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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괴 산

2011.10.06 20:5610.06

산이 그곳에 있었다. 지도 한 가운데 등고선으로 되어있는 부분이 비스듬히 원을 그리면서 별로 높아 보이지 않았다. 정상까지 오르는데 3시간쯤 걸릴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는 내려오는데 7년 이란 시간을 보내야만했다.

아래서 볼 때는 높아보이지도 험준해 보이지도 않았다. 야산보다 조금 높아 보일 정도였다.

집에서 나올 때 간단한 도시락과 막걸리를 령주가 챙겨주었다. 자기야 잘 다녀와. 동거녀는 짧은 인사와 함께 샌드위치와 자른 바나나, 건포도, 방울토마토를 건네주고 그녀의 엄마 집으로 갔다.

그는 령주의 어머니가 싫었다. 고아라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반대했다. 7년이란 시간이었다. 령주와 동거를 한 시간은 그렇게 오래였지만 한 번도 그를 반겨주지 않았다. 고아인 그가 자신의 딸과 몰래 산다는 것도 못마땅하게 여겼다. 령주는 그런 엄마를 설득하려 간 것이다. 가 보아야 허탕 칠게 번하지만 그녀의 오랜 일과가 되고 만 것이다. 이대로 애나 낳고 난 다음 혼인신고만 올리면 그 정도로 되었지, 생각해 왔다. 아무래도 령주의 어머니는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보였다.

차를 타고 한적한 국도를 따라서 갔고 그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주변을 보았지만 등산객들의 차는 보이지 않았다. 국도 변에 인접한 작은 공터에서 산의 등산로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 사방을 둘러보면서 어디로 올라갔지 정하지 못했다. 작은 산이라지만 일요일인데 등산객은 보이지 않았다. 산에 오르는 것은 처음이었다. 바다라면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겨울이고 여름이고 찾았지만 산은 땅기지 않았다.

국도변에 인접한 공터에 큰 바위가 하나있었다. 둥그스름한 바위는 앉기 편해보여선지 천천히 올라가기로 하고 그 바위에 앉아서 막걸리 한 병을 따서마셨다. 산을 보았다. 아직 겨울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초봄의 산은 앙상해보였다. 나무들은 푸른 잎이 달리기 전이고 그나마 소나무 같은 침엽수들만 군데군데 있어서 산은 적막해보였다. 그곳에 등산객들이 화려한 색의 등산복을 입은 10명 정도의 무리가 산을 오르는 것이 보였다. 입구에서 얼마 가지 않은 곳에서 아저씨로 보이는 몇 명과 여자로 보이는 몇 명, 젊은 남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한 줄로 오르고 있다.

천천히 오르기로 하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서 전 국민이 애용하는 일회용 라이터 불티나로 불을 붙였다. 말보르 레드의 끄트머리의 담배 잎들을 조금 떨어내어서 맛이 좋게 한 다음 한 모금을 빨아드렸다. 말보르 레드는 잘 타들어갔다. 지난 십 오년간 이 담배를 피워왔다. 남들은 독하다고 순한 담배로 옮겨갔지만 그것만 고집했다. 오늘은 새로운 도전이다. 그래서 생전 처음으로 산을 찾았다. 줄담배를 피웠다. 이것으로 담배도 끊을 생각이다. 그래서 안 가던 산을 찾은 모양이다. 줄 곳 새로운 것을 하지 않았다. 익숙한 것이 편해서인지 그는 고집했다. 처음 친구가 준 말보르 레드가 그의 십 오년을 지켜 왔고, 령주가 그의 7년을 지켜주었다. 직장도 한군데에서 오래도록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것만은 확실히 물려준 모양이다.

이제 산을 오르던 사람들은 그의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저만치 올라갔다. 이름 없는 산이라서 적당한 등산로는 보이지 않았다. 나무와 나무사이에 산짐승들이 다니는 길 정도가 보였다. 그는 등산로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 그냥 이 길을 따라서 오르기만 한 다면 산의 정상은 그를 기다릴 것이다.  

그는 처음 산에 도전했지만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어느 날 지도를 보는데 낮은 산이 보였다. 저기에 가면 뭔가 달라질까. 산에서 본 나무와 풀들, 흙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면 새로운 기분을 앉고 정상에서 내려 올수 있을 것이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조금 오르자 숨이 차기 시작했다. 산 밑에서 줄담배를 피운 것이 아무래도 후회가 되었다. 더 오르자 눈이 아직도 녹지 않은 곳도 더러 있었다. 조심하면서 눈을 딛고 올라섰다. 며칠째 기온이 영상으로 오르는 날이 이어지다 조금 떨어졌는데 아직도 눈이 녹지 않아서 짜증이 났다. 한 번도 산에 오르지 않아서 산이 어떻지 몰랐다. 그래도 계속 앞으로 나갔다. 단지 산은 산일뿐이다. 높이 솟아 있는 언덕 그뿐이다.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산은 생각보다 거대했다. 멀리까지 주변을 전부가 보일 정도였다. 산반도라고 생각될 정도로 산들이 많았다.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은 저 멀리 조금 하게 보이는 아파트들이었다. 장난감 불럭들을 땅에 박아 놓은 것들이 빽빽하게 들어차있었다. 줄 곳 령주와 함께 아파트에 사는 것을 꿈꾸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남들이 사니 자신도 그곳에 가면 남들처럼 잘살 것 같은 기대가 있었다. 그가 보기엔 남들은 잘 사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주위의 반대 없는 결혼사진은 있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그 정도면 잘 사는 것이 아닌가? 서울에 아파트를 가질 정도라면 자신의 인생의 최고치의 행복이라고 생각되었다. 단지 그것뿐이다. 더는 바라지 않는다. 그마저도 어렵다니.

산의 정상엔 키 작은 소나무들이 있다. 나무 밑으로 가서 령주가 싸준 도시락과 막걸리를 꺼냈다. 혼자 올라와서 술을 마시기엔 멋쩍었지만 정상에는 아무도 없어서 아무도 이상한 사람이라고 보지 않을 것이다. 황금 같은 휴일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는 산이 처음이었지만 산을 다녀온 사람들은 주말이면 사람들로 산이 넘쳐난다고 했다. 산 밑에서 본 등산객들이 전부였고 올라오는 동안 아무도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막걸리가 들어가자 그러한 근심은 금방 사라졌다.

