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내 아내의 남편은 누구인가?


이론들은 네 단계를 거쳐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다 :
  ①이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②이것은 흥미롭긴 하지만 잘못된 관점이다.
  ③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다.
  ④나는 항상 그렇게 말했었다.

- 존 버든 샌더슨 홀데인 -

1.

곽정우는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실로 오랜만의 휴가였다. 행성연합개발계획은 소속 엔지니어인 그에게 6개월 동안 단 이틀의 휴일을 주었을 뿐이었다. 알파 센타우리 B 항성계의 업무가 너무 많은 탓도 있었지만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 갇혀 6개월이나 있었던 것은 젊은 남자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이제 막 결혼해 신혼여행을 마치자마자 징용에 끌려가듯 급하게 떠났던 것이기에 그 괴로움은 한층 더했다. 그나마 공간이동장치를 통해 언제라도 알파 센타우리 B 항성계에서 지구까지 한 달음에 달려올 수 있다는 믿음이 없었다면 그 긴 나날을 도저히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과거의 우주 비행사들은 우주 개척을 하기 위해서 개인적인 인생을 포기하다시피 내던졌다. 그 때에 비하면 확실히 지금의 상황은 많이 나아진 편이었다. 그 동안 악마처럼 부려먹었던 상사도, 편의를 보아 반나절 일찍 보내준 것 때문에 천사처럼 보였다. 공항에서 잡은 택시는 불운하게도 사소한 접촉사고를 내서 약간 늦어졌지만 그 것도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었다.

그는 집의 차임벨을 누르면서 떨리는 가슴을 억제하지 못했다. 이제 곧 앞치마를 입은 아내가 나올 것이다. 전화 너머로 보았던 그녀는 매일 손을 꼽으며 정우가 올 날 해줄 것을 하나하나 설명하곤 했다. 아마 식탁은 아직 다 준비 못한 음식 재료로 가득할 것이다. 그녀는 제 때 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것에 상처를 받고 울상이 되겠지. 정우는 그녀의 표정을 생각하기만 해도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럼 그는 아내를 다정하게 감싸안고 공주님처럼 안아 침대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다소 느끼하더라도, ‘나에겐 오직 당신  뿐이야.’ 라고 하면서…….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그는 연신 벨을 눌렀지만 아무도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시장을 갔다. 정우는 얼굴을 찡그리며 도어락의 키패드를 찾아 번호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밀번호가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간신히 세 번째 시도에 기억을 해내고는 문을 열었다. 그러나 현관으로 들어간 정우의 얼굴은 더 이상 그 전처럼 밝지는 않았다. 다소곳이 놓여있는 아내의 신발 옆에 다른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신발이 있었다.

그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슬픔보다는 오히려 쓰나미 파도가 덮쳐오는 순간을 목격하는 인간의 느낌에 비슷했다. 머릿속이 비어버리고 자연의 경이 앞에 모든 것이 압도되어버리는. 확실히 그것은 자연의 경이이긴 했다. 물리적인 거리가 떨어져있다면 심리적인 거리도 멀어져버리는 것은. 공간이동장치가 보편화된 이후에도 알파 센타우리 B 항성계는 지구와 너무도 멀었다.

정우는 침착하게 신발장을 열었다. 그가 입주 때 사놓았던 공구함은 그대로 그 자리에 놓여있었다. 그는 공구함에서 장도리를 꺼내 손에 쥐었다. 티타늄 도금된 장도리는 녹도 슬지 않고 손잡이도 꼭 맞았다. 그는 신발을 벗고 태연하게 안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침대 위에는 그가 상상하는 광경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그는 자신이 처용이 된 것처럼 느꼈다. 서울 밝은 달에 밤늦도록 놀며 지내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정우는 장도리를 잡은 손이 땀으로 미끌거리는 것을 느꼈다. 코가 씰룩거렸다. 그는 장도리를 언제든지 내려칠 수 있게 치켜들고 다른 손으로 이불을 걷어냈다.

“일어나, 이 개잡년 놈들아!”

침대 위의 남녀는 혼비백산하여 일어났다. 그리고 곽정우는 자신의 처용에 대한 비유가 놀라울만큼 정확하다는 것에 대해 당사자들보다 더욱 놀랐다. 그러니까, 거기에는 정말로 그의 가랑이인 것이 둘 있고 그의 것이 아닌 가랑이가 둘 있었다. 그의 것이 아닌 가랑이를 가진 사람이 그를 바라보며 당황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보?”

그녀는 그를 바라보다 자기 옆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있었다. 문제는 그 남자의 가랑이가 진짜로 곽정우의 것이라는 데 있었다. 정우는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물론 거기에는 그의 것이 있었다. 그리고 침대 위에도 둘이 더 있었고.

“당신 누구야?”

곽정우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침대 위의 곽정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날렸다. 곽정우는 장도리를 휘두르려 했지만 곽정우가 그의 팔을 잡았다. 둘은 서로 뒤엉켜 방바닥에 쓰러졌다. 아내가 침대 위에서 비명을 질렀다.

“여보, 어서 경찰에 신고해! 빨리!” 곽정우가 말했다.

“젠장, 가짜 자식이. 부르라면 쫄 줄 아냐!” 다른 곽정우가 말했다.

그들은 한참을 몸을 뒤틀며 싸웠다. 서로의 힘이 비등해 승부가 쉽게 나지 않았다. 그 사이 그의 아내가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잠시 후 출동한 보건소 요원들이 현관문을 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2.

두 명의 곽정우는 30분 뒤 보건소의 격리실에 따로따로 감금되었다. 별로 대단한 시설이 있는 건 아니었다. 내부는 유치장과 비슷했고 한 사람이 간신히 몸을 누일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이 전부였다.

