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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배설물순간이동술

2012.05.11 03:4605.11

  옛날 옛날 한 옛날에, 마법사들이 사는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 변방의 작은 마을에는 괴짜로 취급받는 마법사가 한 명 살았는데 그는 마법이라는 학문에 매료된 나머지 자신의 몸을 돌보지도 않고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고대의 주문을 기록한 양피지와 혁신적인 근대의 마법 논문들을 사랑했으며, 마법 연구에 자신의 젊은날을 보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런 그가 괴짜로 취급받는 이유는 바로 변비 때문이었다. 그 심각성은 그의 마법에 대한 열정과 아주 정확하게 비례하였다. 그가 최후로 일을 보던 날 태어났던 아기가 돌 잔치를 할 때까지 그는 변기에 앉을 일이 없었을 정도였다. 그의 친구들은 그의 대장 속에 마법보다도 신비한 그 무언가가 응집되어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문득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신의 직업병을 한방에 해결해버릴 수 있는 묘안이 떠올랐던 것이다. 바로 소환마법을 사용하여 숙변을 몸 밖으로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흥분에 떨면서 이 엄청난 아이디어를 친구들에게 전했다. 그러나 냉정을 잃지 않은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비관적인 충고를 해 주었다. 소환마법은 소환물의 좌표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뱃속에 들어있는 그 덩어리들의 정확한 좌표를 알아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마법사라 해도 자신의 뱃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리가 없고 숙변이란 놈들은 워낙 지독히도 구석에 박혀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여 좌표를 잘못 계산하면 자기의 뱃속이 통째로 몸밖에 소환될 위험마저 있었다. 그 상황을 상상하자 마법사는 소름이 끼쳤다. 마법사는 그날 이후 매일같이 고민을 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마법사는 더 이상 주저했다가는 자기 목숨이 위험해질 것이라고 생각한 끝에 모험을 강행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 새로운 마법을, 배설물순간이동술(Excretion Teleport)이라 명명하였다.

  결심을 굳혔으나 그가 배설물순간이동술을 완벽하게 익히기 까지는 수많은 고난이 따랐다. 한 번은 소환마법을 시전하여 소환이 거의 다 이루어졌을 무렵 그는 자신이 좌표 계산을 잘못하여 자신의 대장 일부분이 체외로 소환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서둘러 주문을 멈추지 않았다면 그는 영영 세상을 하직했을 지도 모른다. 또 한 번은 그가 몸밖으로 소환해 낸 덩어리들이 그의 아끼는 자료 위에 떨어져버린 일도 있었다. 그는 절망했지만, 곧 극복했다. 3년의 세월에 걸쳐, 그는 드디어 배설물 소환술을 자유자재로 익히게 되었다.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자신의 대장을 3차원 입체영상으로 머릿속에 각인시킴으로써 배설물의 정확한 좌표를 암기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체외로 소환된 배설물이 나타나는 장소도 자유롭게 지정하게 되었다. 끔찍했던 변비가 사라졌음은 물론이고 그는 이제 화장실에 들락거리는 시간까지 단축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이 마법을 사랑하게 되었다. 변비가 없어진 후에도 그가 화장실에 가지 않고 배설물순간이동술로 일을 처리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 후 마법사는 이 놀라운 업적을 <배설물소환술론>이라는 저서에 담아 후세에 전하였다. 그러나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국가에 의해 금서로 치부되었고, 이를 배우려 하는 자는 물론 이 마법을 언급하는 자들마저 모두 극형에 처해졌다. 마법사는 이 마법의 진가를 알아주지 못하는 세상을 원망하면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진보는 당대에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빛을 더해가는 법이다. <배설물소환술론>은 마법사들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비서(秘書)로서 몇 백 년간 은밀히 전승되었으며, 책이 출간된 지 한 세기가 지나자 정부는 이러한 음성적인 전파에 따른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배설물소환술론>의 출판과 소장을 공식적으로 허용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마치 둑이 무너지듯이 거의 모든 국민들이 앞을 다투어 배설물 소환술을 배우기 시작했으니 이것은 변비가 국가적 차원의 보편적인 직업병이었음을 반증하는 사실이었다.

  그 이후 몇 세기가 더 흐르자, 이제 배설물소환술은 국민들의 필수 교양이자 덕목으로 꼽히는, 마법사로서 가장 기초적인 전제요건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혹자는 이를 마법사로서의 자존심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물론 보수적인 원로 마법사들 중에는 끝까지 배설물소환술을 배우지 않은 자들도 있었으나 젊은 마법사들은 일을 보려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거기에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해야만 하는 그들을 불쌍하게 생각했다. 배설이라는 원초적인 작업에 수없이 많은 물과 휴지를 허비하는 자들을 경멸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마법사들도 있었다. 배설물소환술로 인해 마법사들은 태어날 때부터 씌워진 수많은 생리현상이라는 굴레 중 하나로부터 해방된 것이었다. 이것은 그들의 영혼과 지성에 엄청난 자유를 부여했다. 마법사들은 배설물소환술로 인하여 자신들의 영혼이 한층 더 신에 가까워졌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모든 진화는 종류를 불문하고 자연의 미움을 받게 되는 것이 진리였으니 마법사들의 이러한 영적인 진보 역시도 예외가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자연은 태초의 섭리를 거스르는 자들에게 끔찍한 보복을 안겨주었다. 바로 마법사들의 항문이 조금씩 퇴화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마치 창에 찔린 상처가 아물듯이, 마법사들의 그곳은 세대를 거듭할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메워졌다. 사용하지 않는 기관은 종국에 가서는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 자연의 순리였지만, 항문의 퇴화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마법사들은 엄청나게 큰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공포감에 휩싸여 있던 마법사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또다시 수 세기가 흐르자 마법사들은 이러한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법사들은 자신들이 영적인 존재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에 조금씩 육체의 기능을 상실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태아가 모체 밖으로 나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려면 탯줄을 끊어야만 하지 않겠는가? 태아가 탯줄을 끊지 않은 채로 신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법사들은 자신들 역시 항문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영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고 믿었다. 마치 탯줄이 끊기고 배꼽의 상처가 아무는 것처럼 그들의 항문도 아물고 있는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그리고 몇 세기가 더 흐르자, 마법사들은 항문을 완전히 상실해 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진화는 마법사들에게 엄청난 진리를 깨닫게 해 주었다.

-신은 항문이 없다

  종교계는 현재 이 시각까지도 마법사들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아무런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끝>
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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