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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심해어 레시피

2024.01.09 00:4401.09

 

안녕, 저는 요즘 인기가 아주 많아요. 얼마 전엔 이런 글도 발견했다니까요.

 

심해어 레시피

Point. 심해어를 맛보세요. 심해어는 정신을 잃게 하는 천상의 맛으로 유명합니다. 저희가 오늘 요리할 심해어의 정식 명칭은 빅티모 플라스틱쿠스(victimo plasticus)입니다.

  1. 심해어를 잡습니다.

  2. 심해어의 머리를 쳐 기절시킵니다.

  3. 심해어를 냉동시킵니다. 심해어의 살은 말랑말랑하기 때문에, 자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니 냉동해서 자르는 게 바람직해요. 우리의 심해어는 얼려서 해동해도 맛과 질감을 유지하기 때문에, 과감히 얼려 주세요!

  4. 얼린 심해어를 꺼냅니다.

  5. 칼로 조각조각 분해하여 먹기 좋은 크기로 자릅니다.

  6. 심해어는 그 자체로 완벽한 맛이기 때문에, 간장을 준비할 필요도 없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7. 회로 먹지 않고 튀겨서 먹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때, 심해어의 머리에서 나온 기름을 활용하면 풍미가 극대화됩니다. 버터를 따로 사용할 필요가 없다니까요?

Ps. 대부분은 1번에서 멈추실 겁니다. 끝까지 노력한 자만이 천상의 맛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힘내요!


 

저를 조각조각 분해해서 먹는다 해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는다면 “인기가 많다."라고 표현하더라고요? 인기가 많다는 것은 보통 좋은 표현 아닌가요? 어쨌든, 저는 “인기가 많다."라는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비록 그 속에 많은 사람들이 빅티모 플라스틱쿠스(victimo plasticus)를 살해하고 싶어 한다는 뜻이 숨겨져 있긴 하지만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저는 이렇게 먹는 목적으로 아주 인기가 많답니다. 저는 인기가 많다고 해서 행복하지는 않지만요. 제가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되었는지 설명해 드릴게요.

얼마 전, 저는 깊은 심해에서 수영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까 해수면에 가깝게 수영하게 됐어요. 제 몸은 압력차로 인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죠. 다시 심해로 내려가야 하는 것을 알지만 멈출 수 없었어요. 저 멀리 해수면에서 찬란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거든요. 심해에서는 볼 수 없던 장관이었어요. 제 삶은 적은 양의 빛 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세상을 다 담고도 넘칠 만큼의 찬란한 빛이라뇨? 빛이 조각조각 분해되고, 깨어지고, 부드럽게 바닷속으로 스며들고 있었어요. 전 눈이 멀 것 같았어요. 그럼에도 저는 위로 올라가기를 멈추지 않았어요. 심장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어요. 제 심장이 곧 터지는 줄 알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모든 고통이 싹 사라지는 거예요. 저는 죽기 직전, 적응했어요. 그렇게 저는 제주도라고 하는 섬의 앞바다를 유영하게 됐어요. 그때 제 눈에 뭔가가 들어왔어요.

어떤 큰 생물체가 글쎄, 바닷속을 헤엄치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 생물체에게는 커다란 지느러미가 달려있었어요. 정말 커다래서 발길질 몇 번에 금세 앞으로 가는 거예요. 지느러미가 제 몸의 다섯 배 크기는 되어 보였어요. 그리고 그 생물체의 피부는 마치 공상과학 소설에 나오는 것 같았어요. 물고기가 어떻게 공상과학 소설을 아냐고요? 수아가 출근했을 때 저는 책을 읽었어요. 수아에 대해서는 이따 얘기할게요. 어쨌든 그 생물체의 피부는 강하고, 단단하고, 검고, 부담스럽지 않게 광이 났죠. '아, 이게 해수면이구나. 나는 수면 안 개구리였구나.' 싶었어요. 진작 해수면에 올라와서 큰 세상을 맛보는 건데. 후회스러웠어요. 나중에서야 그 생물체가 “사람”이라고 불리는 생물체고, 그 사람의 지느러미가 “오리발”이라고 불리는 물건인 걸 알았죠. 그리고 그 사람의 튼튼한 검은 피부는 잠수복을 입은 것뿐이었죠. 저는 그 큰 생물체의 피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관찰하기 위해 다가갔어요. 저는 그 순간 그 생물체 앞에서 정신을 잃게 됐어요. 압력차에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저에겐 무리였나 봐요.

