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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외투를 입은 사나이

2013.12.25 13:1712.25

 

외투를 입은 사나이

 

1.

  매서운 삭풍에 외투 앞자락을 단단히 틀어쥐었다. 짙은 쥐색의 유행 지난 외투가 무릎까지 늘어져 있어 발걸음이 어기적어기적 힘겨웠다. 조금이라도 열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손과 발 그리고 약간의 얼굴정도를 제외하고는 온통 외투 속에 파묻힌 모습이 마치 동면을 놓친 빙설 속 개구리 같았다. 사실 오래 된 외투는 생각보다 따뜻하지 않았고 단단해서 불편했다. 어깨 위의 다 닳은 견장과 간신히 붙어 있는 왼쪽 팔의 삼베 완장이 바람에 날려 사람을 우습게 만들고 있었고, 가슴 한편에는 그 옛날 누군가 애정을 가지고 채워주었을 액세서리의 옷핀만 앙상하게 남아있었다.

  사람들은 추운 날 따뜻하게 입었다 하겠지?

  하지만 외투는 바람을 막아준다는 명분으로 몸을 옥죄고 있었고, 나는 이 외투의 무게를 이기기 위해 고통 받고 있었다.

뒤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몸을 웅크리고 서 있자니 바람결에 숲의 냄새가 났다. 애틋한 그리움에 고개를 돌려 지나온 여정을 따라 눈길을 들었다. 저 멀리 우거진 숲의 능선이 희미하게 옛 여운을 전해주고 있었다.

  숲에 들른 건 아주 우연이었다. 아니 운명이었나? 머리가 어느 정도 굵어진 나이었지만 여전히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살던 시절, 몇몇 무리와 함께 발을 들여놓았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숲에서 살아야 한단다.”

  어머니는 기대에 찬 눈길로 바람과 풀과 나무들을 바라보셨다. 어느새 나의 가슴에도 신선한 공기가 가득 들어찼고, 달콤한 꽃냄새에 한가득 고인 침이 혀를 아렸다. 숲은 아름다웠고, 풍성했으며, 수많은 생명체가 우글대고 있었다. 저마다 자신이 가진 개성만큼을 보폭삼아 다른 생명과 어울려 살던 곳. 물론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은 아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일해야 했고, 밤에는 맹수를 피해 불을 지피고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서는 생활을 해야 했다. 때론 이웃 숲에서 도적들이 쳐들어오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는 행복했다. 조금은 헐벗고 조금은 위험했지만 그 시절 사람들은 모두 순수했다. 최소한 별을 보던 눈으로 이웃을 볼 줄 알았으니까.

  파괴의 시작은 숲이 완벽하다는 생각에서부터였다. 사람들은 숲에서 주는 것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무리의 유입을 거부했고, 위험을 간과한 채 변화하지 않았다.

아주 작은 결정은 엄청난 결과를 몰고 왔다. 숲은 낯선자들의 차지가 되었다. 낯선자들은 단단한 쇠신과 불타는 창 그리고 독사의 입으로 생명들을 무참히 유린했다. 숲의 사람들은 모두 예전의 그 사람들이 아니었다. 살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고 짓밟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었다. 조금만 더 현명했다면, 조금만 덜 이기적이었다면, 그랬다면 숲의 역사는 계속되었으리라.

  훗훗. 사람은 항상 지나고서야 깨닫는다.

  허허로운 웃음은 쩍진 기침이 되어 발작을 일으켰다. 물 한 모금 넘긴지 오래된 목은 피가 나오듯 쓰라렸고, 며칠 간 곡기 구경을 못한 오장육부가 그 충격에 흔들리듯 아파왔다. 몸을 둥글게 말고 고통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춥다! 바람소리와 함께 추위가 온 몸으로 스며든다. 두꺼운 외투였지만, 차디찬 허허벌판의 한기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외투는 숲을 떠나기 며칠 전, 어머니가 마련해 주신 거였다.

  “이제는 외투가 필요할 거야.”

  가진 것을 모두 털어 어느 퇴역군인에게서 산 낡은 외투였다. 사실 군인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웃을 때 뒤틀리는 입술과 눈꼬리에는 용기와 정의로움보다는 욕심과 음흉함이 넘치던 사내였으니까. 어쨌든 어머니는 어깨 위 너덜대던 견장을 단단히 홀쳐매고 깨끗이 빨아 내게 입혀주셨다. 양어깨가 감당하기에 꽤 무거웠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며칠 뒤, 나는 삼베 완장을 두르고 어머니의 묘에 절을 한 후 숲을 떠났다.

  그 후 외투는 내게 어머니였고, 어느 장사꾼의 음흉한 미소였으며, 선택할 수 없는 무게감이었다. 바라진 겨드랑이에 꽉 낀 외투가 흔적을 남기기 시작한 어느 날 부터는 숨찬 허덕임도 보태어졌다.

  간신히 몸을 돌려 가야할 길을 바라보았다. 흙먼지가 날리고, 바짝 땅에 엎드린 누런 풀 몇 포기만이 간혹 눈에 띠는 살풍경이다. 이곳도 왕년에 가난한 자의 배를 부르게 하고, 그들의 자식들에게는 희망을 선사하던 에덴이었다. 하지만 피땀 흘려 일구어 놓은 논과 밭들은 무디어진 고랑 속에서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너무 많은 희망은 순수함을 잃고 욕망의 탑을 쌓았고, 바벨탑이 신의 분노에 무너지듯 이 희망의 땅도 한순간 사그라졌다.

  이 땅을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꿈과 희망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도 나처럼 이 오래되고 무거운 외투를 걸친 채 떠도는 것일까?

 

  소름끼치는 바람소리와 터벅터벅 힘없는 발자국 소리가 무뎌질 무렵, 지평선의 끝자락에 어슴푸레 오두막 한 채가 보였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나한테 아직도 이런 힘이 있었나?

