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채굴

2023.08.13 08:1608.13

행성채굴은 돈이 되는 일이다. 완전히 끝장난 행성이라도 막상 뜯어보면 이러저런 자원은 제법 나오는 편이고, 이러저런 자원이란 항상 수요가 있는 법이다. 특히 지금처럼 전쟁을 앞둔 시기라면 텅스텐과 티타늄은 판매자가 부르는 게 바로 값이 된다.

 

역사적 사례들을 검토해 보면, 돈이 된다는 소문이 퍼지면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낡아빠진 크랙커를 몰고 다니는 채굴팀의 십중팔구는 이런 놈들이다. 수율이 제대로 나올 리도 없고 마땅한 거래처도 없다. 행성을 살 때도 시세의 열 배에 달하는 금액을 치른다. 앞뒤로 눈탱이를 맞으니 파산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수밖에…

 

여기 아주 중요한 팁이 있다. 명심해라, 법원 경매를 애용하자. 파산한 멍청이들이 손도 못 댄 행성들이나, 세금 체납으로 압류에 들어간 행성들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떼어올 수 있다. 물론 입지조건이라도 좋은 매물이었다면 경매까지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개발업자가 아니다. 갈아서 챙기고 떠난다. 끝.

 

이번에 낙찰받은 행성도 꼬라지가 아주 처참했다. 남이 피다 버린 꽁초처럼 저렴하고 더러운 행성만 찾아다니는 혐기성 공법 사업자들도 방사능이 높아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 7번이나 유찰된 행성을 누가 헐값에 사가겠는가? 바로 나다, 행성채굴 사업자.

 

“중력권으로 진입합니다. 셋, 둘, 하나, 역추진.”

 

거의 일주일 동안을 무중력 상태에서 보낸 몸이 거부감을 일으켰다. 중노동을 하고 죽은 듯이 잠들었다가, 두 시간 만에 일어난 듯한 기분. 항상 달갑지 않다. 그러면서도 몸이 무거울수록 기분은 좋다. 행성에 가치 있는 중금속류가 많다는 뜻이니까.

 

“대기는 거의 없고 방사능은 높네요. 폐기물야적장이었나 봐요.”

“상관없어. 기체는 응결처리해도 부피가 너무 커. 핵폐기물도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걸 왜 가져가죠? 재처리 비용이 더 들 텐데.”

“행성의 협곡을 메꿔주겠다면서 돈을 받고 핵폐기물로 속을 채우는거야.”

 

그런 다음 지표면에 가까운 부분만 납으로 차폐한다. 그럼 아주 깔끔해 보이지. 시간이 수천 년쯤 흐르면 몇 번의 반감기를 거쳐 방사능은 사라질 테고, 그보다 일찍 알아차리더라도 이미 그 사기꾼은 폐업 처리로 꼬리를 자를 것이다.

 

“그거 불법 아닌가요?”

“불법은 아니야. 합법이 아닌 거지.”

 

나는 계수기의 전원을 올렸다. 요즘은 워낙 매뉴얼이 좋아서 착륙 같은 것들은 조수를 시켜도 상관 없다. 하지만 지각분석은 아직 기술의 영역이다. 충격파의 흐름이 바뀌는 지점에 무조건 단층이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다른 검사 결과를 복합적으로 고심해봐야 한다.

 

특히 미묘한 중력간섭 차이의 해석과 시료의 회절검사는 행성채굴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중력측정을 통해 원소의 함량과 위치를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여러 곳에서 채취한 시료를 분석하면 나의 추측이 맞는지 확증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수학적 사고지.

 

“40%가 철이면 많은 것 같은데, 이건 비싼가요?”

“이 부분, 산소가 많잖아. 산화철 형태로 있을 거야.”

 

대기가 없는데도 이렇게 산소가 많다는 건 전부 지각 속에 있다는 이야기다. 그럼 아마 산화철 형태로 있을 테고, 환원 과정을 밟아야 하니까 추가 비용과 수율 하락을 생각해야 한다. 썩 달가운 상황은 아니지. 그나마 다행이라면 방사능이 행성 표면에만 있다는 정도?

