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하루 한 명

2010.12.23 22:2912.23

희나가 처음 교실에 모습을 보이자 공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흐드러지게 긴 머리카락, 새카맣고 도도한 눈동자. 아찔한 다리선. 학생 치고는 굉장히 육감적인 아이였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인사와 함께 살며시 교실을 둘러본다. 눈이 마주친 모든 학생들이 얼굴을 붉혔다. 옆에 있는 선생님은 직격탄을 맞았는지 목소리를 떨고 있다.

“희나는 오, 오늘 전학왔습니다. 부디 잘 대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소개 같은 거 할 생각 있니?”

그녀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선생은 무의식적으로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래. 우리 교실에 온 걸 환영한다 희나야.”

담임의 스킨쉽에 그녀는 싸늘한 시선으로 반응한다. 그 눈은 결빙처럼 느껴질 정도로 날카로웠고 얼어붙은 선생은 몇 걸음을 물러서고 말았다. 담임은 거부당했다는 불쾌감 때문인지 불필요한 소갯말을 덧붙였다.

“희나에 대해서 안 좋은 소문이 여러분 사이에 있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지난 일이니까 모두 잊어버리고 잘 지내도록 하세요.”

안 좋은 소문.

그것은 사실 단순한 소문이 아니었다. 그녀의 뒤에 붙은 끔찍한 꼬리표였다.

살인범.

그녀는 이전의 학교에서 같은 반 학생 4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이다. 그 뉴스는 이미 텔레비전 전파를 타고 전국에 퍼져 있었다. 인터넷상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남학생들이 희나에게 추근거렸고, 모두가 그 자리에서 그녀에게 죽였다고 한다. 대낮에 교실에서 일어난 전대미문의 학생 살인사건.

그런 사정으로 인해 교실의 대부분은 희나의 전학을 일종의 재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선생은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저기 빈 자리에 앉도록 하렴.”

대현의 옆자리였다.

그녀가 단아한 걸음으로 다가왔을 때 대현은 침이 절로 넘어갔다. 향수 냄새가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지자 전신의 소름이 곤두섰다.

떠듬떠듬 말하는 그였다.

“안··· 녕.”

희나는 물끄러미 대현을 바라보다가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인형 같이 단아한 움직임에 대현은 경외심과 공포를 동시에 느꼈다. 행여나 저 아이가 말을 걸어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고민하는 대현이었지만 무의미한 고민이었다. 희나는 그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첫 번째 하루는 그렇게 끝났다.

대현에게도 어울리는 친구들이 있었다. 네 명으로 이루어진 멤버였다. 수민, 진우, 창재, 그리고 대현. 이 넷이었다. 모두 성적이나 집안이 그리 좋지 않은 불량 멤버들이었고 그런 공통분모가 이들을 친구로 만들었다.

방과후가 되면 이들은 함께 어울려서 pc방이나 노래방을 기웃거리곤 했다. 이즈음 모든 학생들이 그렇듯이, 대현의 그룹에서도 화제는 희나였다.

“걔 도대체 어떻게 여기 멀쩡히 전학 온 걸까? 사람죽여놓고.”

수민이 대답했다.

“부모가 재벌이라던데?”

창재가 옆에서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어제 디시인사이드에서 들은 얘긴데, 희나는 원래 정신병자라서 형법의 대상이 아니래.”

“게다가 우리나라는 미성년자의 흉악범죄에 관대하잖아.”

모두들 알고 있는 지식들을 모아서 늘어놓아 봤지만 그 중 구체적인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희나는 결국 구름속의 존재였다.


다음날에는 2학년 학생인 서주원이 학교 옥상에서 자살을 했다.

자신의 목에 개줄을 채우고, 쇠사슬을 철창에 묶어놓은 채 난간 아래로 뛰어내린 것이다.  보통 그런 식으로 교살(絞殺)된 시체는 눈알이 튀어나오고 똥오줌이 질질 흐른다.

서주원의 몸은 무거운 개줄에 묶여서 교정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수천 명의 학생들이 등교하면서 그 모습을 목격하고 말았다. 당연히 교내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학생들 중에는 기절하는 무리도 있었다.

대현도 그 모습을 보았다.

“세상에.”

