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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종말이 온다!

2012.06.23 02:1006.23

실연에는 이유가 필요하다. 민정은 우리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뭐든 그녀에겐 이유가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만나기도 힘든 것, 전화통화도 제대로 안 되는 것, 호들갑떨기 좋아하는 내 성격까지.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눈앞에서 대성통곡하는 민정을 달래는 것만으로도 진이 다 빠질 지경이었는데 어느 틈에 그런 걸 생각하나.
사실 울어야 하는 건 나였다. 아르바이트는 잘렸고, 공모전은 떨어졌고, 엄마는 낙상해 다리에 수술을 받고, 설상가상으로 여자친구에게 차이기까지 했다. 세상에 욕설을 토해내며 울고 싶었지만, 그래도 나는 민정을 위로하느라 온갖 방정을 다 떨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 지 스스로도 한심하기 그지없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민정은 진즉부터 경고하고 있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표정으로, 점점 짧아지는 문자로, 전화를 걸었을 때 들려오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같이 만날 때 마다 내쉬는 한 숨으로 계속해서 경고했다. 그걸 뻔히 보고도 아무런 대처도 못 한 건 나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뭐든 했으면 좋았을 거다. 사태를 회복시킬 방안이든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든 빨리 생각해뒀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와 이런 생각을 한들 너무 늦었다. 오래되고 진부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다.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하지만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했단 말인가.

종말이 온다!

그런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시험이 코앞에 닥쳤는데 아는 건 없어서. 당장 과제물을 제출해야 하는데 써놓은 건 없어서. 할 일은 산더미인데 지금 당장 게임을 하고 싶은 욕망은 사라지지 않아서. 그런 비명을 나도 모르게 내질렀던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헛소리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에게 중요한 건 종말이 왔으면 하는 망상 따위가 아니라 코앞에 놓여진 백지 위에 어떻게 레포트를 작성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전날 밤도 게임과 만화로 지새우는 바람에 컨디션이 바닥이었다. 오전 수업 시간에 전략적으로 졸아 체력을 보충한다는 계획은, 즉석에서 쪽지시험을 보는 바람에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감기증세가 있는 지 머리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런 컨디션 속에서 당장 두 개의 레포트를 작성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만화나 게임 따위를 하면서 시시덕거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일 할 일은 오늘 하라고 했던가, 할 일을 하루하루 미루다보면 산더미처럼 쌓인다고 했던가. 누가 한 소리는 모르겠지만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과제를 수령한 지 2개월 동안 “내일은 꼭 해야지.”라는 헛된 다짐만을 해오며 밤마다 게임 속 캐릭터들과 씨름해온 결과가 이거였다.
인과응보, 사필귀정이다. 혹시나 해서 친구들의 레포트를 융통할 수는 없을까 카카오톡과 메신저를 총동원 해 구걸을 해 보았지만 돌아온 것은 싸늘한 거절뿐이었다. 애초에 나에게는 이럴 때 도와줄만한 친구도 없었다.
어쨌거나 세상의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도 돌아간다. 레포트를 작성하는 중간에 만화를 보면서 딴 짓을 하던, 시간에 도저히 못 맞출 것 같아 융통을 구걸하다 실패로 돌아가던 시간은 착착 흘러갔다. 나는 그런 상황에 처해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려서, “이번 주 안에만 끝내서 제출하면 되겠지.” 따위의 망발이나 일삼으며 웹툰을 뒤적거렸다. 레포트를 시간 내에 작성하지 못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F학점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종말이 온다!

