데.”

“그러게요. 오늘따라 수다 떠는 사람은 없고 공부하거나 과제 하는 사람들뿐이네요.”

맞은편에서 로운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난번에 여기서 팀플 회의 할 땐 엄청 시끄럽더니, 놀러 오니까 또 조용하네요. 괜히 수다 떨기 눈치 보이게.”

“그러네요.”

서현은 너털웃음 치며 맞장구를 치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새 얼음이 녹았는지 떫은맛이 덜해졌다. 서현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맞은편 남자의 눈을 응시했다. 5대5로 단정하게 가른 앞머리와 깨끗한 이마, 짙은 눈썹과 사냥꾼처럼 날카롭게 찢어진 눈, 오뚝한 콧날과 선명한 턱선, 그리고 그 밑으론 니트 맨투맨이 잘 어울리는 넓은 어깨와 다부져 보이는 상체가 눈에 띄었다. 로운은 왜 그렇게 자기를 뚫어져라 쳐다보냐는 듯이 눈웃음을 짓고 있었고 서현은 그가 참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로운이 서현에게 커피가 좋냐고 밥이 좋냐고 물어봤을 때, 서현은 당황하면서도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둘은 한 교양과목의 조별과제 팀원으로 두 달 전에 처음 만난 사이였고, 그 조별과제를 전부 마무리한 3일 전까지만 해도 둘 사이는 그저 같은 교양과목 팀플 조원이었을 뿐, 그 이상 아무런 감정적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서현은 그를 처음 봤을 때부터 미남이란 생각을 하긴 했었다. 하지만 자신 또한 어디서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고, 또 로운 만큼이나 잘생긴 사람과 연애도 몇 번 해봤었기 때문에 단순히 잘생겼다는 이유만으로 그 이상의 감정적 호감을 느끼진 않았다. 그렇게 별 탈 없이 조별과제의 마지막 발표까지 끝낸 후, 조원들과의 단체채팅방에서 그동안 고생했다고 훈훈하게 마무리하고 있는데 로운에게서 메시지가 온 것이었다. 밥이 좋냐고 커피가 좋냐고. 그동안의 숱한 남자경험으로 서현은 그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어서 접근하는 것임을 확신했다. 그래서 그녀는 밥보단 커피가 좋다고 대답했다. 이유는 첫 번째로 어쨌든 로운은 확실히 미남이었고, 그런 남자와 커피 한잔하면서 이야기하는 게 서현입장에서 나쁠 건 없었으므로, 그리고 두 번째로 아무리 잘생긴 남자와 라고 해도 잘 모르는 사람과 식사하는 건 부담스러웠고, 혹여나 그가 생각보다 별로면 빠르게 자리를 일어서기 위해서였다. 어쨌든 그래서 둘은 조별과제가 끝난 3일 후, 주간 강의가 전부 끝난 오후 6시에 학교 근처 카페에서 각자 자몽 에이드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나씩 마시며 이야기 중이었다.

 

  서현과 로운은 서현의 자취방 앞에서 멈춰섰다. 시간은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로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 왔네요.”

“그러게요.”

“그럼, 들어가요. 저도 이제 가 볼게요.”

“네, 로운씨는 집이 어디라고 하셨죠?”

“저는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요. 여기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타고 30분 정도만 가면 돼요.”

“그렇구나. 조심히 가요. 시간 늦었는데.”

“알겠어요. 오늘 재밌었어요. 얼른 들어가요. 추워요.”

“네. 집 도착하시면 카톡 해요.”

“카톡 말고 전화할게요. 괜찮죠?”

서현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죠. 전화해요. 저 그럼 들어갈게요. 잘 가요.”

서현은 빌라 입구로 들어가기 직전 뒤를 돌아봤다. 로운은 여전히 자리에 서서 서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로운이 손을 흔들었다. 서현이 빌라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는 걸 본 후에 출발할 생각인 듯했다. 서현도 로운을 향해 웃으며 손을 한번 흔들곤,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