 

“별 가치는 없겠지만... 헐값에 사 온 덕분에 스무 배는 벌겠어.”

“다행이네요, 축하드려요.”

“그래, 덕분에 너도 한밑천은 당기겠지.”

 

평소 같았으면 아무리 채굴 결과가 좋더라도 조수에게는 크게 남는 것이 없다. 애초에 표준계약서 자체에는 성과금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 급하게 준비하다 보니 프리랜서로 계약해 올 수밖에 없었다. 그 덕에 꽤 똑똑하다는 친구를 헐값에 데려오긴 했지만, 꽤 넉넉한 성과금을 약속했었다.

 

“대학교에 바치고 나면 남는 것도 없을 텐데요, 뭘…”

“만약 네가 이 일을 하게 된다면 말이다. 캐는 것만 생각해서는 안 돼.”

“그러면요?”

“판로를 생각해야지. 거래는 악수야, 한 손바닥 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아.”

 

가령, 여기. 분명 이 행성에는 많은 양의 산화철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철은 만능금속이다보니, 판로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그렇다고 철만 팔고 나머지는 버린다면 이 일을 오래 할 수 없다. 남아있는 규소며, 마그네슘이며, 황은 또 어쩔 텐가? 이것들도 나름대로 누군가에게는 값진 소재들이다.

 

“그럼 어떻게 처분하시나요?”

“그건 영업비밀이야. 너라면 어떻게 할래?”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중간거래상에 함께 처분하는 건 어때요?”

“나쁘진 않아.”

 

나는 정답이 나오지 않은 점이 못내 아쉬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경쟁자를 덜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머리를 흔들어 양가적 감정을 내쫓고 나니 지각분석 결과가 프린트되어 나오고 있었다. 처음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성과 구조였다. 이제 할 일은 천공작업이다.

 

“그냥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뚫고 내려갈 거야. 이상한 일이 있으면 깨우고.”

 


 

그동안 나는 ‘이상한 일 있으면 깨우고’ 라는 말은 일종의 부적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자는 사이에 지각 속에 잠들어 있는 옛 우주의 주인이 깨어난다든지,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토템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왜 저 녀석이 나를 깨우는 걸까?

 

“사장님, 일어나보세요. 좀 이상한 게 있어요.”

“으, 왜. 천공기가 끼었어? 하여간 그 녀석 좀 잘 고치라니까…”

“아뇨, 인공적인 해저터널이 있어요. 수온도 높구요.”

“그건 그냥 열수구일거야, 계속 파라구.”

“그러기엔 또 너무 낮아요. 물도 안 끓을 정도의 온도라구요.”

 

졸리운 몸을 이끌고 모니터로 가보니 조수의 말이 옳았다. 드릴이 멈춘 지점은 콘크리트 따위로 보이는 인공터널이었는데, 애매한 온도의 해수가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자연적으로는 발생할 수 없는 형태였다.

 

“이것 보세요. 이건 인공물이에요.”

“이상하네… 자연 행성이었는데.”

“일단 확인을 해보죠. 채굴 이상의 가치가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조수가 눈을 반짝거렸다. 성과금 계약이 생각 외의 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다음에 누군가를 채용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사용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그러면 기본급을 조금 깎아야겠지. 손해를 볼 수는 없으니까.

 

“좋아, 일단 차폐복 입고 가서 확인해 봐.”

“네, 사장님. ”

 

나는 명색의 채굴인 이지만, 차폐복은 좋아하지 않았다. 첫째로는 옷 자체가 너무 답답하다. 일을 배우던 시기야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이 입었지만, 이제는 입고 싶지 않다. 둘째로는 이제 내가 저런 위험한 일을 하기에는 단가가 맞지 않는다.

 

“해수터널 안쪽으로 들어왔어요. 잘 들리세요?”

“어. 근데 좀 잡음이 있는데?”

