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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무너뜨리리라

2011.03.22 22:5903.22


그것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메마른 땅과 꿀물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 나눠진 후로부터. 모든 것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많은 이들이 메마른 땅에서 축복의 땅으로 자유롭게 넘나들었지만, 언젠가부터 메마른 땅과 축복의 땅 사이에 장벽이 세워지며 메마른 땅의 이들은 축복의 땅에 발을 들여놓기가 힘들어졌다. 그리고 축복의 땅에 들어가려면 목숨을 걸고 장벽을 넘어야 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장벽을 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장벽을 넘다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장벽을 넘던 사람들 중 일부는 장벽을 넘었지만, 곧 장벽을 세운 이들과 동화되어 가 장벽을 높이고 더 높였다. 그렇게 장벽이 나날이 높아져가자 사람들은 장벽을 넘는 것을 포기하고 장벽 바깥에 터전을 잡으며 장벽을 우러러 보았다. 어쩌면 넘을지도, 어쩌면 넘지 못할지도 모르는 벽을 우러러 보면서.
그런데 어느 날 축복의 땅의 지도자가 여러 부하들을 이끌고 메마른 땅에 와서 말했다.

“축복의 땅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은 내 말을 잘 들어라! 축복의 땅은 장벽을 목숨 걸고 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너희에게 알려주려고 한다. 우리는 장벽에 문을 만들 것이다. 아주 커다란 문을 말이다. 하지만 그 문을 그냥 통과하느냐? 아니다. 통행료를 내야 한다. 그렇지만 너무 걱정은 하지 마라. 돈이 없는 너희를 생각하여 통행료를 싸게 책정할 테니 말이다.”

그 지도자의 말은 메마른 땅의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나가 문으로 몰려들게 만들었다. 그들은 축복의 땅의 지도자의 말대로 아주 싼 통행료로 축복의 땅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날이 커다란 문은 작아졌고, 통행료도 나날이 비싸져갔다. 사람들은 통행료를 마련하기 위해 메마른 땅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행료는 메마른 땅의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싸졌다. 게다가 문은 엄청나게 작아져 문을 통과하려면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했다. 그러자 축복의 땅의 지도자가 메마른 땅으로 와서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축복의 땅에는 메마른 땅의 사람들을 수용할 공간이 없다. 따라서 매년 시험을 치겠다. 그 시험에서 아주 우수한 성적을 올린 사람 세 명을 뽑겠다. 뽑힌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우리에게 지불하고 축복의 땅으로 입성하면 된다. 거기 가면 우리에게 지불한 돈보다 더 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축복의 땅의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책자를 나눠주었고, 사람들은 그 책자에 몰두하며 공부 했고,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지불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공부한 것과 일한 돈으로 사람들은 축복의 땅 지도자가 실시하는 시험을 쳤다. 축복의 땅에 입성하기 위한 단 세 명에 뽑히기 위해서.
그런데 그런 그들 사이에서 황소의 등에 올라탄 한 소년이 나타나 외치더니, 메마른 땅과 축복의 땅을 나누고 있던 벽으로 돌진했다. 소년의 목소리는 메마른 땅 전체로 울려나갔다.

“저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죽어라 일하고 미치도록 공부를 해야 한다면, 나는 저 벽을 무너뜨리겠어!”

그리고 소년의 황소는 소년을 태우고 벽과 부딪혔다.

                                           무너뜨리리라

소년을 등에 태운 황소가 여전히 벽을 향해 달려가 부딪치고 있었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그러나 벽은 무너지기는커녕 금조차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소의 뿔은 세워져 무너지지 않은 벽을 향해 자신의 뿔을 계속 세워 몇 번을 부딪쳤다. 소년은 황소에게 할 수 있다며 황소에게 힘을 내라고 말했지만, 황소가 힘을 다해 부딪쳐도 벽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고 뿔만이 무뎌질 뿐이었다. 결국 소년은 황소의 고삐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소년은 황소의 고삐를 돌리고는 황소의 등에 서서 사람들한테 말했다.

