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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용 사냥

2011.09.09 23:4309.09

용 사냥


처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우리 가족은 아무도 울지 않았다. 동생 심낭이도 울지 않았고 어머니도 울지 않았다. 어머니는 막뚜 아저씨가 그 소식을 전했을 때 고개를 끄덕여 알겠다는 표시를 할 뿐이었다. 어머니는 담담했다. 어머니의 표정엔 이런 말이 쓰여 있을 뿐이었다.
올 게 온 것이라고.

사형수들이 자유로워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죽든가 용을 잡던가.
왕실은 용을 잡기 위해 사형수들을 썼다. 용은 조선 천지의 몇 없는 명당에 모여 살며, 용의 뿔을 먹으면 늙은이도 새끼를 밸 수 있었고 용의 비늘은 한 장당 소 한 마리 값으로 팔릴 정도로 귀했지만 용은 신수(神獸)였고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왕실은 어차피 죽을 몸뚱아리, 한번 도전이라도 해보라고 사형수들을 부추겼다. 경우에 따라서는 비늘 한 장만 바쳐도 그 죗값이 사하여 지고는 했으며, 많은 사형수들은 용을 잡기를 자처했다. 물론 그 대부분은 목숨을 잃었지만, 분명히 살아남은 자들도 있었다. 그들 중 우리 할아버지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도망을 친 종사관 이혁(李赫)의 아들로 집 안의 씨를 말리라는 조정의 명으로 아버지와 똑같이 사약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우리 할아버지는 젊었고 과감하여 용 사냥을 택했다. 할아버지는 몇몇 젊은 피들과 함께 함백산 부근의 지룡(地龍)골로 향했다. 그리고 보름간의 사투 끝에 용 사냥에 성공했다. 사실 할아버지는 용을 잡지는 못했다. 다만 늙은 용이 뿌리고간 비늘을 얻을 수 있었고 덕분에 사면되었다. 할아버지는 자유를 얻었지만 용 사냥을 그만두지 않으셨다. 많은 용 사냥꾼이 그렇듯 ‘용 사냥’의 매료되었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말하길, 용을 사냥할 때의 떨림은 그 어떠한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첫날밤의 떨림도, 자식을 낳기 전에 애가 탐도, 전쟁 중의 두려움도…. 용 사냥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어떠한 문필가도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환희였고 할아버지는 이렇듯 일평생 용 사냥을 했다.
그리고 그건 아버지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할아버지 옆에서 용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버지도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자신의 형과 같이 용 사냥에 나섰다. 그때 큰 아버지는 죽었지만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날은 용을 잡았던 날이었고 어쩌면 큰 아버지의 죽음으로 액땜이 돼 운이 생겨났던 것이라고 할아버지는 기뻐했다. 그것이 용 사냥꾼의 삶이었다. 용 사냥꾼의 슬픔은 용을 잡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난 물론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용 사냥꾼의 가문은 몰락한 가문이었다. 아무리 돈을 벌고 신분 상승을 해봤자 몰락한 가문이라는 불명예는 지워지지 않았다. 난 할아버지가 마지막에 바치신 용의 뿔로 인해 겨우 평민의 집안으로 들어선 내 가문을 다시 세우고 싶었다. 후손들에게 떳떳한 가문을 물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과거를 준비했다. 아버지가 죽는 그 순간까지.

막뚜 아저씨는 내게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을 전했다.
황금용을 보았노라고. 난 그 옆에 있노라고.

어머니는 담담하셨다. 이미 아버지와 정을 나눈 그 날부터 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하고 계셨다. 용 사냥꾼의 아내는 그래야만 했다. 그것이 지극한 순리였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자식으로 이어진다는 걸 알고 계셨다. 모든 걸 아는 어머니는 담담하게 한 마디 하셨다.
아버지를 찾아오너라.

짐을 싸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난 할아버지가 그러셨 듯 아버지에게 용 사냥에 대해 이미 숱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난 짚신을 다섯 켤레 챙겼다. 용들이 사는 곳은 대부분 험난한 지형이기 때문에 짚신이 빨리 닳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갈아입을 옷가지도 챙겼고 덮을만한 가벼운 요 하나도 챙겼다.
그 요는 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요였다. 용이 사는 곳은 호랑이가 많이 산다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종종 용 사냥에 실패한 날이면 호랑이 가죽을 대여섯 벌 씩 가져왔는데 그것이 넘치고 넘쳐 이렇게 요로 만들기도 했다. 그것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난 그것 또한 수치스러웠다. 몰락한 가문이라고 세상에 알리는 것 말고 또 무엇이 있는가?
마지막으로 난 용의 눈을 맞췄다는 할아버지의 활을 챙겼다. 활은 오래 쓰지 않아 완전히 휘어져 있었다. 난 그것을 아랫목에 지졌고 다시 유연하게 펴 소 심줄로 활시위를 달았다. 그것으로 난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이른 새벽에 아버지의 오랜 친구이자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한 막뚜 아저씨가 찾아왔다. 난 용 사냥을, 달 기운을 받는 꼭두새벽부터 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으로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졸립지 않았다. 오후에 실컷 자뒀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나와 함께 밤을 지새며 마지막처럼 차분하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난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건 그저 우수에 찬 그 눈빛뿐이다.
막뚜 아저씨는 게 있는가? 라고 물으며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어머니는 하던 이야기를 중단했고 어서 나가보라고 손짓했다. 나는 밖으로 나갔다. 사립문을 열자 아버지가 용 사냥을 나갔을 때와 똑같은 복장(나도 마찬가지였다.)으로 채비를 하고 있는 막뚜 아저씨가 보였다. 나는 어깨를 들어 올려 봇짐을 단단히 메고 마루에 걸터앉아 짚신을 신었다. 어머니는 활짝 열린 사립문을 닫을 생각도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난 그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걱정 말아요.”
막뚜 아저씨가 처연히 바라보는 우리 어머니의 눈빛이 거슬렸는지 대뜸 말했다.
“용 사냥 가는 게 아니니까.”
어머니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 등에 멘 화승총이라도 좀 치우고 말하지?”
막뚜 아저씨는 뱀에게라도 물린 듯 허리를 빳빳이 폈다. 난 잘 들어가지도 않는 짚신을 구겨 신으며 재빨리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
한참 후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래, 오거라.”
흔한 인사였지만 나는 ‘오거라’에서 제발 살아서 오길 바라는 뜻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오거라. 제발.
막뚜 아저씨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더니 도망치듯 우리 집을 벗어났다. 마을 입구 쪽에서 열 댓 명의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대부분 총을 메고 있었다. 나처럼 활을 메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중에 막뚜 아저씨가 말하길 어느 정도 연륜이 있는 사람들은 활 대신 총을 쓴다고 말했다.
우리가 오자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자네가 지철(地鐵)의 아들인가?”
지철은 아버지의 다른 이름이었다. 용 사냥을 할 때 쓰는 별명이었다. 용 사냥꾼들은 서로 이름을 부르지 않고 이처럼 별명을 사용했다. 막뚜, 호산, 가비… 대부분 의미 없는 이름이었다. 용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게 하면 그 집 안에 재수가 없다는 풍문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맞습니다. 어르신. 동이라고 하죠.”
“동?”
그 사람이 물었다.
“본명이냐?”
“집에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내가 말했다.
“원래 이름과 상관없고?”
“예.”
“그럼 넌 이제부터 동이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인원을 파악하는 듯 큰 소리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내가 묻기도 전에 원래 이름은 대산(大山)인 막뚜 아저씨가 말했다.
“저 분은 게태 어르신이다. 네 할아버지 연밴데 실제로 네 할아버지하고도 아는 사이였지. 서로 사이가 좋지는 않았지만 항상 같이 용을 잡고 다니셨지.”
요점이 무엇인지 아리송한 말이었으나 난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누가 더 많이 잡았죠?”
“네 할아버지는 세 마리, 게태 어르신은 여섯 마리 째다.”
난 백발에 턱수염이 가슴 근처까지 가있는 정갈하지 못한 노인네를 바라보며 새벽의 차디찬 기운에 발을 동동 굴렀다. 곧 우리는 달 기운이 사라지기 전에 가야한다는 게태 할아버지의 말에 따라 지룡골로 향했다.