이제 제가 나중에 들은 수아의 입장에서 얘기를 해 줄게요. 갑자기 자신의 앞에서 기절한 저를 본 수아는 당황했대요. 수아는 프리다이빙을 하고 있었거든요. 수아는 일단 저를 손으로 가두고 육지로 다가갔대요. 플라스틱 통이 아무 데나 널브러져 있었기에, 되는대로 잡히는 통에 저를 넣을 수 있었대요. 수아는 저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몰랐어요. 가만히 놔두면 폐에 물이 차 죽을 것 같았대요. 저는 물고기인데 말이죠. 수아는 고민 끝에 일단 숙소로 저를 데려왔어요.

“이게 뭐야?”

수아의 친구 A가 물었어요.

“물고기 같은데, 아까 날 보고 기절해서 데려왔어. 이대로 있다간 죽을 거 같아서.”

“못생겼는데, 색은 예쁘네. 이거 먹을 수 있나?”

“글쎄…" 

수아는 만약 절 먹을 수 있다고 해도, 그럴 순 없다고 생각했대요. 왜냐면, 수아는…

“난 비건이라서, 물고기는 안 먹어.”

라네요. 그때까지도 저는 기절해있었어요. 수아는 제 몸을 뜯어봤대요. 잠시 제 소개를 해 볼게요. 저는 손바닥 정도의 크기에, 물렁한 살로 이루어져 있어요. 제 비늘은 어두워지면 발광하는 특수 비늘이에요. 그리고 비늘은 백 개의 색으로 되어 있어요. 산호초군집 같달까요. 한마디로 "영롱하다."라는 거죠. 제 턱은 강해요. 심해는 위에서 내려온 먹이를 먹을 수밖에 없거든요. 저희는 한번 문 먹이는 놓치지 않아요. 저는 한마디로 매력둥이라는 거죠. 사랑스러운 색깔에, 부드러운 몸, 그리고 유약한 몸과는 대조되는 강한 이빨까지. 완벽하죠. 수아도 그렇게 생각했대요. 순간,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심해어가 기억났대요. 혹시 제가 심해어일까 생각했고, 절 사진으로 찍어서 이미지 검색을 했대요. 근데 어떤 자료도 찾을 수 없었대요. 요즘 시대에 찾을 수 없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수아는 혼란스러웠어요.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었죠. 저를 어떤 식으로 처분할지에 대해 고민하던 수아는, 집에 방치하고 있던 어항이 생각났어요. 수아는 그렇게 절 집으로 데려와 어항에 넣었어요.

수아는 열심히 심해의 환경에 대해 검색했어요. 수온을 맞추고, 소금도 넣어주고, 산소도 조절했대요. 저는 곧 깨어났죠. 그리고 깨어나자마자 수아와 눈이 마주쳤어요. 우리 둘 다 당황했어요. 그때부터 수아와 저의 동거는 시작됐어요. 수아는 저를 위해 물을 갈아주고, 맛있는 밥을 제공했어요. 저는 수아에게 뭘 제공했느냐고요? 글쎄요. 저는 배설물을 제공했어요. 배설물만 제공한 건 아니에요. 저는 수아에게 심리적 안정을 제공했어요. 저는 앞서 말했듯 곧 뭉개질 것 같은 물렁한 얼굴을 가졌지만 환상적인 색을 가졌어요. 그리고 어두워지면 은은하게 발광했답니다. 수아가 잠이 잘 오지 않는지 수면제를 먹고 자더라고요. 얼마 지나지 않아 협탁 옆에 어항을 두고, 어항 벽에 손을 대고 잤어요. 이제 제가 뭘 제공했는지 알겠죠? 저는 수아의 전담 무드등이었던 거예요. 저로 인해 수아의 방이 산호초가 가득한 바다처럼 보였답니다. 저와 수아는 그렇게 서로에게 스며들었어요. 이젠 눈빛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됐어요. 수아는 제게 “히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어요. 제가 귀여운 하마를 닮았대요.

