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봄이 왔음을 알리듯 벚꽃이 만창 피어 꽃잎을 흩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저 꽃잎을 보는 내내 아쉬움을 가실 수 없었다.
그것은 지난겨울의 일이었다. 이곳.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이 아파트의 공원에서 만난 어느 한 남자아이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겨울의 아이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쓸쓸해 보이는 꼬마였다.
나는 그 아이를 내 기억 속에서 잊을 수 없었다. 잊고 싶지 않았다. 그래, 그 아이와의 추억을 말이다.

                              공원여행: 공원 옆 아파트 꼬마.

  내가 일하는 해운 아파트는 5년 전 만들어진 최신식 건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1년이 지나면 구식이 되어버렸다. 도시는 빠르게 변해갔다. 쉴 틈 없이 말이다. 그래서 건물들은 넘쳐나는데 건물에 입주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해운 아파트는 입주자들이 꽤 되는 건물이었다. 그래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 생 모집 공고를 냈다. 나는 대학자금을 벌기 위해 학교를 휴학하고 그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 그리고 나는 아파트 공원을 소장님과 함께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것이 작년 11월 초쯤이었다.


“오늘도 열심히 일하는 거 보니 정말 기분이 좋군. 영월군 같은 젊은이가 돈 때문에 휴학을 하다니 참 못쓸 세상이지. 쯧 쯧.”

소장님이 날 보며 혀를 차며 말했다. 나는 그런 소장님을 향해 아니라고 말하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내심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무리 아르바이트를 한다 해도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소장님이 가시자 나는 빗자루로 공원을 쓸었다. 지난달 못 치운 낙엽들을 쓸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낙엽을 쓸며 나무들을 향해 중얼거리듯 투덜거렸다.

“이 놈의 나무들은 왜? 낙엽을 이리 많이 뿌려놓는 거람.”

그러나 그 말에 낙엽들은 계속 떨어졌다. 마치 내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나는 짜증을 있는 대로 없는 대로 다 내면서 낙엽들을 쓸었다. 그러나 여전히 낙엽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언제까지 이 낙엽들을 쓸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쓸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나는 한 숨을 내쉬며 쓸던 낙엽들을 계속 쓸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청명한 푸른색을 띄고 있었다.

“참, 날씨 하나 좋다.”

하지만 내 입에서는 퉁명스러운 말들만 나왔다. 저 하늘은 맑기만 한데 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저 하늘은 저리 파란거야?”

그때였다. 무언가가 내 옷깃을 잡아 댕기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고개를 돌리니 6세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내 옷깃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나는 낙엽을 쓸던 것을 멈추고 아이와의 눈높이를 맞추었다. 아이는 내 눈을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아이는 수줍음을 타듯 몸을 꼬았다. 내가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꼬마야? 이름이 뭐니? 어디 사니?”

그러자 꼬마는 조심스레 내게 귓속말로 말했다.

“최이우. 나이는 다섯 쌀 사는 집은.”

스스로를 최 이우라고 밝힌 꼬마는 검지손가락을 펴 공원 옆의 해운 아파트 103동을 가리켰다. 나는 이우의 손가락 끝을 바라보며 아~ 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때 멀리서 이우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우가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 역시 그 아이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그 여자는 이우와 나를 발견하고는 급히 이쪽으로 뛰어왔다. 그리고는 이우의 손을 잡았다. 그런 다음 그녀는 내게 급히 인사를 하며 벌레를 보는 눈으로 날 쳐다보고는 가버렸다. 여자는 이우를 데리고 가며 내가 들을 정도의 목소리로 이우를 혼냈다.

“엄마가 모르는 사람한테 가까이 가면 된다고 했어 안했어?”
“안했어요.”

이우는 풀죽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답했다. 나는 그런 두 모자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옛날에는 저런 쪼끔 한 꼬마들과 마음껏 이야기도 하고 그랬는데, 왠지 모르게 씁쓸함이 가시질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나는 여전히 낙엽을 쓸고 있었다. 쓸고 또 쓸어도 없어지지 않았던 낙엽들도 이제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열심히 쓸기만 한다면 낙엽을 쓰는 일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쓸면서 공원을 둘러보았다. 공원들에는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학부모와 아이들이 눈에 띄었고, 지각인지 급히 뛰어가는 교복 입은 학생들도 보였다. 그런데 그 때 뒤에서 소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은 아침이지? 오늘도 영월군 자네는 정말 열심히 일하는구먼.”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소장님의 특유의 미소가 나를 반겨주었다. 그가 다가와 학생들을 보며 말했다.

“참 요즘 애들 부지런도 하지. 지각 안하려고 뛰는 것 좀 보게나. 정말 귀엽지 않은가?”
“안쓰럽기만 한 걸요. 저 나이의 애들이 귀엽지는 않아요.”
“거 참 안 됐구먼. 이 나이가 되니 웬만한 애들은 내 눈에는 귀엽게 보인다네. 나도 참 노망이 든 건지.”

소장님이 농담조로 말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농담 같지가 않았다. 정말 진담처럼 보였다. 소장님의 표정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서, 직원들은 모두 그의 상태를 쉽게 알 수 있었다. 내가 소장님에게 말도 안 된다는 뜻을 담아 말했다.

“노망이라뇨. 아직 나이가 노망들 나이는 아닌데요?”