“날 풀어줘. 난 결백하단 말이야. 당신들도 봤잖아. 난 저 녀석과 달리 순순히 조사에 임했어. 내가 이런 대우를 받을 이유가 없다고.”

멀쩡한 곽정우가 옆방의 곽정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손재득은 서류와 커피를 들고 그를 지나쳤다. 그는 격리실 옆에 마련된 간이의자에 앉아있는 곽정우의 아내에게 다가갔다.

“정수아씨?”

“네?”

수아는 판결을 기다리는 요셉 K처럼 초췌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오면서 계속 울었는지 눈두덩이 붉게 퉁퉁 부어있었다. 재득은 들고 있던 커피잔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충격이 크시겠지요. 받으세요. 좀 진정되실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녀는 커피를 받아 초조하게 입으로 가져갔다.

“소마를 약간 탔어요. 쓴 맛이 있어도 불쾌하게 여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괜찮아요. 먹을만하네요.”

수아는 커피를 몇 모금 더 마실 동안 재득은 그녀의 앞에 의자를 끌고 와 마주앉았다.

“일단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진심으로 유감을 표합니다. 제 소개를 안했군요. 저는 클론담당 집행관 손재득이라 합니다. 클론을 판별해서 진짜가 아닌 자를 소각하는 일을 맡고 있지요.”

“소각한다고요?” 수아는 놀라 커피잔을 떨어트릴 뻔 했다. 재득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짜만 말입니다, 사모님.”

“아, 그렇군요.”

수아는 그렇게 답했지만 여전히 눈빛에 의혹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정당한가요? 저는 뭔가……좀 더 사법적인 처리를 기대했는데요. 제 남편은 잘 아는 변호사 친구가 있어요.”

“변호사는 아무 쓸모없어요, 부인. 클론에게는 인권이 없으니까요. 그냥 지우는 거죠.”

“말은 돌리지만 결국은 죽이는 거잖아요.”

“사모님이 그 점을 제게 환기시키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 일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건 제 쪽일 테니까요.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지요. 설마 남편분이 이대로 둘로 늘어나길 바라진 않으시겠지요?”

수아는 잠자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건가요? 전……그러니까 혹시라도 진짜 제 남편이 다치면 어쩌나 해서.”

“그게 제 일이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는 유전자를 가지고 진위를 판단하니까요. 정확도는 100%입니다.”

“유전자요? 하지만 클론이라면 DNA는 동일한 것 아닌가요?”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클론 기술을 통하여 만들어진 복제는 원본보다 훨씬 더 수명이 짧아요. 체세포 복제 과정에서 휴식기에 있는 유전자를 강제로 활성화시키거든요. 복제된 인간은 원래 분에 비해서 텔로미어 DNA의 길이가 매우 짧습니다. 우리는 그걸로 구분을 하는 거죠.”

“아, 그렇군요.” 수아는 비로소 밝은 표정을 지었다. 재득은 그녀를 향해 마주 웃어 보이며 서류를 내밀었다.

“좋습니다. 곽정우씨와는 적법한 부부관계인 거 맞으시죠? 그럼 여기 맨 밑에 서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정부의 텔로미어 검사법에 동의하며……네 거기. 클론의 삭제에 동의한다는 아래요.”

수아는 떨리는 손으로 펜을 잡고 서명을 마쳤다. 그녀는 갇혀있는 두 곽정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결과는 언제 나오죠?”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 들어갔으니까 10분 정도만 더 기다리시면 될겁니다.”

“저……만약에 말이죠. 만약에, 저기 저 쪽. 저기 많이 맞은 저 분이 진짜일 수도 있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지요. 왜 그런 걸 물으시죠?”

“아, 저기 그게. 이런 말 하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저는 저쪽하고 그……그 좀 부끄러운 일을 했거든요. 혹시 그게 간통 같은 걸로 받아들여져서 이혼 사유가 되지는 않을지.”

“아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누구나 그런 상황에서는 속아 넘어가지요. 하지만 그것은 부인 잘못이 아닙니다. 그런 걸 빌미로 남편이 이혼을 요구해봤자 위자료나 왕창 뜯길 테지요.”

“아니, 이혼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이 일이 끝나면 아무래도 서먹서먹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뭐가 문제입니까? 다르게 생각해보세요. 유전자적으로 부인은 바람을 피운 적이 없어요. 전 불임부부의 케이스도 봤었습니다만, 클론과 부인이 잠자리에 들어서 공교롭게도 임신이 된 경우를 알고 있어요. 남편은 무척 좋아했죠. 유전자적으로 자신의 자식인 건 분명하니까요. 단지 성교하는 순간의 감각을 공유하지 못했다고 아내를 불륜이라도 한 것 같이 몰아붙이다니! 남편과 바람피는 아내도 있답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남자하고는 얼른 이혼하는 것이 더 좋아요.”

“그, 그럴까요?”

수아는 주위의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보건소 직원들의 눈은 안 그런 것처럼 그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저기, 그래도 목소리는 좀 줄여주셨으면…….”

“아, 이런. 제가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였군요. 죄송합니다. 아, 저기 검사관이 오네요. 실례하겠습니다.”

재득은 일어나 격리실을 지나쳐 검사관의 곁으로 다가갔다. 검사관은 들고 있는 서류와 곽정우들을 대조하면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결과 어떻게 나왔어?”

“그게……텔로미어 DNA에 차이가 없어요.”

“뭐?”

재득은 서류를 받으면서 되물었다.

“확실해? 뭔가 실수한 거 아니야?”

“네. 저 둘이 일란성 쌍둥이가 아니라면 말이죠. 하지만 기억을 대조했을 때 행적에 큰 차이가 없었어요. 사실 똑같았죠. 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길은 달랐는데 공항까지는 동일해요. 쌍둥이에 텔레파시가 있는 게 아니라면 동일인으로 봐야겠죠.”

“그럼 공항에서 당했다는 소리로군.”

