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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겨울의 아이

2011.01.09 22:1901.09

                                                 겨울의 아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편집장이 이번 주에 발행될 주간 시사지를 휴간하고 일주일간 휴가를 주겠다는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킬 선언을 편집자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나와 동료들은 그런 편집장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일하는 주간 시사지의 편집장은 절대로 그런 선언을 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시간이 많아도 마감이 임박했다면서 우리를 독촉하는 사람이었는데, 편집장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지 갑작스럽게 휴간 내겠다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게다가 주간지라는 것이 일주일마다 생기는 시사이슈들을 다뤄서 회사에서 정한 휴간주가 아닌 이상은 매주 발행을 하는 것이 정석이고 원칙이었다.
나와 동료들은 지금 벌어지는 상황에 의문을 품으며 편집장에게 물었다.

“편집장님! 대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번 주는 내는 주간이라고요. 게다가 크리스마스도 얼마 남지 않았고요. 그런데 뜬금없이 휴간이라뇨. 말이 되는 소리예요?”
“맞아요. 그리고 그렇게 되면 우리 경쟁 주간지에게 좋은 일만 해주는 거잖아요. 언제는 다른 주간지에게 우리의 자리를 내주면 안 된다고 했으면서 말이죠.”

그러자 편집장이 입을 삐죽 내밀며 퉁명스러운 어조와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지금 내 결정이 싫다는 건가? 그럼 어쩔 수 없이 예정대로 발행하는 수밖에.”
“그, 그건…”
“자네들도 그건 싫지? 그러니 이번 주는 휴간이다. 그러니 그렇게 알고 홈페이지에 본사 사정으로 이번 주는 휴간이라고 홈페이지 관리팀에 말해.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고 다들 일주일 동안 푹 쉬라고.”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하던 편집장은 그렇게 무책임하게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나와 내 동료들은 멍하니 회의실에 앉아 눈으로 이제 어떻게 하지라 서로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나온 결론은 신나게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물론 가슴 한편으로는 우리 잡지를 애독해주는 독자들에게 미안함이 내 양심을 콕콕 찌르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일단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상책이었다. 이런 일은 내가 퇴사하기 전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짐을 챙겨 회사를 나온 나는 직장 동료들에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건네며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하는 동안 나는 겨울의 거리를 바라보았다. 거리는 한산했고, 그래서인지 매년 추웠던 겨울은 더욱더 춥게 느껴졌다. 거기다가 어제 내린 눈이 그런 느낌을 더했다.
나는 겨울이 싫다. 사계절 중에서 가장 싫은 계절이 겨울이다. 누군가에게는 낭만적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겨울이라는 것은 계절의 끝이고 1년의 끝이며 인생으로 봐서는 황혼에 해당한다. 그래서 하늘도 잿빛의 구름들이 계절의 반을 하늘을 뒤덮는 것일지도 모른다. 반면에 다른 계절들은 사계절의 시작이거나 중간이며, 인생에서는 청춘이거나 가장 성숙한 불혹이다. 그리고 그런 계절들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따뜻하고 열정적이며 차분한 느낌이 든다.
물론 여름은 청춘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파괴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파괴는 다시 창조를 위한 것이다. 여름에 한차례 폭풍이 몰아닥치면 바다에는 그동안 부족했던 산소들을 공급해 자연의 순환을 돕는다. 그렇지만 겨울은 어떤지 생각해보라. 겨울은 엄청난 강추위와 폭설을 몰고 와 살아있는 생명을 죽여 버리고 어떠한 것도 자라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겨울이 싫은 것이다. 따뜻하지도 않고 생명이 자라지 않는 이 겨울이 말이다. 그런데  이 겨울은 매년, 매월, 매일, 매시 찾아온다. 이제 그만 찾아왔으면 좋겠다.
어느덧 택시는 내가 사는 동네에 당도해 있었다. 그리고 그쯤이 돼서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짜증이 났다. 일어나지 않을 휴가를 얻었는데 눈 때문에 밖에 나가는 것에 제약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눈이 내리면 기온이 뚝 떨어져서 추웠다.
나는 택시기사님께 택시비를 주고 택시에서 내리고는 2층으로 된 작은 빌라로 들어가 2층의 내 집으로 올라갔다.
내가 사는 동네는 생동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이름이 왜 생동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에서 유일하게 자연과 집이 조화를 이룬다고 한다. 하지만 겨울에는 그런 조화가 하얀색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내 집은 그런 이 동네를 잘 감상할 수 있는, 아는 사람만 아는 명당 중의 명당이었다. 게다가 집 앞은 바로 놀이터를 옆에 단 공원이어서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하지만 겨울에는 그것들이 모두 칙칙하거나 눈 속에 파묻힌다. 다른 계절에는 얼마나 아름다운데 말이다.
나는 집으로 들어와 패딩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거실 창문으로 눈 내려 쌓이는 공원을 바라보았다. 공원은 하얀 눈에 이미 점령당해 버려 있었다. 나는 눈 덮인 공원을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 또 이런 광경을 봐야 하는구나. 그러면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공원에 있는 한 아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보통의 아이였다면 내 눈에는 들지 않았겠지만, 그 아이는 보통의 아이가 아닌 것 같았다.
아이는 계절과 맞지 않게 가을 옷을 입고 있었고 달랑 목에 목도리만 두르고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눈 내리는 것을 봐도 별 감흥이 없는지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보통의 아이 같았으면 눈 내리는 것만 봐도 좋아 날 뛸 것이고, 친구들과 함께 눈사람을 만든다던지 눈싸움을 하는 것이 정상일 텐데, 내가 보는 그 아이는 그렇지가 않았다. 정말 이상한 아이였다. 저 아이는 대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그렇게 보는 것일까?
눈 덮인 산을 씁쓸하게 바라보던 내게 그런 의문이 생겼다. 그러나 나는 별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아마 저 아이도 자기 나름에서는 눈이 신기해서 저러고 있는 것이겠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해주는 크리스마스 특집 프로를 보기 위해 소파에 몸을 던져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켰다.
그리고 케이블 tv로 채널을 돌렸다. 텔레비전에서는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남녀의 생활을 탐구한다는 탐구프로그램의 특집을 해주고 있었다. 그것도 오후 3시까지. 시계를 보니 10시였다. 일주일간의 휴가를 어떻게 보낼지 아직 별다른 계획이 없었던 나는 그것을 보면서 일주일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먹을 주전부리가 필요했다. 나는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에는 며칠 전부터 먹다만 반찬들과 유통기한이 지난 요구르트뿐 마땅히 먹을 만한 것은 없었다.
결국 남은 방법은 밖에 나가서 사오는 것과 배달을 시켜서 먹는 수뿐이었다. 하지만 밖은 추웠고 눈까지 와서 나는 나가기가 싫었다. 그렇다는 것은 음식을 배달해서 먹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나는 룰루랄라 거리며 냉장고에 붙은 피자집 자석을 들고 텔레비전 옆 놓인 전화의 수화기를 들어 피자집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고 이내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목소리를 향해 내가 먹고 싶은 피자를 주문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짜증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 참. 오늘 같은 날에 피자를 왜 주문하는 겁니까? 오늘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주문 안 되니, 먹고 싶으면 만들어 놓을 테니까. 직접 와서 찾아가세요.”