“밖에선 몰랐는데 전자기파가 좀 강해요.”

“해수랑 콘크리트가 차폐하고 있었을 거야. 계속 가봐.”

 

전자기파는 인공물의 명백한 증거였다. 물론 금속 핵을 가지고 자전하는 행성은 모두 자기장을 내뿜는다. 하지만 지금 모니터에 잡히는 불규칙하고 일관성 없는 전자기파는 행성에서 나올 수 없다. 나는 바로 경매처의 지인에게 연락했다.

 

“야, 내가 저번에 낙찰받은 거 있잖아, 그 7번 유찰된 거. 원래 소유자가 누구야?”

“그거? 상속자들이 공매로 넘겨서 대금만 나눠 갖기로 한 거야.”

“아니아니, 원래 소유자가 누구인지 아냐고.”

“그건 모르지. 이름 모를 뉘 집 늙은이였어. 근데 그건 왜?”

“그냥 조문이나 가보려고 했지, 나중에 연락할게.”

 

괴팍한 뉘 집 늙은이 같은이라고. 이렇게 행성 내부에 뭔가 늘어놓을 재력은 없었던 모양인데 이게 다 무슨 짓일까? 이상취미를 가진 사람 중에는 별의별 생물들을 다 채집해 와서 한 행성에 풀어놓고 키우는 걸 즐기는 사람도 있다고는 들었다. 그중 한 부류였을까?

 

“사장님! 해수터널은 냉각수 용도였어요!”

“냉각수? 그건 왜, 안에 뭐가 있는데?”

“연산장치들 같아요. 모니터로 한 번 봐봐요.”

 

모니터에 송출한 화면이 나타났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방 안에는 연산장치들로 추정되는 직육면체들이 빼곡히 솟아있었다. 눈 깜빡이는 속도보다도 빠르게 초록색 불빛이 명멸하기를 반복했다. 컴퓨터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내가 봐도 수상한 모습이었다.

 

단순한 지열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온도가 치솟고 있었고, 알루미늄 따위로 보이는 기하학적 열교환기는 해수터널과 연결되어 있었다. 애매모호하게 미지근한 바닷물의 온도는 바로 이 냉각시설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심층수를 끌어와서 냉각시키는데도 열기가 엄청나요.”

“모니터를 봐봐, 공용어로 적혀있어?”

“음… 아니요! 처음 보는 언어인데, 무척 익숙해요.”

 

조수는 말했다. 언어만 다르지 연산장치나 입출력장치의 양상은 우리와 매우 비슷하다고. 무언가 입력할 때마다 바뀌긴 하지만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어쩌면 옛 선조들이 남긴 게 아니겠냐면서 유난을 떨었다.

 

이제는 그 노인만큼이나 이 행성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일까? 이 깊은 지하에 연산장치라니, 무슨 계산을 하고 있던 걸까? 처음으로 돌아와서, 노인에게 이게 무슨 필요가 있었을까?

 

머릿속이 질문의 격랑에 휘말렸다.거친 파도 속에서 내가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도와준 건 아까 연락했던 경매처의 지인이었다. 그 녀석은 내 석연치 않은 태도에서 뭔가 이상한 냄새를 맡았던 게 분명하다. 하여간 껄끄러운 놈.

 

“여보세요, 야. 니가 아까 말했던 행성 있잖아. 내가 찾아봤거든.”

“그래, 대체 어떤 노인이고 어떤 행성이던?”

“별거 없던데?”

 

실제로 그 녀석은 내 말끝에서 씁쓸한 맛이 났다고 했다. 왠지 일확천금의 맛인가 싶어서 바로 확인을 해봤는데… 몇십 세대 동안이나 가문의 재산목록에서 누락된 행성이었고, 그것 말고는 없었다. 아마 한동안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빨리 오기나 해. 전쟁이 터졌나 봐, 금속류 가격이 치솟고 있다고.”

“그래, 그래. 알았어. 지금 여기도 전쟁이야.”

