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담배 피던 여자

2005.03.15 05:2803.15

하드에서 썩고 있으니 공개하는게 좋겠네요.^^
아주 오래전에 쓴 글입니다. 거의 습작에 가깝고요. 뭐.. 제 글이 다 습작이지만요.
어째든 이 글을 마지막으로 SF/환상소설(나름대로 제가 생각하기에)만 쓰기 시작합니다.
이걸 일반소설이라고 부를수 있다면 일반소설이겠죠.
이런 글은 95년에 한편 그리고 96년에 이 단편 하나 뿐입니다.
95년도에 쓴것은 너무 유치해서 공개못합니다. 사실 전 그 원고를 잊어먹었거든요.
당시 PC통신 게시판에 올리기 위해서 편집을 한 상태로 그대로 올립니다. 원본을 훼손시키고
싶지 않아서 어떠한 교정도 없었습니다. (차리리 귀찮아서 그냥 올렸다고 해..-.-)
하하하..^^
에 또 지금 쓰는 글보다 500만배 더 좋잖아! 이런 모진 말씀은 이메일로 해주세요.(저 상처받아요T.T)
밤새 안자면 머리속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나요. 신기합니다. (<-얼릉자라..-.-)


  담배 피던 여자
(쓴날 : 1996년 8월 28일)

       10월의 08시 30분.....

       우연한 기회에 친구의 소유인 비디오숍에 간 적이  있었다.  적당한
     크기의 숍은 비교적 정리가 잘 되어 있어 무척이나 깨끗하고 깔끔했다
     . 몇 마디 짧은 일상적인 인사를 주고받은 후 난 녀석이 만들어준 커
     피를 마시며 소파에 앉아 있었다. 조금 후 녀석은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는 무엇인가 일이 생겼다며 얼버무리고는 나에게 비디오숍을 떠맡기곤
     나가 버렸다.

       '언제 돌아온다고도 말하지 않았잖아.'

       커피를 한 모금 목안에 쓸어 넣고 혼자 중얼거렸다. 한참을  초점도
     없이 탁자를 쳐다보다간 가끔씩 식어 가는 커피를 홀짝거렸을 뿐…….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을쯤, 누군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20살쯤
     넘었을까? 아직 10대 같은 어린티가 나는 조그마한 아가씨가 문을  조
     용히 열고 들어왔다. 긴 곱슬머리가 다듬다가 말았는지 조금 헝클어진
     모양을 하고 조그마한 얼굴에 큰 눈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귀여운 아
     가씨였다. 구김살이 많은 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짧은치마를 가릴
     정도로 큰 셔츠 였다. 어디 이 근처에 사는 아가씬가 보다 나는  생각
     했다. 그녀는 조용히 들어와서는 지금은 도망간 친구의  비디오테이프
     들 속에 둘러싸인 나를 조금도 의식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고  내가
     없는것처럼 곧바로 진열장에 즐비한 비디오 테이프만 바라보고 있었다
     . 마치 포우의 밤에 창문으로 스며온 갈까마귀처럼…….

       여기서 나는 창문을 갑자기 열어 젖혔지
       그때 펄떡이며 그곳에서 걸어나온 건
       성스러운 태고적의 당당한 모습의 갈 까마귀
       그는 조금도 경의를 표하지 않고
       잠시도 멈추거나 주저치 않고
       공작이나 귀부인같이 거만한 태도로
       나의 방 문설주에 걸터 않았다.─
       문위에 걸린 팔라스의 흉상위에
       날아 걸터 않았지
       다만 그것 뿐이야.

       얼마간 난 그녀를 주시하며 포우의 시를 기억속에서 더듬다가  반쯤
     남은 커피를 들고 카운터 쪽으로 조용히 걸어가선 자리에 않았다.  그
     녀는 한쪽 구석에 오래 서 있더니 뒷짐을 지었다가 몸을 조금  좌우로
     흔들더니 머리도 가우뚱거리며 거기에 계속 서 있었다. 그후 다시  몇
     걸음 옮기고 또 한참 서 있고 그런식으로

       그리고 나서 흑단처럼 새까만 이 새는 그 얼굴 생김생김
       신중하고 엄격한 표정으로
       내 슬픈 환상을 속여 미소로 변하게 하네.
       "내 깃털을 잘라버리고 밀어버렸으나
       그대는 분명 겁장이는 아니로군"
       나는 말했지─
       "밤에 피안을 떠나 방랑하는
       무섭게도 태고의 엄격한 태고의 갈까마귀여─
       한밤중 지옥의 해변에서는
       그대의 고매한 성명이 무엇인지
       나에게 말해줄수 있습니까"
       갈까마귀가 말했지
       "이젠 끝이야(Nevermore)"

       내가 또다시 포우의 까마귀에 대한 회상에 몰두해 있을  때  갑자기
     그녀가 카운터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난 생각했다.

