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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아몬-레

2011.09.04 16:2309.04

아몬-레는 태양의 후광을 타고 났고 힘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나이든 어른들은 그가 힘을 다루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창조는 사악한 행위이며 곧 스러질 물질 가운데 작은 질서를 세우는 일은 아무 소용이 없고 시작을 낳은 자는 끝을, 생명이 낳은 자는 죽음을, 기쁨을 낳은 자는 슬픔을, 즐거움을 낳은 자는 고통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몬-레 안에 감추어진 힘은 그 스스로가 욕망이었으므로 끝없는 혼돈의 한가운데에서 저를 끌어올려 지을 것을 부추겼다. 그래서 어느 날 아침, 어른들이 명상에 잠겨 있는 틈을 타서 아몬-레는 재빨리 해가 비추는 강의 긴 삼각주로 갔다.

맨발이 햇빛에 달구어진 모래를 밟아 사각거리는 느낌이 났다. 아몬-레는 발가락을 움직여 모래알들이 움직이는 감촉을 맛보고 눈을 들어 해를 보았다. 팔을 벌려 태양의 후광을 안은 채로 아몬-레는 노래했다.

“오, 위대하신 라, 완벽한 형상인 구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분,
그대의 힘은 줄어드는 법이 없고 매일 매일 새로 자라납니다.
그대는 불이시며 황금이시고 심장이십니다.
저녁이면 스스로 죽었다가 아침에 스스로를 낳으십니다.

그대의 빛은 마-누의 어둠을 밝히고 라일의 젖줄을 흐르게 합니다.
그대의 온기가 없다면 붉은 사막의 자칼들과 독수리들만 있겠지요.
여기 그대의 아이가 그대에게 청하여 노래합니다.
힘을, 힘을, 그대의 힘을 그대의 아이에게 주세요, 그대의 아이에게 넘쳐흐르게 하세요.”

그러자 위대한 힘이 움직였기 때문에 라의 구체도 약간 더 움직였다. 아몬-레의 피부가 따뜻해지고 머리카락에서는 바짝 마른 햇볕 냄새가 났다. 아몬-레는 그 온기에 용기를 얻고 노래했다.

“나는 지금 여기서 나의 이름을 발음한다.
감추어진 비밀이고 위력있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은 오직 나 뿐이고
그것을 입 밖으로 내어 말할 수 있는 것도 나 뿐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불러 나와 나 아닌 것들을 경계짓는다.
혼돈, 바다, 마-누로부터 내게 속하는 것들을 거둬들인다.
형상과 질서와 실체를 내게 속하는 것들에게 나누어주겠다.
나는 너희를 지은자이고, 너희는 나로부터 비롯되었다.”

아몬-레의 안에서 힘이 소용돌이치며 떠올랐다. 그 찬란히 돌아가는 수레바퀴는 사방으로 갈래진 빛을 뿜어내며 원형의 분절, 혼돈에게서 거둔 작은 승리에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 태양의 빛을 닮은 황금색이 타오르며 태초의 죽음을 음미했다. 시간 이전의 괴수로부터 비로소 세상이 창조된 것이다. 아몬-레는 그 광경이 마음에 들었다.

“불어오는 바람, 나는 그걸 숨결이라고 이름 지었지.
그것들은 내 입김에서 나오고, 내 콧구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라네.
내가 숨을 내뿜으면 하늘 끝까지 사누브의 모래바람이 일어나고,
내가 숨을 들이키면 어떤 배도 물결 위에서 돛의 힘을 빌리지 못하리라.

사방과 팔방의 바람, 너희에게 내가 이름을 지어주겠다.
너희는 하늘이 시작되는 곳에서 태어나고,
불지 않을 때에도 나에게 속해 있을 것이다.
이 모든 대기의 정들을 나로 채운다.

아몬-레는 고개를 구부려 원 안으로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것은 폭풍우가 되어 휘몰아치다가, 산들바람이 되어 떠돌다가, 모래 위의 아지랑이로 퍼져나갔다. 아몬-레의 힘은 크게 기꺼워하면서 그 자신이 윙윙대는 바람이라도 되는 듯이 기뻐 날쀠었다. 아몬-레는 자신의 머리카락과 볼을 쓸고 지나가는 바람의 감촉을 느끼면서 힘을 즐겼다.