지룡골까지는 꼬박 보름이 걸렸다. 함백산으로 가는데 까지만 열흘이 걸렸고 함백산의 비탈진 산맥과 계곡 사이의 숨겨진 지룡골을 찾느라 헤매느라 지룡골의 입구에 들어섰을 때는 우린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지룡골은 함백산의 거의 끝자락에 머물러 있었는데 넓게 펼쳐진 계곡과 바위 사이의 우거진 초목에 위치해 있었다. 그때가 겨울이었고 험준한 바위들이 사방에 깔린 가운데 평탄한 초목이 펼쳐졌다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지룡골은 입구부터가 넓게 펼쳐진 풀밭이었다.  
지룡골의 입구에 발을 놓이자 습한 공기가 우리를 적셨다. 하늘을 쳐다보니 안개가 사방에 잔뜩 끼어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차가운 기운만이 감돌던 함백산이 순식간에 안개로 가득한 또 다른 공간, 지룡골로 뒤바뀐 것이었다. 지룡골은 함백산에 포함된 초원지대로 보이지 않았다. 삭막하고 거치른 땅이 아닌 푹신하고 청초한 말 그대로의 싱싱한 초원지대였다. 어쩌면 함백산이 지룡골을 외부에 보여 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세워진 인공구조물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입구부터 가득 차 있던 이끼가 낀 것처럼 끈적거리는 안개는 끈적거리고 창백한 땀을 만들었다. 난 그제서야 아버지가 용 사냥을 나갈 때 삼베 끈에 정성을 기울였는지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의 이마에 각각이 찬 삼베 끈은 다 호피로 되어 있었는데 이미 묽게 젖어들어 가고 있었다. 난 얇은 요가 생각났기에 요를 꺼내 이빨로 뜯은 뒤 길게 잘라내 이마에 둘둘 말았다. 초원을 조그만 거닐자 거대한 소나무들이 늘어선 초목이 나타났다.
이곳의 ‘인간 세계’의 나무와는 차원이 달랐다. 싱싱하게 이파리가 돋아난 소나무들은 그 크기가 왕의 궁궐을 덮을 만큼 거대했다. 난 내 포옹으로 열 번의 해야 꽉 찰 것 같은 그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소나무를 보면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과감함에 소나무 위를 보려 고개를 들었지만 삼베 끈이 밀려 벗겨질 정도로 높아 차마 다 볼 수 없었다. 게태 할아버지는 몇 걸음을 가다 멈춰서더니 대뜸 말했다.
“네 애비가 죽은 곳이 저 꼭대기다.”
게태 할아버지가 소나무들이 늘어선 가운데 북쪽 끝에 높이 솟은 산을 가리켰다.
“지룡골의 지룡 산이지.”
“저곳까지 뭣 하러 올라갔죠?”
내가 물었다.
“용의 왕이 산다지. 욕심 많은 니 애비가 만족 못하고 저지른 참혹한 결과야.”
게태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사람들을 정렬 시킨 다음 할 일을 모의했다. 막뚜 아저씨는 일단 식량부터 구한 후 용 사냥에 임하자고 말했다. 난 대체 어디서 식량을 구하는지 의아했으나 묻지 않았다. 내가 묻기 전에 사람들은 서둘러 어떠한 ‘준비’를 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5명 씩 3조로 나뉘었다. 난 막뚜 아저씨와 같은 조였는데 우리는 그냥 소나무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게태 할아버지 조는 양쪽의 소나무에 각각 쇠사슬을 연결시키고 있었다. 쇠사슬은 이 곳 전체를 바다처럼 떠다니는 안개를 유연하게 잘라내고 있었는데 사슬마다 날카롭고 삐죽삐죽한 칼 심이 박혀 있었다. 마지막 조는 각각 총을 짊어 메고 어딘가로 향했다. 그 사이 게태 할아버지의 조는 소나무에 칼 심 박힌 이상한 쇠사슬을 묶는 작업을 마쳤고 모두들 대기하고 있으라고 말했다.
잠시 후, 하품이 나올 정도로 기다림 끝에 총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천지가 요란스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땅을 울리는 발자국 소리였는데 무언가가 한꺼번에 몰려드는 소리였다. 게태 할아버지는 우리 조에게 대기 하라고 소리쳤다. 천지가 찢어지는 소리는 호랑이의 비명이었다. 소름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돋았다. 저 멀리서 호랑이 떼가 달려오고 있던 것이다!
호랑이 떼는 성난 말들처럼 질서 없이 우리 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난 살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옆의 거대한 소나무에 몸을 숨겼지만 막뚜 아저씨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일 거라며 나의 옷 어깨부분을 잡아당겨 끌어냈다. 호랑이들은 거대하게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쇠사슬 쪽으로 점점 더 다가왔다.
“준비!” 게태 할아버지가 소리쳤다. 그러자 게태 할아버지의 조와 막뚜 아저씨의 조는 앉은 자세로 총을 어깨에 짊어지고 총을 장전했다. 서 있던 자들은 부싯돌로 총의 화승에 불을 붙여 총신의 후부에 점화구에 가져다 대었다. 총의 화승에서 불꽃이 타들어가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총구에서는 불꽃이 터지며 역한 냄새가 가득했다. 총을 맞은 호랑이들은 앞으로 고꾸라졌고 뒤에 있던 호랑이들은 더욱 놀라 그런 호랑이를 짓밟으며 앞으로 더 사납게 쇠사슬로 돌진했다. 호랑이들 뒤에서는 총을 조준하는 호랑이 몰이꾼들이 보였다. 난 눈을 질끈 감았다. 쇠사슬엔 분명 칼 심이 박혀 있었다.
“준비해!”
게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곧 찢어지는 비명 소리와 함께 다른 소리가 터졌다.
내가 눈을 떴을 땐 막뚜 아저씨의 조는 대나무로 만든 창으로 호랑이들을 찔러대고 있었다. 호랑이들의 발은 성치 못했다. 뜯겨 나간 채 피가 좔좔 흐르고 있었다. 곧 호랑이 몰이 조도 합세하며 창으로 호랑이들을 들쑤시었다. 참혹한 광경이었다. 순식간에 열 댓 마리의 호랑이가 죽음을 당한 것이다. 게태 할아버지는 그 광경을 소 잡는 것처럼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이 호랑이 잡는 방법이었다. 나중에 막뚜 아저씨가 설명해주길, 용은 인간을 먹지 않고 들짐승들, 특히 호랑이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용이 사는 근처엔 호랑이들이 아주 많다고 했다. 이곳에 흘러들어온 호랑이들은 용의 기운에 눌려 겁이 많고 움츠러들어 덩치가 작으며 떼를 지어 살아가고 놀랍게도 초식을 한다고 했다. 그것은 오랜 시간 스스로 생존을 위해 변해온 방식이었다. 이빨 달린 토끼였다. 아버지가 왜 용 사냥에 실패한 날 호랑이 가죽을 그리 많이 가져올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가 갑자기 한심해 보였다. 이런 가짜 호랑이만 잡아도 먹고 살만할 텐데 굳이 용을 잡다니. 갑자기 머리에 두른 호랑이띠를 물어뜯고 싶어졌다.
호랑이 열두 마리로 인해 우린 식량 걱정은 없어졌다. 우린 호랑이 한 마리로 제사를 지냈다. 호랑이의 머리를 잘라 봇짐(이 곳엔 돌이 없었다.) 위에 올리고 용을 잡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용’에게 빌었다. 그것이 막연하게 느껴졌으나 난 잠잠코 있었다. 게태 할아버지는 두 손을 합장해 기도를 외웠다.

