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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행성

2012.05.13 11:5705.13

익시온은 둔탁한 충격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자면서 이불을 걷어찼는지 벌거벗은 몸이 차가운 공기에 그냥 노출되어 있었다. 온기를 찾아 습관적으로 옆자리를 더듬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는 오한을 느끼며 이불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대로 다시 잠들려 했지만, 방금 있었던 충격을 떠올리고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침실에서 빠져나갔다. 이불을 그대로 몸에 둘둘 감은 채였다.
이상하게 온도가 낮았다. 보통은 엔진에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해 항상 우주선 안이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게 되어 있다. 너무 따뜻해져서 온도를 낮추는데 드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15℃ 이상으로 올라가지는 않도록 해두고 있기는 하다. 그래서 쌀쌀한 느낌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익시온이 느끼기엔 지금은 평소보다 온도가 훨씬 낮았다.
"꽤 빨리 오셨네요. 한참은 못 일어나실 줄 알았는데요."
조종실에 들어서자 유노가 돌아보며 말했다. 익시온은 그녀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어젯밤에 왠지 모르게 나잇값을 못하게 흥분했던 탓이었다. 한창 왕성했던 20대 초반으로 돌아갔던 것처럼.
"그럴 때도 있지 뭐.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야? 뭔가 부딪힌 건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방금 레이더를 켠 참이에요."
"살다 보니 항성권 밖에서 그거 쓰는 날도 있구먼. 그건 그렇고, 왜 이리 추운 거야?"
"아마 충격 때문일 거예요. 엔진이 멈춰버렸거든요. 엔진손상도 점검 중이에요."
익시온은 새삼스레 좋은 여자를 만났다 싶었다. 유노는 그저 긴 항해 동안 외롭지 않도록 고용한, 흔히 말하는 스페이스 와이프에 불과했지만, 그 지적 수준이 보통사람은 넘볼 수 없을 정도였다. 보통 스페이스 와이프도 꽤 많은 교양을 갖추곤 했다. 공간을 수축하여 다른 항성까지 빛보다 빠른 속도로 가는 것이 가능했지만, 최소 수 광년 떨어진 다른 항성으로의 항해는 여전히 길었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센타우루스자리 알파까지만 해도 약 5개월이 걸리고, 익시온의 목적지인 큰개자리 알파까지는 약 10개월이 걸린다. 그동안 혼자서 지내다 보면 우울증에 걸리기 쉽고, 그렇지 않더라도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외부와의 통신이 가능하다면 인터넷에 접속하여 간접적으로나마 사람들과 만나련만, 초광속 항행 중에는 항로 상의 우주선끼리라면 오랜 시간 걸려 통신을 할지 몰라도 외부와의 교신은 거의 불가능하여 그것마저 여의치 않았다. 항성 간 운수업을 하는 사람들이 가족단위로 일하는 것이 그것 때문이었다. 가족이 없는 선장들은 스페이스 와이프를 고용하는 일이 많았다. 항성 간 운수업의 벌이가 많다 보니 사람 하나를 몇 개월간 고용하는 것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지출은 아니었다. 선장들은 항해기간 동안 외로움도 달랠 겸 즐기기도 할 겸 스페이스 와이프와 계약했다.
스페이스 와이프가 되는데 특별한 조건은 없었다. 매춘업에 자격조건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는데, 긴 기간 동안 지루함을 달래줄 수 있으려면 다양한 지식을 갖추어 화제가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쌓아둔 교양의 목적은 긴 대화를 위한 것이었다. 그 외에도 고용주를 즐겁게 해줄 수 있을만한 것이라면 뭐든 상관없었다. 악기를 연주하든 이야기를 지어내든 취향에만 맞는다면 되니까. 요즘에는 선장들을 위한 게임시장이 커지면서, 함께 게임을 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었다. 교양을 갖추는 것보다는 다양한 게임을 두루 섭렵하기가 쉬운데다, 게임을 즐기는 선장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반드시 게임에 능통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같이 게임을 즐기기만 하면 될 뿐. 그래서 게임에 빠져 사는 여자 중에서 돈을 벌기 위해 스페이스 와이프로 나서는 경우도 늘어났고, 시장 자체에서도 게임 파트너의 비율이 늘어났다. 게임을 즐기지 않는 익시온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유노는 익시온에게 정말 잘 맞는 스페이스 와이프였다. 한때 천체 물리학자를 꿈꾸었던 익시온에게 있어서, 우주와 관련된 넓고 심도 있는 지식을 갖춘 유노는 최고의 선생이자 말벗이었다. 성격도 괜찮고 외모도 괜찮아, 익시온은 날이 갈수록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게다가 우주선 조종에도 꽤 능력이 있었다. 경험은 부족했기에 조종 자체는 익시온이 하는 것이 나았지만, 여러모로 조언을 해주기도 했고 부속장비를 작동시키는 데는 유노가 더 능숙하기까지 했다.
익시온은 조종실을 유노에게 맡기고 침실로 돌아갔다. 옷을 입고 비상용 핫팩을 껴안은 채 부족한 잠을 채울 생각이었다. 정체불명의 충격과 엔진 정지에 대해서는 유노가 조사해서 알려줄 것이었다.
"익시온, 일어나 봐요. 결과가 나왔어요."
다정한 목소리에 익시온은 다시 잠에서 깨어났다. 공기가 약간 따뜻해져 있었다. 엔진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익시온은 길게 하품을 하며 일어나 앉았다. 유노가 따뜻한 우유를 내밀었다.
익시온은 달달한 우유를 마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날 때면 항상 그녀가 곁에 있었다. 그녀는 그가 따스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따뜻한 잠자리와 따뜻한 음료, 그리고 따뜻한 말씨. 그에 대한 그녀의 목소리엔 언제나 정감이 넘쳤다. 평생의 애인을 만난 것 같은 태도였기에, 단순히 유능한 스페이스 와이프라고 여기기에 미안함까지 느껴질 지경이었다.
'장기계약을 맺어야 하나?'