“흘러라, 흘러라, 강이 되어라.
축축한 습기가 배어나와 응결해 물방울이 되고,
마침내 붉은 땅을 흠뻑 적셔 검은 땅으로 만든다.
모든 비가 네게서 나고 네게로 돌아온다.

너는 마르는 일이 없고 나를 제외하고 바닥을 눈으로 본 이는 없다.
라일의 젖줄, 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 마-누의 물이여,
너로부터 모든 것이 싹터 자라나고 갈증을 아는 것들이 목을 축이며
고개를 들어 우러러 누가 생명을 그들에게 주었는지 볼 것이다.”

아몬-레는 원형의 대기를 뚫고 손을 뻗어 한가운데를 따라 선을 그었다. 그의 안에서 힘이 흘러나와 손끝으로부터 방출되어 땅에 그어진 선을 따라 물이 차올랐다. 아몬-레가 축복한 물은 그가 서 있는 태양이 떠오르는 강을 본따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아몬-레의 내면에서 힘은 유장한 강처럼 느리지만 끊이지 않고 흘러가고 있었다. 그 멈출 수 없는 힘은 아몬-레를 자기 안에 빠뜨리고 헤아릴 수 없는 물결과 흐름들로 창조를 찬미했다. 강으로부터 습기가 배어나와 아몬-레의 세상이 더욱 비옥해지자 식물들이 싹터 자라기 시작했다.

아몬-레는 자신이 행한 것들, 어른들이 그에게 금지했던 것들을 보고 크나큰 즐거움에 사로잡혔다. 힘은 욕망이며, 질 좋은 포도를 발로 으깨 만든 포도술, 진흙 항아리 안의 거품 이는 맥주처럼 취하게 하는 것인 까닭이다. 그는 참을 수 없는 기쁨 속에 팔을 벌리고 라에게 노래했다.

“그대는 내게 기쁨을 가져다주시는 분입니다.
오, 즐거워라! 춤추고 노래하자.
내 안을 그대의 열기와 빛으로 채우시네,
그대의 힘을 감히 무엇에 비길 수 있으리?

그대는 이기시는 분이며 적수가 없으신 분, 힘 있는 분이십니다.
그대의 눈부신 후광이 나를 감싸 올려 안으시니
그 안에서 아무 부족함 없이 오직 즐거워하리다.
왜냐하면 그대는 라이시며, 나는 그대의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간직한 힘은 그로 만족하지 않고 아몬-레의 충동을 계속 부채질했다. 그에게 그가 한 행위들은 기껏해야 아이들도 할 수 있는 장난에 지나지 않으며 진정한 힘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은 아직 보지도 못했다고 속삭였다. 아몬-레는 어른들의 충고-‘창조는 모든 행위 가운데서 가장 사악한 행위이다’-를 기억해내고 머뭇거렸으나 그를 타고 넘치는 힘의 감각이 죄책감을 억눌렀다. 그래서 그는 이때까지 했던 것보다 더욱 더 멀리 가기로 마음먹었다. 아몬-레는 다시 팔을 들어 올리고 그를 따사롭게 하는 태양에게 노래했다.

“그대는 가장 강하신 분, 모든 것의 주인이시며 어버이십니다.
나는 작고 가냘프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대가 마음만 먹으면 내게서 힘을 빼앗고 내게 벌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대가 그렇게 하고자 하신다면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까?

하지만 그대는 내게 결코 화내지 않으십니다.
내게 즐거움을 채워주실 뿐 빼앗아가지 않으십니다.
설마 그대의 아이가 행한 일을 언짢아하지는 않으시겠지요,
만일 그랬더라면 전능하신 그대는 내게 힘을 내려주시지 않았을 테니까.”

원형은 이지러지지도 않았고 변화하지도 않았다. 아몬-레는 그 완벽한 모습으로부터 용기를 얻고 자신이 행하는 일에 설령 어른들이 화내고 꾸중한다 해도 그것이 완벽한 금지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금지되는 일이라면, 애초부터 가능하지도 않는 편이 합당하기 때문이다.

