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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멸망할지도

2011.02.10 23:4702.10

멸망할지도

  
몸이 흔들렸다. 길이 험해 차체가 흔들려 서로의 어깨가 부딪혔다. 하지만 누구 하나도 불평불만을 해대지는 않았다. 가끔 구조 현장으로 출동할 때면 험한 산길을 갈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에 비한다면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의 표정은 하나같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거기다가 그 어느 누구도 입 밖으로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마치 전쟁터에 억지로 끌려가는 소년병들처럼.

그렇지만 거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4주전. 소방대원들이 하는 구조작업을 2009년부터 소방재난구조 전문화 정책에 따라 전문적으로 맡아서 하는 우리들은 모처럼의 휴일을 맞고 있었다. 말이 휴일이지 사실 대기상태에서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출동해야 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 몇 몇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휴가로 인해 들떠 있었다. 나 역시 그런 그들 중 하나였다. 그런데 휴게실 스피커를 통해 회의실로 구조대원들은 전부 회의실로 집합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저마다 들떠있던 우리는 그 방송에 즉시 회의실로 향했다.

영문도 모른 채 회의실에 집합한 우리들은 팀장님의 말씀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것은 모두가 기겁을 하는 비상대기상태의 발령이었다. 이것은 알다시피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본부에서 떠나지 말아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국가적 위기 상태나 큰 규모의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만 발령되는 명령이어서 우리는 의아해했다. 팀장님은 그런 우리를 향해 비상대기상태가 발령된 이유에 자세하게 설명했다.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에 따르면 현재 마야 2012년 멸망설에 의해서 각국에서 소요사태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소요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동요하고 있어서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따라서 군경들과 소방관과 구조대원들은 모두 비상대기 하라는 지침이다. 그러니 휴가를 떠나려던 사람들은 지금 당장 짐 풀고 집에 전화하도록. 이상.”

“팀장님! 그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동요하고 있다고는 해도 그 사람들이 바보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소요사태를 일으키겠다고요? 그리고 일어나지도 않을 것 가지고 우리들의 휴가와 휴일을 빼앗을 수 있습니까?”




내 옆에 있던 준태가 손을 들며 팀장님께 외쳤다. 그러자 팀장님은 그의 그런 반문이 일말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의 굵은 목소리로 짧게 답했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다. 그리고 우리는 국민의 생명권과 재산권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나. 그러니 입 닥치고 당장 앉게.”

  
그의 굵은 목소리가 회의실 안의 모든 이들을 압도했다. 입사했을 때 들었던 목소리도 굉장하긴 했지만, 지금 화내는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준태는 그런 그의 목소리에 져 제자리에 앉았다. 준태가 자리에 앉자 팀장님은 자신이 할 말은 모두 끝났다는 듯이 회의실을 나갔다.

팀장님이 회의실을 나가자 우리들은 잡고 있던 숨통을 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팀장님이 없는 회의실에서 이번 일에 대해서 논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마음대로 비상대기상태를 발령해도 되는 거야? 우리는 뭐 기계야 뭐야.”

“그러게 말이에요. 난 이번 휴가 때 강원도 바다에나 놀러 갈 생각이었는데, 이번 일로 그게 수프로 돌아갔네요. 아무리 요즘 구제역에다가 AI(조류인플렌자), 신종플루가 기승을 부리고 북한이 미국 영해의 근해까지 대륙탄도 미사일을 날렸다고 해도 그게 지구가, 인류가 망한다는 징조는 아니잖아요.”

“혹시 누가 알아? 그게 요한계시록에서 말한 심판의 날일지? 정말 그게 심판의 날이라면 난 천국에 갈 수 있겠다.”

“하, 선배가요?”

“왜? 내가 이래봬도 독실한 개신교 신자야.”

  
준태를 시작으로 우리 구조대에서 유일하게 여자인 윤주와 나까지 농담과 진담을 섞으며 불평을 터뜨렸고, 우리를 보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우리의 말에 웃거나 공감했지만 우리들의 얼굴에는 무거운 그림자가 가득했다.

어쩌면 우리는 알지 못했지만 우리의 몸은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 이후 일어날 일이 얼마나 끔찍하고 혼란스러운 일이 될 지를. 그래서 우리는 기분을 떨어뜨리는 침울함과 표정을 굳게 하는 그림자로 우리를 감싼 것일지도.