그런 소리가 좀 더 확실하게 들려온 때는 게임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는 도중이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모니터를 껐다. 오랜 세월에 걸친 반사작용이었다. 그간 밤에 게임을 할 때마다 엄마가 뒤에 대로 소리를 질러대다 보니 자연스레 몸에 익은 동작이었다. 하지만 뒤에는 아무도 없다고 해야 하나, 사실 집에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시험기간에 그토록 당당하게 게임으로 밤을 지새울 수는 없다. 엄마는 병원에 있었다. 적어도 두 달은 집에 돌아올 일이 없었다. 빗길에 미끄러져 부러진 엄마의 다리는, 의사가 진지한 태도로 좀 많이 안 좋다고 이야기 할 정도였다. 골반과 다리를 이어주는 관절이 부러져 돌아갔다. 그걸 다시 짜 맞추어 철심으로 고정했다고 하니, 아무것도 없는 길바닥에서 넘어진 것 치고는 커다란 수술을 한 샘이다. 어쨌거나 그 덕에 엄마는 병원에 있고, 나는 집에서 게임이나 하면서 태만히 지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 목소리는 무엇인가. 혹시나 이어폰에 이상한 소리가 섞여들었나 확인하기 위해 컴퓨터의 작업창을 점검해 보아도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내가 너무 피곤한가. 생각해보면 그런 이상한 헛소리가 들리는 것도 당연했다. 요 며칠간 잠이라고는 버스나 학교에서 간간히 조는 것이 전부였다. 밥해먹기도 귀찮아 라면이나 과자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 요즘. 몸 상태가 여러모로 최악으로 치닫을 만 했다.
그나저나 종말이 온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농담이다. 십몇 년 전에나 유행했던 헛소리다. 요새 사람들이 말세론에 관심을 갖기나 할까. 그런 건 손가락 끝에서 장풍이 나간다고 믿던 시절에나 통하던 사기극이다. 요즘은 산 속에서 수련하는 도인 이야기만 나와도 사기꾼이 아닌지 의심해보는 시대고.
어쨌건 나는 꺼림칙한 기분을 떨치지 못한 채 컴퓨터의 전원을 내렸다. 이게 다 잠이 모자라서 그런거다. 아니면 불안해서 그렇거나. 시험기간에 과제 제출기간인데 놀기만 해도 과제도 안했더니 온갖 망상이 명치 언저리에서 꿈틀거렸나 보다. 나는 “내일부터는 과제도 다 끝내고 잠도 일찍 자야지.”하고 다짐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교실 구석에 앉아 핸드폰으로 스캔본 만화 따위나 뒤적거리고 있는데 동기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멍청하고 나서기 좋아하는 동기 한 명이 어젯밤 공부하면서 겪은 일을 신나서 떠들고 있었다.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환청이 들린다는 이야기였다. 신기한 일이었다. 시험에 앞 둔 학생들은 다 비슷비슷한 생각을 하는 걸까.
나도 환청을 들었다며 같이 떠들기나 했다면 애들하고 말문도 트고 참 좋았을 테지만, 나는 그리 사교성이 좋은 인간이 못 되었다. 민정과 헤어진 이후로 몇 명 없던 친구들과도 연락이 서서히 끊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동기라고는 해도 인사도 한 번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사람들과 말을 섞는 건 어려웠다. 슬프고 우울한 일이다. 그들과 내가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 해도 나는 주변인에 불과했다.
교실에서 떠도는 잡담들을 종합해보니 밤중에 이상한 환청을 들은 사람이 비단 나랑 바보같은 동기 한 명 뿐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환청의 내용도 상통하는 것이, 하나같이 종말이 온다는 이야기였다. 집단 환각에라도 빠진 듯 했다.
나는 특별히 할 일도 없고 시험공부를 하기도 귀찮아서 환청에 대한 생각에 몰두했다. 같은 과 동기 중 불특정 다수가 같은 환청을 들었는데, 이 집단은 성별도 성적도 교우관계도 다 제각각인 인물들이라 특별한 접점이 없었다. 게다가 군 복학 한 학우들과 졸업 못한 여학우들이 한 데 섞여있어서, 전공필수과목을 제외하면 각기 듣는 과목도 상이했다.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걸까. 하지만 우리가 다 같이 듣는 수업은 현대인의 글쓰기뿐이다. 그렇다면 교수님도 이번 일에 무언가 연관이 있을까?
혼자 노트에 이것저것 적어가며 시간을 때우고 있는 와중에 교수님이 초췌한 얼굴로 입장하셨다. 어젯밤 구토하고 설사하시느라 밤을 지새우셨다는 모양이다. 그렇게 편찮으시면 굳이 학교 나오지 않으셔도 되는데, 하는 가식적인 탄성이 오갔다. 만일 오늘이 시험날이 아니라면 휴강이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당연한 이야기로, 나는 시험을 망쳤다. 다섯 문제 중 아는 문제 세 문제를 골라서 서술하라는데 셋은 고사하고 하나도 모르겠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어차피 중간고사다. 실기평가와 각종 과제물로 만회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현실도피거리로 환청에 집착했다. 그러니까, 그 날 오후에 설사와 구토에 시달리기 전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종말이 온다!