 

연락을 마치고 나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몇십 세대 동안이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 그럼 높은 방사능은 불법투기의 흔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걸로는 법원에서도 몰랐던 지하의 인공물과 연산장치는 설명할 수 없다.

 

연산장치, 대체 무엇을 연산하고 있었단 말인가? 만약 은하공동체라면 공용어를 사용했을 텐데,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전혀 다른 문명? 하지만 우리와 매우 유사한 관념체계를 가지고 있는듯 하다. 아니면 정말로…

 

“우주의 비밀을 계산하고 있던건 아닐까요?”

“아이! 깜짝이야.”

 

어느새 지상으로 올라온 조수는 차폐복을 벗으며 말했다. 우주의 비밀이라니, 그런 걸 계산할 수 있단 말인가? 에초에 거기에 맞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문명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 정도 문명이 실존한다면, 이미 공동체의 일원일 것이다.

 

“우주의 비밀이라고 해도 상관없어. 우리는 채굴업자니까.”

 

안에 뭐가 들었든지, 나는 갈아서 챙기고 떠난다. 그뿐이다. 그동안 수많은 행성을 갈아서 챙기고 떠났다. 이 행성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예외는 없다. 나는 천공기를 다시 가동했다. 미묘한 진동이 발밑을 울렸다.

 

“... 정말루요?”

“천공기가 핵에 닿으면 점화할 거야.”

“우린 방금 엄청난 발견을 한 걸 수도 있어요.”

“이 정도의 산화철은 별로 엄청난 발견은 아니야.”

 

분석자료를 바탕으로 보면 천공기의 끝이 핵에 닿을 때까지 하루. 그 후에는 중력폭탄을 떨어뜨린다. 충격파는 가벼운 가스와 입자를 모두 우주상으로 던져버릴 것이다. 나머지 무거운 물질들은 한없이 쪼그라들고, 크랙커를 이용해 원소를 분류하면 여길 떠나겠지.

 

“잠시 쉬자. 조금 걸릴 테니까.”

 


 

꿈을 꾸었다. 아니, 깨어나고 보니 꿈이었다. 과거의 존재가 나타나 내 손에 빛나는 황금 원석을 쥐여주었다. 손에 쥐어진 황금의 유산. 그래 그건 유산이었다. 얼굴조차 모르는 과거의 존재가 나에게 남겨준 유산. 이제는 나의 것...

 

“흉몽이군.”

“꿈을 꾸셨나 봐요?”

“누가 나한테 황금을 줬어.”

“그럼 길몽이네요.”

“아니, 행성을 부수려는 게 꺼림칙해서.”

 

내가 이 행성을 부수려는데 꺼림칙한 감정을 느꼈다고 하자, 조수의 표정이 밝아졌다. 마치 새로운 논문거리라도 얻은 대학생이 있다면 이런 표정일까? 나는 이 현실을 모르는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알려주고 싶은 것이 생겼다.

 

“만약 여기서 나온 것이 정말로 우주의 비밀을 캐고 있다면 어떨 거 같냐?”

“솔직히 너무 흥분돼요. 우리가 역사의 한 장면에…”

“아니, 소송이 들어온다.”

 

우리가 경매로 이 행성을 낙찰받은 것은 사실이다. 이대로 채굴해서 내다 팔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치 있는 무언가가 있던 것으로 밝혀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판매인 측에서 그 물건에 대하여 진정한 의미로 양도의 의사를 전한 것이 아니라고 부정할 것이다.

 

“만약 이 시설이 노인의 것이 아니라고 해도 이야기는 복잡해져.”

 

그 말은 이 미스터리한 시설이 무주물이라는 뜻인데, 아마 문화재 관리부에서는 이 시설이 알 수 없는 선조문명의 작품이라고 여길 것이다. 누구보다 빠르게 가처분신청을 넣을 테고 남들과는 다르게 행정규정을 들어 소유권을 내게서 약탈해 갈 것이다.