이번 항해가 끝난 뒤에도 큰개자리 알파에서 광물을 실은 뒤에 다시 지구로 돌아가는 10개월의 여정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별들 사이를 날아다니며 살 생각이었다. 그 오랜 항해기간 동안 함께할 파트너로 유노 이상의 사람은 없었다. 여태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야?"
유노가 익시온의 앞에 화면을 띄웠다.
"여기, 3.2k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반짝이는 게 우리 우주선과 부딪힌 물체일 확률이 높아요. 이동 경로를 추적해봤을 때 대략 96% 정도로요."
화면에 96.44%라는 숫자가 깜빡였다. 익시온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시선을 레이더로 돌렸다. 천체에 관심이 있다 보니 물리학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지만, 숫자에 약한 것은 고질적인 문제였다. 학자로의 길을 포기한 것이 숫자개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소행성의 이동 경로가 왜곡될 이유가 우주선과의 충돌이 아니면 뭐가 있겠는가? 뉴턴 역학적으로 종이에다 계산을 해봐도 명확히 나올 것인데, 컴퓨터가 쓰잘데기없이 96.44%라는 어정쩡한 숫자를 제시하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3.56%는 대체 뭐야?”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컴퓨터가 그렇게 결과를 내놓았으니……."
"뭔지는 확인됐어?"
"네. 아주 작은 소행성이에요. 조금만 더 작았더라도 소행성이라고 하기 민망했을 정도로. 그냥 유성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군요. 실드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는데다, 그렇게 빠르지는 않아서 큰 피해는 없었어요. 하지만 컨테이너 한 대가 가벼운 손상을 입었어요. 3번 컨테이너의 화물 일부가 유출된 상황이에요."
"이런, 거기엔 자잘한 것들밖에 없어서 회수하기도 곤란한데."
"유출된 화물 분포도라도 보시겠어요?"
유노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레이더의 화면을 조작했다. 화면에서 반짝이고 있던 소행성은 더 크게 표시가 되었고, 우주선 근처에 작은 점들이 새로 나타났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대충 10cm 정도 크기의 물체까지 잡은 거예요."
"아무래도 포기해야겠군. 값싼 기호품밖에 없으니 괜찮겠지."
지구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다양한 식재료와 담배나 술 같은 기호식품이 3번 컨테이너에 실린 화물 전부였다. 컨테이너 내부 역시 구획화되어 있어서, 파손되지 않은 다른 부분의 화물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 것이었다. 어차피 빈 우주선을 가지고 가는 것도 아쉬워 연료비나 벌어보자 싶어서 실은 것들이었기에, 굳이 시간을 낭비해가며 위험을 무릅쓰고 화물을 수거할 필요는 느끼지 않았다.
"빨리 원래대로 항해하는 데 주력하자고. 지금 위치는 어디지? 엔진엔 아무런 이상이 없어?"
유노가 다시 컴퓨터를 조작하여 몇 개의 화면을 띄웠다.
"작동되는 것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엔진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요. 아마 소행성과의 충격으로 꺼져버린 것이 아닐까 해요. 시리우스에 도착하면 점검을 받아봐야겠지만요. 그리고 우주선은 항로의 중간 지점에서 정지한 상태예요. 위치계산이 아직 덜 되긴 했지만, 지금까지 나온 결과만 봐도 충격의 영향으로 통상항로에서 이탈해버린 것 같군요. 우주선 전체 점검과 위치계산, 통상항로로의 복귀 등에 하루 정도 걸릴 거예요."
"나 참,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먼. 허허공공한 우주에서 소행성과 충돌하다니……."
"뭐, 기념품으로 소행성 부스러기라도 보관하는 게 어때요? 엄청난 우연이니까요."
"언론에 보도도 하고?"
어마어마하게 낮은 확률이기는 했다. 워프 항해의 기본은 공간을 수축시키는 것이라, 거기에 드는 막대한 음의 에너지를 마련하는 것은 작은 우주선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정부 차원에서 천체의 배치를 고려해서 항로를 지정하여 공간을 수축시키고, 우주선은 그 수축한 공간에서 광속의 40% 정도 속도로 달릴 뿐이지, 실제로 우주선이 워프라는 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항성간 항해를 하는 우주선들은 거의 고정된 항로로 이동한다. 항상 무인 탐사선이 항로를 점검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요소가 있으면 미리 인근의 우주선들에 통보된다. 그리고 만약 이번처럼 소행성 같은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것에 맞을 확률은 극히 낮았다. 최소한 천문단위로, 보통은 광년을 기준으로 거리를 계산해야 할 정도로 넓은 공간에서, km 단위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두 물체가 충돌하는 사건이니 말이다. 누군가 일부러 부딪히려고 한 게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익시온은 웃으며 유노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이미 꽤 멀리 날아가 있어서 가져오기는 귀찮겠지만, 만약 파편을 가지고 간다면 확실히 화젯거리는 될 만한 일이었다. 신문사에 제보하면 취재하러 오기는 할 것이다. 워프 항해 도중에 소행성과 충돌한 것은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으니까. 익시온은 거대한 물고기를 낚아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처럼, 부서진 컨테이너 앞에서 소행성의 파편을 들고 포즈를 취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킬킬거렸다.

유노는 작업을 컴퓨터에 맡겨놓고 다시 침실로 돌아갔다. 지구 시간으로 따지면 아직 해도 뜨지 않을 새벽 4시 무렵이라, 잠이 많은 익시온이 아니라도 피곤할 때였다. 게다가 익시온은 도중에 다시 잠들었지만, 유노는 잠도 자지 않고 우주선을 돌보고 있었다. 침실로 들어가면서 유노는, 전날 밤에 꽤 심하게 시달린 탓에, 당분간 익시온과의 잠자리를 갖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익시온으로서도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해놓고도 염치불구하고 손을 댄다는 것이 양심에 꺼려졌다.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것까지 거부한 것은 아니었지만, 익시온은 하룻밤은 따로 자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자면서 옆 사람을 끌어안는 버릇 때문에 유노가 편히 쉬지 못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름의 배려를 한 것이었다.
