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아이러니

2011.11.17 20:0911.17

심장이 두근거렸다.

남자는 지하철 플랫폼 안에 배치된 작은 벤치 위에 앉아 폴더형인 핸드폰을 연신 여닫았다.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도, 시간을 확인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불안했다. 무슨 행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딜 만큼 불안했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이 많으면 용기가 생길 거라 믿었던 남자는 그 생각은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오히려 주변의 눈이 많아서 더욱더 불안해졌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남자의 눈앞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남자의 의지는 점차 확고해져갔다.

남자는 오늘 이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더 이상 자신이 없었다. 이 세상은 남자와 맞지 않았다. 남자는 어느 순간 그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는 것마다 어긋나고 뒤틀렸다. 남자가 처음 시도해보았던 사업도 사랑도 모두 실패했다. 첫걸음을 실패하고 나니 뒤이은 모든 걸음이 꼬이고 엇갈렸다. 마치 신과 악마라는 존재가 손을 잡고 남자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 남자는 점점 실패를 두려워하고 나약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게 두렵고 무서웠다. 이 세상에는 더 이상 남자가 설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남자가 자살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해낸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띠리리리링.”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남자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왠지 사람들이 남자에 대하여 수근 되는 것 같았다. 남자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선로를 향해 다가갔다. 수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역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안내방송 소리가 뒤엉켜 불협화음이 만들어냈다. 남자의 머리가 아파왔다. 남자는 늪 속에 빠진 발걸음을 옮기 듯 힘겹게 승객들이 대기 중인 노란선 앞쪽까지 다가갔다. 안전선이었다. 이 선 하나로 생과 죽음의 경계를 나누어 놓은 것이다. 이제 한발만 넘어가면 안전지대는 끝나는 것이다. 남자는 조심스레 발을 들어 노란선 밖으로 나갔다. 그러던 중 건너편 플랫폼의 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남자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고 그 때문에 남자는 나머지 발 하나를 안전선 밖으로 내딛지 못했다. 그때 스피커에서 감정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거기 남자 분. 위험하니까 안전선 안으로 들어와 주세요.”

그와 동시에 역 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남자에게 향했다. 남자는 그 기세에 주춤하여 다시 안전선 안으로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열차는 역 안으로 들어왔고 남자는 멍하니 그 모습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열차의 문이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자는 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있었다. 모든 승객이 내리거나 탑승한 뒤, 열차는 미끄러지듯 출발했다. 열차가 저 너머 어둠속으로 사라진 뒤 안전선 앞에 서있는 사람은 남자뿐이었다.

이번에도 뛰어내리지 못했다. 그것도 안전선을 지키다가……. 왠지 웃음이 나왔다. 계속 그 자리에 서있는 것이 민망해진 남자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결국 제자리다.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이걸로 벌써 3번째.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열차가 오기 전까지는 분명 죽고 싶은 마음에 금방이라도 선로를 향해 몸을 날리고 싶은데 막상 열차가 들어올 때면 용기가 사라지는 것이다. 남자는 다음 기회를 기다리며 멍하니 핸드폰을 여닫았다. 그때 남자의 옆에서 작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그 목소리에 깜짝 놀란 남자는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한 여성이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 눈이 마주쳤던 건너편 플랫폼의 여자였다. 여자는 남자를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짓고는 남자의 옆자리에 앉았다. 들킨 걸까? 남자는 최대한 무신경한 표정을 지으며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잠시 동안 남자와 여자는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잠시 뒤 여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사실 반대편 역에서 보고 있었어요.”

남자의 심장이 다시 세차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여자는 남자에게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남자는 무슨 이야기든 빨리하고 꺼져버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남자의 마음을 이해 한다는 듯 여자는 잠깐의 정적을 유지한 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뛰어내릴 실건가요?”

남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남자의 행동은 부자연스러웠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자는 이미 확신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무슨 말을 하던 듣지 않을 것 만 같았다. 남자는 이왕 이렇게 된 거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여자에게 툭 내뱉듯 말을 했다.

“그래서, 신고하실 건가요?”

남자의 물음에 여자는 잠시 생각하는 척 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냥 이야기를 할까, 해서요.”

여자는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어줘 보였다. 그 미소에 약간 누그러진 남자였지만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인 만큼 남자는 경계를 풀지 않은 채 여자를 노려보았다.