학생의 절반 이상이 식중독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게 된 걸 안 이사장은 그렇게 외치지 않았을까. 학생식당의 관리가 막장을 달리더니 꼴 좋다! 병실에 누워있는 신세만 아니었더라도 그렇게 외치며 게임 속 세상을 누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컴퓨터의 전원을 켜기는 커녕 침대에 누워있는 것 만으로도 속이 메슥거릴 지경이다.
그 때 나는 우리가 시달리는 환청이 식중독의 잔재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유를 대라면 열 한가지 라도 댈 수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그러니까 이런 현상을 규명하는 이론이라는 게 있는지 의문이지만 아무튼 내 나름대로 따져들어가 보자면 이렇다. 사람이 병에 걸리면 컨디션이 나빠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날 식중독 때문에 컨디션이 엄청나게 안좋았다. 게다가 시험 전이라 정신적으로도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러니 단체로 어떤 환각에 시달리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근거도 없는 비약에 가까운 추리였지만 나는 이 생각이 너무나도 논리적으로 느껴졌다. 어떻게든 대답을 생각해내고 나니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고민할 힘을 잃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험기간에 현실도피요으로 하던 망상보다는 코앞에 놓여진 PSP 리듬게임이나 하는 게 더 재밌었다.
병원에 입원해서까지 시험공부니 과제물이니를 신경쓰는 놈들이 여럿 보였다. 진짜 미친놈들이다. 아니. 어째서 병원이라는 합리적이고도 유용한 변명거리를 손에 쥐고 저리도 성실하게 산단 말인가. 그렇게 산다고 해서 뭐 나오는 것도 없을텐데.
학생들 다수가 식중독에 시달리는 덕분에 다른 시험들은 일주일 뒤로 미뤄졌다. 나는 최대한 긴 시간을 병원에서 뻐기고 싶었지만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식중독을 핑계로 병원에서 노닥거릴 수는 없었다. 우리 엄마는 적어도 두 달을 입원해 있어야 했지만.
엄마는 나와 같은 병원에 입원했다. 아니다. 내가 엄마와 같은 병원에 입원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다리가 아작나는 바람에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엄마는, 병실 침대에 누워 있어도 그 성격이 전혀 죽지 않았는지 간병인을 벌써 두 번이나 갈아치운 모양이었다. 전화도 자주하고 소리도 곧잘 질렀다. 아파도 정정하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었다.
아무튼, 병원에 머물게 된 김에 겸사겸사 짬을 내서 찾아가보니 엄마는 “시험 어떻게 됐어?”라는 이야기부터 꺼냈다. 걱정해주시는 마음에 눈물이 났다. 시험공부 하나도 안해서 그런건 아니고.
“시험은 다음 주에 본대.”
“그래. 잘됐다. 너 게임하느라 공부 하나도 안 했을 거잖아.”
“불신 쩐다. 왜 그렇게 날 못 믿어?”
“네가 뻔하지 뭐.”
그런 쓰잘데기 없는, 다시 말해서 모자간과 유지에 아주 유용한 잡담을 나누고 있는데 건너 건너편에 앉아있는 여자애가 눈에 들어왔다. 굉장히 눈에 띄었다. 미인이거나 굉장한 추녀이거나 해서 눈에 띈 것이 아니라, 이 병실에 그런 젊은 여자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표정이 무척 우울해 보여서 였을까. 그녀 주변의 공기가 1kg은 더 무거워 보였다. 만약 만화를 그린다 치면 그 여자애 주변에만 짙은 톤을 덕지덕지 붙여놓았을 느낌이었다.
“학교에서 애들한테 맞아서 입원했다더라. 손을 담배로 지져서 화상에 엄청 심하대.”
“괴롭힌 애들은 어쨌대?”
“경찰이 잡아갔겠지.”
과연 그럴까. 엄마 손을 잡은 채 옛날 일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때고 중학교 때고 저러다 죽지는 않을까 싶을 만큼 애들한테 맞는 애들은 많이 보았지만 경찰이 사건을 해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선배들이랑 선생님들이 애들 입막음 시켰던 기억은 있어도.
“저 애한테는 하루하루가 종말이겠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울해 보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단괴롭힘은, 어떻게 해도 벗어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최악의 수단으로 전학을 간다고 해도 ‘전에 있던 학교에서 왕따라서 도망쳐온 애’라는 꼬리표가 붙을 거다. 선생들의 관심은 오히려 애들 사이에서는 악영향으로 작용할테고. 아마 본인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거다. 지금도 죽고싶은 심정일지도 모른다. 퇴원하고 나서 자기를 괴롭힌 애들에게 돌아가느니 차라리 세상이 망하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종말이 온다!