  놀람도 잠시, 여지없이 몇 발자국을 못가고 다리는 물먹은 미역마냥 축축 늘어졌다. 두 손으로 꽉 잡은 외투에 힘주어 의지하고는 간신히 오두막을 향해 걸어갔다. 조금씩 집의 형태가 또렷해졌다. 그런데 얼기설기 나무판과 가지들로 대충 지어놓은 집은 낡을 대로 낡아 곧 쓰러질 것처럼 허름했다.

아무도 살지 않는 걸까? 실망이 몰려왔다. 배부른 소리! 이 추위에 저런 집이라도 어딘가. 불이라도 피우고 언 몸을 녹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부실한 문은 강한 바람이 불 때면 조금씩 덜컹거렸다. 한쪽이 주저앉은 손잡이에 문의 세월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천천히 문을 열자 끼익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간담을 서늘케 한다.

  "실례합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주인을 위해 예의를 차렸다. 하지만 사람 소리 대신에 훅하며 담백하고 고소한 빵 냄새가 달려 나왔다.

아아!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단순한 빵 냄새가 아니었다. 그 유혹적인 냄새는 누구나가 꿈꾸는 인생의 달콤함과 절정을 불러내는 마법이 들어있었다. 어린 시절 소박하지만 푸짐했던 밥상을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가족들, 하교 길에 각종 분식을 시켜 달려들던 친구들, 지글지글 불타는 고기를 안주삼아 술잔을 돌리던 동료들 그리고 와인 잔을 내밀며 눈을 반짝이던 연인의 붉은 입술. 입에서 침이 한 가득 고였다.

 

2.

  다음으로 나를 반긴 것은 어둠과 몇 십 년 전 어느 여가수의 애달픈 노랫소리였다. 오두막 안은 전체적으로 어둑했다. 희미하게 전기불이 켜져 있었지만, 그나마도 바람에 흔들려 자주 깜박였다. 구석진 선반 위 축음기에서 작게 들려오는 여가수의 노래는 조용한 오두막에서 그 음색이 또렷했다. 자연스레 눈이 오두막에서 가장 밝은 곳인 안쪽 벽 맨 위, 유일하게 햇빛이 들어오는 작은 창문으로 향했다. 어린 아이가 간신히 빠져 나갈 수 있는 작은 크기로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놀라웠다.

  “이런 세상에!”

  오두막 내부가 빵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식기와 재료들 그리고 일부 빵들이 부서져 어지러이 널려 있는 바닥과 창문이 있는 벽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온통 빵이었다. 마치 동화 속 마녀의 집처럼 수백 수천 개의 빵들이 붙어 있고, 그 위에는 갖가지 모양의 과자와 사탕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의심이 들어 손으로 벽을 눌러보았다. 딱딱하게 굳어있었지만 분명 빵이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설사 빵이 상했다하더라도 상관없었다. 허겁지겁 빵을 뜯어 물었다.

  윽, 맛없어!

  입에 넣었던 빵을 모두 게웠다. 담백한 빵 특유의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단맛이나 짠맛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빵을, 또 다른 빵을 뜯어 입에 넣었다. 어떤 맛도 느껴지지 않는 벽돌을 씹는 기분이었다. 그 화려한 외모나 냄새와는 달리 이곳의 어느 빵도 맛은 없었다. 당황스러움은 은근히 배신감마저 들게 했다. 생각해 보니 조금 전 한껏 희열의 냄새를 피우던 빵 냄새마저도 땅에 채 닿지 못하고 마른비처럼 증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빵을 뜯어 입 속으로 넣었다. 살아야 하니까. 며칠 만에 본 유일한 음식이니까.

  “이 자식, 지금 뭐하는 거야?”

  다짜고짜 한 남자가 달려들더니 주먹을 쥐어질렀다.

  “감히 내 빵을 먹어? 이 새끼야!”

  “저 배가 고.......”

  나의 변명은 주먹세례에 묻혀 버렸고, 남자는 계속해서 주먹을 날렸다. 나는 입도 벙긋하지 못한 채, 두 팔로 얼굴을 가리고 바닥에 누워 그 주먹을 고스란히 받았다.

  나에겐 힘이 없었다.

  “미친 새끼. 내 빵 내놔! 이 개새끼야.”

  남자는 거친 말을 쏟아내며 주먹을 내갈겼다. 변명조차 듣지 않는 그의 걸쌈스런 행동이 답답하고 원망스러웠다.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건가? 아니다. 며칠간 끊어진 낟알기에 혀와 내장은 굳었고 죽음이 문턱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 수많은 빵 중에서 아주 조금 먹었을 뿐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살기 위해 몸부림쳤을 뿐이다. 또한 오두막에 처음 들어섰을 때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남자를 봤다면 함부로 빵을 먹지도 않았을 것이다. 슬슬 원망이 화가 되고 화가 분노가 되었다.

  고개를 조금 돌려 곁눈질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눈은 사나웠고, 이를 앙다물어 주먹을 날리는 모습은 살기등등했다.

  이 작자는 아귀다! 이 사람에게는 인정도 윤리도 배려도 없다. 오직 자신의 빵에 대한 욕심과 그 빵을 먹은 나를 죽이려는 생각밖에. 겨우 빵 한 조각에 남자는 기꺼이 살인을 하려했다.

  공포심이 밀려왔고, 나는 젖 먹던 힘을 다해 괴성을 지르며 그 남자를 밀쳐냈다. 꽈당, 소리와 함께 남자가 나가 떨어졌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남자의 공격을 기다렸다. 어쩜 나도 이 순간만큼은 눈빛에 매서운 살기를 띠고 있는 지도 몰랐다. 남자는 한쪽 팔에 기대 몸을 일으키고는 나를 쏘아보았다. 일찰나 남자의 눈빛이 움찔하며 흔들렸다.

  “쥐새끼 같은 놈!”

