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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사과를 먹어봤어

2022.12.13 18:0612.13

담배 연기가 어둑해진 사위로 스며들었다. 나는 끄트머리까지 담배를 피운 다음 전봇대에 문대 껐다. 추위가 맹위를 부렸다. 이따금 살갗을 할퀴는 바람에 몸을 옹송그렸다.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공기의 흐름을 가늠하듯 숨을 마시고 내쉬었다. 서 노인의 집은 마당에 담이나 울타리가 없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듯한 좁은 길 건너 바로 차들이 내달리는 도로였다. 나는 그 좁은 길에 서서 이따금 차들이 지나가기를 기대하듯 가로등 불빛 너머 어둠 속을 내다보았다. 서 노인은 나의 외할머니였다. 고개 하나 너머엔 사과밭을 운영하는 그녀의 큰 아들이 살고 있었다. 대학교에 휴학계를 내자마자 무주 산골에 있는 서 노인의 집으로 내려왔다. 우울증 치료와 글쓰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먼저 권한 것은 어머니였고, 서 노인 역시 흔쾌히 수락했다. 나는 잠시 고민했으나 이내 짐을 싸 경기도 일산에서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무주로 오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기차와 버스도 거의 없거니와, 있어도 배차간격이 길어 끝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서 노인의 집은 황량했다. 이웃해 있는 집들도 얼마 없었고, 주변의 성긴 나무들은 배회하는 길고양이들에 그늘을 드리울 뿐이었다. 사람의 그림자를 지을 일이 전무했다.

나는 담배 한 개비를 더 피우려다 말았다. 연기가 짙으면 서 노인이 기침을 하며 문을 열고 뭐라 큰 소리를 내기 때문이었다. 기척이 들리는 듯했다. 플란넬 셔츠가 스치는 소리. 나는 문득 주위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새벽 두 시를 넘었을 거였다. 악몽 때문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끝없이 실패하고 좌절했다. 그것도 글쓰기를 통해서. 그 기저엔 표절에 대한 무의식적인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다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눈을 가늘게 떴다. 사람 한 명이 언덕에서 좁은 길을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언뜻 보니 남자였다. 도로 건너편이고 어두운 탓에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마른 체형에 긴 다리로 허정허정 걷고 있었다. 나는 돌연 그를 소리쳐 부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모르는 사람인 게 틀림없는데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외로워서일까. 이 밤의 침묵을 함께 나눠 피우고 싶어서일까. 그대로 남자는 언덕 아래로 멀어져 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남자가 마침내 소실점으로 사라진 뒤에서야 몸을 돌려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 안은 고요했다. 서 노인은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코 고는 소리가 허공을 휘돌고, 이따금 시계의 분침이 돌아가며 내는 소리가 정적에 실금을 그었다. 부엌, 방 한 칸, 화장실 이렇게 일자형으로 이어진 서 노인의 집은 조막만하고 소박했다. 그 흔한 에어컨도 없었는데, 그녀는 큰 며느리가 제 아들 주려고 떼어갔다며 간혹 성화를 내곤 했다. 온풍기 한 대가 고작이었고, 그마저도 서 노인의 몫이었다. 나는 마룻바닥에 어머니가 나와 같이 딸려 보낸 매트리스 위에서 하릴 없이 이불을 덮고 있는 게 일이었다. 서 노인이 나가서 산책이나 해라! 눈치를 주고 타박하기 일쑤였지만. 그녀는 나의 병이 뭔지 잘 몰랐다. 우울증이란 그저 나약한 인간들이 걸리는, 전염병 같은 것이라며 하찮아하는 한편 두려워했다. 젊었을 적 책을 좋아했다지만 수십 년 전 일이니 지금은 글쓰기에 대해 아는 것도 없어 내가 노트북을 펼치면 게임을 하는 줄 알고 혼을 냈다. 할머니, 내 나이가 스물다섯이에요. 그녀 앞에서 나이 자랑은 할 게 못되지만 어쨌거나 나름 컸다는 티를 내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서 노인은 영원히 나를 머리도 가누지 못하던 갓난아기로 여겼으니까.

다시 자리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카카오톡 숨김친구 관리로 들어가 전 애인의 이름을 길게 눌렀다 뗀다. 차단하기 버튼이 보인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엄지로 꾹 누른다. 확인버튼을 눌러 마무리한다. 이제 그는 없다. 다시는 내 세상에, 나의 삶에 나타나지 않을 거다.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당긴다. 춥다. 그 추위엔 전 애인이 남긴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아 시린 탓도 있을 것이다. 다시 몇 겹의 공간이 겹치고, 꿈에 빠져든다. 악몽이 아니길.

