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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귀향

2005.02.23 10:4402.23

귀 향

“제길! 제어가 되지 않아!”
나는 블랙아웃된지 오래인 항법장치의 모니터를 보면서 절망감에 빠졌다. 기체의 손상은 이미 극에 달했고 연료는 이미 바닥이였다. 거기다 언제 다쳤는지 모를 배의 상처 때문에 파일럿 슈트는 이미 피범벅이 된지 오래였다.
내가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분명 두 달 전만 해도 나는 내 고향의 작은 집에서 내 아내와 함께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런 전투기를 타고 피비린내 나기 그지없는 전쟁터에 있는 것은 왜일까?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이 제대로 나오기도 전에 기체의 고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미 먹통이 된 무전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소리쳤다.
“여긴 마틴 블릿 중사! 마틴 블릿 중사! 기체가 추락한다! 구조를 요청한다!”
하지만 무전기에서는 치직거리기만 할 뿐 대답은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비상탈출뿐이였다. 바로 밑에는 울창한 침엽수림뿐이였다.
그 푸른 융단이 깔린 듯한 숲을 보자 왠지 모르게 고향생각이 났다. 내 고향 근처에도 저런 울창한 숲이 있어 날씨가 좋은 봄이나 여름에는 아내와 함께 자주 피크닉을 가고는 했는데.......
‘삶을 주소서....... 그리운 고향과 아내를 다시 볼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나는 신에게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비상탈출 레버를 당겼다. 격렬한 충격과 함께 내 몸은 공중으로 떴고 나는 온 몸을 뒤흔드는 그 충격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내 몸이 하얀 천에 덮여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낙하산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낙하산 천을 걷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어디가 심하게 다쳤는지 온 몸이 격통에 휩싸였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였다. 나는 등에서 낙하산을 때어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묘하게도 숲의 모습이 낯익었다. 나는 절뚝거리면서 익숙하게 길을 가는 발이 이끄는데로 오솔길을 따라 숲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숲이 점점 엷어지고 결국 나는 숲을 빠져나올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놀라움 반, 기쁨 반으로 그 자리에서 우뚝 서고 말았다.
나지막한 언덕 위에 가지런히 놓인 새하얀 집들, 푸른 초지와 그 초지에서 얌전히 풀을 뜯고 있는 소들, 시리도록 푸르디 푸른 호수. 그것은 내가 가장 익숙한 풍경이였고, 내가 가장 그리워 하던 풍경이였다. 바로 내 고향마을이였다.
“말도 안돼........”
나는 상처의 고통도 있은채 한달음에 마을로 뛰어갔다. 전쟁의 상처도 이곳을 어쩌지는 못했는지 건물들도 모두 예전 그대로였다.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었고 동네꼬마들은 마을의 개들과 즐겁게 뛰놀고 있었다. 몇 번이나 다시 보기를 바랬던 그 풍경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풍경을 느긋하게 감상할 여유는 없었다. 나는 계속 뛰어 언덕 가장 높이 위치한 조용한 전원주택에 도착했다. 이곳은 마을의 모든 것이 한눈에 보이고 밤에는 하늘의 은하수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였다. 그리고...... 나의 집이였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초인종을 눌렀다. 세 번째인가 눌렀을때. 그리운 목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그리운 얼굴이 나왔다.
“누구.......”
나의 아내 에레나.......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그 흑진주를 박아 놓은 듯한 반짝이는 검은 눈에서는 점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에레나!”
“마틴!”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꼭 끌어안았다. 내 품에 느껴지는 감촉은 분명 현실의 감촉이였다.