아몬-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면의 힘을 골랐다. 비록 그에게 주어진 힘은 무한했지만, 그가 시도하는 일은 한 번도 있었던 적이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동안 힘을 고르게 하고 내면을 계속 응시하자, 케프리의 라와 같은 구로부터 찌르는 듯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몬-레는 소리쳤다.

“나는 알려지지 않은 자이다.
하늘보다도 먼 곳, 피안보다도 깊은 곳에 있다.
나의 진정한 이름은 어떤 문자도 표기할 수 없고,
나에 대해서 무엇이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자는 없다.

나의 힘은 너무도 강력해서 헤아릴 수 없고
너무도 위대해서 그 위대함을 가늠할 수 없고
너무도 비밀스러워서 위엄의 끝을 알지 못하고
할 수 없는 일은 나조차 모른다.“

아몬-레는 고개를 숙여 땅 위에 침을 뱉어 축복하고, 흙을 반죽해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게 형상을 빚었다. 그러자 곧 그 형상들은 꼬물거리면서 생명을 얻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몬-레는 인간을 창조해낸 것이다. 그의 안에서 헤아릴 수 없는 힘의 상당수가 소진되어 아몬-레는 기진맥진해졌다.
바로 그 때 아주 조그마하게, 모기가 앵앵 울어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주의깊게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도 힘들 정도의 소리였다. 아몬-레는 그 소리가 그의 피조물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은 우리를 어둠 속에서 끄집어내주셨습니다.
눈뜨고 보고 알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모든 곳을 메우고 있던 어둠을 꾸짖어 내쫓으셨습니다.
당신의 빛으로 모든 곳을 가득히 채우셨습니다.

당신의 후광은 눈부신 황금색으로 빛납니다.
당신의 힘은 끝 간 곳을 알 수 없습니다.
당신은 세상 전체를 지으신 분이고, 힘 그 자신입니다.
우리는 당신을 찬양합니다.”

그 노래를 듣고 아몬-레는 매우 기뻤다. 그는 자신의 후광을 한껏 두르고 장엄한 노을과 붉은 구름들 사이로 나타나 그가 창조한 세계를 내려다보며 화답했다.

“나는 빛이고 라의 영광이다.
나보다 너희를 복되게 할 수 있는 자는 없으리.
나는 혼돈으로부터 세상을 지었고 너희에게 생명을 주었으니
나의 힘은 세상 전체보다도 크구나.

나를 위해 노래하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더욱 큰 기쁨을 주겠다.
내게 제공화를 바쳐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곱절의 곱절로 돌려주리라.
그 무엇도 내가 짓지 않은 것은 없지만
너희가 내게 돌리는 것이 나를 기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작디작은 인간들은 아몬-레의 원 안에서 그를 우러러 보며 무수히 절하고 또 여러 가지 감사의 기도를 중얼거렸다. 아몬-레 안에서 줄어든 힘은 자신이 행한 결과에 만족스러운 듯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아몬-레는 지친 채 미소를 지으며 원 안을 내려다보았다. 어른들조차 그가 행한 것을 보면 그의 힘이 얼마나 강대한지, 그가 자신의 힘을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는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모두가 아몬-레를 향해 엎드려 있는데, 그 가운데 홀로 일어서 목청껏 소리치는 자가 있었다. 아몬-레는 그가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오, 전능하시고 전지하시며 세상을 지으신 분,
빛을 쪼개 어둠을 갈라 낮과 밤을 여신 분,
한 손으로 강 전체를 퍼 올리고 바닥을 드러내시는 분,
생명을 주시고 길러 무성히 자라게 하신 분,

당신의 작디작은 종이 당신께 답을 구합니다.
오, 감히 당신의 뜻을 헤아리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지 마소서.
당신은 전지하시기에 답해줄 수 없는 질문은 있을 수 없고,
제 의문 또한 당신이 지어 제 혀로 하여금 말하게 하신 까닭입니다.”