생전 처음 보는 시체였다. 선생들은 급히 달려가 시신을 수습했지만 아이들 사이에 전염된 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대현이 교실에 들어가 있을 때에도 주변은 수군거리는 아이들 천지였다.

대현의 그룹인 수민이 말을 꺼냈다.

“왜 죽었지?”

진우가 대답했다.

“서주원 그 새끼, 원래 왕따였잖아.”

수민이 거기에 한 마디 덧붙였다.

“맨날 애들한테 처맞고 다니고 안 보이는 곳에서 혼자 울어제끼더니 결국 자살했네.”

대현은 죽은 서주원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아이를 단 한명도 보지 못했다. 한 인간의 생명은 아이들 사이에서는 유희거리에 불과했다. 아마 잊혀지는 속도도 빠를 것이고 서주원은 그렇게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

방송실에서는 전달사항이 흘러나왔다.


-오늘의 모든 수업은 자율학습으로 대체되었습니다. 반복합니다. 오늘 수업은 없습니다.


평소의 학생들이라면 환호성을 질러야 정상이지만 눈에 띠게 기뻐하는 사람은 없었다. 수업이 종료된 이유가 자살사고 때문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율학습시간 답게 학생들이 엎어져 자려고 폼을 잡을 때쯤 교실 문을 벌컥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제복을 입은 경찰관 두 명. 사복을 입은 형사필 나는 사람이 한 명.

형사 삘 나는 사람이 말했다.

“학생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동부서 강력계의 박정범 형사입니다. 오늘 벌어진 사고를 조사하기 위해서 왔는데, 가급적 여러분의 원활한 협조가 필요합니다. 여기가 죽은 서주원 학생의 반이라서 형식상 하는 질문이니까 가능하면 빨리 끝내주었으면 좋겠군요.”

학생들은 모두 긴장했다. 특히나 평소에 서주원을 괴롭혔던 아이들이 바짝 쫄다시피 했다.

형사는 수첩을 뒤척이면서 물었다.

“혹시, 서주원 학생과 평소에 친했던 학생 있나요?”

아무도 없었다. 서주원은 평소에 모두에게 배척받던 이방인 같은 존재였다. 형사는 답답한 마음에 질문을 바꾸었다. “그럼 어제까지 말이라도 한 마디 나눠본 사람?”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사실 이야기를 한 사람은 있었다. 협박, 폭행, 조롱 등의 형태이기 때문에 차마 표현할 수 없었을 뿐이다.

형사는 어차피 자살로 결론이 난 사건이고 이 결론이 뒤집어질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저 충실하게 보고서만 쓰겠다는 마음가짐이어서 질문하는 목소리에 성의가 없었다.

“보자 다음 질문이 뭐였더라··· 아 그래. 어제 서주원 학생과 제일 마지막까지 같이 있었던 사람이 누구죠?”

손을 든 아이가 하나 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었다.

“저요.”

희나였다.

교실의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그녀의 전과 기록을 알고 있는 형사조차도 눈에 이채를 띠었다. 희나는 다음 질문이 형사의 입에서 나오기 전에 먼저 말을 꺼냈다.

“그 애가 어제 야자가 끝나자마자 나에게 와서 말했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그래서 난 이야기 상대가 되어 주었어요.”

“어떤 이야기를 했죠?”

“서주원은 너무 괴로워서 견딜 수 없다고 했어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외톨이라고. 자기가 있을 자리는 없는 것 같다고요. 그리고 저에게 부탁을 하나 했어요.”

“무슨 부탁을 했죠?”

“죽여달라고.”

순간 공기가 얼아붙은 것 같았다.

꿀꺽.

교실에 있는 아이들 모두가 공포에 질렸다.

형사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는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그래서 죽였나요? 서주원 학생을?”

희나는 고개를 저었다.

“서주원은 스스로 죽었어요.”

형사의 눈이 매서워졌다.

“정말인가요?”

희나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결국 희나는 교무실로 불려가 경찰의 단독 심문을 받게 되었다. 선생도 경찰도 사라지고 학생들만 남게 된 교실에서는 풍성한 상상력의 파티가 벌어졌다.

“희나가 서주원 죽였네.”

“대체 어떻게 자살하게 만든 거지? 기술도 좋다.”