  자취방으로 들어온 서현은 겨울 앞에서 화장을 지우며 휴대폰을 힐끔힐끔 바라봤다. 그리고 혹시라도 로운의 전화를 못 받는 일이 없도록 벨소리를 제일 크게 설정해 두었다. 서현과 로운은 6시에 카페에 도착해서 4시간 동안이나 수다를 떨었다. 밥도 먹지 않고 만났는데도 둘은 배고픈 줄도 모르고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서현은 오늘 로운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는 집에 혼자 있을 땐 주로 영화를 본다고 했다. 로맨스, 스릴러, 독립 영화 등 장르는 따지지 않고 본다고 했다. 인생영화를 추천해 달라는 서현의 말에 로운은 <복수는 나의 것>과 <친절한 금자씨>라고 대답했다. 이 영화들은 연속성이 있어서 반드시 둘을 전부 다 봐야 한다고, 그래야 완벽한 하나의 작품이라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야기했다. 서현은 아예 처음 듣는 영화 제목이라 그냥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지만 <올드보이>를 만든 감독의 작품이란 말에 조금 더 관심이 생겼다. 서현은 예전에 <올드보이>를 재밌게 본 기억이 있었다. 그녀는 다음에 시간이 나면 이 영화들을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도 둘은 온갖 종류의 이야기를 나눴다. 로운의 음식취향, 서현의 학창시절, 서로의 기억에서 공통되는 부분들, 이를테면 함께 알고 있는 번화가의 맛집이라던가, 또 둘은 음악취향도 비슷했다. 둘 다 어쿠스틱한 분위기의 음악을 좋아했다. 로운은 어쿠스틱 음악 특유의 전자음이 섞이지 않은, 주로 통나무의 울림으로 이루어진 소리의 순수함이 좋다고 했고, 서현은 기타선율이나 피아노 선율의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좋다고 했다. 로운은 나중에 홍대의 자기가 자주 가는 카페에 함께 가보자고 말했다. 어쿠스틱 음악만 틀어주는 카페로 유명한데, 사장이 예전에 밴드를 해서 선곡 센스가 좋다고 했다. 서현은 생글생글 웃으며 알겠다고 했고, 그땐 꼭 밥도 먹자고 말했다.

  서현은 로운과의 대화 내용이 자꾸만 생각났다. 그가 자신의 전공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주로 어떤 스타일의 옷을 입는지, 학창시절과 유년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번화가에서 자동재생되는 커다란 광고화면처럼 계속해서 그 기억들이 상기됐다. 서현이 세수를 마치고 나올 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로운에게서 온 전화였다. 서현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침대에 앉은 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서현씨, 저예요.”

“잘 들어가셨어요?”

“네, 방금 들어왔어요. 근데, 서현씨 저 집 오는 동안 버스에서 무슨 일 일어났는지 아세요?”

“왜요? 뭔데요? 말해 봐요.”

서현은 침대 위에 반쯤 눕듯이 앉았다. 그러고 이불을 가슴팍까지 올린 뒤에 로운의 이야기를 들었다. 둘은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카페에 함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오랫동안 이야기꽃을 피웠다. 통화하는 동안 서현의 볼에선 설레는 불그스름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건 아마 로운의 얼굴에서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서현은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만 싶었다. 정말 역대급으로 못생긴 손님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예리야, 너무 좋다.”

손님은 헉헉대며 벌어진 사현의 양다리를 잡은 채 허리를 흔들어댔다.

“응, 오빠. 나도, 나도 좋아. 너무 좋아.”

서현은 억지로 느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최선을 다해 반응했다. 사실 그녀는 아까부터 로운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로운을 알게 된 이후부터, 못생긴 손님을 받아야 할 때 서현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지금 내 위에 있는 남자가 잘생기고 다정한 로운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때면 아주 조금은, 정말 조금은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예리야. 오빠 쌀 것 같아. 너 얼굴에다 싸도 돼? 괜찮지?”

서현은 이런 더럽게 생긴 남자의 정액을 얼굴에 받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안돼 오빠. 난 그런 서비스 안 해.”

“한 번만. 예리야 한 번만 하게 해줘. 오빠가 앞으로 자주 올 테니까.”

앞으로 자주 올 테니까? 넌 정말 주제를 모르는구나. 솔직히 너는 돈을 조금 못 벌더라도 앞으로 다신 안 와줬으면 좋겠는데. 서현은 손님의 앞으로 ‘자주 올 테니까’라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짜증을 내버렸다.

“아 싫다니까! 난 그런 거 안 한다고.”

서현은 아차 싶었다. 손님에게 이런 식으로 불친절하게 대했다간 나중에 포주에게 주의를 들을 수도 있었다. 손님은 결국 서현의 얼굴에 자신의 정액을 흩뿌리길 포기하고 콘돔을 낀 채 절정을 맞이했다. 서현은 콘돔을 묶어 쓰레기통에 버린 후 손님의 팔짱을 끼고 평소보다 더 살갑고 다정하게 말했다.

“오빠, 나 너무 기분 좋았어. 오늘 고생하셨어요.”

손님은 서현의 말에 대충 대답하고 옷을 입었다.

“바로 나가려고? 조금 쉬었다 가지. 시간 남았는데. 같이 나가자 내가 바래다줄게.”

“아니야. 나 혼자 나갈게. 고생했어. 다음에 또 올게.”