익시온은 충격 때문에 깨어났을 때 했던 것처럼 이불을 둘둘 말아 침실 밖으로 나왔다. 마땅히 갈 데가 없었다. 주방에는 누울 자리가 없었고, 다른 방도 잠을 자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쌀쌀한 복도에서 잘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자연스레 익시온의 발걸음은 조종실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거기에는 편안한 의자라도 있었으니까.
조종실에는 모니터와 계기판에서 나오는 빛을 제외하면 아무런 불도 켜져 있지 않았다. 시차 적응을 위한 강제 소등 때문이었다. 큰개자리 알파 Ab의 자전주기는 지구보다 2시간가량 짧았다. 하루가 22시간이라는 얘긴데, 지구 안에서 겪는 시차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적응이 어려웠다. 그래서 긴 항해기간 동안 서서히 적응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어, 몇 시간마다 강제 소등이 이뤄졌다. 익시온은 발에 뭐가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조종석으로 향했다. 푹신한 의자에 앉아 앞을 멍하니 바라보자, 깜깜한 우주공간에 점점이 박힌 별들이 눈에 들어왔다.
익시온은 잠자리를 잘못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광활한 우주공간을 보면서 잠들기에는 배짱이 부족했던 것이다. 마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기분까지 들었기에, 그는 고개를 흔들며 의자를 반 바퀴 돌렸다. 이제 와서 침실로 돌아가기도 어색했다. 괜히 들어갔다가 깨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계속 버티고 앉아있어 봐야 잠이 오지도 않았다.
멍하니 시간을 보내던 그는,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다시 의자를 반 바퀴 돌려 의자 바로 앞의 화면을 확인했다. 화면의 오른쪽에 있는 레이더에는 아직도 소행성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는 컴퓨터를 조작하여 소형 무인탐사선의 상황을 확인했다. 원래는 유출된 화물을 회수하거나 사람이 바깥에 나가지 않고도 우주선 외부를 수리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지만, 이번에는 화물의 가치보다 연료소모가 많을 것 같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연료를 날려버린다 해도 잠 못 이루는 밤의 지루함을 이겨낼 수만 있다면야 상관이 없었다. 그는 유노가 깨지 않도록 격납고의 문이 느리고 조용히 열리도록 조작하고, 벽에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스레 탐사선을 출발시켰다.
익시온이 탐사선에 입력한 목적지는 우주선에 부딪혔던 소행성이었다. 우주선에 부딪히면서 운동에너지를 잃은 소행성은 시간당 17km 정도의 속도로 이동하면서 현재 우주선으로부터 약 46km 떨어진 곳에 떠있었다. 마침 성능이 꽤 괜찮은 탐사선을 탑재한 덕분에, 한 시간 반 정도면 소행성 파편을 채취해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연히 탐사선이 돌아올 내내 조종간을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익시온은 탐사선이 자동비행하도록 설정한 뒤, 주방으로 가서 커피 한 잔을 타왔다. 탐사선을 보내놓고 잠을 잘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커피잔을 비우고 두 번째 잔을 채워 홀짝이며 레이더 상에서 탐사선이 움직이는 것을 보던 익시온은, 소행성의 예상 경로가 약간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모니터에는 자동항법장치가 켜져 있었는데, 거기에는 탐사선의 현재 위치와 예정 경로, 목표인 소행성의 현재 위치와 예상 경로 및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탐사선의 예정 경로를 나타내는 선의 끝자락에 있어야 할 소행성의 예상 위치를 표시하는 점이, 선에서 몇 픽셀 정도 어긋나있었다.
'원래 이랬던가?'
익시온은 그저 대충 조정을 해둬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고는, 다시 탐사선을 정확히 조종해두었다. 그리고 커피잔을 다시 채우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돌아온 그는 다시 소행성의 위치가 어긋나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금 전보다는 적은 양이었다. 1픽셀 정도의 차이였다. 하지만 방금 최대한 정확하게 경로를 잡아놓은 상황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우주에서 바람의 영향을 받을 리도 없었다. 소행성 스스로 이동한 것이라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잠깐 고민하던 익시온은 소행성이 고정된 대상이 아님을 떠올렸다. 그는 소행성의 운동량을 너무 간략하게 입력한 것으로 생각하고는, 레이더에서 소행성의 이동에 대한 기록을 불러왔다. 복잡한 계산이 아니라 그저 소행성이 시간당 어느 정도의 속도로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지만 알아내어 자동항법장치에 입력하면 되기 때문에, 간단하게 끝날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등속직선운동을 해야 할 소행성의 속도와 이동방향이 변하고 있었다. 당황한 그는 다시 한 번 자료를 검토해봤지만, 소행성이 가속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게다가 점점 빠른 속도로 오른쪽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소행성이 곡선 운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날 만한 상황은 주변에 천체가 있어서 중력의 영향을 받을 때 정도뿐이다. 하지만 이곳은 아무것도 없었다. 통상항로의 중심부, 별과 별의 정중앙에 해당하는 자리라 뭔가가 있을만한 여지가 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아까 유노가 띄웠던 지도를 다시 불러와 확인했지만, 역시 아무것도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외계인의 우주선이 소행성을 끌어가는 건가?'
익시온 자신도 황당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달리 떠오르는 것도 없었다.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조우한 적이 없는 외계인과 처음 접촉하게 되는 역사적인 상황에라도 처하게 된 것인가? 익시온은 괜히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컴퓨터에 소행성의 변경된 예상 경로 등을 구하도록 지시했다. 괜스레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초조하게 화면을 보고 있으니, 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익시온은 계산결과를 확인했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침실을 향해 달려갔다.
침실 안은 어두웠다. 창문이 있기는 했지만, 수면을 위해 닫혀있는데다 별다른 조명도 켜져 있지 않아 완전한 암흑에 가까웠다. 익시온은 벽을 더듬거려 수면등을 켰다. 평소 같으면 은은한 불빛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지만, 눈이 어둠에 적응되어있던 유노는 눈에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다.
"이 늦은 시간에 대체 무슨 일이에요?"
갑작스럽게 깨웠는데도 눈을 비비며 나긋한 목소리로 묻는 그녀에게 새삼스레 두근거렸지만, 익시온은 이내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일으켰다.