샌드위치는 생각보다 많았다. 맛있었지만 더는 들어가지 않았다. 6조각 중에서 3조각을 먹고 나머지는 물렸다. 술안주로 건포도를 씹으며 하늘의 구름을 쳐다보았다. 새털 같은 무수한 구름들이 푸른 하늘을 뜨개질 하듯이 펼쳐지고 왕새매가 맴을 도는 것이 보였다. 방울토마토와 바나나는 손도 대지 않았다. 막걸리 두병을 마시고 나니 술기운이 올라서 잠이 들었다.

  잠시나 잤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는 잠도 아무 곳에서나 잘도 자는 인물이다. 우리주변이 그런 인물들은 하나 둘쯤은 있으니 신경 쓰지 말자.

잠은 깊게 들은 것은 아니었다. 얇은 잠속에서 령주의 어머니가 김밥을 말면서 령주에게 너는 시집가지 말고 처녀 귀신이 되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그는 들고 있던 수저를 떨어트렸다. 처음 초대받은 곳에서 그는 어머니의 말이 야속했다. 싫은 척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는 수저를 떨어트린 것이다. 말이 좋아서 떨어 틀린 것이지 집어던지다시피 했다. 자신의 행동에 너무 깜짝 놀란 나머지 잠에서 깨고 말았다. 사실 그 일은 령주의 집에 처음 초대를 받았던 기억이, 그 잃어버리고 싶던 기억이 다시 꿈에 나온 것이다. 그는 어머니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 자리에서 많은 노력을 했다. 어머니가 주시는 대로 맛없는 김밥도 먹고, 자신을 놀리는 말도 참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머리는 멍해지고 자꾸만 화장실에 가고 싶다. 애써 참아가며 사람 좋은 척을 하려니 머릿속은 멍해지면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어머니의 말에 겨우겨우 장단을 맞추었다. 어머니가 주시는 맥주가 점점 더 들어가자 그는 돌변했다. 어머니의 말에 반박을 하였고 그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더 이상 령주의 어머니를 보고 싶지도 않았고, 그녀를 상대할 자신감도 상실해갔다. 오랜 동안 잊고 있던 기억은 그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 아직도 그의 마음속 한구석엔 서운함과 어머니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있었다.

산의 정상에서 본 하늘은 그의 기분과 다르게 한없이 청량하기만 했다. 왕새매는 아직도 하늘에서 맴을 돌고 있다. 차라리 박쥐가 날아다녔으면 흉찍해 기분이 더러워 졌을 텐데 말이다. 자고 일어나니 추위가 느껴져 집에 가고 싶었다.

한동안은 오로지 걷는데 만 열중했다. 보이는 건 잎이 하나도 없는 회색의 나무들뿐이다. 나무 기둥에 제를 덮어쓴 것 같은 나무들이 정처 없이 그의 가는 길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적당한 길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나무의 뿌리가 땅위로 나온 것을 밟고 돌부리를 밟아가며 내리막을 조금씩 속도를 내어가면서 내려가고 있다. 올라 올 때도 등산로는 보이지 않았고 내려 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앙상한 나무들은 규칙 없이 땅에 기둥을 박고 있어서 그것들을 피해가느라 발목과 다리가 피곤해졌다.

땅은 갈색과 인분 색의 낙엽으로 덮어져 있고 사람이 두 팔로 끓어 않은 것보다 굵은 기둥의 나무가 이파리가 없는 앙상한 가지를 하늘에 날카롭게 찌르고 있다. 그 나뭇가지들은 사방으로 꺾어져있고 그 위로 회색의 구름이 부유하고 있었다. 그는 그 밑에서 하늘을 보았다. 회색 구름 사이의 비좁은 틈에서 태양이 고개를 들고 간신히 빛을 보냈지만 큰 나무 밑으로 거대한 그림자가 머리위로 촉수가 여러 개 달린 괴물 해파리 같았다.

한참을 내려가자 춤을 추듯 아슬아슬하게 꺾어진 소나무들이 군집을 이루면서 저들끼리 조금한 틈도 용납 할 수 없다는 듯이 엉켜 있었다. 그 군집은 거대했고 빛도 비치지 않아서 암울하게 있었다. 그것을 피해갈 수도 없고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어서 한참을 돌아서 갔다. 그 후로도 계속 내려가고 또 내려갔다.

아직 이른 봄이라서 풀들은 보이지 않았다. 올라 올 때하고는 틀린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무들이 너무 많다. 올 때는 많지 않았는데 왔던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길이 아니었다. 신경 쓰지 않고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

나무들은 곳곳에서 그를 내려다보는 듯 했고 그 속에 숨어서 침입자의 동태를 감시하는 것 같았다. 그는 내려가면서 나무들을 쳐다보고 이상함을 발견 할 수 없었지만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조금씩 걸음은 무거워지고 있었다. 나무와 낙엽, 온통 흙, 하늘을 뒤덮은 회색의 암울한 구름만 그가 본 것을 전부였다. 아무리 가도 산 아래는 보이지 않았다. 올라온 만큼 내려갔다고 생각했는데 다 내려오지 못했다니 이상하기만 했다. 그는 흙의 구덩이가 파져있고 그 안에 온갖 뿌리들이 어선 그물에 잡힌 멸치 때처럼 꿈틀 거리는 듯한, 곳에서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산 아래의 입구에서 본 등산객들은 왜 아무도 보이지 않지. 그들은 어디로 갔는데 단 한명도 볼 수 없었는가? 자신은 그들과 다른 코스로 간 것일까? 올 때 보았던 그들은 어디로 사라졌기에....... 도대체 어디에 있기에........ 오싹한 생각을 떨치기 위해 그는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일련의 나무들은 정신없이 땅위로 솟아 있었고 그는 활엽수로 보이는 앙상한 나무와 아직도 푸른 잎이 있는 침엽수들의 나무들을 피해서 종잡을 수 없이 좌우로 나무들을 피해 다녔다. 한동안 수없이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는 길을 따라서 내려갔고 낙엽 밟는 소리만 스산하게 감쌌다. 그 안에서 그는 침묵하였고 오직 이 산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그의 온몸을 지탱해주었다.

거의 다 내려 왔을 거라고 생각 들었다. 올라오는데 3시간이 걸렸고 그만큼 내려 왔다. 그는 속으로 다짐을 했다. 조금만 걸으면 평지에 도착 할 거다. 그러니 조금만 참자. 산 아래에 도착하면 주차된 차를 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속력을 내면 된다.