서현이 다시 한 번 팔짱을 끼려 하자 그는 이번엔 몸을 옆으로 쓱 빼버렸다. 아무래도 아까 짜증을 낸 게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손님은 서현과 건성으로 인사를 한 뒤 방을 빠져나갔다. 서현은 불안감이 들었다. 저 못생긴 놈이 포주에게 컴플레인을 걸 것만 같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서현이 옷을 입고 호객행위를 하려고 방을 나가자 포주가 그녀를 불러세웠다. 포주는 험상궂은 인상에 덩치도 컸다. 팔뚝에는 칼자국인지 수술자국인지 어쨌든 커다란 상처자국도 하나 있다. 딱 조직폭력배의 디폴트값 같은 인상이었다. 평소엔 아가씨들에게 친절하지만, 손님에게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무섭게 변하기로 유명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아가씨들은 그를 화나게 하지 않으려고 주의했다. 그리고 그건 물론 서현도 마찬가지였다. 포주는 담배를 피우며 서현에게 다가간 후 위협적으로 물었다.

“너, 방금 번 손님한테 불친절하게 굴었다며? 싸가지없게. 막 짜증 내고 그랬다던데?”

“그건 자꾸 손님이 제가 하지도 않는 서비스를 억지로 해달라고 해서....”

“그래? 무슨 서비스?”

“그게.... 얼굴에다 싸게 해달라고....”

“너 그거 가끔 손님들한테 해주잖아. 뭐가 하지도 않는 서비스야? 그래. 뭐 서비스가 원래 해주는 사람 마음이니까, 오늘은 너 하기 싫었다고 쳐. 그럴 수 있지. 근데 그러면 손님한테 정중하게 거절하면 될 일이지. 짜증은 왜 내는데? 안 그러냐?”

“자꾸 해달라고 고집부려서....”

“그래? 몇 번이나 그랬는데?”

“한 다 여섯 번 그랬던 것 같아요.”

“손님은 자기가 두 번 정도밖에 안 물어봤다는데? 뭐야? 누가 거짓말 하는 거야?”

서현은 말이 없었다. 포주는 담뱃재를 털고 재떨이에 버린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야.”

서현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하, 몸으로 돈 벌어오는 년이라 때릴 수도 없고. 너 내가 면접 때 뭐라 그랬냐? 손님들한테 불친절하게 굴면 바로 잘라버린다고 말했지? 일주일에 고작 두 번 일하면서 이런 컴플레인까지 받아오면 내가 대체 널 써야 할 이유가 뭐냐?”

“죄송합니다.”

“앞으로 잘해라. 내가 너 지켜본다.”

포주는 담배 한 대를 다시 꺼내 입에 물곤 불을 붙이며 돌아섰다. 그가 나지막하게 ‘에이 시발년’이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서현은 한숨을 쉬며 가게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 바로 옆 가게에서 일하는 동생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사람들이 수진이라고 부르는 아이였고, 본명은 몰랐다. 서현은 수진에게 담배를 한 대 빌려서 쪼그려 앉은 후 담배에 불을 붙였다. 호객행위를 해야 했지만 하기가 싫었다. 담배연기가 달빛에 바스러졌다. 서현은 멍하니 쇼핑센터를 바라봤다. 그녀는 이곳에서 일하다 힘들 때면 저 쇼핑센터를 보며 온갖 상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최근엔 그 상상에 한가지 요소가 더 늘어났다. 바로 로운이었다. 로운과 함께 쇼핑하고, 바로 옆에 붙어있는 백화점에서 옷이나 가방 같은 것들도 구경하고, 그러다 배고파지면 푸드코트에서 밥을 먹고, 그런 일상적인 상상들이 지친 서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주었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보다 더 뚜렷했고 차가웠고 날카로웠다. 그런 상상은 항상 잠깐이었고 위로는 찰나였으며 현실은 넘을 수 없는 커다란 벽처럼 어느 순간 턱하고 다가왔다. 그럴 때마다 서현은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애초부터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몰랐겠지만 이미 시작한 이상 그녀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너무 쉽게 돈맛을 봐 버렸고 허례에 찌들어버렸다. 그렇기에 오늘도 서현은 그저 잠깐 커다란 쇼핑센터를 보며 위로나 받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위로도 길게 가지는 못할 것이다.

“예리야. 손님이 너 지명하셨다. 얼른 와서 모셔드려.”

서현은 담뱃재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쪼그려 앉아있다 일어나서 그런지 머리가 핑 돌았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바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의 세 번째 손님이었다.

 

  서현은 잠에서 깨자마자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3시였다. 몸을 일으키자 허리가 욱신거렸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웠던 것까지만 기억났다. 아무래도 기절하듯 잠이 든 모양이다. 휴대폰에선 메시지 하나가 와있었다. 로운의 메시지였다.