식중독이 완전히 나아서도 환청이 계속해서 들린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누군강게 상담해야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슬슬 미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다. 내가 미쳤는지 걱정되기 시작되었다는 말이 옳다. 민정이랑 헤어질 때도 그랬지만 짐작 가는 바가 너무 많았다. 게임 중독 때문인가, 사회 부적응 때문인가, 공황장애 때문인가. 정신질환을 한 다스로 살아가는 내가 환청이 들린다는 건, 사실 생각해보면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다. 이게 다 국가에서 예비군에 대한 대우를 제대로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군데에서 온갖 학대를 다 받으며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가 갑작스레 사회로 내팽개쳐진 나 같은 사람들을 신경ㅜ지 않으니까 현실과 멀어지고 온라인 세상에 집착하다 결국 미쳐버린거다.
어쩌면 다른 애들도 환청이 들렸다는 건 나 혼자만의 망상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인터넷에 질문글을 올렸다.
“종말이 온다는 환청이 자꾸 들려요. 어떻게 해야 하죠?”
올라오는 답변들은 내 예상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냥 인터넷에서 관심받으려는 헛소리로 치부해버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냥 정신병자라며 온갖 매도와 욕설을 아끼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거기까지만 살펴보고 인터넷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차라리 게임이나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게 더욱 유익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게시물을 다시 확인했을 때 상황은 크게 달라져 있었다. 종말이 온다는 환청을 들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기 시작한 것이다. 몇백 개의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너무 많아서 댓글생성란이 막혀있었다. 나는 게시물을 다시 올리고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했다.
나는 오랜 세월 인터넷에 붙박여있던 경험으로 이번 사건이 어떠한 기회임을 직감했다. 이른바 네임드가 될 기회. 유명인이 될 기회였다.
나는 재빨리 긴급카페를 개설하고 사람들을 모았다. 몇몇 관심 종자들의 활약 덕분에 카페의 방문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환청을 들었다는 사람들도 시시각각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중 절반은 그냥 관심받고 싶어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진지하게 자신의 증세를 걱정하며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자기가 미쳤는가 하는 걱정에 사로잡힌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데에서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얻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일종의 동지 찾기였다.
카페에 모여든 사람들은 제각각이었다. 인터넷이라는 환경상 10대나 20대가 대부분이었는데, 드물게 30대 40대도 보이는 걸 보니 그냥 인터넷 사용빈도의 문제 같았다. 카페의 회원들이 워낙 많고 별에 별 사람들이 보여 있다 보니 프로필상의 정보로는 별로 건질 게 없었다.
한 번은 이 현상이 정확히 시작된 날이 언제냐를 두고 토론이 벌어졌는데, 싸움이 날 뻔했다. 하기야 모든 토론이라는 게 중간에 끊지 않으면 움으로 발전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략적인 시기에 대해서는 다들 이견이 없었따. 4월 중순쯤부터 다들 이런 일을 겪기 시작했다.
이 일을 뉴스에 제보하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인터넷기자들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내가 파악한 것만 해도 네 명은 더 가입해있었다. 조만감 어떤 식으로든 매스컴에서 터질 것이 분명해보였다.
환청의 내용이 워낙 간결하고 명료했기에, 의미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종말이 온다니. 다들 불안해하기보다는 지겨워했다. 환청을 듣는 사람들은 점점 신경질적이 되어갔다. 누구라도 계속해서 종말이 온다고 귀에 대고 쫑알거리면 그렇게 될 거다.
회원수가 다섯자리에 도달햇을 때 나는 안심했지만 불안했다.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데에는 안심했지만 이렇게까지 관심이 쏠리는 건 불안했다. 나는 천성이 주변인이라 사람이 바글바글하고 왁자지껄한 건 딱 질색이었다. 나는 카페 관리저의 권한을 스탭 중 한 명에게 인계했다. 카페는 맨 처음 정신분석학 적 측면에서 접근하거나 서로의 경험담을 떠느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점차 종말론과 음모론에 대한 토론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20세기와 21세기 사이를 살아가는 밀레니엄 세대들은 모두들 종말이 온다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붙도록 들으며 자랐다. 소설에서도 종말. 영화에서도 종말. 시에서도 종말. 심지어 오락실 게임들마저도 종말의 분위기가 만연했다. 온갖 사이비 종교들은 세상이 망하니 영생을 구해야 한다며 떠들어댔고……이 이야기들은 언젠가 더 기록 자세하게 할 기회가 있을거다. 아무튼 그렇게 종말론에 익숙해진 세대답게, 우리는 제법 그럴싸해보이는 종말 이야기 몇 개를 꺼내들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마야의 2012년 세계멸망 예언설을 꺼내들었다. 뜬금없이 달 공동설이나 지구 공동설을 근거로 든 사람들도 있었다. 별 내부의 외계인이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것은 신박한 놀이였다. 다들 즐겁게 깔깔대며 각종 가설을 꺼내들었다. 개중에 ‘정말로 종말이 오면 어쩌지?’라는 고민 ㄸㅒ문에 좌절에 빠지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새로운 정신병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면 늘었지. 세계멸망같은 얼토당토 않은 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뭐랄까. 너무 지겨웠다.
  매스컴에서 이 일을 본격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한 건 5월이 다 되어서였다. 하지만 그건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종말이 온다!