“하지만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 사람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으로 바로 왔다고 진술하고 있어요. DNA를 채취하러 접근한 사람은 없었단 말입니다.”

“혹시 둘 다 가짜인 거 아냐?”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평균 연령대의 성인들과 비교해봤을 때 텔로미어 DNA의 길이가 비슷했어요. 복제를 한 쪽이 우리가 모르는 최첨단 기술을 사용한 게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재득은 고개를 돌려 수아를 보았다. 수아는 뭔가 문제가 있음을 직감했는지 보조 의자에서 일어나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쩌죠?” 검사관이 물었다.

“가만히 있어.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재득은 그렇게 말하고 수아를 향해 몸을 돌렸다.

“어떻게 됐나요, 결과는? 어느 쪽이 진짜 제 남편인가요?”

“저, 부인. 검사과정에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습니다. 검사기기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어요. 별 건 아니니까 곧 다시 고칠 수 있을 겁니다.”

“검사를 다시 한다고요?”

“네. 에러가 떠서요. 번거롭겠지만 좀 더 기다려주십시오.”

재득과 검사관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들은 격리실의 문을 열고 멀쩡한 쪽의 곽정우를 먼저 데리고 다시 한 번 검사실로 사라졌다. 수아는 따라오려 했지만 재득이 몸을 틀어 그녀가 오는 것을 막았다. 그녀는 되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검사실로 향하는 문가에 붙어 종종걸음으로 왔다갔다하면서 작게 훌쩍였다.

“문제같은 건 없어.”

격리실의 곽정우가 말했다. 수아는 눈물을 닦으며 격리실의 창살로 향했다. 곽정우는 부풀어 오른 손목을 주무르며 얌전히 안쪽에 앉아있었다. 끌려올 때, 그는 장도리를 놓으려 하지 않았다. 보건소 직원들은 그를 사정없이 두들겨 팼기 때문에 온 몸이 멍투성이였다.

“저기……당신. 괜찮아?”

“당신은 그렇게 말하면 안돼. 아직 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지도 못하잖아.”

“하지만……그럼 나더러 어쩌라고. 미안하지만 도무지 모르겠어. 어느 쪽이 진짜인지 알 수가 없다고. 아마도 사랑이 부족한 거겠지? 정말 사랑하는 사이라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모를 리가 없잖아?”

“가수들이 아무렇게나 써 놓은 가사를 믿을 필요는 없어. 난 그냥 당신이 알아줬으면 해서 당신을 부른 거야.”

“뭘?” 수아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훌쩍였다.

“생각해봐. 당신이 생각하기에 당신 남편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곤 했어?”

수아는 잠시 생각해보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솔직히 당신 믿음직한 남편은 아니었어.”

“그래, 미안해.”

“뭔갈 하다가 불리해지면 변호사만 찾았잖아.”

“그래, 그랬지.”

“응, 정말 그래.”

수아가 말을 끝맺자 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내가 그 놈을 부를 수가 없어. 당신이 불러줬으면 좋겠는데.”

“하, 하지만.”

수아는 검사실로 향하는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누가 진짜인지 몰라. 저기 간 쪽의 자기 이야기도 들어봐야 하잖아.”

“글쎄. 그 녀석이 친구를 부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겠지.”




3.

손재득은 취조실의 의자에 곽정우를 앉혔다. 멀쩡한 곽정우도 이곳에 앉아있었는지 아직 의자 바닥에 온기가 남아있었다. 정우는 아직도 손목을 주무르고 있었다. 재득은 그의 곁으로 다가와 철제 책상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솔직히 말해. 무슨 수법을 썼지?”

“뭘?”

“빼지 마. 클론 기술 말이야. 누구랑 합작한 거야. 어떻게 했길래 텔로미어 DNA에 차이가 없을 수가 있지?”

“묵비권을 행사하지.”

“뭐라고?”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면 들을 생각도 없잖나. 변호사 불러.”

“제기랄.”

재득은 다시 한 번 애꿎은 책상을 두들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러지?” 정우가 물었다.

“방금 전에 나간 놈도 너랑 똑같은 소리를 했어.” 재득이 말했다.




4.

그로부터 20분 뒤, 깔끔한 정장 차림의 여성이 보건소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헤매지 않고 곧바로 재득을 향해 걸어왔다. 재득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쇼. 이 건을 맡은 집행관…….”

“누가 소문을 낸 거죠? 바깥에 구경꾼이 쫙 깔렸던데. 피해자들의 사생활 보호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겁니까?”

재득은 내밀었던 손을 거두고 팔짱을 꼈다.

“그럽시다, 뭐. 당신이 그렇게 나온다면야. 나도 굳이 우호적일 필요 없겠군.”

“내 의뢰인은 어디 있죠?”

“어느 쪽 의뢰인 말이오? 싱싱한 거랑 반쯤 죽어가는 게 있는데.”

“과연씨!”

의자에 앉아있던 수아가 일어나 총총걸음으로 나과연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트렸다. 재득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자신의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조심하십쇼, 부인. 남자랑 여자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어요. 아무래도 남편분의 행실에 자꾸만 의구심이 듭니다만.”

“23세기에 20세기 불륜스토리 쓰느라 수고하시네요, 집행관씨. 제 의뢰인이나 보여주시죠.” 나과연이 말했다.

“이쪽이야.” 수아가 재득의 승낙도 받지 않고 그녀를 격리실로 이끌었다. 앉아있던 두 곽정우가 일제히 일어나 그녀를 맞았다. 재득은 느긋하게 벽에 기대어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텔로미어 검사를 세 번이나 했는데 결과가 전부 똑같아요. 솔직히 어느 쪽이 진짜인지 나도 모르겠소. 부인께 아무나 찍어 데려가시라고 했는데 말을 듣지 않는군. 아무쪼록 부인을 설득해서 올바르다고 판단되는 쪽을 데리고 나가쇼.”