       Nevermore.....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서는 조용히 그리고 뼛속 깊숙이 짜릿한  목소
     리로... "이젠 끝이야"라고 중얼거릴꺼라는 쓸데없는 망상에 빠져  있
     을때 그녀는 어느새 카운터에 두 팔을 올려 기대고는 한쪽 손에  들린
     담배를 내밀면서 잠이 덜 깬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저씨, 라이터 좀 빌려주세요"

       분명히 이젠 끝이야란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담배를 입술로
     물었다. 아침 냄새, 샴푸 냄새, 화장품 냄새, 알 수 없는 향기 같은
     것이 담배냄새와 어우러졌다. 가까이서 보니 연하게 화장한 것이 보였
     다.

       "죄송해요. 담배를 끊은 지가 오래돼서요."

       난 더듬거리지 않고 빨리 말해버렸다. 그녀는 소리 내어 한숨을  쉬
     었다. 그리곤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란 것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매우 가식적인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진짜 난처한 것이 아니라
     난처함을 남에게 보여주는 듯한 표정, 그녀는 '어떻게든 해 줘요'라고
     요구하듯이 눈만 깜박일 뿐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내가 그렇게  어색
     하게 있다가 서랍에 무엇인가 있나하고 찾아보기로 했다. 굳이 라이터
     를 찾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녀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쉽게 라이터를 찾았다. 담배를 피는 남자라면  서랍속
     에 몇 개씩 라이터를 두고 쓰는 법이다. 외출할 때 들고 나가지  않아
     쉽게 사버린 라이터들이 하나둘씩 서랍 속에 모여들기 마련이다. 불을
     부쳐 그녀의 담배에 갖다 대었다. 그녀는 천천히 몇 모금 빨더니 그것
     을 들이키곤 또다시 천천히 내 뱉었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담배냄새,
     그녀는 그렇게 잠시 지체하다가 다시 진열장으로 유유히 걸어갔다.
     그녀의 담배 피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아주 오래된 기억 하나가  생
     각나 흐뭇한 감정에 웃음이 나왔다.

       3년 전이었던가. 나도 담배를 무척이나 많이 피던  골초였다.  내가
     좋아했던 연인도 담배를 피었었는데 난 담배 피는 그녀가 무척 매력적
     이고 좋았다. 당시 난 담배를 그냥 맛있는 음식 정도로 생각했기에 여
     자가 핀다해도 별 문제는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삐익~ 자체 검열입니다. 이 문장, 여자가 핀다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
     상당히 구시대적인 문장이군요. 죄송합니다. 헤헤..^^)

       그녀가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아침공기가 좀 차가웠는지…….  조그
     맣게 킁킁거리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난 미니자판기에서 커피를  뽑
     아서는 그녀에게 다가가 권했다. 그녀는 고맙다는 인사 없이 받아들고
     는 시선은 여전히 비디오테이프들이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나는 라
     이터 하나를 만지작거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 당시 나에게 좀 우스꽝스럽게 생긴 라이터를 하나 갖고  있었다.
     그 라이터라는 것이 전혀 라이터 같지 생겨 먹질 않았을 뿐더러  어떻
     게 해야 불이 당겨지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상점의  주인이  한번
     나의 앞에서 작동시킨후에도 매번 불이 필요할 때마다 머뭇거리게  만
     드는 성가신 라이터였다.

       그날 무슨 이유인지 그녀와 심하게 말다툼을 한적이 있었다. 다툼이
     란 것이 어떤 계기라던가 아님 시간이 지나면서 약해지기 마련인데...
     그땐 도통 출구란것이 없는 막다른 골목 같았다. 커피숍의 유리  탁자
     위에 서로에 얼굴을 붉히며 우린 서로 매우 화가 난  상태였다.  무엇
     때문에 싸웠고 어떤 식으로 말다툼을 했는지는 도무지 생각을  해보아
     도 생각나지 않았다. 사람사이에 일어나는 감정 따위의  싸움이란  늘
     이런식이었다. 정말로 기억에 남아있는 큰 일에는 싸우지 않고 언제나
     사소하고 조금한 일에 다투기 마련이다. 그런 사소한 원인은 기억하지
     못하다. 단지 심하게 싸운 것밖에는.... 우리 모두 신경이 날카로워졌
     고 마주 앉아 있기도 무척이나 어색할 정도로.. 그녀는 어색함을 감추
     려고 아님 화가 치밀어서 일까? 담배를 하나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라이터를 뒤적거리며 찾다가 못 찾아선 화가나 짜증을  내던  터였다.
     그때 내가 갖고 있던 그 라이터를 난 그것을 꺼내 탁자위로  미끄러지
     듯 밀어 그녀에게 주었다. 몇 번 더 찾는 그녀...결국 내 라이터를 집
     어 불을 댕겨 보려고 했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불이  켜지는지.....
     내가 처음 머뭇거렸던 것처럼 그녀는 짜증나는 투로 라이터를  이리저
     리 돌려 보더니 결국 라이터만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그녀의
     행동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녀
     는 오랫동안 그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다가 포기했는지 짜증을 내며  라
     이터를 내동댕이쳤다. 그러는 그녀가 얼마나 귀여운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러자 그녀도 웃었고 그렇게 우연하고 우스꽝스럽게  화해를
     한적이 있다.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그녀는 카운터로 돌아와 있었다.