“설교인가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여자는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마침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지금이라면 뛰어들 수 있을 것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남자는 자신의 옆에 앉은 이 여자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대체 무엇을 이야기하기 위해 건너편에서 넘어온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곧 자살할지도 모르는 남자를 눈앞에 두고서도 이렇게 여유 있을 수가 있는 걸까. 남자는 그녀의 이야기가 들어보고 싶어졌다. 남자는 죽기 전의 여흥이라고 생각하고 여자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여자는 고맙다는 듯 인사를 했다. 그리고 열차가 역 안으로 들어옴과 동시에 여자는 남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자살을 하려고 하나요?”

“그야, 더 이상 희망이 없으니까요. 모든 걸 잃었고 또 그걸 다시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조차 보이지 않으니까요.”

남자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던 여자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인간은 왜 자살을 할까요?”

여자의 질문에 남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언젠가 남자도 똑같은 의문을 품은 적이 있었다. 모든 생물은 살기위해 발버둥 친다. 인간보다 몇 배는 큰 코끼리부터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하루살이까지 모든 동물은 살기위해 발버둥 친다. 심지어 식물마저도 자신을 해하려는 자가 있으면 호르몬을 분비해 자기 보호를 한다고 한다. 생물에게 있어 삶이라고 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다. 본능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만은 죽으려고 한다.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죽으려고 마음먹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질문의 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어요. 인간이란 생물은 너무 많이 진화 한 것이라고요. 그래서 다른 생물이 선택할 수 없는 부분까지 선택할 수 있게 되었대요. 바로, 죽음이라는 선택을 말이죠.”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인간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살을 하는 게 아닐까? 스스로 삶을 계속해 나갈 것인지 아니면 여기서 그만 둘 것 인지를 선택 하는 행위를 말이다. 그리고 그 이성이 인간이 진화 해오면서 얻은 산물이라면 자살이라는 행위는 인간을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행위가 아닐까? 다른 동물과는 구별되는 가장 인간적인 행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가장 인간다운 선택일 수 있어요. 인륜적인 문제가 걱정이시라면 그렇게 생각하시면 되요.”

여자는 웃으며 말했다. 남자는 여자의 말을 다시 한 번 곱씹었다. 여자의 말에는 이상한 게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건 모순되는 이야기가 아닌가요? 진화라는 건 생물이 자신들의 종을 보존하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너무 많이 진화한 결과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라니요. 모순되는 이야기잖아요. 게다가 세상에는 그것 말고도 선택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도 많잖아요. 스스로의 목숨을 그만 두는 선택은 진화로 보기엔 너무 단순한 선택이네요.”

남자의 이야기가 끝남과 동시에 열차는 역을 떠나 짖은 어둠속으로 사라져갔다. 여자는 남자와 처음 마주쳤을 때처럼 아무 말 없이 벤치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여자는 그렇게 물었다. 남자는 말없이 고개만을 끄덕였다. 그러자 여자는 다시 한 번 환하게 웃어 보였다.

“다행이네요. 그럼, 이제 뛰어내리 실건가요?”

여자의 물음에 남자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 스스로 자살을 부정했다. 자살이라는 행위가 진화가 아니냐는 질문에 남자는 진화라고 보기엔 알맞지 않다고 해버렸다. 남자는 그제야 자신이 죽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자는 다시 한 번 활짝 웃으며 남자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번호, 알 수 있을까요? 언제 한번 다시 이야기 하고 싶어서요.”

남자는 흔쾌히 자신의 번호를 찍어주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계단 위로 뛰어 올라갔다. 남자는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여자의 모습이 사라지고 남자는 멍하니 반대편 역을 바라보았다. 얼마 있지 않아 여자가 맞은편 역에서 모습을 보였다. 여자는 아직 벤치 위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했는지 기쁜 듯 손을 흔들었다. 남자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어보였다.

“띠리리리리링”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여자가 있는 반대편 역의 열차소리다. 여자는 휴대폰을 잠시 만지작거리더니 남자를 보며 자신의 휴대폰을 가리켰다. 아마도 연락하겠다는 제스처인 것 같았다. 남자는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생명의 은인이기도 한 여자였다. 연락해준다면 밥이라도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자의 역으로 열차가 들어온다.

여자는 웃는 얼굴로.

열차에 뛰어들었다.

남자는 한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멍하니 여자가 사라진 곳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고 열차는 그 자리에 멈춘 채 움직이질 않았다. 넋이 나간 채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남자는 휴대폰의 진동으로 겨우 정신을 차렸다. 처음 보는 번호로 온 문자. 아마도 여자에게서 온 문자인 것 같았다. 남자는 황급히 휴대폰을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단 세자만이 선명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겁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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