“상당히 거친 방법이군요, 그렇지 않아요?” 나과연이 말했다.

“나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서. 텔로미어 검사가 안 나온 적은 있어도 똑같이 나온 적은 없는데. 솔직히 귀신에 홀린 기분이오.”

“고생이 많아.”

나과연은 재득을 무시하고 격리실 안의 친구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두 명의 곽정우와 차례로 악수를 하고 의자를 가져다 격리실 앞에 앉았다.

“그러니까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까 둘이 되어있었단 말이지.”

“그렇지. 아내는 또 다른 나와 자고 있고. 열이 뻗쳐서 덤벼들긴 했는데 나를 이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더군.” 곽정우가 말했다.

“누가 할 소리.” 다른 곽정우가 말했다.

“썰렁한 유머는 그쯤 하고. 빨리 나가야지.” 나과연이 말했다.

“그래야지. 그런데 뭐야. 벌써 결론이 난 거야? 무서운데.”

“음, 뭐 대충. 공항에서 분리된 것 같다는 말을 듣고 감이 왔어. 너도 여기서 머리 식히면서 대충은 짐작했을 것 같은데.”

“그래.” 두 명의 곽정우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재득은 정색하며 몸을 일으켰다.

“뭐라고? 이미 원인을 알고 있었다고?”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집행관 선생. 내가 당신에게 말하지 않은 건 당신이 멋대로 억측을 할까 두려워서였으니까. 내가 사실대로 말했다면 당신은 우리가 살기 위해서 서로 입을 맞췄다고 생각했을 거요.” 정우는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말하지 않을 거요. 여기 내 친구 나과연이 정답을 말해주겠지.” 또 다른 정우가 말했다.

“나, 원. 더 강하게 나갔어야 했군. 코렁탕이라도 한 그릇씩 먹여줬으면 좋았을걸.” 재득의 말에 과연과 수아가 그를 노려보았다.

“만약 그랬다면 당신도 무사하지는 못했을 걸요.”

“글쎄. 정답이나 말하시죠, 변호사 아가씨. 어차피 판결을 내리는 건 내 쪽이오. 항소도 없고, 규칙도 없지. 납득이 가는 설명을 내놓지 않는다면 내가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어느 쪽을 소각할지 결정하겠소.”




5.

“정답은, ‘복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예요.” 나과연이 말했다.

“뭐라고? 진짜로 쌍둥이라는 건가? 텔레파시가 통하는?”

“당연히 아니죠.”

“그러니까 당신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인간이 여기 둘 있는데, 복제같은 건 없었다고 말하는군. 흠, 좋아요. 난 저기 멍든 쪽을 소각할 생각이오. 아무래도 부인도 쌩쌩한 쪽을 좋아하시는 것 같고.”

“안돼요!” 수아가 비명을 지르며 끼어들었다. 나과연이 손을 들어 그녀가 재득에게 달려드는 것을 제지했다. 과연은 재득에게 시선을 두며 말했다.

“말했다시피 복제는 없었어요. 하지만 그 비슷한 것은 있었죠. 공간이동이요.”

“공간이동?” 재득이 되물었다.

“공간이동장치의 원리는 알고 있어요?”

재득은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은 알고 있다는 거요? 변호사가 그런 걸 알고 있다는 게 더 이상하군.”

“초공간물리학을 복수전공했어요.”

“아.” 재득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당신은 로스쿨에 다니면서 동시에 그 어렵다는 초공간물리학을 수강한 거로군. 천재라고 불러드리겠소. 그래도 내가 최종 결정자라는 건 변함이 없지만. 날 설득하려면 좀 더 겸손한 쪽이 좋을 것 같은데. 사회생활 선배로서의 충고요.”

“공간이동장치를 단순화하면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어요. 출발지의 진입게이트 - 앤서블 - 도착지의 사출게이트죠.” 나과연이 말했다.

“앤서블?”

“중력을 이용한 통신장비예요. 우주 어디서나 시간적 지연 없이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장비죠.”

“아, 그래.” 재득이 말했다. “통신장비가 운송장비에 들어가서 뭘 하는 겁니까, 박사님? 문자메시지라도 날리시려고?”

“비슷해요. 인체를 구성하는 입자의 정보를 전송한다는 것만 빼면.”

나과연은 수아를 진정시켜 의자에 앉히며 말했다. 재득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해가 안가는데.”

“앤서블의 기원부터 말해보죠. 앤서블이라는 용어와 기본적인 개념은 근대 20세기의 유명한 SF소설가 어슐러 K.르귄이 창안했어요. 당시에는 만들어낼 기술이 없었고, 전반적인 작동방식 역시 지금과는 큰 차이가 있지만 소설에서 묘사되는 기능은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과 다를 바 없죠.

당시의 인류는 통신 수단으로 전파를 사용했어요. 하지만 전파는 빛의 속도이기에 우주에서 사용하기에는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죠.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식민화 가능한 행성들은 몇 광년씩 떨어져 있잖아요? 그런 곳으로 전파를 쏘아 보내면 메시지를 받는 데만도 몇 년씩 걸리게 되니까.

그래서 르귄은 우주 연합을 이어주는 수단으로서 앤서블을 생각해내요. 그녀의 소설에서 각 우주인은 물리적의 이동에는 빛의 속도로 제약을 받지만 정보만큼은 앤서블을 통하여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지요. 사람은 이동할 수 없어도, 최소한 멀리 떨어진 상대와 대화는 할 수 있는 거예요.”

“그게 지금 이 사건과 관련이 있소?”

“들어봐요. 앤서블은 기본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장치예요. 통신장비죠. 하지만 앤서블이란 개념의 창안자인 어슐러 K.르귄을 포함해서 우주 진출 초창기의 사람들은 늘 평범한 사실 하나를 놓치고 있었어요. 그건 우리 자신을 포함해, 우리가 사는 세상 전체가 실제로는 정보로 되어있다는 거죠.