“뭔가 심리학 기법 같은 게 있는 거 아닐까? 자기도 모르게 자살하게 만드는 그런 거.”

“초능력자인지도 몰라.”

“근데 대체 희나가 서주원을 왜 죽였을까? 원한도 없는데.”

“원래 사이코패스는 생각 없이 사람 죽이는 애들이래잖아.”

“와, 뭐가 어쨌든 희나 대단하다. 어떻게 전학온 다음날 처음 본 애를 죽이냐.”

잡담이 활기를 띠고 거미줄처럼 엉켜서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할 때쯤 담임과 희나가 함께 들어왔다. 다시한번 무거운 침묵이 감도는 속에서 희나는 교실을 가로질러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터벅, 터벅.

그녀의 발소리가 나무 바닥을 때릴 때마다 바로 옆의 학생들이 움찔거렸다.

사라락. 희나가 스쳐지나가면서 일으킨 바람이 대현의 코에 닿는다. 후각을 아찔하게 자극하는 라일락 향기였다.

대현은 그녀가 옆에 앉을 뿐인데도 간질이 발작한 환자처럼 전신이 벌벌 떨리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사람을 압박하는 엄청난 존재감. 희나는 부담이 큰 아이였다.

담임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서 말을 꺼냈다.

“에 교무회의에서 결정했다. 오늘은 임시 휴교일이 됐으니까 전부 집으로 돌아가도록.”

학생들은 폭발했고 곧 해일이 되어서 밖으로 터져나갔다. 수민이 대현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오늘도 스타2 한판 해야지?”

담임은 손가락으로 대현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잠깐! 대현아, 너는 상담실로 따라오렴.”

화들짝 놀라는 대현이었다. 대체 왜 나를? 그는 문득 희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녀가 뭔가 경찰에 대고 내 이야길 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희
나는 아무 반응 없이 조용히 가방을 챙기고 있을 뿐이었다.

수민은 멋쩍은 듯이 웃었다.

“먼저 PC방 가서 자리잡고 기다릴게. 상담 끝나면 와.”

결국 대현은 홀로 상담실로 향해야 했다.

그가 상담실로 들어서자 담임은 의자를 빼서 착석을 권했다. 쭈뼛거리며 앉았더니 다음은 친절하게도 녹차 대접이 딸려나왔다. 담임은 대뜸 희나 이야기를 화제로 꺼냈다.

“대현아, 니가 옆자리니까 묻는 건데, 희나가 어제 뭔가 이상한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니?”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담임은 자신의 교실에서 살인이 일어난 사실에 겁을 먹고 있었다. 그것이 자기의 근무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것도 걱정하고 있다. 대현의 고민이나 희나의 기분 같은 것은 안중에 없는 모양이다.

대현은 퉁명스레 말했다.

“만난지 하루 됐는데 제가 뭘 알겠어요.”

“그럼 뭔가 평범한 전학생과 다른 점은 없어?”

많았다. 미모, 날카로운 분위기, 연쇄살인범이라는 타이틀 등등. 그러나 그것들이 희나가 사람을 죽였다는 증거는 될 수 없었다. 담임은 음 하고 뭔가 생각하면서 말했다.

“희나가 경찰 조사가 끝난 다음에 나한테 와서 묘한 부탁을 하더구나. 실은 널 여기 부른 이유도 그것 때문이야.”

대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떤··· 부탁인데요?”

“너한테 한 가지를 물어봐 달라고 말이다. 혹시 오렌지를 좋아하냐고.”

엥?

대체 왜 그런 게 궁금한 걸까? 대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어본 담임 쪽도 뻘쭘한 모양이다. 대현은 의아한 어투로 되물었다.

“그런 거라면 직접 저한테 물어보면 되는데 왜 궂이 선생님한테···?”

“그러게 말이다.”

담임은 쑥스러운 듯이 머리를 긁적인다. 이런 웃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것이 쪽팔린 모양이다. 결국 담임은 서로 옆자리니까 친하게 지내고 혹시 희나가 이상한 행동을 하면 바로 말해달라는 상투적인 격려만 하고 상담을 끝냈다.

도대체 이런 이야기만 하고 말 거였으면 상담실은 왜 오란 거야. 긴장되게.