 

사과밭은 넓었다. 짐작키 어려울 정도로 넓은 밭에 사과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있었다. 모두 탐스런 붉은 사과를 단 채였다. 알바생으로 고용된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는 중이었다. 밭의 주인인 큰삼촌은 그들과 함께 사과를 따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더러 보였는데, 그들은 저희들끼리 모여 한 데서 일을 했다. 나는 큰 삼촌에게 왔다는 표시로 그의 차 경적을 가볍게 두드렸다. 몇몇 사람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큰 삼촌일 제일 마지막으로 돌아보았다. 그는 손을 들며 가까이 오라고 손짓해 보였다. 나는 사과밭에 들어가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벌레가 있을까 두려웠다. 사과나무들 사이로 천천히 발을 들이밀었다. 지뢰를 밟을까 피하는 것처럼 조심스레 발을 뗐다. 발끝만 쳐다본 탓에 앞에 누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아, 하고 부딪치며 뒤로 물러선 건 그 순간이었다. 잔근육으로 몸이 다부진 마른 남자가 앞에 서있었다. 진한 눈썹에 또렷한 이목구비, 오리주둥이 같은 입이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아, 죄송해요. 이 사과는 썩어서, 따야하는 거거든요.”

남자가 입을 열었다. 어딘가 낯이 익었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사람 마음을 가라앉혔다. 나는 가까스로 몸의 중심을 잡고 그를 마주보았다. 잘생겼다고, 생각한 순간 삼촌이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그는 갑작스레 남자를 내게 소개시켜주었다. 그의 이름은 남석민이었다. 삼촌은 묻지 않은 말까지 덧붙였다. 그도 나처럼 서울 사람인데(정확히 말하면 난 수도권이었지만) 군대에 가기 전 돈을 조금 모아둘 겸 사과밭 알바를 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나는 처음 마주쳤을 때의 기시감을 이해했다. 오늘 새벽, 가로등 밑을 지나 언덕 아래로 내려가던 남자였다. 확인하진 않았지만 그게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삼촌은 석민의 나이가 이제 갓 스물이라며, 나와 나이차가 세 살밖에 안 난다고 일러주었다(틀렸다. 나는 올해 스물다섯이니 최소한 만 나이로 따져도 네 살 차이가 났다). 나는 나와 키가 엇비슷한 그를 앞에 둔 채 머뭇거리며 목례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남석민입니다.”

말투가 스무 살 같지 않았다. 삼촌은 이내 나를 데리고 사과밭을 벗어났다. 석민이 있던 곳에서 멀어질수록 나는 그에게 끌리는 걸 느꼈다. 우연인 듯 고개를 뒤로 돌리면 석민이 전완근이 불거진 팔뚝을 드러낸 채 사과를 따는 데 열중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기를 몇 번, 삼촌이 다시 말을 걸었다.

“그래, 할머니하곤 지낼 만하고?”

“코 고는 소리만 빼면요, 괜찮아요.”

“아직 정정하셔서 그래.”

그가 허허 웃었다.

“그럼 다행이지만요. 오락가락 하시는 것 빼곤. 절 결혼한 사촌형으로 보신다니까요.”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굴었다. 삼촌은 내게 사과밭 알바를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의사선생님이 말했던 것처럼 꾸준한 운동과 산책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느냐면서. 나는 그것이 말 그대로 운동과 산책이지, 이 같은 중노동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알바를 하면 돈도 벌고 운동도 하고 일석이조 아니냐고 반문했다. 나는 멈칫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사람들’이었다. 나는 저들과 같이 얘기를 하고 몸을 부대끼며 사과를 딸 자신이 없었다. 언제고 그들이 돌변해 나에게 해를 가할지 몰랐다. 그 ‘가능성’이란 게 나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그것은 석민이란 저 남자도 예외는 아니리라. 나는 삼촌을 보는 척 하며 그의 어깨 너머 석민을 일별했다. 그런 사이에 그는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버렸다. 나는 아쉬움을 느끼는 동시에 한심하다는 자책을 하며 돌아섰다.

“이거 가져가야지. 할머니 드시게. 너도 먹고. 껍질 채 먹어라, 그래야 영양분이 풍부해.”

