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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포자

2023.10.29 22:3210.29

 

 포자는 어디에나 있다. 발아할 기회를 기다리다가 조건이 맞으면 균사를 뻗는다. 그것이 균사를 뻗는 데에는 어떤 인간적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적절한 온도에 충분한 수분이 있고, 먹을 수 있는 당과 무기염류가 있다면 포자는 발아한다. 그러나 그들의 발아조건에 인간이 개입했을 때, 인간들은 오만하게도 그들이 인간들의 행동에 대해 그들의 존재 자체를 통한 복수를 행했다고 생각한다.

 “이 망할 행성에는 대기권 상층부부터 포자들이 꽉 차 있어. 도대체 이런 곳에서 무슨 작업을 하겠다는 건지…”인혁은 포자 때문에 뿌연 창밖을 보며 말했다.

 “요즘에는 이런 행성들 값이 천정부지로 뛴다고 하잖아요. 아무 가치도 없는데 쓸데없이 지름만 큰 행성들이요. 가치 있는 광물들은 몇 백 년 전에 다 캐 갔고, 거추장스러운 무언가들이 꽉 차 있어서 거주지로 개척해서 분양할 수도 없는 행성들 말이에요. 저는 뭐 청소나 하는 사람이니 뭘 모르긴 합니다만, 여기서 몇 년 일하고 나면 한 몫 단단히 쥐고 나갈 수 있지 않겠어요?”옆에서 청소용역업체 직원 김씨가 말했다.

 인력들과 대형 청소장비들을 실은 회사의 모선은 행성의 대기권 상층부에 고도를 고정하고 있었다. 모선의 측면에는 ‘성수자원㈜’이라는 회사명이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진 채 쓰여 있었다. 인혁은 성수자원의 부지개발부 직원이었다. 은하계 전체에서 폐기물 처리장 부지가 부족한 사태가 수백 년간 이어지는 동안, 폐기물 처리회사들의 주가는 각국 행성정부 연합의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고 수직 상승할 수 있었다. 때문에 기껏해야 은하계 변두리 행성에서 폐기자원 처리를 하며 근근이 먹고 살던 작은 회사였던 성수자원은 탁월한 사업감각을 통해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은하계에서 다섯 번째로 거대한 기업이 됐다.

 성수자원은 정부 및 기업들과 제휴를 맺고 그들이 배출하는 폐기물을 처리해주는 일을 했다. 정부의 공공폐기물 처리행성들은 이미 포화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성수자원과 같은 사기업들에게 그들의 폐기물 처리를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성수자원은 임원들의 탁월한 선견지명으로 사람이 살 수 없거나 공장행성으로 사용할 수 없는 행성들을 탐사해서 싼 값에 매입해 뒀다. 은하계에 폐기물 처리문제가 정말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면서 미리 매입해둔 행성들을 정리해 폐기물 처리장으로 제공하고 막대한 돈을 벌고 있었다.

 인혁이 앞으로 일하게 될 이 행성도 그런 곳이었다. 곰팡이들이 너무 많이 자라는 탓에 인간 거주용 행성으로 분양될 수 없었고, 공장이 들어설 수도 없는 곳이었다. 성수자원의 직원들 그리고 성수자원과 사업제휴를 맺은 용역청소업체 직원들은 앞으로 23년간 이 행성에 교대로 거주하며 폐기물 처리 행성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청소하는 일을 맡았다. 선발대 인원은 성수자원 소속 선장과 모선을 관리할 인원 15명, 그리고 인혁을 비롯한 성수자원 직원 3명과 용역청소업체 직원 13명이었다.

 “인혁씨, 이제 내려가야 돼. 방호복 준비해서 갑판으로 나와.” 최팀장이 방호복 하의의 끈을 조절하며 말했다. 최팀장은 들고 있던 커피용기를 아무렇게나 던지고 갑판으로 나갔다. 인혁은 급하게 방호복을 챙겨 입고 최팀장을 따라갔다. 갑판에는 최팀장과 인혁, 그리고 성수자원으로 파견된 생물학자 희수가 모선에 고정되어 있는 소형 탐사선을 통해 행성의 지상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갑판에서 내려다보이는 행성의 모습은 마치 마약을 하면 이런 장면이 보이지 않을까 싶은 것이었다. 대기중에는 온통 포자들이 날아다니고 있어 30미터 밖을 보기조차 어려웠다. 하늘에는 날아다니는 포자들이 일시적으로 뭉쳐 구름 같은 형상을 만들었다가 다시 흩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고, 지상에는 뿌연 분홍색의 균사체들이 지면을 뒤덮고 있는 것이 보였다. 행성은 마치 거대한 분홍색 구름, 아니면 커다란 솜사탕처럼 보였다. 신비로운 풍경을 감상하던 인혁의 어깨를 희수가 두드리며 이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팀장과 희수, 그리고 인혁은 소형 탐사선에 탑승해 벨트를 조였다. 엔진이 붉게 점화되고 탐사선은 고정장치를 해제한 뒤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엔진의 점화구에서는 대기 중의 포자가 불타 짙은 노란색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탐사선은 곧장 갑판을 벗어나 아래로 하강했다. 두어 시간 동안의 비행동안 인혁은 가까워져 가는 지면을 보며 이 행성에는 곰팡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낮은 건물만 한 높이로 빼곡하게 세워진 곰팡이의 탑으로 보이던 것들의 뼈대는 식물이었다. 높게 자란 식물의 표면을 옅은 분홍색의 곰팡이들이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인혁은 두껍게 부풀린 균사체로 식물들을 빈틈없이 뒤덮고 짓누르는 곰팡이에 징그러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기묘한 공생관계에 신비로움을 느꼈다.