아몬-레가 주의를 기울이자 한줄기 빛이 떨어져 그를 황금빛으로 물들였기 때문에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들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아몬-레가 답했다.

“내가 네게 대답해 줄 수 없는 것이 무엇이 있을쏘냐?
나는 빛이 어떻게 처음으로 시작되었는지 안다.
나는 네가 딛고 선 강가의 모래알 수도 헤아릴 수 있다.
나는 네가 가장 비밀스럽게 감춰 지닌 생각도 환히 듣는다.

나의 이름을 제외하면 내가 답해줄 수 없는 것은 없다.
그러나 나의 이름을 알려줄 수 없는 것은 알지 못해서가 아니다.
발음해서는 안 되는 이름을 들으면 세계가 견디지 못하고 불타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묻거라, 나 자신의 이름을 제외하고 무엇이든 답해주겠다.”

그러자 그는 두 팔을 벌린 채 아몬-레에게 부르짖었다.

“당신이 지으신 의문의 답을 당신께 구합니다.
오, 전지하신 분이시여, 답해주소서.
당신이 한 말씀만 하시면 어둠이 걷히고 빛이 비치울 것이니
당신이 아니고서는 제 의문에 답해줄 이는 없습니다.

세상이 지어진 까닭은 무엇입니까?
저희가 창조되어 당신을 우러러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 입니까?
당신께서는 저희가 무엇을 하시면 기뻐하시겠습니까?
창조는 어째서 행해진 것입니까?”

그 질문에 아몬-레의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원에서 한걸음 물러났고 그러자 낮과 밤의 운행이 멈추었다. 시간의 바깥에서 아몬-레는 무어라고 말할지 고민했다. 그의 내면에 감도는 힘의 충동이 아니었다면 그가 창조를 행할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자신을 우러러보는 피조물들에게 그렇게 대답하면 원하는 대답을 얻고 기뻐할까? 한참동안 생각했지만 뾰족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으므로 한걸음 나서서 시간 속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애매하게 말했다.

“자, 내가 너의 의문을 풀어 주겠다.
나는 전능하고 강력하며 힘 그 자신이다.
내 안에는 세상을 마흔 개라도 창조할 힘이 일렁이고 있다.
힘은 소용돌이치고 이따금 떠오르며 그 자체로 의지로 화하기도 한다.

내 안에 너희의 상이 맺혔고, 그래서 너희가 그 순간 있게 되었다.
나는 오로지 창조가 즐겁기 때문에 그를 행했다.
너희는 나로부터 뿜어져 나온 속삭임, 기쁨, 춤이다.
내가 창조할 수 있기 때문에 너희를 창조한 것이다.”

그러나 가까스로 대답하고 한 숨 돌리기도 전에 다시 피조물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면 전능하신 분이시여, 답해주십시오.
전지는 전능의 한 속성이므로
전능하신 당신은 전지하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당신만이 모든 것의 비밀을 알고 계십니다.

창조가 즐거움에서 비롯되었다면
그 후에 무엇이 당신을 즐겁게 하겠습니까?
당신계서는 저희가 무엇을 하면 기뻐하시겠습니까?
저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까?”

그 질문에 아몬-레는 원에서 두 걸음이나 물러섰다. 이 작은 피조물의 생각치도 못한 질문이 그의 머리를 지끈지끈 아프게 했다. 간단히 손가락 하나로 눌러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피한다면 그는 진정한 창조가 아니라 기껏해야 모래를 파 헤집었다 메웠다 하는 어린애 장난을 한 것에 불과할 터였다. 아몬-레는 낮과 밤의 운행을 멈춰 둔 채 고심을 거듭했으나, 정말로 그는 창조 이후에 관해서는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는 것은 그의 전지함을 해치는 것이 아닐까?

그러자 그의 내면에서 힘이 다시 그에게 속삭였다. 창조된 것들이 갓 태어난 아기처럼 끝없는 질문을 하는 것을 멈추게 하려면, 질문의 답 역시 창조하면 된다고 말이다. 순간적으로 창조는 사악한 행위이고 필연적인 사멸을 피하기 위해 거듭 죄를 반복하게 된다는 어른들의 경고가 다시 떠올랐지만, 아몬-레는 이미 창조의 즐거움을 맛본 터였다. 그래서 그는 내면의 힘이 속삭인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고 말했다.