내가 온 이유를 잊고 석민에만 열중한 탓에 사과를 가지고 가는 것도 잊었다. 막 딴 샛노랗고 붉은 사과가 투명하고 매끈했다. 나는 사과상자를 들어올렸다. 꽤 무거웠다. 물렁살이 전부인 내 몸이 서 노인의 집까지 버틸 수 있을 지 의문이었다. 그렇게 종내 비틀거리며 걷고 있는 도중이었다. 인기척이 나 상자를 든 채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 그 남자였다. 남석민. 그는 나를 지나치듯 가까이 다가왔다.

“도와드릴까요? 무거워보여서.”

민소매 셔츠를 걸친 그가 빙글 웃었다. 난데없는 웃음에 나는 당황했다. 젊은 여자도 아닌 남자한테, 왜 들어주겠다고 하는 거지. 내 안의 무언가가 고개를 들었으나 나는 회피하기 바빴다. 괜찮다고, 들 수 있다고 대답했다. 석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 속도를 늦췄다. 나는 다시 두 발을 재촉했다. 그는 약간의 거리를 둔 채 계속 따라왔다. 나는 그에게 신경이 쓰였다. 그저 길의 방향이 같겠거니, 여겼다. 걸음에 걸음이 겹칠수록, 그림자의 기울기가 가팔라질수록 석민의 발걸음 소리가 짙어졌다. 그러나 참고 서 노인의 집까지 걸어갔다. 동시에 그의 발소리도 멎었다. 나는 그제야 뒤를 돌아보고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사장님이 이거 할머님께 전해드리라고 하셔서요.”

그는 흰 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삼촌이 할머니의 몫으로 챙긴 용돈이었다. 서 노인은 이따금 그 돈으로 장을 보러가거나, 장물트럭에서 뭘 사거나, 내게 꽤 많은 용돈을 주었다. 고맙다고 말하며 봉투를 받아드는데 남자가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해야할지, 말지 고민하는 찰나에 김현우, 이라고 답했다.

“형이시죠? 전 이제 스물이거든요.”

“그러네요. 난 스물다섯이요.”

마주 웃어보았지만 긴장이 되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 지 몰랐다.

“삼촌이 얘기 많이 했어요. 자기한테 작가인 조카가 있다면서요.”

“저 작가 아니에요. 그냥, 대학생이지.”

나는 홧홧하게 달아오른 얼굴로 대꾸했다.

“그렇구나. 어쨌든, 다음에 봬요.”

그는 마치 약속이라도 잡듯, 내 대답을 요구하는 듯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이내 그러마고 대꾸했다. 그는 다시 사과밭으로 돌아갔다. 어쩌면 숙소로.

 

삼촌은 간간이 저녁에 서 노인의 집에 들렀다. 각종 반찬과 먹을거리를 싸가지고 나타났는데, 그가 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고요한 적막으로 팽배한 집안의 무게를 그가 조금이나마 덜어주었으므로. 서 노인은 온종일 텔레비전을 보거나, 바깥을 돌아다니거나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놀아주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냈다. 오늘 저녁은 숙모가 잰 LA갈비였다. 삼촌이 고기를 굽는 동안 나는 각종 밑반찬을 꺼내놓고 수저를 정리했다. 이곳의 생활이 조금은 지겨워진 때였다. 둥근 탁자에 서 노인이 앉고, 나, 그리고 삼촌이 뒤이어 앉았다. 얘기가 오가긴 했지만 수저를 움직이는 소리가 대부분이었다. 아니면 음식물을 조용히 우물거리는 소리이거나. 삼촌이 배를 두드리며 틀어놓은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가 하는 말이, 아침에 본 남자애 기억나느냐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남석민이라는 남자애를 말하는 거냐고 되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기억한다고 말하니 걔가 시를 쓴다고, 삼촌은 말을 이었다.

“시를 쓴다고요?”

“그래, 시를 써. 그래서 걔한테 네 얘기 많이 했다. 나한테 작가인 조카애 있다고.”

“왜 하셨어요, 진짜 작가도 아닌데.”

“그래도 그 사건 아니었으면 네가 당선인 거잖냐. 작가나 다름없지, 뭐.”