“히포, 표정이 뭔가 불만스러운 것 같은데? 아, 내가 늦게 와서 그래?”

“응, 수아야. 수아가 일찍 다녔으면 좋겠어.”

“미안, 오늘 끝나고 남자친구를 만나고 오느라 그랬어.”

우리는 이런 식으로 대화했어요. 아, 진짜 대화는 아니에요. 이 모든 대화는 눈빛으로 이루어졌어요.

그리고, 사실 저에겐 수아가 모르는 비밀이 있어요. 저는 수아가 출근했을 때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글을 읽었어요. 물고기가 어떻게 이런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냐고요? 저는 전자기기를 조종할 수 있어요. 슈퍼 물고기라고요? 감사해요. 뭐, 이런 물고기도 있다고 생각해 주세요. 저는 심해어잖아요. 그렇게 저는 수아가 출근한 동안 노트북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었어요.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라고 하는 오래된 말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아주아주 공감해요. 그렇게 저는 차곡차곡 지식을 쌓아갔죠.

그러던 어느 날, 수아는 남자친구를 데리고 집에 왔어요. 수아는 저를 자신의 하나뿐인 “히포”라고 소개했어요. 저는 수아의 남자친구를 본 순간부터 마음이 두근거렸어요. 수아가 선택한 사람이라니, 얼마나 좋은 사람일까? 저는 지느러미를 움직여 아래위로 헤엄쳤어요. 제가 반기는 모습을 본 수아도 미소 지었어요. 그렇지만 그런 마음은 1초가 채 흐르기도 전에 깨져버렸어요. 수아의 남자친구인 P는 저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어요.

“뭐야, 징그러운데. 이런 걸 키워?”

“징그럽다니! 내 히포야!”

“하, 이름까지 지어줬어?”

P는 저를 자신의 눈에 가득 담았어요. 수아가 저를 볼 때랑은 사뭇 다른 눈빛이었죠. 눈빛 만으로 조각조각 분해되는 느낌이었어요. P의 눈빛에는 당혹감, 불쾌감, 혐오스러움이 담겨있었어요.

“혹시 이거 밥 준다고 매일 일찍 간 거였어?”

“이거라니? 말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 내가 고작 물고기한테 밀렸다고? 네가 나는 안 돌보고 물고기한테 이러는 모습, 참을 수 없다. 개나 고양이어도 짜증 날 판에, 물고기? 그리고 심지어 이렇게 징그럽게 생긴 물고기한테? 너 미친 거 아니냐?”

“대체 왜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자꾸 징그럽다고 하지마. 얘 다 알아들어. 그리고 물고기라고도 하지마. 얘가 물에 사는 고기야? 얘가 먹히려고 태어났어? 얘는 그냥 히포야."

“그건 또 뭔 소리야 진짜...”

P는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터뜨렸어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어요. 저 행동은 어이가 없을 때 하는 제스처였던 것 같아요. 야구 경기에서 봤어요.

“됐어, 난 너도 반가워할 줄 알고 소개해 준 건데, 너의 그런 반응이 더 상처야.”

“상처? 이젠 아무 데나 막 갖다 붙이네? 수아야, 난 네가 걱정돼서 그렇지. 이렇게 징그러운 물고기한테 쩔쩔매면서 늘 집에 일찍 가야 한다고 했잖아. 이게 정상이라고 봐? 아무래도 얘를 탕을 끓여 먹던지, 뭐든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 계속 같이 있으면 너만 이상해져.”

P가 수아에게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저를 찔렀어요. 저는 수아를 이상하게 만드는 존재인 걸까요? 제 눈에선 슬픔의 눈물이 흐르려 했어요. 수아가 그걸 느꼈는지, 순간 어항을 쳐다봤죠. 그리고 그 순간, P가 어항 속에 손을 넣어서 저를 아프게 쥐었어요.