그렇게 옛 일을 회상하다가 정신을 차리자 자동차는 현장에 도착했는지 멈춰 있었다. 그리고 리더 신준 선배의 “다 왔으니까 내려.” 라는 말에 따라 우리는 자동차에서 내렸다. 자동차에서 내려 우리가 본 첫 번째 광경은 벤치들과 함께 있는 잔디들과 그 위에 홀로 서 있는 목조 건물 한 채, 그리고 불에 그으려 일부가 무너진 석조 건물과 화제를 진압하러 온 소방차 두 대가 전부였다. 딱 봐도 펜션을 하던 집이 분명했다.


“정말 사람들이 너무하네. 아무리 세상이 망한다고 하지만 이래도 되는 거야? 죽으려면 곱게 죽어야지. 뭐, 자기 혼자만 죽나? 나도 죽고 너도 죽고, 선배도 죽고 우리 가족들도 죽는 데 정말이지.”

  
준태가 처참하게 변한 석조 건물을 바라보면서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자 윤주가 자신도 이해한다는 듯한 어조로 준태의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 심정도 이해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도 지금 엄청 무서운 걸요. 정말로 세상이 종말을 맞이하면 어떡하나 하고 말이죠.”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설마 세상이 망하기라도 하겠어?”

“태섭 선배, 그런 걱정이라뇨. 아직 시집도 안 간 사람한테는 정말로 큰 걱정거리거든요? 게다가 전 아직 죽기에는 이른 나이라고요.”

“그러게 일찌감치 남자 좀 사귀었어야지.”

  
태섭 선배는 윤주를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윤주는 그런 그의 목소리에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장비를 챙겨 소방차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나는 태섭 선배에게 다가가 말했다.

  
“선배, 윤주한테 너무 심하게 한 거 아니에요?”

“이게 심한 거라고? 이건 그저 농담에 지나지 않아. 내가 장난을 좋아해서 그러는데, 내가 맘먹고 하면 이 보다 더 심하게도 할 수 있다고. 그나저나 정말 사람들이 너무하긴 하지. 우리에게 어쩜 이렇게 일을 많이 시키려고 하는지, 나 원 참.”

  
선배는 그렇게 말하며 한 숨을 쉬었다. 선배의 그런 한 숨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선배도 이번 일로 여간 힘들어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런 선배를 바라보며 비상대기상태가 발령된 직후의 몇 주간을 떠올렸다.

그때 그것이 발령되고 만일에 있을 소요사태에 우리는 불평을 했지만, 우리는 업무에는 충실하게 임했다. 하지만 정부의 우려와는 달리 어떠한 소요사태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주 가끔 정치적인 신념에 의한 좌우의 작은 충돌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비상대기상태 발령은 시간 낭비라며 불평을 토로했고, 곧 비상대기상태도 풀릴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를 배신했고 사태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비상대기상태가 발령되고 1주가 지났을 쯤. 바로 이웃나라에서 정체모를 소규모 연쇄테러가 일어나 사람들이 여럿 죽어나갔고, 일본에서도 구제역 의심 소들이 발견되었으며 AI역시 일본에 퍼지기 시작한 것이 확인되었고, 우연인지 운명인지는 모르겠지만 슈퍼박테리아 감염환자가 확인된 병원이 두 개, 감염자는 3명이라는 소식이 뉴스를 타고 전 세계와 한국에 전해졌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심리는 심하게 요동쳤다. 사람들은 정말로 세상이 멸망하는 것이라며, 저마다 추측성 글들을 인터넷에 올려 그로인해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들이 인터넷에서 마구 양산되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그런 유언비어들을 잠재우기 위해 급히 기자회견을 여는 동시, 유언비어와 관련된 모든 게시물을 차단하면서 사람들을 진정시키려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고, 그 행동은 오히려 사람들을 더욱 동요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점차 보이지 않던 소요사태가 소규모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 소요사태의 주체는 하위계층들과 예전부터 사회에 불만이 많던 사람들이었지만, 대부분이 사회에 불만이 많던 이들이었고, 그들은 건물의 유리창을 부수거나 공공기물 파손, 생필품 탈취 등의 행동을 일삼았다. 그러던 중 그들의 행동의 수위가 높아졌고 점차 그 소요사태에 참여하는 계층의 폭도 넓어갔다. 결국에는 이번처럼 우리가 출동해야 할 만한 일들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바로 방화였다.