“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벽은 무너질 거예요. 어떻게든 무너뜨릴 거예요. 문을 부수고 벽을 무너뜨릴 겁니다.”

소년의 목소리에서는 당당함이 묻어나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혀를 차며 소년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소년은 자신에게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을 보자 힘이 빠졌다. 목소리도 점차 작아졌다. 그는 황소에 똑바로 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황소는 한숨을 쉬는 소년을 등에 태우고 터벅터벅 집으로 향했다.
  소년은 맨 처음 황소의 등에 타고 벽을 향해 돌진했을 때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자신이 황소를 타고 벽을 무너뜨린다면 환호 해줄 거라 믿었다. 그러나 벽은 꿈쩍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자신을 냉대하며 심지어 혐오 했다. 저 견고한 벽을 무너뜨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벽을 넘어 축복의 땅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해도, 이전에는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러니 벽을 무너뜨리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집에서 일 하고 있던 황소의 등에 타고 벽을 향해 돌진하기로 맘먹었고 부딪혔다. 아직까지는 벽에 금하나 나지 않았지만.
소년이 황소를 타고 집에 돌아오자, 한 소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녀는 소년의 황소에 달려가 당황한 듯 말했다.

“또 거기 간 거야?”

  당황한 표정을 짓는 소녀에게 소년은 별 일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며 황소의 등에서 사뿐히 내려 소녀를 보았다. 소녀는 눈을 찌푸리고 한 것 쏘아붙일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소년은 그런 소녀의 생각을 읽었는지 말을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소녀도 소년의 그런 생각을 알고 있었는지 좀 더 세게 소년을 몰아붙였다.

“네가 아무리 그래도 저 벽은 안 무너진다니까. 왜 그래? 애꿎은 팔로스만 고생시키잖아! 팔로스가 얼마나 힘들어 하는 지 알아? 거의 매일 같이 저 벽에 부딪쳐서 뿔이 예전보다 엄청 작아졌다고. 꽤 크고 멋있던 그 뿔이 말야.”

그러면서 소녀는 안타까운 눈으로 황소의 뿔을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소년이 고개를 돌리며 소녀에게 외쳤다.

“넌, 저 축복의 땅에 가고 싶지 않아?! 저 축복의 땅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여기서 계속 일만하다가 죽을 거야? 그건 아니잖아. 그리고 난 그러긴 싫어. 싫다고!”
“그럼 공부를 하면 되잖아!”
“그럼 뭐해 돈이 없는 걸!”