그러자 그는 헛웃음을 짓고서 내 등짝을 치며 말했다. 그러나 보통 내 등짝을 때리는 것보다 많은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보았다. 그가 말했다.

“내 나이가 이제 쉰이야, 쉰. 이쯤 되면 나도 이제 손 주 녀석을 볼 때쯤인데, 노망이 들 나이 아니겠는가? 영월군. 자네는 정말 사람 마음을 잘 위로해주는 것 같아. 나도 얼른 저기 저 꼬마들 같은 손 주 하나 보고 싶어. 그래서 그러는 거야. 하지만 세상이 워낙 흉흉한지라 제작 년에 결혼한 아들 네미 부부가 도통 손 주 녀석을 안 본단 말이야. 그래서 그러네. 하지만 아직 나 노망 안 들었어. 아직 말이야.”

정말 진짜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소장님이 애써 웃고 있다는 것을. 뭔가 고민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내 일도 아니고, 게다가 소장님은 그런 거 물어도 대답을 안 해주시고 일이나 잘하라는 그런 말을 하실 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럼 열심히 하고 이 주위 돌면서 쓰레기 좀 주워주게나.”

그렇게 말하고는 소장님은 관리사무소로 들어가셨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쓸던 낙엽들을 마저 쓸기 시작했다.
낙엽을 모두 쓰는데 두 시간이 걸렸다. 공원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낙엽이 워낙 많아 쓰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하지만 어제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어제 같은 경우였다면 네 시간이나 걸렸을 것이다.
나는 쓸어 모은 낙엽들을 쓰레기 소각장으로 가져가 놓고 공원으로 돌아와 공원을 돌며 떨어진 쓰레기들을 주었다. 공원은 깨끗했다. 그래서 공원을 돌며 쓰레기를 주우니 30분 정도가 걸렸다.
그런데 공원을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주우면서 공원을 훑어보니 정말 조용했다. 뛰어노는 아이들이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어른들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세상이 흉흉하다고 해도 너무 심한 것 같았다. 단 한 명의 아이나 어른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다.
공원을 한 바퀴 돈 나는 관리사무소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소장님의 무릎 위에 어제 보았던 꼬마가 앉아 있었다. 꼬마는 소장님의 무릎위에서 소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워했다. 그 때 소장님께서 날 보셨는지 손을 저으며 오라고 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 손짓에 소장님께 다가갔다.

“소장님 그런데 이 아이는 왜 여기 있어요?”

내가 그렇게 묻자 소장님은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몰랐어? 이 녀석 여기서 맡고 있거든. 경비들이 돌아가면서 아이를 맡아주고 있는데, 오늘은 별 다른 일이 없는 게 나 뿐이라서 말이지. 그래서 놀아주고 있었지.”
“그렇군요. 그런데 이 아이는 어린이집에 안 가나 봐요?”

그 질문에 소장님의 표정이 변했다. 소장님은 아이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한테 사정이 있어서 말이야. 애 엄마가 극성인 것도 있고, 애 자체가 사람들을 좀 꺼려하기도 하고 자주 얼굴을 대면하는 사람이 아니면 꺼려하지. 그래서 우리가 맡아주고 있는 거야.”

이상했다. 어제 난 그 애를 처음 봤다. 그런데 이 시우라는 아이는 말은 걸지 않았지만 가까이 왔었다. 나는 소장님께 어제 있었던 일을 말했다. 그러자 소장님께서는 미소를 한 번 지으시고는

“이 아이가 내게 관심이 있나 본데? 직접 물어보던가. 시우야. 저 형 본 적 있어?”

라고 말했다. 그러자 시우가 나를 올려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우는 자기 집 앞 복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내가 낙엽을 쓸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였을까? 어제 이 아이가 나를 보는 눈빛이 뭔가 신기하다는 호기심 가득한 눈이었다. 나는 시우의 눈높이에 맞춰 앉고서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 형 이름은 이 영월 이라고 하는데, 어제는 미처 인사를 못했네. 이름이 분명 시우라고 했지? 잘 부탁해.”

시우는 내 인사에 수줍게 미소로 답하고는 소장님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나를 꾸준히 보아왔다지만 멀리서 본 것이기에 아직 나를 낯설어하며 경계했다. 하지만 이내 조금씩 내게 미소와 웃음을 보여주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형은 뭐가 제일 좋아?”
“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김치.”

시우의 질문에 그렇게 답하자 시우는 얼굴을 찡그리며 그게 뭐가 맛있냐고 말했다. 시우의 그런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나는 시우의 머리에 손을 얹히며 말했다.

“김치가 얼마나 몸에 좋은데? 어른 되려면 김치 꼭 먹어야 돼.”
“그래도 싫어. 맵잖아.”

시우는 찡그린 얼굴을 한 층 더 찡그리고, 혀를 내밀고 손으로 부채질을 해 맵다는 것을 표현했다. 그런 시우를 향해 나도 같은 질문을 했다. 그러자 시우는 고민도 하지 않은 채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시우의 또래라면 누구나 말 할 답이었다. 그런데 나를 놀라게 한 게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시우의 목소리였다. 시우는 크게 자신의 답을 내게 말했다.

“피자!”

정말 의외였다. 소심할 것 같은 아이가 저런 큰 목소리를 내다니. 나는 시우를 번쩍 들어 올리고 시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정말 큰데? 그렇게 피자가 좋아?”