그러고는 목소리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순간 울컥해서 수화기를 높이 들어 던져버릴 뻔했다. 하지만 집에는 마땅히 먹을 것도 없었고, 밖에 눈이 많이 오는 데 배달주문을 했으니 전화 받은 사람이 당연 화를 낼만도 했다. 하는 수없이 소파에 던져놓은 패딩을 따뜻하게 걸치고 후드 티의 후드를 머리에 씌고 우산 하나를 집어 집을 나섰다.
피자집으로 가려면 공원 놀이터를 지나야 했다. 나는 놀이터 앞을 지날 때, 아직 그 아이가 놀이터에 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 앞을 지날 때 살짝 곁눈질로 놀이터를 살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는 내가 본 그때의 그 자세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만 놀라 가던 길을 멈추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 동안 아이를 바라보던 나는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아이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고개를 내리지 않고 하늘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멀리서 봐서 잘 보지 못한 표정은 신나하는 얼굴이 아닌, 눈 내리는 것에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표정으로.
나는 피자집에 피자를 가지러 가고 있는 와중이라는 걸 잊어버린 채, 눈 내리는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를 가까이에서 보니 아이는 흡사 인형과도 같은 표정과 외모를 지니고 있어, 내 모성애를 자극하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인형보다도 더 인형 같아 보였다. 나는 그런 인형 같이 예쁘게 생긴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얘, 너 여기 혼자서 뭘 그렇게 쳐다보니?”