즉, 우리가 우리의 몸을 완벽하게 정보로 치환할 수만 있다면 공간의 이동과 정보의 이동은 실질적으로 무차별하다는 거예요. 그게 공간이동장치를 발명한 과학자의 아이디어였어요.

탑승객이 공간이동기의 진입게이트를 통과하면 그의 몸은 소립자 단위로 분해됩니다. 게이트는 그를 이루는 입자들의 위치정보와 상관관계를 받아 데이터로 기록하죠. 진입게이트는 앤서블을 통해 데이터만을 목적지로 보내고, 목적지의 게이트는 앤서블을 통해 수신된 데이터를 통해 그 곳에 준비되어있던 입자들로 탑승객을 재조합해 내보내요.”

“뭐라고?!” 재득이 큰 소리를 질렀다. 나과연은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뭔가 문제라도 있어요?”

“아니, 난…….”

재득은 얼굴을 찌푸린 채로 턱을 좌우로 움직이며 손바닥으로 턱수염을 문질렀다.

“당신 말대로라면 공간이동을 한 사람은 출발 전과 후가 다른 거잖소.”

“왜 그렇게 생각하죠?”

“그 사람을 이루는 물질이 다르다고 했잖아요.”

“‘소립자’가 다른 거죠. 하지만 원자나 분자 수준에서 보면 공간이동장치가 어떤 오차 없이 모든 성질을 재현하므로 물질적으로도 같아요.”

“맙소사, 본의 아니게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군. 평생 공간이동장치는 쓰지 말아야겠소. 당신이 뭐라고 그럴듯하게 말하든 나는 출발지의 나와 도착지의 내가 동일한 인간이라고 확신할 수 없소.”

“당신이 소립자 수준까지 느낄 정도로 민감한 것 같지는 않은데요.”

“민감도의 문제요? 소립자 단위까지라고 해도 내가 아닌 물질로 나를 조합하는 거잖소. 그게 어떻게 나와 같은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느냔 말이오.”

“이제껏 내가 들은 공간이동장치 혐오 중 중 가장 해괴한 말이군요. 당신이 어제 닭고기를 먹었다고 해서 당신이 닭이 되거나, 닭의 속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뭐요?” 재득은 이를 드러내며 인상을 썼다.

“당신의 지성을 모독할 생각은 없었는데요. 난 다만 당신이 말씀하시는 ‘물질’이 당신 자체는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뿐이에요. 우리는 음식을 섭취해 에너지와 단백질 합성을 위한 재료를 얻지요. 하지만 우리가 음식에서 얻는 건 속성이 아니라 그 에너지예요.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은 DNA 정보에 따라서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죠. 중요한 것은 DNA 정보가 정확하게 전달되었는가 하는 것이지 내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이 진정으로 내 단백질이었는지 아닌지가 아니에요.”

“음, 어…….”

재득은 말문이 막혀 한참 눈을 굴리다가 달려들듯이 되물었다.

“그렇다면 죽음은 어쩔 거요? 당신 말대로라면 공간이동장치에 들어가는 순간 그 승객은 죽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오. 어쨌든 그는 소립자로 분해되니까.”

“하지만 곧 재조합되잖아요? 사실 승객들은 자신이 재조합됐다는 것조차 느낄 수 없어요. 말했지만 앤서블에는 시간 지연이 없어요.”

“하지만 객관적으로 분해되는 건 사실이잖소?”

“그건 그렇죠.”

“이봐, 아가씨. 보통 사람들은 그걸 ‘죽었다’라고 해요.”

“글쎄요. 난 당신이 죽음을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나는 죽음이 개체에 있어 미래사건의 영구적인 상실이라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처지에 놓이건 그 이후를 경험할 수 있다면 그걸 죽음이라 볼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나과연이 말했다.

“그야 남의 눈으로 보면 게이트로 들어간 승객과 나온 승객은 분명 차이가 없겠지. 동일한 물리적 상태와 동일한 기억을 가지고 있겠고. 하지만 당신은 ‘나’의 시선에서의 죽음을 간과하고 있소.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 말이오. 우리는 인생이 단 한 번뿐이고 결코 되풀이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잖소? 게이트에서 내가 소립자 단위로 분해되었을 때 ‘나’는 이미 죽은 거요. 반대편 게이트에서 나오는 것은 ‘나’와 매우 유사한 대체품일 뿐이고.”

“그럼 당신이 보기에,” 나과연은 손을 들어 두 명의 곽정우를 가리켰다. “여기 있는 두 사람 중 누구도 진짜는 아니군요. 이들은 이미 수십 번도 넘게 공간이동장치를 사용했으니까.”

“그렇소. 젠장. 미안하게 됐군요, 부인. 난 저 둘 중 누구도 넘겨드릴 수 없을 것 같소.”

재득이 말했다. 수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뭐라고요?!!”

“클론은 모두 소거하는 것이 내 의무요.”

“진정해요. 당신은 공간이동장치를 사용한 사람을 전부 죽일 생각인가요? 그런 식으로 행동하다간 당신 목에 먼저 현상금이 내걸릴텐데.”

“과연 거기까지는 무리로군. 하지만 공항을 폐쇄하도록 청원할 수는 있을 것 같소. 이 기술은 너무 위험해.”

“아예 온 세상을 병 속에 집어넣지 그러세요. 아니, 당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어때요? 당신의 논리에 따르면 당신 자신도 복제 아니겠어요?”

“내가 클론? 허, 그건 또 무슨 말이오.”