나무들은 점점 빽빽이 하늘을 가리고 한쯤의 빛도 보여주지 않고 그를 압도해갔다. 회색 구름 사이로 간신히 보이던 햇빛도 이젠 볼 수 없었다. 길을 잃은 것이다. 그는 이산에 압도 되었다. 조금한 길 따위도 보이지 않았고 잿빛의 나무들만 그가 가는 길을 가로막았다.

단지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데 도저히 내려 갈 수 없다. 그는 한참을 내려 왔고 또 내려 왔지만 왔던 것만큼 가도 그가 올라왔던 곳에 주차된 차가 있는 평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답답함과 조급함, 공포가 놓아주지 않았다. 이 산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자.

그는 온힘을 다해 뛰었다. 하늘을 뒤덮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이름 모를 새들이 날아갔고 바람의 요동이 심상치 않았다. 그가 뛰어 가는 곳마다 깎아지는 듯 경사였다. 가파른 경사를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비좁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총알과 같은 속도로 뛰었고, 바위를 뛰어 넘었고, 그의 다리는 그의 두려움보다 더욱 빨랐다.

숨이 턱까지 찾지만 느낄 수 없이 속력을 내어서 달렸다. 경사의 나무들은 그의 길을 방해하면서 그를 몰아 붙였다. 야트막한 나뭇가지에 걸려서 배낭이 돌 구르듯 경사를 타고 내려가서 계곡에 빠지는 것을 보고야 그는 절망했다.

한참 전에 보았던 계곡이 환상처럼 그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 절망감은 공포보다 심하게 그를 무너트렸다.

주저앉았다. 떨어지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다. 한 동안 아무런 생각도 그를 사로잡지 못하고 멍한 상태로 가만히 있다. 이산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끝도 없이 내려 와도 끝이 없는 산, 나는 왜 이곳에 왔는가? 이 산에서 죽을 지도 모른다.

추위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심하게 몸이 떨려 왔다. 령주가 보고 싶다. 그녀의 따뜻한 품에서 포근함을 느끼고, 령주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싶다. 산을 내려가면 다시는 산을 찾지 않는다.

한 참 후에야 공포와 절망을 떨치고 계곡물에서 배낭을 끄집어냈다. 산 정상에서 내려오던 길에 잘못된 산을 타게 된 것이다. 산과 산이 연결된 산맥을 타고 다른 곳으로 오게 된 것이다. 그는 마침내 내려가고 또 내려가도 평지에 닺을 수 없었던 이유를 찾았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을 타고 비스듬히 가기로 했다. 아침에 오르던 산이 오후가 되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것으로 위안을 삼자. 내려 왔던 방향으로 가로 질로 갔다.

꼬까울새가 나뭇가지에 앉아서 조용히 그의 걸음을 지켜보고 틱틱틱하는 짧은 울음소리를 냈다. 머리와 등, 꼬리가 검은색이고 가슴은 오렌지색, 옆 목과 배는 흰색인 검은딱새가 몇 마리보였다. 나뭇가지에서 저들끼리 휴식을 취하는 것 같았다. 밤이 되기 전까지 길을 찾아서 내려가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침하게 하늘을 덮었던 회색구름은 사라지고 햇빛이 비취었다. 아직 오후 2시기 때문에 시간이 있다.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핸드폰을 꺼내 액정을 보니 금방 방전 될 것 같았다.

자기야, 나야, 어머니한테 잘 갔다 왔어.

맨날 그렇지 뭐. 이제 내려 왔겠네.

아직 산이야. 길을 잘못타서.

조심하지 않고. 참! 엄마가 한번 보제.

갑자기 령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산이라서 기지국의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통화를 하고 나니 건전지의 잔량이 조금이었다. 령주의 어머니가 한번 보자는 말이 무엇일까 그는 생각해보았다. 마음의 변화가 생긴 것일까? 그것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 다만 이제 그만 놓아주었으면 했다. 아니 이제는 받아드릴 생각인가? 도대체 무슨 꿍꿍인가 하는 생각이 들자 빨리 산을 벗어나서 령주를 보고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걸으면서 생각하니 자신을 보자고 한 이유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드디어 어머니도 나를 보고 이제는 사위가 되어도 좋다고 허락을 하실 것인가? 령주가 7년 세월을 주말마다 찾아간 보람이 생긴 것인가? 너무 많은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한동안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다시 몇 번 통화를 시도 했지만 신호는 잡히지 않았다. 기뿐 소식을 빨리 전하지 않고 늦게 말했을까? 아마 좋지 못한 소식일 거야. 그는 점점 더 혼자 생각 속에서 초조해졌다. 가도 가도 시간이 가고 많이 가도 산의 내리막은 보이지 않았다.

  령주의 마지막말 때문에 그는 생각 속에 묻혀서 자신이 산을 내려오고 있다는 느낌은 사라졌다. 오직 걸음이 걷는 대로 아래로 내려갔다. 머릿속에선 령주가 한, 어머니가 한번 보자는 말의 의미를 따져 보았다. 궁정적인 생각이 한 동안 그를 들뜨게 하더니 나쁜 망상이 그를 괴롭혔다. 령주에게 전화를 하려고 핸드폰을 잡았지만 신호는 뜨지 않았다. 그의 생각 속에서 어머니는 천사가 되었다가 악마가 되는 과정을 몇 번씩 되풀이 하자 빨리 산을 내려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느새 많은 시간이 흐르고 주위는 어두워져갔다. 밤이 오고 있다. 이젠 나무들도 쉽게 분간이 되지 않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는 어두 워기에 더듬더듬 손을 집으며 앞으로 갔지만 번번이 나무에 부딪쳤다.

반쪽은 잎이 달리고 다른 쪽은 없는 소나무가 생각났다. 눈이 녹지 않은 곳에 가기 전에 있었다. 그곳으로 가면 올라왔던 길을 발견하고 산과 산 사이를 잘못 탄 길을 다시 찾을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어떻게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주위는 이미 어둡다. 그는 초조해졌다. 이곳이 산의 어디쯤인가도 알 수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왜 이정표는 보이지 않지....... 올라오는 동안 등산객을 위한 이정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나라에선 산을 찾는 등산객을 위한 이정표를 세우지 않는 것인가? 정말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밤이 오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는 안절부절 할 수 없었다. 밤을 산에서 보내야 한다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 아래로 내려가면 해결책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배낭을 떨어트리기 전까지 아래로 계속 내려오지 않았는가? 올라갔으면 내려오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그는 올라온 만큼 아니 더 내려 왔다. 죽어라하고 뛰어서 내려 왔다. 근데 산은 미쳤는지 산 아래를 보여주지 않는다.