  하지만 아이는 내 물음에 어떠한 태도도 취하지 않고 계속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이는 내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을 물었지만 아이는 대답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나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나는 그런 아이의 태도에 화가 올라오는 것 같았지만 참기로 했다. 어린아이에게 화를 낼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할 수 없이 아이의 손을 잡고 내가 쓰고 있던 우산을 아이의 손에 쥐어주고 뒤돌아 걸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피자집에 가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떠올리고는 양팔로 몸을 감싸며 피자집으로 향했다.
피자집으로 가는 동안 눈은 조금 전보다 더 많이 내렸다. 그래서 내린 눈들이 내 머리와 어깨 위에 털면 또 쌓이고 털면 또 쌓였다. 그리고 나는 우산을 아이에게 주는 게 아니었다고 생각했을 쯤 나는 피자집에 도착했다.
피자집에 들어서자 주인장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많이 기다렸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오는 도중에 아는 사람을 만나서 늦었다고 변명을 하며 미안하다고 전했다. 그러자 주인은 약속은 칼 같이 지켜야 한다면서 카운터에 피자를 집어던지듯 내려놓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돈을 피자 옆에 내려놓고, 피자를 들고 어색한 표정으로 죄송하다고 거듭 사죄했다. 그러고는 가게 문을 밀었다. 그런데 순간 밖에는 눈이 내리고 내게는 우산이 없다는 것이 떠올랐다.
만일 우산 없이 피자를 들고 갔다간 피자를 담은 피자상자가 젖어 피자는 식어버리고 물컹물컹해진 피자를 먹게 되리라.
결국 나는 그런 끔찍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돌아서서 가게 주인에게 아부의 목소리로 부탁했다.

“저, 죄송하지만 우산 좀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오는 길에 우산이 고장 나고 바람에 우산이 날아가 버렸거든요.”

정말 한심한 변명이었다. 우산이 고장 난 뒤에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는 말 도 안 되는 변명을 가게 주인이 믿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주인이 말하는 태도와 성격으로 봐서는 돈 주고 우산을 사라고 할 것 같았다. 내게 바가지를 씌우면서.
하지만 내 귀에 들린 주인의 말은 뜻밖에도 그렇게 하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잠시만 기다려라 하고는 우산 하나를 내게 내밀며 필요 없는 우산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놀라 멀뚱히 그가 내민 우산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주인이 싫은가? 라고 물으며 도로 우산을 가져가려 했다. 나는 고개를 한 번 흔들고는 “아뇨!” 라 가게 전체가 울릴 정도로 크게 대답했다. 주인은 내 대답을 듣고 크게 웃으면서 내게 우산을 건네주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호의에 감명을 받으며 피자를 들고 가게를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눈 내리는 거리를 걸으며 집으로 가는 데, 아직 아이가 놀이터에 있을지 궁금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집으로 돌아갔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아이는 내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게 하고, 놀이터에서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준 우산은 자신의 옆에 내 팽 게 쳐놓고서 말이다. 나는 그 아이를 보고 한 숨이 나왔다. 대체 저기서 무엇을 보고 있는 거길 레 저러고 있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를 바라보던 나는, 저 아이를 이대로 놓아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가가 아이의 손을 잡아끌어 무작정 집으로 데려갔다.
아이는 내게 끌려가면서도 가기 싫다는 듯 발을 질질 끌었다. 하지만 고작 어린아이가 성인 여자에게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래봬도 내가 힘 좀 꾀나 쓰고, 자기보다도 몇 년을 더 먹었는데 어떻게 나를 이길 수 있을까.
그렇게 아이를 억지로 집으로 데려온 나는 아이의 몸을 수건으로 닦고 아이에게 담요로 몸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먹으려고 사 온 피자 중 한 조각을 뜯어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는 내가 건네 준 피자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아이에게 다시 권유해봤지만 역시나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나는 부엌에서 컵 두 개와 냉장고에서 오렌지 쥬스를 꺼내 거실로 가, 컵과 오렌지 쥬스를 내려놓고 아이에게 물었다.
  
“너, 눈 내리는 데, 그런 옷차림으로 하늘은 왜 계속 바라보고 있었어?”

하지만 아이는 내게 화가 났는지 입을 삐죽 내밀고 볼에다가 공기를 잔뜩 불어넣고서 창밖만을 응시했다. 나는 그런 아이를 보고 아이에게서 얘기를 들을 수는 없겠다고 생각하고는 중얼거렸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그렇게 있는 데 갑자기 담요를 흘리며 아이가 일어섰다. 그리고 아이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돌아갈 게.”