그렇게 외쳐대는 사람들이 총기난사 사건을 벌였다. 어디냐면 미국에서.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으리라는 건 생각도 안하고 있었기에-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만 이런 일을 겪는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의문이지만-깜짝 놀랐다.
이 시점에서 내가 만든 카페가 풍비박산이 났다. 그렇지 않아도 정신이상자 집합소라고 매도받던 상황에서 이런 사건까지 터져버리자 부정적인 여론이 폭주했다. 이와 더불어 사이버테러가 시작되면서 카페 운영진에 대한 신상털기가 시작되었다.
피해는 막심했다. 특히 내가 관리권한을 넘겨줬던 스탭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최근의 언행까지 낱낱이 드러나면서 큰 곤욕을 치렀다. 그 중에서도 화룡정점을 찍은 것은 최근 그에게 성매매 혐의가 있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그 스탭에게는 안마방 예언자라는 불명예스러운 칭호가 붙었다.
  환청 경험자에 대한 국가적인 조사가 시작되었다. 말로는 보건소 와서 상담 한 번씩 받아보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정신병자 목록 작성하는 느낌이라 기분이 영 찝찝했다. 이 무렵 각종 언론에서는 환청을 듣는 사람이 어느 정도 되는가에 대한 조사를 했는데, 인구의 5% 이상이 환청을 듣고 있다는 깜짝 놀랄 결론이 나왔다. 한자리수 퍼센테이지라고 하면 그리 높은 숫자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80억중의 5%다. 똑같은 환청을 듣는 사람이 무려 4억명 가량은 될 것 같다는 통계가 나온 것이다!
이쯤에서 음모론이 대두되었다. 음모론이야 처음 환청이 발견되었을 때부터 쉴 새 없이 튀어나왔다. 나는 당장이라도 다섯 가지의 상이한 음모론에 대해 그럴듯한 근거까지 덧붙여서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런데 음모론을 제시한 사람은 좀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미국 유명하신 흑인 대통령은 특정 음모세력의 신종 세균테러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환청에 대해서 미온적인 시각을 보이던 사람들도 똥구멍에 불붙은 강아지마냥 병원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시골에 있어서 엄마가 입원해있는 병원도 꽤 한적한 편이었는데, 병원 개업한 이래 단 한 번도 꽉 채워본 적이 없다는 병동에 꽉꽉 들어찰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그래. 엄마도 문제였다.
엄마는 이제 한 시간에 한 번 꼴로 나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내 몸 걱정해주는 거야 눈물 나게 고마운 일이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수업시간에도 계속 전화벨이 울렸다. 내가 수업을 빠지고 있어서 망정이지.
엄마는 숫제 나를 미친놈 취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환청이 어떻게 들리냐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요즘 기분은 어떠냐, 이상한 게 보이지는 않냐, 주변 사람들이 너를 괴롭히냐 등등 온갖 걸 물어봤다. 엄마는 요양원에서 일하면서 장기가 치매환자들을 돌봐왔는데, 나를 그 노인네들과 같은 급의 환자로 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제 곧 2차 과제물 제출기간도 다가왔기에 인터넷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책상 앞에 앉아 골머리를 썩고 있을 무렵, 그러니까 지금 게임을 켜야 할 지 글을 켜야 할 지 진지하게 갈등하고 있을 무렵, ‘종말이 온다!’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했다. 뻔하기 그지없는 재난영화였지만 나 처럼 환청을 듣는 사람들은 썩 즐겁게 보았다. 누구라도 자신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 이야기를 본다면 그랬을 거다.
그 때 까지도 종말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민정은 진지했다.