소년은 소녀의 외침을 다시 되받아치고는 소녀와 황소를 남겨둔 채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소녀는 더 이상 소년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끝에 외친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소녀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소녀는 밖에서 예전을 떠올렸다. 그들, 소년과 소녀가 장벽 가까이에 도착했을 때를. 그때는 소년도 소녀와 함께 열심히 일과 공부를 병행했었다. 그들은 메마른 땅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서 태어났었다. 그곳은 메마른 땅에서도 가장 메마르고 척박한 땅이었다. 그래서 물 한 통도 귀한 곳이었다. 그런 그곳에서 그들은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 때! 벽과 가까운 곳에서 한 소식이 들려왔다. 공부를 하고 시험을 쳐서 통과해서 돈을 내면 축복의 땅에 들어갈 수 있다는 소리가.
그들은 그 소식에 어쩌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 메마른 땅에서 척박한 땅을 개간 하고 나면 할 것은 공부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고향의 유일한 젊은이인 소년과 소녀는 시험을 치기 위해 고향을 버리고 장벽 근처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장벽 근처로 거처를 옮겼지만 그곳도 고향과 마찬가지여서 그들의 살림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황소로 땅을 갈아 농사를 지어 돈을 마련하면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돈과 쌓은 지식들로 시험을 쳐 시험에 통과했지만, 소년과 소녀가 축복의 땅의 지도자에게 건네야 할 돈의 액수가 모자라 세 명에 뽑히지 못했다.
소년과 소녀는 다시 한 번 세 명에 뽑히기 위해 일 년 동안 다시 열심히 일하며 공부했는데, 돈이 모자라지 않기 위해서 공부하는 시간을 줄이며 일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시험을 보는 날이 돌아와 그들은 시험을 쳤다. 두 번째 시험에서는 소년은 통과하고 소녀는 아깝게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축복의 땅의 지도자에게 내야 하는 돈의 액수도 일하며 공부하는 동안 올라가 그 때도 소년과 소녀는 세 명에 뽑히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반드시 시험에 통과해 돈을 지불하고 축복의 땅에 들어가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들은 몇 번을 시도했지만 시도는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그들은 시험에 통과할 수 없었다. 돈이 부족 하던가 아니면 시험 점수가 통과점수에 미달이거나 했기 때문이었다. 소년은 그것에 절망했다. 아무리 해도 시험에 통과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다섯 번째 떨어진 때 집으로 돌아와 창문으로 장벽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통과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저 벽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두 눈에 힘을 주며 그렇게 다짐했다. 소년은 다음날을 시작으로 유일한 돈벌이 수단이었던 황소의 등에 올라타 벽을 향해 돌진해 부딪혀, 먼지와 함께 주위로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녀는 옛일의 회상을 중단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들어가자 소년이 고개를 숙이고 식탁에 앉아 한숨을 쉬고 있었다. 소녀는 그의 앞에 가 앉으며 소년에게 물었다.

“좀 전에 나한테 고함지르고 가더니만 왜 그래?”

그러자 소년은 한숨을 다시 한 번 쉬고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축 처진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긴 했는데, 여전히 무너지지 않고 있고, 심지어 금조차도 가지 않아.”

소녀는 소년의 이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소년은 힘들어도 언제나 밝게 웃었기 때문이었다. 항상. 그는 축 처진 모습은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한 숨을 쉬고 축 처진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포기하고 다시 공부할 거야?”

소녀가 그렇게 묻자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고, 모르겠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포기 할지 아니면 계속 할지, 고함을 지르고 들어와서 소녀가 들어올 때까지 생각했다면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의 뒤쪽 창문 밖으로는 어느새 달빛이 비치는 밤이 메마른 땅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소년은 자신의 일에 회의를 품고는 다음 날 거리로 나섰다. 산책이라도 하면서 머리 좀 정리할 속셈이었다.
거리로 나가 산책을 하면서 그는 거리를 둘러보았다. 거리는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공부를 하기 위해 학원이라는 데를 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가방에 책을 한 가득 넣고선 바쁘다는 듯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소년도 공부를 할 때는 그들처럼 학원에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학원은 사치일 뿐이었다. 학원비는 메마른 땅에서 돈을 잘 버는 사람들만 다니는 데였다. 간혹 부유하다고 할 정도는 아닌 사람들이 학원을 다니는 걸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번 돈의 반을 학원비로 지출하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하루 일용할 양식을 사는 데 필요한 아주 적은 금액의 돈만 남겨두고 저금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그들 중에서 단 한명도 시험에 통과해 저 벽을 넘었다는 사람을 소년은 본 적이 없었다. 그들도 소년과 소녀처럼 점수는 통과했는데 돈이 축복의 땅의 지도자에게 내야 할 돈이 부족해서였다. 그런데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돈은 지불해야 할 액수에서 한참이나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어쩌면 하는 생각으로 계속 시험에 도전하고 있었다. 최근에 축복의 땅의 지도자가 돈을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원래 지불해야 할 돈 중 반만 지불하면 된다는 제도를 추가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세 명에 뽑히는 사람도 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뽑히는 사람보다 뽑히지 못하는 사람이 다수로 많았다.
소년은 거리를 걷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장벽까지 와 있었다. 벽은 언제 보아도 높고 길었다. 그는 벽에다 손을 가져다 대었다. 지난 5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황소 팔로스의 등에 올라타 벽을 향해 부딪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벽은 딱딱하며 거칠어서 마치 소년에게 나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소년은 눈에 힘을 주며 벽을 노려보았다. 반드시 무너뜨리겠다고, 내 모든 걸 걸어서라도 이 벽을 무너뜨려버리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그 때 뒤에서 누군가의 기쁨에 찬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소년은 누군가 하고 몸을 뒤로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자신보다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소년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고는 소년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당신이죠? 이 벽을 무너뜨리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사람이.”