 

“그리곤 문화훈장과 약간의 보상금을 주고 입을 싹 닦겠지. 흔한 일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걸 갈아버리는 너무 아쉬워요.”

“나도 알아. 하지만 유일한 길은 남들이 냄새를 맡기 전에 증거를 치우는 것 뿐이야.”

 

나는 이 선택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 시설이 연산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수집한 증거를 바탕으로 확실하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내용인지, 또 법적 분쟁에 휘말린 후에도 소유권이 내 손에 남아있을지는 불명확하다. 너무 위험하다.

 

“만약 이 시설이 머나먼 과거의 선조가 남긴 유산이라면...”

“맞아요! 그들은 분명 여기에 있었을 거에요.”

“... 왜 그 희생을 나 혼자 져야만 하는 거지?”

 

어쩌면 이 시설의 선조문명이 남긴 유산일지도 모른다. 이 미지의 시설이 우리가 반복할지 모르는 실수를 바로잡게 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왜 그것을 위해 정당한 소유권자인 내 권리가 박탈당해야 하는 것인가? 사업가라면 불균형한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다.

 

“... 제가 이 행성을 살게요. 그럼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거죠?”

“넌 그만한 돈이 없어. 천공기가 핵에 닿을 때까지는 한 시간밖에 안 남았고.”

“그럼 그 한 시간만이라도 살게요. 제 성과급이면 충분하죠?”

 

나는 내가 미친놈을 데려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 패기가 부러웠다. 내가 마지막으로 도망칠 길도 안 재보고 뛰어든 적이 언제였더라? 오래 살다 보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사업가간의 거래를 완성하는 데에는 악수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잊지 않았다.

 

“자, 몇 분 남았죠?”

“58분.”

“조금 이따 봐요!”

 

조수는 차폐복을 입고는 다시 지하 속으로 사라졌다. 아니, 지금은 조수가 아닐 테지. 내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고 뛰어든 사람을 조수라고 하는 건 내가 너무 평가를 후려치는 거겠지. 한 시간 짜리 사장님 정도면 충분하려나.

 

“몇 가지 명령어는 대충 알겠어요. 이제 한고비를 넘은 샘이죠?”

“그래, 47분.”

“조바심 내지 좀 마세요. 이 시간은 제가 산 거잖아요.”

“그래.”

 

모니터 너머로는 지하에서 ‘사장님’ 께서 직접 송출하는 화면이 보였다. 그 외양과 작동하는 모습을 보면 분명 우리와 비슷해 보였다. 그러니까, 만약 우리가 다른 길을 걸었다면 이런 모습으로 입출력 장치를 구성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각, 하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텍스트가 모니터 아래로 쏟아져 내려갔다. 아마 나는 저게 공용어라 할지라도 한 시간 안에 다 읽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녀석은 메모를 남겨가면서 쓰윽 쓰윽 읽어나가더니, 입을 열었다.

 

“여기 이 부분, 수학 같아요! 분명 언어는 다르지만 수식이 분명해요.”

“어느 수준이야? 이 문명은 어느 수준이었는데?”

“그러니까, 제가 수학은 잘 못해서… 이 부분은 제곱 같은데…”

“내가 도와줄게! 좀 더 가까이 비춰봐.”

 

나는 모니터를 읽어가는 중에도 종종 녀석에게 이해가 가지 않는 단어에 질문을 던졌다.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한 끝에 나는 이 수식이 이산대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깨달았다 분명 우리와 다른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관념체계는 비슷했다. 그 덕분에 수학이라는 데에서 미묘한 접점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핵심은 이산대수에 있었다.

 

“이산대수가 뭐죠?”

“이 사람들은 소수의 제곱수를 만들고 그 역을 찾아내고 있었어.”

“왜 그런 일을 한 거죠? 그게 비밀의 열쇠였나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나도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이 연산장치는 특정한 문자가 연달아 나올 때까지 무작위로 이산대수 연산을 하고 있다. 만약 운 좋게 특정 문자가 연달아 나오면, 주변 노드에 사실을 알리고 같은 일을 반복한다.