"이봐, 빨리 와보라고.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
익시온은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난 것을 보고는 먼저 침실을 빠져나갔다. 유노는 머리를 정리하는지 조금 늦게 그를 따라나왔다. 그녀가 조종실에 들어가자, 익시온이 기다렸다는 듯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조금 전에 내가 주변을 조사했는데, 이상한 결과가 나타났어."
유노가 반쯤 감긴 눈으로 화면을 보더니 물었다.
"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거예요? 화면에 띄워놓은 그림들은 다 뭐고요."
"아까 우주선에 부딪혔던 소행성의 경로 같은 거야. 저걸 채집하려고 탐사선을 보냈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거든. 그래서 조사를 좀 해봤지."
"어머, 제 얘기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신 거예요? 전 그냥 농담으로 했던 건데."
"그냥 잠도 안 오고 심심하기도 해서 보내본 거야. 하여튼 이 곡선을 보라고."
익시온의 손끝에 조금 커다란 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선을 관통하는, 완만하면서도 기다란 곡선이 화면에 그어져 있었다.
"이상하지 않아?"
유노는 그의 말에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아무것도 없는데 예상 경로가 휘어있네요."
"그렇지? 탐사선을 보냈는데, 등속직선운동 할 거라고 예상하고 설정했더니만 탐사선의 예정 경로와 소행성의 예상 위치가 계속 벗어나더라고. 그래서 소행성의 움직임을 자세하게 계산해보니, 점점 오른쪽으로 휘는 움직임을 보였었어. 대체 뭐 때문에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지 도저히 안 떠올라서 고민했는데, 마침 딱 떠오르는 게 있더라고. 그래서 급히 계산을 해보고 당신을 깨운 거야."
익시온이 화면 한구석을 두드렸다. 거기에는 점선으로 된 커다란 원이 그려져 있었다. 커다란 원의 중심부를 소행성의 예상 경로를 나타내는 선이 관통하고 있었다.
"그 원은 뭐죠? 아까 봤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는데요."
"지금도 레이더로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아. 점선으로 해놓은 부분은 계산 결과를 토대로 그리도록 지시해놓은 거야. 이상하지?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실제로는 소행성이 저렇게 움직이려면 저 위치에 저만한 크기의 항성이 있어야 한다는 거야. 뭔가 보이지 않는 것이 있는 것 마냥……."
"혹시 암흑물질이 있을 거로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래, 암흑물질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되지. 그것 때문에 이상 현상이 일어난 거야. 암흑물질은 중력적인 상호작용만 하니까 다른 어떠한 힘에도 영향을 받지 않지. 그러다 보니 전자기력에 영향을 받지 않아서 빛을 그대로 투과시키기 때문에 광학적인 관측이 불가능하잖아. 그래서 볼 수가 없는 거지."
"그 가설대로라면 저 앞에 있는 건 암흑물질끼리 뭉쳐있는 물체가 되겠군요."
"중력에는 영향을 받으니까. 자신들의 질량 때문에 스스로 중력붕괴 하면서 뭉쳐졌을 거야. 성간구름이 중력붕괴 하여 항성을 형성하는 것처럼."
"하지만 암흑물질인데 보통물질처럼 그럴 수가 있을까요?"
"물론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 다른 힘에 영향을 받지 않는 물질들이니 서로 융합하면서 에너지를 발산하는 일도 없을 거야. 그러니 계속 붕괴하는 거지. 그렇게 붕괴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 슈바르츠실트 반지름보다 작은 공간에 모든 물질이 수렴될 거고, 그러면 블랙홀이 되는 거야. 항성진화의 단계 중단을 모조리 건너뛰어서 최종단계로 가는 거지."
"글쎄요. 암흑물질의 정체는 아직도 제대로 파악이 안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그들이 서로 간의 척력을 가지지 않으리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죠. 중성자성을 생각해봐요. 중성자는 파울리의 배타 원리에 따라서, 둘 이상이 같은 상태에 있을 수 없다는 특징을 가지죠. 간단하게 말하면 동시에 같은 위치에 있을 수 없다는 얘기가 되니, 서로 밀어내어 다른 위치에 있게 된다는 얘기예요. 그걸 붕괴시키려면 꽤 강력한 중력이 필요하고요. 파울리의 배타 원리는 쿼크나 전자 같은 페르미 입자에만 해당이 되는 것이긴 하지만, 암흑물질도 그러한 성질을 띨 수가 있잖아요?"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아. 만약에 저기에 있는 알 수 없는 천체가 암흑물질로 이루어진 소형 블랙홀이라면? 우리가 저기에 빨려 들어가는 순간 탈출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될 테고,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버리겠지. 하지만 저기에 있는 것이 암흑물질로 이루어져 있긴 해도 블랙홀은 아니라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아. 탈출의 기회는 있겠지. 하지만 빨려 들어가면 저 암흑물질들이 전자기력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우주선은 그대로 암흑물질 천체의 중심으로 뛰어들게 될 테고, 그러면서도 중력의 영향은 받게 될 거야. 만약에 중력이 작은 천체라면 그래도 살아남을 가능성은 있을 거야. 지구 정도의 중력이라면 그대로 통과해버리면 될 테니 문제가 없어. 하지만 계산결과로는 저 천체의 질량은 적어도 적색 왜성 급이야. 투명한 항성에 뛰어드는 셈이 될 테지. 아마 들어가자마자 찌그러들게 될 거야."
"그렇군요.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당연히 이 위험한 지역에서 빠져나가도록 노력해야지. 어쩌면 저것 말고도 다른 암흑물질 천체가 있을지도 몰라. 여러 개의 암흑물질 천체가 공전하고 있을 수도 있지. 그러니 철저하게 조사를 해보고, 안전경로를 찾아서 항로로 복귀해야 하지 않겠어? 아마 우리가 왔던 방향은 안전할 거야."
"으흠, 그래서 저는 왜 깨우신 거고요? 중대한 발견을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인가요?"
곤히 잠들어있는 자신을 깨운 것에 대한 힐책이 섞인 유노의 말에, 익시온이 웃으며 말했다.
"그냥 내버려뒀다간 우리도 저 소행성처럼 끌려갈지도 모르잖아. 빨리 이동을 하긴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무작정 움직일 수는 없잖아?"