천지님이시여,
천지님이시여.
미천한 인간이 당신을 받들며
당신의 힘에 두려움에 떠나이다.
부디 저희에게 너그러이 자비를 베푸소서.

우린 넙죽 절을 했고 제사가 끝난 후 누군가가 싸온 바짝 마른 나뭇가지로 호랑이 고기를 구워 먹었다. 맛은 닭보다도 못했지만 고기라는 점에서 나는 실컷 먹었다. 난 평생 호랑이만 잡아먹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뚜 아저씨가 말해주길, 이 곳 호랑이는 아주 질기며 맛도 없어 금방 질릴 뿐만 아니라 용을 잡는 게 이 호랑이 만 마리를 잡는 것보다 훨씬 낫고 모포 상인들은 진짜 호랑이 가죽과 가짜 호랑이 가죽을 구별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같이 용 사냥꾼들이 늘어가는 추세에 호랑이 가죽은 닭 가죽보다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막뚜 아저씨는 말했다.
우린 식사를 마치고 곧장 용을 찾아 나섰다. 난 아버지의 시체를 찾아야 한다고, 그것이 내가 온 이유라고 말했지만 막뚜 아저씨는 여기 온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이유로 온 것은 아니라며 일단 용을 잡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내가 실망하는 듯한 표정을 짓자 막뚜 아저씨는 지금(겨울) 철에는 용들이 대부분 잠에 들 시기여서 지룡 산의 굴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아버지의 시체도 같이 찾을 것이니 걱정 놓으라고 말했다. 난 용을 잡다 모두 죽으면 내가 온 이유가 없다고 말했지만 막뚜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곳 사람들 모두는 내 아버지를 알았다. 그들은 우리 가문이 뛰어난 용 사냥꾼 가문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난 그 칭찬에 조금도 입을 씰룩거리지 않았다. 조정에서는 용 사냥을 법적으로 그만하게 하라는 항소가 올라오고 있었다. 용은 신수인데 그들을 잡는 건 하늘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미 수많은 관리들이 그 의견에 힘을 보태고 있었고 조정에서도 얼마 안가 그 항소를 받아들일 것이 분명했다. 용 사냥꾼은 영원히 조선의 역사에서 사라질 것이었다. 그런 판국에 ‘훌륭한 용 사냥꾼’은 유쾌한 칭찬이 아니었다. 용을 잡는 인간은 이젠 모조리 사형 당할 것이었다.
하늘은 여전히 잿빛이었다. 안개와 그 안개에서 배출되는 이상스런 열기로 온 몸엔 땀이 흥건했고 조그만 걸어도 숨이 막혀왔다. 이것이 용의 숨결이라고 아버지의 동료였던 창식이 아저씨가 말했다. 창식이 아저씨는 나에게 친절하게 대했다. 막뚜 아저씨는 그가 우리 아버지에게 은혜를 입어서 이라고 말했지만 난 말했다 시피 용 사냥꾼의 친절에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물론 그것을 바깥으로 표현을 하지 않았기에 창식 아저씨는 내게 늘 아버지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 밖에 나랑 이름이 같은 동 아저씨, 소구 아저씨, 두산, 호태, 상혁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꼭 아버지를 찾아주겠노라 맹세하며 친한 척을 했다. 난 급할 때 동료까지 버리며 도망치는 이 용 사냥꾼들의 우정을 믿지 못했다. 그래서 한 번도 웃어주지 않았다. 언젠가 내가 죽으면 그들은 똑같이 그럴 것이고, 내 웃음은 허무한 것이 되어버릴 테니까.

“황금용이란 게 뭐죠?”
어느 날, 내가 물었다. 게태 할아버지는 자신의 천적이었던 자의 손자가 대뜸 와서 그렇게 묻자 당황한 듯 요상한 표정을 짓더니 곧 한심하다는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황룡(黃龍)이지, 뭐 다를 게 있나.”
“황룡이면 귀한 가요?”
“중국의 신수이자 전설 속의 용이다.”
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용이 바로 코앞에 펼쳐져 있음에도 전설 속의 용이라고 말하는 게 우습게 느껴졌다. 전설 속의 개랑 뭐가 다르겠는가.
“중국 황실에서도 그 비늘이 한 장 밖에 없을 정도로 아주 귀하디귀한 분이시다. 모든 용들의 왕이자 천신(天神)이시지.”
난 그가 ‘님’ 이나 ‘분’ 자를 붙이면서 말을 하자 기분이 묘해졌다. 그가 왜 그렇게 말을 하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내가 물었다.
“그게 이 지룡골에 있었다고요?”
“그러니 미친놈 아니겠는가!”
그가 소리쳤다. 그는 뭐가 분한지 씩씩거렸다.
“이 조그만 용의 소굴에 어떻게 황룡이 있단 말인가? 중국의 유명한 일(一)골에도 없는 용인데 말이다! 황룡은 그 크기가 구만 리나 되는 무지막지한 분이시다! 이 조그만 굴에 그 분이 있을 리가 없어!”
“그럼 아버진 뭘 보신 걸까요?”
“호랑나비나 보았겠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뭐라 중얼거렸는데 난 그것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 애비나 자식이나.”