  지친 남자는 벌러덩 누워 숨을 헐떡였다. 남자의 몸에서 공격의 의사가 없어졌음을 느낀 순간,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면서 나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두 손이 바르르 떨려 말을 듣지 않았다. 어릴 적 물감을 섞듯이 주변이 소용돌이쳤고, 나를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웅웅 울리며, 세상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까무룩 정신을 잃기 전 문득, 이제는 빵 냄새가 나지 않는다, 생각했다.

 

  어머니의 젖을 한껏 물고 암팡지게 빨았다. 따뜻한 모유가 입 속을 지나 온 몸에 온기를 주었다.

  “어머니.”

  자애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은 분명 어머니였다. 뽀얗고 부드러운 품으로 고개를 더욱 파묻었다. 보동보동한 젖을 양손으로 힘껏 쥐었다.

  어머니의 향기를 맡고 싶다. 아궁이의 알싸한 냄새와 향긋한 분내가 섞인 어머니의 체취!

  숨을 양껏 들이켰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냄새가 나지 않았다. 의아한 생각에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부드럽게 웃음 짓고 있는 눈! 어머니.

  눈에서 점점 웃음이 사그라지더니 그 동그랗고 예쁜 눈이 옆으로 쭉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광기가 들어찼다. 코는 앙바틈하면서도 코끝이 뭉툭했고, 입도 표독스럽게 변해갔다. 두 손을 꽉 채우던 젖 무더기는 투박한 사내의 손이 되었다. 그 사람은 주먹을 들었고 나를 내려치려 했다.

  “아악-.”

  놀라서 벌떡 일어나자, 남자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릇과 수저를 들고 눈이 휘둥그레져 서 있었다.

  “난 그저 배고파 보이기에........”

  남자가 한 발짝 다가왔다.

  순간 살기가 가득했던 남자의 얼굴이 지나갔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 누워있던 조리대 아래쪽으로 내달렸다. 조리대 너머에 있는 남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봐, 그렇게 놀랄 건 없어. 아깐 내 빵을 먹는 모습에 화가 나서 순간....... 배고픈 사람에게 그래선 안 되는데. 사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어. 문득문득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어쨌든 난 지금 빵 만들기도 미루고, 자네를 살렸다고........”

  횡설수설 하던 남자는 생전 처음 웃어보는 마네킹처럼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아까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한 조각의 빵을 먹고, 광기가 가득한 남자에게 맞았던 순간을. 그리고 그 남자의 표정에서 지금은 살기가 사라졌음을.

천천히 몸을 일으켜 남자를 바라보았다. 움푹 팔자주름과 피곤에 절은 눈 밑 어둠까지. 남자는 나보다 나이가 많아보였다. 제법 긴 머리는 감은지 며칠 된 것처럼 떡이 져 있었고, 피부는 햇빛을 본지 오래된 것처럼 창백했다. 손은 말할 것도 없고, 옷 여기저기에 밀가루가 묻어 있었다.

  “, 나머지는 자네가 알아서 먹어. 자네 때문에 너무 시간을 허비했어.”

  마침 소리가 났고, 남자는 급히 오븐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한쪽에 세 개의 오븐이 있었다. 그 중 두 개는 빵을 굽고 있었지만 다른 하나는 사용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오븐 앞쪽 길고 널찍한 조리대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반죽을 하는 듯했고 그 옆에는 재료 포대들이 잔뜩 널려있었다.

  남자는 오븐을 열어 노릇하게 구워진 빵을 꺼내고 다른 반죽을 오븐 속에 넣었다. 빵을 조리대로 가져와 그 위에 투명한 시럽을 바르고는 여러 가지 모양의 과자와 사탕을 붙었다. 잠시 후 방 안에 가득한 여느 빵들처럼 모양이 갖추어졌고, 남자는 아직 빵이 없는 벽 한 구석에 그것을 붙였다.

  “, 됐어.”

  빵을 붙이는 기이한 행동에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왜 벽에 빵을 붙이세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목소리가 작았나, 하는 생각에 남자 곁까지 다가가 다시 물어보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대신 빵이 가득 들어찬 남자의 눈이 보였다. 얼굴은 빵의 풍성함만큼이나 자신감이 배어나왔고, 빵의 먹음직스러움만큼이나 화색이 돌았다. 작업으로 굽은 척추가 바로서고 어깨도 올라가 있었다.

  자신의 작품에 만족의 미소를 짓던 남자는 틱틱 거리는 레코드를 갈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이번 레코드의 주인공은 힘찬 남성 성악가의 오페라였다. 어두운 오두막에 활기를 주는 노래에 맞춰 남자도 큰 용기에 이것저것 재료들을 섞었다.

  “먼저 밀가루를 체에 내리고, 이스트를 조금 넣고, 소금도 뿌리고, 달걀에.”

  남자는 자신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중얼거리며 빵을 만들고 있었다.

  “오일도 넣고, 아참, 꿀도 넣어야지?”

  꿀? 아까 맛보았던 빵들에게서 단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단맛은 고사하고 어떤 맛도 없었다. 하지만 빵을 만들어본 적 없는 문외한이 보기에도 그는 아주 많은 꿀과 소금을 넣고 있었다.

  저렇게 많은 재료를 넣는데, 왜 빵은 맛이 없었던 걸까? 정신을 잃기 전, 허겁지겁 먹던 빵의 벽돌 맛이 생각나자 저절로 인상이 써졌다.

  남자는 잘 섞인 반죽을 꺼내 옹골지게 치대기 시작했다. 빵 만드는데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까는 죽일 듯 노려보던 나라는 존재조차 까맣게 잊고, 엷은 웃음을 지으며 작업에 열중했다. 그러고 보니 빵을 만들 때의 웃음은 사과할 때의 어색한 웃음과 달리 매끈하고 부드러웠다.