 “저렇게 빈틈없이 뒤덮으면 분명히 광합성을 방해할 거예요.”희수가 말했다.

 “그럼 식물은 균사체 덩어리를 뚫고 나오는 식으로 진화하지 않았을까요? 왜 그러지 않았을까요.”인혁은 희수에게 물었다.

 “아마 곰팡이가 식물에게 광합성을 방해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주겠죠. 그렇게 계약이 성립됐을 거예요. 내려가서 조사해보면 알겠죠.” 희수도 식물과 균의 관계를 흥미롭게 여기는 것 같았다.

 “쓸데없는 말들 그만하고 착륙할 준비들이나 해. 희수씨는 내려가면 깊게 파지 말고 저 곰팡이가 알려진 종인지, 인간한테 위험한지 아닌지만 조사하고 빠져. 인혁씨는 트랙터가 출발할 자리 알아보고. 알겠어?”최팀장은 생물들에게는 관심 없다는 듯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5년전 개정된 행성정부연합의 법은 새로운 행성을 탐사할 때에는 반드시 생물학자를 동행하고 그곳의 생태계를 보존할 가치가 있는지를 조사하도록 했다. 이번 탐사에 희수가 참여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최팀장은 그 법을 끔찍하도록 싫어했다. 그는 틈만 날때마다 팀원인 인혁에게 ‘우리 둘이 거칠 것 없이 밀어버릴 때는 참 시원시원하고 좋았는데 말이야’라며 과거를 회상했고, 항상 ‘일하는데 사사건건 시비만 거는 그 인간들이 팀에 참여한 뒤로 일이 일 같지가 않단 말이지’라며 동행하는 생물학자들을 못마땅하게 보는 말들을 덧붙였다. 그도 그럴 것이 최팀장은 법이 개정되기 전부터 회사 내에서 작업 성과가 탁월한 축에 속했다. 막 회사가 성장하던 무렵 최팀장은 부지개발부의 팀장이 되어 행성들을 미친듯이 정리해 나갔다. 에베레스트 150개 높이의 산이 있는 행성을 폐기물 처리장으로 쓰기 위해 군 관계자를 설득해 전략핵을 투하해 정리한 사건은 회사에서도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었다. 물론 행성들을 청소하는 과정에서 행성 생태계를 완전히 소멸시켜 버리기 일쑤였지만 팀장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정부 관계자를 어떻게 구워삶아서 생물탐사 예정일을 핵 투하 날짜 이후로 미룰 수 있었는지를 영웅담처럼 자랑하는 사람이었다.

 반면 생물학자들의 연합에서는 그런 일들을 절대 두고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법을 개정하도록 행성정부연합에게 압력을 넣은 것이었다. 성수자원에서는 어쩔 수 없이 생물학자들을 팀에 합류시키는 것을 수락했고, 희수도 그때 고용된 생물학자들 중 한 명이었다. 희수는 박사학위를 받은 지 얼마되지 않아 팀에 합류했지만 최팀장이 어떤 사람인지는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최팀장이 행성의 생태계를 함부로 말살하지 못하게 하려면 적절한 증거가 필요했다. 행성의 생태계에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포착하고 적절한 샘플로 남겨 빠르게 학회에 보고해야 성수자원과 최팀장의 작업을 견제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희수는 이번 작업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최팀장이 희수를 견제하고 방해할 것이 분명했지만 갖가지 생물학 시험장비를 몰래 가지고 팀에 합류했다.

 인혁은 최팀장과의 지난 작업들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날들을 온갖 고생을 함께하며 수많은 행성들을 ‘거칠 것 없이 시원하게 밀어버리기’는 했지만, 인혁은 생태계의 신비로움에 감화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최팀장과 함께 행성들을 정리해 나갈 때마다 엄청난 다양성을 보여주는 각 행성들의 생물들을 모조리 없애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인혁은 항상 죄의식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그래도 일을 대충 할 수는 없었다. 이번 작업만 끝나면 지난 일들의 성과를 인정받아 임원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한 최팀장의 신임을 받는 자신의 앞날의 성공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번 작업에 대한 정보를 받았을 때 인혁은 ‘차라리 생물이 없는 행성이었으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행성에도 생물들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한숨을 쉬었다.

 탐사선은 속도를 줄이고 착륙할 자리로 내려오고 있었다. 엔진의 불꽃에 지면의 균사체들이 타 들어갔다. 탐사선은 균사체 위로 푹신하게 내려앉았다. 주변에는 온통 건물높이의 곰팡이의 몸체가 높게 서 있었고 탐사선이 내려앉은 자리만 솜사탕을 손가락으로 누른 듯 움푹 파였다. 최팀장이 먼저 헬멧을 고쳐 쓰고 지면으로 내렸고 희수와 인혁이 뒤를 따랐다. 행성의 바닥을 뒤덮은 균사체로 인해 땅을 밟는 감촉은 푹신했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포자낭이 터지며 포자들이 자욱하게 흩날렸다. 최팀장은 사방을 둘러싼 높은 고사리처럼 생긴, 곰팡이로 뒤덮인 식물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인혁씨, 어때 보여? 이 높은 고사리들, 트랙터가 밀고 지나갈 수 있을까?”

 “글쎄요, 앞에 톱날이 달린 모델들도 몇 대 가지고 왔으니까 일단 그것들로 밀어야겠죠. 기둥이 목질은 아니어서 갈면서 나가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인혁은 균사를 헤치고 안에 들어있는 식물의 기둥을 손으로 만져보며 말했다. 최팀장과 인혁이 대화하는 동안 희수는 탐사선에서 종 분석기를 들고 나와 식물과 곰팡이에 각각 탐침을 찔러 넣었다.