종말이 온다!

매사에 그런 성격이었다. FTA사건 때는 엄청 진지해서 이제 곧 영화산업이 망할 거라느니 국산제품은 다 작살이 날 거라느니 통곡을 했다. 광우병 사건 때는 교복을 입고 광화문으로 나가 촛불을 들었다. 작년에는 대학 등록금 반값을 요구하며 종횡무진 날뛰었다. 그보다 오래전 밀레니엄을 맞이할 때는 진지하게 종말에 대비하기 위해서 라면이니 실용품이니 사재기하기도 했다. 내 생각에 민정은 유비무환의 자세에서 그러한 일들을 대비하기 보다는……그냥 그러고 사는 게 행복해보였다.
연락이 온 건 5월 25일이었다. 내가 군 입대했던 날에 온 연락이라 매우 불쾌했다. 늘 만나던 장소인 수원역 일대가 폐쇄되는 바람에 우리는 안양역에서 만날 수밖에 없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촛불시위가 연일 계속 되고 있었다. 종말이 인간광우병을 통해서 도래한다나. 황당할 정도의 비약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제법 그럴싸한 이야기로 보였나보다. 덕분에 요즘 거리에서는 “종말이 온다!”고 떠들어대는 사람이 잔뜩이었다. 머릿속에서 떠들어대는 소음만으로 충분한데 사람들도 저 말을 입에 달고 살다니.
“너도 이상한 소리 들려?”
“우리 헤어진 사이 아니었냐?”
“지금 그게 중요해?”
중요하지. 엄청 중요한데 굳이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피차간에 친구 없는 걸 알고 있는 처지다. 굳이 아픈 곳을 건드려야 할까? 본인도 떠들 상대가 없어 나한테 연락하는 게 엄청 굴욕적일텐데.
우리는 수원역 모 상가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 서로가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민정은 내가 그 유명한 카페를 개설한 인물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도 알 수 있는 정보들을 그렇게 신나서 떠들어댈 리가 없다. 난 뭐, 그냥 이야기를 듣는 척 하면서 어떻게 다시 한 번 수작이나 걸어볼까 고민했다.
민정은 두서없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주로 이 현상이 우리 사회에 끼치고 있는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과연 환청 때문에 신경질적으로 변한 사람들이 여러 가지 사고를 치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정신적 피로로 일어난 사건사고만 일곱 건이다. 사망자는 세 명으로, 갑자기 스트레스가 폭발해 다투다가 죽은 사람 두 명, 밤중에 운전하다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핸들 꺾었다가 죽은 사람이 한 명이었다. 미국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시종일관 귀에 대고 떠들어대니, 자비심이라도 짜증이 날 걸.
종교계에서는 이 현상을 본격적인 홍보의 수단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각종 사이비들은 ‘종말에 대비하자!’는 구호를 내세우며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고 엉덩이 무거우신 교황님조차 “이 현상은 전 인류가 주목할 만한 초자연적 현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아예 새로운 종교가 나타나기도 했는데, 소금으로 몸을 씻음으로써 죄를 씻는다는 좀 정신 나간 종교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과학계는 박살이 났다. 어떤 과학이론도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간 박해받았던 유사과학자들과 오컬트 연구자들이 이 때다 하고 들고 일어났는데, 그간 과학자들이 내세웠던 회의론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실례(實例)가 없다’는 게 회의론자들의 주장이었으니까.
우리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된 정보는 취업문제였다. 환청을 듣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취업활동에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섬뜩한 이야기였다. 이제 정신의학적으로 건강하다는 증명서가 없으면 취직도 제대로 못 할 지경이었다. 의사들만 때 아닌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민정은 이 대목에서 특히 분개했는데, 졸업하고 나서도 1년 동안 취직을 못하고 있는 것과 관계가 없어보이지는 않았다.
또한 민정은 이 환청이 불특정 다수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에게 내제되어 있으며, 개인차가 있을 뿐 조만간 전부 같은 일을 겪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은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한 달 사이에 환청을 듣는 사람이 두 배 가량 증가한 것이다. 이 증세는 확산되고 있었다.
“그럼 사이좋게 전 인류가 정신병자가 되겠네. 환청도 생활의 일부로 평범해지겠는데?”
“너 진짜 생각 없다. 이게 뭔가에 대한 경고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
“아니 뭐. 전 인류가 그럴 정도면 뭔가 있기는 하겠지.”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솔직히 내 관심사는 종말론이 아니라 민정의 얼굴에 희미하게 보이는 수염이었다. 여자는 연애를 포기하고 치장을 관두면 처참하게 황폐해지는구나. 이것도 나름의 종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의 종말은 오고 있는지 아닌지 몰라도 민정의 피부에는 분명히 종말이 찾아왔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가 나는 내 인생의 종말을 맞이할 뻔 했지만.
이번 만남의 가장 큰 수확은 종말이 어쩌고 환청이 저쩌고가 아닌 우리의 관계회복이었다. 피차간에 친구가 없는 처지라서, 이런 핑계를 내세워서라도 다시 만나지 않으면 진지하게 사회생활이 힘겨웠다. 이번 일로 다시 말문을 텄으니 내 노력여하에 따라 평범한 친구 관계로 돌아갈 수도, 혹은 그 이상의 관계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종말이 우리 사이를 지켜줬어요!’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현상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종말이 온다!