일명 묻지 마 방화였다. 이 묻지 마 방화는 묻지 마 살인과는 달리 대부분이 특정환 기관이었는데, 대부분이 기업과 공공기관이 주요 타겟이었고, 그 외에도 주택, 공원 등에 불을 질러 말 그대로 묻지 마 방화를 저질렀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몇 주간이 지나, 어느 덧 12월의 끝자락이 되었다. 곧 있으면 새해가 밝아올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새해를 앞두고 계속 이런 일들이 계속되어 내 몸과 마음은 스트레스로 지쳐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지금 현장에 나온 팀원 전원이 그러했다.

우리는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준태와 나는 손전등을 켜고 먼저 불이 나 일부가 무너진 폔션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그 뒤로 태섭 선배와 윤주, 그리고 두 명이 더 우리 뒤를 따랐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 예전에는 가구나 자재였을 잿더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들은 더 이상 예전의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있었다. 그래서 건물 입구를 제외하고는 어디 하나 무사한 곳이 없었다. 화마가 어떻게 건물을 먹고 있었는지 떠오를 정도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불이 산으로 옮겨 붙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겨울이어서 만약 그렇게 됐다면 몇 헥타르를 화마의 먹이로 줘야하는 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명 피해는 있을 것이었다. 산속에 연휴를 맞아 놀러오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그러니 부디 이곳에 놀러 온 사람들이 없거나 많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빌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나님께 빌며 1층을 탐색한 우리들은 1층에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해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역시 처참했다. 한 계단 한 계단을 밟을 때마다 재들이 밟혔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이 건물을 삼켜버린 불길을 상기시켰다.

손전등으로 주위를 살피며 2층을 보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부스럭 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그 소리에 자동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그러고는 그 소리의 진원을 찾아 헤맸다. 소리의 진원은 우리 바로 옆에서 들렸다. 옆에는 불에 타 부서진 문이 있었다. 나는 살살 문을 때어내며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방에 대고 외쳤다.

  
“거기 누구 없어요! 제 목소리가 들린다면 움직여주시던가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그렇게 몇 번을 생존자를 부르자 어디선가 신음소리 비슷한 게 들려왔다. 우리는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눈을 크게 뜨고 생존자를 찾았고 마침내 우리는 첫 번째 생존자를 가구잔해더미 아래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생존자를 구출하기 위해 급히 가구잔해더미들을 치웠다.

우리가 가구잔해더미를 치우는 동안 준태가 첫 생존자를 잔해더미에서 구해내 팔로 머리를 받쳤다. 생존자의 몸은 이미 화상으로 심하게 망가져 있었다. 준태는 그런 그를 살살 흔들어 정신이 있는 지 확인하며 물었다.

  
“여보세요, 괜찮은 겁니까?”

  
그런 준태의 물음에 생존자는 말을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생존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신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준태는 급히 무전기를 들고 무전을 날렸다.

  
“지금 이층에서 생존자를 한 명을 발견했습니다. 대원 한 분을 더 보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곧바로 그곳으로 구조대원 한 명을 보내겠습니다.]

  
후배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들려왔다.

후배의 대답을 들은 우리들은 우리들 중에서 생존자를 지키고 뒤에 추가 투입된 대원에게 인도 할 사람들을 찾았고, 우리는 그 사람을 윤주로 정했다. 윤주는 그런 우리의 결정을 아무런 불평 없이 수락했다. 우리는 윤주와 생존자를 남겨둔 채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던 우리는 2층에서는 더 이상 아무도 발견하지 못해 수색을 2층 수색을 마치고 3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가자, 계단 바로 앞에 양쪽으로 타버린 문 두 개가 보였다. 우리는 다른 문이 있는 지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다른 문은 찾지 못했다. 아마 3층에 있는 문은 저 두 개가 전부인 것 같았다. 우리는 둘 둘 나눠 한 쪽은 오른쪽을, 다른 한 쪽은 왼쪽을 살피기로 했다. 내가 속한 쪽은 왼쪽을 살피기로 했다.

왼쪽을 맡은 사람은 나와 준태 였다. 준태와 나는 왼쪽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아래층의 방 두 개를 합친 넓이였는데 방 안에 들어서자 말자 드는 생각이 ‘이 방에서 과연 생존자를 찾을 수 있을까?’ 였다.