그러자 시우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다른 거 좋아하는 거 없어?”

  시우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거 다른 거 없어? 라고 묻자 시우는 햄버거와 햄 같은 인스턴트식품들의 이름들을 늘어놓고 마지막으론 장난감 로봇이라고 말했다.

“오! 시우는 좋아하는 것도 많네.”

시우가 그 말에 웃음을 지었다. 나는 계속해서 시우의 기분을 띄어주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본 소장님이 뭔가 생각이 난 듯 나를 부르셨다. 나는 시우를 땅에 내려놓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그를 보았다.
소장님은 시우를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오늘 할 일을 주겠네. 지금 시간이 10시니까 정확히 12시 반까지 시우와 놀아주게나. 활동 범위는 공원 안 어디든지 라네. 공원을 벗어나면 안 되네. 아이 엄마가 5시쯤에 시우를 찾으러 오니까 그 전까지 자네 책임이라네. 알겠나?”

그 말에 순간 내 머리 속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아이를 돌본 적이 거의 없었다. 있다고 해도 그건 강아지였기에 잘 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강아지처럼 다룰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소, 소장님. 전 아이를 돌본 적이 거의 없어요. 그런 저보고 시우를 돌봐 라니, 그건 말도 안 돼요.”

하지만 소장님은 내 말은 들은 채 만 채 하고서 멋대로 결정해버리고 말았다. 결국 나는 시우를 데리고 공원을 돌아다녔다. 공원을 돌며 공원에 사는 작은 새들과 다람쥐, 꽃들을 보여주면서.
시우는 그것들을 무척 신기해하며 좋아했다. 다람쥐가 자신에게 다가오면 움츠렸다가 이내 다람쥐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해맑은 표정을 한 때 묻지 않은 아이였다. 나는 이 아이에게 어쩐지 측은이 갔다. 왜일까? 왜 그런 걸까. 이 아이의 얼굴을 보면 볼수록 측은이 간다. 아이는 해 맑은데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인다.

“형. 그네 타고 싶어.”

시우가 내 옷자락을 잡아 당기며 다른 손으로 공원 그네를 가리키며 말하자, 이내 정신이 차려졌다. 나는 그네를 바라본 뒤 시우를 보았다. 그리고는 그에게 미소를 지어주며 그래 라고 말했다.
그러자 시우는 날 잡아 끌며 공원 놀이터로 향했다. 그리고는 그네에 앉아 뒤에서 힘껏 밀어달라고 했다. 나는 그의 부탁대로 힘껏 밀었다. 그네가 하늘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왠지 모르게 얼굴에서 보이는 시우의 쓸쓸한 느낌이 사라질 수 있게끔 온 힘을 다해 힘껏.
그네를 타는 시우의 얼굴은 내 바람대로 쓸쓸한 느낌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내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시우가 그네 타던 걸 멈추고 앙상한 가지를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형, 저 나무는 무슨 나무야?”

나는 시우의 물음에 나무를 보았다. 나무는 앙상한 가지가 있어서 종류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무 몸통을 보니 대충 어림이 갔다. 나는 내 머릿속에 나타난 나무의 이름을 입 밖으로 꺼냈다.

“아마도 벚꽃 나무일 거야.”
“벚꽃 나무? 그게 뭔데?”
“음… 벚꽃이라는 꽃의 나무야. 봄이 되면 아주 화려한 꽃을 피우지. 그래서 사람들은 매년 벚꽃이 많이 핀 곳을 찾아서 벚꽃놀이를 즐겨. 시우는 벚꽃놀이 한 번도 안 가봤어?”
“응. 한 번도 안 가봤어.”

시우의 표정이 갑작스레 어두워진다. 아까와 다른 표정이었다. 뭐라고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조심스레 입을 때고 말했다.

“그럼 봄이 되면 형이랑 같이 벚꽃놀이 갈까?”

그 말에 소년은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린다. 그리고는 얼굴로 정말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런 소년을 향해 말했다.

“그래, 정말. 벚꽃놀이 가자. 맛있는 것도 먹고 즐겁게 놀자.”

시우의 얼굴이 금세 밝아진다. 그 표정을 보니 어쩐지 내 기분까지 좋아졌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 눈에는 푸른 가을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원래 가지고 있던 푸른빛이 더 푸르게 보였다.

공원 놀이터에서 시우와 신나게 놀고 나서 12시 반이 되자 관리사무소로 돌아왔다. 그러자 때 마침 소장님과 경비원들이 모여서 점심을 시키고 있었다. 경비원 중 누가 나와 시우를 보자 소장님을 불렀다.

“오! 때마침 잘 왔군. 그래, 시우야 신나게 놀았어?”
“네! 정말 재미있게 놀았어요.”

소장님의 물음에 시우가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장님은 그런 시우에게 자장면 먹을래? 라고 물었다. 시우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네!” 라고 말했다. 소장님은 그런 시우에게 미소를 지으며 전화기가 있는 곳으로 가 중국집에 음식을 주문했다.
중국집에 음식을 주문하고 30분이 지나자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며 중국집 전용의 “자장면 시키신 분!!” 이라는 말 과 함께 사무실 문이 열리며 하얀 옷을 입고 철가방 든 사람이 들어와 음식들을 내려놓았다.