  나는 그제야 눈앞의 분유가 타진 그릇을 보았다. 입에 침이 고였고 조심스레 팔을 뻗어 그릇을 끌어당겼다. 드르륵 소리에 놀라서 남자를 바라보았지만 남자의 관심은 오로지 반죽에만 머물러 있었다. 나는 그릇을 들어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넣었다. 달짝지근한 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분유를 먹어본 지 오래되어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일반적으로 애들이 먹는 분유 같지는 않았다.

  드디어 바닥을 보인 그릇을 아쉽다는 듯 긁었다. 찍찍 소리가 배고픈 쥐의 울음 같았다.

  “이봐, 길을 막고 있잖아. 저리 비켜!”

  밀가루 포대를 가지러 가던 남자는 못마땅한 눈으로 내려 보며 살천스레 나무랐다. 의자에 앉아 분유를 홀짝였던 나는 벌떡 일어나 길목을 터주었다.

  “, 죄송합니다.”

  내가 일어나자 남자는 급히 밀가루를 가져와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반죽을 치대자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지만 반복적으로 팔을 들어 쓰윽 닦아낼 뿐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배가 부르자 여유가 생겨났다. 여유가 주는 용기에 이번에는 반드시 빵 만들기에 집착하는 이유를 들어야겠다,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더 큰 소리로.

  “, 빵은 왜 만들고 계세요? 드실 것도 아니면서?”

  남자는 애송이를 보듯 약간의 경멸과 측은함이 베인 웃음을 지었다.

  “빵이 있어야 살지.”

  명쾌한 대답에도 나의 표정이 시원치 않자 남자는 답답하다는 듯 설명을 보태었다.

  “자네와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빵을 먹어. 그렇다는 건, 빵이란 생명이요 힘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빵이 많으면 많을수록 안전해. 빵이란 누구의 무시도 받지 않고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는 보증수표 같은 거야. 그래서 빵을 만들고 있어.”

  “아무리 그래도 빵을 벽에다 붙이는 건.......”

  남자는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 웃음이 맘에 와 닿지는 않았다.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친구구만. 이봐, 세상은 누가 더 많이 가지느냐의 게임이야. , 보라고! 난 아주 많은 빵을 가졌어. 부자인거지. 그 누구보다 철저하게 계산하고 부지런하게 행동한 결과물이야. 이 빵이 있는 한, 세상 누구든 머리를 조아리고 나를 찾아오게 되어 있어.”

  남자는 스스로가 대견한 듯 웃으며 반죽을 매만졌다. 그리고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래서 난 발효를 하지 않아. 발효는 괜스레 시간만 잡아먹거든. 그 시간에 하나라도 더 구워내야 큰 부자가 될 수 있어.”

  남자는 자부심이 가득한 눈길로 오두막 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직 빵으로 채워지지 않은 벽이 보이자 의기소침해져서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직 빈 곳이 많아. , 미치겠다.”

  남자는 밀가루가 잔뜩 묻은 손으로 머리를 쥐었다. 희끄무레한 머리털과 잔주름들이 그를 더욱 늙수그레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난 남자의 행동에 온전한 지지를 보낼 수는 없었다. 물론 빵을 가져야 한다는 말에는 찬성이었다. 나도 그동안 저 들개마냥 달려드는 거친 세상을 살아봤으니까. 나도 빵을 가지고 그동안 나를 무시했던 세상에 던져주며 한껏 조롱해주고 싶으니까. 그래도 빵을 저리 많이 만들어 벽에 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주린 배를 채우지 않는 빵이 빵이란 말인가?

  “하지만.......”

  “하지만은 없어. 그리고 난 지금 너무 바쁘니까 말 시키지 말라고.”

  그 때 다시 오븐에서 타이머 소리가 났고, 남자는 달려가 빵을 꺼냈다. 그리고 방금 열심히 만든 반죽을 넣었다. 역시나 아까처럼 오븐에서 꺼낸 빵 위에 장식을 하고 벽에 붙였다.

  빵 만들기에 정신없는 남자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엉덩이가 불편해졌다. 떠나야 할까? 아님 더 있어도 되는 걸까? 간만에 느끼는 온기와 배부름에 노곤해진 몸은 무거웠다. 떠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무거움만큼이나 마음도 저 삐꺽거리는 문을 나서고 싶어 하지 않았다.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외로움과 열등감에 발 디디고 싶지 않았다. 살다보면 춥기도 하고 배고프기도 한다는 걸 누구나가 안다. 하지만 그것이 더 두려운 이유는 타인의 눈빛 때문이다. 경멸이 혹은 동정이 가득한 그 눈빛에 심장은 쪼그라들고 눈은 지렁이처럼 바닥만 파고들었다.

  이 오두막에 있고 싶다. 여기에 소속되고 싶다. 누군가와 대화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여기에서라면.......굶어죽을 일은 없을 터였다. 아무리 맛없는 빵도 먹을 수는 있으니까. 여기에 좀 더 머물러도 되냐고 물어볼까?

  하지만 남자는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일을 방해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듯 여전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모습에 서운함이 알씬거렸다.

  남자는 의자를 하나 끌어당기더니 빵을 들고 위로 올라섰다. 마지막 하나 남은 위쪽 작은 창을 빵으로 덮으려는 것 같았다. 유일하게 햇빛이 들어오는 곳이었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았다.

  “, !”

  낡은 의자가 흔들렸고, 빵을 들고 있던 남자는 중심을 잡지 못했다. 빵을 버리고 벽을 짚으면 될 것을 끝까지 빵을 포기하지 않아 더 위태로웠다. 나는 얼른 달려가 의자와 남자를 붙들었다. 남자는 간신히 균형을 잡았고, 웃으며 내게 말했다.

  “고마워. 자네 도움으로 내 빵이 망가지지 않았어.”

  지금껏 본 표정 중에 가장 부드럽고 환한 미소에 머쓱해진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을 대신했다. 그것도 잠시, 남자는 창문 위에 빵을 붙이며 콧노래를 웅얼거렸다. 누가 보아도 그는 행복해 보였다.

  그 때 갑자기 주변의 집기들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빵을 만들던 남자의 손이 멈추었고, 위험을 감지한 들고양이 마냥 바짝 곤두섰다.