나는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내려놓았다. 삼촌이 말하는 그 사건이란, 한 신춘문예에서 대학교 합평 때 냈던 내 소설이 표절당한 것을 이르는 거였다. 합평을 같이 했던 친구가 당선작을 보고 내게 연락했고, 나는 응모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표절 사건 가해자는 당선 무효와 학교 내 징계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 하고 싶어 했다. 나는 법적인 대응도 고려했으나 주변인들의 만류에(시간이 오래 걸리고, 길게 끌어봤자 좋을 게 없을 거라는 등의 이유로) 추가로 자필 사과문을 받는 것에서 관두었다. 내 표정이 어두운 걸 의식했는지 삼촌은 큼큼 헛기침을 하며 사과 맛은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자연스레 서 노인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엄지를 들어보였다.

“넌 안 먹었냐?”

“전 사과 싫어하잖아요.”

“도대체 왜 싫어하는 거냐?”

“그냥, 맛이 없어요.”

사과를 싫어하는 이유는 딱히 없었다. 나는 가리는 것이 많았다. 사과도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약간의 아토피가 있어 폴리에스테롤 소재의 옷은 입지 않고 면 100퍼센트인 옷만 입었으며, 음식도 고기 위주로 먹었다. 단 걸 좋아했고 매운 건 먹지 못했다. 약간 살이 오른 때였으나 그리 보기 싫진 않았다. 다만 배가 약간 나와 걱정이었다. 그런 탓에 나는 늘 배에 힘을 주고 다녔다.

설거지를 한 뒤 산책을 나왔다. 지난 새벽의 그곳은 아니었고, 운동기구들이 어설프게 배치된 근린공원 쪽으로 향했다. 날이 화창했다. 선선한 가을이었다. 희게 뭉친 구름들이 하늘을 흘러갔고, 전깃줄에는 새들이 정렬한 채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공원으로 가는 길은 쨍하니 햇볕이 내리쬐었다. 소설을 써야 했다. 그런데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으니 죽을 노릇이었다. 표절 사건이 있은 뒤로 나는 누구에게도 글을 보여주지 못했고, 글을 쓰는 것 자체에 회의감이 들었다. 힘에 부쳤다. 마치 금세 노인으로 늙어버린 듯했다. 그에 반해 머릿속은 부유하는 사념들로 넘쳐났다. 그것을 쏟아낼 길이 없었다. 스포츠라거나 운동, 게임 등 다른 취미도 없었다. 그저, 글을 쓰고 읽는 것 외엔 토해내고 받아들일 통로가 존재치 않았다. 걸음을 멈추었다. 근린공원에 사람 몇이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개 노인들이었고, 서 노인은 지금 낮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운동기구 근처로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석민이 눈에 띈 것은 그때였다. 그는 벤치 프레스를 하고 있었다. 길고 가느다란 다리에 근육이 튀어나온 것이 보였다. 석민은 한참 동안이나 그 비슷한 운동을 반복했다. 나는 어쩔까, 하다가 못 본 척 벤치로 가 앉을 생각이었다.

“현우 형, 안녕하세요.”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가 어느 새 다가와 말을 걸었다. 땀이 흐르는 그의 새하얀 피부는 마음속의 어떤 지점을 강하게 자극했다. 나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며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했다. 그는 말 편하게 놓으라며 웃었다. 나도 웃었지만 안면근육이 뒤틀릴 만큼 어색했다. 석민은 내 옆에 앉더니 상의를 붙잡고 펄럭였다. 그 바람에 설핏 복근이 선명한 배가 보였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그는 아랑곳 않았다. 나는 그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사과를 따고 꺾고 만진 탓인지 거칠고 굳은살이 박인 모양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던 건지, 아니면 그가 눈치가 빠른 건지 석민이 손을 오므리며 “못생겼죠?”하고 물었다. 나는 놀라,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얼굴이 손보단 나으니 다행이죠. 안 그래요?”

그 말에 나는 그의 얼굴을 빤하게 들여다보았다. 내 스타일, 이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헛된 생각하지 말자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가 퀴어일리, 동성애자일리 없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내 안의 누군가가 내게 꾸짖듯 소리쳤다. 편하게 친한 친구처럼 대하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시를 쓴다고 들었어요.”

“시요? 아, 시, 네 저 시 써요.”

그리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한동안 적막만 흘렀다.

그가 오른다리를 꼬며 다시 입을 뗀 건 분위기가 불편해질 즈음이었다.

“근데 사실 못써요. 이젠 쓰고 싶지도 않고.”

“왜요?”

나는 멀찌감치 서있는 비둘기를 보며 물었다.