반년이 지나고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자 나는 예전만큼 인터넷에 몰두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세상이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았다.
우선 환청에 관련된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그냥 강력계 사건과 비슷한 정도의 취급으로 위상이 내려갔다. 하기야 하루에도 수건씩 터지는 사고들을 일일이 집중 조명할 수는 없을 거다. 이 와중에 어느 교수님께서는 지금 일어나는 사고들이 딱히 환청과 관계가 있지는 않고, 죄인들이 형량을 줄이기 위해서 선택하는 거짓말 중 하나라는 연구결과까지 발표했다.
이제 환청을 겪는 사람들은 더 이상 특별하지도 않았다. 세 사람 중 한 명꼴로 종말에 대한 경고를 들었다. 아, 물론 유사과학자들은 계속해서 사기를 쳐댔다. 과학계는 한 때 의욕적이었지만 모든 분야에서 연구되었고 모든 분야에서 실패하였기 때문에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환청을 듣는 사람들을 모아놨던 카페는 거대 커뮤니티 비슷하게 변해 버려서 이제는 원래 어떤 사이트였나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이따금 카페의 주제에 대해 떠드는 사람이 나타나면 텃세니 뭐니 하면서 배척받기 일쑤였다.
엄마는 자신도 환청을 듣게 됨에 따라 더 이상 나를 걱정하지는 않았다. 대신 밤마다 깜짝 놀라 깨어나는 빈도가 늘어나 집안사람들을 모두 피곤하게 만들었다.
종말이 오긴 오는 건가? 왠지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안 올 것 같았다.
2학기도 중반에 접어들어, 1학기에 학사경고를 받고 되새겼던 다짐도 시든 나는 피시방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솔직히 내게는 학교에서 성적 올리는 것 보다 게임 속에서 업적 올리는 게 더 중요했다. 2년 뒤 졸업 한 후의 미래가 알게 뭔가. 어차피 내 성적은 바닥이다. 아무리 공부해봤자 만회 할 수 없다면 놀 수 있을 때라도 실컷 놀아두는 것이 나았다. 학교 졸업하면 방학이라고 놀지도 못 할테니.