내가 그렇게 물어봤는데도 아무대꾸도 하지 않은 아이가 한 첫 말이었다. 나는 아이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보았다. 그리고 돌아서서 현관으로 향하는 아이의 팔을 잡으며 물었다.

“거기는 왜 가는 건데?”

그러자 아이는 나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내 친구가 오기로 했거든. 그래서 어서 가서 기다려야 해. 그 친구가 가 버리면 안 되니까.”
“친구?”

친구?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데 친구가 와? 나는 아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아이에게 창밖을 보라고 하면서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데 친구가 오냐고 되물었다. 내 물음에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애는 와. 그 애가 좋아하는 때가 바로 눈이 내리는 때고, 그 애는 항상 눈하고 왔어. 그 애는 내가 어디 있는 지도 다 아는 걸.”

하지만 누가 봐도 이런 날씨에 친구가 온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눈은 점점 많이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잠시 창밖으로 눈을 돌렸을 때, 아이가 내 손을 뿌리치고 현관으로 달려가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도 따라 나갈까 생각했지만, 여기까지 한 것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는 현관문을 잠그고 이미 식어버린 피자와 오렌지 쥬스를 마시며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러나 눈 많이 내리는 밖으로 나간 아이에게 신경이 쓰여 도무지 텔레비전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남녀의 생활을 탐구한다는 프로그램에서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 나와도 집중해서 웃을 수도 없었다.
나는 아이가 아직도 밖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지 창으로 살펴보았는데, 다행히 그 애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아이의 엄마가 데리고 갔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나는 텔레비전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집중할 수 있었다.


  다음날, 눈은 언제 내렸냐는 듯이 그쳐 있었다. 눈이 그친 것은 좋았지만 쌓인 눈은 여전히 세상을 하얗게 덮고 있는 게 내 눈을 찌푸리게 했다. 나는 창문 난간에 기대어 밖을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눈이 녹지 않으면 기운이 올라가지 않잖아.”

그러고는 시선을 놀이터로 옮겼다. 놀이터에는 눈이 그친 것 때문에 아이들이 나와 눈싸움과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아이들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눈 내리는 날을 좋아하는 거지? 미끄럽고 춥기만 한데 말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는 눈으로 어제 그 아이를 눈으로 찾았다.
그런데 무리에서 그 애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눈을 싫어하는 건가? 설마… 눈 내리는 날에, 그것도 가을 옷을 입고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설마 싫어했을까. 분명 좋아했으리라. 그러니 이 추운 겨울에 그런 옷차림으로 밖에 나와 있었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내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옷을 대충 따뜻하게 걸치고 문을 나서 놀이터로 향했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오자 겨울의 세찬 바람이 불어와 몸을 떨게 했다. 아무리 따뜻하게 걸쳤는데도 겨울의 찬바람은 막을 수 없었다. 나는 문득 아이들이 참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이런 추운 날씨에도 밖에서 추위도 잊고 뛰어노는데 그게 얼마나 대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에 비해 아이들보다도 한참 어른인 나는 몸을 떨고 있다니, 나는 내가 한심해 보였지만, 추운 걸 어찌한단 말인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놀이터에 도착했다. 놀이터에 입구에 서 있자 아이들이 눈을 말아서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조심스레 말을 붙여보았다.

“얘들아, 이 누나가 뭐 물어볼 게 있는 데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신나게 노는 아이들에게 내 말이 들릴 턱이 없었다. 그래서 좀 더 큰 소리로 아이들을 불렀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내 말을 들었는지 눈싸움을 하던 것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나는 웃으며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아이들도 내가 다가가자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나는 손으로 무릎을 잡으며 허리를 숙여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물었다.

“너희들 혹시 어제 여기서 하늘 올려다보던 애 못 봤니?”
“어제요?”

아이들 중 안 애가 내게 되물었다. 나는 그 애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 아이는 봤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걔 얼마 전부터 놀이터하고 공원에서 봤어요.”
“놀이터하고 공원에서? 그럼 걔 이름이 뭔지는 아니?”