  핸드폰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 하니 저녁 9시 반이였다. 산은 검은 장막 속에서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단념하고 밤을 보낼 적당한 곳을 찾았다. 허기도 지고 지친 몸을 눕힐 곳을 찾았다. 남은 샌드위치를 배낭에서 꺼냈다. 어둠 때문에 이것이 샌드위친지 보이지 않았지만 부드러운 식빵의 감촉만은 느껴졌다.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다. 허기 때문에 꾸역꾸역 먹어치웠다. 어느새 잠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갔다. 하루 내내 산을 누빈 그는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산에서 밤을 보내야 한다는 것보다 피곤함이 앞섰다. 하지만 밤은 평온하기만 했다.

아침이슬의 촉촉한 기운에 그는 누었던 자리에서 몸을 털고 일어났다. 주위를 보니 그가 령주와 살고 있던 집은 아니었다. 꿈속에서는 출근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그가 아침을 먹기도 전에 택시를 잡고 급하게 회사로 가는 꿈을 꾸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낙엽을 덥고 자고 있었다.

어재 아침에 등산을 가서 오후쯤 통화를 하고 그 후로 그가 돌아오지 않는 집에서 령주는 그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회사의 동료들도 그가 결근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이상하게 생각 할 것이다. 핸드폰을 꺼내고 보니 오전 5시 45분이었다. 령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건전지가 방전이 되어서 신호음만 들리고 결국은 끊어지고 말았다. 핸드폰을 집어 던졌다. 연락만 되었다면 자신은 산에 있다고 그러니 구조대를 보내 달라고 할 수도 있었다. 이제 모든 외부와의 연결 통로는 사라졌다.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곳은 산일뿐이다. 내려가서 자신의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서울로 가서 과장에게 산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면 될 것이다.

어재부터 막걸리 외에는 액체를 마시지 못했다. 갈증이 다가왔다. 배낭에서 방울토마토를 꺼내서 조금이나마 목을 축인 다음 령주가 싸준 도시락을 먹었다. 배가 고파서 다 먹고 싶었지만 만약을 위해서 반을 남기고 다시 산을 내려갔다.

드물게 본 산새 몇 마리를 빼고는 조금한 생물체도 보지 못했다. 아직 이른 봄이라서 곤충은 없었다. 그는 산이 이런 곳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온통 흙과 나무, 돌, 낙엽, 그들은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가도 가도 똑같은 것만 보였다. 여기가 어디인지 모든 것이 같아 보였다. 이 미로 같은 거대한 산보다 마음속의 산이 그를 괴롭혔다. 마음속에선 이곳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을 가면서 저곳을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마음 안에는 거대한 산이 장애물로 있어서 그 속안을 헤매게 만들었다. 이곳으로 내려가도 똑같고 저곳으로 내려가도 똑같다. 아무 곳도 그의 길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어지러워서 미칠 것 같다. 아무리 내려가도 산 아래는 보이지 않았다.

돌부리는 비죽하게 튀어나온 것들이 그가 가던 길을 가로 막았다. 신발을 신었지만 밟으면 발바닥에 찌르는 듯 통증이 올 것 같은 돌부리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도저히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유리 조각 같은 돌들을 피해서 옆으로 걸었고 그 앞엔 겨울이 지나 죽어버린 덤불이 보였다. 돌밭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데 반해서 덤불은 고작 30미터였다. 앞으로 가아가 이 산을 벗어나야 한다.

그것을 헤집고 앞으로 나가자. 이른 봄이라서 뱀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덤불을 집어 들었지만 덤불은 심하게 엉켜서 실타래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 옆으로 낭떠러지가 있어서 더 갈 수도 없었다. 덤불 안으로 한발을 디뎠다. 나머지 다리도 옮겨서 가려고 했지만 수월하지 않았다. 다리에 꼬여서 더 이상 걸음을 옮기기도 힘들 지경이 되었다.

발을 질질 끌면서 가려고 하자 더욱 심하게 덤불을 그를 삼켰다. 상체가 급격하게 앞으로 솔리면서 온몸이 잠겼다. 그는 아우성을 쳐대면서 살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그럴수록 덤불을 그를 놔주지 않았고 그대로 덤불에 휘어 감긴 체 내리막을 30미터 굴렀다.

정신없이 구르니 한동안 누어서 어지럽게 회전하는 하늘을 보았다. 다행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어재보다 심한 절망감이 그를 휩쓸었다. 하늘은 말없이 청명하게 빛나고 있었고 그는 눈을 감았다. 이대로 산에서 죽는 건 아니겠지. 다시 눈을 떴을 때 새 한 마리가 날아갔다. 자신이 저 새라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 텐데. 그때 담배 생각이 났다. 그는 미친 듯 자신의 옷을 뒤졌다. 없었다. 배낭도 뒤졌다. 없었다.

이 개 같은 산. 괴성을 지르며 펄쩍 뛰었다. 주변의 죄 없는 나무들에게 애꿎게 발길질을 하고 마구잡이로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그의 흥분이 가라않지 않는다. 그가 할 수 있는 온갖 욕을 해 흙과 나무에게 화풀이를 했다. 미친 듯 절규하고 엎드린 자세에서 땅을 두 손으로 내리쳤지만 흥분은 금세 통곡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는 다시 일어나 나뭇가지를 꺾어서 나무에게 매질하고 일그러진 얼굴과 눈물이 범벅된 눈을 하고선 산이 떠날 갈 듯 괴성을 질렀다. 하지만 제풀에 힘이 빠졌다.

절망했다. 도저히 이 산을 떠날 수 없다. 이 산은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다. 이대로 가다가 죽는다. 왜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거야.

그는 한 동안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앉아있다. 그의 주머니에서 피우다만 꽁초가 나왔다. 그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독한 담배가 그의 가슴으로 파들어 갔다. 령주를 생각하고, 자신이 하던 일을 생각했고, 한동안 좋았던 과거를 생각했고,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생각했다. 담배를 끄고 말없이 절망도 희망도 없이 산을 내려갔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수 없는 밤을 산에서 보내고 해가 뜨면 무조건 내려갔다.

