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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폐허로 만들어진 성

2011.09.14 17:2209.14

유령이 나온다는 장소는 상당히 많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고, 한 나라 안에서도 유명한 곳을 꼽으려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그런 장소들은 하나같이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심령 스폿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머무르고 있는 성은 드물게도 최근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그것도,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유령의 모습이 지극히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으로 말이다.

리비우스 백작가 대대로 상속된 광활한 영지의 구석진 곳에 넓은 호수가 하나 있다. 숲으로 둘러싸인 이 호수의 주변에는 작은 성 하나가 세워져 있다.
언제 누구에 의해 세워진 성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성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다. 심지어는 영주인 리비우스 가문 사람들도 수십 년 전까지는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다. 워낙 외딴곳에 자리 잡은 데다 근방에 관심을 끌 만한 것이 자연경관뿐이었기 때문이다.
근래 들어 리비우스 가문이 관광업에 손을 대면서 방치된 호수를 찾게 되었는데, 그제야 처음으로 성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는지 겉보기에는 도무지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조사결과 의외로 튼튼하여 약간의 보수만으로도 쓸 만해질 것으로 확인되어 호텔로 개조되었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통칭 리비우스 성은 좋은 휴양지 중의 하나로 알려진 평범한 성이었다.
리비우스 성이 유명해진 것은 호텔 영업을 시작한 지 10년이 조금 지나서였다.
당시 호텔을 경영하던 가이우스 C. 리비우스의 절친한 친구였던 어느 역사학자는 리비우스 성에 대해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작은 성이라고 해도 꽤 커다란 건축물이다. 짓는데 많은 인력이 동원되고, 거기에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장인도 포함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성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이 전혀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발견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리비우스 가문의 영지에 전쟁이나 화재 등이 닥쳐서 기록이 소실된 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롯이 전해져 내려오는 기록들 사이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성의 등장은 역사학자의 호기심에 불을 붙였다.
성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영지의 곳곳을 조사하던 역사학자는, 성에서 그나마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에서 쫓겨난 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13세기 무렵에 리비우스 가문은 자신들의 왕을 배반하면서 영지를 당시의 적이었던 코르넬리우스 왕가에 헌납하였다. 왕가는 전향에 대한 보상으로 다시 그것을 리비우스 가문의 영지로 하사했다. 그 이후로 리비우스 백작령은 역사에서 잊혔다. 워낙 외진 땅이라 전쟁터가 될 일도 없었고, 리비우스 가문 역시 자신들의 영지보다는 수도로 터전을 옮겼기 때문이었다. 그 후, 16세기 무렵에 리비우스 백작령이 다시 등장하게 된다.
당시의 왕인 마리우스 N. 코르넬리우스에게 늦둥이 외동딸이 있었다. 이름은 잊히고 그저 코르넬리아라고 불리는 그녀의 아름다움은 다른 나라에서도 유명할 정도였으며, 마리우스 왕은 이웃 나라의 왕자에게 그녀를 시집보낸다.
하지만 왕자는 결혼 1년 만에 사망했다. 사냥하다 낙마하면서 입은 상처가 심해졌기 때문이었다. 마리우스 왕은 돌아온 코르넬리아를 자신의 나라에서 가장 세력이 큰 공작에게 다시 시집보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공작은 전쟁터에서 오른쪽 눈에 화살을 맞고 목숨을 잃었다. 코르넬리아 공주의 두 번째 남편인 공작의 뒤를 공작의 동생이 잇게 되었으며, 공주는 다시 왕가로 돌아왔다.
마리우스 왕은 계속해서 공주를 시집보냈다. 하지만 공주와 결혼한 사람은 모두 1년이 지나 죽음에 이르렀다. 더는 아름다운 공주와 결혼하고자 하는 사람은 없었으며, 왕 자신도 공주에 대한 두려움을 품게 되었다. 여러 차례에 걸친 조사로 공주에게 악마가 씌었거나 공주 자신이 흑마술을 사용하여 남편들을 죽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코르넬리아 공주는, 죽음의 저주를 몰고 다닌다는 오명을 얻은 채, 가장 외딴곳인 리비우스 백작령으로 추방되었다. 이후, 더는 공주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역사학자는 코르넬리아가 유배된 곳이 리비우스 성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코르넬리아 공주와 리비우스 성에 대한 공식적인 문헌이 남아 있지 않은 이유는 죽음의 저주에 대한 부정을 탈까 두려웠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물론 민간설화 하나를 바탕으로 그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에, 학계에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이우스 리비우스 백작은 역사학자가 찾아낸 설화를 성을 소개하는 책자에 담아 발행했다. 아무런 기록도 없는 성보다는 뭔가 얽힌 이야기가 있는 성이 인기가 있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책자가 발행되어 널리 알려진 이후, 리비우스 성을 찾는 사람이 조금 더 늘어났다. 그리고 유령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처음으로 유령을 목격한 것은 키가 작고 안경을 쓴, 뚱뚱한 남자 손님이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한적한 곳을 찾다가 이 호텔을 찾게 된 분이었죠."
리비우스 백작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통 유령이 나타난다는 식의 흉흉한 소문이 돌 경우, 될 수 있으면 그런 소문이 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령이 나타난 다음부터 투숙객의 수가 거의 두 배로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오는 일도 잦아졌고.
"정말 놀랐습니다. 유령을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혹시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이 호텔은 저희 가문에서도 자주 이용하거든요. 뭐, 지금은 그런 생각이 기우였다고 생각합니다만."