그렇게 내가 묻자, 그 자리에 있던 아이들은 다들 하나 같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상냥하게 미소 지으며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뒤로 돌아서자 말자 아이들은 다시 눈싸움을 시작했다.
나는 놀이터 입구에서 옆의 공원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혹시 어쩌면 그 아이는 그곳에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놀이터 입구에서 발걸음을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으로 가면서 나는 얼마 만에 공원에 가는 지 생각해보았다. 생태공원인 생동공원에는 겨울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계절에 피는 대표적인 꽃들은 다 피었다. 그래서 각 계절의 한가한 날마다 자주 꽃을 보러 공원에 놀러갔는데, 꽃봉오리를 꺾다가 잘못해 벌에게 쏘인 적도, 봄에 짝을 부르는 새들의 지적임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선명한 초록 잎의 나무들이 보고만 있어도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했고,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들고 낙화하여 공원의 가을 풍경이 낭만적이게 보이게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공원도 세상의 일부였었던 지라, 겨울이 되면 모든 낙엽들이 다 떨어지고 추워져 공원은 그야말로 쓸쓸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그래, 기온이 떨어져서 추분데 더 춥게 만들었다.
그런 생각을 곱씹으며 나는 공원 산책로로 접어들었다. 공원 산책로에 접어들자 산책로 양옆으로 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빼곡히 서 있는 숲이 나타났다. 나무들은 가을에 잎사귀가 낙엽이 되어 다 떨어져 땅의 쌓인 눈들과 알몸만 보일 뿐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보면서 ‘역시 겨울은 좋은 풍경을 가진 곳도 안 좋아보이게 만드네.’ 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잎사귀가 다 떨어진 나무들 사이를 바라보며 아이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나무들 사이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아이는 공원 깊숙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곳이 이곳 보다는 넓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산책로를 거닐면서 아이가 공원에 있는 지 살폈는데, 갑자기 나무들이 듬성듬성 해지더니 이내 보이지 않고 넓은 공터 비슷한 게 나타났고, 내 눈 앞에 큰 웅덩이 하나가 보였다. 생동호수였다. 생동공원에 있는 꽤 큰 호수다. 공원에 들리면 반드시 들리는 곳이었다. 나는 혹시 이곳에 아이가 있을지 찾으며 호수를 둘러보았다.
눈으로는 아이를 찾으면서 머리로는 호수의 겨울 풍경을 생각했다. 봄과 여름과 가을에 보았던 겨울의 모습은 언제 봐도 적응이 안 되었다. 내가 쭉 공원에 오면 보아오던 봄의 산뜻함과 여름의 시원함, 가을의 고요함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겨울의 생명은 볼 수 없었다. 왜 겨울은 이렇게 쓸쓸함과 추운 계절인 것일까. 겨울도 다른 계절들 같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사계절 모두에서 생명이 느껴졌을 것인데 말이다. 그런데 문득 생각이 아이에게로 미쳤다. 무표정한 얼굴로 눈 내리는 것을 바라보았지만, 아이는 분명 겨울을 좋아하고 있었다. 대체 왜 사람들은 춥고 쓸쓸해 보이는 겨울을 왜 좋아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쯤, 나는 호수 한 바퀴를 다 돌고 또 한 바퀴를 돌고 있었다. 나는 놀라 급히 멈춰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호수 주위에는 개미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여기 있어봤자 그 아이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발걸음을 옮겨 호수 다음 장소로 향했다.
그때 내가 향하는 산책로 방향에서 작은 인영하나가 보였다. 나와 인영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나는 그 인영이 내가 찾던 그 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이가 날 보더니 걷던 걸음을 멈췄다. 나는 그런 아이에게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는 길이야?”
“저어어기.”

이번에 아이는 내 말을 무시하지 않고 몸을 돌려 내가 가던 방향에 있는 숲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래? 그럼 거기서 뭐했는데.”
“친구하고 얘기를 나눴어.”
“친구? 어제 기다리던 친구가 온 거야?”

내가 그렇게 묻자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또 다른 친구. 그 애는 여기에 살거든. 그 애도, 그 애를 기다리고 있어.”

이해 할 수 없는 말이었다. 대체 이 아이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나는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에 사는 애가 있어?”

내가 그렇게 묻자 아이는 작은 손으로 내 팔을 잡더니, 나를 자신이 왔던 방향으로 끌고 갔다. 나는 그런 아이에게 어디 가는 거냐고 물었지만 아이는 내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의 손에 이끌려 간 곳은 호수 다음에 나오는 소나무 숲이었다.

“여긴 왜?”

아이가 팔을 뻗어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나는 아이가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내 눈에 참새 세 마리가 띠었다. 나는 혹시나 하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이는 참새들이 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이의 걸음을 잠자코 지켜보던 나는 참새들이 아이를 피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가 뒤를 돌아보며 가까이 오라는 눈짓을 했다. 나는 아이가 시키는 대로 가까이 다가갔다.