내가 용을 만난 건 산에 이르고 얼마안가 협곡에 다다랐을 때였다. 끊임없이 비탈만 펼쳐지던 산은, 하루가 꼬박 걸려 비탈을 오르자 제일 먼저 거대한 협곡을 드러냈는데 협곡의 주위에는 오르던 내내 보였고 그 전에도 보이던 그 많던 소나무는 물론 풀 한 포기 돋아나 있지 않았다.
협곡의 폭은 넓어 우리가 나란히 서서 걸어가도 될 정도였는데 그 삭막하고 이상하게도 물기가 촉촉한 검붉은 진흙의 땅을 걸어갈 때마다 역한 비린내가 올라왔다. 땅을 보니 무언가에 쓸린 듯 홈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것을 제일 먼저 눈치 챈 것은 게태 할아버지였다. 그는 협곡에 들어서고 얼마 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 거리더니 곧 허리를 숙여 흙을 만져보고 냄새를 맡고 입에 머금어 보기도 했다. 게태 할아버지의 안색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는 서둘러 동 아저씨를 불렀다. 동 아저씨는 야리야리한 몸에 긴 팔을 늘어뜨리고 있어 뛸 때나 걸을 때나 그 긴 팔이 이리저리 흔들려 마당놀이패를 따라하고 있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웠지만 용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빠삭했다. 게태 할아버지는 그에게 이 흙이 지룡(地龍)의 기후와 비슷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왁자지껄하게 떠들던 무리들은 지룡이라는 말에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었다. 순간 이상하고 묵묵한 기류가 흘렀다. 내가 지룡이 뭐냐고 막뚜 아저씨에게 물으려 할 때 동 아저씨가 말했다.
“지룡이 다닌 자국 같구만요. 풀 한포기 없는 거하고, 이상하게 흙이 축축 거리는 거하구. 어쩐지 이상하더만.”
동 아저씨는 흙을 만지작거리며 그렇게 말하고는 뭐든지 확실한 게 좋다며 누구보다 두껍고 넓게 맨 삼베 끈을 풀렀다. 삼베 끈을 풀자 여러 장의 고이 접힌 한지가 나왔는데 그는 그것을 여러 장 넘겨보다 어느 한지를 펼쳤다. 게태 할아버지는 그 한지를 빼앗아 읽어보더니 다시 흙을 만졌다. 나도 똑같이 따라했는데 땅엔 무언가가 묻어있는 듯 미끌미끌 거렸다. 사람들도 나와 같이 흙을 만져보았지만 나처럼 뭐가 뭔지 도통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게태 할아버지는 달랐다. 그의 안색은 동 아저씨와 마찬가지로 숨 넘어갈 듯이 붉으락 푸르락 해지더니 우리를 향해 크게, 아주 크게 소리쳤다.
“모두 계곡을 올라가!”
그 순간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마치 게태 할아버지 때문에 난 지진 같았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협곡의 벽으로 몸을 던졌고 막뚜 아저씨는 나의 야윈 팔뚝을 잡으며 계곡으로 내던졌다.
젖어있던 붉은 흙이 순식간에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밑으로 푹 꺼졌다. 그 바람에 미처 챙기지 못한 동 아저씨의 봇짐이 땅 밑으로 꺼졌는데 다행스럽게도 금방 그 모습이 보였다. 검은 혀를 날름거리며 흙을 온 몸에 잔뜩 묻힌 지룡의 등에서.
지룡은 보통 용과는 다르게 물고기처럼 주둥이가 뾰족하고 눈엔 흘러내릴 정도로 점액질이 가득했다. 그러나 이빨은 칼을 박아놓은 것처럼 뾰족뾰족했는데 입은 계곡 하나를 다섯 입이면 먹을 정도로 엄청 컸다. 지룡은 땅에 반쯤 몸을 묻은 거대한 이무기의 형상으로 더 이상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등에 비하면 턱 없이 작은 지느러미 같은 날개가 퍼덕거렸다. 지룡은 험준한 계곡을 올라가려는 우리를 보고는 그 거대한 입을 벌려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창식 아저씨가 그 입과 함께 계곡 속으로 파들어간 건 순식간이었다. 지룡은 계곡에 얼굴을 가득 박더니 곧 얼굴을 꺼내 흙을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밥에 고기 한 점 올려놓은 꼴이었다. 그 모습이 웃기는지 게태 할아버지가 소리쳤다.
“식사는 맛있냐, 이 놈!”
난 동료의 참혹한 죽음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용 사냥꾼의 우정이라는 게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그것을 따질 새가 없었다. 곧 용이 다시 달려들 태세를 한 것이었다. 게태 할아버지는 무조건 도망치라고 소리치며 계곡을 재빠르게 내려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사람 또한 서둘러서 계곡을 올라가든 내려가든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막뚜 아저씨의 따라 오라는 명령에 허겁지겁 그 뒤를 따랐다.
용은 땅 속으로 파들어 가더니 북쪽에, 도망친 사람들 가운데서 솟아나왔다. 용의 뾰족한 주둥이에서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대는 게 보였다. 막뚜 아저씨는 뒤돌아보지 말고 뛰라며 나를 잡아끌었다.

얼마나 뛰었는지 모른다. 사람들의 비명도 한 순간의 바람처럼 뚝 끊기고 울리던 땅도 멎었다. 막뚜 아저씨도 뛰는 속도를 늦추었고 나는 물었다.
“용은 사람을 먹지 않는다면서요?”
“그것도 용에 따라 다르지. 저것처럼 날개가 달리거나 날지 못하는 것, 요상하게 생긴 것들은 죄다 한통속이여.”
“한통속?”
“잡종!”
막뚜 아저씨는 그렇게 소리치며 멈춰 섰다. 그를 뒤따르던 몇몇도 멈춰 섰다. 그러더니 곧 재밌다는 듯 킬킬 거렸다.
“창식이 고 놈은 시체도 못 건지겠네.”
그 농에 모두들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너무나 잔인하게 내 귀를 파고들었다. 난 돌아가고만 싶어졌다. 막뚜 아저씨가 없어진 것이 없나 짐을 확인하더니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살았는지 몰라. 일단 다시 올라가보세. 이번엔 동쪽으로 가보세.”
남아 있는 일행은 나를 포함해 6명뿐이었고 우린 다시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동쪽으로 난, 겨울인데도 가슴팍까지 난 풀숲을 헤치고 잘도 올라갔고 난 칼날처럼 날카로운 풀들에 이리저리 베이며 겨우 겨우 그들의 꽁무니를 뒤쫓았다.
한참 후 우린 가제 아저씨가 챙겨둔 호랑이 고기를 나눠먹으며 잠시 휴식했다. 그들은 고기를 날 것으로 먹었는데 불을 피워 위험을 부르기는 싫다고 말했지만 사실 귀찮은 것 같았다. 난 그들의 요청을 일만 번 쯤 거절하다 어쩔 수 없는 허기에 딱 한 입 베어 물었는데 맛은 괜찮았지만 씹는 맛이 역겨워 두 번 다시 입에 대지 않았다.