소년은 그렇게 묻는 남자에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런데요? 라고 말했고, 남자는 소년에게 본론을 말했다.

“나도 당신의 마음처럼 이 벽을 무너뜨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일단 벽 근처로 온다면, 뭔가 방도가 있지 않을까 하고 와봤습니다. 그런데 오는 도중 당신에 대한 얘기를 사람들한테 들었습니다. 몇 년 동안 벽을 무너뜨리겠다고 황소의 등에 타고 벽을 향해 돌진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이죠.
그래서 전 궁금했습니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그런 짓을 하는 걸까 하고요. 그런데 벽에 금하나 가지 않았다면서요?”

소년은 남자의 말이 불쾌했다. 팔로스의 등에 올라타 벽을 부딪치는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그런 소년을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소년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계속 남자의 말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바보 같이 벽을 향해 돌진하네요? 무너지지 않을 저 벽을 향해서 말이에요.”
“그래서, 저를 비웃기라도 할 건가요?”

소년은 남자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말했잖아요. 나도 저 벽을 무너뜨리고 싶다고요. 그러니 당신이 대단해서 그럽니다. 아마도 난 그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거든요. 그래서 하다가 안 되면 다른 길을 찾으려고 했을 겁니다.”

소년은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말에 왠지 기분이 우쭐해졌다. 처음으로 황소의 등에 올라타 벽에 부딪히는 자신을 칭찬하는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소년은 남자를 착각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며, 남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남자에게 물었다.

“그럼 저하고 같이 이 벽을 무너뜨리고 싶으시다는 겁니까?”

그러자 남자는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저 벽만을 향해 돌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드네요.”

소년은 그 말에 고개를 갸웃 거리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실 웃으며 메마른 땅과 축복의 땅을 가르는 장벽에 난 유일한 문을 가리켰다. 그러자 소년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은 잊고 있던 통성명을 나눴다.
그러고 난 후 그들은 근처 식당으로 향해 음식을 주문하고는 대화를 계속했다.

“제가 이곳으로 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메마른 땅과 축복의 땅을 어떻게 연결시킬까? 라고 말이죠. 그런데 역시 벽이 걸리더군요. 그래서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봤습니다.
가장 먼저 벽 위에 올라가 망치로 깨 부시며 내려오는 것이죠. 하지만 벽을 올라가는 것도 힘들뿐더러 올라갔다고 해도 내려찍기도 힘들 것 같더군요. 그래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면 시험을 쳐서 안에 들어가 체제를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원래 제가 바라던 것과는 다른 일이었고, 그 안에 들어간다고 해도 제게는 그런 힘이 없더군요. 그래서 문을 부수는 게 어떨까 했습니다.”

그 말과 함께 그들이 주문했던 음식이 나왔고 대화는 잠시 중단되었다. 그리고 주문했던 음식들이 전부 탁자에 놓이자 남자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문을 부수고 난 후, 사람들에게 외치는 겁니다. 보세요, 문을 부셨습니다. 저 문은 별 거 아닙니다, 저 벽 또한 별 거 아닙니다. 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다 같이 벽을 무너뜨리는 거리면 될 거라고 말이죠.”