 “이 식물들과 곰팡이는 알려진 종이 아니에요. 조금 더 분석을 해봐야겠어요. 그 전까지는 작업하면 안 돼요.”

 “그래, 그러시겠지. 희수씨, 늦어도 7일 뒤에는 작업을 시작해야 돼. 분석하는 건 좋은데 그 전까지는 끝내줬으면 좋겠어.”

 “일단 분석해보고요.” 희수는 대충 대답하고 탐사선으로 가 종 분석기의 카트리지를 단백질 분석기로 바꾸고 행성을 더 둘러보기 위해 나섰다. 인혁도 어떤 생물이 있을지 궁금한 마음에 희수를 따라갔다.

 “빨리빨리 돌아오라고. 모선으로 돌아가서 회의할 것들이 많으니까.” 최팀장은 방호복 헬멧을 벗어 옆구리에 끼고 담배에 불을 붙이며 둘의 뒷모습에 대고 말했다.

 희수와 인혁은 균사를 손으로 헤치며 고사리 숲 속으로 나아갔다. 두꺼운 균사층을 뚫고 들어가자 고사리의 두꺼운 기둥들이 나타났다. 고사리는 성인 네다섯명이 양팔을 벌려야 겨우 안을 수 있을 정도로 두꺼웠다. 하늘에는 두껍게 덮인 곰팡이들 사이로 분홍색 빛줄기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고사리 줄기들 사이로 손바닥만 한 원숭이처럼 생긴 동물들이 줄기들 사이를 이리저리 뛰어 날아다니고 있었다.

 “동물이 있네요… 이거… 동물이 있으면 보존해야 하잖아요. 원칙상으로는 그렇죠?”인혁은 최팀장이 이 사실을 알면 불같이 화낼 것을 생각하며 한숨을 쉬며 말했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보통 동물이 있으면 그 지역의 생태계가 충분히 복잡하다는 말이니까 보통 보존해야 한다는 증거가 나오죠.”희수는 속으로 조금 신난 듯이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원숭이처럼 생긴 동물들은 곰팡이의 균사를 먹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동물의 눈은 하나같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희수와 인혁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공격적인 태도를 취했다. 희수와 인혁은 방호복의 두꺼운 외피를 믿고 계속 앞으로 향했다. 동물들이 달려들어 방호복을 물어뜯었지만 외피를 뚫지 못하는 것 같았다. 희수와 인혁은 달려드는 동물을 손으로 잡아 뜯어 던지며 계속 나아갔다.

 “희수씨, 얘들 왜 이렇게 공격적이죠? 육식을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인혁은 헬멧 위로 달려든 원숭이 떼를 뜯어내며 말했다.

 “글쎄요, 후… 원숭이와 근연관계에 있는 동물이 이렇게 공격적인 경우는 거의 없는데… 몇 마리 잡아가서 분석해봐야 할 것 같아요.” 희수는 가져온 포획낭에 동물 세 마리를 잡아넣고 입구를 닫았다. 동물은 포획낭 안에서 마구 발버둥쳤다. 희수는 고사리 같은 식물과 곰팡이의 샘플도 채취했다. 희수와 인혁은 이 행성의 외관만큼이나 이곳의 생물들에 대해 기묘한 느낌을 받은 채로 탐사선으로 돌아갔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방호복은 왜들 그렇게 흠집이 나 있고… 뭐야, 동물? 하…”최팀장은 희수의 포획낭에 담긴 동물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빨리 돌아가자고. 할 일이 많아.”탐사선 옆에서 둘을 기다리던 최팀장 옆에는 아무렇게 버려 놓은 담배꽁초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탐사선이 모선으로 돌아간 뒤 희수는 우선 원숭이 같은 동물들부터 케이지에 가두고 분석을 시작했다. 피를 뽑아 현미경으로 확인하자 혈액 속에는 온통 곰팡이의 포자가 가득 차 있었다. 희수는 의아했다. 포자를 먹거나 호흡기로 포자를 빨아들였다 해도 폐포 내에 쌓일 뿐 혈액 속으로 들어갈 방법은 없었다. 이번에는 동물의 혈관 조직을 채취해 현미경의 배율을 높였다. 그러자 포자들이 마치 스스로 움직이는 듯 혈관 벽을 뚫고 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포자가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 같아 보였다. 원숭이의 배변을 확인했을 때 오직 곰팡이만 있을 뿐 고사리 같은 식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희수는 원숭이의 공격성이 곰팡이와 연관이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인혁이 팀장의 호출로 트랙터 보관실로 갔을 때 최팀장은 용역청소업체 직원들과 청소용 트랙터를 손보고 있었다. 청소용 트랙터는 한 대가 왠만한 주택만 한 크기로 행성청소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이었다. 최팀장과 청소업체 직원들은 마치 당장이라도 작업하려는 듯이 거대한 트랙터들의 시동과 앞에 장착된 원형 톱날의 작동여부를 테스트하고 있었다.