 

“이게 다야. 그 이상의 의미는 없어.”

“그럼 선조들은 왜 이런 의미 없는 짓을…”

“거기다 여기에 쓰인 이산대수 알고리즘, 너무 옛날 꺼야.”

 

분명 내가 처음 수학을 배우던 시절에 예시로 쓰여 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시간복잡도가 훨씬 줄어든 새로운 알고리즘이 제시되었고, 이제는 아무도 이런 알고리즘은 쓰지 않는다. 결국 이 시설은 고고학적 의미는 차치하더라도 수학적 의미는 전무하다.

 

“가자 시간 됐어. 우주의 비밀은 없었고.”

“하지만 여기 분명 선조문명이 있었어요!”

“그들은 죽었어. 바보 같은 짓이나 하다가. 방사능이나 잔뜩 퍼먹고서.”

 

나는 통신을 닫아버렸다. 시간은 녀석이 빠져나오는데 부족하지 않을 만큼 여유가 있다. 나는 몇 시간 전까지 황금을 쥐고 있던 두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유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

 

잠시 후, 녀석이 지친 표정으로 걸어들어왔다. 나보다 더 기대하고, 심지어는 자기 돈을 투자했는데도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으니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나는 나름대로 녀석을 위로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어이, 나는 ‘너의 도전정신을 높이 산다’ 면서 돈을 돌려주는 일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아.”

“아쉽네요…”

“하지만 결단력은 마음에 들어. 나랑 같이 일하자.”

 

행성채굴은 꽤 간단한 일이니까, 너도 몇백 년만 하다 보면 손에 익을 거다. 요즘같이 전운이 감도는 시기에는 군수물자 원재료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른다. 계약을 훨씬 더 공평하게 하자… 같은 미끼를 던져봤지만 녀석은 썩 입질이 오지 않는 눈치였다.

 

“저는 대학으로 돌아갈까 해요. 공부해 보고 싶은게 생겼거든요.”

 

녀석은 계기판으로 걸어가 붉은 버튼을 눌렀다. 카운트다운, 그마저도 끝난 후에는 발밑을 잡아 뒤흔드는 진동이 느껴졌다. 익숙한 진동이었다. 번쩍, 행성의 지각이 들썩이고는 압축되기 시작한다. 그 모든 가치없는 것들은 사라졌다. 채굴은 끝났다.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2877 단편 너희는 그저 싶었던 사피엔스 2023.12.12 1
2876 단편 예언을 따르지 않고2 박낙타 2023.09.03 1
2875 단편 덩굴3 감동란 2023.08.20 1
단편 채굴 라그린네 2023.08.13 1
2873 단편 릴리와 꽈리고추 담장 2023.08.03 1
2872 단편 너는 스노볼 속에 사피엔스 2023.11.25 1
2871 단편 생산 2팀 황유석 대리의 퇴사 사유 박낙타 2023.05.19 1
2870 단편 루브 골드버그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달리 2023.05.15 1
2869 단편 네 동생은 어디에 있냐? 성훈 2023.03.14 1
2868 단편 찬이라고 불린 날들2 김성호 2022.09.12 1
2867 단편 취소선 둘째5 서애라자도 2022.08.24 1
2866 단편 화성, 2164 라그린네 2022.07.07 1
2865 단편 글보다 그녀 달타냐옹 2022.06.30 1
2864 단편 잃어버린 헌을 찾아서3 김성호 2022.07.16 1
2863 단편 타반 학생 출입 금지 김성호 2022.03.17 1
2862 단편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 백곶감 2022.03.13 1
2861 단편 메이의 마음 킥더드림 2021.05.01 1
2860 단편 판타스틱 엔딩 킥더드림 2021.04.02 1
2859 단편 최후의 인간 쾌몽 2021.10.10 1
2858 단편 뛰어 봤자 플랫폼2 소울샘플 2021.03.22 1
Prev 1 2 3 4 5 6 7 8 9 10 ... 14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