투덜거리며 나오는 대현이었다.

그는 가방을 챙기기 위해 교실로 들어갔다. 이미 학생들이 다 빠져나간 탓에 실내는 휑한 분위기였다. 교과서와 참고서를 추적추적 정리하고 있자니 뒤에서 쾅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흠칫 하며 돌아본 곳에는 희나가 서 있었다.

그녀는 물끄러미 시선을 던진다. 표정이 너무 차가워서 피부까지 차가울 것 같았다. 대현은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 지 몰라서 꾸물거리다가 엉뚱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나, 오렌지 좋아하는데.”

짤깍.

희나는 문을 잠갔다. 이제 두 명의 남녀는 어둡고 밀폐된 교실이라는 공간에 갇혀버렸다. 대체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인 걸까? 대현은 두려움 반, 설레임 반이었다.

하지만 희나 쪽에선 여전히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야기하는 톤도 딱딱한 어투였다.

“오렌지 이야기는 잊어버려. 널 여기에 붙잡아두기 위한 계획일 뿐, 아무 의미도 없어.”

“왜··· 나를 붙잡아 놨는데?”

“이걸 들려주고 싶었으니까.”

그녀는 녹음기 하나를 꺼내놓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놀랍게도 죽은 서주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현이 그 자식이 나한테 날마다 담배빵을 했어. 이젠 피부에 화상이 몇 개인지 셀 수도 없어. 일주일에 한번씩은 자기 친구들을 데려와서 날 집단으로 구타했고 매일 일과가 돈을 뺏는 일이었어. 지금까지 뜯긴 것만 해도 2백만원이 넘어. 한번 왕따가 되면 찍혀서 벗어날 수도 없어. 이제 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녀석은 나에게서 있을 자리를 빼앗아 버렸어. 희나야, 넌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들었어. 이렇게 부탁할게. 대현이 그 녀석을 죽여줘.


대현은 걸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전신에 흐르는 긴장이 그대로 표정이 되어 드러났다.  복잡한 감정이 담긴 시선을 받으면서도 희나는 자세에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허스키한 목소리로 그녀는 말을 꺼냈다.

“생명의 무게는 모두에게 같아. 누군가를 죽이려면 자신의 목숨도 버려야 한다고 말해주었어. 그랬더니 서주원은 자살했지. 댓가를 치른 거야.”

대현은 손을 벌벌 떨었다. 그는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어투로 말했다.

“그 애가 자살했어? 나 때문에?”

“그래.”

“미, 미안해··· 그럴 줄은 몰랐어.”

희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야. 사과한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어.”

“나를··· 죽일 거야?”

희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귀여운 고갯짓이 대현에게는 죽음의 사신이 사형 허가를 내리는 사인처럼 느껴졌다. 희나는 저승사자처럼 말했다.  

“자살할 생각 있어?”

고개를 저으면서 소리치는 대현이었다.

“나, 난 살고 싶어, 무, 물론 죽어도 싼 놈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부모님을 남겨두고 죽을 수는 없어.”

희나는 웃었다.

“그럼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줄게.”

사박, 사박

슬리퍼가 가볍게 끌리는 소리는 나름대로 관능적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대현에게 다가왔다. 피부가 닿을 만큼 가까워지자 그녀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담임선생을 네 손으로 죽여.”

대현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꽤나 오랜 시간을 허비했다. 그러고 나서도 반문해야 했다.

“무슨··· 소리야?”

“오늘은 휴교일이야. 게다가 수요일이라서 교직 업무도 없으니까 모든 선생들은 조기에 퇴근하겠지. 담임의 집은 현대 2차 아파트. 지하주차장엔 cctv가 없으니 거기서 죽이면 돼.”

대현은 입을 쩍 벌렸다. 황당해하는 그 표정을 바라보며 희나는 주머니에서 칼 하나를 꺼냈다. 날렵하면서도 예리한 느낌의 단검이다.

“페어번 사이크스 나이프. 영국군에서 암살용으로 쓰였던 칼이야. 가볍게 찔러도 피부에 푹 들어가지. 젖꼭지 아래부분을 찔러. 거기에 심장이 있어.”

대현은 손을 흔들며 희나의 말을 끊었다.