유령을 목격한 다음 날 아침에, 뚱뚱한 남자 투숙객은 호텔 측에 그 사실을 알렸다. 초췌한 몰골로, 하지만 흥분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목격담을 털어놓는 그의 말을 들은 호텔의 지배인은 백작에게 연락을 취했고, 그날로 백작은 호텔로 돌아와 유령을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령이 자주 나타나는 곳이라고 해도 좀처럼 유령을 직접 목격하기는 어렵다. 백작은 유령을 찾을 때까지 몇 주일은 머무를 생각으로 호텔로 돌아왔었다. 하지만 의외로 유령은 금세 나타났다. 전날에 유령을 목격한 남자와 같은 객실에서 함께 기다리던 백작은, 돌아온 그날 밤에 유령을 만날 수 있었다.
"그때는 정확한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웠습니다. 희끄무레한 물체가 스윽 하고 나타나 가만히 서 있는데, 일단 사람은 맞는 것 같았죠. 그런데 그 손님은 그 유령이 이 성에 유배되었던 공주의 유령이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주장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공주의 유령이 아닐까 싶더군요.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은, 가녀린 여성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유령 목격담이 점점 늘어났다. 유령이 나타나지 않은 날도 있긴 했지만, 거의 매일같이 성의 곳곳에서 유령이 목격되었다. 어느 날은 정원에서, 어느 날은 식당에서 유령이 모습을 드러냈으며, 복도를 지나가거나 객실에 들르는 일도 있었다.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지 사람들이 모여들면 이내 사라져버렸지만, 장기 투숙객이라면 누구나, 단기 투숙객이라도 운이 좋으면 한 번쯤은 유령을 만나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선명한 모습으로 나타난 건 처음이군요."
눈앞의 유령은, 우리가 있다는 건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듯이, 천천히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표정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게 실체화된 유령의 모습에 놀란 백작이, 마치 높은 신분의 사람 앞에서 소란을 피울 수는 없다는 듯이, 감탄을 눌러 참는 듯한 신음을 흘렸다.
유령을 찾아서 이 성에 오기는 했지만, 나도 이렇게 선명한 모습의 유령을 목격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시녀까지 거느리고 있으리라고는……."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다른 유령을 보는 것은 저도 처음입니다. 이거 경사스러운 일이군요. 유령이 늘어나다니."
공주만큼 선명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공주의 뒤를 따르는 또 다른 유령이 있었다.
공주와 시녀는 이내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조심스레 쫓아가 봤지만 그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백작을 따라 응접실에 들어갔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자, 백작이 입을 열었다.
"선생을 초대한 이유가 뭔지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선생의 글을 읽은 뒤에, 이 일을 맡기기에 가장 적합한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홍보용 소설을 써달라는 말씀이시군요."
백작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홍보용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군요. 제가 바라는 건, 그저 이 성과 유령을 소재로 한 글을 써보시는 게 어떤가 하는 것입니다. 선생의 팬이자 흥미로운 소재의 주인으로서 말입니다. 뭐, 그 글이 출판되면 어느 정도의 홍보 효과는 있겠죠. 하지만 피라미드를 소재로 한 글이 피라미드를 홍보하는 글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이러나저러나 같은 얘기지만, 굳이 거부할 생각은 없었다. 주로 로맨스 소설을 써왔지만, 유령에 대한 관심도 적지 않다. 게다가 고풍스러운 성에 나타나는 공주의 유령이라니.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여기에 머무르시는 동안 가능한 모든 편의를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팬으로서의 서비스라고 생각해주십시오. 선생은 그저 이 성에 머무르면서 글을 써주시면 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얼마나 걸리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머무르는 동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기뻐하는 백작과 악수를 한 뒤, 나는 배정받은 객실로 돌아왔다.

"어……. 그러니까 그냥 보통 사람들이 떠올리는 공주의 모습 있잖아요? 코르셋으로 허리를 잔뜩 조이고, 비싸 보이는 드레스를 입은 묘령의 여인 말이죠. 그런 모습이었어요."
"다른 특징은 없었습니까? 이를테면 어떤 디자인의 옷이었다든지, 무슨 장신구를 했다든지……."
"그런 쪽으로는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군요. 봤어도 뭔지를 못 알아볼 테니 말이죠."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대답하는 투숙객에게 인사를 하고는 객실에서 나왔다. 지금 성에 머무르는 투숙객 중에서 유령을 목격했다는 사람들을 모두 인터뷰했지만, 쓸 만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사람마다 증언이 조금씩 다르기도 했고, 정확하게 목격한 사람이라고 해도 특징적인 무언가는 없었다는 말만을 했을 뿐이었다. 여성 투숙객은 장신구나 의복에 대해 좀 더 세밀한 부분까지 목격했었지만, 마찬가지로 증언에 공통점은 별로 없었다. 탐문조사로는 정확한 자료를 얻을 수 없을 것 같아, 백작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떻게 글은 잘 쓰고 계십니까?"
백작을 찾아가자, 그가 반기며 맞아주었다. 하지만 내 말을 들은 그의 표정은 그렇게 밝지는 않았다.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글을 쓰고 싶어 하시는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유령 이야기라는 게 입소문이나 미신 같은 것으로 이루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그냥 원하시는 대로 써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아무 이야기나 쓴다면야 그렇게 해도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경치 좋고, 분위기도 좋고, 조용하기까지 하니, 글쓰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쓴 글을 보고 이곳을 찾게 되는 사람들이, 제가 글을 쓴 뒤에 이 성에서 발견된 사실과 다른 부분을 알게 된다든지 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가급적이면 최대한의 편의를 봐 드리겠습니다."
이 부탁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되었다. 상당히 무례한 부탁이 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상세한 자료가 필요했다. 자료수집 단계에서 막혀서, 몇 날 며칠이고 투숙객들에게 목격담을 들으면서 보내느라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상황은 백작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성의 열쇠를 좀 빌려주십사 합니다."
"열쇠라뇨?"