우린 곧 다시 이동했다. 이곳은 모든 것이 안개에 가려 해도 달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는데 주위의 안개가 차가워졌을 때라고 했다. 사실 이 곳의 안개는 모두 용의 숨결이었다. 용의 숨이 차가워진 것은 용이 잠에 들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더욱더 활발하게 활동했다. 어떻게든 용을 쉽게 잡아보려고 이 순간만을 기다려 온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그랬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용을 사냥하고자 했다. 딱히 계획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소나무가 둥글게 둘러져 있던 호숫가를 보았을 때였다. 그곳엔 백룡(白龍)이 잠들어 있었다. 잿빛 하늘이 푸르스름해지고 호수가 별을 머금으며 철렁거리고 있었다. 호수의 뭍에 백룡이 있었다. 백룡의 수염은 바람에 날리는 연처럼 나풀거렸다. 용의 수염이 나풀거리지 않으면 죽은 거라 했는데 아주 싱싱했다.
나를 뺀 5명은 술렁였다. 용중에 가장 아름다운 백룡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의견이 분분했다. 겨울철에만 밖에서 활동하는 백룡은 계절도 계절이지만 아름다운 비늘이며 누구보다도 효능이 깊다는 뿔, 수염만으로도 신분이 바뀔 수 있었기에 더욱 신중을 가했다. 기회는 한번 뿐이었다.
그들은 이윽고 합의를 보았다. 저 호수만한 길이의 용을 잡는 건 애초에 무리니까 더듬이(그들의 표현이었다.)와 뿔, 비늘을 몇 조각 떼어내자고.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용의 눈이나 이빨도 값어치가 있소.”
난 안개에 휩싸인 그들의 표정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아무렴.”하는 맞장구 소리가 들려왔다. 난 섬뜩해졌다. 용의 눈을 뽑는다고? 막뚜 아저씨를 바라보니 막뚜 아저씨는 킬킬 거리고 있었다. 막뚜 아저씨가 말했다.
“일단 쇠사슬로 묶어 보자고.”
이것이 용 사냥꾼이었다. 그들은 제사를 지내고, 신님이라 여기던 용의 몸을 훼손하는데 물불 가리지 않는 파렴치한들이었다…. 우리 아버지도 그랬겠지.
그들은 용 사냥꾼만이 지을 수 있는 쾌락에 눈이 먼 얼굴로 용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난 용을 깨울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역시 생각뿐이었다. 용의 무지막지함을 나 스스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용으로 치지 않는다는 가짜용도 그 정도라면 진짜 용의 힘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왜 천지님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곧 그것을 직접 볼 것이고.
그들은 작전이라도 짠 것처럼 척척 대열을 나눠 용의 좌우로 섰다. 제현이라는 가벼운 몸을 가진 아저씨가 비늘을 밟고 올라서 용의 목에 올라탔다. 제현 아저씨는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고 아래 있던 사람들은 쇠사슬을 한데 엮어 길쭉한 쇠사슬의 끝을 제현 아저씨에게로 던졌다. 제현 아저씨는 그것을 받더니 곧 반대쪽으로 쇠사슬 끝을 던졌다. 쇠사슬을 네 개나 엮었지만 용의 목둘레에는 조금 부족하다 싶을 정도였다. 양 옆에 사람들은 쇠사슬의 끝에 용 사냥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철 줄을 엮었다. 그리고 나서 땅 속 깊이 철 줄을 심고 그 위에 바위를 얹은 다음 흙을 덮었다. 쇠사슬은 용의 목에서 팽팽해졌고 제현 아저씨는 용의 목에 둘러진 쇠사슬을 당겨보고는 엄지를 치켜들었다. 제현 아저씨가 내려오자 막뚜 아저씨는 기다란 창을 받아 용의 얼굴로 다가갔다. 막뚜 아저씨는 용의 숨결을 내뿜는 코에 손을 얹어 톡톡 두드린 다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제현 아저씨가 말했다.
“한 번에 찔러야 돼. 실수하면 죽는 거여.”
“걱정 붙들어 매라고. 자, 왼쪽 눈? 오른쪽 눈?”
그는 창을 날카롭게 세우며 나를 보며 물었다. 난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사람들은 왼쪽 눈, 오른쪽 눈 각각 소리쳤다. 막뚜 아저씨는 오른쪽 눈으로 정한 듯 오른 쪽 눈으로 창을 가져다댔다. 그는 옆으로 물러나 힘주어 찌르는 연습을 하더니 곧 용의 눈에 창끝을 가져다댔다. 하지만 그는 찌르지 않았다. 그가 갑자기 말했다.
“잠깐만. 눈을 찌르면 눈알이 터져버리잖아? 그럼 상품 가치가 없는 것 아니여?”
제현 아저씨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니야. 용의 눈은 단단해. 찔렀다가 뽑아내면 돼. 그래도 제 값 받아.”
“아니, 그래도 구멍 난 눈보다는 성한 눈이 좋지.”
“어쩌자고?”
“이마 한 복판을 찌르자.”
“뭐?”
“이마 한 복판을 찌르면 즉사할 거 아냐. 이마를 찌르자.”
“하지 마. 그래봤자 안 죽는다는 거 알잖아.”
“해본 적 있어?”
막뚜 아저씨가 물었다. 제현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적은 없을 것이다. 애초에 이렇게 가까이서 죽은 듯이 잠든 용은 못 봤을 것이다.
“하자고?”
“해 봐.”
“잠깐 기다려. 그럼 더 효과 좋게 하자.”
제현 아저씨가 그렇게 말하며 총을 한 가득 가져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나눠주며(난 아니었다.) 같이 사격하자고 했다.
곧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용의 머리에 총을 겨눈 채 포진한 사람들과 그 가운데서 이마 한 복판을 찌르려는 사람. 제현 아저씨는 용의 머리 위에서 총을 겨누고 있었다.
“총 소리가 나면 찔러!”
제현 아저씨가 소리쳤다. 그들은 곧 화승에 불을 붙였다. 화승은 타오르며 점화구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탄내와 용의 숨결에서 뿜어져 나오는 깊고 깊은 숨 냄새, 그리고 두려움에 가득 찬 바람 냄새가 풍겨왔다.  
그 순간 용이 눈을 떴다. 늙은 용으로 추정되는 이 용은 죽은 청각 대신 후각이 크게 발달되어 있었다. 용은 타는, 불 냄새를 맡고 꿈에서 깨어난 것이었다. 용은 자신 앞에 날카로운 것과 냄새 나는 것을 들이댄 채 탐욕스런 표정을 짓는 이방인들을 잠시 아리송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곧 산맥 같은 코를 바짝 추켜세우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것은 과연 호랑이도 주눅 들 게 할 만한 소리였으나 사람들은 이성이라는 것이 있었다. 용이 완전히 결박되어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실제로 용은 목이 완전히 짓눌리자 꿈쩍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뱀은 뱀이라는 표정으로 의기양양했다. 제현 아저씨가 그대로 조준을 하라고 소리쳤고 용은 사태를 파악하고는 억울한 지 낑낑거렸다.
용의 눈은 애처롭게 사람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러다 나와 마주쳤는데 내가 아무 짓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살려달라는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난 그 용의 노란 빛이 나는 눈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나로써도 방법이 없었다. 이들은 자신의 동료들의 죽음을 보고도 웃어넘기던 사악한 자들이었다.
난 눈을 질끈 감았고, 곧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가 산지를 갈랐다.