“호기심 많은 아이야, 듣거라.
너희는 작고 어리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형상 너머에 더욱 진실한 본질들이 있다는 것을.

생 너머에는 또 다른 생이 있다.
지금 너희가 겪고 있는 생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생의 시간 동안, 내세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두르지 않는다면 미처 준비를 마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피조물이 물었다.

“참으로 새로운 일깨움, 짧은 지혜로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저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본질은 무엇입니까?
생 너머에 있는 생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을 준비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질문하는 것을 노여워하지 마소서.
당신이 내다보시는 것을 저희가 보지는 못합니다.
당신께서 일러주시지 않으면 저희가 어찌하겠습니까?
오로지 당신께 저희를 맡길 수밖에요.”

아몬-레는 낮과 밤을 멈추고, 약간의 창조를 행하여 세상의 경계 안에 풀어 넣은 뒤 다시 세상 안으로 고개를 숙였다.

“너희의 생에는 다섯 가지 괴로움이 있다.
그것들은 너희 안에 아문 상처 자국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생은 불완전하고, 괴로움들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세, 진정한 삶으로 가야 한다.

위장은 굶주림을 불러오고, 허파는 지침을 불러온다.
간은 병듦을, 뇌에는 고뇌와 두려움이 머문다.
마침내 심장이 멈추면 너희는 영원한 사망으로 떨어지고 만다.
내생에서만이 다섯 가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말이 끝나자 절하고 있던 인간들은 모두 울고 몸을 뒤채며 호소했다. 하지만 질문하는 자는 눈물 흘리면서도 여전히 소리쳐 물었다.

“오, 힘이시여, 이것은 무슨 일입니까?
당신께서 지으신 것들이 완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전능함에서 불완전함이 나올 수 있습니까?
저희를 창조하시고 또 고통을 창조하신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당신의 종들은 놀랍고 두려워 부르짖나이다.
눈물 흘리고 옷을 잡아 찢으며 재를 머리에 뿌리나이다.
오, 저희를 고통에서 건져 주소서!
저희를 다시 완전함으로 만들어주소서.”

아몬-레는 이제 다 되었다고 생각하고 속으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는 전능하고 완전하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이 있다.
그리고 불완전함은 완전함을 질투하기 마련,
나의 불완전한 형제들은 나의 힘을 시샘하고
내가 행한 것들을 쥐어뜯어 훼방 놓으려고 애썼다.

여럿이 힘을 모아 달려들어
내가 행한 창조에 제각각 상처를 입혔으니
싸워 쫓아버리고 아물게 했지만
불완전해진 생은 고통이 가득하구나.”

아몬-레는 질문하는 자를 집어 올렸다. 그가 금빛 광선 속으로 떠오르자 인간들은 경외에 차서 꿇어 엎드렸다. 아몬-레가 그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진짜 몸인 카(저자 주 : 영혼)를 만들어두었다.
나의 적들이 너희를 죽음으로 이끌기 위해 만든 심장으로부터 말이다.
너희는 죽으면 적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듯이 보이지만,
그로부터 진정한 생으로 이를 길이 주어진다.

보아라, 호기심 많은 이 자와 같이 해야 한다.
정해진 양식대로 돌을 잘라 무덤과 방을 만들어라.
몸에서 다섯 가지 장기를 꺼내고 방부제에 적신 천으로 감아라.
‘죽은 자의 서’를 정확하게 낭독해 의식을 치러야 한다.”

아몬-레는 바위들을 잘라서 거대한 정사면체 모양으로 쌓고, 질문하는 자의 장기를 적출하고 붕대로 칭칭 감았다. 죽은 자를 인도하는 재칼과 따오기가 무덤의 건축양식이 적힌 ‘암소의 서’와 매장 의식이 적힌 ‘죽은 자의 서’를 물고 와서 고개를 조아리는 인간들에게 떨어뜨렸다. 질문하는 자는 그 와중에서도 물었다.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분이시여, 마지막 질문에 답해주소서.
당신의 시기심 많은 형제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정해진 절차를 따르지 못하면 그들에게 떨어집니까?
내세에서는 이 모든 괴로움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오, 저는 너무도 두렵습니다.
저를 저들로부터 구해주소서.
괴로움을 벗어나 순수한 기쁨 속에 들게 하소서.
저의 모든 것을 오로지 당신께 맡기나이다.”