  “.......놈이 왔어!”

  점점 흔들림이 심해지더니, 물건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남자는 공포에 찬 얼굴로 사용하지 않는 오븐으로 달려가 문을 열고 몸을 구겨서 안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

  나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공포심이 들었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이 오두막을 향해 달려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자가 말한 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는 못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남자가 들어간 오븐 문을 잡고 매달렸다.

  “문 좀 열어주세요.”

  오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남자의 험악한 퉁바리가 들려왔다.

  “여기에 더 이상의 공간은 없어. 그렇게 문을 잡고 있으면 나도 위험하니까 저리 꺼져버려.”

  나는 할 수 없이 조리대 밑에 들어가서 그 다리를 붙잡고 앉았다. 그것으론 부족하다는 생각에 외투자락으로 조리대 다리를 꽉 묶기까지 했다. 곧 세상이 요동을 쳤고, 이번에는 진짜로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나는 온갖 신을 찾아 기도를 중얼거렸다.

 

3.

  한참 후, 거짓말처럼 대지와 바람의 분노가 가라앉았다. 오두막은 각종 식기며 밀가루, 설탕, 빵 등이 바닥에 떨어져 엉망이었다. 그제야 나는 방금 죽음에서 아주아주 살짝 비켜났다는 사실에 긴장이 풀려 빙빙 도는 머리를 조리대 다리에 기대었다.

  어지럼증이 가라앉을 무렵, 빵의 냄새가 났다. 담백하고 풍성한 유혹의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나도 모르게 몸을 일으켜 빵의 냄새를 좇았다. 하지만 빵 냄새는 왔던 것만큼이나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애초에 빵 냄새는 착각처럼 느껴져 섭섭할 정도였다.

  오븐 문이 열리고 남자가 쑥 튀어나왔다. 남자는 가만히 서서 방금 내가 빵의 냄새를 맡던 것처럼 숨을 한껏 들이켰다. 그러나 빵의 냄새는 남자에게도 유속 빠른 여울이었던지, 금세 눈을 뜨고 주변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놈의 힘이 약했군.”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엉망이 된 주변의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난장판이 된 오두막을 보고 있자니 다시금 이 오던 순간이 떠올랐다. 온 세상이 토하듯 소리를 지르며 몸을 떨었다. 오두막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돌개바람 속에서 내휘둘렸다. 그 광폭함에 두려워 숨조차 멎는 듯 했다. 레코드에서 흘러나오는 남성의 노랫소리가 단말마의 비명처럼 끔찍하게 변해갔다. 눈을 꼭 감고 앞의 조리대 다리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는 것이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살 떨리는 경험에 맥아리 없는 나와 달리, 남자는 주방을 치우는데 열심이었다. 부서지지 않은 빵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까지 쉬었다. 방금 전 혼자만 살겠다고 오븐에 달려 들어가던 겁먹은 얼굴과는 딴판이었다.

  인정머리 없는 놈! 화가 치밀어 혀 아래까지 욕지거리가 튀어 올라왔다. 그래도 욕을 할 수는 없었다. 처음 오두막에 와서 정신을 잃었을 때 그가 분유를 먹여주었다. 타인에게 당연히 인정 베풀기를 바라는 것은 이기심으로 취급되는 세상에서 그 정도면 바른 현대인이었다. 하지만.......경고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답답하다. 또 외투가 몸통을 죄어와 숨 쉬기가 거북했다. 하지만 슬쩍 본 외투의 앞섶은 모두 풀어져 있어 흉부를 괴롭히는 것은 없었다.

  “이봐, 밀가루 포대 좀 다시 쌓고, 저기 떨어져 있는 사탕과 쿠키들은 이 상자에 다시 넣어놔. 시간 없으니까 빨리해!”

  남자의 명령에 나는 멈칫했다. 슬그머니 분노가 가라앉았다. 대신에 기쁨이 그 자리를 메웠다. 메마른 벌판이 집이었던 내게 그의 말은 명령이 아니라 초대였다. 나도 이 오두막의 한 일원으로 소속될 수 있다는 의미. 이제는 지독히도 외롭고 춥던 바깥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통지서였다.

  이제 나에게도 울타리가 생겼다.

  노동의 기쁨과 공동체라는 마법에 걸린 나는 기꺼이 포대를 쌓고 사탕과 쿠키들을 줍고 떨어진 빵들을 치웠다. 시간이 지나자 목덜미와 겨드랑이가 축축해졌지만, 입에서는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다. 오직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건 외투였다. 자꾸만 긴 외투자락이 바닥을 쓸어 행동이 번거로웠다.

  주방을 얼추 정리한 남자가 축음기를 제자리에 놓고, 달콤한 노래의 레코드로 갈아끼우자 오두막은 다시 아늑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남자는 흡족한 표정으로 빵 만들 준비를 했다.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오두막을 보면서 나의 머릿속은 에 대한 궁금증으로 들어찼다. 어떤 녀석이기에 세상을 이렇게 뒤집어 놓을 수 있는지. 무한 궁금증은 무심결에 툭하니 튀어나왔다.

  “, 놈이 누구를 말하는 거죠? 그 놈이 아까 그 폭풍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세요?”

  침 먹은 지네 모양 남자는 반죽을 준비하던 손을 멈추었다. 순식간에 두려움과 공포가 그의 생기를 앗아간 것이다. 레코드가 튀며 여가수의 끝나지 않은 노래가 오두막 안에 일렁였다. 그제야 남자는 정신을 차렸다.

  “놈은 아주 무지막지하고, 무서운 놈이야. 이 오두막과 내가 만든 빵을 노리고 있어. 놈은 모두 송두리째 가져가 버릴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어마어마해. 예전에도 놈이 빵과 그 사람을.......”

  남자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나를 흘끗 보고는 서둘러 밀가루를 체에 내렸다. 더 이상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고, 남자는 빵을 만드는데 다시 열중했다.