그리고 한 동안 방 안을 수색하던 우리는 목욕탕에서 남자 한 명을, 침실에서 여자 한 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히 남자는 물을 받아놓은 탕 속에 있어서 목숨은 건졌지만, 여자 쪽은 미쳐 목욕탕으로 가지 못하고 이미 질식해 숨져있었다. 우리는 숨진 그녀를 위해 잠시 동안 눈을 감고 명복을 빌었다. 부디 죽은 영혼이 천국으로 무사히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그렇게 죽은 그녀의 명복을 빈 후, 그녀의 시체와 아직 숨을 쉬는 남자를 등에 업고 방을 나섰다. 방을 나선 우리는 맞은 편 방을 향해 생존자를 찾았으니 먼저 내려가겠다고 외쳤다. 그러고는 나와 준태는 곧장 1층으로 향했다.

2층을 지나 막 1층으로 내려가려는 순간 밖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들어보니 우리 팀이랑 누군가가 실랑이를 버리는 것 같았다. 우리는 무슨 일이지 싶었지만, 등에 생존자와 사망자를 업고 있어서 뛰어가 확인할 수 는 없었다. 그렇지만 천천히 1층으로 내려와 밖을 보니 등산복 차림의 사람 셋이 화를 내고 있었고, 우리 팀원들은 그런 그들을 진정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준태와 나는 그들을 향해 다가가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윤주가 우리를 돌아보며 말을 흐리며 말했다.

  
“선배, 그게…”

  
윤주의 그 말에서 나는 이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저들은 이 건물에 묵고 있던 사람들과 같은 일행이고 그래서 직접 안을 확인해봐야 한다고. 그리고 그런 그들을 안 된다고 우리 팀이 맞고 있는 것이겠지.

아니나 다를까,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 중 덩치가 있는 40대 정도 된 여자가 화난 목소리로 윤주를 밀쳤다.

  
“보아하니 당신이 이곳 책임자인 것 같은데? 우리 남편 어디서!”

  
다짜고짜 내게 책임자이냐고 묻는 여자에게 뭐라 말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때마침 내 뒤에서 태섭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친구는 책임자가 아니니까. 그만 하시죠.”

“그럼 당신이 책임자요? 좋아. 그럼 당신이 내 남편 지금 어디 있는 지 알려줘!”

  
여자는 나를 뒤로하고 태섭 선배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그러자 선배는 여자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저는 이곳의 총책임은 아니지만, 여기 대원들 중에서는 최고참이니 부인의 모든 얘기를 제가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일단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저희가 건물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화마에 사람들이 희생되고 난 후였습니다. 그래서 부인의 남편분이 살아계실지는 장담할 수는 없지만, 생존자가 둘 사망자가 셋이었습니다. 아마 부인의 남편…”


선배는 남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선배의 말을 알아들은 여자가 선배의 가슴팍을 치며 오열했기 때문이었다. 서럽게, 서럽게 그녀는 선배의 가슴을 쳤다. 우리는 한동안 그녀를 그 상태로 놔두며 서로의 자리를 묵묵히 지켰다. 지금 상황에서 그녀에게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을 쯤. 구조한 사람들을 일렬로 눕혔다. 그런 다음 여자를 그들 앞으로 데려가 남편을 찾게 했다. 여자는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구조한 사람들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그런데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태섭 선배는 그것을 보고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여기에 남편분이 안 계신가요?”

  
그러자 여자는 태섭 선배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는 잠시 생각하다 건물에 들어갔던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는 다시 여자에게 물었다.

  
“혹시 어디 묵으셨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여자는 선배의 물음에 이층에 묵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 말에 선배와 우리는 이층에서 구조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 사람은 화마에 화상이 심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사람은 윤주와 함께 밖으로 나갔었다. 우리는 윤주를 돌아보았다. 윤주는 자신을 향하는 시선에 잠시 놀랐지만 이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윤주가 여자를 향해 말했다.

  
“그 분이라면 저희가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 바로 인근 병원으로 후송했습니다.”

“그럼 어디 병원인지 알겠네. 그래, 어디예요?”

“그…그건 저도 잘…”

“그건 저희 쪽 소관입니다. 부인 남편 분께서 이송된 병원을 금방 찾아드리겠습니다.”