“자, 그럼 맛있게 드세요.”
“네!”

배달원의 말에 시우가 크게 대답한다. 배달원은 시우의 우렁찬 목소리에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웃음을 멎고 시우에게 “그래, 많이 먹어.” 라고 말한 후 사무실을 나간다.
자장면을 다 먹은 뒤 우리는 잠시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쉬고 있었다. 그 때 시우가 내게 다가와 책 한 권을 내밀며 말했다.

“이 책 읽어줘.”

나는 시우가 내민 책을 받아들고 제목을 보았다. 동화 ‘선녀와 나무꾼’ 이었다. 나는 이 책이 어디서 났는지 시우에게 물었다. 그러자 시우는 손가락을 펴 소장님을 가리켰다. 소장님은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시우를 내 무릎위에 앉히고 책을 펼쳐들었다.
아주 옛날 옛적에, 라는 문장부터 시작하여 동화책에 적힌 얼마 안 되는 글자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면서 나는 시우의 반응을 살폈다. 시우는 내가 읽고 있는 이 동화책에 흥미를 보이며 그래서, 계속 그래서 라고 말했다. 잠시 내가 숨을 돌리려고 하자 계속 읽어줘 라며 보채기도 했다.
이야기에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인 결말에서 시우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요즘에 동화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는 아이는 드물었다. 그만큼 때 묻지 않은 아이여서 그런 것일까.
동화를 모두 읽고 다시 한 번 시우의 표정을 살폈다. 아이의 표정은 뭔가 상심에 빠진 듯 했다. 아니, 상심에 빠졌다라기 보다 동화속의 인물을 자신과 동일시한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나는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어느 덧 두 시를 향하고 있었다. 이제 쓸쓸 초등학생들이 돌아올 시간이었다. 그 때 소장님이 다가와 내게 봉 하나를 건네며 특유의 미소를 지으셨다. 그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 또한 알고 있었다. 그 미소는 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미소였다. 하지만 나는 시우가 마음에 걸렸다. 분명 날 따라오려 할 것이다. 나는 시우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시우야. 형 잠시 공원 돌고 올게. 그러니까 소장님 말 잘 듣고 있어.”

그러자 내 예상대로 시우가 울상을 지었다. 나는 시우를 가볍게 안아주고 귓속말로 “금방 갔다 올 게.” 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은 거짓말이다. 지금 나가면 한 동안 사무실에는 들리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다섯 시는 돼야지만 돌아 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울상을 짓는 시우를 뒤로 한 채 사무실을 나섰다.
사무실을 나서자 내 눈으로 따스한 해 빛이 들어와 찔렀다. 한 동안 해 빛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하긴 시우와 놀아주느라 하늘을 올려다 본 게 몇 번 안 되었으니 그럴 만 했다. 그런데 왜 시우는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일까. 부러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그런 표정을. 그리고 ‘선녀와 나무꾼’을 다 읽고 나서의 그 표정.
나는 머리를 한 번 흔든 뒤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고 생각했다. 시우가 왜 그런 표정을 짓든 간에 내가 그 아이와 만나는 시간만큼은 그런 걱정을 잊게 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공원을 돌며 불량한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며, 쓰레기를 줍다보니 시간이 빨리 지나 간 것 같았다. 공원 뒤편 산으로 노을이 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이쯤 되면 그만 돌아가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쯤 하고 관리사무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관리사무소로 돌아오니, 입구에 소장님과 시우가 나와 있었다. 그의 엄마가 소장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도 모였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자 시우가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이윽고 소장님과 시우의 엄마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조금 더 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설마 어제 날 보았을 때의 눈초리는 아니겠지?
하지만 그런 걱정도 잠시 그녀가 날 바라본 눈은 경계의 눈이 아니었다.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은 눈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방금 저희 애한테서 영월 씨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어요. 우리 아이와 오늘 재미있게 놀아주셨다면서요. 정말 감사합니다. 힘들지는 않았나요?”
“아뇨,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즐거웠는걸요. 어찌나 시우가 귀엽던지 힘들지 않았습니다. 정말 시간이 빨리 갔었어요.”
“응, 정말 재미있었어. 형아 가 동화책도 읽어주고 그랬는걸. 좀 더 형이랑 놀고 싶어. 엄마 형이 랑 좀 만 더 놀면 안 돼?”
“정말? 오~ 우리 시우 좋았겠다. 형아 가 동화책도 읽어주고. 하지만 오늘은 늦었어. 형도 집에 가야하고. 시우도 집에 가서 저녁 먹어야지.”
“하지만…”

시우가 아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시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내일이 있잖아. 내일 또 놀면 되지. 그러니까 오늘은 엄마 말씀 들어. 알았지?”
“그래, 내일 또 놀면 돼. 그러니까. 엄마 말 들어.”
“아저씨도 부탁하마. 엄마 말씀 들어야지? 그래야 착한 아이지.”