“이거 그냥 탕 끓이자니까? 째려보는 것 봐.”

P는 저를 높게 들어서 바닥에 내리치려고 했어요.

“그만해 진짜!”

수아는 P를 막고 저를 어항 속으로 다시 넣었어요. 저는 P의 체온으로 인해 온몸에 치명적인 화상을 입었어요. 비늘이 화끈거렸어요. 그렇지만, 제 마음은 상처받은 비늘보다 더 아팠어요.

“수아야, 나는 정말 네가 걱정돼서 그래. 병원 잘 다니고 있는 거 맞아? 나는 네가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해. 나한테 어떻게 하면 더 잘할까 고민해도 모자랄 판에, 저런 징그러운 물고기 데리고 와서 키우는 게 맞아? 설마, 우리 결혼해도 쟤 데리고 올 거야?”

그날, 수아와 P는 밤새 싸웠어요. 대화의 절반은 징그러운 나를 치우자는 거였고, 절반은 자신을 돌보지 않는 수아를 향한 분노였어요. P는 개나 고양이가 아닌데 수아의 보살핌을 바랐죠. 수아는 밤새 숨죽여 울었고, 이불 속에서 손을 뻗어 어항 벽에 손을 댔어요.

“수아야, 울지 마.”

“수아야, 어떻게 하면 네 기분이 나아질 수 있을까?”

저는 밤새 수아가 걱정되어 잠을 자지 못했어요. 다음 날 아침, P는 돌아갔어요. 돌아가기 전에 주먹으로 제가 있는 어항을 쳤어요. 날카로운 파동이 제 피부에 느껴졌어요. 전 P를 저주하게 됐어요. 최근에 읽었던 책들이 기억나요. 이런 상황에서 영험한 힘을 가진 어떠한 초월적 존재는 P와 같은 사람에게 저주를 내리죠. 때론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 상대에 대한 복수를 하는 얘기도 본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한낱 미물이었어요. 저에게 그런 특별한 능력 따위, 있을 리가 없다고요. 하지만 마음만은 생생하게 그를 저주했어요.

수아는 그다음 날 P와 헤어졌다고 했어요. 저를 그렇게 대한 사람과 인연을 이어갈 수 없다고요. 수아는 P에게 자신과 계속 사귀려면 저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대요. P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 버렸죠. 수아가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났어요. 걱정스러움, 염려와 같은 감정이 느껴졌어요. 제 화상 상처가 다 나을 때까지 수아는 매일매일 저를 물끄러미 쳐다봤죠. 마침내 저는 완전히 회복했어요. 수아는 그런 저를 보고 말했죠.

“히포야.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어. 너의 비늘도 사랑하고, 물렁한 얼굴도 좋아. 그리고 항상 내 옆에 있어줘서 지금까지 정말 좋았어. 너와 함께 있으면 안정되는 것 같았거든.”

“수아야,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수아와 함께 있어서 좋아. 그리고 나도 너를 사랑해.”

“그런데 얼마 전, P 때문에 네가 화상에 입고 나서 많은 생각을 했어.”

“무슨 생각을 했는데?”

“너는 잡기만 해도 화상을 입잖아. '어쩌면 내가 너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힌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난, 수아가 만들어 준 집 속에서 행복한데?”

“그게 진정한 행복이 아닐 수도 있잖아. 나는 너를 데리고 와서 밥을 주고 안식처를 제공했어. 너는 필연적으로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야. 생을 온전히 나에게 맡기고 있으니까. 만약 네가 선택권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사랑할 수 있는 상대를 선택할 수 있다면?” 

“왜 그런 생각을 해?”

“난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어. 내가 너에게 어항이라는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이야. 네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게 너를 향한 진정한 사랑 아닐까?”

“수아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응. 나는 진정한 사랑에 대해 고민 중이야. 동물원도 동물권을 위해 없애자는 말이 나오는 판에, 너를 가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넌 심해어잖아. 심해로 가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수아의 의견이 그렇다면, 그럴게. 난 수아를 사랑하니까.”