  
윤주는 여자의 물음에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흐렸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모두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곳에는 경찰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여자를 데리고 순찰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여자가 경찰을 따라가고 나자 우리들은 남은 생존자들을 앰뷸런스에 실어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을 끝으로 모든 임무를 마쳤다. 그리고 본부로 돌아가는 길에 들려온 소식에 따르면 펜션에 방화를 한 사람이 잡혔다는 것과, 방화를 한 이유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과 세상이 끝나니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것 때문이라고 했다.

차에서 지친 몸을 가누고 있던 나와 팀원들은 저마다 혀를 찼고, 나는 그 소식을 들으며 세상이 망할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사건으로 출동하는 일이 자주 생기자 혹시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본부로 돌아온 우리들은 저마다 잠시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샤워실로 향했다. 샤워를 위해 탈의실에서 탈의를 하고 샤워실로 들어가려는데, 2012년의 마지막 달력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달력 앞에 가만히 멈춰 서 달력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올해가 끝나려면 아직 11일이나 더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바로 내일 세상이 끝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말에 현혹되고 있다니, 게다가 휴게실에 비치된 신문들의 일면은 세상이 끝날 시각이 장식하고 있었다.

나는 눈을 찌푸리며 12월 달 달력을 들어 다음 해 달력을 보았다. 2013년. 다음 해 달력의 표지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는 아무도 없는 탈의실에서 누구라도 들어 라는 듯 중얼거렸다.

  
“내년 달력 제작해놓고 올해에서 끝나면 달력장사 하는 사람들은 억울해서 어쩌나.”

  
그러고는 샤워실로 들어가 간단하게 샤워를 끝마치고 나오자 5시였다. 내 기숙실로 가 달콤한 잠을 청했다. 보나마나 몇 시간 못 잘 게 뻔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깨어나서 시계를 보니 6시였다. 밖은 컴컴했고 기숙실 내 방은 쌀쌀했다. 새벽인 것 같았다. 어제 5시부터 지금까지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옷을 챙겨 입고 방을 나서 팀원들이 모여 있을 지휘실로 향했다. 때마침 지휘실 쪽에서 구조대 선배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선배들을 부르며 물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많이 잤죠.”

“아냐. 어제는 딱히 아무 일도 없었어. 무슨 일에서인지 정말 세상이 조용하더라니까. 네가 자는 동안 말야. 창문으로 바로 앞거리를 봤거든? 그런데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더라니까. 이상하지? 그렇지?”

“그러게 말야. 정말 이상했다니까. 그래서 우리 여태껏 대기 근무 서다 왔다니까.”

  
선배들은 그렇게 말하며 내 어깨를 가볍게 툭 치고는 기숙실로 향했다. 아마도 선배들의 제스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깨우지 마라라는 신호일 것이다. 나는 그런 선배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지휘실로 뛰어갔다.

지휘실에 도착하자 윤주와 준태가 하품을 하며 대기 근무를 서고 있었다. 나는 둘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하품하면 커피라도 뽑아 마시지 그러냐?”

“야, 말도 마라. 여태 몇 잔을 뽑아 마셨는지도 몰라. 그래서 하품은 나오는데 잠은 안 온다.”

“저도여 선배.”

  
나는 눈을 찡그리는 그들을 바라보며 웃으며 옆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내가 의자에 앉기도 전에 시끄러운 사이렌이 울리면서 부대 방송이 흘러나왔다.

  
“대형화재가 발생했다. 지금 즉시 전 대원들은 지휘실로 모여주기 바란다. 반복한다. 대형화재가 발생했다. 지금 즉시 전 대원들은 지휘실로 모여주기 바란다.”

  
그리고 잠시 뒤, 모든 팀원들이 지휘실로 모여들었다. 내가 지휘실로 향하다 마주친 선배들도 짜증을 부리며 지휘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윽고 팀장님이 지휘실로 들어오고 모든 대원들이 일어서며 지휘실로 들어오는 팀장님을 맞았다. 팀장님은 서 있는 우리들에게 손짓으로 앉으라고 지시했다. 우리들은 그 손짓에 맞춰 각자 자리에 앉았다.

  
“지금 발생한 화재가 엄청 큰 대형화재여서 브리핑은 짧고 간단하게 하겠다. 지하철 승강장에 영문 모를 화재가 일어났다. 그러니 소방대원들이 진화를 하는 동시에 진입해 인명을 구조해야 한다. 지금 소방차가 출동을 했으니 우리도 지금 출동해야 한다.”