싫은 눈을 계속하던 시우는 자신의 엄마와 소장님의 말에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 내게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엄마와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며 뒤돌아 내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도 시우에게 손을 흔들며 답례했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노을은 시우와 그의 엄마의 그림자를 늘어뜨렸다. 나는 그들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런데 둘의 그림자에 다른 그림자가 비췄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들을 보고 다시 그림자로 시선을 옮겼다.
없다. 없었다. 그들의 그림자 위로 비취던 다른 하나의 그림자가 말이다.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래, 분명 그럴 것이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피로와 함께 불안감이 몰려왔다. 왜 그런 걸까?
다음 날 아침. 나는 공원을 순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아주머니들이 수다를 떠는 것을 엿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수다는 내가 어제 느낀 불안감과 연관이 있는 것 같은 이야기였다. 나는 아주머니들이 이야기하는 공원 벤치 옆에서 쓰레기를 줍는 척하며 이야기를 엿들었다.

“그게 정말이야? 시우 네 집에 그 인간이 온 거 사실이야?”
“정말이라니까. 종호 네와 수진 네도 들었다니까. 목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그 동에 있던 사람들 전부가 들었을 거야.”
“쯧쯧. 시우도 참 불쌍해. 부모들이 이혼해서 말이야. 일곱 살도 안 된 애가 말이지.”
“그러게 말이야.”

나는 거기까지만 듣고 곧장 사무소로 달려갔다. 더 이상 들어봤자. 시우의 부모님에 대한 험담이 전부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었다.
사무소에 당도한 나는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니 다른 직원들은 담당구역으로 가고 소장님 혼자 의자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계셨다. 나는 소장님께 좀 전에 들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자 소장님은 한 숨을 쉬고는 내게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일하다가 달려올 것까지는 없잖나. 그리고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시우 네 부모님이 이혼 한 일이 그렇게 큰일이라는 거야? 가끔 밤에 찾아와서 행패 부리는 거 빼고는 그리 심각한 일도 아니야. 그런데 왜 그리 호들갑이야?”
“하지만 그래도 어린 애잖아요. 하지만 뭔가 어두워 보였어요.”
“그래, 어린 애야. 어두운 표정도 지을 수 있어. 하지만 그 아인 밝아. 그러니 걱정할 것 없네. 정 걱정이 된다면 오늘 자네가 시우와 신나게 놀아주게.”

소장님의 말이 끝나자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시우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뒤로 돌아보았다. 시우가 내 품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내 품에 달려든 시우의 얼굴을 살폈다. 얼굴 표정은 밝아 보였지만 눈 밑으로 다크서클이 진 것이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시우에게 물었다.

“시우야, 어제 잠 못 잤니? 눈 밑에 다크서클이 있는데?”

내 물음에 시우가 고개를 젓고 말했다.

“아니, 아무 일도 없었어. 형아, 것보다 오늘도 신나게 놀자. 응?”
“하지만 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졌는데 어떻게 놀아 좀 자자.”

나의 말류에도 불구하고 시우는 고집을 부리며, 싫다고 나와 놀고 싶다고 말했다. 자기 싫다고 말이다. 하지만 억지다. 다크서클이 눈 밑에 짙게 깔렸는데, 대체 왜? 자기 싫어하는 건지 도통 이해 할 수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시우의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감겼다. 이윽고
시우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나는 아차 하고 그를 두 팔로 받았다.
시우의 엄마가 놀라 비명을 지를 뻔 했다. 하지만 소장님이 그녀를 진정시켜 다행히 비명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저, 우리 시우. 잘 부탁드려요. 안심이 안 돼요. 어제 시우 아빠가 찾아와서 한 참이나 시끄럽게 굴었거든요.”
“시우 어머니. 저희가 잘 돌보겠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세요.”

소장님이 그렇게 말하며 시우의 엄마를 안심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안심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하긴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 어느 부모가 걱정하지 않을까.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시우를 바라본 뒤 사무소 문을 열고 나갔다.
그녀가 나가고 나자, 나와 소장님은 시우를 바라보며 한 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이런 일이 벌써 몇 번인지. 시우 어머니도, 참 고생이시지.”
“정말, 고생이 많으신 것 같아요. 그래도 시우가 저렇게 건강하게 크니 다행이죠.”
“그러게 말일세. 시우가 없다면 시우 어머니는 죽어버렸을 지도 모른다네. 영월군. 혹시 수다쟁이 아줌마들 사이에서 이런 말 못 들었는가?”

소장님이 시우를 슬쩍 보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 물었다.

“무슨 말인데요?”
“쯧. 시우 어머니 말이야. 이혼하고 힘들었는지 화장실에서 커트 칼로 손목을 그었지 뭔가. 다행히도 때마침 시우 외삼촌이 들러서 망정이지 안 그러면 시우. 엄마 없이 커야 했을지도 몰라.”

그러면서 소장님은 시우가 누운 소파로가 잠든 시우의 볼을 쓰다듬었다. 마치 시우의 친 할아버지처럼 시우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나를 돌아보고는 말했다.

“영월군. 자네가 여기서 아르바이트 하는 동안만이라도 이 아이와 잘 지내줬으면 한다네. 나도 자식새끼들 키워봐서 알아. 혼자라는 게 얼마나 두려운 건지 말이네. 혼자서 아파트  밤늦도록 경비 서며 일하는 친구들. 매일 밤마다 가족 생각을 하지. 그래서 나는 혼자 있는 아이들만 보면 애처롭다네.”