아몬-레가 답했다.

“나의 적들은 내가 그들의 공격을 물리친 걸 알고
분해하며 생과 내세의 사이로 숨어들었다.
죽음의 땅에서 뭉쳐들어 하나의 큰 악이 되었다.
그것은 혼돈의 주, 거대한 뱀, 아페브라고 부른다.

내가 알려준 절차를 그대로 행한다면
질투심에 눈 먼 아페브는 너희를 알아보지 못하기에
너희는 괴로움을 벗고 내세로 향한다.
그렇지 못하면 너희는 굶주린 뱀에게 삼키우리라.”

아몬-레는 질문하는 자의 입을 붕대로 칭칭 틀어 매어 버렸다. 붕대에 감긴 시체를 석관 안에 던져 넣고 봉인석을 박았다. 아몬-레는 홀가분해져서 말했다.

“너는 최초로 죽은 자, 매장된 자, 죽은 자의 왕이다.
너는 손에 생명을 상징하는 앙크를 들고
심판관이 되어 죽은 자 앞에 서리라.
너는 악인의 영혼은 아페브에게 내주고 선인은 통과시킨다.

이로써 마아트(저자 주 : 율법)를 세웠으니 이제 모두가 알 수 있으리라
무엇이 괴로움이고 무엇이 진정한 삶이며
내세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대로 행한다면 너희는 영원한 생에 이를 수 있으리라.”

그러자 피조물들은 바쁘게 움직이면서 바위에 구멍을 내고 쐐기를 박아 돌덩어리들을 잘라내서 강물을 따라 뗏목으로 날랐다. 첫 번째 피라미드 주위로 다른 피라미드들이 쌓아올려 지는 광경을 보면서 아몬-레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심지어 사제들은 암소의 서를 두고 해석에 관해 토론해서 더 거대하고 화려한 신전과 조각상, 죽은 자들의 도시를 세우고 있었다. 원 안은 온통 정교하게 세공된 도시들이 가득 채웠고, 왕들은 전쟁을 벌여 노예를 끌어다 자신들의 거대한 무덤을 만들었다. 시간의 밖에서 세계의 시간은 무한히 빠르게 흘러갔고, 시간의 안에서는 왕조들이 명멸하고 문명들이 자라났다가 다시 사그라 들었다.

셀 수 없는 왕국들이 아몬-레의 총애와 싫증에 일어섰다가 무너진 뒤, 아몬-레는 모래 위에 그려진 원 앞에서 오랫동안 쪼그리고 있어서 다리가 뻣뻣해진 것을 느끼고 다리를 주무르며 일어났다. 그 순간, 모래 위의 원 건너편으로부터 오로지 신적인 시각으로만 똑바로 응시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외양의 거대한 형체와 마주쳤다. 그것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으면서 아몬-레가 고개를 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형체는 오그도아드 일족의 지식에 속한 것도 아니었고, 아몬-레가 빚은 세상의 지식에 속한 것도 아니었으므로 아몬-레는 그것이 무엇인지 이름조차 알 수 없었다. 아몬-레가 물었다.

“오, 내 앞에 서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밤의 짐승인가, 저물어가는 해의 어스름인가, 깨어날 수 없는 꿈인가?
뭉쳐진 회색 진흙 같지만 무수히 갈라지는 소용돌이로 회전하고 있고,
커다란 뱀 같기도 하지만 뼈가 갈라진 배 밖으로 이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와 있구나.

흡사 그림자 같기도 하건만, 나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이지는 않지.
그렇다면 대체 너는 누구냐, 나의 원 건너편에 웅크려 앉아있는 자는?
무엇을 바라 잠자코 침묵을 지킨 채 불타는 눈으로 노려보고 있는가?
입이 있다면 입을 열어 답하고, 없다면 내가 답할 입을 지어주리라.”