정말로 믿을 수 없었다. 지긋지긋한 피와 화약냄새에 쩔어있던 나에게 하얗게 세탁한 침대시트가 깔려있는 내 침대에 누워서 사랑하는 아내의 간호를 받으며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내 머리 속에는 이미 전쟁에 대한 것은 이미 희미해져 가고만 있었다.
“정말 난 행운아인 것 같아.”
“왜요?”
“긴급탈출을 해서 떨어진 곳이 내 집 근처라니 말이야. 거기다 내 고향은 이렇게 무사하니 더 이상 바랄것이 없잖아.”
“....... 저는 마틴을 다시 볼 수 있어서 행운이라 생각해요. 그때는 다시 못 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만날 수 있다니.”
“나도....... 추락 할 때 당신을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몇 번이나 기도 했는걸.”
에레나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 미소는 나에게 그 어떤 보상보다도 훌륭한 것이였다. 에레나는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다가 나에게 말했다.
“마틴? 별 보시겠어요? 오늘은 유난히 많이 떴네요.”
“그래? 어디.....”
나는 상반신을 일으켜 창 밖을 바라보았다. 에레나의 말대로 하늘에는 은가루를 뿌린 듯 별이 가득 하였다. 나는 그 별을 보며 예전에 에레나에게 청혼할 때를 생각했다.
“저기, 에레나. 혹시 기억나? 내가 청혼할 때 말이야.”
“.......예.”
“그때 저 별을 걸고 맹세를 했지.”
“기쁠때나 슬플때나.”
“죽음이 갈라놓는 순간까지 함께 하겠다고.”
에레나는 그 별을 보면서 신비로운 미소를 지었다.
“저는 저 별을 보고 다시 맹세하고 싶어요.”
“뭐라고?”
“죽음마저 우리를 갈라놓지 못할 것이라고.”
에레나는 그 말과 함께 다시 창문을 닫고 나에게 키스를 했다.
“이제 함께 있는거에요...... 영원히......”
그 말이 주문이라도 되듯 나는 다시 의식이 희미해져감을 느꼈다. 그러면서 다시 기도했다. 이것이 꿈이 라면 영원히 깨지 않기를.........

“이건 지독하군.....”
동부군 소속 수색1중대를 지휘하는 레비 대위는 폭격으로 파괴된 마을을 둘러보며 신음했다. 본래 이곳은 아름다운 전원마을이였다지만 전쟁의 상처는 이 마을을 철저히 파괴했다.
“이곳의 생존자는?”
레비 대위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옆의 하사관에게 물어봤다.
“없습니다. 주민들이 미처 피난하지 못하고 모두 폭격에 휩쓸려 죽었다더군요.”
“그래...... 일단 가장 높은 곳에 탐색기를 설치하도록 하지. 따라와.”
레비 대위는 병사들을 인솔해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그곳도 아담한 전원주택이 있었지만 이미 지붕이 날아가버린 상태였다. 그가 거의 부서질듯한 문을 열고 집안을 살펴보니 반쯤 타버린 침대 위에 한 사람이 죽어있는 것을 볼수 있었다. 온 몸은 피투성이였지만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시신은 아직 멀쩡했었다. 거기다 그 복장은 레비대위와 같은 동부군의 파일럿 슈트였다.
“마틴..... 블릿 중위? 비행기 파일럿인데 왜 이런 곳에서 죽었지?”
레비 대위는 통신병에게 말해 그 사람의 신원을 조회해보았다. 그리고 그 신상명세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A-232기지 방위대 소속? A-232기지는 여기서 500km는 족히 떨어져 있는데?”
“그러고 보니 서쪽 숲에 아군 전투기의 잔해가 있었지 않습니까? 이 근처에서 추락한 것이 아닐까요?”
하사관이 그런 의견을 내놓자 레비 대위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항법장치까지 고장난 기체로 그 먼거리를?.....”
레비 대위는 신음하면서 다시 마틴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여우은 죽을때 자신이 태어난 굴로 머리를 향하고 죽는다지만....... 죽음의 순간에 자신의 고향으로 발길이 간건가? 아님 우연인건가?”
그는 알길이 없었다. 단지 알 수 있었던건 마틴은 그 죽는 순간에 무엇을 보았는지 희미한 미소마저 띄고 편안하게 자신의 집에서 죽었다는 사실뿐이였다.  

안녕하세요. 이 거울 사이트에 처음으로 글을 올리는 아키입니다. 그런데 글이 과연 사이트의 품격을 심히 떨어트리지 않을까 의심중입니다..... 이 글은 '여우는 죽을때 자신의 굴로 머리를 두고 죽는다'라는 속담과 정지용 시인의 '향수'시에서 소재를 생각해 쓴것이지만 심각한 삽질성과 고치기 힘든 허접성덕에 글이 엉망진창.... 돌을 던지셔도 유구무언입니다. 그려..... 앞으로는 좀더 잘 써보겠습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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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딥씨 05.04.12 02:17 댓글 수정 삭제
    이 사이트를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오늘 처음 읽었는데요. 음, 제가 보기엔 굉장히 잘 쓴 글입니다. 환상특급 같은 미국 TV 시리즈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드는 감도 있긴 하지만 재미있습니다. 저 같으면 이달의 우수 단편으로 선정했을 텐데...ㅎㅎㅎ 힘내시고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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