"성의 정문에서부터 지하 깊숙한 곳의 비밀창고에 이르기까지, 성 안의 모든 곳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성이 폐허가 되기 이전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 남긴 흔적을 무엇 하나라도 찾아보려면 말입니다."
"그런 거라면 굳이 직접 찾아다니실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선생도 아시다시피 성의 1층 전시관에 이 성에서 발견된 모든 유물이 진열되어 있잖습니까. 이미 곳곳을 다 찾아본 뒤라 남아 있는 것이 없을 테고, 설령 뭔가 있더라도 눈에 띄지 않을만한 것들……."
"바로 그겁니다.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유물. 이를테면 여성의 장신구 같은 것 말이죠. 반지나 귀걸이, 아니면 목걸이의 파편이라든지 말입니다. 지금까지의 목격담을 조합 해봐도 유령의 구체적인 모습을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유령이 나타난다.'라는 것만이 필요하다면, 뭐, 유령의 모습 따위 아무래도 상관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글을 쓰려면, 특히 특정 인물로 추정되는 유령에 대해 묘사를 하려면 구체적인 사항이 필요합니다. 상상으로 때워버리면 다른 사람들이 실제로 목격하면서 이질감을 느껴버리게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저 자신도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어 제대로 된 글을 쓰기가 어렵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서로 다른 증언을 바탕으로 글을 쓰기는 무리입니다."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생각을 좀 해봐야겠는데……."
그는 양손으로 이마를 덮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더니, 그대로 손을 내려 눈가와 관자놀이를 지압했다. 그는 손으로 눈을 가린 채 말했다.
"솔직히 가문 외의 사람에게 성의 구석구석을 공개하는 것은 꺼려지는 일입니다. 지금이야 이 성이 가련한 공주가 머물렀던 성이라고 알려졌고, 저 자신도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면? 우리 가문의 명성에 누가 될 수도 있는 내력이 있었고 그게 선생에 의해 발견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저는 선생을 믿고 존경하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호텔 경영에 차질이 생기는 정도가 아니라, 가문의 명성에 관련된 일이니까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자세하게 조사를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합니다만…….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결심이 생기면 선생께 말씀드릴 테니, 조금 기다려주십시오."
나는 백작에게 인사를 건네고 방에서 나왔다. 백작은 다시 얼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아까처럼 습관적인 행동이 아니라,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백작에게서 다시 연락이 온 것은 사흘이 지나서였다. 나를 데리러 온 직원을 따라 백작의 접객실에 들어서자, 처음 보는 남자가 백작과 마주앉아있었다.
"오, 선생. 어서 오십시오."
백작과 그 남자가 일어나 나를 맞았다. 나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쪽은 제 오랜 친구인 비텔리우스입니다. 저번에 선생께서 했던 말을 듣고 나서, 곧바로 이 친구를 불렀죠."
비텔리우스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마주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당신께 일단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이 어리석은 친구의 우유부단한 마음을 몰아붙여 억지로나마 결정을 내리도록 했으니 말입니다."
"몰아붙이다뇨?"
내 물음에 비텔리우스가 킬킬거리며 말했다.
"제가 이 성의 내력에 대해 대충이나마 알아냈을 때, 이 친구에게 성을 자세히 조사할 기회를 달라고 이야기했었죠. 유물들이 있으면 호텔 경영에 아무래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하면서요. 하지만 이 친구가 생각을 좀 해보겠다고 하더니만 자기 혼자서 몰래 성을 뒤적거렸더라, 이 말입니다. 덕분에 저는 이 성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는 한 번도 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아, 성을 조사했던 역사학자라는 그……."
"학자는 무슨. 그거 때려치운 지 20년은 됩니다. 그냥 애들이나 가르치면서 취미로나 즐길 따름이죠. 하여튼 선생이 했던 말 덕분에, 이 친구는 선생이 자신의 허락을 받지 못하더라도 몰래 성의 뒷마당이라도 파헤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이봐, 그 얘길 왜 하나!"
"……되었습니다. 덕분에 아예 자기 통제 하에서 일을 진행하자는 생각으로 저까지 부르게 된 거죠."
비텔리우스가 짓궂은 표정으로 백작을 힐끗거리자, 백작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연방 헛기침을 했다.
"어쨌든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도 있으니, 바로 조사에 착수합시다. 이보게, 지금 전시된 유물들이 각각 어디서 발견됐는지 정리된 것 좀 줘보게."
"그런 건 없는데……."
백작의 말에 비텔리우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방금 했던 말을 철회해야겠군. 발견된 유물 목록부터 정리합시다."

전시실에 있는 유물들은, 이미 확인했던 것과 같이, 딱히 특징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구의 양식이 다양하여 물건의 주인 중에서 우리가 알고자 하는 사람이 살았던 연대를 특정 지을 수가 없었다. 가구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던 나무의 연대측정도 해보았지만, 조작을 위해 일부러 다양한 양식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는 백작의 말에, 대체 이 성의 내력이 어떻게 되어 먹은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양식의 가구들을 보면 적어도 몇 세기에 걸쳐 이 성에 사람들이 살았던 것 같은데, 거기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하나도 없다니.
"그러니 직접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샅샅이 뒤져야 하는 거죠."
비텔리우스가 지하실 문을 열며 말했다. 리비우스 백작이 먼저 조사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저 여기저기 널려 있던 물건들을 수거했을 뿐이었다. 그 뒤로 호텔 영업에 사용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공개되지 않았으니, 지하실 같은 곳에서 뭔가를 발견할 수 있을 가능성도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정말로 문헌기록 같은 것은 전혀 없었습니까? 적어도 거래명세라든지, 임금지급 같은 것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을 듯했는데 말이죠."