"그렇죠. 이런 곳에서는 기준이 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으니, 별의 위치가 아주 조금씩 바뀐 것을 가지고 위치파악을 해야 하니까요. 정부나 대기업에 소속된 거대한 우주선에 딸린 컴퓨터가 아니고서야 별을 이용해 위치를 계산하는데 시간이 한참 걸리고, 그렇다고 무작정 움직이면 통상항로에서 점점 많이 벗어나서 우주미아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우주선이 멈춰있는지 아닌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그래서 당신을 깨운 거야. 어떤 좋은 방법이 없는가 싶어서 말이야. '왔던 길로 그대로 돌아간다.'는 선택도, 소행성에 부딪혀서 원래 이동하던 방향을 유지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고를 수는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 수 없어서."
유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익시온을 밀어냈다.
"생각해보면 간단하잖아요.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면 너무 깊게 빠져드는 게 문제예요. 일단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한 것. 어차피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는 알 수 없어요. 그래서 통상항로로 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꼬박 하루 정도로 잡은 거고요. 한참 계산을 해야 하니까요. 그러니 주변에 어떤 천체가 있어서 회피한다고 해도, 그 정도 움직임으로는 위치계산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아요. 계산결과가 나오면 거기에 따라서 움직이면 되니, 어느 방향으로든 일단 위험에서 피하기만 하면 된다는 거죠. 무작정 움직이면 우주미아가 된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이 지점에서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는 기록이 되니, 계산이 끝나고 나서 우리가 이동한 값을 더하면 되니까요. 그리고……."
유노가 화면을 조작하여 레이더에 무수한 점을 띄웠다.
"어떤 가설을 세웠을 때, 그걸 지지하는 한 가지 근거만 확보해서는 안 되죠. 여러모로 뜯어봐서 틀린 부분이 없어야 인정이 된다고요. 자, 보세요. 이건 정밀도를 높여서 지름 5cm짜리 물체까지 결과를 나타낸 거예요."
"저것들이 어디서 나온 거지?"
"어디긴요. 이 우주선에서 나온 거죠. 3번 컨테이너에서요. 아까 제가 보여 드렸었지 않아요? 10cm 크기까지였지만요."
그제야 익시온은 컨테이너가 약간 부서지면서 식료품 같은 것들이 일부 밖으로 튕겨 나갔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자, 컴퓨터에 기록되어있는 저 물건들의 이동 경로를 불러오면 이 주변의 공간이 어느 정도로 휘어져 있는지 나오겠죠?"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주에 흩어진 자잘한 점들과 우주선을 잇는 선들이 나타났다. 눈으로 보기에도 휘어있는 것이 보이는 소행성의 궤적과는 달리, 흩어진 화물의 경로는 곧아 보였다.
"저 물체들의 질량이 작아서 소행성보다 느리게 이동방향이 휘어지는 건 아닐까?"
"후후, 아닐 거예요. 화물의 경로를 나타내는 선의 곡률을 보면 알 수 있겠죠?"
유노의 손이 잠시 움직이자, 화면에 숫자들이 나타났다. 레이더에 나타난 물체들의 경로에 대한 자료로, 곡률을 나타내는 수치는 유노를 지지하고 있었다.
"곡률이 딱 0이에요. 오차도 없이. 만약에 주변에 적색 왜성 급의 천체가 있었다면 이런 결과는 안 나오겠죠. 무엇보다도, 저게 강한 중력을 가진 암흑물질 천체라면, 이 우주선도 저기에 끌려가면서 시시각각 저 점선으로 된 원과의 거리가……. 어머, 혀를 차시면 안 되죠. 상태가 어떨지도 모를 천체에 끌려갈 위험에 처한 것보다는 낫잖아요?"
익시온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러면 저건 왜 저러는 거지? 외계인이 끌고 간다든지 하는 건 아닐 거 아니야."
"글쎄요. 현재로서는 저 소행성에서 방향전환을 할 수 있는 자체적인 에너지원이 존재한다든지 하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겠네요. 우주선과 부딪히면서 안에 있던 가스가 분출되었다든지? 이건 당신이 보낸 탐사선이 일단 저기에 도착한 뒤에야 어떻게 확인을 해볼 수 있겠고요."

"유노, 이런 상황에선 어떤 가설을 세울 수 있을까?"
"소행성이 살아있다? 알고 보니 외계인의 우주선? 물리법칙의 붕괴? 사실 이건 다 꿈……."
"그렇지? 나도 외계인 생각 했었어. 이것 참, 황당한 일이 다 생기는군."
익시온은 옆에 유노가 있다는 것에 안심했다. 혼자서 이런 상황을 맞닥뜨렸다면 극심한 공포로 정신이 붕괴하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당혹스러운 사건을 앞에 두고도 농담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한 정신을 갖추었으니, 함께하면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하면서도 정신적으로 안정되지 않을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왜 그렇게 보세요?"
유노의 말에 익시온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당신을 만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어. 이렇게 유머러스하면서도 활력소가 되는 사람이 어디 흔하겠어?"
유노가 얼굴을 붉히며 대꾸했다.
"농담한 거 아녜요. 그게 아니면 달리 설명할만하게 있나요?"
"없지."
익시온은 다시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화면을 들여다봤다. 탐사선을 보내놓은 소행성을 확대해서 내보내는 화면에서, 소행성 주변에 탐사선의 파편이 떠돌아다녔다.
익시온은 암흑물질 가설을 폐기한 뒤에도 소행성의 움직임을 계속해서 추적했다. 소행성의 움직임은 계속해서 변화하여 암흑물질 가설을 세우고 이동 경로를 예측했을 때와는 다른 예상 경로를 그려냈다. 예상 경로의 곡률은 점점 증가하였으며, 마침내는 180도 방향을 바꿔 이쪽 우주선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뒤로는 더는 방향변경이 없었다.