하지만 나는 남자가 툭하니 던져놓은 놈에 대한 미지수를 푸느라 머리가 정신없이 돌아갔다.

  도대체 놈은 누굴까? 왜 이 오두막과 빵을 가져가려는 거지? 또 놈의 힘은 얼마나 센 거야? 여기서 먼저 살고 있던 저 남자의 이야기대로라면 놈은 엄청난 녀석이었다. 아까 그 진동을 나도 느꼈잖은가. 이 세상을 삼켜버릴 듯 날뛰던 놈의 포효를.

  놈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바람소리가 예사스럽게 들리지 않았다. 벌판을 거닐며 느꼈던 배고픔과 추위보다 더한 공포감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래, 놈을 조심해야 해!

  “, 이제 또 반죽을 해볼까? 밀가루에, 이스트에, 달걀과 오일을 넣고........”

  남자는 다시 평온을 찾은 표정으로 재료를 하나씩 넣었다.

  ‘밀가루, 이스트, 달걀, 오일, 소금, , 우유........’

  어느 새 나는 남자가 반복해오던 반죽 만드는 순서를 외우고 있었다.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때 문득 다른 궁금증이 들었다.

  “, 아실지 모르겠지만, 아까 먹은 빵에서 맛이 느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맛이 왜 필요해? 빵은 빵이기만 하면 돼. 그 따윈 필요 없다고.”

  남자는 별걸 다 묻는다는 표정으로 토라져 반죽을 쳐다보았다. 나는 혹시나 오두막 밖으로 쫓겨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 이상 묻지 못했다.

 

  손은 빵을 만드느라 바쁘게 움직였지만, 남자의 표정은 그와 반대로 편안해졌다. 덩달아 나도 편하게 앉아 그가 빵을 만들고 붙이는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빵을 만드는 그의 성실한 모습을 보면 볼수록 처음 말랐다고 느꼈던 몸에서 되레 강인함을 찾을 수 있었다. 그가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훔쳐내는 횟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존경심도 들었다.

  ‘그 누구보다 철저하게 계산하고 부지런하게 행동한 결과물이야.’

  남자의 단단한 목소리가 기억 저편에서 획하니 박혔다. 아까는 단순히 잘난 체하는 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는 빵을 빨리 만들어 내기 위해 계획성 있게 행동했으며, 그 바지런한 행동으로 노릇하게 구워진 빵들이 오두막 안을 차곡차곡 메워나갔다. 이 세상에 남자보다 빨리 그리고 많이 빵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이제 남자의 날카로운 눈빛은 무서운 게 아니라 지적이고 확신에 찬 사내의 자신감으로 비춰졌다. 가 만든 빵들조차 거대한 파도에 꿈쩍 않는 포구의 말뚝처럼 품위 있었다. 남자는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난 인간이었다. 그는 이 많은 빵들을 가질 자격이 충분했다.

  자신감과 열정, 품위 그리고 부유함은 오두막 밖, 위태로운 삶을 영위하는 자들에게는 찾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한 조각의 빵에도 자존심을 내팽개치고 사납게 짖어대던 사람들. 추위에 각박해진 피부와 퀭한 사냥개의 눈빛이 그들이 가진 전부였다. 빵과 남자에 대한 공경심은 밖에서 느꼈던 추위와 배고픔을 멀고도 가까이 느끼게 해주었다.

 

  아, 나도 빵을 만들고 싶다!

 

  “밀가루, 이스트, 달걀, 오일.......”

  나도 모르게 남자의 행동에 맞추어 재료명을 웅얼거렸다. 그 소리에 남자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네도 빵을 만들 줄 아는 거야? 왜 말을 하지 않았지? 어서 와서 같이 만들자고.”

  나는 빵을 만들어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빵을 만들고 싶었다. 빵을 만들고 싶다. 저 보드랍고 말캉말캉한 반죽에 손을 넣어 문질러 보고 싶고, 오븐에서 막 꺼낸 빵의 열기를 느끼고 싶다.

  솔직히.......저 남자는 빵 맛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왠지 내가 빵을 만들면 담백하고 고소한 빵맛이 날 것 같았다. 더 향긋한 빵 냄새까지.

  “, 어서 오라고. 시간이 없어.”

  나는 기쁜 마음으로 남자 곁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와 호흡을 맞춰 반죽을 하기 시작했다.

  “밀가루, 이스트, 달걀.......”

  “밀가루, 이스트, 달걀.......”

  우리는 함께 말하고, 함께 행동하며, 서로에게 웃음을 보냈다. 눈빛 속에는 희망과 신뢰가 반짝였다. 맘 속 한 구석 열정이란 놈이 뛰쳐나와 빵 만들기에 중독되었다. 뇌에서 끊임없이 분출되는 엔도르핀은 기분을 붕 뜨게 했다. 행복했다. 빵은 위대했다. 수십 년간 느껴보지 못했던 나란 존재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것은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이 외투를 사주었던 어머니도 하지 못한 엄청난 일이었다.

  마지막 남은 한쪽 벽의 절반이 빵으로 거의 메워질 때쯤, 옆구리가 쓰린 느낌에 나는 잠시 손을 멈췄다. 아무래도 외투에 스쳐 상처가 난 것 같았다. 멈춰진 손길에 남자는 의아히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시간도 없는데?”

  “그게 저, 외투가 불편해서.......”

  괜한 죄송스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인가 했네....... 벗어서 저쪽 아무데나 .”