내 말에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찾아본 곳에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죄다 삭아버렸거나, 전에 살던 사람들이나 그 뒤에 여기에 들렀던 사람들이 일부러 없애버렸을지도 모르죠."
"단언하기는 어렵겠지만, 제가 보기에 제삼자가 일부러 없애버리진 않았을 겁니다."
지하실이 꽤 넓은데다 빛이 들어오는 곳이 전혀 없었는데, 전기시설이 갖추어진 것도 아니라 별도의 조명이 필요했다. 일단은 잠깐의 조사에 그칠 테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렸는데도, 비텔리우스는 다음번에 조사할 때 제대로 된 조명을 갖추기 전까지 써먹을 수 있다며 굳이 양초를 다발로 들고 와 군데군데 켜두고 있었다. 벽에 고정된 촛대에 양초를 꽂아 불을 붙이면서, 그는 말을 계속했다.
"자세히 조사한 적은 없었습니다만, 이 성이 있다는 것이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지금처럼 정리되기 이전의 모습일 때 이곳을 둘러본 적이 있습니다. 꼴이 말이 아니었죠. 단지 오랫동안 방치되었을 뿐이었다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온통 어질러져 있는데다 부서진 것들도 많았고 말이죠."
"부서진 물건은 못 봤는데요?"
"아, 상태가 안 좋은 물건들은 전부 창고에 보관 중입니다. 전시하기에 적절치 않아서 말이죠."
백작의 말에 따르면, 그 물건들은 전부 정원의 한구석에 있는 창고에 있다고 한다. 지하실 조사를 마치면 거기에도 들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비텔리우스가 말을 이었다.
"하여튼 그런 상황이 연출되는 것은 보통 살던 사람들이 황급히 떠날 때, 그것도 꽤 큰 소란을 겪으면서 떠날 때 일어나기 쉽죠. 아마 이 성이 습격을 당한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했었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 지금은 그리 생각하지 않으신 거군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성을 습격할만한 사람이 없으니까요. 뭐, 기록이 없으니 이 성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사방 수십 km 안에 아무도 살지 않는데다 접근하기에도 불편한, 백작의 사유지에 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몰려와 난리를 피웠겠습니까? 뭐, 이 성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원한이라도 있었으면 모르겠습니다만, 리비우스 백작가가 어느 가문과 원수졌다는 기록도 역시 없습니다. 이 성이 백작가문의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역시나 이 성이 백작가의 관할 내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성이 습격당했다는 큰 사건에 대한 기록이 남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죠. 그러니 제삼자의 개입은 없었을 겁니다."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때 습격당한 것이 아니라, 성에 더는 사람이 살지 않았을 때 누군가 와서 뒤졌을지도 모르죠. 그 제삼자에 해당하는 사람이 습격자가 아니라 단순한 도둑일지도 모르니까. 남아 있던 값비싼 물건도 없었으니, 난장판이 된 이유는 도둑의 소행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백작은 이 성이 누군가에게 공격당했다는 불미스러운 일은 있을 턱이 없다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지하실에는 아무것도 없군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부서진 나뭇조각이라든지, 굴러다니는 돌멩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날리는 먼지와 돌가루 같은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여기에서 발견된 건 전부 바깥으로 옮겼으니까요."
백작이 갑자기 너무 많은 노동을 했다고 불평하며 쭈그려 앉았다. 그는 우리의 조사가 불필요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봐, 너무 그렇게 나오지 말라고. 혹시 모르지. 비밀의 방이 더 나올지도."
"그런 것도 있었습니까?"
백작이 당황한 기색으로 말을 막으려 했지만, 비텔리우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을 내뱉었다.
"이런, 아직도 말을 안 했나? 홀이나 식당 같은 공동구역은 물론이고, 2층 위에 있는 객실 중에서도 숨겨진 방이나 비밀통로 같은 것이 있습니다. 성의 규모를 생각해보면 비정상적일 정도로 많아요. 중요한 사람이 살 것을 가정하고, 그 사람의 안전을 위해 설계한 것처럼 말입니다. 좀 커다란 방에는 다 바깥이나 다른 방으로 통하는 길이 있죠."
"그런 걸 함부로 말하면 어떡하나!"
"걱정하지 말라고. 선생께서 아무나 붙잡고 수다를 떨만한 분도 아닐 테고, 어차피 죄다 잠가놔서 들어가지도 못하잖나."
"둘러볼 곳이 또 늘었군요."
"선생, 그건 좀 곤란합니다. 비밀통로의 정체가 밝혀지면 투숙객들이 사생활 침해로 소송을 걸어올지도 몰라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소설에서 비밀통로 같은 걸 언급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백작에게 비밀통로의 위치를 물으며 발길을 돌려 지하실의 입구로 향했다. 비텔리우스는 켜놓은 양초를 하나하나 불어 끄면서, 놓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벽이나 천장, 바닥을 살피며 걸어왔다. 그러다 보니 이동속도는 자연히 늦어졌다.
"그러고 보니 말인데……."
문득 비텔리우스가 멈춰 서며 말했다.
"이 지하실도 '좀 커다란 방'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
백작이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지하실에도 다른 곳과 연결된 통로가 있긴 했었습니다."
비텔리우스가 짜증을 부리며 말했다.
"그걸 왜 이제야 말하나!"
"거기에도 별다른 건 없었으니 그렇지. 나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고."
가만히 두면 일이 제대로 풀릴 것 같지 않아, 으르렁거리기 시작한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일단 안내를 부탁합니다."
"안내랄 것도 없습니다. 계단 바로 밑에 있으니까요."