  
우리는 그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자리를 일어나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을 차량으로 뛰어가 탑승했다. 그리고 차량은 현장을 향해 달려갔다.

현장에 거의 도착했을 쯤에는 멀리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자동차의 창을 통해 밖을 보니 사람들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쪽에서 겁에 질린 표정으로 뛰어왔다. 나는 그것을 보고 몇 년 전 일어난 대구 지하철화재가 기억났다. 혹시 이번에도 방화는 아니겠지?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기에 요즘 방화를 자주 저지르는 거냐고!

내가 그런 짜증 섞인 생각을 하는 동안 내가 탄 차는 사건 현장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자 매캐한 연기가 내 코와 폐를 가득 채워 헛기침을 나오게 했다. 게다가 내가 차에서 내려 동료들과 진입을 위해 장비를 챙기는 동안 여기저기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와 상황이 얼마나 긴박한지를 알려주었다.

나는 그것 때문에 나도 모르게 긴장해 버렸다. 이렇게 큰 상황은 내가 구조대원이 되고서는 단 한 번도 있었던 적이 없었고, 이런 상황에 대비해 훈련을 받았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훈련이지 실제상황이 아니다. 누군가는 훈련을 잘했으니 걱정 없다고는 하지만 실제상황에서는 훈련에서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 나온다. 그러니 내가 긴장할 수밖에.

그렇게 긴장하고 있던 내게 누군가가 등을 툭 치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태섭 선배가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뭘 그리 긴장하는 거야? 평소대로 해. 그리고 소방관들이 진화는 다해서 우리가 구조할 때는 평소 구조할 때와 같을 거야. 그리고 위험한 곳은 같이 구조 활동을 하니까. 괜찮을 거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네가 명령에 잘 따르면 된다는 거야.”

  
그러면서 선배는 내 등을 토닥거리고는 이번에 같이 임무를 수행할 소방관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나는 그런 선배를 바라보며 어색한 미소만을 지을 뿐이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 쉬고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그래, 선배의 말대로 평소대로 하면 된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들은 내가 명령만 잘 따르면 된다. 그러면 예상치 못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선배의 뒤를 따랐다.

내가 선배를 따라 소방관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갔을 때는 소방관들과 구조팀원들이 역내의 화재 진화 정도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우리 구조대에서 최고참인 준석 선배가 현장책임자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진화하는 데는 별다른 어려움은 없습니다. 하지만 역이 워낙 오래된 곳이라 여기저기 피복이 벗겨진 전선이 꽤 많아 그런 부분에서는 2차 합선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럼 구조작업은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지금 저희 팀에서 진화를 하고 있으니, 지금 내려가셔서 작업을 하시면 됩니다. 지금 진화하고 있는 곳을 역 내부 구조도에 표시해 드릴 테니 참고하시고요.”

“알겠습니다.”

  
그 대화를 끝으로 현장책임자가 역 내부 구조도에 표시 해준 것을 보며 준석 선배가 우리가 가야할 곳을 정해줬다. 일단 승강장은 2인 3조로 가고, 구조가 끝난 팀들은 다시 구조한 곳으로 가 수색하여 미처 구조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 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태섭 선배와 같은 조로 편성되었다.

나랑 같은 조로 편성되자 태섭 선배가 내게 다가와 잘해보자고 말했다. 나는 선배와 같은 조가 된 것이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선배는 그런 누도 잘 받아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구조 하러 들어가는 지하철역의 화재처럼 말이다.

나는 차에서 내릴 때처럼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 쉰 뒤, 진입 사인이 떨어지자 말자 태섭 선배와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간 우리는 소방관들의 손짓에 따라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투입되었고, 나와 선배가 투입된 곳은 이미 진화가 끝난 1호선 승강장이었다.

승강장의 모습은 지난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 봤던 승강장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승강장의 벽들은 불에 그을려있었고, 지하철은 심하게 찌그러져 페인트가 벗겨진 상태였다. 나는 그 광경에 몸을 떨었다. 그 말로만 듣던 참사가 내 눈앞에 벌어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현실이 되었다.