그렇게 일주일을 초연하게 산을 내려오던 그는 더 이상은 걸음을 옮기지 않고 주저앉았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한 곳에 망부석처럼 그가 결코 갈수 없는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아무런 희망도 없이 한 자리에 고인 썩어가는 물처럼 시간은 정지했다. 느낌도, 생각도, 희망도, 절망도, 갈망도, 귀소본능도, 마음도 송두리째 사라져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이 지긋지긋한 것을 끝내고 싶었다. 더 이상 갈 곳도 없다. 벗어날 곳도 없다. 눈을 뜨면 산이고 눈을 감으면 또 산이 있었다. 그에게는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다. 이쯤에서 끝내자.

산 아래를 보니 한적한 국도를 지나가는 자동차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그대로 간다면 집으로도 갈 수 있을 텐데....... 조금한 성냥갑이 지나간다. 뱀 꼬리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뱀의 머리는 보이지 않는다.

끝내자. 마지막 길을 선택하는 거야.

갈수 없는 곳을 나는 간다. 그는 절벽에 몸을 던졌다.

한 동안 잘 내려갔다. 그가 가고 싶었던 길을 가는 것처럼 잘 가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때 배가 고팠다. 절벽 중간에 외롭게 솟아 있던 나무에 아슬아슬하게 몸이 걸려있었다. 그는 자신이 산 것을 알았다. 바람이 붉어와 나뭇가지는 흔들렸다. 조금만 더 내려갔으면 성냥갑이 다니는, 자동차들이 다니는 도로가 있다. 대략 20미터쯤.

절벽은 큰 바위로 되어있었고 그 가운데 나무가 한그루 외롭게 서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위에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고 소리 질렀다. 사람 살려. 차들은 빠르게만 지나가고 있었다. 그의 사람 살려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차들은 더욱 속력을 내어서 달렸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가웠다. 20미터만 내려가면 지상이다. 나무에서 간신히 내려와서 아래를 보았다. 경사가 너무 가팔라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비탈을 타고 미끄러져 가려고 시도를 했지만 시도로만 그쳤다.

나무 옆에 조금한 틈으로 길이 나있었다. 옆으로 간다면 적당한 내려오는 길이 나올 것이다. 그는 절벽의 틈새로 이루어진 길을 타고 산의 숲으로 들어갔다.

그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뛰어 내렸던 절벽 옆에 놓았던 배낭이 그곳에 있었다. 절벽으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20미터 아래에 있어야할 국도가 400미터는 되 보였고 그 아래 푸른 점으로 기암절벽 가운데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 나무 옆을 타고 왔을 뿐인데.......

그는 더 이상은 상심하지 않는다. 이 곳은 산이 아니다. 이 곳은 지옥이다. 나는 죽었다. 하지만 배가 고프다. 죽고 나서도 이렇게 배가 고플 수 있을까? 이 산에 도착해서 일주일 동안 조금씩 먹던 도시락을 마지막으로 먹은 지 3일전이었다. 그나마 바나나 반 토막이었다. 새 모이를 먹듯 아껴서 먹었던 것이다. 배속 안의 위장이 삼킬 것이 없어서 다른 장기들을 삼키는 것 같다. 필요 없는 장기를 생각해보았다. 폐는 숨 쉬는 데 필요하고, 간은 해독 하는데 필요하고, 소장은 음식물을 소화하는데 필요하고.......먹은 음식이 없으니 소장과 대장은 필요 없을 것이다. 그것을 꺼내서 곱창구이를 먹어야겠다. 그는 아랫배를 만져 보았다. 하지만 소장과 대장을 먹고 나면 자연히 소장을 지나서 대장으로 나올 텐데.......

산에는 온갖 동식물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식물은 어떤 것은 독이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을 먹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동물을 잡아서 먹자니 이주일 동안 새 모이 같은 것만 먹고 산을 해매 지친 몸으로는 무리였다.

3월 중순이라서 새싹들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산을 따라서 헤맸다. 풀들과 나무는 많은데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몰랐다. 아무거나 먹었다간 산에서 죽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는 어디선가 들은 듯한, 말이 생각났다. 이른 봄에 나오는 새순은 먹어도 지장이 없다는 말이 무심결에 생각이 났다. 땅위에 보니 손톱만한 새순이 많았다.

그는 그것을 닥치는 대로 뽑아 먹었다. 단것도 있고 쌉싸름한 것도 있었다. 밥과 고추장만 있으면 새싹 비빔밥을 해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지난 이주일 동안 밥다운 밥은 먹지 못해서 더욱 흰 쌀밥이 먹고 싶었다.

그가 산에 와서 성공 한 게 있다면 담배를 끊은 것인지 끊어진 것인지 아무튼 그랬다. 그는 담배에 대한 생각은 사라진지 오래였고 오직 배가 고플 뿐이었다. 그의 시야에서 굵은 뿌리가 포착되었다. 새싹들을 먹는 것은 집어치우고 땅에서 삐져나온 그 뿌리를 돌로 쳐서 자른 다음 바지에 비벼서 흙을 닦았다. 한입 베어 물고 보니 썼지만 먹을 만했다. 칡은 흙을 덮고 자면서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처음엔 손으로 튀어나온 부분을 주변으로 맨손으로 헤집었으나 손가락만 아플 뿐 효과적이지는 않았다.

앞이 뾰족한 돌로 땅을 갈아댔다. 칡의 주변을 돌로 찍어서 땅에 돌집을 내기를 수 십 차래 한 다음 흙을 퍼냈다. 그러길 2시간 반 만에 자신의 다리 길이만한 칡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올라가니 산위에서 흐르는 물길이 있었다. 자갈들이 산에서 내려오는 시내물의 가장 자리에 무수히 담을 이룬 듯이 있었고 그의 발목까지 물을 들어차 있었다. 희고 매끈한 자갈을 집어서 흐르는 물에 칡에 묻은 흙을 비벼댔다. 그가 보아도 이틀 분의 끼니는 해결 하듯 싶었다. 잘 하면 사일을 먹을 것 같았지만 듯 밖에 횡재에 산에는 먹을 것이 지천으로 있을 듯해 짐승처럼 칡을 먹어치웠다. 소태처럼 썼지만 사흘을 굶어서인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썼는지 냇물에다 주둥이를 대고 퍼마셨다.