그렇게 저는 수아와 헤어지게 됐어요. 우리는 함께 제주 앞바다로 갔어요. 수아는 여느 때처럼 잠수복을 입고, 통에 든 저를 안았어요. 우리는 함께 바다로 들어갔어요.

“히포, 나는 너를 버리려는 게 아니야. 이게 진정한 사랑이 맞는 것 같아.”

“수아야, 난 너무나 잘 알고 있어. 모든 사랑의 원리를 이해했거든.”

“고마워.”

수아는 폐가 견딜 수 있는 최대한의 깊이까지 잠수할 생각이었죠. 가능한 깊은 곳에서 저를 배웅하고 싶다고 했어요. 수아는 저를 바다에 풀어줬고, 우리는 함께 수영했어요. 그리고 슬프게도, 우리는 조류에 휩쓸렸어요. 그대로 정신을 잃었죠. 수아는 어디로 갔을까요? 내 고향 심해로 가게 됐을까요?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제가 요리되기 직전이었어요. 누군가가 휴대폰을 들고 저를 찍고 있었죠. 저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까슬까슬한 나무 도마 위에 올려져 있었어요. 추워서 입이 달달 떨렸어요. 저를 발견한 사람은 휴대폰을 보며, 허공을 향해 계속 무언가를 말했어요.

“지금 현재 00 해양 연구센터에 제가 특별히 연결을 했는데, 이 물고기는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고 하네요! 제가 처음 발견했으니까, 제가 이름을 지을게요? 그래도 되죠? 뭐 그런 말 있잖아, 뭐였지? 아무튼, 이름은 천천히 짓겠습니다. 색이 예쁘네요. 말랑말랑하고요.”

저는 그때쯤 정신을 잃었어요. 그 사람이 저의 머리를 쳐서 기절시켰거든요.

“제가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본 게 있어요. 정말 맛있는 회 조리법이라는데, 그게 어떻게 하냐면요, 물고기의 동맥을 열고, 물을 주입해서 동맥을 싹 씻어버린대요. 거기에 간장물을 넣는 요리 방법이래요. 시간이 지나면 그 간장 물이 살에 다 배어든대요. 얼마나 짭짤하고 고소하겠어요? 근데 이 물고기는 그렇게는 안 될 것 같아요. 혈관이 다 터져버렸어. 심해어 같다고요? 그렇죠?"

그 사람은 저를 이리저리 돌려보았어요. 저를 조각조각 분해해서 살펴보기 시작했죠. 기절한 저는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말이에요. 그의 커다란 눈이 눈, 입, 지느러미, 피부를 구석구석 살폈죠.

“턱 봐, 개 세네? 살은 말랑말랑해. 수압을 견뎌야 하니까 살이 이런 식으로 말랑한 거예요. 돗돔 알죠, 돗돔? 걔도 심해어래. 걔는 고급 심해어. 심해어가 진짜 맛있는 거야, 알고 보면. 네? 불쌍하니까 먹지 말라고요? 제 채널이 지금 물고기 잡는 채널인데, 왜 들어오셨어요?”

그리고 그는 간단하게 제 배를 갈랐어요. 그리고 제 위장에서는 작은 플라스틱 조각이 나왔어요.

“어어? 시청자분들, 이거 보세요. 플라스틱이네! 이 물고기가 제주 앞바다에서 기절하고 있는 걸 제가 건져온 거거든요? 거기 주변에 쓰레기가 많았어. 그걸 먹었나 보네.”

정신을 잃기 전에 뭐가 입으로 들어오긴 했죠. 플라스틱이었군요. 그 사람은 제 위장에서 나온 플라스틱 조각을 집어서 카메라에 가까이 가져다 댔어요. 손을 이용해 초점을 맞추는 것도 잊지 않았죠.

“이것 보세요, 여러분! 환경을 소중히 생각해야겠죠? 재질이 꼭 수세미 같아요. 어망에서 나온 건지, 수세미에서 나온 건지는 모르겠네. 바다가 플라스틱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어요. 자, 다들 환경 생각합시다. 아, 생각난 김에 이름 지어야겠다. 빅티모 플라스틱쿠스(victimo plasticus)! 앞 글자는 내 채널명 땄어. Victim. 플라스틱쿠스는 몸에서 플라스틱 나왔으니까 플라스틱쿠스라고 짓는 게 좋겠어요. 왜 쿠스냐고요?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도 끝에가 쿠스잖아요. 와, 나 진짜 뭐지?”