소년은 남자의 음식을 입에 넣으며 남자의 말을 경청하며 생각했다. 그것도 괜찮은 방법일 것이라고 하면서. 하지만 소년은 그것도 불가능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자신에게 보인 태도를 보았을 때는 말이다. 그들은 소년의 행동에 아주 싸늘한 시선을 보냈고, 어떤 이들은 무관심 했다. 그런데도 문을 부수고 그럴 수 있을까? 소년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그런 소년의 생각을 모르고 있는 듯 보였다.
소년이 남자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힘들 거예요. 사람들이 제가 벽을 향해 부딪치는 것을 보면서도 무관심 했거든요.”

그러자 남자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건 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아마 그 사람들도 저 벽이 무너지길 바랄 거예요. 하지만 무너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체념한 거겠죠. 그러니 우리가 그런 체념을 바꾸는 거예요. 그럼 그 사람들도 우리의 일에 동참할 겁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는 내내 자신감을 보였다. 소년은 그런 남자를 바라보면서 어쩌면 시도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만일 성공한다면 그들도 같이 하게 될 것이라는 느낌을 들게 했다. 소년은 밝은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며 해보자고 말했다. 그럼 해보자고 라면서 말이다. 그러고는 그들은 매일 같이 만나 문을 어떻게 통과할지 벽을 돌며 계획을 세웠다. 어떻게 하면 저지당하지 않고 무사히 성공할 수 있을지, 그리고 성공한 이후에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함께 벽을 무너뜨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 그들은 며칠을 고민했다.
맨 처음 결정된 것은 문을 부수는 방법이었다. 그것은 소년이 벽을 향해 돌진할 때와 같은 소년의 황소 ‘팔로스’를 타고 문을 향해 돌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 남자가 사람들을 큰소리로 외쳐 끌어 모으는 것이었다. 문을 부순 다음 사람들에게 같이 벽을 부수자고 한 후, 여러 농기구와 망치들을 가지고 벽을 부술 것이다. 그러면 분명 벽은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계획을 잡으며 분명 그렇게 될 것이라고 흥분했다. 그들은 계획을 이틀 후에 실행하기로 했다. 소년은 남자와 논의한 계획을 집에 돌아오면 소녀에게 털어놓으며 몹시 흥분했다. 하지만 소녀는 그렇게 흥분하는 소년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소녀는 그런 눈을 숨겼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소년과 남자의 계획의 실행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소년은 계획을 실행할 날이 바로 하루 몇 시간 후로 다가오자 긴장되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해 잠에 들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달빛이 소년의 방으로 스며들어 잠이 들 수 없는 분위기까지 만들어서 그는 잠이란 것과 만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소녀는 그런 그가 걱정되어 수시로 소년의 방을 들여다보았다. 소년은 침대에서 몸을 뒤척이며 잠에 들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소녀는 몸을 뒤척이는 소년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렇게 잠이 안 오면 차라도 마실래? 그러면 잠이라도 잘 수 있을 테니까.”

소녀의 권유에 소년은 알겠다며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 식탁에 앉았다. 소녀는 식탁에 앉은 소년을 위해 주전자에 물을 담고 끓였다.
물을 끓이는 동안 소녀도 소년 앞에 앉으며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의 얼굴 눈 밑에 짙은 다크서클이 깔려 있었다. 소녀는 그런 소년에게 말했다.

“정말로 괜찮겠어? 팔로스도 지쳤고, 무엇보다도 너도 괜찮아 보이지 않는데 말야.”

소년은 걱정하는 소녀에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건 누군가는 꼭 해야 해. 그리고 모습은 이레도 나 끄떡없다고. 그건 너도 잘 알잖아. 공부와 일을 같이 하면서 쌓은 체력이 있으니까 걱정 하지 마.”

소녀의 걱정에 소년은 그렇게 답했다. 그래도 소녀는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공부와 일을 같이하면서 쌓은 체력이라도, 그것은 꽤 된 체력이었다. 그래서 그 체력이 지금 남아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때 주전자에서 수증기를 내뿜으며 물이 끓는 것을 알려왔다.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찻장에서 컵 두 개를 꺼내 차 가루를 넣은 뒤 물을 담았다. 그러고는 다시 컵을 들고 식탁으로 가 소년에게 차를 담은 컵을 내밀었다. 소년은 소녀가 내민 컵을 받아 마셨다.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소녀에게 말했다.