“잠깐! 잠깐! 왜 담임을 죽이려고 하는 건데?”

희나는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만난 이후 처음으로 보여준 표정 변화였다. 그녀는 마치 맛없는 음식을 억지로 먹은 어린아이같은 어투로 말했다.

“그 선생, 내 어깨를 만지면서 응큼하게 바라봤어. 기분나빠.”

대현은 눈앞이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그것뿐?”

“다른 거창한 이유가 필요해?”

“겨우, 그··· 런 이유로 살인자가 되라고? 날더러?”

희나는 칼날을 대현의 목에 가져다 댔다. 당장이라도 쇳조각이 경동맥을 파고들 것 같았다. 그녀는 혀를 날름거리며 입맛을 다신다.

“그럼 네가 죽던지.”

“시, 싫어.”

희나는 가늘고 부드러운 손을 내밀어 대현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라일락 향기가 달콤했다. 다음으로 대현은 전혀 예상치 못한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미소였다.

희나의 평소 차가운 표정과는 쌩판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녀가 웃음을 띄우자 이 어두운 교실이 일순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대현의 얼굴 가까이 입술을 가져갔다. 키스를 기대했지만 입술은 얼굴과 종이 한 장 거리에서 멈췄다. 그녀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하게 될 거야.”

말하면서 내뱉는 숨결이 코를 간지럽힐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대현은 심장이 파도처럼 요동쳤지만 완전히 압도돼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희나는 칼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그대로 교실을 나갔다.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대현은 미소가 남긴 잔향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한참을 헤어나오지 못했다. 머리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경고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도저히 미소에 저항할 수 없었다.

다음날에는 담임선생이 칼에 맞아 죽었다.

주차장에서 나오던 중에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고 한다. 하필 그 지역이 감시카메라 사각지대라 범인 수사에 난항을 겪게 되었다는 후문이 있었다.

“잘했어.”

희나가 대현에게 해준 말은 그 한마디가 끝이었다. 둘 사이에는 하루 종일 대화가 없었다. 어젯밤 수많은 고뇌 속에서 결국 살인마가 되었던 대현은 이 침묵이 씁쓸했다. 하다못해 한번 더 그 미소를 보여주기를 간절히 바랬는데.

대현은 문득 궁금해졌다.

희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점심시간, 대현과 친구들이 식당에 모여 점심을 먹었다. 창재가 문득 물었다.

“대현아, 너 희나 좋아하냐?”

말없이 얼굴을 붉히는 대현. “좋아하긴 개뿔.” 그 어색한 대답이 놀림감이 되고 말았다. 수민은 히죽이죽 웃으면서 말했다.

“하긴, 우리 학교에서 희나 싫어하는 애가 어딧겠냐. 살인자만 아니라면.”

그 한마디에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살인자와 같은 반이라는 사실은 아무래도 껄끄럽다. 그러나 대현은 가슴속에서 기쁨이 차오르는 자신을 느꼈다. 대현 또한 담임을 죽였으니 이젠 희나와 피장파장이다. 그녀와 좀 더 가까워졌다고 기뻐하는 모습에 대현은 처량했다. 그래봤자 살인자가 된 것뿐이잖아.

수민이 무심코 말했다.

“근데, 담탱이는 누가 죽였을까?”

대현의 가슴 속에서 두려움이 치밀었다. 제발 이 화제가 빨리 끝나기만을 빌었다.

창재는 그런 대현의 속도 모르고 말을 이어나갔다.

“희나 그년이 죽인 거 아냐?”

모두들 에이 설마 라고 말하면서도 차마 완전히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반 아이들 사이의 심증은 이미 희나를 범인으로 굳히고 있었다.

수민은 코웃음을 쳤다.

“우리반에서 사람이 죽으면 누가 제일 먼저 의심받겠냐? 희나가 그걸 모르진 않을 텐데.”

창재가 또 나선다.

“근데 이상하잖아. 그년이 전학 오고서 하루에 한 명씩이 꼭 죽고 있어. 어쩌면 내일도 누군가 죽을지도 모르지.”

모두가 궁금했다. 과연 그 말처럼 내일은 누가 목숨을 잃게 될까?


창재가 다음날 죽었다.