그즈음 되어서 탐사선이 소행성에 도착했다. 여러 번 방향수정을 하느라 예정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린 상황이었다. 탐사선은 즉시 소행성 표면에 달라붙어 샘플 채취 및 소행성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그때, 섬광과 함께 탐사선에서 오던 신호가 끊겨버렸다. 빛이 사라지고 우주선 바깥에 부착된 카메라를 소행성 쪽으로 돌려 확대를 했을 때, 소행성은 탐사선의 파편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소행성 주변의 탐사선 파편들은 폭발의 여파로 소행성에서 멀어져갔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거꾸로 소행성을 향해 달라붙듯이 움직였다. 자잘한 파편들은 사방을 향해 계속해서 날아갔지만, 커다란 파편은 소행성의 표면에 처박힌 뒤 천천히 소행성 내부를 향해 가라앉았다.
"이거……. 정말 끔찍하군. 아까 저거랑 정통으로 부딪혔으면 이 우주선도 탐사선이랑 똑같은 꼴이 나는 거 아니야."
"그 사태를 피했다고 안심하기는 이른 것 같네요."
탐사선의 파편을 끌어당기면서도 소행성은 꾸준히 움직여, 익시온과 유노가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점점 그들과의 거리가 줄어들고 있었다.
"무기 같은 건 없나요? 이대로 있으면 충돌할 것 같은데."
"없어. 이런 상선에 무기 같은 게 있을 리가 있나. 무기를 실을 거면 그만큼 물건을 더 실어야지."
"그러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군요. 도망치죠."
유노의 말에 익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익시온은 조종간을 잡고 우주선을 뒤로 물리기 시작했다. 소행성은 우주선의 정면에 가까운 방향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우주선의 앞부분에는 보조 추진 로켓밖에 없었기에 속도는 느렸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일단 보조 추진 로켓으로 가능한 한 최대의 속도로 후진한 뒤에, 방향을 뒤집어 주 추진 로켓을 점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익시온이 우주선을 후진시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노가 화면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더 빨리 다가오고 있어요!"
그녀의 말에 익시온도 화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화면 상에서 소행성과 우주선의 상대속도는 전혀 느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서서히 늘어나고 있었다.
"내가 지금 착각해서 후진해야 할 걸 전진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저 소행성이 점점 빨리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는 거겠지?"
"두말하면 잔소리죠. 넋 놓고 있지 말고 빨리 우주선의 방향부터 돌리세요."
유노가 붉은 버튼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걸 본 익시온은 앓는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조종간을 조작했다. 우주선 앞면의 추진 로켓이 멈추고, 옆면의 앞뒤에 붙은 분출기가 점화되었다. 옆면의 분출기가 가스를 뿜어내면서 우주선이 시계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분출기에 한계가 있다 보니, 온갖 물품을 실어 무거워진 우주선이 회전하는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추진 로켓의 배치 구조상 회전하는 중에는 가속할 수가 없어, 점점 속도를 높여 날아오는 소행성과의 거리는 시시각각으로 좁혀졌다. 소행성을 비추는 카메라는 끊임없이 줌아웃했고, 컴퓨터 화면의 상대속도는 가속이 붙은 듯이 늘어났다. 상대속도에 반비례하여 상대거리는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우주선의 머리를 돌리기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6km 정도 떨어져 있던 소행성이, 우주선의 머리가 2시를 가리킬 무렵에는 5km, 4시를 가리킬 때는 벌써 3km 안으로 접근해있었다. 컴퓨터는 우주선이 완전히 돌아섰을 때는 소행성이 800m가량 떨어진 지점까지 도착해있을 것이라는 결과를 뱉어냈다.
"괜찮아요. 이론적으론 시간이 남을 거예요."
연신 소행성의 정보를 나타내는 화면과 소행성을 직접 나타내는 화면을 돌아보며 식은땀을 흘리는 익시온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유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도 계기판 위에 얹고 있는, 다른 쪽 손의 떨림은 감추지 못했다.
"시간이 되었군요. 자, 꽉 잡으세요. 심하게 흔들릴 거예요."
그녀의 말에 익시온은 한 손은 바닥에 단단히 고정되어있는 의자를, 다른 손은 유노의 허리를 감싸 쥐었다. 유노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더니, 우주선이 완전히 돌아선 것을 확인하자마자 붉은 버튼을 눌렀다.
평소에는 실수로 누르는 일이 없도록 커버에 덮여 있는 붉은색 버튼은 일종의 비상탈출장치로, 우주선의 뒷부분에 연결되어있는 컨테이너를 일시에 분리할 때 사용한다. 익시온은 순간적으로 소행성과의 충돌에서 장치가 고장 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다행히도 버튼은 훌륭히 기능하여 컨테이너는 우주선에서 깔끔하게 떨어져 나갔다. 분리의 충격으로 우주선이 흔들려, 두 사람은 균형을 잃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익시온은 서둘러 의자를 붙잡고 일어나 조종간을 잡았다. 방향이 완전히 돌아섰고, 짐을 버려 가벼워진 김에 최대한 소행성과의 거리를 벌려야 했다. 별로 무겁지 않은 식품이나 기호품 따위를 실은 상황에서도 컨테이너의 무게가 우주선 전체의 70%가량을 차지했었고, 조금 전과는 달리 강력한 주 추진 로켓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이전보다 경이적으로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보세요. 컨테이너가 소행성과 충돌했어요."
우주선 본체와 컨테이너, 소행성을 잇는 선은 거의 완벽한 직선을 이루고 있었다. 소행성이 스스로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해도, 1km도 안 되는 거리에서 날아드는 컨테이너를 피할 수 있을 정도는 안 되었다. 사실 소행성의 움직임을 봤을 때, 소행성이 생각할 수 있다고 한다면, 소행성은 컨테이너를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익시온과 유노가 보는 가운데, 소행성은 컨테이너와 멋지게 충돌했다. 컨테이너를 소행성 쪽으로 민 것도 아니고, 우주선이 방향을 돌릴 때의 속도 그대로 이동하고 있었지만, 소행성이 가속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소행성의 입장에서는 얻어맞는 것과 마찬가지 꼴을 보는 셈이었다.
"적어도 이번에는 예상대로의 사건이 벌어지겠지."
"수십 톤짜리 쇳덩어리에 맞고도 속도가 줄어들지 않을 리가 없죠."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지? 통상항로로 돌아가려면 여전히 하루 가까이 걸리는데, 저놈이 계속 쫓아온다면 도망쳐낼 수 있을까?"