“시가 점점 사람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사람처럼 군다는 뜻이에요. 화도 내고, 웃기도 하고, 아무 말 없이 잠수를 타기도 하고.”

“시가, 문학이 그럴 수 있나요.”

“소설 써봐서 아시겠지만, 사람처럼 느껴질 때 있지 않아요? 그래서 막 환멸 나고.”

글쎄, 나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머리를 가만두었다. 정말 그런 때가 있나. 표절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적은 있어도. 그런 현학적인 표현에 나는 혹시 예술병 걸린 애인가, 싶어 조금 거리를 두게 되었다. 하지만 곧이어 석민은 활기를 띤 얼굴로 농담이라도 말을 덧댔다. 아는 척 해본 것뿐이라며, 사실 자기는 읽은 책도 적고 아는 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어디 학교 다녀요?”

내가 물었다.

“대학교 안 갔어요. 공부를 원체 안하기도 했고. 아버지 가게 도왔어요. 군대나 가야죠.”

“아, 미안해요. 대학생이 아닐 수도 있는 건데.”

“괜찮아요, 형.”

나는 그가 말끝마다 형, 이라고 붙이는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것은 기대와 설렘을 안겨주는 한편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위태로운 심정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나는 다리를 모으고 발끝을 흔들었다. 핸드폰의 진동이 간헐적으로 울렸지만 무시했다. 오로지 이 순간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와 단 둘이 있는 시간 말이다.

“숙소는 어디예요?”

“사과밭 바로 근처에 있어요. 원래 낡은 펜션이었는데 사장님이 싹 고치셨대요.”

석민은 시설이 무척 깨끗하고 좋다며 날씨도 딱 알맞고, 최고의 알바라고 추켜세웠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서 아이 같은 흥분을 엿본 이유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우리는 점차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주로 글에 관한 얘기였다. 언제부터 글을 썼느냐,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느냐. 나는 편혜영과 이장욱을 좋아했고, 그는 이장욱보다는 진은영을 좋아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게, 이야기는 빠르게 우리의 삶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는 군대를 다녀오면 예술대학교 입시 준비를 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는 정말 어린애처럼 해맑은 웃음을 머금은 채 정말이냐고 되물었다. 나는 당연하다는 뜻으로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나저나, 여기 사과 먹어봤어요? 진짜 맛있어요, 형.”

“나 사과 싫어해요. 원체 가리는 게 많기도 하고.”

“헐, 정말요? 전 사과 엄청 좋아하는데. 뭐, 그럴 수 있죠, 형.”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봐야 한다고 했다. 순간 그의 골반 쪽에 벌이 날아들었다. 나는 쫓는답시고 손을 휘둘렀는데, 하필이면 팔꿈치가 맞았다. 그가 약하게 아, 소릴 내며 움츠렸다. 나는 미안하다며 괜찮으냐고 물었다. 그가 싱긋 미소를 내보였다.

“장난이에요, 형. 저 가볼게요. 다음에 봐요.”

그는 저번처럼 다음에 보자고 하며 떠났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밤중이었다. 몸에 한기가 돋아 이불을 두 겹이나 덮은 채였다. 서 노인이 화장실을 자주 들락날락하는 탓에 잠에 들기가 쉽지 않았다. 전화가 왔다. 진동이라 다행히 그녀를 깨우진 않았다. 저장되지 않은 낯선 번호였는데, 받을까, 말까 하다가 받았다. 표절 사건과 관련된 절차 때문일 수도 있었으므로. 스피커 너머에선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핸드폰을 들고 길고양이들이 한 데 모여 있는 마당으로 나갔다. 휘청거리는 달빛을 받으며 귀퉁이로 가 섰다. 아무 말이 없어 나는 재차 누구냐고 물어야 했다. 목소리가 끊어질 듯 뒤이어 들려왔다. 전 애인이었다. 나는 전화를 끊을 생각으로 핸드폰을 귀에서 떼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현우야. 내가 잘못했다. 그러니까 한 번만 봐주면 안 되니. 응?”

그럴 수 없었다. 그럴 수 없다고 말해야 했는데 내 입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표절한 건 사실인데, 아니 그런데 그렇다고 표절은 아니잖아. 우리 얘기였잖아.”

“그래서 더더욱 안 되었던 거야. 나는 발표할 생각이 없는데 너는 그걸 응모해서 발표까지 한 거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계속 할 거면 끊어.”

“말이 되는 소리 할게, 그럼.”