“얘들이 네 친구들이야?”

내가 그렇게 묻자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무릎을 꿇어 참새들에게 왼손을 내밀었다. 참새들은 아이가 내미는 손 위로 올라가 아이의 어깨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는 자신의 어깨에 있는 참새들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참새들은 아이가 쓰다듬는데도 놀라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신기했다. 정말로 신기했다. 참새들이 저렇게 사람을 잘 따를 줄이야. 나는 그것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겨울인데도 참새들은 추위를 하나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꽤 활발하게 움직였다.
모든 동식물들은 이 겨울이라는 놈 앞에서는 힘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이와 노니는 저 참새들은 그런 겨울의 힘이 무엇이냐는 듯 행동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이 아이들은 겨울이 좋다고 그러니?”

나의 물음에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무슨 말이냐고 묻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표정을 짓는 아이에게 자세히 재차 설명했다. 그러자 아이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참새를 바라보았다. 마치 참새를 보고 있기라도 하면 참새가 무슨 생각을,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수 있다는 것처럼.
그리고 아이는 참새에게서 시선을 내게로 옮기고 말했다.

“얘들이 그러는데, 이 계절이 좋데. 그리고 좋은 이유가 겨울에 찾아오는 친구가 있기 때문이라고 해.”
“그럼 너도 겨울이 좋니?”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이렇게 말했다.

“나도 얘들하고 똑같아. 겨울이 좋아. 얘들이 기다리는 친구가 내 친구이기도 하니까. 꽤 오래전부터 걔를 기다렸어. 그 애는 항상 이곳저곳을 떠돌아. 그래서 자주 만나기가 어려워. 그런데 올해 내 친한 친구들에게서 들은 얘기로 그 애가 이곳을 지나간다고 그랬어.”

하지만 나는 아이의 지금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지금 아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도대체 이 아이는 참새가 무엇을 생각하는 지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 게다가 친한 친구와 계속 기다렸다는 그 아이는 대체 누구고 말이다. 그리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고작 친구가 겨울에 찾아오기 때문에 좋다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다.
사람들이 말하기로는 겨울에 눈이 내려서 세상이 하얗게 물드는 게 아름답다고 한다. 대체 어디가 어떻게 아름답다는 건가? 눈이 세상을 덮으면 다른 미 없이 그저 하얀색으로 통일된 단조로운 세상이 될 뿐인데 말이다. 그러면서 나는 이마에 주름을 지었다. 그러다가 아이에게 겨울이 좋은 이유를 물어보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저 아이가 겨울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얘, 뭐 좀 물어봐도 되니?”
“뭔데?”

아이가 뒤를 돌아보며 되물었다.

“좀 전에 친구 때문에 겨울이 좋다고 했잖아. 그것 말고 또 다른 이유라도 있나 해서.”

그러자 아이는 짧게 “있어.” 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말한 아이에게 그게 뭐냐고 물었다.  그 말에 아이는 고개를 내 얼굴을 향해 돌리고는 말했다.

“겨울은 세상이 하얗게 덮일 수 있는 계절이고 봄을 기다릴 수도 있어. 그래서 나는 겨울이 좋아.”
“그게 이유야?”

나는 그 말을 듣고는 놀라 아이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내게 이렇게 되물었다.

“응. 그것 말고 또 다른 이유가 필요해?”

  나는 아이의 물음에 말을 흐렸다.

“그, 그건… 그러니까.”

대답할 수 없었다. 아이에게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그래, 다른 이유는 필요 없지. 하지만 겨울이잖아. 겨울은 어느 계절보다 가장 춥고 쓸쓸한 계절이다. 나는 침을 목으로 넘기며 말했다.

“겨울이니까. 하얀 세상은 별로 재미없잖아. 겨울에는 동물들도 고니 잠을 자고 하니까 말야. 그러니 다른 이유가 있어야지.”

나는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말했다. 부디 아이가 내 말을 믿어주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내 바람은 빗나갔다. 아이가 내게 허를 찌를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내가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야. 동물들 자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데. 그리고 그 애도 그렇게 말했어. 겨울은 그 애들에게는 축복이라고. 눈이 동물들에게 먹이를 준다고 하면서 말야. 그리고 세상에게도 축복을 내린 데. 그런데 누나는 그런 게 싫은 거야?”
“어?”

