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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공짜 커피를 조심해 -3

2023.04.06 19:1504.06

우리 회사는 좆소다. 말을 안 했던가? 이정도면 유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중소라는 기업의 탈을 쓰고 있긴 한데, 참나, 눈 가리고 아웅이다. 회사의 기업 문화가 좆소급이면 좆소지. 좋은 사람들로 인해 어찌어찌 간신히 굴러가고 있는 형국이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토요일인 오늘 경기도 어드메에 있는 후영 엘리베이터 소유 나사 공장에 간다. 왜 토요일에 일하러 가느냐. 이번주는 내가 상디 담당이기 때문에.

상디는 사장님의 개다. (실제 개다.) 이름이 상디인 이유는 스트릿에서 굴러먹다가 어디서 눈꺼풀 부분을 크게 할퀴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피스에서 눈에 상처가 있는 놈은 조로다. 사장님이 그 둘을 착각한 거다. 그때 가서 조로야, 조로야ㅡ 해도 애가 꿈쩍도 않았기 떄문에 결국 상디로 낙찰 되었다.

아무튼 우리 똥개 상디는 아침 8시 반마다 밥을 먹지 않으면 구슬프게 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밥을 챙겨주지만 주말에 아무도 안 나가면 상디는 꼼짝없이 이틀을 굶는다. 상디 밥 파견조를 가장 만만한 사무직 몇몇이 돌아가면서 하는데, 아무튼 그 날은 내가 담당인 날이었다.

"나는 개 보러 가는 거다. 일 하러 가는 거 아니다."

그렇게 되뇌면서 하늘색 스파크를 열심히 몰아갔다. 털털털털... 10km 를 나아갈 때마다 도시의 흔적이 부쩍부쩍 사라졌다. 상디 산책까지만 시켜 주고 돌아오는 거야. 응.

아침 8시 즈음에 도착하니 상디가 맹렬하게 짖고 있었다. 컹! 컹컹컹! 상디의 시뻘건 입 안에서부터 김이 무럭무럭 나왔다.

"상디! 뭐야! 왜 짖어!"

상디는 짖음이 많아서 사장님의 집에서 쫒겨난 안타까운 역사가 있는 황구다. 그래서 마음이 짠해지는 구석이 항상 있는데 이렇게 나도 몰라보고 짖으면 이야기가 다르지. 나는 지퍼백에 담아 온 사료를 흔들며 외쳤다.

"상디 쉿! 쉿! 밥! 밥 먹을까!"

컹! 컹컹컹!

이상했다. 상디는 겁이 많아서 까치한테도 짖고 들개한테도 짖고 심지어 밤하늘에 날아가던 거대한 비닐을 보고도 짖은 바 있는데 나랑 팀원들 만큼은 귀신같이 알아보고 꼬리를 흔든다. 뭘 보고 짖는 거야? 나는 상디의 시선이 못 박인 장소를 바라봤다. 바로 옆, 공장이었다.

"어?"

나는 핸드폰을 눌러 잠금화면 글자를 따라 읽었다.

"11월 27일, 토요일."

이상했다. 공장이 돌아가고 있었다. 활기찬 유압기 소리가 나고, 김이 서린 창문 너머로 분주히 다니는 그림자가 언뜻언뜻 보였다. 그리고 뭔가가 부딪히는 소리도. 뚜껑이 헐거운 두꺼비집을 열어보니 전기가 돌아가는지 숫자가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뭔가 급한 일이 들어왔나? 지난주 기점으로 나갈 발주 다 나갔을 텐데. 상디야, 이상하다 그지. 야, 야! 그만 짖어. 목 쉬어!"

나는 상디를 쓰다듬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상디가 코 주름을 잡으면서 으르릉거렸다.

"이놈 상디! 날 벌써 까먹으면 어떻게 해!"

상디는 내 손끝을 맹렬하게 맡더니 그제서야 내 손끝을 할짝할짝 핥았다.

"이제 기억난거니."

나는 눈이 약간 쌓인 짚더미를 피해 걸으면서 공장 안쪽으로 다가갔다.

얼핏 보이는 저 배나온 실루엣은 공장장님이 분명한데 그마저 생산라인에 달라붙어 있었다. 맨날 반쯤 걸터 누워서 휴대폰으로 맞고를 치고 있는데 지금처럼 뻘뻘 땀을 흘리고 있다니...

"공장장님! 오늘 무슨 일 있어요?"

나는 문을 두드렸고 아무런 반응도 없기에 창문도 두드렸다. 그제서야 공장장님은 나를 흘낏 보았다. 그것도 잠시, 그는 다시 나사를 포장하는 데 집중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서 타박을 듣는 눈치였다.

"이상하다. 팀장님한테 연락해봐야겠다. 그지 상디."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얼어붙은 손을 좀 녹인 후 팀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어쩐 일로 토요일에 전화를?"

"파주 나사공장 토요일에 해요?"