나는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나 표절 아니라고 교수님이 그러셨어. 다시 복학할 수 있다고도.”

“거짓말 하지 마, 그건 심사위원들도 다 표절이라고 결론 내린 거야.”

“정말이야. 나 다시 글 쓸 수 있어. 그러니까, 다시 한 번 생각해봐. 우리 같이 옛날처럼 사는 거야. 응?”

나는 핸드폰을 장독대 쪽으로 내던졌다. 웅웅거리는 소리를 뒤로 하고 이부자리로 가 누워 이불을 끌어당겼다. 내 소설을 표절한 건 다름 아닌 전 애인이었다. 내가 합평 시간에 제출한 퀴어소설을 그대로 베껴 신춘문예에 응모했던 거다. 그의 얘기대로 분명 그 소설은 ‘우리’의 얘기가 맞았다. 그러니 더더욱 신중해야했다. 아웃팅의 위험도 고려치 않은 멍청한 일이었다. 서로가 먼저 그에 합의해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멋대로 응모했고, 일반 대중에 당선작을 공개했다. 무엇보다 표절을 했다.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에 끌려 사랑했던 지난날을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나는 그의 문장에 속았고, 그의 인물들에게 곁을 내줬고 그의 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때문에 가족과 삼촌은 물론이고 서 노인 역시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두말 할 것도 없었다. 별다른 일은 없었지만, 그 때문에 내 정체성이 심각하게 훼손당한 건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의 불행서사로 내 이야기가 활용되는 걸 생각하면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복학이라니. 다시 글을 쓴다니. 그럴 수가 있나. 나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조붓한 집안에 들어찬 어둠이 무람없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마당으로 다시 나가 핸드폰을 주워 왔다. 액정이 깨져 있었다. 제대로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꼭 나의 소설 같았다.

 

마을에는 카페라고 할 만한 곳도 딱히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이라곤 서 노인의 성화에 못 이겨 집 밖으로 나가 근린공원에서 핸드폰을 하다 돌아다니는 게 전부였다. 그녀는 이따금 내게 애인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없다고 대답했다. 서 노인은 결혼은 하지 않아도 같이 데리고 살 사람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혀를 찼다. 나는 그게 나에 대한 그녀의 일종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쁠 것도 없었다. 서 노인의 집 위쪽에 위치한 한옥마을로 향했다. 그곳에 유명한 한옥 콘셉트의 카페 하나가 있었다. 무주의 태권도공원에 놀러오는 이들이 꼭 들러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이 원체 많아 주말엔 감히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카페로 가기 위해 돌계단을 올랐다. 힘이 들었다. 양 무릎이 삐걱거리는 것 같았다. 카페 입구로 가니 웨이팅이 있었다. 기다려야 했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늦췄다. 카페는 통유리로 되어있어 안이 들여다보였는데, 거기서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석민이었다. 그는 낡고 두꺼운 노트북으로 고개를 숙인 채 뭔가에 열중한 양 보였다. 나는 당장이라도 가서 아는 체를 하고 싶었지만, 기다렸다. 줄이 점점 줄어들고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매장에서 먹고 가게 다회용 컵을 달라고 했다. 석민이 있는 곳으로 가 자리를 찾는 척 할 셈이었다. 석민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나 싶어 두리번거리는데 후문이 딸랑거리며 열렸다 닫혔다. 석민의 그림자로 보이는 것이 막 문턱을 넘어가던 순간이었다. 나는 재빨리 카운터로 가 포장해달라고 한 뒤 일회용 컵을 들고 카페 후문을 나섰다.

석민은 저만치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며 그를 따라갔다. 그는 이따금 멈춰 서서 담배를 피웠고, 가게에 들러 뭔가를 구경하거나 샀으며 포장마차에서 군것질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 모든 광경을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펜과 종이를 꺼내 그 모습을 글로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기이했다. 그가 가는 자리 자리마다 문장이 피어나고 인물들이 솟아나고 이야기가 흘렀다. 그리곤 그는 가방에서 사과를 꺼내 한 입, 두 입 베어 물었다. 달큼한 즙이 그의 입 부근에서 흘러내렸다. 나는 그것을 핥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마치 지난 새벽에 그를 소리쳐 부르고 싶었던 것처럼. 석민은 시장에도 갔다. 이것저것을 구경하며 선물을 사듯 뭔가를 잔뜩 포장했다. 개중엔 먹을 것도 있었고, 무주 기념품도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를 쫓을 뿐이었다. 들킬까 겁나는 면도 있었지만, 충만한 행복감이 그를 앞질렀다. 그보다 더 기쁠 수 없었다.