       "아저씨, 왜 웃어?"

       그녀는 한 손에 조금도 마시지 않은 커피가 담배꽁초  하나가  둥둥
     뜬체 들려저 있었다.

       "네? 개인적인 거예요. 한 여자가 생각나서요"
       "누군 데요?"
       "그냥 담배 피던 여자"
       "나처럼"

       그녀는 잠시잠깐 관심이 있는지 두팔로 턱을 괴고 나를 뚫어지게 쳐
     다보았다.

       "아주 오래 전 일이에요"

       그녀는 다시 담배를 하나 물었고 난 불을 부쳐 주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아요?"

       한 손에 담배를 들고 서 있는 그녀는 다른 한손엔 담배 꽁초 하나가
     둥둥 떠있는 커피가 가득찬 잔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커
     피 위에 뜬 담배꽁초를 꾹꾹 누르면서 '전 커피를 마시지 않아요 그냥
     냄새가 좋아서요 아저씨가 재떨이 대용으로 준지 알았죠'하고  조용히
     천천히 중얼거렸다. '재떨이가 무겁지 않나요?'하고 내가 물어보자 그
     녀는 담배 한 모금을 내뱉으며 그 담배꽁초가 둥둥 뜬 자신의 커피 잔
     을 카운터 탁자 위에 올려놓고 내가 마시다만 커피를 들고 다시  진열
     장으로 돌아갔다. 난 그녀가 한 것처럼 손가락으로 그녀의 커피(였던)
     위에 떠 있는 담배꽁초를 꾹꾹 눌렀다. 오랫동안 그녀는 진열장  앞에
     서 있었다. 예전에도 그렇게 서있었던 것처럼... 담배를 피며 내가 마
     시다만 커피 잔을 들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그녀는 다시  카운터
     로 돌아왔다. 들고 있던 나의 커피잔엔 담배꽁초 하나가 둥둥  떠있었
     다.

       "아저씨 전 말이죠 이렇게 구경하는 것이 더 좋아요. 그냥 뭘 볼까?
     하고 고심하고 선택을 하는 것이 더 좋아요. 그냥 진열장 앞에 서성거
     리며 뭐 그런거요"

       그리고는 커피 잔을 놓고 다시 진열장으로 돌아갔다. 심심해진 나는
     턴테이블에 투윈픽스라는 영화음악중 "Fire Walk With Me"란 나름대로
     우울한 음악을 틀어보았다. 내가 리듬에 흥얼거리고 있을  때  그녀는
     음악에 맞추어 조금씩 몸을 흔들더니 매우 이상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
     다. ‘이런 곡에도 춤을 출 수 있구나.’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는 묘
     한 동작으로 춤을 추었다. 리듬에 맞추어 추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
     다고 이질적이지 않은 음악가 뭔가 곰 잘 어울리는듯한 춤,  술에
     취한 듯 꿈꾸듯 두눈을 눈을 감고 조금씩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이 우아
     하면서도 매력적이고 기묘한 춤을.. 그녀가 다시  진열장으로  돌아간
     것은 곡이 끝나고 였다. 이윽고 다시 그녀는 카운터로 돌아오더니…….

       "아무 영화나 골라주세요 아저씨가 좋아하는 영화로요 전 그냥 가져
        가죠."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진열장으로 돌아가서 비디오테이프들을  쳐다
     보는 것에 몰두했다.

       친구의 비디오숍 카운터에……. 난 앉아 있었고 그녀 때문에 생각
     난 갈까마귀의 시구절과 흐뭇했던 옛추억의 조각  조각들을  끈질기게
     잡고 있었고 담배꽁초 하나씩 둥둥 뜬 커피2잔과  담배연기, 이리 저
     리 진열장 앞에서 서성이는 젊은 아가씨 한 명이 있었다. 녀석은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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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딥씨 05.04.12 02:35 댓글 수정 삭제
    생생하게 떠오르는 어떤 느낌들이 있네요. SF/환상 소설만 쓰신다고 했는데 이런 글도 병행해서 쓰세요. 정말 좋은데요. 이런 재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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