“이번 일이 잘 된다면, 우린 아마 축복의 땅에 들어갈 수 있을 거야. 분명 그렇게 된다면 고향에 있는 가족들도 부를 수 있어.”

소년은 그렇게 말하고는 두 손으로 컵을 꽉 쥐었다.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성공해보이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그는 남은 차를 마저 마시며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소녀도 그런 그와 함께 곁에서 차를 마시며 기다렸다. 그리고 해가 뜰 때 쯤, 소년은 잠시 간의 짧은 잠을 청했다.
잠시간의 짧은 잠을 청한 소년은 해가 중천에 떠오르려면 좀 남은 시간에 소녀의 배웅과 함께 집을 나섰다. 소녀는 집을 나서는 소년에게 손을 흔들며 부디 무사하기를 빌었다. 그리고 소년은 그런 소녀에게 마찬가지로 손을 흔들어 주고는 팔로스의 등에 올라타고는 남자와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장벽으로 향했다.
소년은 장벽으로 향하는 동안 계획을 다시 떠올리면서 그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먼저 남자와 합류하고 팔로스로 문을 향해 돌진한다. 남자는 그런 동안에 사람들을 모은다. 그런 다음 사람들에게 소리쳐서 사람들과 함께 벽을 무너뜨려 두 땅을 나누던 것을 없앤다. 소년은 그것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그리고 그는 어느새 남자가 기다리는 장벽에 도착했다. 남자는 높게 솟은 장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소년은 팔로스에게서 내려와 남자의 옆에 서며 말했다.

“이제 이 벽도 끝이겠군요. 만일에 무너지지 않는다면 어쩌죠?”
“그런 생각은 하지 마세요. 반드시 이 벽은 무너질 겁니다. 문을 부수고 돌아서서 외치면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함께 할 거예요. 분명.”

소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긴장이 되었는지 침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남자는 그런 소년에게 계획을 실행하자고 했다. 소년도 알겠다면서 팔로스의 등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계획대로 문을 향해 돌진했고, 남자는 사람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이제 벽이 무너질 겁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반드시 무너질 겁니다!”

사람들이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는 남자에게 시선을 돌려 집중했다. 그런데 그들의 눈빛은 모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표정이었다. 남자는 그런 그들을 보고는 소년의 예상이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눈빛도 변할 거라 확신했다. 이제 벽이 무너질 것이니까. 그러면 말도 안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었다. 남자는 팔로스의 등에 올라탄 소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소년은 이제 문과의 거리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태였다. 몇 초 안에 소년의 황소와 문이  충돌할 것이었다. 그리고 이윽고 우당탕탕 하는 소리와 함께 황소와 문이 부딪혀 문이 박살이 나 산산조각이 났다. 남자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이 바라본 곳에는 뿌연 먼지가 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먼지 속에서 소년과 소년의 황소 팔로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먼지가 걷히자 문을 관리하던 사람들이 속속히 모여들었다. 그들은 소년과 팔로스를 에워싸며 나무를 깎아 만든 확성기로 경고했다.

“더 이상 행패를 부렸다간 축복의 땅에 절대 들어올 수 없게 만들 겁니다.”

그러자 남자가 이때다 싶어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여러분 저 벽 너머로 통하는 문이 부셔졌습니다! 문이 부셔졌으니 이제 벽을 무너뜨리는 겁니다. 문이 부셔진 곳 위의 벽을 무너뜨리는 겁니다!”