‘알바는 끝나셨어요? 지금은 자고 있으려나?ㅎㅎ’

서현은 로운에게 야간편의점 알바를 한다고 둘러댔다. 썸남에게 영등포 집창촌에서 몸을 팔아 돈을 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래서 로운은 서현이 일을 하는 날마다 야간편의점엔 취객들이 많이 온다고 항상 조심하라고 걱정하는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일이 끝났을 시간엔 이런 안부문자도 종종 보냈다. 서현은 그가 참 좋은 남자라고 생각했다. 잘생기고, 다정하고, 아직 그녀와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참 많은 신경을 써주기도 했다. 그녀는 로운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처음보다 훨씬 더 커졌음을 최근에 많이 느꼈다.

‘네, 방금 일어났어요. 평소보다 조금 오래 서 있었더니 종아리가 배기네요.ㅠㅠ’

서현이 문자 메시지에 답장을 보내자 곧바로 로운에게서 새로운 문자가 날아왔다.

‘에구, 고생하셨네요.ㅠㅠ'

이어서 또 하나의 문자가 서현의 휴대폰에 도착했다.

‘서현씨 내일 강의 일찍 마치는 날이죠?’

‘네, 맞아요. 내일은 오전 강의밖에 없어서 12시면 다 끝나요.’

‘그럼 혹시 내일 오후에 저랑 노실래요?’

‘ㅋㅋ 네, 좋아요. 로운씨랑 놀게요. 뭐 하고 놀건대요?’

‘음, 거기 갈까요? 저희 처음 같이 카페 갔던 날, 제가 말한 홍대 카페 있잖아요. 어쿠스틱 음악만 틀어주는 카페. 어때요?’

‘좋은데요. 내일 가요, 우리.’

‘네. 그럼 내일 12시 15분에 학교 정문에서 볼래요?’

‘그렇게 해요.’

‘그래요. 그럼 오늘 푹 쉬시고, 내일 봐요.’

‘네.ㅎㅎ’

‘아, 그리고 내일 따뜻하게 입고 와요. 꼭이요!’

서현은 침대에 다시 누워 설렘을 만끽했다. 휴대폰을 눈앞에 들이밀고 로운과의 대화 내용을 한 번 더 찬찬히 살펴봤다. 그가 마지막 문자를 보낸 직후 곧바로 또 보낸 이모티콘이 눈에 들어왔다. 두 발로 서 있는 점박이 강아지가 손을 흔들며 ‘내일 봐~’ 하는 모양이었는데 그게 왜 그렇게 사랑스러워 보이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서현의 들뜬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무거운 양심의 가책이 훅 끼쳐왔기 때문이다. 서현은 로운 같은 완벽한 남자를 자기가 만나도 되는 걸까, 라는 의문이 갑자기 들었다. 물론 자신은 예쁘고, 몸매도 좋고, 자기관리도 완벽하다. 심지어 돈도 많다. 충분히 자격이 있다. 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어쨌든 서현은 창녀였고 다른 이들이 창녀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당장 자기 자신도 스스로가 그렇게 혐오스러울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녀는 몸을 팔아 돈을 벌고, 그 사실을 숨기고 속이며 로운과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었다. 로운 또한 자신에게 확실한 호감 표현을 보내고 있기에 더욱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서현은 그날 저녁 처음 업소일을 그만둬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우울한 밤이었다.

  서현은 빠른 걸음으로 학교 정문을 향했다. 본래 12시에 끝나는 강의였지만 막바지에 학생 한 명이 질문을 해버려서 마무리가 늦춰졌다. 그 탓에 약속시간에 5분 정도 늦어버렸다. 정문 앞엔 검정색 슬랙스 바지와 하얀색 니트상의에 감색 무스탕을 입은 멋진 남자가 서 있었다. 로운이었다. 로운은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는 서현을 향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왔어요? 천천히 와요. 넘어지겠어요.”

“미안해요. 제가 조금 늦었죠?”

“아니예요. 저도 방금 왔어요. 그럼 바로 갈까요? 지하철 타고 가는 게 낫겠죠?”

“네. 그렇게 해요.”

로운과 서현은 지하철역을 향해 나란히 서서 걸었다. 걸어가는 중간중간 둘의 팔꿈치와 손등이 슬쩍슬쩍 닿았다. 그럴 때마다 서현의 마음속에선 전기가 올라오는 듯했다. 둘의 간격은 처음보다 친밀해진 사이만큼이나 가까워져 있었다. 둘의 손등이 세 번 정도 닿았을 때, 로운은 서현의 손을 꽉 잡아버렸다. 그 바람에 깜짝 놀란 서현은 고개를 돌려 로운을 올려다봤다. 그는 서현을 내려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 뒤로 햇빛이 마치 후광처럼 비쳐 로운의 하얀 얼굴이 더 빛나 보였다. 서현은 이번엔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의 볼이 얼마나 빨개져 있을지, 보지도 않고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로운은 손을 잡은 채로 몇 걸음 걷더니 이번엔 깍지를 꼈다. 서현은 그가 참 치사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설레게 하다니....

“서현씨 손이 되게 곱네요. 완전 섬섬옥수네.”