용이 거칠게 꿈틀거렸다. 용은 살아있었다. 머리 곳곳에 피가 터지고 한복판에 뿔 만한 창이 박혔지만 오히려 자극 받은 듯 아주 거칠게 몸을 비틀었다. 제현 아저씨는 굴러 떨어지고 사람들은 혼비백산했다. 단단하게 묶어둔 쇠사슬이 쩔그렁 쩔그렁 거렸다.
“당황하지 마!”
제현 아저씨가 서둘러 일어나 그 날렵한 몸으로 껑충 껑충 뛰며 소리쳤다.
“아직 포박됐다! 젠장! 그러게 눈깔을 파불자니까! 야! 창, 창 가져와!”
제현 아저씨는 누군가가 건넨 창을 들고 용에게 다가갔다. 그는 천지님~ 하며 용의 눈알을 향해 창을 뻗었다. 피가 왈칵 쏟아졌다. 그러나 그건 제현 아저씨의 귀에서 나는 소리였다. 용은 거친 포효를 내뿜었고 제현 아저씨는 그 용의 포효에 태풍을 그대로 맞은 것처럼 머리와 옷들이 뒤로 쏠렸다. 제현 아저씨는 거칠게 비명을 지르며 귀를 막고는 술 취한 백정처럼 비틀거렸다.
“도와 줘!”
제현 아저씨가 소리쳤다. 제현 아저씨는 곧 눈깔이 뒤집어지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사람들은 멀리서 총을 겨누기 시작했다. 막뚜 아저씨는 창을 있는 대로 던지며 머리를 맞추라고 소리쳤다. 용은 그 사이 거칠게 몸을 흔들었다. 바위까지 깔고 단단히 묻은 쇠줄이 퉁퉁 하며 끊어지는 소리가 밤안개를 갈랐다. 용은 한 번 더 총을 맞았다. 더 거친 비명이 들려왔다.
“풀리면 우리 모두 뒤지는 거여! 완전히 몰아붙여! 용을, 용을 잡을 수도 있어!”
막뚜 아저씨가 공포에 질린 웃음을 쏟아내며 소리쳤다. 그는 공포와 기쁨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총이 채 발사되기 전에 용은 완전히 쇠사슬을 풀었다. 용이 꿈틀거리는 바람에 쇠줄이 땅을 가른 것이었다. 공간이 생기자 용은 긴 몸뚱아리에 붙어있는 네 개의 얇은(그러나 인간이 볼 때는 통나무 같은) 다리로 도약하듯 몸을 일으켰다. 쇠사슬이 끊어진 개줄처럼 용의 등에 흘러내렸다. 용의 피가 문어발처럼 흐느적 떨어졌다. 피는 그 양도 거대해서 땅에 떨어지면서 쿵쿵 소리를 냈다.
“쏴! 한 번 만 더 맞추면 용은 죽어! 쏴! 쏘라고, 제길!”
다시 총 소리가 들렸고 총알은 용의 몸통을 맞췄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용은 그걸로 죽지 않았다. 용은 거대한 산처럼 우뚝 선 모습으로 그들을 바라보다 순식간에 그들에게로 달려들었다. 사람들은 이미 몸통을 맞춘 것을 안후부터 총을 버리고 튀기 시작했지만… 용의 만리장성만한 길이를 벗어나긴 힘들었다. 용은 사람들이 나무 틈으로 들어가자 나무들 사이로 뛰어 들어 온 몸을 심하게 꿈틀거렸다. 소나무들은, 세워둔 시체들처럼 맥없이 쓰러졌다. 먼지바람이 일었고 거대한 굉음이 닥쳐왔다.
여기서 막뚜 아저씨가 죽었다. 제현 아저씨도 죽었다. 모두들 죽었다.
나만 살았다.

내가 눈을 떴을 땐 아침이었고 어제의 소란을 듣고 달려온 마지막 동료들이 동쪽 소나무 숲을 통해 오고 있었다. 그들은 남쪽의 무너진 소나무들을 보고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있다가 곧 무리를 나누어 나에게로 왔다. 2명이 나에게 왔고 나머지 사람들은 동료들을 찾으려는 듯 무너진 남쪽 소나무 숲으로 간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잠시 후 2명의 극진한 간호를 받고 있을 때 그들이 갖고 온 것은 동료가 아니었다. 한 무더기의 백룡의 비늘이었다. 안개 속에서도 강물처럼 번쩍이는 그것은 보기에도 아름다웠고 그것을 만진 사람들은… 동료가 죽었다는 사실에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대단하군!”
같이 ‘비늘을 주으러’ 간 게태 할아버지가 소리쳤다.
“백룡의 비늘이야! 이 귀한 백룡의 비늘을!”
“막뚜 아저씨는요? 제현, 동제 아저씨는 어떻게 됐죠? 강현 아저씨는요?”
“몰라, 죽었겠지. 시체를 찾을 수가 없어.”
그가 관심 없다는 듯 말했다. 찾을 수가 없다고? 찾아보기는 한 거야?
“찾아보기는 했나요?”
내가 이를 갈며 물었다.
“뭐?”
“비늘을 주으러 간 게 아니고요?”
“무슨 헛소리야!”
게태가 소리쳤다.
“동료를 찾으러 간 거야! 그러다 찾을 수 없자 비늘을 주은거고!”
“웃기지마! 당신은 그저 용에 미친놈일 뿐이야! 용이 주는 비늘과 뿔에 환장한 놈이라고! 우리 아버지도 이렇게 버려졌겠지! 쓰레기 같은 당신들 때문에 동료라는 이름하에 처절하게 버려졌을 거야!”
게태 할아버지는 쌍소리를 하며 내게 달려들었다. 아버지의 ‘동료’들이 막지 않았더라면, 난 게태 할아버지의 심줄이 난 목을 비틀던가 물어뜯던가 둘 중 하나를 했을 것이다.
“사라져, 이 빌어먹을 쌍놈아!”
사람들 품에서 그가 소리쳤다.
“네 놈은 지금 용 사냥꾼을 모욕했다! 이 후레자식! 네 놈 아비가 네 놈을 보고 저승에서 퍽도 좋아하겠다아!”
난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를 펼친 뒤 손바닥으로 딱 쳤다. 그는 눈깔이 뒤집힐 정도로 성을 내며 온 몸을 비틀어 짜내 사람들 품속에서 나와 나뒹구는 창을 들고 나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사람들은 다시 그 노인네를 잡으며 내게 어서 가라고 말했다.
“네 아버지는 산봉우리에 있다! 가! 어서 가!”
아버지의 ‘동료’가 말했다. 내가 소리쳤다.
“당신들도 똑같아! 아버지의 시체를 찾으면 네 놈들을 모두 관아에 신고해버리겠어! 아니면 내 손으로 죽이던가!”
“마음대로 해라, 이노오오옴!”
게태 할아버지가 침을 줄줄 흘리며 소리쳤다.