“폴 오스터의 유리의 도시라는 단편에 나오는 피터 스틸먼이라는 시인이 이런 이야기를 하죠. 내일은 내가 누가 될 지 알 수 없어요. 하루하루가 새롭고 나는 매일 태어나니까요. 라고 말이죠. 우리는 매일 밤 잠을 통해 의식의 단절을 경험해요. 잠에서 깨어났을 때, 우리는 이 세상이 갑자기 변한 것처럼 느끼고 세상이 자신을 남겨둔 채 건너뛴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죠.”

“이봐요, 변호사 아가씨. 날 바보취급하지 마시오. 나도 과학에 대해서 알만큼은 알고 있어요. 내가 잠을 잔다고 해서 뇌가 죽음과 같은 상태에 놓이는 것은 아니오. 그 상태에서도 뇌파는 여전히 활동을 하고 있거든. 그러니까 의식의 연속성은 담보된다 이 말이오.”

“당신이 객관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삼는다는 것이 무척이나 놀랍군요. 당신은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나’의 모든 특징을 부정했잖아요? 모습과 기억이 모두 같아도 그 사람은 공간이동을 하기 전의 사람과 결코 동일인일 수 없다고요.

당신은 결코 침범당하지 않는 고유한 ‘나’에 대하여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그것은 철저히 주관적인 의식이죠. 당신이 굳이 데카르트처럼 모든 것을 철저히 의심하겠다면 마땅히 뇌파의 데이터도 배제해야 옳지 않겠어요? 당신이 정말로 자신의 고유한 의식에 집중한다면, 당신은 데카르트적인 ‘생각한다.’의 상태가 어느 시점에 사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거예요. 그게 바로 잠이죠. 우리가 외부적인 데이터를 모두 배제한다면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동일한지도 확신할 수 없어요. 또 알아요? 실제로 다를지도 모르죠. 당신에게 원한이 있는 범죄자가 자고 있는 당신을 클론으로 만들어 침실에 가져다놓고, 본체는 죽였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어쨌든 아침에 일어난 당신은 자신이 밤에 잠자리에 들었던 바로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최소한 나에게는 근거가 있소.” 재득은 낮게 신음하듯이 말했다.

“무슨 근거 말이죠?”

“최소한 나는 길가다가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마주치지는 않지. 그러니까 그런 사건이 생길 때까지 나 자신에 대한 의문을 유보할 수 있을 거요. 중요한 건 여기에 곽정우씨가 둘 있다는 거요. 그리고 그게 어느 쪽이든 둘 중 하나는 가짜가 분명해.”

“정신에 대한 고전적인 관점을 따른다면 집행자씨의 말이 옳아요. 확실히 예전에는 인생이 단 한번뿐이었죠. 하지만 그건 인간의 본질이 그래서라기보다는 단순히 기술적 한계 때문이었어요. 지금은 아니에요. 현대 과학은 인간의 정신이 뇌라고 하는 물리적 실재의 뉴런과 글리아세포의 구성과 상태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밝혀냈지요. 만약 우리가 그 사람을 구성하는 모든 속성을 동일하게 재현하는 데 성공한다면 우리는 어느 쪽이 진짜인지를 판단할 수 없어요. 실제로는 둘 다 원본이라 말하는 게 옳겠죠.”

“이제 종교를 믿으며 말세가 오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군.”

“생각해보면 간단한 문제예요. 당신은 인간의 정신을 모나리자처럼 바라보고 있어요. 그것은 이 세상에 딱 하나 뿐이고 다른 모든 모나리자는 정교한 모작인 것이죠. 하지만 저는 우리의 정신이 오히려 영화와 비슷하다고 말하고 싶네요. 영화는 여러 상영관에서 동시 상영되지만,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어느 상영관에서 상영되는 영화필름이 진짜인지를 신경 쓰지 않아요. 그리고 어느 영화관에서 봤건 우리는 진짜를 봤다고 생각하죠.

제 친구가 바로 그런 상황에 있는 거예요. 아마 추측하기로 앤서블이 지구까지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에 블랙홀이나 다른 어떤 요인이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싶네요. 공간이동장치는 타임렉 때문에 정우에 대한 정보를 두 번 수신했어요. 그리고 그를 두 번 조합한 것이죠. 매우 드문 일이지만 슬로바키아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었다는 것 같네요.

법적으로 클론은 소거되어야 합니다. 그건 맞아요. 하지만 그건 우리가 텔로미어 DNA를 통한 명확한 원본 판별법을 가지고 있으므로 가능한 일이죠. 하지만 우리가 그 이상의 유의미한 판별법을 가지지 못한다면 둘 다 풀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그게 법에서 말하는 무죄 추정의 원칙과도 부합하고요. 조금 다른 이야기겠지만.”

“하지만 그의 인생은 어찌 되는 거요? 그의 정체성은? 그는 이제껏 한 명의 인간으로 사회와 관계 맺었소. 당장 저기의 부인부터 시작해서, 주민번호도 하나이고, 직장도 하나이고, 그의 친구들도 오직 한 명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요. 풀어주는 거야 어렵지 않겠지만 그가 감당할 수 있겠소?”

나과연은 격리실 안의 두 곽정우를 돌아보았다. 정우들은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아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재득은 서류철을 뒤적여 새로운 서식을 하나 복사해 돌아왔다.

“솔직히 이 서식을 쓸 줄은 몰랐는데……. 우리가 이 일에 있어서 최선을 다했으며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서류요. 아무런 처치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면 사인해주시죠.”

수아는 사인을 마쳤다. 재득은 열쇠를 가져와 격리실의 철창문을 열었다. 두 명의 곽정우가 방 밖으로 나왔다. 멀쩡한 정우는 바로 수아에게 달려가 그녀를 껴안았다. 다친 정우는 그 모습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다가 나과연에게 가 악수를 했다.

“고마워, 신세를 졌군.”