어느덧 진달래, 개나리 같은 봄꽃이 한창인 봄이 되었다. 그의 얼굴엔 덥수룩한 수염이 자랐고, 머리카락은 귀를 덮었고, 산은 그의 보금자리가 되어 갔다. 푸른 줄기의 흰 꽃이 열린 개별꽃, 줄기에 회백색 털이 난 분홍 꽃인 갯장구채, 꽃대의 흰색 털이 난 노루귀, 꽃받침이 여러 개 있는 꿩의 바람꽃, 개나리, 진달래가 있는 꽃밭에서 그는 하늘을 보고 누워 있었다.

이 산의 밑으로 동쪽으로 가면 들판에 개나리가 한창을 이루었고 진달래, 들바람꽃, 조금한 꽃잎으로 물들였다. 개나리와 진달래를 빼고는 너무 작아서 군집을 이루지 않는 이상 보이지 않던 꽃들이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고 있다.

그는 잠깐 졸았는지 입가엔 침이 흐르고 흰 구름은 빠른 속도로 새끼를 치듯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고 있다. 그는 일어나서 진달래를 따먹었다.

령주는 잘 있을까?

그의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들어찼다. 령주는 임신을 했을 거야? 생각은 발전 되었다. 그 얘는 누가 키우지? 해답은 뻔했다. 생과부 령주가 키우는 수밖에....... 그는 꽃밭에 누어서 지나가는 구름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아빠가 이름을 지어줄게? 너는 산이야. 전산. 그런대 아이는 내 애인가?

그는 허겁지겁 진달래를 먹었던 자신의 입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손가락은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보라돌이가 얘 아빠는 아니겠지. 그는 꺼어꺼어 웃어댔다.

지난 7년 동안 아이를 가지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지만 피임다운 피임도 하지 않았다. 자신은 씨 없는 수박인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 많은 밤을 보냈지만 아이는 생각도 없었고 흔적도 없었다. 그런대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해에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아빠도 닮지 않고 엄마도 닮지 않은 아이는 해말게 그를 보고 웃었다. 아이는 눈부실 정도로 해말았다. 령주는 그런 여자가 아니야. 그렇다고 장담 할 수도 없다. 그는 령주만 생각 하지만 그녀는 그를 잊었을 것이다.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서 나는 그동안 얘를 가지고 싶었어요. 근데 당신을 만나는 순간 내 배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아니야, 아니야. 그는 또다시 진달래를 물어뜯었다. 산을 단숨에 내려가서 그놈을 요절내고 싶었지만 다시 누어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이는 이제 그만 이라고 말했다.

그는 들판의 예뿐 꽃들을 하나하나 꺾었다. 령주의 어머니는 꽃을 키우는 것을 좋아 한다고 령주가 말한 적이 있었다.

령주는 사과를 깎으면서 껍질을 꽃처럼 말았다. 정말 향기가 나는 맛있는 꽃이었다.

장모님이 좋아하실지 모르지만 들꽃이랍니다. 좋아하실지 모르지만은 소심한 표현이야. 령주는 참견을 했다.

장모님, 아름다운 들꽃을 바칩니다. 그렇데 장모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 순간 령주의 눈치가 보였다. 장모를 장모라고 불러도 좋을지 망설여졌다.

자기가 아직까지 그러니 엄마가 자기를 싫어하는 거야.

그렇데 령주의 어머니는 말이 없다. 그녀는 아직도 김밥을 말고 있었다. 어머니라고 자꾸 불러도 김밥만 말고 있다.

들꽃을 꺾으면서 령주와 마지막 통화가 생각났다. 엄마가 한번 보제? 어머니, 이제 아이도 가졌습니다. 그의 팔엔 햇살을 듬뿍 담긴 아이가 해말게 웃고 있었다. 제가 산에 있는 동안 어머니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제 이렇게 아이도 데리고 왔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보자고 한 이유가 이 애 때문인 것을 알고 이렇게 왔습니다. 그 아인 네 애가 아니야. 거센 바람이 불어서 그가 팔에 안고 있던 들꽃들은 산산이 날아갔다.

그는 그가 기거하던 동굴로 갔다. 그곳에서 눕자 몸은 조금씩 열꽃이 피어올랐다. 식은땀이 흐르고 몸이 떨려 왔다. 그는 삼일 동안 자리를 보전 하고 누었다. 고열이 나면서 아프고 혼자서 이 산에 있다는 생각에 외롭고 서러웠다. 아이 생각을 하자 더욱더 열이 심해졌다. 있지도 않은 아이 때문에 그는 서럽게 울었다. 울음을 그치자 몸은 나아졌다.

산 밖의 자신은 잃었다. 오직 산에서의 자신만 있을 뿐이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기가 먹고 싶었다. 노루가 되었던지, 새가 되었던지, 아니면 토끼고기를 먹겠다고 생각했다. 라이터가 아직 있으니 구워 먹으면 된다. 물고기가 잡기 쉬울지 모른다. 아니야, 고기가 먹고 싶다. 그 동안 먹던 칡은 질린다. 더덕도 도라지도 구워서 먹었지만 고기가 먹고 싶다.

하지만 그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 이곳에 익숙해진 것이다. 이곳은 그의 집이다. 아무도 찾지 않지만 아무도 안 만나도 된다.

초식만으로 끼니는 해결 할 수 있다. 고기를 잡으려면 뛰어야 하고 신경을 곤두 세워야 한다. 귀찮다. 초식만으로도 만족한다. 더 욕심을 부려 보아야 힘들기만 할 뿐이다. 그렇다고 고기에 대한 그의 욕심이 사라진 건 아니다. 해 보아야 안 될게 뻔하다. 토끼를 잡는다고 치자. 토끼는 사람보다 빠르다. 발이 네 개나 달렸으니 뛰어도 사람보다는 빠를 것이다. 그리고 야생 토끼를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 아니 한국의 산에는 아예 없을 지도 모른다.

그는 굴에 누어서 토끼를 생각했다. 토끼는 귀가 길다. 자신이 다가가면 두 귀로 탐지해서 도망 갈 것이다. 토끼 굴을 찾기만 한다면 도망 갈 때가 없는 토끼는 금방 잡힐 텐데. 토끼 한 마리를 잡아서 먹는 거야. 아니야, 토끼를 키워서 여러 마리로 불린 다음 먹고 싶을 때 먹는 거야.

그는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만족했다. 초식만으로도 많은 것을 먹을 수 있는데 괜히 고생을 할 필요가 느껴지지 않았다. 편하게 살고 싶었다. 여자가 보고 싶을 때는 밤에 령주를 생각하면서 수음을 하면 되고, 고기가 먹고 싶을 때는 더덕으로 만족을 하고, 친구와 대화를 하고 싶을 때는 과거의 장면을 생각하면서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상상하면서 대화하면 된다.

