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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웃음 스위치

2007.12.03 12:5612.03

"있잖아. 난 네가 웃는 모습을 보는게 좋아. 하지만 가끔 아무 표정 없이 무슨 생각 하는지 모를 때가 있어. 옆에 있어도 수십만 광년은 떨어져 있는 기분. 이해할수 있겠니? 그럴 때면 무척 슬퍼져."

"네가 슬픈건 나도 싫은데.. 그럼 이걸 줄께. 나랑 이어진 스위치야. 이걸 누르면 난 웃게 돼. 아무 표정 없는 내 얼굴을 보고 슬퍼지면 이 스위치를 눌러줘."

아주 조그만 리모콘처럼 생긴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그걸 누를 때마다 그는 그 즉시 웃음을 지어 주었다. 길을 가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영화를 보다가도 스위치를 누르면 얼굴 가득히 피어나는 웃음을 볼수 있었다.

어느 날 물어 보았다.

"대체 어떻게 웃는거야? 이걸 눌러서 어떻게 웃게 되는거지?"

"아,별거 아냐. 그걸 누르면 전파가 날아와서 내 머리에 든 안테나가 그 신호를 수신하게 돼. 대뇌 피질의 웃음 회로에 자극을 가하게 되면 난 반사적으로 웃게 되는거야. 코가 간지러워서 재채기를 하는거랑 비슷해."

"-_- 정말이야?"

"언젠가부터 스위치를 누르고 그것으로 감정을 조작하는데 익숙해져 버렸어. 네가 지금 가진건 웃게 만드는 거지만.. 울게 하는 스위치. 화나게 하는 스위치,그리고 다른 스위치들도 많이 있어. 눈물이 필요할 때면 울게 하는 스위치를 눌러서 눈물을 빼주곤 해. 화내야 할 상황이 오게 되면 화내는 스위치를 누르는거야. 꽤 편해. 감정을 다루는 방식으론 수월하기도 하고."

"음.. 그렇군. 불편할 때는 없니?"

"스위치를 잘못 누를 때가 있어. 울어야 하는데 웃음 스위치를 누른다거나 화내야 하는데 울음 스위치를 누른다거나 하면 곤란해지는거야. 가령 문상을 가서는 사람들 보는 앞에서 크게 웃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야. 처음에 이런 일이 가끔 있었는데 숙달이 된 지금은 더 이상 생기진 않아. 대신 스위치에 든 건전지를 약이 다 되기 전에 꼬박 꼬박 갈아줘야 하는데 이게 좀 귀찮은 일이긴 해. 네가 가지고 있는 웃음 스위치도 약이 다 되어 갈텐데.. 조만간 갈아줘야 할거야."

그러고 보니 그가 다른 사람 앞에서 웃는 모습을 본게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그를 웃게 하는 웃음 스위치를 내가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그는 오직 나만을 바라보며 웃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스위치를 누르면 그가 웃는다는 사실이 별로 기쁘지가 않게 되었다.

"이봐.. 이 스위치 이제 돌려줄께."

"그래? 그러니. 알았어. 내가 다시 보관하지."

스위치를 돌려 받으며 조용히 말하는 그의 모습이 알수 없지만 조금 슬프게 보였다. 주머니 안에서 보이지 않게 슬픔 스위치를 누른걸까.

그리고 나는 그와 다시 만나지 않았다. 가끔 그의 소식이 들려오곤 하는데,사람들 앞에서 웃지 않던 그가 다시 웃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에겐 이제 웃음 스위치가 있으니까. 그의 웃음 소리가 생각 날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아무 표정 없이 정기적으로 스위치의 건전지를 갈아 주는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바꿔줄 건전지가 있는 한 그는 어떻게든 살아 갈 것이다.
M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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