"왜? 오늘 하대? 뭐지? 이자식들 경쟁사에 몰래 납품하는 거 아냐?"

"에이. 사장님 껀데요?"

"그러니까. 그게 말이 되나? 하여튼 공장장 연락해 볼게."

"알겠어요."

상디가 어디선가 물고 온 굵은 나뭇가지를 던져주기를 몇 번, 다시 전화가 왔다.

"전화 안 받으시네. 사장님도."

"공장장님은 전화 안 받으실 만 해요. 지금 밖에서 보니까 뭔가 열심히 하고 계세요."

"뭐야, 왜 안 알려줬어!"

"공장장님이 저 싫어해서 안 열어주나 해서요. 제가 온 거 분명 봤는데 무시하시더라고요."

"그게 무슨 개소리야. 니 맘 여린건 알아줘야한다니까. 그거 좀 그만해. 하여튼 알겠어. 다음 납기 껄 미리 만들어놓는 건가? 더 일하는 건 나쁠 건 없겠지?"

"아마도요?"

"월요일날 가서 사장님께 여쭤보자."

"넵. 주말잘보내십쇼."

나는 상디가 물고 온 나뭇가지를 던지려고 했는데 그건 아까의 무게가 아니었다.

"상디 바보 멍청~이. 이거 잘못 물고 왔잖아. 나뭇가지는 어디에다가 팔아먹었어?"

상디는 숨가쁘게 헥헥거렸다. 강아지가 저런 진지한 사람같은 얼굴을 해도 되는 걸까. 다시 보니 그건 박스 조각이었다. 상자 조각을 뒤집어보니 익숙한 상호가 있었는데...

"애-일 커피? 이거 어디서 났어?"

상디가 쇠사슬 목줄을 이끌다시피 해서 데려간 곳은 창고였다. 창고 문을 여니 가라앉은 먼지 공기가 풀려 나왔고, 안쪽에는 애일 봉지커피 오백 상자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맞아, 세어 봤다. 50상자가 위로 10개.

"이거 사장님이 아시나? 투잡하나? 진짜 딴 데 납품하시는 거 아냐?"

난 사진을 한 장 찍어서 증거품으로 남겼다. 평소라면 긴 철사줄과 고장난 장비 몇 대 빼고는 아무 것도 없었을 휑한 공간이었는데, 질서정연하게 쌓여진 커피 박스 때문에 커피 공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압도적인 향기가 물씬 났고, 난 그만 아찔한 나머지 코를 틀어 막고 싶어졌다. 아닌게 아니라 상디는 이미 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어머, 상디!"

나는 상디를 껴안고 차 조수석에 태웠다. 상디는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헛구역질을 하며 침을 질질 흘렸다.

"사장님 개니까 데려가도 괜찮겠지. 병원비는? 아, 지금 병원비 생각할 때야?"

조수석에 태운 상디가, 상디가, 꺼르르르,꺽 꺽! 하더니 입에 거품을 물며 안절부절 못했다. 둥그렇게 방석처럼 만 상디의 몸은 발발발 떨었고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어! 어! 상디, 좀만 버텨, 응?"

20분 더 밟자 다행히 시내로 접어들었고, 난 근처에 불법주정차를 하고 가장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튀어갔다. 어딘가 못이 튀어나온 데 걸렸는지 파카 아랫단이 부우욱 찢어졌다. 난 자동문을 열고 외쳤다.

"개가 아파요! 응급이에요!"

마침 믹스커피를 드시려던 동물병원 의사선생님은 황급히 종이컵을 내려놓고 상디를 안아들었다.

"뭐 때문에 오셨죠?"

"몰라요... 갑자기 토하구 헐떡거려요... 몸이 뜨겁고요... 우리 상디 살려 주세요..."

나는 동물병원 대기실에서 한시간 동안 파카에서 빠져나온 솜을 우겨넣으려고 하면서 기다렸다. 쓸모 없는 일이었다. 한참이 지나고 의사선생님은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나왔다.

"혹시 커피를 먹이셨나요?"

"예? 아니요!"

수의사 선생님은 눈을 치켜떴다.

"카페인 급속중독이에요. 사료 뭐 먹이세요."

"네? 오늘 제가 먹인 건 이거예요!"

하면서, 난 점퍼 주머니에 들어있떤 지퍼락을 꺼내 보여주었다. 수의사 선생님이 건네받고 날카로운 눈으로 살폈지만, 역시 멀쩡한 사료였다. 그러고도 의사 선생님은 의심을 풀지 않는 눈치였다.

"평소에 밥은 누가 줍니까?"

나는 꼬리를 내렸다. 상디는... 거의 방치 상태로 지내니까.

"다른 공장 분들이 주시는데요... 저 잘 몰라요."

수의사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자, 아까 상디 위 상태가 어땠는지 보여드릴게요."

엑스레이 사진엔 동그라미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전부 소화 안 된 커피콩입니다. 이정도면 실수로 먹은 게 아니라 누군가 먹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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