자고 싶을 때는 산의 어디에서 라도 자면 되고, 인터넷을 하고 싶을 때는....... 그런 때는 없었다. 인터넷이야, 라디오야, 텔레비전이야, 스포츠 신문이야, 만화야 그런 것들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래도 듣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고, 축구 한 일 전도 보고 싶다. 월드컵도 보고 싶다.

그는 세상과 단절이 되었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서 자신만의 놀이를 즐기게 되었다. 처음엔 산새들에게 몰래 다가가 놀래게 하고 조금 있자니 새들에게 돌을 던지는 놀이를 하였다. 처음엔 재미있었지만 그마저 시들해졌다. 새들의 반응은 한 결 같이 도망을 치는 것이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생활은 낯 동안은 먹이를 찾아 산을 누비고 밤이 되면 굴로 돌아와서 혼자 과거를 회상해 보았다.



여름이 되었다. 그의 증세는 심해졌다. 밤에는 늦게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온 산을 누비며 돌아다녔다. 동쪽으로 가면 나무가 적은 비교적 평지가 나오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산새가 험한 곳이 나온다. 절벽도 보이고 가파르게 꺾어지는 계곡도 보인다. 서쪽으로 가면 온 갓 식물들이 판을 치는 우림이 나오고 낯에도 해가 보이지 않는다. 북쪽으로 가면 온통 황토와 바위뿐이었다. 그는 다가보지는 못했지만 해가 떠있을 동안은 많은 곳을 싸돌아 다녔다. 그곳들에서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채집하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새알도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증세가 심해졌다. 밤이 되면 굴로 돌아와 인간들과 대화를 하느라 밤새는 줄도 몰랐다. 낯에는 자신은 사회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차마 밤에 하는 짓은 하지 못했지만 그의 증세는 심해졌다.

나 왔어.

내가 얼마나 기다려는 줄 알아. 오늘 싼 새 옷 어때. 모피 코트야.

깜깜해서 안 보여.

백화점에서 세일해서 반값이야.

안 보인 다니까.

검은 색이라서 당연히 안보이지. 털을 만져봐.

안 만져 지는데.

가까이 와야지.

어디.

여기.

어디.

좀 더 가까이 와.

동굴이라서 자기가 안보여.

그는 상상 속에서 령주와 밤새도록 숨바꼭질을 하였다. 령주는 그에게 새로 싼 속옷도 보여주고, 하루 동안 굴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해주었다. 박지성이 골을 넣는 것 자기도 보아야 하는 건데. 굴에는 TV가 없잖아. 없긴 왜 없어 깜깜해서 안보일 뿐이잖아.

아침이 되면 령주는 출근을 하고 없었다. 자신도 산으로 출근을 했다. 밤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오면 령주의 어머니가 있었다.

자네 왔는가.

네, 어머니. 어디 계세요. 깜깜해서 안 보여요.

굴에다 형광등을 달지....... 자네는 그 모양이라서 내가 자네를 좋아할 수 없는 거야.

형광등을 어디서 구하죠?

전파상.

이곳은 산인 데요.

다음날은 친구들이 왔다. 그 다음날은 회사 동료들이 찾아왔지만 그들은 볼 수 없었다. 산의 어디에서도 형광등은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즐거웠다.

즐거움도 잠시 령주가 애를 데리고 가출을 했다. 깜깜한 밤 북쪽의 온통 바위와 황무지뿐인 곳을 헤매다 굴에 도착해서 그가 보았던 것을 설명 하고 싶었다. 그의 말을 들어줄 사람은 갓난아기도 아니고 령주뿐이었다. 이 산에서 오직 령주만이 그의 상대였다. 외로움을 달래주고 기쁨도 나누고 하였다. 그건 산에서 뿐만 아니라 산에 있기 전의 그의 집에서도 마찬가지 이었었다. 그런 령주가 애를 데리고 가출을 했다. 굴에 들어가서 아무리 불러도 굴에 자기의 목소리만 메아리 칠뿐 동거녀의 목소리와 아기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허둥지둥 암흑 같은 굴을 더듬었지만 그녀는 아기 기저귀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는 령주의 실종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산에 와서 한 번도 그녀의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그는 깜깜한 밤에서야 굴로 돌아오고 아침이 되면 령주는 출근을 하였기 때문에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여자의 품이 그리워 만지려고 하면 령주는 달아났다. 그래도 그는 그녀를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을 아직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가출을 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 뿐인 자신의 사람을 찾으려 산을 헤매다.

동쪽으로 갔을 거야. 그는 들판을 가로지르면서 령주가 갔을 곳을....... 그녀가 가고 싶은 곳을 찾아다녔다. 그는 밤이 되면 동쪽의 들판에서 보았던 꽃 천지의 들판을 말해주었다. 그러면 령주는 가만히 들고 있었다. 그는 그가 본 바람꽃, 날개하늘나리 등을 틈만 나면 얘기주면 그녀는 그것을 상상하는듯했다. 들판의 꽃이 많은 곳으로 그녀가 보고 향기를 맡았을 곳으로 가보았다. 조금한 언덕을 지나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자연이 만들어 준 지상낙원이 나온다.

그는 뛰었다. 령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한 그는 많은 곳을 찾아다녔다. 들판에는 듬성듬성 나무도 있었기에 탁 트인 곳이지만 숨을 곳은 충분했다.

멀리서 보려면 령주가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을 알아야한다. 지평선이 보이는 곳까지 꽃들이 만발한 들판을 그는 정신을 잃을 체 뛰어다녔다. 만발한 꽃들 때문에 령주는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 왔다. 거세게 치는 바람은 꽃잎을 종잡을 수 없게 사방을 날리게 하였다. 천지는 꽃잎들의 홍수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그의 시야를 가렸다.

소리 질렀다. 령주야 어디 있어. 귀에 바람 소리만 들릴 뿐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한 가지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처음부터 령주는 없었다. 이 산에는 아무도 없다. 령주의 어머니도, 친구들도, 동료들도 그들은 그에게서 말없이 사라졌다. 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었다. 아무도 그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더욱 보고 싶어졌는지 모른다.

이젠 아무도 그를 찾지 않는다. 그들을 기다리기 위해서 낯이고 밤이고 굴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령주는 돌아올 것이다. 밤이 되고 다시 아침이 밝아 오고 시간이 지나면 그녀는 말없이 돌아와서 전처럼 그에게 말을 걸 것이다. 쉼 없이 재잘 대면서 그를 기쁘게 할 것이다.