종말이 온다!

“아 진짜 시끄럽네!”
피시방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토록 같은 목소리를 듣는 사람이 많다니 이젠 감개무량하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미친놈 취급이었는데. 나는 키들거리며 화면에 집중했다. 중요한 대목이었다.
바야흐로 우리 공격대는 길고 험난한 던전을 돌파해 거대하고도 무시무시한 파괴신에게 도전할 준비를 끝마치고 있었다. 보이스 챗으로 “박휘님 힐 잘해주세요.”라는 지시가 들려온다. 나는 팀의 체력을 책임지는 인간성기사. 그리고 나의 믿음직스러운 동료들이 일사분란하게 보스몹을 둘러쌌다.
띠리디리리딩! 전화벨소리. 엄마였다. 여기서는 받지 않는 게 상책이다. 내가 수업 받는 줄 알고 있을 테니까. 띠리디리리딩! 거 되게 끈질기네. 신경질을 내며 휴대폰을 확인하는 데 내 전화가 아니었다. 이런 공공장소에서 진동으로 안 바꿔놓은 사람은 대체 누구야? 그 때 내 눈에 들어온 건 맹렬히 회전하고 있는 화제경고등이었다.
팟, 하고 정전이 찾아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욕설을 터뜨렸다. 게임 속 주인공처럼 폭력적으로 변해버리고 있는데 꽝!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얀 공백.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시간이 느려졌다. 0.03초. 눈이 채 깜빡거리지도 못 할 시간동안 온갖 물건들이 터져나가는 모습이 망막에 새겨졌다.

종말이 온다!

사방이 시끄러웠다. 그게 비명소리인지, 환호성인지. 아무튼 귀가 멍멍했다. 성경에서 말하던 대홍수 때 정도가 이정도로 소란스러웠을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거나, 혹은 죽어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신음소리가 합창을 이뤘다. 나는 저들의 합창에 동참하지는 않으리라.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려다-더 이상 숨이 들어차지 않는다는 걸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혹은 고개를 처박았다. 팔다리의 힘줄이 전부 끊어져나간 듯 공허했지만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나는 잔해의 더미 위에 선 채 하늘을 바라보며 이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무수한 가능성이 떠올랐다. 핵전쟁. 핵폭발. 화산. 유성. 도시가스 폭발까지. 모르겠다. 짐작 가는 바가 너무 많았다. 안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지는 것이 없지만.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건 모두가 알았다. 끊임없이, 계속해서 경고해주는 목소리가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식상하기 짝이 없다. 내가 그렇지.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사태를 회복시킬 방안이든 종말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준비든 빨리빨리 생각해뒀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이런 생각해도 너무 늦었다. 막상 종말을 맞이해야겠다 싶을 때는 뭐든지 너무 늦어버리기 마련이다. 오래되고 진부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다.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하지만 우리가 대체 어찌해야 했단 말인가.
모든 만남이 헤어짐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들, 어찌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실연을 대비하겠는가. 시작 된 모든 것이 끝을 예고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를 막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두렵고 두려운 그것을 외면하는 것이 고작인데. 비명을 지르며 끝을 맞이하는 것이 고작인데.
핸드폰은 먹통이었다. 세계 어디에 가도 인터넷을 해줄 수 있게 해준다는 스마트폰은 지금 당장 엄마나 민정과도 연결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집어던졌다. 머리가 아프다. 시야가 동강나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는다. 이제 머지않아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땅에 햇살이 닿지 않으리라. 큰 것들은 작은 것들을 잡아먹고 작은 것들은 역병을 퍼뜨릴 것이다. 태산 가장 높은 곳 까지 물이 차오르고 심해 가장 낮은 곳 까지 독기가 새어들리라. 무한대의 우주조차 팽창 끝에 폭발해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천국도 지옥도 없는 그 결말을 향해서.
그래.
이제 소리내어 외칠 때가 됐다.

“종말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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