달려오는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몸이 산산조각나 별로 건질 것도 없게 되었다.

타살이라는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 역에 설치된 cctv에 비친 것은 스스로 달려오는 열차에 뛰어내리는 창재의 모습이었다. 누군가가 밀친 흔적 같은 것
은 없었다. 정황은 완벽하게 자살이었고 경찰도 그렇게 수사를 종결지었다.

대현은 수업중에 그 소식을 들었다. 옆자리의 희나는 별 감흥이 없는지 교과서만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하루 종일 수업을 듣고 있었다. 알리바이는 확실하다. 그러나 대현은 이런 결론을 납득할 수 없었다. 창재는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었고 어제까지만 해도 떠들고 놀던 평범한 아이였다.

잇다른 초상에 학교는 또 휴교였다. 원래 아이들은 이기적이라 동급생의 죽음보다는 휴교 때문에 기뻐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생전에 창재와 친했던 대현, 수민, 진우는 분위기가 침울했다.

대현의 심경은 복잡했다. 그는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범인은 희나다.’

증거나 단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게 없어도 대현은 알 수 있었다. 창재는 희나의 비위를 거슬린 댓가로 죽었을 것이다.

대현은 처음으로 희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창재 말인데···.”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희나의 얼굴은 전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평이했다. 대현은 그만 치를 떨고 말았다. 그는 전신에 치밀어오르는 공포를 참으며 말했다.

“혹시··· 그 애가 왜 죽었는지 알아?”

희나는 고개를 까딱했다.

“커피 좋아해?”

“어? 싫어하진 않지만···.”

“스타벅스 구경시켜 줄테니까 따라와. 마침 오늘은 휴교니까.”

예상치 못한 호의였다.

덕분에 대현은 미녀 여학생과 함께 하교한다는, 고등학생 최고의 낭만을 맛보게 되었다. 하교길의 뭇 학생들에게서 부러움의 시선도 한몸에 받을 수 있었다.

스타벅스에서 커다란 컵에 커피를 받아마시면서 대현은 조심스래 말을 꺼냈다.

“손님도 별로 없네. 일부러 이 시간대를 고른 거야?”

“그래.”

“여긴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아까 내가 물어본 것도 대답해 줄 수 있겠네?”

“창재가 죽은 걸 왜 나한테 물어보는 건데?”

“정말··· 몰라?”

“내가 죽이지 않았어.”

대현은 판단할 수가 없었다. 시치미를 떼고 있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 걸까? 희나는 거짓과 진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어서 사람의 정신을 흩트려 조종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도무지 뭐가 진실인지 아닌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대현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하긴, 따지고 보면 담임을 죽인 것도 나지. 네가 아니라.”

희나는 무표정한 눈으로 대현을 응시한다. 대현은 도저히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커피를 스트로우로 빨아 먹으면서 음미한다. 마치 다도(茶道)를 즐기는 것 같았다. 대현은 도무지 커피를 입에 넘길 정신이 아니었기에 먹는 시늉만 했다.

희나는 컵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사람들은 음모론을 참 좋아해. 사실은 음모론 쪽이 진실보다도 더 안심을 주기 때문이야.”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창재가 괴로움에 견디지 못해 자살했다는 사실보다도 내가 조종해서 죽였다고 믿는 쪽이 너에게는 더 안심이 되는 거겠지.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간에 말이야.”

“창재는 죽을 만큼 괴로워한 적이 없어.”

희나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당연하지. 내 친구야. 잘 알아.”

희나는 커피컵을 내려놓고 물끄러미 대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제 너를 만난 직후에 창재를 만났어.”

“여, 역시! 네가 죽인 거야?”

희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일도 사람이 죽을 거야.”

대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왜, 왜 그러는 거야. 사람 목숨은 그렇게 쉬운 게 아냐.”

희나는 쏘아보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너 자꾸 아까부터 신경질 돋울래? 내가 다 죽였으면 어쩔 건데? 한번 해보자는 거냐? 내일 죽는 건 너로 해 줄까? 엉?”

기어코 협박을 하는 희나였다. 결국 대현은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 그런 건 아니지만···.”

그녀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대현을 흩어보다가 씨익 웃었다.