“뭘, 이제부터 시작이지. 집행관 말이 맞아. 행정 처리할 게 산더미처럼 남아있는걸. 당장 재산 분할부터 시작해서. 수아씨의 거취도 결정해야 하고.”

“거취라고?”

수아를 안고 즐거워하던 정우가 정색을 하며 되물었다. 나과연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어쨌든 둘 다 남편인 건 사실이잖아. 일주일씩 번갈아 머무르는 게 좋을까?”

“그럴 수는 없어. 절대 안 돼!”

곽정우는 수아를 빼앗길 새라 더 힘껏 껴안았다. 수아는 얼굴을 찡그리며 그에게서 빠져나오려 애를 썼다.

“하지만, 자기야. 저 쪽 자기의 이야기도 들어봐야지.”

“자기는 무슨 자기야. 나만 바라봐, 여보. 난 절대 당신을 빼앗기고 싶은 마음이 없어. 차라리 재산을 다 줬으면 줬지.”

과연은 다친 정우쪽을 보았다.

“저렇다는데. 어떻게 할 거야?”

“내가 포기하지.” 정우는 담담하게 말했다. 과연은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너 수아씨 사랑하는 거 아니었어?”

“그래. 하지만 나는 아내가 다른 남자랑 자고 있는 것을 봤어.”

나과연은 잠시 말없이 눈을 깜빡거리며 정우를 보았다.

“하지만 그건 너였어.”

그녀의 말에 곽정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그건 내가 아니었어. 그건 곽정우이긴 했지.”

“지금 자신이 가짜라고 고백하는 거야?”

“아니야! 나는 내가 곽정우가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았어. 이해하지 못하겠어? 나는 곽정우야. 그리고 저쪽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우리는 둘이야. 동일인인적이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우리는 서로 다른 시공간상의 좌표를 차지하는 엄연한 타인이야.”

“하지만 유전자적으로는 동일하잖아.”

“그건 일란성 쌍둥이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성장과정에 따라서 일란성 쌍둥이도 차이가 생겨. 그건 그들이 겪는 일들과 둘러싼 환경이 달라서겠지. 지금은 나와 저쪽의 곽정우가 다르다는 것이 그렇게 크게 와 닿지 않을 수 있겠지. 아직 분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서로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선택을 할수록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갈 거야. 난 그걸 알고 있어. 그러니까 네가 무슨 말을 하건 나는 이미 아내를 빼앗겼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여보, 하지만…….”

“미안해, 자기야. 하지만 난 자기를 보면 미칠 것 같아. 아마 자기가 저 자를 버리고 나를 선택한다고 해도 나는 밤에 잘 때마다 그 일이 생각날 거야. 하지만 저 자는 아니겠지. 그러니까 나를 버리고 저 쪽을 택해. 그게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해.”

수아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다친 정우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어깨가 힘없이 쳐졌다. 그는 뒤돌아서서 쓸쓸히 보건소 입구로 향했다. 나과연이 그를 따라가 어깨를 붙들었다.

“잠깐만, 정우야. 아직 이야기 안 끝났어.”

“재산 문제라면 알아서들 해. 난 그냥……다시 알파 센타우리로 떠날 거야. 친구들한테도 날 찾지 말라고 전해줘.”

“충동적으로 이러지 마. 머리를 좀 식히는 게 낫겠어.”

“생각이라면 충분히 했어. 격리실에 앉아서 그 밖에 더 할 일이 있었겠어? 됐어. 네 도움은 충분히 고마웠어. 길거리 떠돌던 고양이처럼 가스실에서 죽지 않게 해준 걸로 충분해.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아.”

정우는 과연의 손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섰다. 과연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정우와 수아에게로 되돌아왔다.

“어떻게 됐어요?” 수아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나중에 천천히 다시 이야기해봐야 될 것 같아요. 정우야, 너도 얼른 가야지. 휴가도 다 날려먹고 고생했다.”

“그래, 고마워. 역시 너밖에 없다. 나중에 수아가 좀 진정되면 다시 사례할게.”

정우는 과연과 악수를 나누고 수아와 함께 다정하게 보건소를 나섰다. 과연은 한숨을 쉬며 격리실 근처의 간이의자에 몸을 기댔다. 재득이 다가와 그녀에게 커피를 건넸다.

“아, 고마워요.”

“이제 소원대로 다 되셨소?”

“글쎄요. 결과치고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군요. 나중에 어떻게 될 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말하지요. 당신처럼 당찬 여자는 처음 봤소. 비록 내가 어리숙하게 말에서 밀리긴 했지만 신기하게도 기분 나쁘진 않군요. 어때요? 언제 한 번 같이 식사라도?”

재득의 말에 과연은 눈을 흘기며 쿡쿡 웃었다.

“지금 작업 거는 건가요?”

“글쎄, 뭐. 사람 마음먹기 나름 아니겠소. 어쨌든 당신은 내게 감사해야 해요. 내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당신 의견을 받아준 거지. 끝까지 원칙을 고집했더라면 좋은 결과는 얻지 못했을 거요.”

“당신도 싫었던 것 아닌가요?”

“뭘?”

“사람을 죽이는 것 말이에요. 그게 비록 클론이라도 인간의 모습을 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생각할 줄 아는 존재를 지우는 작업은 굉장한 부담 아닌가요?”

“그런 측면도 있지.” 재득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결국은 마음가짐의 문제요. 세상에는 클론을 죽이는 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수두룩하니까. 결국 그건 도살과 같은 거요. 동물에 대한 동정심이 고기의 필요성으로 상쇄되듯, 살인에 대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은 진짜로 살인할 필요성이 생기면 억누를 수 있어요. 비록 마음에 불쾌함이 남아-.”

재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보건소 바깥에서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창문이 흔들리며 몇 개가 부서졌다. 보건소 직원들이 고개를 숙이며 비명을 질렀다.

“뭐지?” 재득이 말했다.