하지만 남자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냉랭한 시선으로 그와 소년을 바라볼 뿐이었다. 남자는 다시 한 번 그들에게 소리쳤다. 함께 하자고, 함께 벽을 무너뜨리자고.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이

“혼자서 하라고. 저 단단한 벽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겠어? 그리고 벽을 무너뜨린다 해도, 축복의 땅의 사람들한테서는 비난 받을 게 분명해. 규칙을 어겼다고. 반칙을 서서 들어왔다고 말이야.”
“저 녀석이 황소를 타고 벽을 향해 부딪쳤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았어.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벽을 무너뜨릴 수가 있겠어?”

같은 것들뿐이었다. 종종 정말 할 수 있을까란 말이 들려오긴 했지만, 그 말을 한 사람들은 섣불리 나서기를 꺼려했다. 남자는 주저앉고 말았다. 자신이 생각한대로 그들이 동참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그리고 관리원들에게 둘러싸인 소년을 도울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런데 소년은 포기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듯 그는 눈에 힘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팔로스에게 벽을 향해 돌진하라고 외쳤다. 팔로스는 소년의 말에 따라 벽을 향해 돌진했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관리원들은 팔로스의 돌진에 놀라 흩어졌고, 팔로스의 무뎌진 뿔은 벽에 부딪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며 피를 흘렸다. 소년은 벽에 부딪히는 동시에 팔로스의 충격을 몸으로 느끼며 팔로스에게 말했다.

“미안해. 하지만 한 번 만 더 부딪혀 줘!”

팔로스는 소년의 말에 울음소리로 답하며 다시 한 번 힘차게 벽을 향해 부딪쳤다. 그러나 여전히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팔로스의 피만이 벽에 묻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와 팔로스는 끊임없이 벽에 부딪혔고 마침내 벽에 크지는 않지만 아주 작은 금이 생겼다. 소년은 그것을 보고는 드디어 해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사람들에게 외쳤다.

“금이… 금이, 드디어 벽에 금이 갔어요!”

소년의 외침이 그 자리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퍼졌다.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웅성거렸다. 그럴 리가 없다고 저 벽이 얼마나 견고하냐면서 말이다. 그리고 문을 관리하던 관리원들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급히 축복의 땅 안으로 달렸다. 그리고 이윽고 축복의 땅의 지도자가 급히 문으로 뛰어왔다. 그는 확성기를 자신을 보좌하는 관리원에게 건네받아 대고 말했다.

“지, 지금 당장 범법행위를 그만둬라! 안 그러면 절대로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게 하겠다!”

하지만 소년은 그 소리를 들은 채 만 채하고는 계속 벽을 향해 돌진했다. 견고하던 벽도 점점 금이 크게 번져갔다. 그런데 그만 팔로스가 피를 너무 많이 흘러 쓰러졌다. 소년은 그런 팔로스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소년은 몸을 가누고는 팔로스를 바라보았다. 팔로스의 모습은 처참했다. 팔로스의 뿔은 더 이상 뿔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마모되어 있었다. 소년은 그런 팔로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미안하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자신을 위해 자신의 온 몸을 바친 팔로스를 위해서. 그리고 팔로스에게 쉬라고 말하고는 다시 벽을 쳐다보았다.소년은 벽을 자신의 몸으로 부딪히면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팔로스를 쓰러진 채 쉬게 하고는 몸을 벽을 향해 부딪쳤다. 벽에 어찌나 세게 부딪쳤던지 소년의 어깨가 으스러졌다. 소년은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렇지만 그는 벽으로 부딪히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벽은 계속 금이 커져갔다.
그러자 축복의 땅의 지도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는 확성기에 대고 소년에게 외쳤다.

“안 돼! 안 된다고 그걸 무너뜨리지 마!”

그리고 축복의 땅의 지도자는 관리원들에게 소년을 제지하라고 말했다. 관리원들은 지도자의 말에 따라 소년을 제지하기 위해 소년에게 향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을 멈춰 세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목소리가 있는 쪽으로 향했고, 소년도 그 소리에 벽을 향해 부딪치는 것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그 애한테서 가까이 가지 마세요!”