우리가 지하실로 내려오면서 이용했던 계단의 밑에, 더 밑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숨겨져 있었다. 원래 계단을 타고 더 밑으로 내려갈 수 있지만, 그 입구에 은폐를 위한 벽을 세워놓은 것이었다. 살펴보니 나무판자에 돌을 잘라붙여 돌벽으로 보이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간단한 공작이었지만, 자연석을 저렇게 얇으면서도 어색하지 않도록 잘라내 붙인 방법이 궁금할 정도로 잘 만들어져 있었다. 마치 모터로 작동되는 절삭기라도 동원한 것처럼.
"여긴 와인셀러입니다. 아직도 꽤 많은 수가 남아 있죠."
비텔리우스가 방을 둘러보며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자네가 와인을 아끼는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이런 게 있었으면 진작 팔아넘겼을 거로 생각했는데."
"얼마나 묵었는지 모를 것들을 어떻게 팔아넘긴단 말인가?"
"그거야 라벨을 보면 되지 않나. 원래 와인이라는 게 생산연도가 중요해서 어지간한 건……."
그는 그렇게 말하며 가까이 있던 와인 병을 꺼내더니,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집어 들었던 병을 도로 집어넣고는 다른 병들을 확인했다.
"여기 있는 것 모두 라벨이 손상되어 있었네. 깔끔하게 떼어낸 것도 있고, 거칠게 찢어낸 것도 있고. 내가 아무리 문외한이라지만 보통은 빈티지가 표시되어 있다는 걸 설마 모르겠나. 수집가에게 팔아볼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라벨이 없으니 그것도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둔 거라네."
비텔리우스가 머쓱해하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러면 여기엔 연대불명의 와인들만 있는 건가?"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샅샅이 뒤져봤지만 다른 건 발견되지 않았네. 비밀통로 같은 것도 말이야."
"그럼 여기 있을 필요도 없겠군. 이만 올라가 봐야겠어."
비텔리우스가 앞서서 나섰고, 백작이 그 뒤를 따랐다. 나는 라벨이 붙어 있던 흔적이 남아 있는 와인 한 병을 챙겨 나왔다.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조작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군요."
내 말에 백작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조작이라뇨? 무슨 의미입니까?"
나는 방금 다녀온 창고에서 챙겨온 녹슨 장검을, 와인셀러에서 꺼내온 와인과 함께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와인셀러에서 나온 뒤 곧바로 향했던 창고에서 얻은 수확은 이 칼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부서져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전시된 가구와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장검은 꽤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둘 다 기록이 지워져 있습니다. 와인은 억지로 라벨을 잡아 뜯었고, 칼은 손잡이를 뜯어낸 뒤에 슴베에 새겨진 이름을 뭉개놓았죠."
"시간이 오래 지났으니, 나무로 된 손잡이가 떨어져 나가는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딱히 특이한 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칼집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 칼집 역시 나무로 되어 있습니다만, 거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칼의 손잡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죠. 뭐, 바닥에 떨어져 있는데 쓰레기로 여기고 버렸을 가능성도 있지만, 저절로 손잡이가 떨어져 나올 정도로 손상되었으면 칼집 역시 온전할 수가 없습니다."
"함부로 사용해서 그렇게……."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네. 전통적으로 대장장이들이 장검을 만들 때, 칼의 슴베에 어디의 누가 칼을 만들었는지 표기하게 되어 있다고. 장검이 쓰이지 않게 된 이후로 사라진 풍습이지만, 그와 동시에 장검을 제작하는 사람도 사라졌어. 즉, 장검이 널리 만들어지고 있을 때 이 칼이 제작되었다면, 이렇게 슴베에 남겨진 이름을 뭉갤 필요가 없이, 처음부터 이름을 새기지 않도록 주문을 했으면 되었다는 거네. 하지만 이 칼은 슴베의 이름이 사라져 있어. 이 말을 하려는 것 아닙니까, 선생?"
나는 칼날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게다가 칼날이 심하게 녹슬어 있긴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상태가 양호합니다. 구부러진 곳도 없고 깨져 나간 곳도 일단은 확인할 수 없군요. 녹을 벗겨 낸다면 금이 간 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겁니다. 슴베를 보면 충분하니까요. 손잡이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험하게 사용할 경우, 칼날은 물론이고 슴베에도 손상이 가게 됩니다. 하지만 슴베의 상태를 보니, 녹슨 것과 새겨진 이름을 뭉갠 것을 제외하면 아주 양호하군요. 더는 장검을 생산하지 않게 되었을 시기에 이걸 구입한 뒤, 이름을 뭉개기 위해 손잡이를 떼어냈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그리고 그 시기는 꽤 가까운 과거입니다. 길게 잡아도 200년 정도?"
비텔리우스가 말을 받았다.
"와인도 그렇고 장검도 그렇고. 게다가 성에 남겨진 책이 여러 권 있는데도 이 성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전부 일부러 기록을 지운 게 확실해. 다른 건 몰라도 와인의 라벨을 떼어버린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네. 심지어는."
그가 와인 병을 툭툭 건드렸다.
"코르크 마개에 있는 문장까지 뭔가로 긁어내어 버렸잖은가. 이건 원한을 가진 사람이 기록을 말살했다든지 한 게 아니야. 아예 이 성에 대해 어떠한 추측도 할 수 없도록 누군가 꾸며놓은 것일세."
백작이 일이 귀찮게 돌아간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자네가 찾아낸 설화가 있지 않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말일세. 게다가 선생도 이제 자유롭게 집필을 하셔도 되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으니, 선생의 상상력을 그대로 발휘하시면……."
"자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말하지 않았나. 누군가에 의한 기록삭제가 이루어진 거라고. 그것도 비정상적일 정도로 세세한 부분까지. 그리고 이 성에 가장 먼저 손을 댄 것도 자네고, 그래야 할 이유를 가진 것도 자네뿐이네."
"내가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어디 있다는 건가?"