  남자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다시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쉬이 외투를 벗을 수 없었다. 어머니가 입혀주신 그 날부터 당연히 입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내 몸의 일부가 된 옷이었다. 처음 옷을 입었을 때, 그 무게감에 돌아서 옷을 벗으려 했지만 벗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보고 계셨고, 이웃 사람이 보고 있었고, 선생님이, 경찰이, 판사가, 군인이 그리고 봉긋이 가슴 솟은 여인이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깐! 지금 땀이 나잖아. 빵에 땀방울이 떨어지면 안 되는데. 금방이라도 땀방울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얼른 땀을 훔치고는 외투를 벗었다. 약간의 찜찜함이 있었지만, 빵을 보자 그마저도 날아가 버렸. 어깨를 짓누르던 무게감이 사라지자 홀가분하고 상쾌했다. 옆구리가 더 이상 쓰리지 않았고 숨쉬기도 한결 편해졌다. 자신감이 충만해진 나는 외투를 쉬이 의자에 던졌다. 단추 하나가 의자에 부딪혀 깨져버렸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빵을 만들었다.

  이상하다! 한결 쉽게 반죽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손이 자꾸만 제멋대로 뻗대었다. 반죽을 들어 내려치는데 힘 조절이 되지 않았다. 공중으로 반죽을 들까불다 놓쳐 밀가루가 날리기 일쑤였다. 몸이 외투 없는 생활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할 정도로 내 몸이 외투에 지배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웠다.

외투를 괜히 벗었나?

  하지만 새로운 시대에 옛 것은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뿐이었다.

  그 때 오븐에서 빵이 다 되었다는 소리가 났다. 불쾌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 나는 남자를 재치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오븐에서 빵을 꺼내고 조리대로 가져가 시럽을 발랐다.

  남자는 내 행동에 기가 찬 표정으로 입만 뻐끔거렸다.

  “자네.......정말.......”

  “빵이 정말 잘 구워졌어요.”

  내 순진한 표정에 남자는 그제야 입꼬리를 올리며 다가왔다. 그리고 빵을 다부지게 앞으로 가져가 과자와 사탕으로 장식했다. 빵을 빼앗긴 손이 허전했지만,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어차피 빵은 남자의 것이었다. 애써 서운함을 담담히 누르며 치워두었던 반죽을 찾았다.

  장식이 마무리된 빵을 들고 남자가 나를 불렀다.

  “, 이제 문 쪽을 시작해 볼까?”

  남자의 말에 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문 아래쪽에 빵을 붙였다. 하지만 문이 흔들리며 빵이 떨어졌다. 다시 붙였지만, 역시 툭하고 떨어졌다. 다시 또 툭! 이번에는 헐거워진 경첩이 바르르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를 놀랜 눈으로 바라보았다. 경첩의 흔들림은 문 전체로 퍼졌고, 벽면을 타고 오두막 전체를 흔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축음기의 경쾌한 노래가 급박한 남성의 울부짖음으로 변해 있었다.

  “놈이 왔어요!”

  나는 얼른 달려가 오븐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먼저 오븐으로 들어가자 남자의 얼굴이 하얘졌다.

  “이봐, 거기는 내 자리야. 어서 나오라고!”

  하지만 나는 놈에 대한 공포심으로 안쪽에서 문을 꼭 잡고 열어주지 안았다. 다급한 두드림이 멈추자 그제야 나는 살짝 문을 열어 밖을 보았다. 오븐을 두드리던 남자는 아까의 나처럼 조리대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놈의 힘이 더 강해졌고, 또 끈질겼다. 조리대가 벌러덩 뒤집어지자 남자는 와장창 유리 깨는 소리를 내며 마지막으로 메워두었던 창문에 날아가 박혔다.

  “아악, 살려줘-!”

  엉덩이가 창틀에 끼인 그는 잡을 것을 찾아 얼굴과 팔다리만 바동거렸다. 하지만 미친 듯이 휘젓는 손은 몸을 지탱해 줄 벽을 잡는 것이 아니라, 날아다니는 빵을 먼저 잡았다.

나는 뛰쳐나가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손이 닿지 않았다. 그 때 어디서 날아왔는지 외투가 손에 잡혔다. 나와 남자는 외투를 밧줄삼아 한 쪽씩 맞잡았다. 물론 남자의 다른 손에는 빵이 들려있었다. 나는 외투를 있는 힘껏 잡아당겼고, 질긴 외투는 밧줄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놈의 힘은 내가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 외투가 너무 두꺼워 아귀의 힘이 빠져 오래 붙들고 있을 수 없었다. 팔에서도 점점 힘이 빠져나갔다. 외투도 결국 견디지 못하고 겨드랑이 실밥들이 터져나갔다.

  “으윽, 안 돼!”

  두 발을 벽 틈에 꽂고 버텨보았지만, 남자의 몸은 자꾸만 빨려나갔다.

  “아악, 살려줘. 살려 달라고. 나를 놈에게 보내지 말아줘. 제발!”

  남자는 창문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남자가 목표였다는 듯, 놈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고, 동시에 꽉 쥐고 있던 외투의 반대쪽이 툭하니 머리로 떨어졌다. 엄청난 충격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그렇게 앉아있었다.

 

  조용했다. 이상하게도 남자가 나가고 나자 사방이 조용해졌다. 축음기에서도 더 이상 그 기괴한 노래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어릿어릿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여기 저기 떨어져 엉망이 된 재료들과 빵들뿐이었다. 벽들을 빼곡히 메웠던 빵들이 부서지고 흐트러져 그 풍요롭고 웅혼한 모습을 찾을 수 없어, 가슴이 저려왔다.

  어떻게 찾은 행복인데? 어떻게 찾은 행복이었는데?

  나는 외투를 품에 안아들고는 어머니를 힘껏 불렀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전 어떻게 해야 하죠, 어머니?”

  나의 외침이 오두막 안을 맴돌아 창 너머로 흘러나갔다. 외투에 고개를 묻고 어깨를 들썩이며 꺼이꺼이 울었다.

 

4.

  어느새 잠이 든 나는 외투를 푹 뒤집어 쓴 채 바닥에 웅숭그리고 누워있었다. 자연스레 밝음을 쫓는 눈길 끝자락 창문에 햇빛이 맺혀 부시었다. 눈길을 돌리니 그 빛 무리 아래 먹음직스럽게 윤기 흐르는 빵들이 기우뚱 걸려있었다. 비록 깨지고 부서졌지만 과거 완성된 빵의 위엄을 품고 있었다.