목소리는 소녀의 것이었다. 소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망치였다. 아주 작은 망치였다. 소녀는 그 망치를 들어 보이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저도 할 거예요! 저 애를 도와서 벽을 부술 거예요. 벽에 금이 갔잖아요. 그러니 이제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고는 소녀는 소년의 곁으로 가 망치로 벽을 내려쳤다. 탕탕탕 하는 소리가 주위로 퍼져나갔다. 아주 쩌렁쩌렁하게 멀리 멀리.
그리고 좀 전까지만 해도 주저앉아 있던 남자가 그 소리를 듣고는 일어나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입을 적 벌렸다. 정말로 엄청난 일을 소년과 그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가 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자도 그렇게 감탄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벽을 보니 금이 많이 가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자신이 돕기만 하면 벽은 무너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만일 무너지지 않는다고 해도, 벽에 금이 심하게 간 것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자신도 그들에게 합류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하나 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고, 급기야 그 중에서는 자신도 하겠다면서 그들 곁으로 갔다. 이윽고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하겠다며 벽을 향해갔다.
축복의 땅의 지도자는 그것을 보고는 얼굴이 빨개지며 확성기의 소리를 최대한 키워 말했다. 그만두라고. 그만두지 않으면  축복의 땅에 들어올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년처럼 자신의 어깨를 벽에 부딪쳤다. 축복의 땅의 지도자는 그런 그들의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몸이 부셔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벽 전체에 금이 갔고, 단 한 번의 부딪힘으로 벽의 한 쪽이 무너져 내려 흙먼지를 일으켰다.
축복의 땅의 지도자는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머리를 양손으로 잡아 뜯으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는 중얼거렸다.

“난 이제 끝났어. 이제 끝이라고…”

지도자는 패닉에 빠져있었다. 사람들이 그런 그를 보며 웅성거렸다. 그런데 먼지가 거치면서 무너진 벽이 모습을 드러냈고, 축복의 땅이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그러자 사람들은 축복의 땅의 지도자를 뒤로 한 채 환호했다. 그리고 그들은 벽이 무너진 곳으로 가 축복의 땅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패닉에 빠져 있던 지도자가 일어나 축복의 땅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막아 세우며 말했다.

“절대 가면 안 돼. 벽이 무너진 걸 그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난 끝이라고. 그러니까 들어가지마. 여태 해 왔던 대로 시험을 치란 말야!”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외침을 외면했고, 지도자는 그런 그들을 붙잡아 세웠지만 엿 부족이었다.
그런데 지쳐 벽 옆에 무너지지 않은 벽에 기대어 있던 소년이, 그런 그의 광경을 보고는 무슨 일인가 하고 빠진 어깨를 한 팔로 붙잡아 쩔뚝거리며 지도자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본 소녀와 남자가 그를 부축했다.
그리고 지도자의 곁에 도착해 소년이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고 묻자, 축복의 땅의 지도자는 흙먼지가 걷힌 무너진 벽면을 손가락으로 축복의 땅 하늘을 가리켰다. 지도자가 가리킨 곳에는 높이 쌓인 벽 때문에 보지 못한 탑이 멀리 서 있었다. 지도자는 그 탑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탑의 사람들이 화를 낼 거야. 이 벽은 저들이 만들었어. 그리고 저들이 메마른 땅의 사람들을 반가워하지 않을 거야. 난 아무것도 아니야. 허수아비라고. 저들이 축복의 땅의 진짜 지배자야!”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탑으로 향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벽을 무너뜨린다고 해서 끝날 거라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벽 뒤에 더 높은 게 있었다. 그들은 계속 싸워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끝이 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한 그들은 멀리서 높게 서 있는 탑을 바라보았다.
탑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축복의 땅으로 밀려들어오는 사람들과 소년, 소녀, 그리고 남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탑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마도 이제는 탑을 무너뜨려야 할 거라고.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발걸음을 축복의 땅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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