"혹시 모르지. 이 성에서 미치광이 살인마가 보름달이 뜰 때마다 처녀의 피로 목욕이라도 했는지."
백작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게. 내가 처음 이 성에 왔을 때도 같은 상황이었어. 그리고 설령 내가 이 성에 숨겨진 추악한 과거를 은폐하려 했다면, 뭐 하러 자네와 선생을 여기로 불러들였겠는가? 혹시라도 내가 없애지 못한 흔적이 발견될 수도 있을 텐데 말일세. 맹세하건대, 나는 이 성의 내력을 파악하지 못했거니와, 기록을 인멸한 적도 없다네. 만약에 내가 정말로 성의 기록을 조작했다면, 지금쯤 과거를 알 수 없는 유산을 물려받아 골치가 아프다는 생각이 아니라, 작정하고 덤벼드는 사람들도 잘 속여 넘겼다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하긴, 증거도 없고, 자네가 그럴 성격도 아니고. 하여튼 희한하기 짝이 없는 일이구먼. 이 성의 마지막 주인이 누구였는지 궁금하군. 그것만 알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이 성에 대한 윤곽이 잡힐 텐데."
비텔리우스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와 백작도 덩달아 일어났다.
"이만 가봐야겠네. 숨겨진 방이라도 새로 발견되면 모르겠지만, 여기에 죽치고 있어봐야 소용없을 것 같아."
그가 와인 병을 집어 들었다.
"이건 내가 좀 가져가도 괜찮겠나? 조사를 좀 해보고 싶어서 말이야."
"소믈리에에게 가져가 보실 생각이십니까? 그렇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은데요. 아무리 뛰어난 소믈리에라도 수백 년은 지난 와인을 감별해낼 수 있겠습니까? 상했을지도 모르고요."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오래되어 맛이 완전히 변해버린 경우라도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죠. 의외로 그렇게 심하게 오래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고요."
"그러면 몇 병 더 가져가 보게. 표본이 많을수록 더 정확한 결과가 나오지 않겠나? 한 병쯤은 그래도 가까운 과거의 것일지도 몰라."
"뭐, 그렇겠지. 고맙게 받겠네."
"열어볼 때 조심하라고. 17세기 물건일지도 몰라. 열자마자 썩은 내가 뿜어져 나올 수도 있을걸."

비텔리우스가 돌아간 뒤, 나는 인터뷰를 계속했다. 공주의 유령은 계속해서 목격되었고, 모습은 점점 상세해졌다. 처음의 목격담과 비교해보면 마치 다른 유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저 희끄무레한, 여자가 아닐까 하고 추측할 정도로밖에 안 보였던 유령이, 지금은 고풍스러운 드레스를 입고 각종 장신구를 걸친 채, 몇 명의 시녀를 거느리고 돌아다니고 있다. 유령이라는 게 시간이 갈수록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는 건가? 다만, 아직도 유령의 상세한 모습은 보는 사람마다 달랐다. 함께 유령을 목격한 사람들은 공통된 증언을 했지만, 같은 날에 목격했더라도 각기 다른 곳에서 별도로 유령을 보았을 때는 상반된 증언을 하기도 했다. 장신구의 종류와 모습이 달라진다든지, 머리 모양과 입고 있는 옷이 달라지는 식으로.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백작은 여전히 내가 글을 쓰기를 원했지만, 계속해서 바뀌는 이미지에 따라 스토리라인 역시 종잡을 수 없이 바뀌었다. 볼 때마다 얼굴이 바뀌는 사람의 초상화를 그릴 수 있는 화가가 있겠는가? 그것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 유령 역시 보는 사람마다 다른 얼굴을 볼 정도였다.
백작의 말대로 목격담에 나타난 이미지를 추려내어 하나의 이미지로 정리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야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 물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오로라를 단색으로 그려버리는 것 같은, 불성실한 타협에 불과하다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지금 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무시해버리는 짓이기도 하고. 하다못해 왜 모습이 매번 바뀌는가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성에 수많은 공주가 살았었다는 정도의 아이디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건 차마 설득력이 어쩌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조악한 설명에 불과하다. 알려지지도 않은 변경의 외딴 성에 수십 명의 공주라니.
결국, 나는 비텔리우스가 돌아올 때까지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했다.

"선생, 오랜만입니다."
비텔리우스는 백작과 테이블에 마주앉아 와인 병을 꺼내놓고 있었다. 그가 상자에서 꺼낸 와인 중에는 라벨이 없는 것도 있었지만, 몇 병에는 새것같이 깨끗한 라벨이 붙어 있었다.
"이렇게 선생을 부르게 된 건 이 친구가 새로운 발견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 성과는 있었나?"
백작의 말에 비텔리우스가 웃으며 말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일단 이것부터 마시고 얘기를 시작하지. 조사를 의뢰했던 와인 회사에서 받은 거라네."
라벨이 없는 것은 검사를 위해 가져갔던 와인이고, 라벨이 붙은 것은 새로 받은 와인인 것 같았다. 비텔리우스는 라벨이 붙은 와인 중 하나를 집어 들고, 오프너로 마개를 땄다. 그는 우리 앞에 놓인 잔에 와인을 따르고, 자신의 잔에도 따랐다.
"한 번 맛을 봅시다. 기가 막힐 겁니다."
우리 셋은 가볍게 건배를 하고,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비텔리우스는 거리낌 없이 벌컥거리며 들이켰지만, 백작은 조금씩 입에 머금고는 음미하듯이 마셨다. 나는 백작을 흉내 내려다가, 성미에 맞지 않아 비텔리우스를 따라 했다.
"어떻습니까?"
백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유명한 와인 회사의 작품이네. 이걸 선물 받았다는 건가? 가져갔던 와인이 꽤 가치가 있었나 보군."