  ‘빵은 생명이며 힘이다.’

  누군가의 음성이 나를 일깨웠다. 대단한 것이라도 생각해낸 양 가슴이 뛰었다. 어느새 놈과 남자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고 다시금 반죽의 부드러움과 완성된 빵의 먹음직스러움이 맘을 설레게 했다.

  빵을 만들어야 한다. 이 폐허를 빵으로 채워야 한다.

  부푼 첫걸음을 내딛는 망아지처럼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외투가 바닥에 떨어졌고, 그와 함께 방금까지 치솟던 무언가가 사그라졌다.

  나에겐 아직 버거운 외투가 있었다.

  유령 같은 외투를 집어 건성건성 먼지를 털었다. 옷은 여기저기 실밥들이 터져 너덜거렸고, 단추 몇 개도 사라져 예전의 그 외투가 아니었다. 숨 쉴 때마다 허덕이게 만들고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로 한시도 몸에서 떨어지지 않던 외투는 예전의 그 외투가 아니었다.

  순간 오븐에서 하며 소리가 났다. 모든 것이 무너지기 전, 내가 직접 만들어 넣었던 반죽이 구워진 소리였다. 몸이 저절로 빵을 꺼내기 위해 오븐을 향했다. 오븐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오븐을 열었을 때, 나는........그 강렬한 빵의 냄새에.......살아있음을 느꼈다! 이젠 알 수 있었다. 온몸의 감각을 깨우고 지나온 환희가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이 유혹의 냄새는 놈이 가져가 버린 것을 대신해 놓고 가는 놀음차였다. 그리고 매번 쉬이 닳아 갈증만을 남겼던 것처럼 지금도 빵의 냄새는 재빨리 자취를 감췄다.

  조리대 위에 죽은 것처럼 누워있는 외투를 제치고 빵을 내려놓았다. 사탕과 과자로 정성스레 빵을 완성했다. 내가 만든 빵이었다. 나는 빵을 만들 수 있었다. 허름한 외투에 치이며 떠돌던 패배자가 아니었다. 난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미친 사람처럼 싱크대를 뒤졌다. 조리도구 중 큰 가위를 찾아들었다. 그리고 가위로 외투를 쓱싹쓱싹 잘라내기 시작했다.

  새 시대에 옛것은 거추장스럽다.

  어깨부터 겨드랑이까지 시원하게 잘라내고 너무 길었던 밑자락도 주저 없이 잘랐다. 견장도 완장도 모두 잘라내었다.

  그러나 과거 없는 현재와 미래는 없다.

  옷핀에서 잠시 손이 멈추었다. 하지만 핀도 마저 빼어 나머지 것들과 함께 쓰레기통에 버렸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하는 방법은........

  단추를 좀 정리하고 실밥도 정리하자 옷의 형태를 갖추었다. 탁탁 털어 완성된 옷을 들어올렸다.

  새로워지면 된다!

  외투는 조끼가 되어있었다. 조끼를 몸에 걸친 첫 느낌은, 가벼웠다. 겨드랑이 중간부분까지 잘라내어 품도 적당했다. 그러면서도 등은 따뜻했다. 외투는 새 시대에 새롭게 태어났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옆에 떨어져 있는 설탕 봉지를 주워들었다. 레코드를 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감미로운 여가수의 노래가 오두막 안을 감싸자, 나는 밀가루 봉지도 줍고 뒤집어진 그릇도 원래대로 놓았다.

  빵을 만들자. 빵을!

  희망이 느껴졌고,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밀가루에 이스트를 넣고, 거기에 달걀, 오일, 소금, 꿀을 넣고. , 우유도 넣어야지. 그래, 이번에는 견과류도 넣자.”

  나는 재료를 넣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는 반죽을 해도 불편하거나 손이 제멋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다된 반죽을 오븐에 넣어 타이머를 맞추었다. 다시 조리대로 달려가 밀가루에, 이스트, 달걀, 오일, 소금을 넣고.......잠시 후 오븐에서 소리가 났다. 도토리를 본 다람쥐처럼 쪼르르 달려가 빵을 꺼냈다. 자신만만하게 눈을 감고 빵의 냄새를 들이마셨다. 날듯하던 냄새가 아스라이 사라져갔다. 실망스러웠다. 빵을 조금 뜯어 입에 넣었다.

  “, 밀가루 맛이잖아?”

  빵에서는 밀가루 맛이 철철 흐르고 있었다.

  제기랄! 도대체 왜 이러지? 잘못된 것은 없었다. 남자가 넣었던 것보다 더 많은 꿀과 설탕을 넣었기에 은근히 맛은 자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맛도 나지 않던 남자의 빵만큼이나 먹기 괴로웠다. 다시 빵을 뜯어 입에 넣었다. 혀를 굴려 맛을 음미해보았다. 밀가루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주 약하게 짠 맛도 있었다. 분명 짠맛이었다. 미약하지만, 맛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남자보다는 나은 결과물이었다.

  빵들이었다! 황토빛이 감도는 먹음직스러운 빵.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고 든든해졌다. 빵은 그런 존재였다.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빵은 빵이기만 하면 되었다.

  “이 정도면 됐지. 맛은 무슨!”

  나는 반죽대로 달려가 하나하나 재료를 그릇에 넣었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반죽을 했다. 발효는 필요 없었다. 그게 더 큰 부자가 되는 남자의.......아니, 내 노하우였다. 오븐에 반죽을 넣고 타이머가 울리면 빵을 꺼낸다. 그리고 조리대로 가져와 갖가지 모양들을 붙여 장식을 한다. 남자의 것보다 더 먹음직스럽게! 더 화려하게!

  그 때였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군청색의 두꺼운 외투를 걸친 약간은 앳된 청년이 안으로 들어섰다.

  “,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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