“그러는 로운 씨는 손이 왜 이렇게 거칠어요. 핸드크림 같은 거라도 좀 발라요.”

“제가 사실 방학 때마다 공사장에서 일해서 그래요. 학비는 부모님이 대주시는데 용돈은 안 주시거든요. 생활비는 벌어야 해서.”

“그렇구나....”

서현은 로운에게 핸드크림을 하나 선물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둘은 손깍지를 낀 채 역 입구까지 걸었다. 로운의 거친 손바닥 감촉이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서현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로운이라면 자신이 집창촌에서 일하는 것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라는 조금은 이기적인 생각이.

  서현은 바로 홍대로 갈 줄 알았지만 로운은 그녀를 혜화역의 대학로로 이끌었다. 홍대 카페에는 밤에 가고 싶다고, 그리고 서현과 연극을 보고 싶어서 예매해 둔 게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서현은 아무렴 좋았다. 로운과 하는 데이트 자체로 뭘 하든 즐거우리라 생각했다. 둘은 혜화역에 도착한 후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컬쳐 씨어터’ 라는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연극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10분 정도 극장 앞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주변에 로운과 서현처럼 연극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커플들로 보였다. 서현은 자기네들도 혹시 다른 사람들 눈에 커플로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들떴다.

“근데 저희가 보는 연극 무슨 연극이에요?”

서현은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아, <라이어>라는 연극이에요.”

“<라이어>? 미스터리예요?”

“아니요. 코미디예요.”

“아, 그렇구나. 로운씨는 연극 자주 보러 다니시나 봐요? 전 사실 처음이거든요.”

“네, 전 연극 보는 거 되게 좋아해요. 그래서 항상 혼자 보러 왔었는데 이번엔 서현씨랑 같이 보고 싶어서, 미리 예매했어요. 아마 서현씨도 재밌을 거예요.”

“그래요? 기대할게요.”

곧이어 연극 시간이 되었고 둘은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는 맨 앞줄 가운데였다. 연극에 문외한인 서현도 이 위치가 가장 좋은 자리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와, 여기 제일 좋은 자리 아니에요?”

“네, 신경 좀 썼어요.”

“오, 로운씨 센스 좋은데요?”

연극은 서현의 생각보다 훨씬 재밌었다. 두집살림을 하는 남자가 그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각 집의 여자들에게 거짓말을 하다 궁지에 점점 몰리는 내용인데, 재치있는 대사와 유머러스한 상황,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까지 합쳐져 연극이 생전 처음인 서현은 공연시간 100분 내내 눈물까지 흘러가며 웃어댔다. 연극이 끝나고 커튼콜로 배우들이 마지막 인사를 할 때, 서현은 너무 재밌었다고 눈물을 닦으며 로운에게 말했다. 로운은 재밌어서 다행이라고 혹시 원한다면 배우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가자고 말했다.

아까 입장권을 교환해주던 극장 직원에게 로운의 휴대폰을 건네주고 둘은 배우들과 나란히 섰다. 직원은 휴대폰으로 구도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약간은 짓궂게 서현과 로운에게 말했다.

“두 분, 커플이신데 너무 어색해 보이신다. 조금 자연스럽게 포즈 한 번 취해보시겠어요?”

서현은 순간 멋쩍어서 우린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변명하려 했지만 로운은 그런 말을 할 새도 없이 ‘네’라고 대답하며 서현의 팔짱을 꼈다.

“네, 좋아요. 자, 찍을게요.”

사진을 찍은 후, 로운은 곧바로 팔짱을 풀었다. 서현은 사진에 자기 얼굴이 어떻게 나왔을지 보는 게 무서웠다. 당황스러우면서도 설레는 그 기분 때문에 표정이 일그러졌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로운이 휴대폰을 돌려받고 사진을 확인하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서현씨. 표정이 왜 이렇게 어색해요?”

서현은 빨개진 얼굴로 대답했다.

“몰라요. 갑자기 팔짱을 끼니까....”

“저 이 사진 너무 마음에 드는데요? 평생 가지고 있어야겠다. 두고두고 모셔놓고 힘들 때마다 봐야지.”

“아, 하지 마요. 지워요. 빨리.”

“에이, 이걸 왜 지워요? 기념사진인데. 서현씨한테도 보내드릴게요. 프로필사진으로 써요.”

“됐거든요.”