백작이 와인을 그렇게 사랑하는 건 아니지만, 신분이 신분인 만큼 많이 마셔보긴 했을 것이다. 백작이 칭찬하는 것을 보면, 나도 마음 놓고 맛있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저야 뭐, 알고 마시는 건 아니지만, 썩 맛이 괜찮군요."
비텔리우스는 우리의 반응에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선물 받았다고 했던가? 나는 분명히 그냥 '받았다.'라고만 했다네. 게다가 와인을 받았다고 한 적은 없어. 선생, 한 번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라벨이 아니라 다른 부분을 말입니다."
나는 그의 말에 병을 집어 들어 눈앞에 가져댔다. 병의 상태에는 이상이 없어 보였다. 값비싼 와인이라면 마구 굴려질 일은 좀처럼 없으니 병에 손상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병의 위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왜인지 비텔리우스는 마개를 막아놓은 채 나에게 병을 건넸다. 무슨 의미일까.
아, 마크가…….
내가 입을 벌리는 것을 보고는, 비텔리우스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관찰력이 뛰어나시군요."
그가 아직 병에 붙이지 않은 라벨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와인 회사에서는 이 성의 와인이 모두 92년 전에 생산된 것이라고 보증해주었습니다. 1832년 빈티지라는 것이 라벨에 선명히 찍혀 있죠? 100년 가까이 숙성시켜도 이 정도로 뛰어난 맛을 낼 수 있는 와인은 아주 드뭅니다. 대개는 값비싼 와인이죠. 그리고 그러한 와인의 매매기록은 와인 회사에 전부 남아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성의 기록을 삭제한 사람의 손은 와인 회사 안까지 침투하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기록을 뒤져 1839년에 80여 병의 이 종류의 와인이 한 사람에게 판매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와인셀러에 보관된 와인의 수는, 제 기억이 맞는다면 63병이었을 겁니다. 20여 병 가까이 줄어들긴 했지만, 마셨거나 지인에게 선물했다든지 해서 수가 줄어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게다가 이 와인을 60병 이상 구입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백작이 비텔리우스의 말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저 와인들을 한 번에 구입했다는 보장은 없지 않나? 기록을 완전히 삭제한 사람이니만큼, 구입기록도 꼬아놓았을 수 있을 텐데 말일세."
비텔리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문제는 그 대량으로 와인을 구입한 사람의 이름이네. 거래 기록상에는 명백하게 리비우스라는 성이 적혀 있었지."
"그런……."
"자네의 조상은 꽤 와인을 좋아했던 모양이야. 이 성에 굳이 와인셀러를 만든 것도 그렇고, 그렇게 비밀을 만들기를 좋아하던 양반이 와인을 구입하면서는 이름을 당당히 밝힌 것을 보면 말이야. 굳이 이 와인을 구입한 것도, 되도록 오랜 세월을 버텨내어 누군가에게 마셔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테지. 사랑하는 와인이 헛되이 버려지지 않도록 말일세."
"그러면 대체 왜 이렇게 조작을 해놓은 거지? 그럴 이유가 있나?"
"그렇지. 왕궁에 남겨진 기록도 살펴봤는데, 이 성에 대한 조작을 한 장본인은 와인을 구입한 뒤에도 수도에 남아계셨더군. 법무부 차관까지 올라갔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셨고 말이야. 성과 관련된 어떠한 대외활동의 기록도 없었네."
"조작이 이루어진 연대는 알아냈지만, 그 원인은 결국 알아낼 수 없는 거군."
백작이 조금 안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문의 명성과 호텔의 경영에 문제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문득 떠오른 내 생각은, 가문의 명성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호텔에는 영향을 미칠만한 것이었다.
"혹시 말입니다, 성에 사용된 건축자재에 대한 조사는 해보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성의 안전성을 검토하면서 조사해봤지만, 별로 문제 될 것은 없었습니다."
"연대 조사는요?"
"그야 당연히 했죠. 하지만 쓸 만한 정보는 얻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심하게 오래된 자재는 아니었다는 정도밖에. 200년 안쪽의 연대였지만, 보수된 흔적이 있는 것을 보면 아마 오래지 않은 과거에 교체되었을 겁니다."
"교체할 수 없었던 것은 어떻습니까?"
백작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돌로 지어진 성의 주요부분을 나무로 지지할 수는 없으니까요."
비텔리우스가 말했다.
"굳이 성 내부의 것으로 한정하지 않는다면, 교체할 수 없었을, 정확히 말하자면 교체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교체하기 위해 찾아볼 이유도 없었을 목재는 있을 수 있지."
"네, 맞습니다. 성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지을 때 기초공사는 필수적입니다. 기초공사 과정에서는 목재가 쓰일 수밖에 없고, 공사를 마친 뒤에 기초공사에 사용되었던 목재를 굳이 수거할 필요도 없죠."
"한 번 파봐야겠군요."
비텔리우스는 당장에라도 뛰쳐나가서 삽을 들쳐 매고 성벽 밑으로 향할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작도 덩달아서 일어났다.
"잠깐, 잠깐만. 그걸 파내면 성이 무너질 수도 있지 않나!"
비텔리우스가 그를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말게. 목재를 아예 전부 파내도 안전에는 문제가 없거니와, 지금 필요한 건 나이테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나뭇조각 몇 개뿐이네. 아무런 걱정도 할 필요가 없어."
"흠……. 그렇다면야.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넘어갈 수도 없지. 다만, 조금 기다려주게. 전문 업자를 불러야겠어. 시설보수공사로 위장할 필요도 있고."
백작이 서성거리면서, 손가락을 꼽으며 중얼거렸다.

"선생, 기뻐해 주십시오. 유령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답니다."