"생각도 하고 싶지 않네요.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저는 그냥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가 버리겠어요. 충격적인 사건이 워낙 많이 발생해서, 그런 일이 조금만 더 일어나면 한계에 부딪힐지도 모르겠네요."
"동감이야."
그들에게는 다행히도, 우주선과 소행성의 거리는 순조롭게 벌어졌다. 소행성은 컨테이너에 부딪힌 뒤, 더는 속도를 변경하지 않았다. 유노는 소행성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소행성이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이면서 자신이 획득한 먹이를 삼키는 데 주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익시온이 거기에 동조하며 몸서리를 쳤다. 그들의 앞에는 여전히 소행성을 비추는 화면이 떠있었다.
소행성은 말 그대로 컨테이너를 삼키고 있었다. 컨테이너의 파편들은 탐사선의 파편과 마찬가지로 소행성의 표면에 들러붙었다. 그리고 천천히 소행성 안쪽으로 가라앉아갔다.
"저놈이 외계생명체라는데 전 재산을 걸겠어. 저게 외계생명체 그 자체든, 외계인들이 만든 괴상한 피조물이든, 어쨌든 인간이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것이란 건 분명해."
"새로운 가설이군요. 증명할 수 있겠어요?"
"증명이고 자시고 가 어디 있겠어? 1mm라도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것을 조사할 방법도 없고. 그리고 저런 괴상한 행동을 기록한 영상자료면 충분히 저게 뭐든 괴물 같은 거라는 건 증명할 수 있어."
"과학적인 접근은 아니지만, 충분히 동조할 수 있을만한 주장이네요."
최대한 줌인한 카메라로도 소행성의 모습을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행성과의 거리가 멀어진 것을 확인한 유노는,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위해 침실로 돌아갔다. 익시온은 그녀를 배웅하고는 조종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이불을 집어 들고 조종석에 앉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 앉아 잠을 청하려던 익시온은, 이내 몸서리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행성이 점점 접근해오는 것이 눈을 감고서도 선히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레이더가 반경 50km 안에 뭔가가 감지하는 즉시 경보를 울리도록 조작해둔 뒤 침실로 들어갔다.

경보가 울린 것은 소행성을 떼어놓았다고 생각한 지 13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두 사람 모두 잠자리에서 막 깨어나,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자신들을 위로할만한 방법을 찾다가 아껴두었던 비싼 식재료를 써버리자고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을 때였다.
"이게 무슨 소리죠?"
건배를 하려던 손을 거둬들이며 유노가 물었다.
"어제 자러 들어오기 전에, 50km 안으로 뭔가가 들어오면 경보를 울리도록 설정해놨었거든. 그게 울리는 것 같아."
"설마 또……."
"운이 좋으면 진짜로 그냥 지나가던 평범한 돌이나 얼음덩어리거나, 어쩌면 다른 우주선일지도 몰라. 하여튼 어서 가보자고."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 상황에서는 그러한 마음가짐은 별다른 손해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딱히 이득을 가져다주지도 않았다. 오히려 일말의 희망을 가차 없이 내던져버린다는 점에서 정신적으로는 손해가 되는 행위라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화면을 본 유노는 그대로 주저앉아 얼굴을 감싸 쥐며 탄식을 터뜨렸고, 익시온은 고개를 쳐들고는 평소에 그다지 열렬히 믿지도 않던 신에게 저주를 퍼부어댔다. 그들의 눈에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소행성의 모습이 들어왔다.
어렴풋이 카메라에 잡힌 소행성의 표면에는 아직 완전히 흡수되지 않은 컨테이너의 조각 같은 것이 들러붙어 있었다. 레이더에 나타난 소행성의 크기는 컨테이너와 부딪히기 전보다 커져 있었다. 익시온은 조종석에 뛰어들며 다른 화면을 확인했다. 소행성은 가공할 속도로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기세를 보아 컨테이너를 대충 흡수하자마자 그대로 가속하여 이쪽을 향해 날아온 것 같았다. 저 육중해진 덩치에 저 속도로 우주선에 달려들면, 우주선은 그대로 박살 나 이리저리 흩어져버릴 것이 분명했다. 이번에는 버리고 달아날 컨테이너도 없다.
"생각도 할 줄 알고 욕심도 많은 것 같군요. 컨테이너를 집어삼키자마자 그대로 이쪽으로 달려온 것을 보면 말이에요."
"이제 어떡하지? 좋은 생각 없어?"
익시온이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비축해놓은 연료까지 모조리 써버릴 기세로 추진기를 작동시키며 물었다.
"안 되겠어요. 이대로라면 도망도 못 치고 1시간 뒤에 충돌할 거예요."
"구명선을 타고서 도망쳐도 결국 우주미아가 되어 목숨이 끊길 텐데……."
익시온의 말에 유노가 그를 향해 고개를 획 돌리며 물었다.
"구명선이 있었나요?"
"당연하지. 항성권 안에 있든지 해서 도망칠만한 곳이 있을 때나 쓸모가 있는 거라서 문제지만. 구명선을 타고 이 우주선을 미끼로 버려봐야 구명선이 그렇게 빠르게 속도를 내지도 못할 테고, 잘 도망친다고 해도 목적지로 가거나 할 만한 연료는 없……. 그런데 지금 뭐하는 거야?"
"살 궁리를 해야죠.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유노가 컴퓨터를 조작하여 별지도와 온갖 계산이 진행되고 있는 화면들을 띄웠다.
"조금만 더 있으면 위치계산이 끝나요. 저 괴물에게서 도망치느라 이리저리 움직이지만 않았다면 진작 끝났을 테지만요. 아슬아슬하게 저게 우주선에 부딪히기 전까지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그 자료를 구명선에 옮기고, 구명선으로 통상항로로 복귀하는 거죠. 수축한 공간으로 뛰어들어가 도망치면 그 괴물이 우리를 쫓아서 항로로 들어온다고 해도 그 사이에 거리를 많이 벌릴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서 구조신호를 보내면 곳곳에 배치된 위성들이나 근처를 지나는 우주선이 우리가 위기에 처한 걸 알 수 있을 테고요."