 “팀장님, 작업 전에 테스트해도 되지 않습니까? 지금 하시게요? 희수씨 분석결과가 아직 안 나왔는데요.”인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어, 인혁씨. 왔어? 이리 와봐. 할 말이 있어.” 최팀장은 트랙터의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며 말했다. 인혁은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인혁씨. 이 행성에서 동물이 나왔잖아. 희수씨 결과는 볼 것도 없어. 분명히 ‘동물의 장 속에 희귀 미생물이 서식해요’라던지 ‘이 곳의 동물과 식물과 곰팡이 사이에 보존할 가치가 있는 복잡한 공생관계가 존재해요’라면서 우리 일을 못하게 할 게 분명하지 않겠어?” 최팀장은 한숨을 쉬고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거야. 그까짓 거 뭐가 중요하냐 이거 지. 더 멀리 보자 이거야. 이 행성은 식물이랑 곰팡이가 많아서 폐기물을 격자형으로 투기하기는 좀 아쉬워. 그래도, 우리가 가져온 이 트랙터들로 몇 년 동안 깨끗하게 밀고 나면 엄청나게 많은 폐기물을 버릴 수 있어. 식물이고 동물이고 균이고 뭐고 일단 행성의 지름이 크잖아, 지름이. 이번에 인근 항성계에 거주구역이 새롭게 설치된 거 알지? 거기에 행성이 자그마치 열 세 개야. 거기서 나올 폐기물을 이 행성에 버릴 수 있게 되면 정부 보조금이 엄청날 거라고. 이건 상당히 큰 건이야.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그냥 시원하게 밀어버리자고. 이번 일 성공하면 나 임원 되는 거 거의 확실시될 거야. 그럼 인혁씨 앞날에 뭐가 펼쳐질지 생각해봐. 내가 확실하게 밀어줄 게. 우리는 같이 고생한 세월이 있잖아. 안 그래?”최팀장은 담뱃불을 바닥에 지져 끄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방으로 돌아간 인혁은 한동안 최팀장의 말을 듣고 고민했다. 물론 자신이 반대한다고 해서 팀장이 작업을 단념할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인혁은 잘 알았다. 인혁은 그렇다면 팀장이 인혁에게 그 말을 한 것은 분명 임원이 되기 전 인혁이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인지를 시험해보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인혁이 팀장의 말을 따른다면 분명히 차기 부지개발부 팀장이 될 것이고, 그 다음의 승진도 보장된 일일 것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이 행성의 생물들을 모두 없애 버려야 한다. 인혁은 거대한 고사리와 그를 뒤덮은 곰팡이의 연분홍빛 균사체를 떠올렸다. 그리고 하늘에 떠다니는 포자의 구름을 생각했다. 꽤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풍경이었다. 인혁은 생각을 멈추고 편히 쉬려고 했으나 끊임없이 교차해서 떠오르는 팀장의 제안과 행성의 생물들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때 인혁의 방 인터폰이 울렸다.

 “인혁씨, 지금 제 연구실로 와줄 수 있어요?” 인터폰 너머로 희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 지금 이 시간에요?”

 “급한 일이에요. 빨리 와줘요. 팀장님한테는 말하지 말고요.”

 인혁은 얼떨떨한 마음으로 옷을 챙겨 입고 희수의 연구실로 향했다. 희수는 여전히 현미경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실험대에는 행성 지표면에서 채취해 온 곰팡이를 다양한 방법으로 배양한 여러 종류의 배지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배지들은 모두 비닐 랩으로 밀봉되어 있었다.

 “희수씨, 무슨 일이에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다 부르고.”인혁은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희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아, 왔어요? 이것 좀 보세요.”희수는 현미경 접안부를 인혁 쪽으로 돌려주며 말했다. 인혁이 현미경을 들여다보자 그곳에는 배지에 배양한 행성의 곰팡이의 균사가 보였다.

 “이거 곰팡이잖아요. 이게 뭐 어쨌다는 거예요?”인혁은 현미경의 위치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모르겠다는 말투로 말했다.

 “자세히 봐요. 왼쪽에 놓은 건 이 행성 원숭이에서 떼어낸 동물세포예요. 오른쪽에서부터 이 행성의 곰팡이를 배양했어요. 곰팡이가 동물세포 쪽으로만 자란 게 보여요?” 현미경의 위치를 다시 제대로 옮기고 초점을 맞추자 희수가 말한대로 동물세포를 쫓아가는듯 자란 곰팡이의 균사가 한 방향으로만 뻗어 있는 것이 보였다.

 “곰팡이가 동물세포를 인식하고 쫓아가나요? 뭐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에요?” 인혁은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투로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곰팡이가 동물세포에 닿으면 이상한 일이 일어나요.” 희수는 다른 배지를 현미경 제물대 위에 올려놓고 보여줬다. 이번에는 원숭이에서 떼어낸 뇌조직이라고 했다. 원숭이의 뇌조직에는 온통 균사체들이 뇌의 굴곡을 휘감고 어떤 물질을 분비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곰팡이는 동물을 감염시켜요. 일반적인 습진균처럼 피부를 감염시키는 게 아니라, 혈관을 타고 들어가서 뇌까지 가요. 동충하초가 뭔 지 아세요?”

 “동충하초…? 그 곤충을 감염시켜서 뇌를 조종하는 버섯 아니에요?”

 “맞아요. 이 곰팡이는 동충하초처럼 버섯형태의 자실체를 만들지는 않지만, 상당히 비슷해요. 원숭이들이 공격적이었던 건 이것 때문이었을 거예요.”

 “원숭이들이 곰팡이를 먹고 감염되었다는 건가요?”

 “네. 맞아요.” 희수는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문제는 인간도 감염시키는 것 같아요. 제 구강세포로 실험했을 때도 곰팡이가 구강세포를 향해서 자랐어요. 그리고… 미리 가져온 인체 뇌조직도 감염시켰고요.”

 “그럼 우리도 감염된 거 아니에요?” 인혁은 놀라며 말했다.

 “우리 모선은 밀폐되어 있고, 탐사하러 갔을 때도 헬멧을 벗은 적이 없으니까 우린 괜찮을 거예요.”