나와 태섭 선배, 그리고 이곳으로 투입된 다른 4명의 구조대원들은 찌그러진 지하철 객실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바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연기에 질식해 쓰러진 승객들이었다. 승객들은 지하철 바닥과 의자에 쓰러져 있었는데, 그 중 일부는 콜록거리며 정신을 잃지 않은 승객도 있었다. 우리는 곧장 그들을 부축했다. 그러나 승객들을 봐서는 여섯 명으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내 눈에 승강장의 불을 잡은 소방관들이 쓰러진 승객들을 옮기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소방관들의 인원수를 세 아려보니, 여섯 명인 우리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승객들의 맥박과 호흡을 체크하며 지하철역 밖으로 옮겼다. 그러는 와중에 이미 숨진 승객이 몇이 나왔다. 나는 그럴 때면 몸이 움찔했다. 살아있을 거라 생각하고 맥박과 호흡을 체크했는데 죽어 있다니 말이다. 정말로 이렇게 불행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세상이 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보다는 생존자를 찾고 옮기는 것이 시급한 문제였다. 나는 그 생각을 내 머릿속 한쪽 구석으로 밀어놓고 구조 작업에 몰두했다.

우리가 그렇게 구조 작업을 해서 구조한 인원은 총 50여명 정도였다. 도중에 구조를 마친 쪽에서 우리를 도와주러 오기도 해서 꽤 많은 인원을 구할 수 있었으나 좀 전의 내가 본 그들. 총 20여명의 사람들은 손 쓸 틈이 없었다. 만일 소방관들의 진화가 빨랐고 우리가 좀 더 빨리 도착했다면 그들은 살 수 있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계단을 올라 승강장 밖으로 나온 나와 태섭 선배는 잠시 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무전으로 엘리베이터 안에 아이와 젊은 여자가 갇혀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와 태섭 선배는 그 소리에 즉각 반응했고, 우리는 다시 계단을 내려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가 엘리베이터로 가자 같은 구조대원인 민수 선배가 한 여자를 달래고 있었다. 우리는 민수 선배와 선배가 달래는 여자에게 다가가 상황에 대해 들었다. 상황은 이러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던 찰나 때마침 화재가 발생했고, 정전이 일어나 자신의 아이들하고 같이 타고 있던 젊은 여자가 엘리베이터에 갇힌 채 갑자기 아래로 추락을 했고. 엘리베이터는 승강장과 지금 있는 이곳의 사이에 멈췄다는 것이었다. 나와 태섭 선배는 그 얘기를 듣고 엘리베이터 통로를 확인했다. 엘리베이터는 정말로 승강장과 지금 우리가 있는 위치 사이에 있었다. 게다가 엘리베이터 로프는 낡고 오래 돼서 약간의 충격을 주게 된다면 쉽게 끊어져 버릴 상태였다.

나는 선배들을 돌아보며 어떻게 할지 방법을 구했다. 선배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고 태섭 선배는 내 어깨에 손을 얹었고 나는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당연히 저기에 내려가려면 최대한 엘리베이터에 충격이 없어야 한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것은 몸무게가 가장 적게 나가는 사람이 내려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와 태섭 선배는 구조차량으로 돌아가 밧줄을 꺼내 돌아왔다. 그러고는 내 허리에 밧줄을 묶고 조심스럽게 엘리베이터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로 내려온 나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들어올렸다. 입구를 들어 올려 근처 벽에 살살 내려놓았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을 보았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젊은 여자와 아이 둘이 엘리베이터 한쪽 모퉁이에 모여 덜덜 떨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지금 구해줄 테니 안심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빨리 구해달라며 아우성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알겠다고 말하며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젊은 여자가 얼른 여기서 나가게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애들보다 먼저 내보낼 수가 있겠는가. 나는 여자에게 아이들부터 먼저 내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여자는 그러자 잠시 아이들을 바라보더니 알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그러고는 아이들을 한 팔에 끼고 등에 업어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위에서는 올라오는 날 도와주기 위해 태섭 선배와 민수 선배가 밧줄을 잡아당겨주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아이들을 땅에 내려놓자, 아이들은 민수 선배가 달래던 여자를 향해 달려가며 “엄마!”라고 외쳤다. 여자 역시 달려와 아이들을 부둥켜안았다. 하지만 그런 훈훈한 모습을 보고 있을 틈은 없었다. 다시 내려가 남은 한 사람을 구조해야 했다. 나는 다시 엘리베이터로 안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내가 엘리베이터로 내려오자 여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보채며 말했다.