아이의 말에 나는 순간 멈칫했다. 아이가 내 생각을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나 그럴 일은 없겠지. 고작 꼬마가 내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독심술을 가졌을 리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젓고는 아이의 말에 대답했다.

“아니, 얼마나 좋은 데.”
“하지만 얼굴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그럴 리가 난 겨울이 좋아. 네 말대로 이 겨울이라는 게 축복인 것 같아. 동물들에게 먹이도 주는 계절이기도 하니까.”

거짓말을 해버렸다. 나는 아이가 겨울을 좋아한다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아이의 말을 따라한 것뿐이었다. 나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의 시선을 받고 있으라면 왠지 내 양심이 무언가에 찔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겨울이 어떻게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고 세상에 축복을 내리는 지 아는 거야?”

  그렇게 묻는 아이의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혀버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아이가 입을 열었다.

“바로 이 하얀 것들이야.”

그러면서 아이는 땅에 쌓인 눈들을 모으고 다지면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이 하얀 눈들이 동물들의 먹이를 자라게 해. 그리고 그건 겨울이 세상에게 주는 축복이야.”
“하지만 눈은 식물들을 얼어 죽게 해. 어떻게 그게 축복인 거니?”

내가 아이의 말에 반문했다. 눈은 식물들을 얼어 죽게 했다. 그래서 먹을 게 없는 동물들이 겨울잠을 자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누나 말이 맞아. 겨울은 식물들을 죽게 하기도 해. 하지만 그건 많이 내리게 하는 구름 때문이야. 내 친구가 그러는데 그렇게 내리는 눈들은 눈 내리게 하는 사람이 잘 못해서 그런 거래.”

슬픈 표정을 지은 아이가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아이의 말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었다. 지금 아이의 말을 들어보면 마치 동화 속에서 선녀든 요정이든 눈을 내리게 하는 존재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사실대로 말한다면 아이가 상처 받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말을 잘 들어본다면 많이 내리는 눈만이 식물들을 죽인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진눈깨비가 아닌 이상 쌓이는 눈들은 모두 식물들을 얼게 한다. 그 가느린 것들에게는 그런 작은 것들에게 조차 버거운 상대이니까. 그런데 어제부터 말하던 그 친구란 누구인걸까?
그런 의문을 품고 있을 그때, 참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아이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아이는 자신의 어깨에 내려앉은 또 한 마리의 참새의 부리에 자신의 가는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내 눈에 그런 그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나는 그들을 지켜보았다. 아이는 참새에게서 뭔가를 듣고 있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내게는 처음 보여주는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좀 있으면 내 친구가 이 동네에 온 데. 그러면 그때 내가 누나한테 보여줄 게. 그 애는 겨울을 돕거든.”

나는 아이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이는 나의 그런 표정을 신경 쓰지 않고 한 가지 말을 덧붙였다.

“저녁이야. 저녁에 눈이 내린데.”

지금 말한 저녁이 아이가 말한 친구가 올 때 일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어떻게 눈이 오늘 저녁에 눈이 온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저녁이 되었다. 저녁이 되기 전. 나는 아이와 잠시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아침과 점심을 먹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다시 아이가 있는 생동공원으로 향했다. 생동공원으로 향하면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나도 겨울을 좋아했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꽤 오래돼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 있었던 것 같다. 자세히는 아니지만 눈이 내리기 전날 내가 화분 세 개를 마당에 놓아두었는데, 다음 날 내 화분이 눈 속에 파묻혀 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또 책을 보면서 겨울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일과 그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나는 커가면서 눈이라면, 겨울이라면 질색하게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만일 누군가가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를 늘어놓으면 그 이유에 토를 달기도 했었다. 또 지금은 겨울과 관련된 일들 중 겨울로 인해 일어난 일들은 대부분 기사를 내가 쓴다. 그러면서 나는 또 다시 되뇐다. 겨울이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히는 지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생동공원에 다다랐다. 나는 산책로로 들어가 아이와 헤어진 장소로 향했다. 그곳으로 가는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하늘에는 회색구름이 떠있었다.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장소에 다다르자, 나를 기다리는 아이가 보였다. 아이는 나와 헤어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혼자였다. 나는 그 애에게 다다가 물었다.

“너 혼자니? 아직 친구는 안 온 거야?”

아이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기다리면 곧 올 거야.”

그리고 그 말이 끝나자 갑자기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그러자 아이가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혹시 친구라도 온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은 나와 아이뿐이었다. 나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처음 아이를 보았을 때도 눈이 내렸지만 지금처럼 웃지는 않았다.

