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설녀

2008.01.22 21:4501.22

어제 근 60년만에 돌아온 홋카이도의 여관 창에서 한 여인을 보았습니다. 아이 하나와 함께 꽁꽁 언 눈길위를 걸어가는 여인을.
하염없이 걸어가는 그 모습이 떠나간 당신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자박자박 걸어가는 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여인은 계속 계속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뒤쫓는 사람도 없고, 따라가야 할 사람도 없는데 여인은 아이를 재촉해서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당신 또한 그러했지요...
창밖에 비치는 그 모자의 모습이 영락없는 당신의 모습 같아서 계속 보았습니다.
가까워지면서 잠시 여인의 얼굴이 이쪽을 돌아보았지요.
그제서야 당신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아직은 젊은 그 여인의 얼굴에는 당신의 얼굴의 세월이 없더군요...
홋카이도에서, 혹은 교토, 도쿄에서 아니, 오키나와에서, 그 많은 일인들 사이를 뚫고 내 손을 잡고 걸어가던 당신.
그때는 한참 한인들에게 위험한 시기였습니다. 당신도 알고 있었겠지요.
일인들은 조선을 합병한 후, 조선인에게 많은 것을 강요했습니다.
창씨개명, 미곡반출, 민족으로서의 자존심을 버리는 것.
수많은 기회주의자들과, 기회주의자가 아니지만 단지 생존하기 위해서 건너갔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내 부모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부모님은 일본인, 아니 일본을 견뎌내지 못했지요.
조선에서의 사람살이도 그다지 좋지 못했을진대, 타국에 와서는 오죽했을까요.
나는 옹알이도 일어로 했고, 처음으로 뱉은 말도 일어를 한 반 일본인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차라리 그 편이 먹고 살기 좋다고 탄식하곤 했지요.
나도 어린 마음에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건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일본인으로 살았겠지요.
지진이 일어난 후의 일입니다. 기차를 타고 가는데 미친듯한 일본인들이 칼을 뽑아들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마구마구 찔렀습니다.
피가 흘렀지요. 그 피가 내 이마를 타고 흘렀습니다.
그들이 날 찌르려고 했을 때, 그 때 당신은 내 손을 잡았습니다.
얼음장같이 찬 그 손이 날 붙잡고 그들을 보자, 그들은 마치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머쓱한 얼굴을 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래요. 그 때 당신은 참 나이를 알기 어려운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스무살인 것 같고, 어찌 보면 서른살인 것 같은 그런 얼굴.
아마 그치들은 당신이 나의 어머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조금 더 나아가서 자신들이 오해로 자국인을 살해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죠.
만약 당신이 뭐라고 조금만 더 말했더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그들이 지나가자 당신은 날 옆에 앉히고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기차에는 시체들의 냄새가 진동을 하고, 기차는 당신과 나를 싣고 계속 달렸습니다.
나는 달리 의지할 사람도 없었기에 당신의 손을 잡고 걸었습니다.
당신은 날 딱히 보호할 생각도 없었던것처럼, 당신 맘대로 걷더군요.
그렇게 홋카이도에서 내려서 정처없이 걸었습니다.
때는 마침 겨울, 눈발이 마구마구 휘날리는 그곳에서 당신의 하얀 얼굴은 마치 얼음같았습니다. 흰옷을 흩날리면서 하늘하늘 걸어가는 당신은 내가 붙잡지 못할 어떤 그림자였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꼬박꼬박 내가 먹을 것들을 챙겨주었지요.
하지만 밤중에도 당신은 계속 걸었고, 나는 당신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계속 걸어야 했습니다. 참으로 신비로웠지요. 겨울밤, 눈은 계속 내리는데 당신은 설상화를 신지도 않고 자박자박 걸어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당신 옆에 있는 나도 추위를 전혀 느끼지 않았구요.
홋카이도는 추운 지방입니다. 그리고 차라리 요즘이 덜 추운 편이구요.
당신은 내게 말 한마디 해주지 않았습니다. 홋카이도에서 내릴 때까지도 한마디도 없었지요. 내가 당신을 잃어버린 건 도쿄에서였습니다. 당신과 함께 다리를 건너다가 익숙한 조선어에 잠시 귀를 기울이다가 당신을 잃어버렸지요.
조선인들을 만난다는 기쁨에 잠시 당신의 손을 놓았을 때, 나는 잠시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은 날 결코 버리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그들을 찾다가 다시 당신을 찾았을 때, 당신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신과 떨어져서 20일간 노숙을 했을 때에야 당신과 나는 애초에 타인이며 잠시 동행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길거리 부랑아들과 싸우다가 위기에 몰렸을 때 다시 나타난 당신이 내게는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요. 내 나이 그때 겨우 다섯살. 당신 손을 꼭 붙잡고 이제는 놓치지 않겠노라 결심했죠.
당신은 꼭 나와 함께 할 생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뒤로도 세 번, 당신과 나는 헤어졌었지요.
한번은 도쿄에서 좌익 청년들을 만나면서였고, 한번은 오키나와에서 오키나와 사람들과 섞여있는 조선인들을 만나면서...
세 번, 헤어져있는 동안 당신은 아마도 날 계속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었었나보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처음 함께 여행했던 그 홋카이도에서 나는 당신과 헤어졌습니다.
당신은 어두침침한 3등칸에서 천황의 패전소식을 라디오로 듣고 있었지요.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처럼 천천히 일어나 눈이 내리는 홋카이도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당신의 손을 놓았을 때, 당신은 날 잠시 바라보다가 무표정하게 천천히 나로부터 떨어져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신과 함께 했던 3년간 당신은 단 한번도 내 이름을 묻지 않았고, 말도 하지 않았었지요...
나도 당신의 이름을 묻지 않았구요. 어쩌면 그것이 당신과 나의 거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확하게 일본인과 조선인이었던 우리 두 사람이었기에...


세이지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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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훈 08.01.24 15:45 댓글 수정 삭제
    흡인력있는 서두인데, 그 다음이 이어지지 않았네요. 여기까지 쓰고 말면 글 전체가 서두가 되어버리지 않을까요.
  • No Profile
    세이지 08.01.24 18:56 댓글 수정 삭제
    좀 더 다듬어야겠지요...저도 마무리하면서 속이 좀 개운치않았어요. 어떻게 다듬을까 생각중입니다만, 제 속에서는 더 이상 진도가 안 나가는군요...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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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키 08.02.16 12:13 댓글 수정 삭제
    뭐랄까.. 이런말씀하기에는 죄송스럽지만 비판하는 입장이니 그냥 맘놓고 까겠습니다.
    아하하... 무튼.

    무슨 새로운 저녁 드라마 소개글 같습니다.
    딱히 알아 볼 수 있는 주제도 없고. 어쩌면 필자분의 욕구 충족을 위해 휘갈긴 습작이라고 말 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문장문장 하나가 의미없고, 무슨 말을 하려는지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연애소설같은데에나 집어넣으면 어울릴 법 하나요.

    어린 학생이 책을 읽고 주인공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쓴 독후감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필자분의 여러가지 단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은 글이군요.

    그렇지만 딱히 마음 쓰지는 마세요. 제가 연애모드를 조금 싫어하기 때문도 있기....

    사실, 초코렛도 하나 받지 못했답니다. 하하. 그럼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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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씨 08.04.27 02:29 댓글 수정 삭제
    뮤직 비디오 같아요. :) 잘 읽었습니다.
  • No Profile
    세이지 08.05.11 14:01 댓글 수정 삭제
    하나씨님/뮤직비디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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