아기는 잘 있을까? 그녀가 아기를 업고 가면서 이 산을 나가지는 못 했을 것이다. 그도 이 산을 내려가려고 많은 시도를 했지만 결코 갈 수 없었다. 령주는 이 산을 헤매고 있을 거야.

그녀를 찾는 동안 가을이 되었다. 그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이 산은 가도 가도 새로운 것이 펼쳐지기만 할 뿐 한 번 본 것은 다시 보이지 않았다. 아니다. 그가 보았던 배낭을 빠트렸던 계곡은 전에도 보았다. 하지만 그것 한번 뿐이었다.

그는 그곳으로 다시 가보았다. 정상에서의 기억을 더듬어 계곡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위쪽의 계곡을 찾아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그런 계곡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다음 굴로 돌아왔지만 배낭을 빠트렸던 계곡 위에는 반드시 똑같은 계곡이 있어야 한다.  

그러는 동안 가을이 지나고 온통 산위에 눈이 덮여서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들었지만 그의 집념은 계속 계곡을 찾아 헤맸다. 추위와 굶주림은 잠시 어느새 새봄이 그를 맞이했다. 겨울 동안 그는 산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흰 눈이 덮인 산은 길을 찾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길은 눈에 파묻혀 산 짐승들의 발자국으로 다닐 만한 길을 알 수 있었다.

계곡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정상 까지 수 십 번을 오르기를 7년이 지났다. 그 동안 그는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그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 그의 마음속의 난 길은 아무런 해답도 주지 않았다. 령주도, 아기도, 령주의 어머니까지도 그를 찾지 않았고 그에게 해답이 될 수 없었다.

이 산에서는 길을 찾았지만 그의 마음속의 길은 그가 떠나올 때보다 한 층 더 찾을 수 없었다.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산을 내려 갈 수도 없었지만 정작 이산을 벗어나서는 더욱더 헤맬 것 같았다. 이 두려움과 외로움은 평생을 가지고 가야 할 것 같았다. 누군가를 만나야지만 해결될 것 같았다. 그는 계곡을 찾아다녔다. 이 산에서 그가 다닌 길은 전부였다. 계곡은 없었지만 그것을 포기 하지 않았다. 산은 산대로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생각 되었다. 그 동안 자랐을 것이라고 생각된 아기도, 령주도 그의 마음에서는 선명함은 사라지고 흔적만이 남고 오직 계곡만이 그를 사로잡았다.

정상에서 내려 왔던 최초의 길을 찾았지만 계곡이라고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찾았고 또 찾아 헤맸다. 나중에는 무엇을 찾는지도 모르게 찾는 것에만 집착을 했다.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그가 찾아 헤매는 것이 보일 때까지 그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그의 마음은 하나가 되었다. 그가 산을 찾기 전까지의 그의 마음처럼 마음은 하나가 되었다. 그것을 찾자. 근데 왜 이 산을 찾았을까? 그는 처음에 마음먹은 것을 생각해 보았다. 새로운 것을 찾는 다고했다. 처음엔 담배도 끊고 새로운 곳을 가려고 다짐하기 위해서 산을 찾았다. 산에 가면 새로운 것이 그의 마음속에 떠오를 것 같았다. 산에 오르는 것은 마음을 비우고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함이었다. 위험을 감수 하더라도 새로운 것을 찾겠다는 의지였다.

꿈에 7살 난 그의 아들이 나타났다. 전산은 아버지의 이름을 불렸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굴에서 조차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 그도 아들의 얼굴을 본적이 없었다. 그의 어릴 적 잃어버린 여동생이 아들을 데려가고 있었다. 꿈은 여러 날 그를 애타게 만들었다. 그는 가출한 령주와 아들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산을 내려갔다.

그게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으나 꿈속의 목소리는 생생했다. 7년이란 세월을 산에서 보냈다. 지긋지긋한 산을 벗어나서 집으로 가자.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 왜 산을 내려 갈수 없는 것일까? 7년의 세월 동안 그는 온 갓 힘을 다해 산을 내려갔지만 헛수고였다. 이 산은 도저히 내려 갈 수 없는 산이다.

바람이 불었다. 그의 앞으로 오래된 신문 하나가 떨어졌다.

-고아원 뒷산에서 실종된 5살 꼬마, 매장된 체 발견.

그와 어린 여동생은 고아원에서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체 살았다. 남매는 사이좋게 지내면서도 아버지가 버린 게 여동생은 오빠 탓이다. 그는 너 때문이다. 라고 서로를 미워 할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여동생을 데리고 고아원 뒷산으로 데려 갔다. 남매는 산에서 길을 잃어 버렸다. 한 참을 해맨 끝에 길을 찾았지만 여동생은 실수로 구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그가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었지만 그에게 좋은 생각이 났다. 그는 그대로 발버둥 치는 여동생의 머리위에 흙을 던졌고 고아원으로 내려갔다.

여동생의 소식이 신문에 나면 아버지는 찾아와서 자신을 데려 갈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7년을 기다린 끝에 고아원 뒷산에서 매장된 여동생의 시신이 발견 되었다. 이것이 그를 산이 놓아주지 않은 이유다.

바람이 불어서 신문지는 다시 정처 없이 날아갔고 그것을 잡으려 다녔다. 어느 작은 돌무덤 앞에 신문지가 떨어졌고 그 무덤엔 그의 동생이 잠든 곳이었다.




돌아왔을 때 그를 반겨준 것은 빛 독촉장이었다.

“산에 빚을 졌으니 갚으시오.”


jjfi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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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 단편 황금빛 추억1 김진 2011.09.24 0
387 단편 리무버4 gozaus 2011.09.22 0
386 단편 글레바력 13세기 hallyeia 2011.09.26 0
385 단편 거미에게 나비를 모베 2011.10.01 0
384 단편 뼈의 발견자 Mothman 2011.10.03 0
383 단편 장미 행성 Mothman 2011.10.03 0
382 단편 화장터 목이긴기린그림 2011.10.03 0
381 단편 질식 김진 2011.10.04 0
380 단편 오덕후 김박사의 위업 OMB-J2 2011.10.10 0
379 단편 [엽편]피리 명인2 먼지비 2011.10.09 0
단편 괴 산 전광용 2011.10.06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