“오, 이런. 설마-.”

나과연은 무엇인가를 예감한 사람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폭발음이 들린 밖을 향해 뛰어나갔다.




6.

곽정우는 눈을 떴다. 흐릿한 광경이 눈에 들어오다가 곧이어 천천히 상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는 수아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그가 눈을 뜨는 것을 보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우는 영문을 모르고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과연과 손재득의 모습이 보였다.

“운이 좋았어.” 나과연이 말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클론에 반대하는 테러리스트들이 당신을 공격했소. 정확하게는 당신들 둘 다.”

재득이 의사 가운을 입은 채로 그의 머리맡에 와서 섰다. 정우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하자 재득의 표정도 따라서 이상해졌다.

“왜? 내가 의사인 게 그렇게 이상하오?”

“그야 보건소에 일하니까 그럴 수야 있겠습니다만……. 좀 갑작스럽군요.”

“내게 감사하는 게 좋을 거요. 어쨌든 내가 당신을 살렸으니까. 정확하게는 당신들 둘 다 말이오. 솔직히 나도 이런 해결책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소.”

정우는 자신의 머리가 허전함을 느끼고 손으로 이마 위를 매만졌다. 머리카락은 깨끗하게 잘려나가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분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반질거려야 할 두피에 남아있는 바늘 자국이었다.

“이건……?”

“말했다시피 테러리스트가 당신에게 폭탄을 던졌소. 소형 폭탄이었지만 혼자 있는 당신을 날려버리는 데는 충분했지. 당신은 뇌의 왼쪽 부분 전체를 잃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소.

또 테러리스트들은 부인과 함께 있는 당신 역시 노렸지. 당신은 부인을 감싸 폭발에서 보호했소. 그래서 그녀는 무사하오. 하지만 대신에 당신은 뇌의 오른쪽 부분을 잃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지.

나는 두 시신 모두 즉시 보건소로 옮겼소. 다행히 조치가 빨리 이루어진 탓에 뇌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남은 뇌를 보존할 수는 있었지. 하지만 당연하게도 한 쪽씩만 있는 뇌로는 무슨 짓을 하건 당신을 살릴 수 없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한 거지. 나는 당신들 둘의 뇌를 합쳐서 하나로 만들었어요. 나는 당신들이 서로에 대해서 이상적인 도너였다고 자부하오. 혈액형부터 시작해서 DNA까지 완벽하게 일치하지. 애초에 본인이니까 거부반응이 일어날 건덕지가 없었소.”

재득은 두 팔을 벌리며 밝게 웃었다.

“그리고 당신은 마침내 하나게 된 거요. 멋지지 않소? 이제 아내를 가지고 누가 차지할 지 고민할 필요도 없어요!”

“그렇군요. 그래서…….”

정우는 불안하게 눈을 굴렸다.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지, 그는 여러 번 말을 되먹었다. 그러나 이내 결심한 듯 물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 둘 중 누구죠?”

“뭐라고요?”

이번에는 재득이 반대로 되물었다. 정우는 인상을 쓰며 약간의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어느 쪽이냐고요. 다친 쪽이오, 아니면 안 다친 쪽?”

“어, 음. 난 내가 그런 질문을 들을 줄은 몰랐는데. 당신은 곽정우잖소? 당신이 나눠진 때처럼 이제 다시 합쳐진 것뿐이오. 더 이상 어느 한 쪽을 선택할 필요가 없소. 당신은 다시 하나가 된 거요.”

“여보?”

수아가 불안함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나과연은 조용히 다가와 재득과 수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방금 막 깨어나서 아직 충격이 있는 것 같아요. 잠시 둘만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겠어요?”

“그야, 뭐. 그러지. 당신이 바란다면 말이오.”

“싫어요. 저는 그이 곁에 있겠어요!”

수아가 저항했지만 재득이 그녀를 달래어 밖으로 나갔다. 곽정우는 잘 가눠지지 않는 몸을 일으켜 침상에 기댔다. 나과연은 그 모습을 팔짱을 낀 채로 잠자코 보고만 있었다. 정우는 한숨을 쉬며 다시 한 번 머리의 흉터를 쓰다듬었다.

“내가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집행관이 말한 대로야. 넌 다시 하나가 됐어.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지.”

“그래……. 그렇군. 하지만 이상한 느낌이야.”

그는 고개를 들어 과연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은 불안한 듯 꿈틀거렸다. 나과연은 자기도 모르게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의 두 눈은 통일되지 못한 형태로 제각각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내가 그녀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한 걸 알고 있어. 난 그렇게 말했지. 그런데 난……가슴으로는 그녀를 증오해. 그리고 그녀가 무슨 말을 하건 부정한 사람이 하는 말로 들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어떻게 해야 하지? 그……집행관에게 부탁해볼까? 다시 머리를 나눠달라고. 난 내가 둘 중 어느 쪽과 동일인이었는지 확신할 수가 없어.”

나과연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보았다. 그녀는 몸을 돌려 커피 포트를 가져왔다. 그녀는 커피를 한 잔 따랐다. 그녀는 커피잔에 하얀 색 알약을 집어넣었다. 한 알, 두 알, 세 알.

그녀는 티스푼으로 커피를 휘저은 뒤 정우에게 내밀었다.

“커피 마실래? 소마를 많이 탔어. 마시면 좀 편해질 거야.”

“그래, 줘. 그게 좋겠다.”

곽정우는 잔을 받아들고 천천히 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나과연은 정우가 커피를 홀짝이는 소리를 들으며 창문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커튼을 살짝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창문의 바로 아래에는 화단이 있었다. 잘린 나무 등걸에 접붙여진 줄기에서 새순이 돋아나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재득이 올바른 결정을 한 거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위안했다. 그러나 줄기 위에 피어날 꽃이 무슨 색일지는 그녀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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