소장님을 알고 지내면서 그가 태평스럽고 사람들을 잘 대하는 성격이며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소장님이 여태껏 일하면서 느낀 고독이 아이들을 보면 어쩔 줄 몰라 하는 성격으로 바꾸었다는 생각을 하니, 나 역시 어쩌면 그와 같은 이유에서 이 시우가 딱하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어릴 적 초등학교 때부터 여태까지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낸 기억이 얼마 없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언제나 나 혼자였다. 형은 학교에서 아직 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부모님과 함께 있는 친구들이나 아이들을 보면 부러웠다. 그래서 친척이 오거나 학교 후배들과 같이 있으면, 어른스럽게 행동하며 잘 챙겨주었다. 잘 생각해보면 그 때에는 난 항상 거의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작 진짜로 웃었던 적은 tv코미디 프로를 보면서였던 것 같다.
어쩌면 이 아이도 tv코미디 프로를 볼 때만 웃는 게 아닐까?

“아이구구. 그럼 이만 난 아파트 한 바퀴 돌고 와야겠네. 영월군, 시우하고 사무실 좀 부탁하네.”

소장님이 신음소리를 내며 일어나 천천히 문으로 걸어가며 내게 말했다. 나는 알겠습니다. 라고 답한 후 시우 옆에 앉아 tv를 틀어 시우가 깨어나길 기다렸다.
시우는 아주 곤히 자고 있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를 사람처럼. 그러나 얼굴에서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말하고 있었다. 그걸 시우는 애써 숨기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10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시우는 12시가 다되어서야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일어나자말자 나를 찾으며 말했다.

“형, 나랑 놀자!”
“그런데 배 안 고파? 이제 점심인데.”

내가 그 말을 내뱉자 시우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시우는 배를 붙잡고는 퉁명스럽게 배고파, 라고 말했다.
때마침. 소장님이 사무소로 들어오셨다. 시계를 보니 12시 10분이었다. 보통 때 같았으면 11시 30분쯤이면 들어오실 텐데, 오늘은 시간을 훨씬 넘겨서 들어오신 걸 봐서 아마도 아파트 아주머니들과 수다를 떠신 듯 보였다.

“자, 그럼 오늘 점심은 뭘 까나?”

그러면서 나와 시우가 있는 곳으로 와 몹시 배가 고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나는 그에게 그냥 볶음밥을 시켰는데요, 라 말했다. 그러자 소장님께서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볶음밥이라. 좋지. 시우도 볶음 밥 좋아하니?”

그러자 시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다시 소장님이 시우에게 물었다.

“그럼 짬뽕 좋아해?”

이번에도 시우가 고개를 저었다. 소장님은 머리를 긁적이시더니 다시 시우에게 물었다.

“그럼, 뭘 좋아해?”
“자장.”
“푸후훗.”

둘의 대화를 지켜보다가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둘의 대화가 가수 루이스의 ‘중화반점’의 시작 부분과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소장님과 시우가 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 뒤 아까 주문시켰던 볶음밥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자 나는 쏜살 같이 밖으로 나갔다.
점심을 먹은 나는 시우를 데리고 공원을 거닐었다. 공원은 나뭇가지에 남아 달려 있다가 떨어진 낙엽들로 가득이었다. 나는 낙엽들을 보며 내일 이 낙엽들을 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다.
하지만 시우는 낙엽들을 밟으면 나는 소리가 듣기 좋은지 뛰어다니며 밟아대고 있었다.

‘그래, 낙엽 치우는 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나도 같이 놀아볼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시우와 같이 낙엽들을 밟아대기 시작했다. 낙엽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내 걱정을 날려주는 것 같았다. 나와 시우는 낙엽을 밟으며 공원을 일주했다. 그런데 공원을 거닐던 도중 우리를 몰래 따라오는 남자가 보였다.
처음에는 그냥 가는 방향이 같은 줄 알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나와 시우가 공원에서 노는 동안 계속 우리를 지켜보는 행동을 취하고 내가 돌아보면 다른 데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다음 날에도 계속되었다. 나와 시우가 공원을 산책할 때마다 그가 보였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다가가 왜 자꾸 우리를 따라 오냐고 따지자

“이 사람 보게. 누가 누굴 따라 다녔다는 건가? 나는 이 시간마다 이 공원을 산책하는데, 내가 가는 곳 마다 너 하고 저 꼬마가 있는 거야.”

라고 신경질을 내며 말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를 노려보고 시우를 데리고 곧장 관리사무소로 돌아왔다. 하지만 다음 날도 시우와 내가 공원 놀이터에서 놀 때에도 그 남자가 우리와 멀찌감치 떨어져 우리를 보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그날 저녁 나는 소장님께 며칠 동안 우리를 따라다닌 남자에 대해 말했다. 그러자 소장님께서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나무랐다.

“영월군. 그런 걸 왜 지금 말하는 건가?”
“정말, 산책을 하려는 사람인 줄 알고 좀 더 지켜보고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죄송해요.”

나는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다. 소장님은 한 숨을 쉬시고는 그만 퇴근하라고 내게 말했다. 그리고 그 일을 시우 어머니께 전해줄 거라면서.
나는 소장님께 인사를 하고 관리사무소를 나왔다.
관리사무소를 나오자 차가운 공기가 날 반겨주고 있었다.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공원을 둘러보니 공원은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낙엽들이 무수히 쌓여가고 있었다.


다음날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관리사무소 앞에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니 순찰차 두 대와 순경 4명과 사복을 입은 형사로 보이는 남자 한명, 그리고 시우의 어머니가 울고 있었다.