백작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그의 걱정거리 하나가 덜어진 셈이었다. 기초공사용 목재 발굴 작업이 있었던 그날부터 성에는 더는 유령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투숙객들은 보수공사 때문에 소란스러워져 유령이 사라진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지만, 보수공사를 한두 번 한 것도 아니었기에 그런 얘기는 얼마 가지 않아 사라졌다. 덕분에 보수공사를 시행하여 유령을 쫓아낸 것에 대한 보상이라는 황당한 지출은 막을 수 있었지만, 유령이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는 소문이 퍼져 방문자의 수는 크게 떨어져 버렸다.
"그런데 연대측정 결과는 어땠습니까?"
"그건 예상대로였어요. 수백 년 묻혀 있던 나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멀쩡하다는 인부들의 눈이 정확했습니다. 측정결과, 성이 지어진 것은 와인을 구입한 시기보다 약간 앞서는 정도였습니다. 벌채지는 성 인근, 어쩌면 지금 성이 있는 자리에 있던 숲일지도 모릅니다. 선생의 추측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리비우스 성은 분명히 발견될 당시 폐허가 되어 있었다. 마치 수백 년은 방치되어 있던 것처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성이 제대로 지어진 이후 누군가가 그곳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고 가정할 경우의 이야기다.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치는 기간 동안, 대륙의 귀족들 사이에 묘한 취미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폐허 순례라 일컬어지는 그 취미는, 말 그대로 대륙 각지의 폐허를 순례하는 취미였다. 고대 문명의 유산이었지만 멸망 이후 방치되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는 유적에서부터 연쇄살인마에 의해 전 가족이 몰살당한 뒤로 버려진 집에 이르는 다양한 종류의 폐허에 굳이 찾아가서 구경하고 기록을 남기거나 기념품을 챙기는 행위는, 그야말로 묘한 취미라 귀족의 체통을 훼손한다면서 공공연히 유행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한 번도 동참한 적이 없는 귀족이 없을 정도였다. 그들 귀족 중에서는 그저 폐허를 찾아가는 것에 만족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영지에 숨겨져 있는 폐허를 발굴하여 공개하는 것으로까지 취미를 넓히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스스로 폐허를 만드는 경지에 이른 사람도 적은 수지만 있기는 했다는 것이다.
"연대측정을 통한 추측에서 더 나아갈 수는 없지만, 과학적으로는 이미 더는 정체불명의 성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죠. 비텔리우스님이 찾아냈다는 그 이야기도, 그저 옛날이야기에서 따온 이야기 중의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겠지요. 널리 퍼진 이야기도 아니었고, 어쩌면 그 친구를 놀려먹기 위해 즉석에서 꾸며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낭패감에 빠진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기라도 했는지 백작이 킬킬거렸다. 그는 한참 동안 웃고는 내게 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갑자기 유령이 사라졌을까요?"
"확실하진 않습니다만, 우리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때문이라뇨?"
"생각해보십시오. 유령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은 우리가 보수작업을 가장한 발굴을 했을 때부터였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성의 정체에 대한 막연한 의심이 확고해졌었죠. 성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코르넬리아 공주라는 인물의 유령 역시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네, 그래서 사라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유령은 애초에 이 성의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성에 거주했던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그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던 유령이 우연히 나타났다가,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받아 공주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겁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매번 모습이 바뀐 것일까요? 게다가 얼마 전에는 사라져버렸다가, 이번에 새로 나타나기도 하고……. 종잡을 수가 없군요."
"간단한 문제입니다. 질문 하나 드리죠. 백작께서 독신주의를 포기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을 만났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리고 그 여성이 백작께 동방의 어느 섬나라에서 유행하는 생소한 취미가 어울린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백작이 턱을 쓰다듬었다.
"으흠, 뭐, 그게 무슨 취미인지는 알아보려고 하겠죠."
"완전히 같지는 않더라도, 대충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인간의 행동양식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타인의 생각입니다. 백작께서도 이번에 제가 조사를 권하지 않았더라면 성의 비밀을 계속 묻어두기만 하시지 않으셨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성에 나타난 유령 역시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그렇군요. 영적인 존재니 사람들의 생각을 읽거나, 적어도 영적인 교감으로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겠군요."
"살아 있는 사람은 육신이라는 확고부동한 것이 있지만, 영혼이라면, 그것도 한 자리에 붙박여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도 묶이지 않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유령이라면 자아의 기준으로 삼을 것이 없으니 그 영향을 더 크게 받았겠죠."
"그러다 보니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생각을 접하자 존재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일 테고 말입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요."
"뭐, 성의 유래에 대한 것처럼, 그저 추측에 불과하지만 말이죠."
그래도 유령이 다시 나타났으니 만사 해결이라며, 백작은 푹신한 의자에 몸을 깊이 묻으며 미소 지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예정이십니까? 성으로 돌아가시면 다시 유령이 모습을 감출지도 모르는데요."
"그렇게 불편할 것도 없습니다. 어차피 제가 그 성에 머물렀던 건 유령이 나타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사업도 있는데다 제가 사는 집도 여기 멀쩡하게 있지 않습니까? 대리인을 보내어 관리하면 충분합니다. 그나저나 선생……."
백작이 웃던 표정을 가다듬었다.
"이야기는 어떻게 되어갑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침 어제 완성했으니까요."
나는 품에서 서류봉투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원하시는 대로 설정을 잡았습니다. 고증이야 뭐, 물 건너간 일이니까요.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의 유령이라니. 하여튼 제가 목격한 것에다가 다른 사람들이 목격한 유령의 모습에서 특징을 몇 개 따서 만들었습니다."
"물론 작중에서의 코르넬리아 공주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죠. 앞으로 손님들은 더욱 몰려들 겁니다."
백작은 만족해하며 원고를 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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