서현은 로운의 팔뚝을 주먹으로 치며 말했다. 로운은 킥킥대며 그녀의 투정을 받았다. 둘은 그렇게 오래된 연인처럼 투닥투닥 거리며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로운이 말한 카페는 서현이 예상했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서현은 빈티지하게 꾸민 작고 아담하지만 운치 있는 카페의 이미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낡아서 삐걱대는 테이블과 의자들에, 싸고 투박한 커피맛이 특징적이면서 선곡센스가 좋지만 괴팍한 성격의 사장이 운영하는, 그리고 군데군데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세상을 비관하면서 커피를 마시는, 그런 카페를 상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카페의 모습은 완전 딴판이었다. 홍대 골목에 위치한 상가의 가장 꼭대기 층에 자리 잡은 이 카페는, 의외로 루프탑 카페였다. 공간의 3분의 2 정도는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드는 공간을 포함한 실내 자리였고, 나머지 3분의 1은 홍대 거리가 한눈에 보이는 야외 테라스였다. 계절에 비해 그다지 춥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초겨울은 초겨울인지라, 테라스엔 손님이 거의 없었다. 모든 손님이 실내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뭐야, 루프탑 카페였네요.”

“네. 저희는 저기 밖에 나가서 먹을 거예요.”

“왜요? 추울 텐데.”

“서현씨한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래요, 그럼. 이것 때문에 따뜻하게 입고 오라고 했었구나?”

로운은 생긋 눈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운이 음료를 주문하는 동안 서현은 카페 인테리어를 구경하며 카페 사장이 틀어둔 노래를 감상했다. 아이유의 <금요일에 만나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곳곳에 옛날 엘피판과 해외 어쿠스틱 팝 앨범이 전시되듯 걸려있는 걸 보며 사장님이 음악을 정말 좋아하시는구나 라고 서현은 생각했다. 개중엔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도 몇 있었다. 음악이 두 번 정도 더 바뀐 후에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

“따라와요.”

로운은 음료가 올라간 쟁반을 들곤, 자기가 항상 앉는 자리가 있다며 서현을 이끌었다. 두 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흔들의자와 그 앞에 테이블이 있는 자리였는데, 홍대거리가 한눈에 보이는 위치였다. 로운은 핫초코를 건네주며 서현 옆에 앉았다. 서현이 핫초코를 한 모금 마시자, 새로운 음악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어? 이 노래!”

“왜요? 좋아하는 노래예요?”

“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예요!”

카페 스피커에선 제임스 모리슨의 <맨 인더 미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이클 잭슨이 부른 동명의 노래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곡인데 서현이 고등학생일 때 줄창 듣던 노래였다.

“암 고너 메이크 어 체인지.... 잇츠 고너 필 리얼 굳....”

서현은 핫초코를 홀짝이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거너 메이크 어 디퍼런스.... 거너 메이킷 라잇”

로운도 따뜻한 커피를 손에 들곤 서현이 흥얼거린 뒷부분을 따라 불렀다. 약간 두꺼우면서도 미성인 그의 목소리가 서현은 감미롭게 느껴졌다.

“로운씨도 이 노래 아시나 봐요?”

“알긴 알죠. 원곡이 워낙 유명하니까.”

로운이 말을 맺자마자 둘은 서로의 눈을 마주한 채 배시시 웃었다. 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 덕분인지 서현은 초겨울의 야외 테라스인데도 별로 춥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따뜻했다. 마음속에서 몽글몽글 피어나는 어떤 감정 때문에 몸에 이상기후가 생긴 것만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로운의 얼굴을 쳐다봤다. 로운은 시선을 의식하는 건지, 하지 않는 건지 자꾸 어딘가만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서현도 자연스레 로운이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고개를 다시 돌렸다. 그곳에는 저물어가는 석양이 있었다. 석륫빛으로 물든 태양이 이름 모를 어느 산 뒤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마치 날개가 불에 타 떨어지는 새 한 마리처럼, 파멸적인 아름다움이었다. 아름답지만 고고하진 못한, 아름답기 위해 점점 추락하는, 창녀인 서현과도 같은 풍경이었다.

“저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침묵 속에서 로운이 입을 열었다. 서현은 넋을 놓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풍경이에요. 온갖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골목골목에 커다란 상가가 들어차 있는 번화가에서 석양이 지는 모습, 예쁘지 않아요? 서현씨를 처음 본 날부터 왜인지 저 풍경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꼭 같이 보러 오고 싶었어요.”

태양이 가라앉을수록, 거리의 그림자는 점점 더 커졌다. SNS에서 유명한 카페와 그 그림자, 젊은 사람들이 자주 가는 술집과 피씨방이 주로 입점해있는 상가건물과 그 그림자, 팔짱을 끼고 걷는 커플과 그 그림자, 길에서 통기타 하나를 매고 버스킹 하고 있는 무명 가수와 그 그림자, 그리고, 나란히 앉아 그 그림자들을 보는 로운, 서현과 그 그림자. 그림자들은 점점 더 커졌고, 태양이 완벽히 몸을 숨기자 함께 사라졌다. 서현은 주변이 어둑어둑해지고 나서야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로운씨.”