마침내 내가 멈춘 곳은 초록빛이 감도는 새빨간 사과밭이었다. 석민은 그 한 가운데로 들어갔다. 마치 전애인과 봤던 넷플릭스 드라마 <높은 풀 속에서>에 나오는 풀숲 같았다. 불쾌감이 일었지만 군데군데 띄는 강렬한 붉은 빛에 어느 정도 희석되었다. 나는 그를 따라 사과밭을 가로질렀다. 신비한 경험이었다. 사위엔 온통 사과나무들뿐이었다. 알바생 일꾼들도 없었다. 삼촌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정말이지 말 그대로 귀신에 홀린 것처럼 그를 따랐다. 숨을 몰아쉬며 걸음을 멈춘 것은 드넓은 사과밭 어디쯤에 와있는지 모를 때쯤이었다. 아무리 주변을 살펴도 석민이 보이지 않았다. 그 찰나, 무언가가 내 앞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내 옆에 뒹구는 형체의 정체는 그였다. 석민은 킥킥 웃으면서 쫓아오는 것을 자기가 몰랐으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한 손이 내 손을 꼭 감싸 쥐고 있었다. 힘이 들어갔다. 아프다고 말하려 했지만 오히려 좋았다. 그의 피부 깊숙이 내 몸을 새기고 싶었다. 나는 몰랐다고 말했다. 더듬거리며 변명하려했지만, 말았다. 이제와선 아무 소용이 없기에. 그가 가까이 앉은 채로 엉덩이를 끌며 다가왔다.

“형. 나 왜 쫓아왔어요. 나 왜 따라왔어요?”

“그냥,”

나는 한 번 침을 삼켰다 말을 이었다.

“좋아서.”

석민의 얼굴에 예와 같은 맑은 미소가 번졌다.

“제가 왜 좋은데요, 형?”

“그냥,”

나는 숨을 들이켰다 내쉬었다.

“좋으니까.”

나는 그대로 그의 목을 감싸며 입을 맞추었다. 아까의 그 달큼한 사과즙이 혀를 감싸며 내 안에서 넘실거렸다. 처음 알았다. 사과가 그렇게 맛있는 과일인 줄은.

 

그 사과밭에서 나온 건 적지도 많지도 않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여느 날과 같이 서 노인에게 줄 사과를 가지러 사과밭으로 갔다. 처음으로 삼촌에게 사과를 더 달라고 했다. 나도 먹을 것이라고 말하니 그는 웬일이냐고, 놀라면서 새빨간 사과 몇 알을 더 챙겨주었다. 상자를 들고 집으로 내려가는 내내 석민을 떠올렸다. 사과밭에서 그를 발견할 수 없었다. 어디로 간 걸까. 벌써 서울로 올라간 걸까. 삼촌에게 물으면 금방 알 수 있었지만 감히 물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머릿속에서조차, 마음속에서조차 영영 떠나버릴 것 같았다.

나는 부엌으로 가 베이킹소다를 풀은 물에 사과를 씻었다. 손이 틀 정도로 찬 물에 오랫동안 씻은 후에야 수도꼭지를 잠갔다. 코를 킁 하고 들이마신다. 고개를 들어 창문을 바라보았다. 벌겋게 부은 눈두덩과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자국으로 번진 낯이 내다보였다. 잠시 뒤 나는 거실로 가 서 노인 옆에 앉아 TV를 보았다. TV에선 경기도 고양시에서 퀴어문화축제가 한창 열리는 중이라는 뉴스 보도가 한창이었다.

“너는 저기 안 가냐?”

서 노인이 물었다.

“안 가요. 귀찮아.”

“네 친구들 다 오는데?”

“어떻게 다 내 친구예요. 그냥 사람들이지.”

서 노인이 그 튼튼한 이로 사과를 씹어 삼키며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를 따라 웃으면서 사과 한 귀퉁이를 베어 물었다.

“글은 안 쓰고?”

“소설 이제 쓸 거예요.”

“이 할머니한테 보여줄 생각은 여전히 없어?”

“네. 없어요. 아직은.”

나는 다시 TV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달콤한 맛이 한동안 나를 몸부림칠 정도로 아리게 만든다. 이제 사과 철이 지났다. 철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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