 “그렇군요… 그러면 그 결과가 이 행성을 청소해도 될지 안될지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나요?” 인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요. 이렇게 인간 뇌까지 침투하는 동충하초라면 분명히 뇌사환자나 선천적인 정신장애를 치료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어요. 물론 유전자 조작을 해서 인체에 무해하게 해야겠죠. 게다가 이 행성의 곰팡이와 고사리, 원숭이는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어요. 원숭이가 곰팡이의 균사를 먹고, 원숭이의 배설물로 고사리가 자라고, 고사리는 다시 균사에게 물리적 구조물을 제공해요. 더 조사를 해봐야 하겠지만 이정도 만으로도 이 행성은 생물학적으로 가치가 높아요. 아쉬우시겠지만… 이 행성은 청소하면 안 돼요. 폐기물 처리장으로 쓰이기에는 너무 아까운 행성이에요. 팀장에게는 따로 잘 말해줘요.”

 인혁은 방에 돌아가 창 밖을 바라봤다. 창 밖에는 두 개의 큰 달과 작은 달이 떠 있었지만 대기중의 포자 때문에 뿌옇게 보였다. 푸른색 달빛이 날아다니는 포자들에 산란되어 빛내림을 만들었다. 인혁은 끊임없이 고민했다. 최팀장은 임원이 되기 위해 이 행성을 반드시 청소하려고 할 것이다. 과연 내일 팀장에게 희수의 조사결과를 말해주면 어떻게 할지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리고 인혁 자신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깊은 밤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다음 날 인혁은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깼다. 엔진에 시동이 걸린듯한 소리였다. 창 밖을 내다보니 행성의 지면에서 뭔가 작은 점이 움직이는 듯하게 보였다. 인혁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튀어나갔다. 방호복을 입고 갑판으로 나갔다. 희수도 방호복을 갖춰 입고 이미 갑판으로 나와있었다. 갑판에서 드론을 띄워 행성의 지상으로 날려보냈다. 드론의 영상에는 청소업체 직원들과 최팀장이 대형 청소용 트랙터들을 지상으로 내려 거대한 고사리들을 밀어 넘어뜨리고 있었다. 곰팡이의 균사는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트랙터의 바퀴에 밟히며 포자를 뿜어냈다. 원숭이들은 트랙터가 내는 굉음에 허둥대며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거대한 밭의 곡물을 수확하듯 거대한 고사리들은 힘없이 넘어졌고 남은 자리에는 쓰러진 고사리들과 밟힌 균사체만이 남아 평지가 생겼다. 그때 트랙터에 탄 최팀장이 드론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최팀장은 트랙터 위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더니 총을 꺼내 드론을 겨눴다. 이내 영상이 지직거리더니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최팀장이 드론을 쏜 것이다.

 “어떡하죠? 인혁씨, 팀장한테 청소하면 안 된다고 말 안 했어요?” 희수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어제는 시간이 늦어서 오늘 말하려고 했는데… 팀장님은 왜 이렇게 빨리 작업을 시작한 거죠? 총으로 드론은 왜 쏜 거고…”인혁은 당황해서 허둥거렸다. 당장 최팀장에게 연락해야 했다. 인혁과 희수는 갑판에서 모선 내부로 들어가 조종실로 향했다. 조종실에는 선장과 모선을 관리하는 직원들 대여섯명이 있었다.

 “선장님, 당장 팀장님한테 연락해야 해요. 송신기 주세요.” 인혁은 다급하게 말했다. 인혁은 선장이 건네준 송신기를 받아 팀장에게 말했다.

 “팀장님, 저 인혁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작업하시면 안 돼요! 희수씨 검사결과가 나왔어요. 이 행성의 생물학적 가치가 높아서 보존해야 한답니다.”

 “인혁씨, 다 알고 있었어. 난 일하면서 동물이 발견된 행성에서 그 잘나신 생물학자 놈들이 ‘예, 작업하세요’하는 꼴을 본 적이 없어. 너도 알지? 빨리 내려와. 일 해야지. 이번 건은 정말 중요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데 보존 명령이니 뭐니 그런 거 신경 쓸 수 없단 말이야. 성가신 포자나 만드는 이 지저분한 행성 같이 다 밀어버리고 돈 벌어야지. 너 팀장 달아야 되잖아. 판단 잘해라. 끊는다.”최팀장이 말을 마치고 송신기를 차단하는 소리가 들렸다. 인혁이 고민하는 사이 조종실에 있던 직원들이 희수의 양 팔을 붙잡았다.

 “뭐?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당장 놔요! 이럴 순 없어요. 이 행성은 보존해야 해요. 당신들 지금 무슨 짓 하는 건지 알기나 해!” 희수는 발버둥치며 소리쳤지만 직원들은 희수를 단단히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희수씨는 직원실에 가둬. 팀장이 오고 나면 처리한다.” 선장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인혁은 선장도 최팀장에게 모종의 약속을 받았음을 알았다. 인혁은 두려움을 느꼈다. 만약 자신이 여기서 팀장의 뜻을 거스른다면 자신도 희수처럼 직원실에 갇힐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인혁은 두려운 마음에 소형 탐사선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갔다. 인혁이 지상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상당히 넓은 면적의 땅이 청소된 이후였다. 빽빽한 고사리와 곰팡이로 뒤덮인 숲이 가득 차 있던 행성 표면에는 어느새 넓은 평야가 만들어져 있었다. 바닥에는 폭이 1미터가량 되는 트랙터의 넓은 바퀴자국에 눌린 곰팡이밖에 보이지 않았다. 인혁은 가동을 멈춘 트랙터들 쪽으로 걸어갔다. 최팀장이 그 중 한 트랙터에서 뛰어내려 인혁에게 다가왔다.