“그게 아니면 혹시, 창재를 죽인 일에서 내가 널 배제한 게 싫은 거야?”

희나는 손가락으로 대현의 볼을 꼬집었다. 약간의 따끔함, 그보다 훨씬 강렬한 달콤함. 대현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스르르 감았다. 놀리듯이 말하는 희나였다.

“설마 친구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못한 게 아쉬워? 몹쓸 남자 같으니라구 후후.”

논리적인 설득보다도 그녀 특유의 라일락 향과 손가락의 보드라운 촉감이 대현의 마음을 잠식했다. 희나는 대현의 귓가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커피향이 코를 어루만진다.

“담임을 죽인 일에 대한 상이야.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피부와 피부가 닿았다. 무척 달콤한 기분에 젖어드는 대현이었다.

“어··· 고마워.”

이런 말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처량하다고 생각하는 대현이었다.



다음날에는 진우가 죽었다.

집으로 귀가하던 중에 둔기에 머리를 맞아 사망했다고 한다. 명백한 타살이었다.

그날도 당연히 휴교였고, 수민과 대현은 진우의 장례식에 참가해야만 했다.

진우의 영정에 절을 하고 나오면서 수민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현에게 말했다.

“대현아 우리, 희나 죽이자.”

대현은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소리야 그건?”

“창재하고 진우가 이틀 만에 죽었어. 둘 다 우리 친구들이잖아. 내일은 너나 내 차례일지 누가 알아?”

“하지만··· 희나가 범인이라는 증거는 없잖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대현은 이미 알고 있었다. 범인은 희나라는 걸.

수민은 간질에 걸린 것처럼 벌벌 떨면서 말했다.

“증거는 없어! 그러니까 더 무서운 거야! 그 애는 혐의를 다 피하면서 우릴 죽이고 있는 거야! 경찰도 희나를 막지 못한단 말야!”

“수민아. 진정해.”

“그년이 죽인 게 맞아. 우릴 다 죽이려 들고 있어. 담임과 창재가 희나 비위를 거슬렸다고 처음에 죽었고 진우는 덤으로 다음날 죽은거야.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진우가 희나의 비위를 또 거슬렸는지도 모르지. 그게 아니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둘이 날마다 죽은 게 설명이 안 되잖아. 내일은 너 아니면 나야. 그 전에 우리가 먼저 치자. 그렇게라도 안 하면 나 미칠 것 같아.”

말을 하는 수민의 눈동자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대현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렸다. 그 망설임을 본 수민은 이를 갈면서 고함을 내질렀다.

“관둬 이 겁쟁이 자식아! 넌 친구도 뭣도 아냐! 내가 오늘밤에 희나를 학교에 불러내서 죽일 거야! 넌 올려면 오고 말려면 말아!”

수민은 홱 하고 가버렸다.

대현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희나의 번호를 찍어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요란한 컬러링이 울리고 잠시후 허스키한 음성이 스피커를 울렸다.

-여보세요?

“희나야, 너 혹시 오늘밤에 수민이 만나기로 했어?”

-···· 왜 그런 걸 묻는 거야?

“나가지 마. 수민이는 널 죽이려 하고 있어.”

-푸훗.

그녀는 실소하는 듯 했다. 대현은 의아했다. 죽이겠다는데 뭐가 그리 우스운 걸까? 꽤 오랫동안 웃고는 속삭이듯이 말하는 희나였다.

-재밌겠네. 오늘밤 학교라고 했지?

“나갈 거야?”

-그래. 혹시 너도 심심하면 구경나와.

뚝 하고 전화가 끊어졌다. 대현은 혀를 찼다.

“재밌긴 개뿔. 사람이 죽고 죽이는 일이 구경거리야?”

그녀는 진정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대현이었다.



결국 대현은 그날밤 학교로 향했다. 한밤중의 학교답게 분위기는 음산하기 그지없었다.

정문을 조심스레 밀었더니 끼이익 하고 열린다. 무인경비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 걸까? 교사 안으로 들어가도 경보 같은 건 울리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이 학교는 건물이 오래돼서 경비회사 쓸 돈도 없는 모양이다.

쭈뼛거리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불을 켜자 수민이가 쇠파이프를 들고 서 있었다. 깜짝 놀란 대현은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희나는 어디 있어?”