“저기, 무슨 일이죠? 무슨 일인데, 여기 다들 모여 있는 거예요.”
“그럼, 댁은 누구요?”

내가 다가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사복을 입은 남자가 다가와 경찰수첩을 보여주며 짜증을 내며 내게 물었다. 경찰수첩에는 남자의 신원과 소속이 적혀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김 추노였고 소속은 강력2반이었다.

“저 말인가요? 전 이곳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학생입니다. 이름은 이 영월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러자 그는 정말 맡고 싶지 않은 일을 맡았다는 듯 내게 설명했다.

“최 시우라는 아이가 사라졌소. 아이 부모의 말로는 아홉시 경에 잠시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모르는 사람이 엄마가 찾으니까 같이 가자고 해도 문 열고 따라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고 하는데, 당신 그 아이 압니까?”
“네, 관리사무소에서 맡아주면서 놀아주었습니다.”
“그렇소? 그렇다면 어제 아홉시 경에 어디서 무얼 했습니까?”

그가 나를 의심하는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어제 여섯시쯤에 퇴근을 했습니다. 아홉시쯤 이라면 전 집에서 책을 읽고 있었어요.”
“그래요? 하… 정말 큰일이네. 납치나 유괴 같은 경우는 12시간 정도가 지나면 살아있을 가능성이 적은데, 지금이 여덟시 이니까. 아, 정말 돌아버리겠네.”

그가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심하게 헤집어 놓으며 투덜거렸다. 납치? 12시간이 지나면 살아있을 가능성이 적어? 순간 내 머리가 심하게 요동쳤다. 내가 소장님께 말하지 않았기에 그 수상한 남자가 이곳에서 어슬렁거렸다. 만일 그때 지체하지 않고 말했다면 좋았을 걸. 이건 다 내 책임이다. 내 책임.

“저, 어제 말이죠. 제가 퇴근하면서 집으로 가는 길에 제가 사는 동에서 아이를 안고 가는 어떤 사람을 보았어요.”

그 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어 그 목소리의 주인을 보았다. 여성이었다. 그녀는 뭔가 말을 할까 말까? 하다가 섬뜩 말을 한 것 같았다. 내가 그녀에게 다그쳐 물었다.

“그래서, 그 사람 어디로 갔어요?”

그러자 여성은 손을 들어 공원 안쪽을 가리켰다.

“그렇다면, 범인은 아직 이곳에 있을 수도 있으니, 일단 이 근처를 샅샅이 뒤져보는 게 좋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수색을 도와주세요. 순경 몇 명하고 저 혼자서 다 찾는 건 무리잖아요? 자, 그럼 조를 짜서 찾아봅시다.”

그 말이 끝나자 김 추노 형사의 지시에 따라 사람들이 조를 짜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그 조에 들어가지 않았다. 사람을 짜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 시도 지체할 수 없다. 시우를 찾아야 한다.
나는 곧장 공원을 향해 달렸다. 달리면서 시우를 불렀다. 어쩌면 기절해 있을 수도 있는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달렸다. 깨어서 대답할지도 모르는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말이다.
공원 창고 앞에 도달했다. 하지만 창고는 문이 잠겨있을 것이기에 나는 그곳을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공원 여기저기를 뒤졌다. 그러나 찾을 수 없었다. 아무대도 없었다. 조를 짜서 공원과 아파트 근처를 찾는 사람들과 마주쳐서 찾았냐고 물어보았지만 그들도 찾지 못했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시우야.’

나는 다시 한 번 공원을 찾아보기로 했다. 낙엽이 발에 밟힌다. 그리고는 부스럭 소리를 내며 납작해졌다. 시우의 가련한 몸이라 생각하니 낙엽을 밟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자, 시우를 빨리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니 다시 공원 창고 앞이었다. 다른 곳은 대부분 찾아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공원 창고다. 그러나 공원 창고는 문이 잠겨 있다. 어떻게 그곳에 문을 열고 들어 갈 수 있을까.
하지만 만약이라는 것도 있으니…
나는 침을 목 너머로 삼키고 창고 문을 잡아 당겼다. 그런데 문이 열렸다. 문이 열려 있다. 어떻게 된 거지? 문의 자물쇠를 보았다. 무엇인가로 내려찍어 심하게 회손 되어 있었다. 순간 설마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갔다.
나는 재빨리 창고로 들어갔다. 창고를 들어가자 계단이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니 공간이 나타났다. 어두컴컴해서 앞은 잘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어 휴대폰 불빛을 비춰 주위를 보았다. 안 쓰는 청소도구들을 비롯한 기자재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기자재들을 치우고 마련한 듯 보이는 빈 공간에 창백한 시우가 있었다. 나는 시우에게 다가가 시우의 피부를 만져보았다.
미지근했다. 피부의 온기가 미지근했다. 나는 시우를 심하게 흔들어 보았다. 하지만 깨지 않았다.

“말도 안 돼… 말, 도 안 돼. 헤헤헤~”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아버렸다. 그리고 내 눈에서는 따뜻한 물이 흘러내렸다. 다 내 잘못이다. 내가, 내가…
나는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한 채 시우를 바라보았다. 편안해 보이지 않지만 곤히 자는 표정이었다. 나는 소리를 내어 울었다. 크게, 크게 아주 크게 말이다.
그런데 그 때였다. 계단에서 빛이 비치며 그림자 하나가 내려왔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거기 누구 있어요?”