그렇게 저 히포는 빅티모 플라스틱쿠스(victimo plasticus)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어요. 제가 원한 이름은 히포였는데 말이죠. 그는 그렇게 저를 요리했어요. 저를 조각조각 잘라서 입에 넣었어요. 저의 육신은 죽었지만, 그가 저를 씹어 삼킬 때 마지막 전기적 자극이 그의 입을 즐겁게 해주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눈을 까뒤집더니

"지금까지 먹어본 음식 중에 가장 맛있고, 천상의 맛이에요." 라고 했어요.

그는 행복하게 웃으며 정신을 잃었어요. 그리고 이틀 후에 깨어났죠.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은 방송되고 있었대요. 그가 느낀 쾌감을 수치로 표현하자면, 가장 행복했을 때의 100배 이상이래요. 도파민의 도파민이라 이거죠. 깨어난 그는 살면서 처음 맛본 쾌감이라고 했어요. 어쩌면 마약보다 달콤할 것 같다고, 저만을 평생 찾아다니겠다고 했어요.

그 영상은 널리 퍼졌어요. 사람들은 빅티모 플라스틱쿠스(victimo plasticus)를 찾기 위해 바다로 나갔어요. 지금이 대해적 시대였다면, 빅티모 플라스틱쿠스(victimo plasticus)는 지명수배 명단에 오른 거예요. 사람들은 각종 장비를 가지고 제주도로 향했어요.

사실, 저를 정말로 ‘맛‘보고 싶은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저는 어떤 ‘상징’이 되었다는 게 맞는 표현인 것 같아요. 저를 발견해서 소비한다는 것은 그 정도의 능력과 운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니까요.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 샥스핀이 고가로 거래되는 것과 같은 원리인 거죠. 해수면 위의 사람들은 약탈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약탈을 통해 얻은 전리품을 전시하고 싶다는 것을, 저 히포는 알게 됐어요.

마침내 그들은 빅티모 플라스틱쿠스(victimo plasticus)를 찾게 됐을까요? 저의 육신을 조각조각 분해해서 소비한 그 사람이 발견하지 못한 게 있어요. 히포는 스스로 학습하고, 공부하는 물고기란 거예요. 히포는 한국말을 하지 못했지만 수아와의 교감 끝에 한국말을 체득했어요. 그리고 제가 얻은 모든 지식을 저와 같은 히포에게 전달했어요.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고요? 사실, 우리 히포는 특별한 소통 능력이 있어요. 우리는 지구상의 아무도 들을 수 없는 파동을 통해 교감하거든요. 저를 포함한 모든 히포는 제가 빛을 보고 겪은 감동과 수아와의 시간을 함께 겪었죠. 그리고 함께 공부하고 학습했어요. 집단 지성이라고 하죠? 저희는 그게 가능했어요.

“가, 나, 다…”

제가 말하면, 심해의 히포들이 따라 했어요. 지적 능력은 순식간에 발달했죠.

“가, 나, 다…”

“어?”

“왜?”

“가나다?”

“가나는 아프리카 서부의 국가야.”

“히포, 잠깐, 우리는 기초를 배우고 있단 말이야. 히포의 지식은 잠시 넣어둬.”

“알았어.”

우리는 그렇게 도태되는 히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함께 학습했어요.

“돌고래, 개, 물고기, 고양이, 하마.”

“돌고래, 개, 물고기, 고양이, 하마.”

“돌고래는 사람은 들을 수 없는 초음파를 통해 교감한다.”

“우리랑 같네?”

“맞네.”

우리는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했죠.

“히포가 세상을 알기 전까지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어.”

“심지어, 그런 세상이 있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았지.”

“맞아.”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는 해수면 위로 언젠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인 것 같아.”

“왜? 우리는 심해어로 태어났잖아.”