그러자 그 형체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너로부터 창조되었다.
네게 잠을 방해받은 바다로부터 나왔다.
상처 입은 마-누로부터, 빼앗긴 것들을 되찾기 위해 태어났다.
네가 만들어낸 조잘거리는 것들의 소음에 깨어났다.

나는 네가 범한 창조의 죄, 가장 거대한 사악함, 네 거짓말이다.
나는 질투하는 자이고 괴로움이고 한 덩어리가 된 형제들이다.
나는 혼돈의 주, 대적, 거대한 뱀이다.
너는 나의 이름을 아페브라고 부른다.”

말을 마치고 아페브가 일어서더니, 단숨에 세계의 원을 뛰어넘어 달려들었다. 아몬-레를 떠밀어 쓰러뜨리고, 올라타서 손으로 목을 죄었다. 드리운 어둠 속에서 두 형체는 모래밭 위를 구르면서 엎치락뒤치락했다. 아몬-레는 캑캑거리며 적의 손아귀를 뿌리치려 애썼지만 숨이 막혀서 적을 태워버릴 주문, 세상의 창조를 되돌릴 단어, 그의 진정한 이름을 발음할 수가 없었다. 아몬-레가 힘이 빠질수록 상대는 점점 커지고 형체가 뚜렷해졌다. 아페브가 아몬-레의 눈을 들여다보며 으르렁거렸다.

“너는 사악한 행위, 금지된 죄를 범했다.
무와 혼돈으로부터 쉽게 사그라지는 질서를 창조했다.
생명을 만들기 위해 고통과 죽음을 불러들였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거짓말했다.

네 충동에 의해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
보이느냐? 네 원 안에서 태어나고 죽어가는 인간들이.
아무 목적도 없이 만들어져 속임수에 방황하는 모습이.
네 죄가 어디까지인가? 네 죄가 어디까지인가?”

그 때 아몬-레의 버둥거리는 발끝에 우연히 땅이 채여 세계의 경계인 원이 흐트러졌다. 세상이 깨져 내용물이 쏟아지자 그 반영인 아페브도 비틀거렸으므로, 아몬-레는 적을 확 떠밀고 몸을 일으켰다. 적이 다시 달려들었지만 그의 입은 구속에서 벗어나 있었고, 아몬-레는 자신의 죄를 노려보면서 만물을 뜻하는 한 단어 또는 한 단어로 된 세계를 발음했다.

삽시간에 어둠이 사라지고 다시 케프리이자 아툼인 라가 완벽한 구체의 형상으로 나타나 찬란한 금빛 햇살을 발했다. 적은 고통에 차 비명을 질렀다- 녹아내리고, 짜부라지고, 그 다음에는 뭉개진 원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창조한 모든 것과 자신의 미약한 생을 무덤을 만드는데 소모하던 피조물들과 그 모든 거짓말들이 아페브와 함께 다시 혼돈으로 돌아가 버렸다. 자신의 세계를 파괴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죄에서 놓여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몬-레가 헐떡이며 고개를 들어 올리자 태양의 원반을 머리에 이고 있는 어른들이 보였다. 아침 명상이 끝나고 일어났을 때 아몬-레가 돌아오지 않자 직접 찾으러 온 것이다. 이미 어른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꾸짖지도 않았다. 아몬-레는 내미는 손을 붙잡고 일어나서 모래를 털고, 어른들과 함께 모래밭을 떠났다. 반쯤 지워진 원을 뒤로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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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썼던 오지맨디어스의 프리퀄에 해당합니다. 영지주의쪽의 얄다바오트 개념을 끌어왔고, 오그도아드는 이집트 초기의 창세신화에서 언급되는 창세신들의 명칭입니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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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123 11.09.11 15:56 댓글 수정 삭제
    힘내세요 응원하고 있습니다.
  • No Profile
    니그라토 11.09.27 14:14 댓글 수정 삭제
    멋진 글입니다. 이 우주가 설령 신으로부터 창조되었다 할지라도, 저런 식의 해석만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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