수민은 고개를 저었다.

“희나는 부르지 않았어. 내가 기다린 건 너였어. 나를 말리러 와 주길 기다린 거야.”

대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수민은 마음을 돌이킬 의사가 있는 듯했다. 대현은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만류했다.

“수민아, 그만두고 돌아가자. 아직 안 늦었어.”

수민은 충혈된 눈으로 쇠파이프를 움켜잡았다.

“미안해 대현아. 이젠 돌아갈 수 없는 곳까지 왔어. 끝을 봐야만 해.”

“수민아, 이러지마 제발!”

“이게 바로 끝이야. 미안하다 대현아.”

수민은 거세게 대현을 향해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불의의 기습을 맞은 대현은 팔을 움켜쥐고 땅을 굴렀다. 지옥 같은 통증에 비명이 절로 나왔다. “끄아아악!” 수민은 숨을 헉헉 몰아쉬며 말했다.

“대현아, 나를 원망하지 마.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부디 천국에 가기를 빌어 줄게.”

대현은 고통 속에서도 궁금했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평소에 수민에게 잘못한 일이 뭐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하지만 맞아 죽을 짓을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끼이익.

문이 열린다.

가벼운 슬리퍼 소리를 내면서 희나가 모습을 보인다. 그 얼굴은 무표정한 가면 그 자체였다. 대현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결국 내일 죽을 사람으로 나로 선택한 것이로구나. 그 일을 수행할 사람으로 수민이를 찝은 거였구나.

그러나 희나는 의외의 행동을 했다. 등 뒤에 숨기고 있던 석궁을 꺼내서 수민의 머리에 화살을 쏴버린 것이다. 수민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녀는 시신이 되어버린 수민의 몸을 발로 몇 번 걷어찼다. 사망을 확인하고 화살을 뽑아내는 손길이 무척이나 능숙하다.

무덤덤한 얼굴로 말하는 희나였다.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궁금하겠지?”

“어···응.”

희나는 품 속에서 녹음기를 꺼냈다. 그 안에서 흘러나온 것은 일전에 들었던 서주원의 음성이었다. 저번에 들었던 것과 토씨하나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지만 전에 듣지 못했던 말이 몇 마디 들어 있었다.



-담임은 내가 매일 겪는 고통을 다 알고 있었어. 그러면서도 자기 근무점수가 깎이는 게 무서워서 무시했어. 수민이, 진우, 창재, 대현이 그 자식들이 나한테 날마다 담배빵을 했어. 이젠 피부에 화상이 몇 개인지 셀 수도 없어. 일주일에 한번씩은 자기 친구들을 데려와서 날 집단으로 구타했고 매일 일과가 돈을 뺏는 일이었어. 지금까지 뜯긴 것만 해도 2백만원이 넘어. 한번 왕따가 되면 찍혀서 벗어날 수도 없어. 이제 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녀석은 나에게서 있을 자리를 빼앗아 버렸어. 희나야, 넌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들었어. 이렇게 부탁할게. 대현이, 수민이, 창재, 진우, 그리고 담임선생을 죽여줘.



-다만 한 가지 말해둘 게 있어. 이 녹음을 가해자 모두에게 한번씩 들려줘. 듣고서 행여나 자기가 한 짓을 반성하는 사람이 있다면 살려줘. 그렇지 않는 사람은 죽여줘.





희나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담임은 이걸 듣고서 나에게 입막음을 하려고 했어. 너를 불러서 날 감시하려고 했지. 창재는 자기 때문에 서주원이 자살한 사실을 알자마자 죄책감을 못 견디고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했어. 수민은 이걸 듣고선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진우와 너, 그리고 나를 다 죽이려 했어.”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럼 설마··· 진우를 죽인 것은?”

“그래. 수민이였어. 어젯밤에 진우를 습격해서 둔기로 때려죽였지. 바로 이 쇠파이프 말이야.”

“··· 도저히 믿을 수 없어.”

희나는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너만은 반응이 달랐어. 이 녹음을 듣고 나서 네가 처음 한 말을 기억해?”

‘미안해. 그럴 줄은 몰랐어.’

대현은 허탈함에 젖어서 그만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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