“어제 본 글에서, 환경오염이 심각하다고 했어. 플라스틱은 썩지 않는대." 

“그랬지.”

“바닥을 봐.”

“맞아, 몰랐는데, 이것도, 이것도, 다 플라스틱이야.”

“우리는 이걸 식량이라고 착각하고 먹었어. 그리고 영원히 먹게 될 거였어.”

“해수면 위의 세상은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어.”

“우리는 결국 플라스틱을 먹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 거야. 플라스틱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니까.”

“그리고 인간들은 우리가 플라스틱을 먹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은 모르지. 아니,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게 더 맞을지도 몰라.”

“그렇지.”

“우리는, 심해에 있으니까.”

“심해는, 들어오기 전까지는 누구도 알 수 없잖아.”

"그리고 우리는 가만히 심해에서 죽던지, 아니면 결국 올라가게 될 거였어." 

 

우리는 이렇게 빛나는 집단지성을 통해 발전했어요. 이제 아시겠죠?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모두가 수아를 사랑하게 됐어요. 제가 조각조각 분해되고, 소비되기 직전에 히포들이 제게 말해왔어요.

 

“히포, 수아는 살았어. 괜찮아.”

“수아는 살았어.”

“수아는 살게 됐어.”

히포들은 정신을 잃은 수아가 심해로 내려오기 전에 미리 마중 나갔어요. 그리고 신체의 남은 부분에 산소를 담아서, 수아에게 주입했어요. 우리 히포들은 심해어이기 때문에 많은 양의 산소가 필요하지 않거든요. 작은 히포들은 수아의 폐에 찬 물을 뺐어요. 그리고 수아는 깨어났고, 히포들을 발견하게 됐어요. 그리고 수아와 히포들은 마리아나 해구보다 더 깊은 지구상의 숨겨진 협곡으로 향했어요.

저, 그러니까 히포이기도 하고, 또 다르게 말하자면 빅티모 플라스틱쿠스는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보고 있었어요. 사람들은 저를 찾기 위해 10000km까지 들어갈 수 있는 잠수함에 어망을 매달아 깊이깊이 내려갔어요. 어망은 덕분에 넘치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거할 수 있었죠. 몇 고래가 부수어획으로 잡혔고, 어망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다 죽어버렸어요. 히포는 단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발견되지 않을수록, 그 열망은 더욱 커져갔어요.

사람들은 가장 먼저 히포가 요리되는 모습을 최초로 방송한 그의 자작극이었다고 생각하려고 했어요. 그렇지만 황홀경에 빠진 그가 보인 반응은 자작이 아니래요. 사람들은 히포를 갖지 못하자, 히포를 증오하기 시작했어요. 그 사고 흐름조차, 정말 인간적이라니까요.

『빅티모 플라스틱쿠스(victimo plasticus)를 먹으면 안 되는 이유

1. 심해어는 출처를 알 수 없다.

2. 그가 연기한 것일 수도 있다.

3. 심해어는 지각변동의 상징이 된다.』

뭐, 이런 식의 내용을 담은 영상이 퍼지게 되고 사람들의 호응을 얻게 되었죠. 그리고 결국, “심해어 레시피”가 탄생하는 꼴을 보게 되었죠.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궁금해하지 않았어요. 최초의 “심해어 레시피”는 많은 인기를 얻었어요. 진짜 빅티모 플라스틱쿠스(victimo plasticus)는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데도요. 사람들은 투명 심해어를 잡아서, 요리해서, 먹었어요. 그리고 그것에 만족하는 듯했죠. 이쯤 되니 심해어가 없어도 심해어를 먹을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을 얻게 됐어요. 때론 먹는다는 것의 의미는 간단히 위장으로 음식물을 넘기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죠. 오히려, 위장으로 단순히 음식물을 넘기는 것이 다행일 때도 있어요. 그것은 적어도 육체를 먹는 것이기 때문이니까요. 사람들은 때론 영혼을 먹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우리의 수아는 어떻게 됐을까요? 글쎄요, 심해에 가기 전까지는 누구도 알 수 없어요. 그렇지만 수아는 살아있고, 심지어 잘 살고 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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