  
“어서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해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아이들은 덩치가 작아서 쉽게 올라갈 수 있었지만 상대는 성인 여자였다. 아무리 여자를 등에 업는다 해도 저위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일단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가 그녀를 업고 위를 오르기로 했다. 그렇게 한다면 위에서 도와주고 내가 벽을 발로 집으며 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여자는 내 생각에 화를 냈고 발을 세게 구르더니 화를 냈다.


“아니, 그러려면 저 위로 올라가야 하잖아요. 그럴 시간이 있으면 좀 더 쉽게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세요. 네?”

  
그러면서 여자는 다시 한 번 발을 세게 굴렀다. 나는 그녀에게 이게 최선의 방법이라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어찌된 영문인지 나와 여자의 몸이 붕 뜨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순간 몸은 엘리베이터와 함께 급강하 했고, 이윽고 쿵하는 소리가 들려와 함께 몸에 큰 충격이 가해졌다. 나는 내 허리에 감은 밧줄을 잡아당겨 올라갈 수 있을지 확인했다. 그런데 밧줄은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여자가 왼손으로 허리를 잡으며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오늘 왜 이러는 거야. 어서 빨리 집에 돌아가서 쉬고 싶은데, 내 인생 마지막 날을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어야 하다니… 이제 네 시간 남았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여자가 날 어리석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당신 그것도 모르는 거예요? 세상이 끝날 시간이잖아요.”

  
나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다리를 모아 팔로 부둥켜 앉으면서 말했다.

  
“2012년 마야력 멸망 예언 있잖아요. 그거 오늘 10시라네요. 그래서 오늘 회사에 사표 내고 집에 돌아가는 중이었어요. 뭐, 생각대로 안 됐지만.”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왔다. 대체 그 예언이 뭐기에, 아무리 세상이 망할 것 같은 징조가 많이 나타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망하지는 않을 것이지 않은가. 게다가 그것 때문에 회사에 사표까지 내다니, 만일 세상이 그 시간이 자나도 망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는 생각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긴 애초에 세상이 망할 거라 생각한 사람에게 망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는 것은 무의미 한 것이겠지만.


“그렇지만 너무 이른 포기 아니었을까요? 아무리 요즘 세상이 흉흉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세상이 망할 거라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을 거니까요. 그리고 제 허리에 맺던 밧줄이 끊어졌는데, 아마 구조되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니 구조 되면 당장 회사에 사표 낸 거 수리하지 말라고 전화를 거세요. 아셨죠?”

  
내가 그렇게 묻자 여자는 알겠다는 듯 아무 말 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후 나도 바닥에 주저앉아 구조되기만을 기다렸다. 그 사이 엘리베이터 안에는 고요한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구조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왜에선지 길게 느껴졌다. 그때 위에서 태섭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목소리가 울려 선배의 말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이윽고 천장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고 선배의 말도 비로소 알아들을 수 있었다.

  
“괜찮아?”

  
그렇게 묻는 선배에게 나는 고개를 들어 바라보며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자 선배는 안심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곧 꺼내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여자를 향해 이제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여자는 그 말에 침울해 있던 기분이 풀렸는지 벌떡 일어서더니, 선배를 향해 빨리 꺼내달라고 재촉했다. 선배는 알겠다며 구조용 로프를 내려주었다. 나는 그것을 여자에게 착용 시켰고 선배는 로프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내가 구조되었다. 그런데 밖으로 나와 마신 공기는 전에 구조작업을 하고 나와서 마신 공기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게 구조자와 피구조자의 차이인 걸까?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하던 중 앰뷸런스로 가는 여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좀 전에 보여줬던 것과는 달리 어깨가 축 쳐져 있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내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는 앞으로 어떡하나 걱정하는 것일 수도, 아니면 힘들어서 저러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지금 정말로 세상이 망할 거라 생각하고, 세상이 그런 행동들은 한다 해도 망할 것 같진 않았다. 나와 선배 같은 구조대원 동료들과 소방관들이 필사적으로 인명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무엇보다도 오늘 처음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구름이 걷히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그런 하늘에 세상이 망한다면 정말 망한 세상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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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설은 처음 시작은 기분좋게 시작했는데... 뭔가 이상하게 끝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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