로운은 말없이 서현의 얼굴을 보더니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에 묻은 먼지조각 같은 걸 떼내었다. 아까 바람이 불었을 때 날아와 붙은 모양이었다. 서현은 먼지조각을 바닥에 버리곤 눈웃음 짓는 로운을 보고 생각했다. 이 남자가 너무 좋다고. 그러니 업소일은 그만두어야겠다고. 이번 주 금요일 출근해서 포주에게 일을 그만둔다 말해야겠다고.

 

  ‘일요일 밤에 잠깐 얼굴만 볼 수 있어요? 할 말이 있어서요. 제가 서현씨 집 앞으로 갈게요.’

손님 한 명을 상대해주고 휴대폰을 확인하니 로운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서현은 ‘네. 너무 좋은데요. ㅎㅎ’ 라고 답장을 한 후 구멍 뚫린 풍선처럼 한숨을 쉬었다. 직감상 로운이 일요일에 만나자고 하는 건 고백하기 위함인 듯했다. 너무나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포주에게 내일까지만 일하겠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순순히 자신을 내보내 줄 거라고 확신할 수가 없었다. 물론 서현이 포주에게 진 빚 따위는 없었다. 애초에 제 발로 걸어들어온 일자리였고, 명품백이나 옷 따위를 받은 것도 없었기에 명목상 그녀를 붙잡아둘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포주도 어쨌든 깡패였기에 무력으로 묶어두려면 어떻게든 묶을 수 있을 터였다. 내 신상을 캐서 주변에 자신이 창녀질로 돈을 번다는 사실을 알린다고 협박을 한다거나 하는, 서현은 온갖 최악의 상황들을 상상하며 포주에게 말할 순간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예리야, 손님 가셨으면 호객하러 가야지.”

포주는 험상궂은 얼굴을 방으로 들이밀며 서현의 호객행위를 재촉했다. 서현은 ‘예’라고 대답한 후 호객용 치마를 주섬주섬 입고 밖으로 나갔다.

바깥은 추웠다. 로운을 만났던 4일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공기가 차가웠다. 그래서 그런지 행인들도 몇 없었고 아가씨들도 별로 없었다. 서현은 찬찬히 거리를 둘러보며 호객할 만한 대상을 물색했다. 단순한 행인이 아니라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이곳을 돌아다니는거란 분위기를 내뿜는 사람, 그중에서 조금이라도 유순해 보이고 괴팍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 잘생기면 더 좋겠지만 그런 것보단 조금 못생기더라도 착하고 친절한 사람이 상대하기는 더 편했다. 곧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남자가 나타났고 서현은 바로 그에게 다가갔다.

“오빠. 좀 쉬었다 가실래요?”

서현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앞머리가 많이 없어 이마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호리호리한 남자였다. 그는 서현의 얼굴과 몸을 보더니 걸음을 멈추고 몸을 완전히 그녀의 정면으로 돌려세웠다.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서현은 남자에게 팔짱을 끼곤 가슴을 애교스럽게 비볐다. 그리고 간절히 애원하듯, 난 당신을 절실하게 원한다는 듯, 말했다.

“그러지 말고. 좀 놀다 가요. 오빠, 제가 잘해줄게요.”

“그럴까....”
짐짓 고민하는 척하는 남자에게 서현은 애교를 부리며 팔을 잡아당겼다. 그렇게 자연스레 업소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그 순간 서현은 누군가를 봤다. 평소보다 두 배 정도 커진 눈동자로 자신을 보고 있는 로운을. 쇼핑센터와 집창촌 사이에 있는, 하지만 집창촌보단 쇼핑센터의 영역에 훨씬 더 가까운 그 어딘가에서, 그는 서현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방금까진 긴가민가했지만, 뒤로 도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서 그제야 확실히 알아본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커다란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이었다. 로운의 양손엔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한쪽엔 여성용 고급 액세서리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의 쇼핑백이었고, 나머지 한 손에 들려있는 건 방금 사서 아직 포장도 안 뜯은 편지지 세트였다. 서현은 로운의 뒤편으로 보이는 커다란 쇼핑센터 건물을 봤다. 하나, 둘 건물 속 조명들이 꺼지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이 쇼핑센터의 마감 시간임을 깨달았다. 왜 하필, 왜 하필 지금이냐고, 여기냐고, 오늘 하루 동안 다른 시간도 있었을 텐데, 서울에 백화점과 완구점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 서현은 지금의 시간과 장소와 상황을 원망하며 호객한 남자의 팔뚝을 당기며 빠르게 걸었다. 최대한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노력하면서.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서 당혹감은 쉽게 가려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남자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뭐야, 갑자기 아가씨 표정이 바뀌었는데? 뭐 아는 사람이라도 여기서 봤어?”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하곤 혼자 낄낄대는 그의 면상에 서현은 주먹을 날려주고 싶었다. 남자를 끌고 업소에 들어가기 전 뒤를 돌아 로운이 있던 곳을 바라봤다. 로운은 이미 자리를 뜨고 없었다. 그곳엔 휑한 바람만이 세차게 불 뿐이었다.