 “인혁씨, 잘 생각 했어. 이 행성은 우리에게는 마지막 관문 같은 거야. 성공으로 가는 관문 말이지. 이번 건 잘 마무리하면 인혁씨 내가 확실하게 밀어줄 테니까 절대 걱정하지 마. 알겠어?” 최팀장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인혁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인혁은 또다시 두려움을 느꼈다. 과연 최팀장은 희수를 어떻게 할 생각인 걸까. 이렇게 희수를 감금한다고 해도 작업이 마무리되고 희수가 돌아갔을 때 행성정부연합에 이 행성에 대한 사실을 폭로하면 최팀장은 보존할 가치가 있는 행성의 생태계를 파괴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팀장은 희수를 협박하거나 회유해야 하는데, 인혁이 지금껏 같이 일하면서 봐온 최팀장의 성격은 절대 그렇게 유순하게 일을 처리할 위인이 아니었다. 희수도 쉽게 회유되거나 협박이 통할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팀장은 설마 희수를 죽이기라도 할 생각인 건가. 최팀장의 성격과 이미 팀장에게 회유된 선장 및 직원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인혁은 거대한 밀실과도 같은 이 행성에서 벌어질 일에 대해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인혁은 어쩔 수 없이 그날 트랙터에 타고 팀장과 함께 행성 청소를 감독했다. 이대로라면 남은 23년이 지나면 행성은 깨끗이 청소될 것이다. 아무런 생명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모두 파괴될 것이다. 고사리가 없으면 곰팡이가 높은 곳에서 자랄 수 없고, 곰팡이가 없으면 원숭이가 살 수 없다. 결국에는 모든 것이 파괴되고 이 행성에는 격자형태로 압축된 쓰레기들 만이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온갖 유해한 유기 합성물이 섞인 액체로 강과 바다가 생길 것이다. 그렇게 최팀장은 임원이 되고, 인혁은 팀장이 될 것이다. 행성의 죽음으로. 그리고 희수의 죽음으로. 인혁은 또다시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

 인혁은 그날 밤 몰래 선장의 방으로 갔다. 선장은 위스키를 마시고 골아 떨어져 있었다. 선장의 셔츠 앞주머니에서 조심스럽게 카드키를 꺼냈다. 선장의 카드키는 마스터키로, 모선의 모든 문을 열 수 있었다. 인혁은 밤에 선체를 관리하는 직원들에 눈에 띄지 않게 희수가 갇혀 있는 직원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쪼그려 앉아있는 희수가 보였다.

 “희수씨, 빨리 나와요.” 인혁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혁씨? 들키면 우리 둘 다 죽을 거예요.”

 “일단 도망가죠. 회사에… 아니 생물학회에 연락해요. 보존할 가치가 있는 행성이라고 보고하세요. 그런 다음 상황을 설명하면 우릴 구하러 오지 않겠어요?”

 “네, 그럼… 조종실로 가야 하는데… 조종실에는 직원들이 있을 텐데요.”

 “그렇겠죠… 일단 가요. 우리에게 방법이 없잖아요. 싸워서라도 연락해야 해요.” 인혁과 희수는 몸을 숨겨가며 조심스럽게 조종실로 향했다. 긴 복도와 회의실을 지나 조종실 문 앞까지 갔을 때 인혁은 온몸이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쓰러지면서 옆을 보니 희수가 최팀장에게 전기충격기를 맞고 있었다. 온 몸의 근육이 수축하는 느낌이었다. 인혁과 희수는 바닥에 쓰러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복도에 전등이 모두 켜지고 직원들이 몰려나왔다. 최팀장은 인혁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팀장의 눈은 지상에서 봤던 원숭이들처럼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야, 인혁아… 너까지… 이럴 줄은… 몰랐다…” 최팀장은 계속 기침을 하며 말했다. 최팀장의 몸이 이상한 것 같았다. 계속해서 기침을 했으며 눈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직원들은 인혁에게서 카드키를 빼앗고 쓰러진 인혁과 희수를 붙잡아 다시 직원실에 가뒀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밖에서 비명소리와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인혁씨, 설마…”

 “네. 팀장님이 감염된 것 같아요. 눈이 충혈되어 있었어요.” 인혁은 직원실 문의 작은 창문으로 내다보며 말했다. 팀장은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고 눈은 완전히 붉게 충혈되다 못해 눈의 실핏줄이 터져 눈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듯 끊임없이 괴성을 지르며 직원들을 공격했다. 인혁은 최팀장이 처음 탐사를 나갔을 당시 헬멧을 벗고 담배를 피웠던 것을 떠올렸다. 인혁은 창문 너머로 팀장이 청소용역업체 직원 중 한 명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것을 보았다. 그 직원은 고통스러운 듯 물린 목을 붙잡고 바닥에 쓰러져 버둥거렸다. 이내 한참동안 사방에서 괴성과 비명소리가 들렸다. 희수와 인혁은 직원실의 잠긴 문을 열기 위해 둘이 몸을 부딪혀봤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제 어떡하죠? 완전히 갇혔어요.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다들 감염된 상태에요.” 인혁은 절망했다.