소장님의 목소리였다. 나는 울음을 그치고, 눈물을 훔치며 크게 소리쳤다.

“시우 찾았어요! 그런데 시우가 자여, 자. 하하~.”

그 말에 소장님이 내려와 나와 시우를 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떡 벌린 채 나를 껴안아 주시면서 등을 토닥였다. 나는 그의 품에 안겨 울었다. 천장을 뚫고 내 울음소리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울고 울었다.
그렇게 소장님의 품에서 울고 나서 내 마음이 진정 되자, 소장님은 내게 사람들을 불러오겠다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가셨다. 그가 나가자 나는 시우의 볼을 쓰다듬어 보았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다시금 자책감이 파도 같이 밀려들었다.

‘내가 그 때, 그 때 소장님께 말해서 조치를 취했다면 어쩌면 시우는 살 수 있었을지도 몰라. 그래, 그랬을지도 몰라. 하지만 미련하게 내가 이 모든 걸 망쳐놓았어. 내가. 내가.’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를 몇 분인가 자책을 하자 창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나는 빛이 들어오는 창고 계단을 응시했다. 그림자들이 계단으로 들어오는 빛을 가렸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하나 둘 계단을 내려왔다.
제일 먼저 계단을 내려온 사람은 시우의 어머니였고, 다음으로는 그 형사와 소장님이었다. 그리고 소장님의 뒤편으로 못 보던 남자가 있었다. 누추한 옷차림에다가 중년 아저씨 냄새를 풀풀 풍기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시우의 어머니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미안해, 미안해 여보.”
“여보라는 소리 하지 마! 너 따위 때문에 우리 시우가, 시우가… 흐흑.”

남자는 시우의 어머니의 외침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남자의 말을 들어보니 그는 시우의 아버지인 것 같았다. 하지만 왜? 그녀는 시우의 죽음을 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일까?

“당신이 우리 사람 시켜서 시우 납치 해라고 했잖아! 다, 당신 때문이야. 당신 시우 납치하고 나서 우리 아파트 주위를 서성거렸잖아! 집에서 다보였어. 내가 공원과 아파트 여기저기 다니다가 당신하고 비슷한 사람을 보기도 했어. 그러다가 시우가 죽었다는 아파트 관리소장님 말 듣고는 그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느냐는 듯 왔잖아! 이 짐승 녀석. 너 같은 건 지옥에 떨어져야 돼!”

시우의 어머니는 남자에게 온갖 막말을 퍼부었다. 그리고는 분이 안 풀렸는지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녀를 말릴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녀의 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창고에 있다가 밝은 곳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해가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어머니에게 안긴 시우의 창백한 육체는 햇빛을 받아 빛났다. 마치 하늘로 올라갈 천사처럼.
김 추노 형사가 남자에게로 다가가 그의 손에 수갑을 채우며 죄 명과 함께 미란다 원칙을 제창 한 뒤 물었다.

“당신이 납치를 부탁한 그 사람 지금 어디 있는 지 아십니까?”

그러자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어쩌면 이 근처에 있다가 도망쳤을 수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대개 그렇거든요. 뭔가 일이 잘못되면 도망치죠. 그리고는 잠적해버려요. 그래서 잡기 어려워요. 아마도 당신은 그를 잡을 수 없을 지도 모르죠.”
“그렇군요. 아, 마지막으로 할 말은?”
“미안하다. 시우야. 못난 아비를 만나서. 그리고 당신한테도 미안해. 하지만 사랑했어. 지금도”

그 말을 끝으로 그는 형사의 인도로 순찰차에 타고 근처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에 분노를 느꼈다. 사랑했다고? 그렇다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당신은 사랑한 게 아니야. 그저 집착했을 뿐이야.
나는 멀어져가는 순찰차를 응시하며 그 안에 타고 있는 그 남자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이내 나는 시선을 공원으로 돌렸다.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 아버지였지만, 그래도 시우의 아버지인데, 그런 그를 미워한다면 시우도 어쩌면 아파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일이 있고 한 달이 지났다. 여전히 시우를 납치한 남자는 찾지 못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서 청탁을 부탁한 시우의 아버지의 증언에 따라 몽타주를 제작했고, 전국에 수배지를 뿌려서 곧 붙잡을 수 있을 거라는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내 생활은 변하지 않고 시우가 살아있을 때와 똑같은 나날이었다. 공원을 돌고 쓰레기를 주우며 얼마 남지 않은 낙엽들을 쓰는 나날들.
나는 공원을 쓸다가 벤치에 앉았다.

“아, 저 하늘만은 왜 이리 푸른 걸까?”

벤치에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곧 겨울이 올 것 같았다. 멀리서 먹구름도 보였다. 게다가 날씨는 어느 때의 겨울보다 쌀쌀했다. 나는 내가 앉은 벤치 앞에 있는 벚꽃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이번 겨울이 지나면 벚꽃들은 화려한 꽃을 피우겠지.’

그 생각을 하니 문득 시우 생각이 났다. 아, 한 동안 시우를 잊지 못할 것이다. 아마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은 내내는 잊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짧은 시간동안의 그 추억은 내 마음 속 깊숙이 자리 잡을 것이다. 영원히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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