산봉우리로 향하는 곳엔 더 이상의 길은 없었다. 거대한 절벽이 굳어버린 파도처럼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난 험준한 바위를 타고 왔던 뒤를 돌아보았다. 아래로 끊임없는 비탈과 계곡이 펼쳐졌고 내가 어떻게 저 곳을 넘어왔나 믿기지가 않았다. 그들과 헤어진 뒤 벌써 3일 째였다. 놀랍게도 난 호랑이도 잡아보았다. 이곳의 호랑이는 가죽조차도 약했다. 화살 몇 방에 금세 쓰러졌다. 난 아무리해도 날 것으로 먹을 수 없었기에 떨어진 나뭇가지들을 모아 호랑이 고기를 구워먹었다. 가죽이 얇고 부드러워 쉽게 벗겨지기는 했으나 한 번도 가죽을 벗겨보지 못한 탓에 구운 고기에서는 미처 떼어내지 못한 가죽과 비계가 뒤섞인 묘한 맛이 났다. 도중에 사악한 용들과 마주친 적도 두세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난 운 좋게 살아남았다. 사악한 용은 진짜 용들에게도 적인지라 중간 턱에 있던 호수에서 물을 마시고 있을 때 날 덮치려던 수룡(水龍)을 적룡(赤龍)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낚아챈 적도 있었다. 순전히 먹이로 먹을 생각이었고 워낙 거대해(진짜 용들은 그 길이가 보통 산을 휘감을 만할 정도였다.) 내가 보일리 만무했겠지만 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진짜 용은 인간이 덤벼들지 않는 한 먼저 덤벼들지 않았다.
난 아버지가 황금용을 보았던 정상을 불과 10 리 정도 앞두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 절벽만 오르면 정상이었다. 다만 이 10 리 절벽을 어떻게 오르냐가 문제였다. 하지만 막뚜 아저씨는 끝까지 아버지를 쫓아갔고 그렇다면 분명 길이 있을 터였다. 아버지도 분명 이 길로 왔으리라.
난 무작정 험준한 절벽을 기어 올라가 보기로 했다. 짚신은 어느새 한 짝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잘못 안 것이었다. 용 사냥을 갈 때는 왕골로 만든 신발을 신었어야 했다. 난 다 떨어져 나간 짚신을 벼랑 아래로 버리고 마지막 남은 짚신을 신었다. 그리고 봇짐을 푼 김에 필요 없는 것들을 모두 버렸다. 난 요를 버리기 전에 삼베 끈을 만들었던 것처럼 길게 찢어 기다란 끈 두 개를 만들고 버렸는데 난 손바닥에 요를 감싸고는 벼랑을 무작정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벼랑엔 세월의 풍상으로 여기저기 금이 간 곳이 많았고 무엇보다 어떠한 돌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단단했기에 오르기가 생각보다 수월했다. 아마 아버지도 이런 식으로 올라갔을 터였다.
난 이를 악 물며 오르다 쉬고를 반복했다. 산을 올라갈수록 안개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 덕분에 온 몸엔 더 힘이 났고 난 내가 벼랑을 오르고 있다는 느낌조차 받지 못했다. 정말 잠을 자도 될 정도였다. 난 내 근력에 스스로 감탄하며 계속 올라갔다. 정오 정도에 시작한 벽 타기는 오후가 끝날 때도 그칠 줄을 몰랐다. 배도 고파오고 팔에는 점점 감각마저 사라져 왔지만 난 어디까지 왔는지 알지 못했다. 고개를 들면 무게가 뒤로 쏠려 몇 리 아래를 떨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난 무작정 쉬다 올라가고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밤이 되었을 때 난 뭔가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었고 아래를 슬쩍 내려다보았을 때도 밑은 까마득했다. 하늘나라를 향해 끊임없이 오르는 성난 원숭이 같이 느껴졌다. 난 가벼운 봇짐마저 무겁게 느껴져 저 아래로 떨어뜨렸다.
아침이 되었을 때 난 저 동쪽에서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을 볼 수 있었다. 안개는 여전히 내 발 밑에 있었다. 안개를 뚫고 올라온 게 오후쯤이었으니까 난 꼬박 하루를 올라온 것이었다! 고작 10 리를. 난 계속 올라갔다. 태양이 내게 새로운 힘을 주고 있었다. 적어도 잠을 몰아내주고 있었다. 난 정상에 도착한다는 생각은 이미 진작에 지워버린 채 그저 살기 위해 올라가고 있었다. 밑에는 안개가 아니었다. 구름이었다. 내가 그것을 안 것은 안개가 빛을 번쩍했기 때문이었다. 안개에서는 우르르 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둥 번개였다. 난, 난 하늘 위를 올라가고 있던 것이다!
숨이 막혀왔다. 또 다시 오후였다. 이젠 체력이 완전히 바닥났다. 올라가면서 죽든, 떨어져서 죽든 매한가지 같았다. 난 이젠 내려가기로 했다. 애초에 인간이 용에게 대항한 것이 문제였다. 난 다행히 용에 대한 탐욕이 없었음으로 그것을 빨리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포기하고 밑으로 내려가려고 발을 하나 둘 하나 둘 내리고 있을 쯤 무언가가 저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처음엔 조그만 점처럼 보이더니 곧 형체를 갖추며 날개를 펼친 새, 곰, 사람이 되었다!
난 그것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두 다리(발가락)에 힘을 꽉 주고 금이 난 부분에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힘을 꽉 준 다음 나머지 한 쪽 팔을 뻗었다. 난 정확히 그것의 팔목을 잡았고 엄청난 무게에 하마터면 같이 밑으로 떨어질 뻔했다. 다행히 속이 비어있는 것처럼 가벼워서 난 겨우 달랑달랑하게 버틸 수 있었다.
“아버지.”
내가 말했다. 온 몸에 때가 꼬질꼬질하고 수염이 잡초처럼 난 나의 아버지는 거의 탈진한 상태로 내 손에서 마지막 생명의 빛을 붙잡고 있었다. 아버지는 꺼져가는 불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네가 어떻게?”
아버지가 목이 막힌 듯 퍽퍽한 목소리로 물었다. 난 미소 지을 뿐이었다.
“난 황금용을 쫓고 있었는데? 그러다 이 산 위로 도망친 걸 봤는데, 올라가도 끝이….”
“알고 있어요. 아버지. 그것 때문에 제가 왔는걸요.”
내가 말했다.