그녀의 말에 익시온이 얼굴에 화색을 띄우며 펄쩍펄쩍 뛰었다.
"역시 당신이야. 당신을 만난 게 내 생에서 가장 최고의 일이라고! 나의 천사, 나의 구세주여!"
한참 그렇게 호들갑을 떤 익시온은 곧바로 구명선을 손보기 시작했다. 사용하지 않은 채 몇 년이 지났지만, 관리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기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익시온은 구명선의 컴퓨터를 작동시켰고, 유노는 조종실의 컴퓨터에 기록된 정보를 구명선으로 전송하는 작업을 맡았다. 익시온은 최대한 많은 식량을 싣고자 바삐 움직였다,
"식량은 이제 다 실었어."
작업을 마친 익시온이 조종실에 들어섰다. 유노도 막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저도 데이터를 모두 옮겼어요. 이제 도망칠 일만 남았네요."
두 사람은 조종실을 나서서 구명선으로 향했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정리는 좀 하면서 실으셔야죠."
"워낙 급박하다보니 말이야. 어쩔 수가 없었다고."
그의 말에 유노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제대로 들어가 앉기도 어려울 정도로 물건을 던져놓으면 어떡해요? 일단 정리를 좀 해야겠어요."
유노가 그렇게 말하며 먼저 구명선에 들어가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실 구명선에 비상식량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었기에, 굳이 많은 식량을 실을 필요까지는 없었다. 익시온은 가장 가까운 별도 4광년은 족히 떨어진 곳에 표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작정 식량을 챙겼지만, 유노의 계산대로라면 익시온이 실은 것의 반만 있어도 충분했다.
유노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식량들을 밖으로 내던졌다. 익시온은 아깝다는 듯이 그것들을 보며 정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 순간, 우주선이 굉음을 내며 흔들렸다. 익시온이 나자빠지면서 연신 입을 뻐끔거리며 버둥거렸지만, 우주선이 내는 고통의 단말마에 묻혀 익시온 자신도 스스로 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잠깐의 굉음과 요동이 지나가자, 익시온은 강한 바람을 느꼈다. 항해에 이골이 난 익시온은 일이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우주선에서 바람이 느껴진다는 것은, 우주선의 외벽이 손상되어 공기가 빠져나간다는 것만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익시온은 혼란 상태에 빠져, 빨려나가지 않도록 잡을만한 것을 찾기 위해 손을 내저었다.
결국, 그는 아무것도 손에 잡지 못했지만, 다행히도 그가 빨려나가기 전에 안전장치가 작동하여 우주선에 생긴 균열이 메워졌다. 익시온은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몇 초가 지나서야 그는 유노를 머리에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서둘러 상체를 일으켜 구명선이 있던 곳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 때 구명선의 입구와 연결되어있던, 닫힌 밀폐식 문뿐이었다.
익시온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다가갔다. 문에 달린 창문으로 바깥을 보자, 구명선이 우주선에서 떨어져 저 멀리 날아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일순간 익시온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내저으며 벽을 향해 달려갔다. 그의 기억대로 비상용 우주복이 보관되어있었다. 그는 서둘러 우주복을 껴입고는, 휴대용 가스 분출기를 손에 쥐고 문을 연 뒤 바깥으로 날아갔다.
"유노, 대답해봐. 유노!"
익시온이 우주복에 붙은 통신기로 유노가 타고 있는 구명선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몇 차례 신호가 간 뒤, 마침내 유노가 보내온 신호가 익시온에게 들렸다.
"세상에. 익시온, 괜찮나요? 살아있었어요? 저는 당신이 꼼짝없이 죽은 줄 알았어요."
"마침 안전장치가 작동해서 살았지. 지금 그쪽으로 갈 테니까 당신도 이쪽으로 와주겠어? 그나저나 비상용 장비들을 잘 갖춰둬서 다행이야. 세상에, 이런 일에 쓰게 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어?"
익시온은 희망에 찬 목소리로 연신 떠들어댔다. 하지만 유노에게서는 아무런 신호도 오지 않았다. 그는 열심히 가스를 쏘아 보내며 유노를 향해 날아갔지만, 구명선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잠깐만, 좀 이상한데? 유노,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 맞아?"
그의 말에 한참이 지나서야 유노의 대답이 돌아왔다.
"미안해요. 아무래도 그쪽으로 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저 괴물이 다시 속도를 높이고 있어요. 계산 착오였어요. 덩치도 커진데다 컨테이너보다 우주선 본체가 작으니 순식간에 먹어치울 거로 생각했어야 했는데……."
"그, 그래도 나를 구해줄 수는 있을 거 아니야? 아직 저놈이 가속을 막 시작한 상태일 테니 말이야. 우주선과 충돌하면서 속도도 좀 줄었을 테고."
"제가 그쪽을 향해 날아가서 당신을 구하려고 하면, 80%의 확률로 소행성에게 붙잡힐 거라는 예상이 나왔어요. 미안해요, 익시온. 20%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가능성에 제 목숨을 걸 수는 없어요."
익시온은 유노의 말을 듣고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버려지는 건가? 저 성녀 같은 유노에게? 내가?
아까와는 반대로, 익시온이 아무 말도 없이 있는 와중에 유노가 연신 이런저런 말을 내뱉었다.
"어, 어차피 당신도 나를 돈에 팔린 값싼 여자로 생각했을 것 아녜요? 어차피 남남이고, 몸을 몇 번 섞은 것 말고는 별다른 관계도 없고……. 저는 고용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움직인 것뿐이고, 당신도 긴 여행에서 골치 아픈 일이 없도록 저에게 잘 대해준 것뿐이잖아요. 그래요, 우린 겨우 그런 관계라고요. 20%라는 확률에 목숨을 걸기를 바라는 건 무리라고요……."
익시온은 더는 유노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휴대용 추진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우주선을 집어삼킨 소행성은 이제 익시온을 삼키려 들었다. 소행성의 표면에 파묻힌 익시온의 우주복에 달린 통신기에서는, 부서지기 전까지 유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해요……. 나를 이해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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