 

  바람은 한 해가 다 지나가는 게 싫다는 듯이 날카롭게 서현의 몸을 쑤셨다. 서현은 몸을 벌벌 떨며 종종걸음으로 바람을 피해 업소 옆 골목 사이로 들어갔다. 호객을 하려고 나온 것이지만 도저히 호객할만한 날씨가 아니었다. 행인들도 거의 없었다. 서현이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 하자, 옆 업소에서 일하는 수진이 옆에 와서 쪼그려 앉았다.

“언니, 저 불 좀 빌려주실래요?”

서현은 연기를 뱉으며 라이터를 수진에게 넘겨줬다. 수진은 서현이 준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 길게 한 모금 빨더니 나지막이 연기를 뱉었다. 안개 같은 연기가 수진의 입술 사이에서 스멀스멀 빠져나왔다.

“언니는 오늘 손님 몇 명이나 받으셨어요?”

“3명.”

“와..... 좋겠네요. 언니는, 지명 잘 받아서.”

그게 좋은 건가.... 서현은 담배를 입에 꼬나문 채 대답하지 않았다.

“조만간 여기 싹 다 밀어버린다는데, 이야기 들었어요? 아파트 단지 세운다던데.”

그 이야기라면 서현도 알고 있는 소식이었다. 집창촌이 있는 게 아무래도 도시 미관에 좋지 않으니 이번에 이 지역 일대를 재개발해버린다는 소식. 이미 시청에서 예산편성과 위탁업체 선정까지 끝냈기에 조만간 착수할 거라는 소식.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여기서 일 못할 텐데. 아, 언니는 어차피 빚 없다고 했으니까 그냥 관둘 수도 있겠구나....”

서현은 이 일을 관두지 않는다. 일터만 바꾸기로 했다. 이번 달까지만 이 업소에서 일하고 다음 달부턴 오피스텔에서 일하기로 했다. ‘오피녀’라고 이쪽 시장에 새롭게 출몰한 시스템이라고 한다. 2주 전에 그쪽 포주에게 스카우트 받을 때, 그리고 설명을 들을 때, 그녀는 바로 마음을 정했었다. 호객행위도 따로 하지 않아도 됐고, 지명도 어느 정도 골라 받을 수 있었으며, 시설도 아무래도 이곳보단 오피스텔이 훨씬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하는 도중 운 나쁘게 아는 사람을 만날 일이 없다는 게 가장 좋았다. 한 달 전 로운을 만났을 때처럼.

  그 날 이후 한 달이 지났지만 로운에게선 한 차례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만나기로 했던 일요일 밤에도 당연히 만나지 못했다. 같이 듣던 강의도 로운이 한 달째 결석 중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서현이 놀랐던 건, 스스로 너무나도 침착하고 차분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였단 점이다. 슬픔에 빠져 우울하게 하루를 멍하니 보내거나, 자제력을 잃고 로운에게 연락을 취하거나 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냥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에 가고, 강의를 듣고, 일을 할 뿐이었다. 서현은 거울 너머로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보내는 자신을 보면 생각했다. 아마도 너는 벌써 알고 있었구나. 로운과 너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너는 그런 남자를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사랑해서는 안된다는 걸. 로운이 빛나는 태양 같은 사람이라면 너는 하수구의 그림자 같은 사람이란 걸. 세상엔 절대 섞일 수 없고, 또 섞여선 안 되는 조합이 있다는 걸. 그렇게 한 달은 아무런 사건도, 설렘도 없이 처연하게 지나갔다.

서현은 여전히 아무런 말없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수진은 옆에서 뭐라뭐라 나불대고 있었다. 슬슬 귀찮아지려 하는 찰나에 수진에게 지명이 들어왔다. 수진은 급하게 담배를 끄고 자신의 업소로 들어갔고, 서현은 이제 좀 편하게 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쇼핑센터는 평소와 다름없이 집창촌 맞은 편에 우뚝 서 있었다. 한 달 전 그 사건이 있었던 후 서현에겐 한 가지 변화가 더 생겼다. 더 이상 저 쇼핑센터로 도망치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저 거대한 상가건물을 봐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왜인지는 본인도 알 수 없었다. 서현은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리며 생각했다. 내가 일하는 이곳은 저 쇼핑센터의 그림자가 아닐까 하는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저곳의 불이 켜지면 이곳의 불이 꺼진다. 이곳의 불이 켜지면 저곳의 불이 꺼진다. 한쪽이 빛나면 한쪽은 어둡다. 둘은 함께 존재할 수는 있을지언정 절대 같을 수는 없다. 완벽한 평행의 관계다. 오늘따라 집창촌이 유독 밝았고 쇼핑센터는 유독 어두웠다. 몇 시간 후면 아마도, 아니 확실하게, 그 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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