내가 내려왔을 땐 3일이 경과한 시간이었다. 우리 둘 다 탈진한 상태였지만 다행히 떨어뜨린 봇짐이 턱이 끝나는 가장자리의 조금만 돌에 걸려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기에 난 구운 호랑이 고기와 물주머니를 꺼내 아버지에게 주었다. 아버지에게 물을 먹이자 아버진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아버지를 업고 산을 내려오며 아버지는 내게 분명히 황룡을 보았다고 말했다. 난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음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 알았어요.”
“아니야. 난 죽을 수가 없었다. 내 죽은 동료들을 위해서라면. 꼭 용을 잡고 가야했어.”
난 죽은 동료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분명히 황룡이었어. 전설상의 용.”
아버지가 다시 그 말을 꺼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 말했다.
“게태 할아버지가 말하길 그런 용은 지룡골에 존재하지 않대요. 늙은 용이 가끔 비늘이 누래지는 경우가 있는데 아마 그게 아버…”
“뭐라고?”
아버지가 물었다. 그러더니 곧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넌 어떻게 왔지?”
“막뚜 아저씨가.”
“뭐라고?”
“막뚜 아저씨요. 대산 아저씨. 그 분이 데려 오셨어요.”
아버지는 갑자기 나보고 멈추라고 말하고 내 등에서 내려오셨다. 나를 보는 아버지의 낯빛은 그날 밤, 백룡의 비늘보다 더 창백했다.
“무슨 소리 하는 거냐. 막뚜 아저씨라니? 게태 노인이라니? 그 자들은 죽었어.”
난 눈을 치켜떴다. 난 무슨 소리냐며 그가 찾아온 그 날 밤과 동료들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그 얘기를 담담히 들은 아버지는 이내 우시기 시작했다. 나와 함께 출정한 그들은 모두 죽었다고 하셨다. 당신과 함께 금색 비늘을 가진 용을 잡으려다 그 용에게 모두 죽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 용을 잡으려고 용이 도망친 이곳까지 온 것이라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통곡하셨다. 아버지는 용이 복수를 하러 온 것이라고 내게 말씀하셨다. 황룡께서 노하셔서 둔갑을 해 너를 홀렸구나. 난 이 알 수 없는 광경에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이윽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근데 전 왜 살아남은 거죠?”
아버지는 고개를 드셨다. 아버지의 얼굴은 어젯밤 그 백룡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넌 용 사냥꾼이 아니었으니까.”
백룡이 말했다. 그러더니 곧 번쩍 번쩍한 황룡의 얼굴로 변하더니 거대한 입을 벌려 나를 삼켰다.

내가 깨어났을 땐 어떤 첩첩산중에 있었다. 난 화들짝 놀라 몸을 더듬었다. 다행히 온 몸은 무사했고 봇짐도 그대로였다. 난 일어섰는데 바로 앞에 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바로 앞엔 지룡골이 펼쳐져 있었다. 난 뒤도 안돌아보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난 함백산을 나도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뛰쳐나와 한양으로 되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마당을 쓰는 중이었고 몰골이 말이 아닌 나를 보며 내게 물으셨다.
“아버지는?”
난 화들짝 놀라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내가 아버지의 소식을 막뚜 아저씨께 전해 듣고 막뚜 아저씨와 아버지의 시체를 찾으러 가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꿈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막뚜 아저씨는 어디계시냐고 물었다. 난 죽었다고 말했다. 난 나 혼자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역시나 담담하게 안타깝다고 그래도 진심을 담아 말씀하시며 짐을 풀라고 말씀하셨다.
난 내 방으로 들어가 봇짐을 끌렀는데 봇짐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추락했다. 난 어안이 벙벙하게 서있었다. 봇짐은 거대한 보따리로 둔갑되어 있었다.
난 마당을 쓰는 어머니의 빗질 소리를 들으며 보따리를 풀었다. 무덤에서 파헤친 듯한 수많은 뼈가 보따리에서 한가득 흘러나왔다. 난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뼈가 각각 누구의 뼈인지 알 수 있었다. 머리만 세어보니 15개였다. 숫자가 딱 맞았다. 그 흘러내린 뼈들 옆에는 보따리 하나가 더 있었다. 난 그것을 열었다. 그것엔 황금비늘 15장이 들어 있었다.
          

  
    

                      
  


댓글 1
  • No Profile
    까치 11.10.23 19:12 댓글 수정 삭제
    좋아요! 주인공이 무엇을 깨달았는지 궁굼하네요. 그리고 왜 둔갑했는지도 쫌 궁금;; 황룡이 다시는 못올라오게 만든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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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397 단편 도마뱀 여인 김진 2011.09.02 0
396 단편 큐어 박재권 2011.09.02 0
395 단편 영원의 단면2 샤유 2011.09.03 0
394 단편 사희월도(思姬月刀) 이니 군 2011.09.04 0
393 단편 아몬-레2 먼지비 2011.09.04 0
392 단편 Spanish Guitar 김진 2011.09.05 0
단편 용 사냥1 이정도 2011.09.09 0
390 단편 마치 좀비처럼 2011.09.09 0
389 단편 폐허로 만들어진 성 Leia-Heron 2011.09.14 0
388 단편 황금빛 추억1 김진 2011.09.24 0
387 단편 리무버4 gozaus 2011.09.22 0
386 단편 글레바력 13세기 hallyeia 2011.09.26 0
385 단편 거미에게 나비를 모베 2011.10.01 0
384 단편 뼈의 발견자 Mothman 2011.10.03 0
383 단편 장미 행성 Mothman 2011.10.03 0
382 단편 화장터 목이긴기린그림 2011.10.03 0
381 단편 질식 김진 2011.10.04 0
380 단편 오덕후 김박사의 위업 OMB-J2 2011.10.10 0
379 단편 [엽편]피리 명인2 먼지비 2011.10.09 0
378 단편 괴 산 전광용 2011.10.06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