“왜 그렇게 신나 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묻자 아이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말한 그 친구가 왔어.”
“친구?”
“응. 친구 말야. 지금 내 친구가 이 눈을 내려주고 있거든.”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있다. 이 아이의 친구는 무슨 신이라도 되는 것일까? 나는 그 궁금증을 참다못해 아이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대체 그 친구가 누구 길래 그러니?”

아이는 그 물음에 자랑스럽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아이는 저 구름이야.”
“구름이라고? 그게 네 친구야?”

내가 놀라 그렇게 되묻자 아이는 그렇다면서 속사포처럼 자랑을 늘어놓았다.

“응. 저 구름이 눈으로 세상을 하얗게 하고 세상을 하얗게 한 것으로 식물들이 잘 자랄 수 있게 해. 그러면 잘 자란 식물들이 다음 봄을 준비하게 하고 깨어난 동물들에게 먹을 것을 줘.”

아이의 눈은 그렇게 말하는 동안 반짝반짝 빛이 났다. 어쩜 저렇게 눈이 반짝일 수 있을까 했다. 그러나 아이의 말에 나는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물론 겨울이 있어야 봄이 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식물들을 잘 자라게 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내게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보기에는 안타깝지만 식물들이 죽을 수 있게 해요. 그러면 죽은 식물들이 땅으로 돌아가요. 그러고는 그 식물들이 태어나는 식물들을 도와요.”

아이의 말이 내 뇌에 각인되었다. 지금 이 아이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나는 아이를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가 지금 말하고 있는 말이 어떤 것인지 짐작이 갔다. 아이가 이 단어를 알지 모르겠지만, 분명 아이는 순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순환. 여태껏 겨울이 싫다고만 생각하고 있어서 그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를 비웃었다. 여태까지 겨울을 그런 죽음의 계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니, 정말 한심했다. 아, 그래서 사람들이 겨울을 좋아했던 거였을까? 내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눈 내리는 숲의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기분이 왠지 모르게 맑아졌다. 눈이 내리고 내린 눈이 쌓인 숲은 조금 전과는 달라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런 기분을 좀 더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신나하는 아이에게 말했다.

“나 하고 좀 더 공원을 걸어볼래?”

내 말을 들은 아이는 한시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겠다고 말했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공원 산책로를 따라 계속 거닐었다. 나는 신기했다. 겨울이 생각만으로 이렇게 달라 보일 수 있다는 것이 굉장했다. 그리고 공원의 또 다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공원의 숲들은 하얀 눈들로 가득해 마치 솜이 땅과 나무에 떨어지거나 걸린 것처럼 보였고, 호수는 중앙에 거울이 있는 들판 같이 느껴졌다. 얼어버린 호수에 얼굴을 비치니 투명한 얼음 위로 내 얼굴이 들어났다. 나는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짧은 단발에 대충 입은 옷들. 다른 계절에 호수의 물에 내 모습을 비추면 좀 어둡게 모습이 투영되었는데, 얼음 위의 내 모습은 그 모습 그대로 였다.
이런 게 겨울이 주는 선물인 건가? 다른 계절과는 달리 쓸쓸하고 삭막하게 보이는 계절이지만, 저 나름의 특징과 행복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여태까지 내가 정말 잘못 생각하고 있었나 보네. 이렇게 좋은 겨울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옆에서 걷고 있던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가 없었다면 겨울을 새롭게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 아이가 어제 눈 오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겨울을 싫어하고 있었을 것이다. 뭐, 지금은 알아가는 단계일 뿐이지만 앞으로는 겨울의 새로운 모습이 내 눈에 보이겠지.
그렇게 산책로를 한 바퀴 돌고 나자 아이가 내게 말했다.

“이제 나도 가 봐야겠어. 친구를 만났으니까. 이제는 떨어지면 안 되잖아.”

그러고는 아이는 내게 손을 흔들면서 구름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갔다. 나는 돌아서 가는 아이에게 별 다른 인사말 없이 그저 아이가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서 손을 흔드는 아이에게 똑같이 손을 흔들어 줄 뿐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나는 발걸음을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가는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니 눈구름은 눈을 뿌리는 것을 곧 그칠 것 같이 보였다.
나는 그것을 보고 생각했다. 저 눈구름이, 다른 눈구름이 자신이 내릴 모든 눈을 내리고 나면, 내려 쌓인 눈들이 봄을 불러 올 것이라는 것을.
이제 겨울은 끝나가고 봄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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