 “아니요. 감염된 사람에게 물리면 물린 사람도 감염되는 지는 아직 몰라요. 감염된 사람은 아직은 팀장뿐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저기 봐요.” 희수는 천장의 환풍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인혁은 희수를 어깨에 태우고 일어섰다. 희수의 손 끝에 환풍구의 가림 막이 닿았다. 희수는 가림 막을 치운 뒤 인혁의 어깨를 밟고 환풍구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희수는 환풍구 속을 기어가 복도 중앙 천장의 구멍에서 뛰어내렸다. 팀장에게 물린 직원들은 아직 감염된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바닥에 쓰러진 채 물린 목덜미나 손목을 감싸 쥐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뿐이었다. 희수는 그들 중 한 명의 옷 주머니에서 아까 빼앗긴 선장의 카드키를 꺼내 직원실 문을 열었다. 희수와 인혁은 조심스럽게 직원실 밖으로 나와 복도를 살폈다. 감염된 최팀장은 어딘가 다른 방으로 가 있는 것 같았다. 희수와 인혁은 우선 에어로크 앞으로 가서 방호복을 입었다.

 “일단 구조요청을 해야 해요. 조종실로 가요.” 희수는 방호복 헬멧을 잠그며 말했다.

 “우리도 감염됐을까요? 포자는 숙주에서 재생산되잖아요. 최팀장의 뇌에서 균사가 자라고 다시 포자를 만들 텐데...” 인혁은 걱정하며 말했다.

 “괜찮을 거예요. 몸 밖으로는 균사가 안보였으니까 아직 포자를 퍼트리는 단계는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시간이 지나면 포자를 퍼트릴 거예요. 이 행성 원숭이를 조사했을 때 균의 생장을 억제하는 유전자가 다수 반복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인간은 그 유전자가 없으니… 감염되고나서 시간이 흐르면 몸 밖으로 균사체가 자라면서 포자를 퍼트릴 거예요.”

 “그 말은…”

 “지금 쓰러져 있는 사람들 모두가 감염될 거예요. 우린 그 전에 모선 밖으로 나가야 해요.” 희수와 인혁은 조종실로 가 인근 인간 거주행성으로 구조요청을 보냈다. 그리고 갑판으로 나갔다. 하늘에 뜬 세 개의 달은 여전히 포자로 인해 뿌옇게 보였다. 둘은 소형 탐사선을 타고 지면으로 내려갔다. 탐사선에 있는 비상용 식량과 물을 통해 약 2주를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희수와 인혁은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며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다음 날이 되고 희미한 햇빛이 모선의 내부를 비췄을 때 그곳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최팀장은 감염으로 인해 뇌를 조종당해 그날 모든 직원들을 물었다. 감염된 지 3일이 지난 최팀장의 몸은 곰팡이의 균사로 뒤덮였다. 곰팡이는 최팀장의 온 몸의 혈관을 타고 자라다가 뇌를 감염시켰고, 온몸의 미세혈관을 뚫고 몸 밖으로 균사를 뻗었다. 최팀장은 곰팡이로 뒤덮인 몸으로 절뚝거리며 감염시킬 대상을 찾아다니는 듯했다. 최팀장이 걸을 때마다 몸에서 충격으로 포자가 흩날렸다. 그 포자는 다시 물린 직원들의 상처 부위에 닿았고 그렇게 최팀장에게 물렸던 사람들 모두가 하루가 지나면 감염될 것이다.

 그러나 모선 내부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감염된 것은 아니었다. 아직 감염되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것은 선장이었다. 선장은 위스키 두 병을 통째로 마신 후 잠에 들었다. 인혁이 카드키를 빼 가는 것도 몰랐고, 밖에서 어떤 소동이 벌어지는 지도 알지 못한 채로 깊은 잠을 잤다. 선장의 방 문은 인혁이 나간 후로 계속 닫혀 있었기 때문에 호흡기를 통한 포자 감염을 피할 수 있었다. 선장은 아무 일도 없는 듯 창 밖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숙취로 인해 깨질듯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어제 너무 많이 마셨더니 죽겠구만…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해?” 선장은 대충 겉옷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는 쓰러진 직원들이 힘겹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선장은 황급히 그들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사태를 파악하려 애썼다. 그때 온 몸이 연분홍색 균사로 뒤덮인 최팀장이 절뚝거리며 한 직원의 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가 걸을 때마다 포자가 퍼졌다. 그것의 모습은 더 이상 최팀장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팀장,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선장은 최팀장의 모습을 보고 뒤로 넘어졌다. 최팀장은 넘어진 선장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가까이 오지 마, 최팀장, 마지막 경고야.” 선장은 넘어진 채로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최팀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넘어진 선장의 발 끝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탕.

 선내에 총성이 울렸다. 선장은 최팀장의 머리를 맞췄다. 조금 빗겨 맞았지만 총탄은 최팀장의 왼쪽 위 머리를 뚫고 지나가며 머리 절반을 날려버렸다. 쓰러진 최팀장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와 복도 바닥에 퍼졌다. 선장이 쓰러진 최팀장을 살폈을 때 최팀장의 드러난 머릿속에는 뇌의 굴곡을 따라 구부러지며 자란 균사가 가득 차 있는 것이 보였다. 선장은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사태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권총을 다시 장전한 채로 모선 내부를 샅샅이 뒤졌다. 모든 성수자원 직원들과 청소업체 직원들이 손목이나 목덜미를 물어뜯긴 채로 선내 곳곳에 쓰러져 있었다. 그 중 일부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기도 했으나 최팀장과 같이 그들의 붉게 충혈된 눈을 보고 선장은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남은 직원들도 시간이 지나면 깨어나 최팀장처럼 될 것이 분명했다. 선장은 쓰러진 직원들을 직원실로 옮기고 직원실의 문을 잠갔다.

