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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토끼와 가짜 달

2022.09.19 12:4209.19

달에 사는 토끼는 밤만 되면 지구인들에게 떡방아쇼를 보여주는 것에 지쳤다.
한국이라는 조그만 땅의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할 말 없을 때

- 아가, 달 좀 봐봐 토끼가 떡방아 찧고 있지?

라는 얼토당토 않은 말을 하고
덩달아서 시인들은

- 쫄깃쫄깃 맛있는 달나라표 떡을 님에게 주고싶어라~

라는 되지도 않는 시를 써댔기 때문에
이들을 좋아해서 실망시키기 싫은 토끼는 밤만 되면 무한 떡방아를 찧어야 했는데,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고 바라만 봐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떡방아를 찧는다는 것은
힘들고 허무한 일이었기 때문에 점점 지치고 앞다리가 아파왔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토끼는 뭔가 아이디어가 떠올라
계란 노른자를 많이 넣고 죽어라 떡방아를 찧어 달 만큼이나 커다란 밀가루 반죽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스카 그림처럼 커다란 토끼 실루엣을 표면에 그려놓으니 누가 봐도 영락없는 진짜같은 가짜 달~!

낑낑거리며 밀어서 떨어뜨려 밤하늘 자신이 살고 있는 달 옆에 둥실 띄워놓고는
불을 끄고 잠을 잤다.

토끼의 얄팍한 꾀는 하루 이틀 잘 먹히는 듯 했지만 이내 이상한 일들이 생겨났다.
중력의 급격한 변화로 지구내부의 압력이 증가하여 휴화산은 활화산이 됐고,
뻥뻥 터지는 화산재와 연기는 하늘을 뒤덮어 사람들은 비명을 질러댔고,
두 개의 달이 불규칙하게 당기는 인력으로 인해 바닷물은 미친듯이 파도쳤고,
곳곳에서 지진과 해일이 일어나 사람들은 세상이 종말이 왔나.. 하면서 절망했다.

하지만 이 때 발표되는 유엔과 각국 정부의 인류이주계획!
조기완성된 한국의 핵융합발전기를 기반으로 차세대엔진이 개발되고
미국의 축적된 우주산업 노하우와 인도의 슈퍼컴퓨터와 일본의 부품산업과 동남아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거대 우주선을 만들어 100년에 거쳐 전 인류를 달로 이주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여차저차 전 인류가 밀가루로 만들어진 가짜 달로 이주를 마쳤을 때,
토끼는 긴 잠에서 깨어났는데, 눈을 뜨고 보니 지구가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자신이 만든 가짜달에는 사람들이 복닥복닥 모여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토끼는 불을 켰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고향에 갑자기 달이 뜨는 것을 보았다.
무척이나 가까워진 토끼와 사람들 사이의 거리..
토끼는 반가운 마음에 달을 전속력으로 네 바퀴 달리며 도움닫기의 힘으로 인류의 새로운 고향, 가짜 달로 점프했다.

사람들과 토끼의 만남은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토끼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사람들은 토끼에게 무한떡방아를 찧게 한 것에 사과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토끼에게 10세 이하 아동들이 펼치는 떡방아 메스게임을 보여줬는데
토끼가 떡방아 지겨워서 보기도 싫고 쿵쿵소리도 듣기 싫다고 했기 때문에
이내 멈추고 떡을 나눠먹으며 남은 축제를 즐겼다.

엄마들은 아기들에게 새로운 달토끼 얘기를 해주게 되었고
시인들의 사랑노래는 더 길어졌다.

가짜 달과 진짜 달은 서로를 빙글빙글 돌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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