 선장은 고민했다. ‘분명히 이건 감염병이야. 이 행성에 있는 망할 곰팡이에 직원들이 감염된 것이 분명해. 인근 거주행성으로 가야 하나? 이 모선이 거주행성으로 가면 그곳은 어떡하지? 아니, 일단 그곳으로 가야 해.’ 선장은 빠르게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곧장 조종실로 갔다. 그리고 조종실의 항법장치를 이용해 가장 가까운 인간 거주행성을 찾았다. 인구 25억 3000만명이 살고 있는 작은 행성이었다. 선장은 교신기를 통해 그 행성으로 구조요청을 보냈다.

 

 함내 소요사태 발생. 내용. 함내 반란. 귀하의 행성으로 항해하겠다. 생존자 1명. 위급한 상태. 함내 감염병 내용 없음. 격리절차 무시하고 생존자부터 구출 바람.

 

 선장은 구조요청을 보낸 후 곧바로 궤도를 고정해 놓은 모선의 항해장치를 켰다. 인혁과 희수는 하늘에서 울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작은 점처럼 보이는 모선의 엔진이 점화된 것이 보였다.

 “인혁씨, 저기 봐요. 모선이 엔진을 점화했어요. 최팀장에게 물리지 않은 사람이 있었나요?” 희수는 대기권 상층부에 떠있는 모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요, 분명이 모든 직원들이 최팀장에게 당했는데… 누가 시동을 건 거죠?”인혁은 한동안 기억을 더듬었다. 최팀장에게 물리지 않은 사람… 애초에 엔진에 시동을 걸 수 있는 사람은 선장과 조종실 담당 직원들… 인혁의 머릿속에 선장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최팀장이 직원들을 감염시킬 때 선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선장이에요. 유일하게 선장이 물리지 않은 것 같아요. 그 때 선장은 보이지 않았잖아요.”

 “그렇네요. 그럼 어디로 가려고 엔진을 점화한 거죠? 지금쯤이면 모선 내의 사태를 파악했을 테니까… 거주행성으로 가려는 거예요! 혼자라도 살겠다고 사람들이 사는 거주행성으로 가서 구조요청을 하려는 거예요. 거기서 모선이 착륙하고 문이 열리면 포자가 퍼져서 대규모 감염을 막을 수 없어요. 막아야 해요.” 희수는 다급하게 말했다.

 “어떡하죠? 모선으로 들어가야 할까요? 선장이 착륙을 막을 텐데요.”인혁과 희수는 한동안 선장이 포자를 태운 모선을 끌고 인간 거주행성으로 가는 것을 막을 방법을 고민했다. 인혁은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들이박죠.” 희수가 말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말 그대로예요. 이 소형 탐사선으로 모선의 엔진 하나를 들이박아버리자고요. 2개의 메인 엔진 중에 하나가 고장이 나면 장거리 항해를 할 수 없잖아요. 어때요?” 희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런데 모선을 부숴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돌아가죠?”

 “…못 돌아가겠죠.”

 “…”

 “그래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구하는 일이예요. 당장 해야 해요. 시간이 없어요!” 인혁이 보기에 희수는 낯선 행성에서 죽는 것이 두렵지 않은 것 같았다. 인혁은 고민했다. 인혁의 성공적인 인생은 최팀장이 감염되었을 때 이미 끝났다. 인혁은 자신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그동안 일을 위해서 살았다. 오직 이 은하계에서의 성공을 위해 가족도 소홀히 한 채 최팀장을 따라 미친듯이 일해왔다. 그런데 이 행성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포자 몇 개가 인혁의 인생을 끝장내 버렸다. 인혁은 그동안 청소라는 명목으로 모조리 없애 왔던 행성들의 생태계들을 생각했다. 인혁은 자신이 마침내 벌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속죄할 방법이 하나 남았다. 자연은 이제 거침없이 생태계를 파괴해온 인간들에게 포자라는 이름의 벌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혁은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모선을 파괴함으로써 죄 많은 인간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죠. 탐사선의 목표를 모선의 엔진 쪽으로 설정하고 탐사선 엔진을 켤 게요.”

 “잘 생각했어요. 여기서 죽는다는 건 조금 슬프지만… 결국 우리는 옳은 일을 한 거예요.”희수와 인혁은 마지막을 함께할 동료인 서로를 안아줬다. 인혁은 소형 탐사선의 자동 항법장치를 켜고 방향을 모선의 엔진으로 설정했다. 모선은 서서히 대기권을 벗어나고 있었다. 인혁은 엔진 시동버튼을 누르고 탐사선에서 내렸다. 희수와 인혁은 트랙터에 눌린 곰팡이의 균사체 위에 서서 소형 탐사선이 모선을 향해 돌진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좋은 일을 하고 죽네요. 다행이에요.” 인혁은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그래요. 인혁씨 용기 있었어요. 절 구해준 것도, 팀장에게 반대하기로 결정한 것도, 그리고 사람들을 곰팡이로부터 구하기로 결심한 것도. 우린 좋은 일을 한 거예요.” 희수는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인혁의 머릿속에 이상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그동안 무수히 많은 자연을 파괴해왔는데… 그걸 속죄하는 게 왜 똑같이 자연을 파괴한 인간들을 구해주는 거지? 뭐 어쨌든. 이제 죽는데 뭐가 중요하겠어…’ 인혁은 생각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봤다. 소형 탐사선은 이제 거의 모선의 엔진에 가까이 다다랐다. 그런데 그때 선장이 운행하는 모선이 방향을 조금 틀더니, 탐사선이 모선의 엔진에 충돌하기 직전에 탐사선을 피해버렸다. 탐사선은 그대로 직선으로 날아 보이지 않는 우주공간으로 사라져버렸다. 모선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유히 날아 대기권 밖으로 날아갔다.

 “아… 젠장.” 인혁은 자연이 결국 복수를 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잘됐네.’ 인혁과 희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감동란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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